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마니에르 드 부아르 13호 Maniere de voir 2023 - 언어는 권력이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 14
필리프 데캉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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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정 언어로 읽고, 듣고, 말하고, 쓰고, 생각한다. 한국인 화자라면 그 언어가 한국어일 것이다. 영어권 화자라면 그 언어는 영어일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이나 문화처럼,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도 여러 층의 구성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에서 한국어 화자가 구사하는 한국어는 표준어와 사투리라 불리는 방언이 포개져 있다. 다른 한편 한국어는 역사적으로 주변 언어들과 뒤섞여 왔다. 어휘도 섞여 들어오고, 어미도 섞여 들어오고, 문법도 섞여 들어왔다. 대표적으로 한자, 일본어, 영어, 그리고 알게 모르게 사용되는 불어, 독어 등의 언어들. 


최근의 사례를 하나 들자면, 게임 스타크래프트로 유입된 어휘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게임을 하던 이들은 게임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들, '히드라리스크,' '울트라리스크,' '뮤탈리스크'를 음차한 후 '히드라,' '울트라,' '뮤탈'로 축약해 불렀다. 최근에는 '울라리,' '울리' 같은 식으로 압축한 새로운 축약어가 등장했다.


사실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와 관련해 더 주목할 점이 있다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고유 명사들을 두고 벌어진 번역 갈등일 것이다. 제작사에서 후속작 '스타크래프트2'를 발매하면서 게임에 등장하는 명사들을 번역했다. 예컨대 '마린'을 '해병.' '시즈탱크'를 '공성전차' 같은 식으로.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이들 중 일부는 이런 번역 지침에 반발했다. 이때 고유명사를 음차할 것을 내세운 측의 주장은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에 더 유용해서,' '이미 음차에 익숙해져서,' '번역이 불가능한 고유명사들도 번역할 것인가?,' '제작사의 번역 지침에 따른 번역이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제작사가 다른 게임에서 이미 보여준 번역 지침이 불완전해서' 등이었고, 번역을 지지한 측에서는 '게임 상에 출력되는 간단한 영어도 못 알아들으면서 무슨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인가?,' '번역의 위화감은 금방 적응할 수 있다,' 같은 논지를 내세우며 반박했다. 


사실 어느 쪽 주장을 수용하든 번역의 한계는 명확하다. 움베르토 에코가 '번역은 타협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는 'Ultrarisk'의 의미가 잘 와닿겠지만, 한국어 화자에게는 음차든 번역이든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이처럼 번역이냐 음차냐를 두고 벌어진 갈등은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사례는 한국어에 영어가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비슷한 사례들은 많다. 아르바이트, 마카롱, 탕후루, 모찌떡, 워딩, 패스트트랙 등등.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한국어의 확장? 외국어의 침투?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 '언어는 권력이다'에 기고한 집필자들의 관점은 후자에 가깝다. 바꿔 말해 (영어라는) 언어의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 당혹감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물론 이 계간지는 복잡한 인간 사회의 여러 관계들과 그 관계들을 지배하는 권력이 어떻게 언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지 폭로하기도 하는 점에서, 이런식의 단순 요약은 이 계간지의 많은 내용을 간과할 위험이 있긴 하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의 투고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은 대체로 지배적인 언어(일반적인 경우 영어)가 그렇지 못한 언어(나머지 언어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는 프랑스어권이 강세인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의 사례도 포함된다)를 밀어내다 못해 멸절시키는 현상에 대한 우려다. 이 같은 언어의 지배력, 혹은 영향력이 증대되거나 축소되는 현상은 내적으로는 언어 그 자체의 변화와, 외적으로는 해당 언어 사용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서로 맞물린 결과물이다. 그렇긴 하나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는 주로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 사례들을 들자면 러시아와의 갈등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우크라이나어를 강조하거나("우크라이나어로 말하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인해 치명타를 입은 프랑스의 러시아 교육("러시아어에 애정 거두는 프랑스") 등이 그 사례다.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프랑스어 교육이 그렇다("그럼에도 프랑스어는 필요하지 않을까"). 21세기 들어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중요해지면서 입시 및 고등교육에서 중국어 교육 및 중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늘어난 반면 프랑스어는 갈수록 그 입지가 좁아졌다. 국내 대학 중 불어교육과가 존속한 대학은 현재 4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국립대 한 곳은 불어교육과를 폐과하고 학과 인원을 다른 과로 전용할 계획이다. 다른 국립대는 이미 불어교육과를 불어불문학과와 통합시켰다. 표면상 프랑스어 교육은 여타 언어에도 치이고, 언어 외부의 다른 분과학문에도 치인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대학의 통폐합도 가속도가 붙을 예정이기에 이런 현상은 심하면 심해졌지, 덜해지지 않을 것이다. 해당 기사의 저자가 말하듯이 취업 잘되는 학과는 대학의 자원을 앞으로도 더 차지하겠지만, 불문학과를 비롯해 취업안되는 인문 계열 학과는 있던 파이도 취업 잘되는 학과에 내주고 말 것이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의 많은 기사들은 이외에도 세계 각지의 다양한 언어들이 어떻게 인간 사회에서 주도권을 쥐거나, 그 반대로 주도권을 상실하는지에 관해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의 상당 부분을 식민 지배한 과거의 프랑스 제국 덕분에 아프리카의 상당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반면, 정작 그 본국이라할 프랑스에서는 에펠탑에 영어 슬로건이 걸리고 어설픈 영어와 프랑스어가 뒤섞인 표어들이 남발되고 있다("프랑코포니는 식민주의의 아바타?," "에펠탑에 내건 영어 슬로건, 'Made for sharing,'). 영국이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였음에도 유럽연합에서는 영어가 독일어나 프랑스어 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학회나 회담에서 비영어권 화자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상황이 연출된다("영어의 습격을 받는 유럽의 언어들"). 네덜란드의 대학들은 상품으로서 대학 교육의 판매 활로를 넓히고 더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영어 수업을 확대하는 반면("영어에 지배당한 네덜란드 대학"), 오랫동안 노르드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온 아이슬란드는 영어를 사용하는 폴란드 이민자들이 늘어나자 아이슬란드어를 법제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아이슬란드, 언어 순수주의의 원형")


