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우리는 과거의 역사가 여러 관념 간의 경쟁을 통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바로 그때 지성사 연구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지성사는 인간들이 경험했던 혹은 경험하고자 하는 대안적인 미래에 관한 사변까지도 포함하는 분과가 되었다. 달리 말해, 인간의 삶에 정해진 본질 같은 것은 없으며 구체적인 경험들이 구체적인 관념들을 발생시켰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살아낸 경험 및 그 경험에 뒤따라 나오는 것들을 형성하는 데 관념들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기 시작했을 때 지성사는 하나의 고유한 분과가 되었던 것이다. - P64

포콕, 던, 스키너는 모두 텍스트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의 산물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때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이란 언어적 실천을 통해 형성된 여러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의미했다. 텍스트의 의미라는 게 무엇인지를 숙고하면서, 던과 스키너는 저자의 의도가 텍스트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길잡이라고 보았다. 비록 저자의 의도라는 것이 지적 대상으로서 문제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며, 어떤 저자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 의도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포콕은 다른 둘과 달리 의도보다 패러다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키너는 역사가의 목표란 특정 텍스트의 저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저자가 ‘하고 있는‘ 일의 범위에는 저자가 무엇을 하고자 했으며 무엇을 달성했는지가 포함되는데, 이는 다른 저자들이 그에 보이는 반응을 통해 해석할 수 있었다. - P100

포콕과 던, 스키너의 가장 중요한 주장들 중에서 특히 포콕이 자신의 모든 방법론적 저술을 통해 강조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채택하고 활용하는 일련의 전제를 언어 혹은 담론이라고 할 때, 저자가 활용하는 언어 혹은 담론이 저자의 주장 자체에 제한을 가한다는 것이다. 언어 또는 담론은 문법과 수사, 그리고 관념의 용법과 함의에 관한 일련의 전제로 구성되어 마치 복잡한 구조물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언어 사용자들이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할 때, 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저자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들을 혁신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언어라는 복잡한 구조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현재 및 물질적 현재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콕, 스키너, 던은 모두 인간 본성에 관한 메타이론적 전제나, 불투명한 혹은 비역사적인 이론적 어휘, 그리고 역사를 분석할 때 고정된 개념 등을 당연하게 전제하는 접근법들에 반대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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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하다. 짧은 두 마디 말이지만 그 안에 모든 철학의 씨앗이, 그 이상이 담겨 있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돌파구는 이 두 마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궁금하다. - P42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 P43

철학은 결국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보트를 뒤흔드는 것이다. 선장은 보통 자기 보트를 뒤흔들지 않는다.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자는 아니다. 철학자는 열외자다. 외계인이다. - P46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철학은 실용적이다. 필수적이다. - P50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단만 있을 뿐, 그 끝은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테네의 잔소리꾼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알았던 지식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 지식을 알게 된 방식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식은 곱게 늙지 못한다. 하지만 방법은 그럴 수 있다. - P51

삶을 성찰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려면 자신에게서 몇 발짝 물러나야 한다. 이렇게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사실상 동의어였다. - P51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는 대화를 그저 자신이 가진 도구 중 하나로 본 것 같다. 이 모든 현명한 훈수질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 P52

질문은 일방향이 아니다. 질문은 (최소)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질문은 의미를 구하고 또 전달한다. 적절한 때 친구에게 적절한 질문을 묻는 것은 연민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질문을 무기로 사용한다. 상대를 저격하고(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자신을 저격한다(왜 난 제대로 하는 게 없지?). 질문으로 변명을 삼고(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중에는 정당화한다(내가 뭘 더 할 수 있었겠어?). 마음을 들여다보는 진정한 창문은 눈이 아니라 질문이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 P54

진지한 질문은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다. 진지한 질문에는 위험이 따른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성냥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불빛이 방을 비췄을 때 괴물이 보일지, 경이로운 광경이 보일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성냥에 불을 붙인다. 그렇기에 진지한 질문은 자신감이 아닌, 10대와 같은 머쓱함과 어색함으로 머뭇머뭇 서투르게 발화되는 것이다. - P61

