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우리는 과거의 역사가 여러 관념 간의 경쟁을 통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바로 그때 지성사 연구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지성사는 인간들이 경험했던 혹은 경험하고자 하는 대안적인 미래에 관한 사변까지도 포함하는 분과가 되었다. 달리 말해, 인간의 삶에 정해진 본질 같은 것은 없으며 구체적인 경험들이 구체적인 관념들을 발생시켰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살아낸 경험 및 그 경험에 뒤따라 나오는 것들을 형성하는 데 관념들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기 시작했을 때 지성사는 하나의 고유한 분과가 되었던 것이다. - P64
포콕, 던, 스키너는 모두 텍스트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의 산물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때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이란 언어적 실천을 통해 형성된 여러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의미했다. 텍스트의 의미라는 게 무엇인지를 숙고하면서, 던과 스키너는 저자의 의도가 텍스트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길잡이라고 보았다. 비록 저자의 의도라는 것이 지적 대상으로서 문제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며, 어떤 저자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 의도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포콕은 다른 둘과 달리 의도보다 패러다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키너는 역사가의 목표란 특정 텍스트의 저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저자가 ‘하고 있는‘ 일의 범위에는 저자가 무엇을 하고자 했으며 무엇을 달성했는지가 포함되는데, 이는 다른 저자들이 그에 보이는 반응을 통해 해석할 수 있었다. - P100
포콕과 던, 스키너의 가장 중요한 주장들 중에서 특히 포콕이 자신의 모든 방법론적 저술을 통해 강조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채택하고 활용하는 일련의 전제를 언어 혹은 담론이라고 할 때, 저자가 활용하는 언어 혹은 담론이 저자의 주장 자체에 제한을 가한다는 것이다. 언어 또는 담론은 문법과 수사, 그리고 관념의 용법과 함의에 관한 일련의 전제로 구성되어 마치 복잡한 구조물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언어 사용자들이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할 때, 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저자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들을 혁신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언어라는 복잡한 구조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현재 및 물질적 현재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콕, 스키너, 던은 모두 인간 본성에 관한 메타이론적 전제나, 불투명한 혹은 비역사적인 이론적 어휘, 그리고 역사를 분석할 때 고정된 개념 등을 당연하게 전제하는 접근법들에 반대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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