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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지음, 양윤옥 옮김 / 청미래 / 2023년 12월
평점 :
나는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지 못한다.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적도 없고, 어릴 때부터 꼭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P.11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이름을 듣게 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였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되고, 악보를 볼 줄은 모르더라도 대표곡을 몇 곡 들으면서 이 사람의 음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 중에는 이미 본 영화의 OST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히 사카모토 류이치가 쓴 책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는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 사마모토 류이치가 2009년 시점에서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는 자서전이다. 이 점에서 다른 작가가 써주는 평전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세상을 떠난 것은 2023년 초이니, 이 자서전을 쓴 시점에서 14년은 더 살았다. 2010년에 구판이 나왔고 2023년 4월 초 사카모토 류이치가 별세할 무렵 새롭게 신판이 나왔다. 구성은 크게 시간순을 따라 1952년에서 출발해 2009년에 도달한다. 바꿔 말하자면 사카모토 류이치가 어린 시절부터 2009년 당시 시점까지 과거를 더듬어 가면서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한 사람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회고록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특징이자 한계는 명확해진다. 한 사람이 기억을 더듬는 과정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멋대로 이어서 별자리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 별자리의 별들은 밝게 빛나지만 그렇지 못한 별들은 별자리의 별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데 그칠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는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한 개인의 여러 기억 속에서 특별히 밝게 빛나는 기억(그게 행복하거나 기쁜 추억이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든 간에)만을 이어 놓은 기억의 별자리다.
그런데 그렇게 밝게 빛나는 저자의 기억들은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할 영역이다. 저자가 정말 그런 기억을 떠올릴만 했다라고 납득이 가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했다거나,
「Behind the Mask」는 한참 뒤에 마이클 잭슨과 에릭 클랩톤이 리메이크했다. 역시 확실하게 록 뮤지션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로큰롤, 즉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어댈 만한 뭔가가. P.139
수전 손택이 자신의 연주를 보러 왔다거나.
우연히 파리에 와 있던 수전 손택이 혼자서 연주회장을 찾아준 게 인상이 깊었다. 그녀와는 9-11 테러 이후에 알게 되어 이따금 연락을 취하곤 했다. P.225
들뢰즈와 같이 철학서를 쓴 펠릭스 가타리가 칭찬했다던가.
몰리시 펜리의 그 발레 공연을 마침 일본에 와 있던 펠릭스 가타리가 보러 왔다. 그러고는 "발레는 재미없었지만, 음악은 정말 훌륭했다"라는 평을 남겨주었다. 당시 유행하던 탈구조적인 문맥으로 내 음악을 칭찬해준 것이다. 내게는 최고의 찬사였다. P.160
반대로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충격을 준 사건들도 있다. 뉴욕에 거주하던 중 2001년 911테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거나, 그린란드에 방문이 음악 창작에서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거나.
중학교 2학년 때 벌써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들고 다녔다. 나처럼 조숙한 반 친구들과 함께 "사물의 실재란 무엇인가"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법 어른이 된 듯한 느낌에 취하기도 했다. 정작 책은 기껏해야 처음 몇 페이지만 읽었으면서 말이다. P.51
중학교 때, 같은 반에 구스노세 료라는 친구가 있었다. 3년 동안 계속 같은 반이었고 아주 친하게 지냈다. 당시 나는 데카르트와 프로이트를 읽기 시작해서 죄다 아는 척을 하고 다녔는데, 그런 이야기를 구스노세와는 나눌 수 있었다. P.56
나는 내가 1등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지능검사 같은 것을 해보면 나는 2등이고 구스노세가 1등이었다. 그는 항상 무적의 1등이었다. P.56
다른 사례들을 들자면 일찍이 후설의 현상학을 읽었다던가, 마르크스주의 저작들을 고교시절부터 읽으면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던가.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서 특히 친했던 사람은 시오자키, 그리고 바바 겐지였다. 거기에 나까지 합해 셋이서 바보 트리오였다. 시오자키는 앞서 말한대로 지금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그 시오자키 야스히사이다. 그와는 요시모토 다카아키, 오에 겐자부로, 에드문트 후설 등의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음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곤 했다. 정말 항상 붙어다니며 놀았다. 바바 겐지는 『액션 카메라 기술』이라는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바로 그 카메라맨이다. P.60
대학 입학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었다던가.
... 내가 작곡한 곡을 잠깐 피아노로 쳐드렸더니 이케베 선배가 즉석에서 말했다.