니들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문화에는 궁극적인 질문이 질문으로 존중받는 공간이 없어요. 우리가 가진 모든 제도와 사회 양식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만 최선을 다합니다." - P63

마음의 대답에 도착하려면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기꺼이 자신의 무지와 한자리에 앉으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끝없는 해야 할 일 목록에서 또 하나를 지우려고 성급히 문제 해결을 향해 달리는 대신, 의혹과 수수께끼의 곁에 머무는 것. 여기에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조롱할 것이다. 내버려두라고, 제이컵 니들먼과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비웃음은 지혜의 대가다. - P69

좋은 질문은 그렇다. 사람을 단단히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프레임을 다시 짜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해답을 찾게 할 뿐만아니라 해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기도 한다. - P71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었다. 관점의 근본적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에서, 내가 아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인정사정없는 자기 심문. - P72

걷기는 루소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루소는 수줍음이 많았다. 근시가 심했고, 마르쿠스처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평생 비뇨기 질환 때문에 (결국 전립성 비대증 진단을 받았다)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 했던 루소는 사회적 만남을 최대한 피했다. 루소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 P85

루소의 철학은 다음 네 어절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선함"을 믿었다. - P89

루소는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고 믿는다. - P90

루소의 야만인은 스스로를 향한 사랑을 자주 경험하는데, 루소는 이를 자기 사랑amour-de-soi이라고 부른다. 이런 건강한 감정은 더 이기적인 종류의 사랑과는 다르며, 루소는 이런 이기적인 사랑을 자기 편애amour-propre라고 부른다. 전자는 인간 본성에서, 후자는 사회에서 비롯된다. 자기 사랑은 혼자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기쁨이다. 자기 편애는 뉴욕 록펠러센터에 있는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기쁨이다. - P90

이제 우리는 루소가 왜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걷는 데에는 인류 문명의 인위적 요소가 전혀 필요치 않다. 가축도, 사륜마차도, 길도 필요 없다. 산책자는 자유롭고 아무런 구애 받지 않는다. 순수한 자기 사랑이다. - P91

루소는 철학의 가장 큰 통념 중 하나가 거짓임을 잘 보여준다. 바로, 정신 활동은 신체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통념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친 순간부터 데카르트의 걸출한 펜싱 실력과 사르트르의 성적 모험에 이르기까지, 철학에는 신체와 관련된 조류가 흐른다. 신체와 분리된 철학자, 신체와 분리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는 "철학보다 몸에 더 많은 지혜가 있다"고 말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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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 2023-09-21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엄청 밑줄긋기하며 읽었어요. 나는 궁금하다. 그렇네요. 그렇게 시작😄

Heath 2023-09-21 21:26   좋아요 1 | URL
한 번 읽어보고 밑줄을 많이 긋겠구나 예감이 들었고 실제로 많이 긋게 되네요 :)
 

배가 고프다. 먹고 먹고 또 먹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다. 더 많이 먹을수록 더욱더 배고파진다. - P6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정보와 지식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혜를 원한다. - P6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다.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는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를 운으로 얻으려는 것은 바이올린을 운으로 배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지혜의 부스러기를 줍기를 바라면서 비틀비틀 인생을 살아나간다. 그러면서 혼동한다.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 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하며, 인기가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 한 현대 철학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 - P7

영어의 ‘철학자philosopher‘라는 단어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로소포스philosophos에서 왔다. 하지만 미국 독립선언문이 행복을 손에 넣는 것에 관한 글이 아니듯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 역시 지혜를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은 것,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도 사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다. - P8

철학과 기차는 서로 잘 어울린다.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버스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아주 조금도 불가능하다. - P9

