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예매 어플을 켠다. 아무 영화나 눌러서 주중으로 맞춰 예매하기를 눌러본다. 아무 좌석이나 누른다. 12,000원. 러닝타임은 1시간 34분. 여기서 영화가 끝난 후 엔드 크레딧 올라가는 시간을 빼면 대략 1시간 반 조금 안될 것이다. 이번에는 주말로 바꿔본다. 1좌석에 15,000원.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특별관에서 3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영화에 몰입하는 체험의 가치가 14,000원. 어떻게든 할인받으려고 아침 8:30분으로 예매해서 3시간 동안 봤다.


배달앱 어플을 켠다. 치킨집 아무거나 찾아서 눌러본다. 최소 주문금액 16,000원. 메뉴를 확인해보니 20,000~22,000원 사이. 조금 내려보니 16,000원 짜리 메뉴도 있다. 여기에 배달료 추가. 이번에는 카페로 검색해본다. 아메리카노, 2,000원, 2,500원, ... 5,500원. 쿠폰이 있나 본다.


어디 갈때마다 타는 지하철, 버스, 1,300원, 1,200원


알라딘 장바구니로 돌아온다. e북 만화책 8권 세트가 20,000원, 10% 할인 쿠폰 적용하면 18,000원. e북 철학 교양서, 19,200원. 두꺼운 벽돌 종이책, 정가 35,000원에 10% 할인해서 31,500원. 북펀드에 들어가본다. 관심이 가는 책 구성을 본다. 32,400원. 적립금 5%+@


목구멍으로 들이키는 달콤한 라떼 마시는데 대충 5, 6000원. 한 두시간, 길면 3시간을 가상의 세계 속에 몰입하는 영화 하나에 12,000~15,000원, 3D니 4DX니 아이맥스니 하면 2만원도 우습다. 씹을 때마다 살코기와 육즙과 양념이 어우러지는 치킨 하나 배달시키는데 못해도 대충 2만원+@.


지하철 10-15번 타는 비용=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3~4 잔=무료 배송 가능한 책 1권. 영화 티켓 1~2장=아슬아슬하게 무료 배송 안되는 책 2권. 치킨 1마리=넉넉히 무료 배송 가능한 책 1권.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면 아마 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가치를 따져 무의미한 소비를 하지 않을 테지만.


'책은 한 번 사두면 평생 읽을 수 있고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읽는 데 드는 에너지도 아주 적고 ...'


알라딘 장바구니에는 몇십만원어치 책이 잔뜩 쌓여있다. 수십권의 책 목록 중에 하나를 고른다. 3만원이 넘어가는 책은 엄두도 못내고 2만원 안되는 적당히 만만한 책 하나 골라서 어떻게 최대한 할인받아 주문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린다.


'무료 배송 쿠폰을 이 책 주문할 때 쓰면 다음 책은 어쩌지?' '지금 모은 적립금에 앞으로 들어올 적립금을 고려하면 얼마나 싸게 살 수 있을까?' '내일까지 안사면 적립금이 소멸하는데' '사면 읽을 수는 있을까?' '책에 곰팡이라도 피면?' '배송 도중에 책이 파손되면?' '집에 책을 놓아둘 자리가 있나?' '다 읽고 중고로 팔면 얼마나 나올까?' '중고매장까지 책을 팔러 가는데 지하철을 타고 간다치면...'


온라인중고 탭에서 책을 검색해본다. 정가 35,000원, 10% 할인해서 31,500원짜리가 18,000원. 손때가 타고 표지가 구겨지고 책등이나 책배에 뭔가 묻었을 수도 있고 책 틈새에 책벌레가 돌아다닐지도 모르고 얼룩이 졌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배송료 3,300원 추가.


모니터 옆에 한참 읽고 있는 반지의 제왕 1권 원서가 눈에 들어온다. 중고매장에서 구매했다. 정가 12,830원, 판매가 3,000원. 페이지를 들춰본다. 본문 458페이지에 서문 +@.


매일 듣는 팟캐스트. 과학 팟캐스트라서 과학 지식을 무료로 전달한다. 영어 팟캐스트라 영어 듣기는 덤. 대신 휴대폰 배터리를 조금 쓴다. 배터리를 충전하는데 쓰는 전기세를 계산한다면. 가끔 들어가보는 유튜브. 구독 중인 시사 유튜버의 새 동영상이 올라왔나 기웃거린다. 공짜로 유튜버의 해설 강의(+지식)를 듣는 셈. 유튜브를 보는 동안 나가는 데이터비와 전기세를 계산한다면. 그런데 팟캐스트든 유튜브든 거기서 정보나 재미를 얻었다면 몇 원짜리일까.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책을 사면 내가 낸 돈은 대충 서점, 출판사, 작가 등에서 나눠 가져갈 것이다. 그럼 거기서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얼마일까? 누군가는 책에서 교훈을 얻고 누군가는 지식을 얻고 누군가는 재미를 얻고 누군가는 우울감을 극복할 삶의 희망을 찾고 누군가는 삶의 이정표를 찾고 누군가는 책을 펼친 후 숙면을 취하고 ... 그래서 얼마일까?


교과서에서 본 시가 생각난다. 프란츠 카프카가 1200원이었던가. 카프카 1200원으로 검색해본다. 800원. 1987년 시니 36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800원짜리 카프카는 지금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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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9-07 12: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책이 제일 싸고 가치는 높은거 같습니다. 치킨은 한순간이지만 책은 영원하다는~!!

저는 요즘 기대평점 남기는 푸쉬 광고 때문에 적립금이 계속 쌓이는데 소멸되는게 아까워서 계속 책을 사게 됩니다 ㅜㅜ

Heath 2023-09-07 13:11   좋아요 3 | URL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 푸쉬 광고가 계속 날아와 적립금이 쌓이니 유혹에 넘어가게 되네요ㅠ

서니데이 2023-09-09 0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주말 보내세요.^^

Heath 2023-09-09 09:34   좋아요 1 | URL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