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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 The Americ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킬러의 영화다. 킬러의 국적은 미국. 그래서 제목이 The American이다. 하지만 미국과 관련된 것은 국적 빼곤 찾을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은 유럽이다. 쫓기는 미국인 킬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언제나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찾아가고 있는 킬러다. 청부를 받고 누군가를 죽이는 그는 역시 그를 노리는 어느 누군가에게 쫓기는 입장이기도 한 것이다. 청부를 받으면서 또한 노군가의 청부에 의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시달리는 그,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고독하다.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설정은 우아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의 성공은 결국 그를 노리는 사람들의 숫자를 불리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타인은 경계의 대상이며, 불신의 대상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죽이기에 고통 받는 것보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는 사실에 더 두려운 킬러는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위협이 된다고 느낄 때, 주저하지 않고 그는 총구를 겨누며, 그렇게 산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위협의 희생자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협하면서도 하루하루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영화 속의 킬러의 삶의 모습이다.

그에게 살인을 의뢰하거나 살인과 관련된 일을 맡기는 청부인과 미국인 킬러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인 것처럼 보였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선 기본적은 신뢰가 필요하다. 일방적이지만 악어의 공격은 결코 없을 것이란 묵인이 있기에 가능한 관계이고, 그것을 통해 서로 공생하는 그런 관계다. 하지만 영화 속의 청부인과 킬러의 관계는 그런 것이 없었다. 필요에 의해 만든 관계인 이상, 그 필요는 언제든지 휴지조각처럼 바뀌게 될, 너무 허약한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믿지 못하는 불신의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청부인이 준 모바일 폰을 버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오직 공중전화로만 소통되는 그런 관계가 된다. 마치 나에게 청부를 하지만 동시에 나를 제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보호란 것 자체가 없는 그들의 관계는 청부하면서도 상대의 사악한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보호하지도 보호하려고도 않는다. 언젠가는 파멸된 위기일 뿐이다. 마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처럼 말이다. 깊은 불신 속에서 억지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킬러에게 인간관계는 위험하다. 어느 순간 자신이 알고 있는 상대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눌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아주 깊은 산골로 간다. 스웨덴에서도 그랬고 이탈리아에서도 그랬다.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도망이기도 하다. 그래도 또 다시 숨어살아야 하는 인간의 비애가 그의 도피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킬러는 조용하기만 한 산의 어느 오두막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또 다른 킬러들을 죽여야 했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죽이기조차 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비록 슬펐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애정에 마음을 쏟았을 경우의 사태를 그는 알았던 것 같다. 그는 인성의 가치를 알지만 결코 기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철학자처럼 말이다.

그에게도 낭만이 있다.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한 있지만 자신 없는 미래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 사치였는지 모른다. 그가 은퇴하려 했지만 필요가치로 인해 판단되는 상황에서 모든 상황은 그가 원하는 낭만으로 갈 수 없도록 이끈다. 그나마 갖고 있는 행복의 끈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선 너무 사치스런 것인지 모른다. 인간이 갖고 있는 관계로 인해 갖게 되는 인생을 새롭게 바꾸려는 것이 결국 사치인 셈이다. 그는 어디로 가든 영원히 쫓겨 다닐 것이고, 그래서 그의 국적인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의 삶의 마지막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비극, 어쩌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지 모른다. 경쟁은 곧 우리 모두가 청부대상일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