하지만 철학과 기차에는 퀴퀴한 느낌이 있다. 둘 다 한때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으나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이 되었다. 오늘날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일부러 기차를 타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부모님이 말리는데도 일부러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은 기차 타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뭘 모르던 시절에나 하던 것이다. - P10

우리 동네 서점에는 ‘철학‘ 섹션과 ‘자기계발‘ 섹션이 붙어 있다. 고대 아테네의 ‘반스앤노블‘에서는 이 두 섹션이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는 철학이 곧 자기계발이었다. 그때는 철학이 실용적이었고, 철학이 곧 심리 치료였다.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었다.
철학은 치유 효과가 있지만 핫스톤 마사지의 치유 효과와는 그 방식이 다르다. 철학은 쉽지 않다. 철학은 멋지지 않고, 일시적이지 않다. 철학은 스파보다는 헬스장에 더 가깝다. - P11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철학에 대해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철학은 다른 과목과는 다르다. 철학은 지식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 P12

마르쿠스는 늦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평생 늦잠을 잤다. - P23

아침은 변화의 시간이며, 변화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의식이 있는 상태를 떠나 잠이 들었다가 다시 각성 상태로 진입한다. 지리학적 용어로 말해보자면 아침은 의식의 국경 도시다. - P25

《명상록》을 읽는 것은 곧 철학하는 행위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과 같다. 마르쿠스는 자신의 생각을 검열 없이 실시간으로 내보냈다. 고대 철학 연구자인 피에르 아도의 말처럼, 지금 나는 "인간이 되고자 단련 중인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일하고 - P33

마르쿠스는 골치 아픈 사람에게서 영향력을 빼앗으라고 제안한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자격을 빼앗을 것. 다른 사람은 나를 해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옳은 말씀이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신경쓰는 걸까? 생각은 당연히 내 머리가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 P35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불 아래 남아있는 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마르쿠스를 움직이게 한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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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여성들은 탐색의 여행을 하고 있다. 이 여행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리고 여성성에 난 깊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지를 배움으로써 자신의 여성적 본성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온전하게 통합되고 균형 잡힌 전인(全人)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내면으로의 여정이다. 대부분의 여행처럼 여성 영웅의 행로도 쉬운 길이 아니다. 제대로 된 이정표도 없고 알아보기 쉽게 설명한 여행 책자나 지도도 없다. 몇 살에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 또 이 여정은 절대로 곧게 뻗은 일직선 도로를 따라가지도 않는다. 외부 세계는 이 여정을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방해하거나 간섭한다. - P26

여성 영웅의 여정이라는 모델은 어느 정도 조지프 캠벨이 제시한 영웅의 탐색 모델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각 단계별 용어는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 P28

가부장제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실은 그 사회가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고 지독히도 파괴적이라는 것을 나를 비롯한 나와 같은 세대의 많은 여성들이 알게 되었다. 이 여정은 바로 그런 나와 또래 여성들의 관점에서 그려진 것이다. 우리는 서구의 우위를 되찾기 위해 남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자란 포스트 스푸트니크 세대였다. - P29

이 여정은 우리 여성 영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소명‘이 들리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낡은 자아‘가 더는 맞지 않을 때 여성 영웅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 P31

오늘날 여성적 영성이 중요한 관심사가 된 이유는 아주 많은 여성들이 남성 영웅의 여정을 따랐지만 결국 개인적으로도 공허하고 인류에게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따를 만한 다른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 영웅의 여정을 모방했다. 여성의 삶은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 여성으로서 ‘성공‘하거나 남성에게 지배당하고 의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오늘날 서구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를 변화시키려면 새로운 신화와 여성 영웅을 찾아야만 한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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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사 연구의 핵심은 역사 속의 행위자가 남긴 발화와 주장을 진지하게 탐구함으로써 과거를 조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P6

지성사 연구를 통해 언제나 우리는 과거의 행위를, 왜 누군가가 특정한 기획 또는 실천을 옹호했는가를, 왜 누군가가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를,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에게 어떤 선택들이 가능했는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P7

