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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그 희생자들 - 악성 나르시시스트의 정체와 그 희생의 메커니즘을 찾아서
장 샤를르 부슈 지음, 권효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2월
평점 :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장 샤를르 부슈(Jean-Charles Bouchoux)의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그 희생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악성 나르시시스트들(제목에서는 악성 나르시시스트라고 나오지만 본문에서는 주로 악성 자기애자로 번역된다) 그 피해자들의 모순된 관계를 드러내는 책이다.
책은 인트로, 본문 11장, 부록 2장, 그리고 역자후기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서처럼 어떤 논지를 펼치는 책이라기 보다는 악성 자기애자와 그에 당하는 희생자의 관계 구조를 드러내고 그러한 관계 구조가 어디서 생겨나는지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체로 책의 본문 전반부는 악성 자기애자의 뒤틀린 인격 구조, 후반부는 악성 자기애자의 희생자들이 악성 자기애자들과의 착취적 관계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로부터 벗어나는 법이 제시된다.
이 책의 본문에서 저자가 주로 집중하는 지점은 악성 자기애자들과 그들에게 당하는 피해자들이 현실에서 보여주는 실제 관계 양상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자크와 피에레트 커플, 프랑크와 마갈리 부부의 관계를 사례로 제시한다. 저자는 이들의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악성 자기애자와 희생자의 관계에서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지배와 착취 관계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저자는 몇몇 챕터의 끝에 바네사라는 악성 자기애자의 행적과 그에 대한 질문, 그리고 마지막 부록1에서 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삽입하여, 독자가 바네사라는 악성 자기애자가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프로이트, 도널드 위니컷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들, 그들이 제기한 정신분석학적 개념, 예컨대 오이티푸스 콤플렉스, 남근 같은 개념을 인용한다. 이 부분은 어쩌면 일부 독자들에게는 단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지점은 몰라도 상관이 없다. 저자는 이런 인용이나 개념들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용은 책의 깊이를 더하는 일종의 MSG에 가깝다. 즉, 독자가 정신분석학적 개념이나 해당 인물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그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개념이나 인물을 모른다고 딱히 이 책을 읽으면서 불이익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부러 어렵게 쓰인 철학서가 아니다. 적어도 이 책의 목적은 인간들이 서로 맺는 관계 중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비틀린 인간관계를 제시하고 그러한 인간관계가 어디서 기인하며, 피해자는 그러한 관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를 제시하는 데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악성 자기애자들은 기본적으로 불우한 아동기를 거친 끝에 사고방식도, 감정다루는 방식도, 타인과 관계 맺는 법도 성숙해지지 못한, 말 그대로 덩치만 자란 아이들에 가깝다. 저자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악성 자기애자들의 부모는 아동기 때 악성 자기애자들에게 부모로서 보여야할 태도를 보이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았고, 덕분에 악성 자기애자들의 인격구조는 비틀리고 말았다. 그들의 인격 구조가 변화될 수 있는지, 그러니까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사실 이 책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어차피 그것은 이 책의 목적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대상은 이 악성 자기애자들에게 희생당하는 피해자들이다. 피해자들은 악성 자기애자들 만큼 불우한 시절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전자는 주로 '신경증' 환자로 설명된다.
여기서 잠깐 관계를 정리하자면, 악성 자기애자는 충동을 외부로 발산하여 욕망을 밖에서 채운다. 반면 저자가 '신경증' 환자라 표현하는 집단은 악성 자기애자와는 반대로 충동이나 욕망을 외부로 발산하지 못하며, 이를 억압한다.
물론 악성 자기애자에게 당하는 모든 피해자가 신경증 환자인 것은 아니다. 악성 자기애자는 내면이 비어있거나, 오히려 취약한 내면을 지니고 있다. 멘탈이 강한게 아니라 손대면 바스라지는 쿠크다스 멘탈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바에 따르자면, 이들은 자신의 인격적 결함을 타인에게 전이시켜 그에 따른 불안을 해소한다. 희생자는 졸지에 악성 자기애자들의 안좋은 점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떠맡는다. 바꿔말해, 악성 자기애자는 희생자에게 자신의 병리적 측면을 떠넘기고 희생자의 존재 자체를 병리적으로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위한 에너지 공급처로 전락시키지 않는 한 생존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제3자의 관점에서 악성 자기애자와 그 피해자의 관계를 보면 악성 자기애자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는 피해자에게 떠넘기고, 자신에게 결핍된 면모는 피해자로부터 가져와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는 셈이다. 예를 들어, 악성 자기애자는 본인이 바람을 피우면서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는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으며 부정한 관계를 맺는다고 비난을 가한다. 이를 통해 악성 자기애자는 자신과 제3자들에게 도덕적인 자신과 부도덕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스탠스를 차지한다.
그럼 여기서 자연히 의문이 들 것이다. 이 악성 자기애자들의 근본적인 욕구나 사고의 근원이 유치찬란한 아동의 그것인데, 왜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가?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무기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말하자면 착취적 관계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주 무기는 바로 '말'이다.
악성 자기애자들의 말은 가만히 듣다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궤변이다. 그럼에도 왜 희생자는 악성 자기애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가?
첫 번째 문제는 악성 자기애자들의 궤변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한 중립적인 입장 제3자의 기준에서 볼때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악성 자기애자와 희생자의 관계를 피상적으로 파악할 뿐인 제3자, 그리고 악성 자기애자와의 관계 속에서 시야가 좁아진 희생자 입장에서는 이런 궤변을 구분할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악성 자기애자는 먼저 자신의 파트너, 즉 희생자를 도덕적으로 부정을 저질렀다고 비난한 후, 희생자와 관계를 맺은 주변인들에게도 자신은 '희생자'에게 착취당한 희생자라는 식으로 먼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희생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데 대단히 적극적이다.
