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서나 교양서는 전공서적에 비해 '인간적'이다. 전공서적은 무자비한 전문용어로 가득하며, 등장인물들도 인간미라고는 없어 보이는 선행 연구자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그들이 남긴 셀 수 없이 많은 연구들은 전공서적을 읽는 독자를 기겁하게 만든다. 


어떤 분야의 전공서적은 비전공자 더러 책을 덮으라는 듯이 강요한다. 분명 일상 생활에서 쓰는 용어임에도 그 책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독자의 시선을 단어 하나에 묶어버린다. 어떤 분야에서는 그래프, 수식, 도표를 잔뜩 늘어 놓아 독자의 기를 잔뜩 죽여 놓는다. 분명 첫 문장에서 "본 서는 이러이러한 목적 하에 작성되었으며"는 또렷이 기억하나, 그 다음부터 언급되는 내용들이 논리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는거지 라면서 뒷 문장을 계속 읽게 만든다.


반면 입문서나 교양서는 그 반대다. 전문용어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써주고, 그래프, 수식, 도표는 지양하며, 독자를 끌어들이는 스토리텔링에 대단히 능숙하다. 다시 말해, '재미있다.'


이 같은 입문서나 교양서의 장점이자 특징을 하나 꼽자면, 전공서적에서는 비인간적으로 나타나는 유명인들이 입문서나 교양서에서는 아주 친절하고 인자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바꿔말해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잔악무도하여 많은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한 독재자조차 전기나 평전에서 해당 인물의 성장 내력, 일화, 인간적 면모만 따져보면 우리 주변에서 볼법한 평범한 인간이거나, 평범이라는 기준에도 미달인 인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 인간이 이래서 이랬구나...'라고 옹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는 가게 만드는 사례를 더러 찾을 수 있다.  


입문/교양서와 전공서 간의 차이점은 학부생이 만나는 교수님, 대학원생이 만나는 교수님에 빗댈 수 있겠다. 학부생이 만나는 교수님은 (가끔 '감히 내 수업에 A+을 받으려 하다니!'라면서 의도적으로 A+을 안주거나, '이 정도는 해야죠?' 라면서 과제 폭탄을 내는 교수도 더러 있지만) 친절하고 인자하며 인간미가 넘치시지만, 대학원생이 만나는 교수님은? 괜히 네이버 웹툰에서 '대학원 탈출일지'라는 웹툰이 순위권이겠는가. ("그들은 그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야")


학부생 입장에서는 수업 시간에 마주하는 평범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교수님이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교수님인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수업 시간에 그렇게 졸리는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사실은 그 분야에서 유명한 책 저자라거나,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상을 탄 수상자라거나, 해당 분야를 일신시킬 만큼의 새로운 발견을 했다거나, 교수님의 지도 교수님이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대가이거나, 교수님이 국내외 유수의 명문대학들 중 한 곳에서 학위를 취득했다거나(뉴스에서 지나가듯이 2-3초 등장하여 한 두마디 발언하는 국내외의 전문가들도 같은 사례에 포함된다).


같은 사람이 경우에 따라 천의 얼굴, 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걸 모두 포착하기는 힘들다. 많은 전기들이 벽돌책으로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하나의 단순한 사건도 실은 무한한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건을 두고 끊임없이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이 반복되는데, 그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는 인간의 한 평생을 책 하나로 모두 서술한다? 사람이 평생 보내는 시간 중 단 하루를 콕 집어서 24시간 중 수면 시간 8시간을 뺀 나머지 깨어 있는 시간 16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일과 그 사건들이 지니는 의미로 글을 하나 쓰라 하면 몇 십권짜리 전집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등장하는 경제학자들은 딱 위에서 든 학부생이 보는 교수님과 대학원생이 보는 동일한 교수님의 이중적인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학이나 인접분야 전문가가 아닌 이상 책등의 두께와 책등에 써진 제목을 보기만 해도 읽고 싶다는 의욕을 감퇴시키게 만드는 이 무자비한 경제학자들이, 평범한 인간과는 종이 달라보이는 그들이, 이 책에 나온 일화만 보면 '이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인물도 더러 있다. 유아기에 라틴어, 그리스어 작문까지 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이라던가(다만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밀의 불행한 인생에 대해 연민을 보내긴 한다).


이 책을 비롯해 다른 분야의 입문/교양서들도 해당되는 사항을 하나 더 꼽자면, 대개 입문서나 교양서에서 언급되는 인물들은 그 분야의 아주 이름난 사람들이다. 그들의 업적은 대단하지만, 독자를 더 놀랍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업적을 이룬 시기다. 20대에 희대의 발견을 하거나, 20대에 학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대작을 쓴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뭘 하고 있(었)지?'라는 자기 반성(?)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일찍부터 주변인들과 '종류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예나 지금이나 독자들을 압도하는 천재들의 숫자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뒤늦게 빛을 본 유명 인사들도 많다. 그들을 보면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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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18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ㅎㅎ 이런저런 얼굴들을 떠올리며 읽게 된 글입니다.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드려요

Heath 2024-02-18 19: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잉크냄새 2024-02-18 1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문 용어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경제학이라는 보통 명사 앞에서도 기겁하게 됩니다.

Heath 2024-02-18 19:41   좋아요 0 | URL
그렇죠. 무서운 명사들이 많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