지성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숨겨져 있는 것, 즉 후대인들이 폐기하거나 거부해 역사에서 잊힌 과거의 관념과 사상을 찾아 읽어낸다. 지성사가는 사라진 세계를 복원하고 과거의 폐허로부터 여러 관점과 관념을 다시 찾아내며 과거의 베일을 걷어내 어떻게 그런 관념들이 당시에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옹호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관념과 그것이 만들어낸 문화와 실천은 과거를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에서 꼭 필요한 토대가 된다. 뛰어난 철학자들, 예컨대 자유, 정의, 평등 같은 개념을 그들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명료하게 풀어내 이해해야 하는 탁월한 이들이 철학적 행위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관념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문화적으로 중요한 인물들, 그리고 형식을 불문하고 대중문화를 해설하는 이들의 작업이 어떤 행위인지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관념이다. - P30

비록 경기 순환이나 인구 변천 단계, 수확고 등등을 연구하는 경우에서처럼 인류의 역사에서 관념의 역할을 생략하는 게 가능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인간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관념의 존재와 역할은 결코 도외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고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특정한 관념을 이야기할 때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념이 자신을 빚어낸 더 넓은 이데올로기적 문화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역사적 상황을 섬세하게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관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는 과제는 오직 역사적 해석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 P34

지성사가에게 관념은 그 자체로 사회현상에 대한 일차적인 정보이며, 관념을 통하지 않고는 기술될 수 없는 우리의 세계에 관한 여러 사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관념은 그 자체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힘이다. 다른 요인에 의해 관념이 형성되는 예도 있으나, 반대로 그런 관념이 우리의 세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사항을 제외하고는 지성사가들 사이에 별다른 방법론적 합의점이 있지는 않다. - P38

지성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먼저 현재 스스로를 지성사가로 부르거나 지성사에 관심을 표명하는 학자들이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지 훑어보자. 정치이론과 국제관계학처럼 전통적으로 지성사와 연결되어 있던 분야 외에도, 정체성, 시간과 공간, 제국과 인종, 성 sex과 젠더, 학술적·대중적 과학, 몸과 몸의 기능, 식문화, 동물, 환경과 자연세계, 민중운동과 관념의 전파 등에 대한 역사적 탐구와 함께, 출판의 역사, 사물objects의 역사, 예술사, 서책사history of the book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지성사 연구가 수행되는 중이다. 이처럼 엄청난 다양성을 고려하면 지성사가 무엇인지 규정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P45

그중에는 거의 모든 역사학은 대체로 과거에 작성된 문헌을 연구하면서 과거의 관념을 다루니 만큼 독립된 학문영역으로서의 지성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도 있다. 물론 이는 오해다. 역사 연구에 관념을 다루는 과정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관념의 내용, 전파, 번역, 확산, 수용을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는 점에서 지성사는 하나의 고유한 분과 영역이 된다. - P48

루소의 정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그가 《사회계약론》 전후에 썼던 저술들을 읽을 필요가 있다. 루소는 특히 서신을 통해 끝없이 밀려오는 조언 요청뿐 아니라 많은 비판자들에게도 답변했다. 만약 《사회계약론》만을 읽고 정작 루소가 쓴 다른 저술들 혹은 그가 논쟁을 벌였던 다른 (이들의) 문헌들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과는 전혀 다른 루소를 만들어내게 된다. 더 나쁜 사실은 우리가 그의 주장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 P54

또 다른 사례로는 애덤 스미스를 꼽을 수 있다. 그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1776)은 종종 근대 경제학과 신자유주의의 기원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스미스는 자신의 저작 전체에 걸쳐 상업사회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영국의 중상주의적 체제가 탄생시킨 세력, 즉 지나치게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있는 무역귀족trading aristocracy으로부터 당시 유럽의 부패한 상업이 비롯된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지도,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지도 않았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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