"도쿄 예술대학 작곡과, 이정도면 지금 당장 시험 쳐도 합격이야!"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이미 합격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세상 참 만만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열여섯 살 때의 일이다. P.67
원래부터도 공부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지만 도쿄 예술대학 작곡과 입학이 이미 약속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학교 공부는 더더욱 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아무튼 고등학교 3년을 내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보냈다. 그야말로 장밋빛 인생이었다. P.67
아마 처음은 화성시험이고, 세 시간이 주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 쉬고 대위법 시험이었는데, 다섯 시간에 걸쳐서 푸가를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하루 쉬고 이번에는 피아노 소나타, 일곱 시간. 나는 얼른 쓱쓱 써내고 가장 먼저 자리를 떴다. 정말 얄미운 놈이었다. P.87
대학에 가서는 당시 각종 현대 예술 사조를 접하다 보니 다른 예대 학생들하고 말이 더 잘 통했다던가. 대학원에 몇 년 간 머물렀더니 교수가 제발 나가달라 해서 곡을 하나 뚝딱 작곡해 졸업했다던가. 나중에 영화음악도 뚝딱 작곡했다던가.
대학원에 진학하면 4년 동안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교수님이 3년 만에 제발 그만 나가달라고 통고를 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학원생을 그대로 묵혀두는 건 대학으로서도 무익한 일이고 큰 부담이 된다고 지도교수님이 교수 회의에서 크게 비판을 받은 모양이었다. 뭐든 작품을 제출하면 수료증을 주겠다고 하는지라 한 곡을 만들어서 내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P.106
영화 일이니까 영화음악에 대해서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감독이다. 미리 음악을 어디에 넣을지 내 나름대로 리스트를 만들고, 오시마 씨도 자신의 리스트를 만들어 와서 회의를 했다. 그랬더니 음악을 넣는 부분에 대한 의견이 99퍼센트 일치했다. '뭐야,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네,' '프로와 똑같은 답을 냈잖아.' 그렇게 완전히 자신감이 붙었다. 정말 혼자 잘났었다. P.151
뜻밖에도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한 곡은 「Energy Flow」였다. 겨우 5분 남짓한 시간에 쓱쓱 써내려간 피아노곡으로, 팝이냐 아니냐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무심코 만들었는데 160만장이 팔렸다. 그래서 밥상을 뒤엎은 게 옳은 판단이었음을 깨달았다. 대중적으로 하겠다고 고민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 별 고민 없이 쓱쓱 만든 곡이 가장 잘 팔리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때 「Energy Flow」가 왜 잘 팔렸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P.205
실은 「Merry Christmas, Mr. Lawrence」도 그랬다. 거의 무의식중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완성된 악보가 있었다. 그 곡이 좋은지 어떤지조차 나는 잘 알지 못했다. P.206
항상 생각하는 바지만, 성공을 거두는 음악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음악은 아무래도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중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작곡을 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만들고 싶어서 작곡을 하는지, 그 경계선을 나도 잘 모르겠다. P.206
YMO를 결성해서 조금만 활동했더니 온 세계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왔다던가. 이렇게 저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늘어놓는 경험담을 듣다 보면, 현실 감각이 마비된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저자가 이야기하는 학창 시절을 듣다 보면 '나는 학창 시절에 뭐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반대로 그런 엄청난 길을 거쳐온 저자의 행보 하나하나는 절대 독자에게 가볍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책이 저자 스스로가 구성한 개인의 역사라는 점이어서다. 이러한 개인사가 저자의 인간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어느 분야든 잘난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타인의 외면, 업적, 성취만 보이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떠한 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저 사람은 돈이 많으니 걱정이 없겠지.' 같은 식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 또한 인간 아닌가. 인간 대 인간을 비교할 때 정도의 차이는 당연히 있겠지만 종류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단, 그 정도의 차이가 너무 커서 종류의 차이로 보일 때는 있다).
그런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절친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인간이란 서로 얼마나 먼 사이인가, 나는 얼마나 그 사람을 알지 못했던가, 하는 것을 개닫게 된다. 살아 있을 때에는 서로 그럭저럭 말이 통했기 때문에 어쩐지 상대를 잘 아는 듯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친구가 죽었을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항상 그렇다, 내 경우에는. P.120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으면 거기에 어떻게도 저항할 수 없다는 데에 부조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강렬하게 느낀 바는, 이건 친한 사람을 잃었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얼마나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무지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와 몇 년씩 날이면 날마다 함께 지냈는데 그가 정말로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그런 틈의 깊이에 나는 완전히 절망해버렸다. P.184
사카모토 류이치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유년기부터 돌이켜보며 자신의 생각, 느낌, 감정이 어디서 왔는가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렇게 듣는 과정 속에서 독자들은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사람의 내면을 알게 되고,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한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된다. 단, 저자 자신의 말처럼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한 개인이 실제로 겪은 경험과 그가 글로 옮겨 쓴 경험은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달리 말해 정도의 차이가 아닌, 종류의 차이이다).
그렇기에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읽는 과정은 독자가 그동안 상상한 독자 머리 속의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인물과, 사카모토 류이치 본인이 직접 들려주는 그 자신의 내면과 개인사, 그리고 한 인간으로의 모습 간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없앤다고는 못하겠다. 없앤다고 말하는 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바와 어긋난다).
