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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평점 :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진화생물학자이자, 『만들어진 신』과 같은 저작을 통해 무신론자로서 그간 종교를 강경하게 비판해온 리처드 도킨스의 『신, 만들어진 위험』은 그가 여러 저서들에서 개진한 관점과 논의를 한데 모아 알기 쉽게 요약한 책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Outgrowing God”이다. 역자가 역자후기에서 밝히듯이 ”Outgrow”는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어떤 생각이나 습관을 버린다”는 뜻이다. 원제를 생각하면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이제는 그만 신으로부터 벗어납시다."
이 책은 원제 Outgrowing God에 걸맞는 내용을 담으려 시도한다. 바꿔 말해, 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없다고 공언하고 그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 “신이여, 안녕히”에서 저자 도킨스는 일신교, 그 중에서도 유대-기독교적 사고의 바탕이 되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모순되는 내용들을 지적하고 나아가 기독교에 기반한 도덕의 허점을 낱낱히 공략한다. 2부 “진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에서 도킨스는 생물학자로서 본인의 전공을 살려, 생물학적 설명을 바탕으로 "신"의 이름을 들먹일만한 여러 자연 현상들이 어떻게 자연의 순수한 창조물인지 입증하면서 "신"이 존재할 가능성을 지운다.
1부의 주된 내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성경의 내용은 현대인의 상식이나 관점에서 보기에 정녕 성경이라는 명칭이 부합하는 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언급되는 욥의 이야기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고난을 견디는 욥은 그 어떤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는 신앙심을 보여주는 찬미할만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죽어야 했던 욥의 가족들 입장은?
1부에서 도킨스는 성경의 “역사적” 기원을 보여주면서 성경이 누구의 창조물인지 추적하고, 신약 4대 복음서를 지은 이들의 심리도 일부 엿본다. 도킨스에 따르면 당장 인터넷과 같은 도구를 통해 팩트체크가 가능한 현대인들 사이에서도 온갖 거짓과 가짜뉴스가 전파되는데, 복음서 저자들의 시대로 거슬러가면 지금처럼 여러 문서나 과학적 자료로 교차검증따윈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였으니 현대보다 더했을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복음서 저자들이 실제 역사적 사실의 전달보다는 예언의 연결성을 강조하여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말하는 게 더 중요했을테니, 성경이 비록 실제 역사적 사실 일부를 담고야 있겠지만, 그에 뒤섞인 허구가 한참 더 클 것이라 말한다.
아울러 도킨스는 성경의 모순되는 지점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성경이 과연 도덕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예를 들어 십계명에서 “살인 하지 말라”고 하지만, 유대민족은 다른 민족을 학살하고 다닌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정당하다. 도킨스는 구약의 신이 ”질투의 신,” “질투하는 신”이라 스스로 말하는 내용들을 가져오면서 성경이 도덕적 근거로서 과연 유효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1부가 성경의 모순을 들춰내는 장이었다면 2부는 “신”을 통해 설명되는 여러 자연 현상들이 “신”없이도 설명 가능 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할애한다. 예를 들어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의 복잡 다단한 신체구조, 혹은 개체가 아닌 하나의 군집으로서 여러 동물들이 보여주는 고도의 행위들(흰거미의 둥지 건설, 군무를 연상케하는 찌르레기 떼의 비행)을 두고 어떤 설계자가 설계한 결과라는 식의 해석을 두고, 도킨스는 “신”과 같은 누군가의 설계가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일이며 동물들이 보여주는 고도의 행위 역시 우연임을 보여준다. 예컨대 책에서 제시되는 흰개미 둥지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건설중이라는 가우디의 성당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다. 흰개미들은 어떤 의도로 자기들의 둥지를 성당처럼 지은 게 아니라 짓다보니 그리된 것이다. 반면 가우디의 성당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이다. 둘의 차이점은 설계->건축으로 이어지는 하향식 건축과 설계없이 건축을 계속해나가다보니 결과물이 성당과 닮은 상향식 건축일 뿐이다.
이외에도 2부에서는 DNA나 우주의 탄생, 자연적인 진화의 결과물로서 이타적인 행위가 등장한 배경과 같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책의 내용을 모두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2부의 이러한 논의들에서 저자 도킨스가 자연과 우주라는 공간에서 “신”이 앉아 있을 의자를 다 빼버리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는 점은 알 수 있다. 2부에서 도킨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고 누군가 개입했다고 생각하지, 자연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 단정지으면서 "설마 그럴리가!"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은 우리의 직관, 혹은 우리의 믿음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역자가 밝히듯이 다른 도킨스의 책들에 비해 분량도 적고, 읽기도 쉽다. 도킨스가 어려운 생물학적 개념을 아주 쉽게 풀어주고 거기에 이해를 도우려고 여러 비유까지 끼얹어 가며 떠먹여준다. 역자는 이런 서술전략이 독자층을 넓히는 것, 특히 판단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유아나 청소년에게도 이 책이 널리 읽히게 만들어 특정 종교적 가치관에 매몰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는 신의 존재를 반박하는 지점보다는 그러한 반박을 시도하는 행위 그 자체에 더 중점을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연하다 생각한 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근거없이 믿어온 사실이나 상식, 진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돌이켜보고, 우리의 인지력과 직관이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 깨닫게 된다.
이 지점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오만함을 깨우치게 해주는 지점이다. 책에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두고 외계인이나 초고대문명이 지었다는 설이 종종 나온다. 이 주장은 달리 보면 '고대 이집트인이 이런 건축물을 지었을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는 고대 이집트인 대신 피라미드를 지은 가상의 존재가 있을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한 관점은 고대 이집트인에게는 피라미드를 지을 능력이 없다는 오만과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자연의 놀라운 사례들, "설마 그럴리가!"라고 말하게 만드는 사례들도 똑같다. 가우디의 성당과 유사한 둥지를 지은 흰개미, 드론쇼 뺨치는 질서정연한 비행을 보여주는 찌르레기 무리를 보고 "흰개미/찌르레기가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면서 '흰개미/찌르레기가 그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다. 이는 필경 다른 존재가 개입한 것이다'라고 결론내리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을 깔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고대 이집트인이나 현대인이나 똑같은 인간이듯이, 인간이나, 흰개미나, 찌르레기나, 지구상의 생태계에 속한 동등한 생물체이며 각자의 시간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프로이트가 했던 말의 반복이다. 프로이트는 코페르니쿠스,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 자신이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서 끌어내렸노라고 말했다. 과거 무식해서 용감했던 인간이 이 드넓은 우주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깨닫고 겸손해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할까.
여담으로, 책의 목차에 '신화'가 언급되기에 저자가 다른 신화학자나 비교종교학자의 연구를 언급하고 인용하는 지점이 있지 않을지, 기독교 신화 이외 다른 신화들도 심도깊게 다루지는 않을지, 그러한 학자들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어떠한 지 내심 궁금해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지점은 없었다. 분석심리학자로서 신화를 연구한 칼 융이 잠시 언급되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