두 번째 문제는 악성 자기애자들이 내뱉는 궤변을 희생자들이 궤변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성 자기애자들은 자신의 결함을 피해자에게 덮어 씌우는데, 피해자는 악성 자기애자들의 말도 안되는 궤변을 궤변이라 인지하지 못한다. 피해자 역시 악성 자기애자들처럼 불우한 아동기를 보내 악성 자기애자와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악성 자기애자에게 당하는 피해자는 논리로 반박하기에 앞서 감정이 먼저 피해자를 지배해버린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피해자의 상태를 운전 중 위기에 처한 운전자에 비유한다. 즉 악성 자기애자에게 걸려든 피해자는 교통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에서 사태를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오로지 생존을 최우선을 주변 상황을 최대한 경계하는 운전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부모나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입어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어려운 피해자의 경우, 악성 자기애자와의 관계가 그에게는 오히려 유일한 생명줄이기 때문에 함부로 관계를 끊기 어려운 처지인 경우일 수도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이런 비대칭적인, 수직적인, 혹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높은 쪽에 선 악성 자기애자들은 피해자들이 발악하기를 오히려 기대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악성 자기애자는 피해자와의 관계를 이미 역전시킨 상태다. 실질적으로 악성 자기애자와 희생자의 관계에서 악성 자기애자가 가해자이고 희생자는 피해자이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그 위치가 역전되어 있다. 외견상으로는 악성 자기애자가 선량한 피해자이고 악성 자기애자의 희생자는 오히려 가해자로 비춰진다.
피해자가 악성 자기애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한, 악성 자기애자는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다. 피해자가 악성 자기애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조건 하에서 피해자의 모든 행위는 잠재적으로 악성 자기애자를 만족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말로 악성 자기애자의 말을 반박한다면 악성 자기애자는 피해자의 처절한 항변을 '언어폭력'으로 위조할 것이고, 피해자가 폭력을 행한다면 악성 자기애자는 그 순간 폭력의 피해자로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악성 자기애자에게 '지금까지 네가 날 가스라이팅했다!'라고 반박하면, 악성 자기애자는 '네가 그런식으로 생각하다니, 너는 처음부터 날 사랑하지 않은거야!'라는 식으로 반박할 것이다. 이를 통해 악성 자기애자는 오히려 희생자가 신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자신이 우위에 선다.
혹은 피해자가 '우리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어. 여기서 끝내자'라고 하는 순간 악성 자기애자는 '내가 너에게 해준게 얼만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라는 식으로 상대의 죄책감을 유발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악성 자기애자는 피해자에게 자신의 치부를 덮어씌운다. 악성 자기애자의 인격적 결함은 피해자의 것으로 위조된다. 그래서 피해자가 악성 자기애자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의 모든 자력 구제 행위는 그저 증명의 한 과정이다. 요컨대, 피해자가 악성 자기애자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이성적으로 대하거나, 어느 경우든 악성 자기애자 입장에서는 그 자신이 지닌 결함이 성공적으로 상대에게 덮어씌워졌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3자의 개입 없는 악성 자기애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악성 자기애자에게 착취당하는 관계다. 그러니까, 흔히 하는 말로 피해자의 발악은 악성 자기애자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때린' 데 불과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피해자가 악성 자기애자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방법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제3자의 개입이라 강조한다. 물론 일반적인 친구, 친척, 직장 동료는 부적합하다. 누차 말했듯이, 악성 자기애자들은 스스로를 희생자에게 당한 '희생자'로 위장하여 희생자의 주변 관계를 조작하여 고립시키는데 능하므로. 여기서 우리는 정신의학/심리상담을 떠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희생자가 악성 자기애자와의 관계에 묶여 있는 한, 악성 자기애자의 착취적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악성 자기애자가 깔아놓은 판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악성 자기애자들의 피해자들에게 악성 자기애자와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악성 자기애자는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점에서 몸만 자란 어린아이에 가깝다. 반면 그 피해자들은 그렇지 않다. 대가없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정서적으로 성숙한 어른들이 역설적이게도 아이에 가까운 악성 자기애자들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악성 자기애자와 희생자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에워싼 여러 사회적 요소들, 즉 제3자들, 그리고 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사회 규범과 윤리 등.
비유하자면 이 책에서 희생자는 언제든 사슬을 끊고 일어설 수 있는 거인이지만, 악성 자기애자는 바로 그런 어른을 어떻게든 세뇌시켜 무릎 꿇린 채 자기가 키가 더 크다고 으스대는 미숙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희생자에게 중요한 것은 악성 자기애자와의 관계를 좀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독자에게 단순히 악성 자기애자와 희생자의 관계에만 머무르는 책은 아니다. 앞 서 말했듯 이 책은 악성 자기애자의 행동 양상, 비틀린 인격 구조와 심리를 드러낸다. 시공간을 떠나 지구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한 모든 사회에는, 정의를 외치지만 정작 실제 행동은 자신들의 정의와 동떨어진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런 자들은 흔히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조롱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조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의 심리와 행동을 보다 깊게 이해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각종 차별을 일삼는 자들을 그런 악성 자기애자라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는 지점들이 있다. 즉, 차별하는 자들이 차별받는 자들에게 자신들의 인격적 결함을 떠넘김으로써 자신들은 정의로우며 도덕적인 존재로, 차별받는 자들은 그렇지 못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지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지점들은 이 책에서 지나가듯 언급되는 지점들이며, 정신분석학/정신의학이라는 영역 밖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 치중하는 심리학이, 개인 대 집단, 집단 대 집단이라는 사회를 다루는 심리학, 혹은 사회를 다루는 여러 학문들과 연결되는 지점을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