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희생, 그리고 진정한 경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이런 것들, 어느 순간 잊고 사는 것들이다.
영화는 동화다. 지금 부족하고, 이미 잃어버렸던 것들을 환생시킨다. 그런 환생을 일으키는 매개체인 것이다. 그런 과거의 환생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기쁨도 만들고, 즐거움도 만들고, 괴로움도 만들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 인간의 인생을 되짚어 보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그런 마력을 통해 영화는 기쁠 수도 있지만, 지나고 나면 슬플 수도 있다. 과거라는 기억의 세계로 향하고 싶은 열정, 즉, 그리움의 매개체, 나에겐 영화가 그런 것이다.
어렸을 때의 찬구란 인간관계가 시간이 지나도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설정, 말이다. 아련한 추억 정도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의 내 생활의 일부가 되고, 나를 바꿀 수 있는 힘까지 갖게 된다는 것, 어려운 상황이지만 부럽기만 하다. 영화 [복스]엔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 어쩌면 [복스]는 너무 먼 곳에 있는 세계에서나 벌어지는 일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의 인간관계나 너무나 낯설기만 했다.
친구, 그 가치가 점점 엷어지고 있다. 생활이 시간에 따라 연속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환멸을 자주 겪을 때가 많이 있다. 현대인에게 그런 변화는 필수적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것이 생존전략 중 가장 중요한 것이리라. 가치는 있지만 지켜지기가 힘든 것들에 대해 점차 이해하기 시작한 세월의 무게를 인지할 때, 이 영화는 아쉬운 것들 것 넘친다. 영화 속에 보이는 벗과의 관계는 믿기 힘들만큼 뜨거웠다.
어릴 때의 친구,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과거의 아름다운 우정을 계속 유지할 만큼 그들은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그 때의 관계의 지속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고 싶다. 과거의 난 현재의 나보다 착했고, 순수했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 때의 모습, 그대로를 지속할 수 없는 현대인이기에 가슴 아프다. 영화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만 날 즐겁게도, 힘들게도 했다.
진한 우정이 돋보였다. 어린이들의 동화 같은 우정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우정이 깃든 삶과 경쟁 속에서 인생의 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결코 져선 안 되는 경기이지만 그래도 질 수도 있다는 점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비현실적이기조차 한 것들의 내용들이 현실이란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단 사실이다. 자칫 우스워질 수도 있는 내용들이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냉혹한 현실이란 배경을 중심으로 진행됐단 것이다. 현실 속에서의 동화 같은 이야기, 그러면서도 스토리의 힘이 느껴지는 장점, 이 점들이 영화의 힘이 됐던 것 같다.
두 명의 천재 복서, 그러나 그들의 시작은 달랐고, 그들의 스타일도 달랐다. 천재였기에 게을렀고, 자신 주변의 모든 것에 Cool하게, 혹은 냉정하게, 혹은 과장된 행동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친구 한 명과 겁쟁이였던 자신의 모습을 깨고, 성실과 집념이란 평범한 모습으로 권투란 매체로 세상을 사는 또 다른 천재 하나, 이렇게 둘은 친구로서 짝을 이루고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과정은 매우 달랐어도 그들은 친구라는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다른 그들이지만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상대를 위로하고 위하면서도 또한 적수로서의 인생을 살아간다. 좋은 라이벌로써 말이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은 것은 이 영화엔 공정함이 존재한다. 강자도 있을 수 있고, 약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거칠게 되면서, 상대를 이기는 방법에 대해선 점차 무시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 영화는 그런 불공정한 싸움방식에 대한 경고를 주기라도 하듯, 공정한 경기를 위주로 구성됐단 점이고, 상대에 대한 존경도 읽을 수가 있었다. 두 명의 친구의 공동의 적이었던 뛰어난 복서의 행태는 잔인한 능력보단 공정한 경쟁을 주도하는 멋진 세상을 제공해준 전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존재로 인해 어떤 친구들의 만남과 경쟁, 그리고 그들의 목표가 그 무엇보다 멋있고 존중되는 효과를 일으켰다.
이런 장점의 바탕 하에서 영화 속의 생동감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의 그들은 현실인양 훌륭한 권투경기를 해주었다. 어느 경기장에서 실재 벌어지는 경기가 진행되는 것처럼, 감독의 섬세함과 현실감은 영화의 과정과 끝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했다. 특히 경기장의 그들이 왜 경쟁해야 하는가와 맞물리면서 그들 간의 경기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녔다.
인간의 본성과 야심으로 인해 파멸하는 내용이 현재 영화에 넘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긍정적인 인간관계와 그에 따른 행복한 결론을 보고, 또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영화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부러웠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긍정적 시선이 이 영화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실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로망을 이 영화에서 볼 수 있어서인지 모른다. 이런 영화, 또 한 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