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클립스 - The Twilight Saga: Eclips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확실히 과거완 달라지는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한 여자를 상대로 두 남자의 사랑경쟁이 도를 넘고, 결국 그들의 가족까지 나서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미래의 가족이 될 지도 모른다는 설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러나 두 남자 사이에 방황하는 것이기보다 ‘어장관리’한다는 말이 더 맞는 그런 상황에서 늑대인간의 가족이 목숨 바치며 싸우는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다. 단순히 누군가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기엔 너무 위험한 것이다. 인생의 상식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그런 스토리를 영화 [이클립스]가 갖고 있다.
  이 영화엔 과거의 스토리가 있다. 그러나 난 그것들을 보지 못했다. 최근 영화의 경향으로 볼 때, 이전 작품을 못 봤다고 스토리가 이해 안 가는 상황은 최근 영화에선 보지 못했다. 솔직히 그냥 보면 되는 것이고, 후속편들 역시 그와 관련된 내용들을 은근히 다 표현한다. 그리고 과거의 스토리가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만 같다. 소녀팬들을 위한 영화란 것은 영화 포스터만 봐도 다 알 수 있을 만큼 이 영화는 특정 소비층들을 겨냥한 영화란 것을 모르고 보지 않았으며, 그것은 나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건 소녀팬들을 위한 다양한 환타지들을 갖추고 있는 영화다.
  잘 생긴 두 명의 남자는 그러나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나마 이 영화에서 사회적 긴장감을 어설프게나마 보여주는 부분이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지닌, 동유럽의 슬라브족과도 같은 흡혈귀족들은 본토박이로 보이지 않고, 환상이 가득한 이국적이고 부유한 타지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 하긴 흡혈귀가 아메리카 출신일 리도 없고, 영화 설정도 그들은 이방인들이다. 너무 멋진 이방인이며, 유럽 명문가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정말 하얀 모습은 만화영화에서 백설공주를 구할 백마 타고 온 왕자의 집안 그대로이다.
  이런 왕자 같은 흡혈귀 집안과 반대로 늑대의 피를 받은 집안은 미국 본토박이다. 그들은 흡혈귀의 공격을 당한 것처럼 사실 미국의 백인들에 의해 자신들의 고향을 뺏기고, 파괴된, 미국의 원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의 후손들로 구성된 집안이다. 그들은 흡혈귀 집안이 미국 동부의 귀족의 집안과 같은 곱상하고 부유한 모습들과는 반대로 산 속에 웅거하며, 언제나 형편없는 의류를 입고 다닌다. 또한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는 인디언 남자는 옷을 입는 적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추운 겨울을 비웃으며, 숲 속의 짐승으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야성, 그는 분명 짐승남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 둘의 사랑을 받는 여자 주인공은 스토리 상 어쩔 수 없이 기회주의자가 되고 만다. 흡혈귀를 사랑하고, 언젠가 흡혈귀가 될 것이란 목표를 설정했지만 왜 그런지 그런 과정을 계속 미루며, 질질 끈다. 영화의 설정이란 느낌이 들고, 인간미의 유지야말로 행복의 유일한 길이란 것을 은연중 암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지만 어떻든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남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게 되며, 양쪽 집안까지 나서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정말 팜므 파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에겐 지조도, 순박한 마음도, 그리고 과거에 여자가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고전과 현대의 구분이랄까? 확실히 그녀는 과거의 여성성을 지니고 있진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런 여성이다. 그녀에게 매력적인 외모가 없었다면 그런 도움도 요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그녀에겐 남성을 휘어잡을 매력적인 외모만 있다. 이런 강점으로 인해 자신의 테두리에 남자들이 안주하도록 만드는 힘, 그게 그녀의 장점이다. 그러나 아쉽다. 주인공 치곤, 너무 개인을 위해 살아가는 모양새라서 말이다. 아마도 오늘날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상황을 표현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이 영화의 그래서 갈망이 있다. 최근 경제위기네, 가족의 해체네 하면서 드리운 인간관계의 파멸과 누군가를 위해 살아줄 사람들이 태부족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나만을 위한 사람은 적어지고 있다. 남자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여자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누군가가 필요한데, 이제 그런 존재들이 태부족이고, 심지어 그럴 사람들끼리 뭉친 부부 역시 영화에서의 표현처럼 3분의 2가 이혼하는 상황이다. 아마도 영화는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의 환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것이며, 나 역시 그렇게 사랑 받고 싶다는 환상을 자극하기 위해 만든 상업영화일 것이다.
  이런 점을 비난할 것은 없다. 영화라고 세계화라는 경쟁구조를 피해갈 수 없으며, 미국 영화의 상업성은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업성 속에서 그러나 사라진 것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래서 아쉽다. 개인주의의 첨병인 미국에서 극단적인 이타주의를 담은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마도 개인주의가 만든 황폐한 인간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점에선 그들이 주장한 개인주의가 실패했던지, 아님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닌데 과도하게 남용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드리운 희생만을 요구하는, 일방적 관계로의 환타지는 분명 문제점이 있어 보이고, 우리들이 영화가 담기엔 너무 아쉬운 내용이다. 과거의 영화가 서로간의 사랑을 담고, 타인을 위한 희생의 연쇄적인 작용으로 인해 더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었다면, 이 영화엔 그런 것보단 늑대인간의 최후와도 같은 비극이 담겨 있다. 즉 누군가는 크게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내용으로 구성된 환타지는 결국 매력이 있고, 아름다운 외모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외모지상주의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런 것들로 꾸며진 영화들은 보는 사람들 사이에 자칫 공분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차라리 165가 넘지 못하니 넌 Loser야 라고 외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왜냐면 이게 정말 정직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 [Box]와 같은 영화가 그립다. 인간미와 우정, 그리고 진지한 삶의 성찰, 그리고 타인을 위한 희생과 그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진정한 경쟁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에 후속편을 이클립스가 만들 때, [Box]를 참고했으면 한다. 영화 보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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