이 외에도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는 언어와 관련해 학술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언론이 다루지 않는 수준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 깊이는 전문적인 논문과 신문 기사나 사설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표기법으로서 라틴 알파벳 문제("모든 알파벳은 로마로 향한다"), 한자라는 동일한 표기를 사용하나 지역별로 다양한 중국의 여러 언어들("중국어 : 하나의 문자, 여러 개의 말),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하여 프랑스어와 독일어의 사용 용도가 분리되어 있고, 그 틈새에 효과적으로 자리잡아 새롭게 영향력을 획득하기 시작한 룩셈부르크어("다중언어, 룩셈부르크 교육의 골칫거리), 언어와 조금은 거리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이 퇴보하는 반면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점에서 양가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지점("프랑스 '코리안학'의 현주소," "권력자의 자발적 복종") 등. 여기에 아랍어, 타밀어, 아프리카의 흡착어까지. 


간단히 말해「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는 세계의 다양한 언어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그 미래는 비관적이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하나의 언어(영어)가 세계의 언어들에 침투하고 있는 반면, 다양한 많은 언어들은 그 사용자 수가 갈수록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어떤 언어는 이미 사용자 수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언어를 동영상 같은 매체로 보존한다 치더라도 해당 기록물을 열람할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있을까? 유튜브에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의 언어를 기록해서 업로드하면 조회수가 얼마나 나올까?「마니에르 드 부아르」의 한 저자는 이를 생물학에 빗댄다. 생물의 다양성이 위기에 처했듯, 언어의 다양성도 위기에 처했다고.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단일 언어가 지배적이게 될 수록 사유의 깊이도 얄팍해질 것이라고. 


다만 앞서 말했지만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의 학술적 깊이는 논문과 신문 기사/사설 사이의 그 중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들의 성향이 꽤 투명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한편에서는 영어의 침략에 노출된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진하게 묻어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특정 언어(나아가 특정 문화권)에 대한 관심이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퇴색되어감에 대해 한탄하는 어조도 보인다. 유럽 각국들이 제국주의 열강이던 시절 식민지의 현지 문화와 언어를 파괴하려 시도했는데 정작 지금 그 유럽의 언어들이 전 세계 언어의 위계에서 영어에게 한 단계 아래로 밀려나고 있다.


이상의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는 세계 각지의 언어 사용자들 사이에 전개되는 언어 주도권 쟁탈을 다루고 있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13호의 제목으로 표현하자면 '언어의 권력 다툼'이라 할 수 있다. 다툼에서 이미 패배한 언어들은 사라지는 중이다. 한편 점차 패배에 몰리고 있는 언어들 역시 앞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앞으로 사멸하게 될 언어들을 두고 무어라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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