강렬한 체험이었다. 토끼를 길러본 일도 그랬지만 그걸 노래로 만든 건 훨씬 더했다. 왜 이런 이상한 짓을 하라는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근질거리는 듯한 기쁨. 다른 누구의 것과도 다른 나만의 것을 얻었다는 감각. 그런걸 느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위화감도 있었다. 토끼라는 동물과 내가 만든 곡은 원래 아무 관계도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버렸다. 그 토끼가 없었다면 이런 음악은 탄생하지 않았을 텐데, 실제로 손가락을 물리고 똥을 치워주면서 내가 접했던 토끼와는 완전히 다른 뭔가가 생긴 것이다. P.22
이를테면 현재 레바논에서처럼 전쟁이 벌어져서, 이 전쟁으로 혈육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고 하자. 어느 레바논 청년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랑하는 누이를 잃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음악 세계의 소유가 되어버려서 아무래도 누이의 죽음 자체로부터는 멀어진다. P.22
분명 글을 쓰는 일도 그럴 것이다. 어떤 글을 써내려가는 시점부터 이미 좋은 문장인가, 아름다운 문장인가, 힘이 있는 문장인가, 하는 언어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누이의 죽음에 진심으로 비통한 심정을 품었다고 해도, 음악으로 만드는 한 음악 세계의 문제로 진입하고 만다. 그것은 실제로 겪은 누이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어서 두 가지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생겨난다. P.23
나아가 저자 스스로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과정 속에서 독자는 저자만의 고유한 사유와 통찰에도 다가갈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체득한 깨달음으로 지칭해도 될만한 것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왜 이 시대, 일본이라는 땅에서 태어났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 단순히 우연일 뿐인지...... 어린 시절부터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물론 분명한 해답을 만났던 적은 없다. 죽을 대까지 이런 물음을 던지는 걸까. 아니면 죽기 전에는 그런 물음조차 사라져버리는 걸까. P.246
이러한 깨달음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당연한 사실, 누구나 사유할 줄 알며 그러한 사유는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는 받을 수 있다는 점, 각 개인의 삶을 숫자나 통계로 환원할 경우 상실하거나 간과하는 지점이 있음을 돌이켜보게 해준다.
한편으로, 누이의 죽음은 그 청년의 기억이 사라지면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소멸되겠지만 노래가 되는 일을 통해 민족이나 시대의 공유물로서 오래도록 남을 가능성이 있다. 개인적인 체험과의 박리剝離를 통해서 음악이라는 세계의 실존을 얻는 것으로써, 시간이나 장소의 제약을 뛰어넘어 모두와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음악은 그런 힘을 가졌다. P.23
표현이란 결국 타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추상화라고 할까, 공동화共同化라고 할까,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개인적인 체험이나 아픔, 기쁨은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결손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와 맞바꾸어 전혀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종의 통로가 생긴다. 언어도 음악도 문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 P.23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쓴 저자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듣는 것은 그의 의식과 생각 속에서 구상 되어 음악으로 표현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읽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마모토 류이치가 스코어 대신 글로 표현한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아닐까.
음악이란 "시간 예술"이라고 한다. 직선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켜나가는 창작 활동이라는 말인 모양이다. P.13
지금까지의 시간을 부감해보고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기억과 사건을 순서대로 펼쳐놓고 그것을 연결해본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현재의 나에 대해 뭔가 보일 것이고, 그런 표현 방식을 통해서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P.14
촬영 현장에는 음향 기재도 없는데 작곡과 레코딩에 쓸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사흘밖에 안 된다고 했다. 베르톨루치 감독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엔니오는 어떤 음악이든 그 자리에서 당장 작곡했어." 그러니 나로서는 못하겠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 P171
인간이 자연을 지킨다, 라는 식으로 우리는 말하곤 한다. 환경 문제를 언급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건 발상 단계에서부터 잘못 짚은 말이다. 인간이 자연에 거는 부하負荷와 자연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패자가 되는 쪽은 당연히 인간이다. 즉 난처해지는 쪽은 인간이지, 자연은 전혀 난처하고 말 것도 없다. 자연의 거대함, 강함에서 보자면 인간이란 정말 한주먹감도 되지 않는 소소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 여행 내내 얼음과 물의 세계에서 보내면서 끊임없이 느꼈다. 그리고 인간은 이미 없어도 좋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 P243
그나저나 내 인생(손때 묻은 말이라서 그다지 쓰고 싶지는 않지만, 그밖에 적절한 말이 찾아지지 않는다)을 이렇게 돌아보니 나라는 인간은 혁명가도 아니고 세계를 바꾼 것도 아니고 음악사에 기록될 만한 작품을 남긴 것도 아닌, 한마디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겠다. - P245
지난 57년 동안 그들이 내게 부여해준 에너지의 총량은 내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빛조차 닿지 않는 칠흑 우주의 광대함을 흘낏 엿본 듯한 신비한 감정에 휩싸인다. - P246
마지막으로 이런 인간의 개인사를 읽어야 하는 독자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고마워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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