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유소유보다는 무소유가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아요. 법정 스님이 입적한 지 이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님이 살아온 모습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니었나 싶어요. 생전에 스스로가 바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듯이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진정한 구도자의 모습. 우리들은 알고 있는 것과 또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항상 가지고 나면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기 마련이죠. 특히나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욱 더 자신을 다스리기 힘들어지기 마련인데, 스님은 오히려 그런 인간의 욕망을 초월하고 진정으로 종교인으로서 아니 한 사람으로서 후회없이 살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유소유라니... 말로만 보면 무소유와는 정반대 아니겠어요. 그것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으로 비춰지기 마련인데, 사실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본다면 무소유보다는 유소유가 더욱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무소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현대인들에게 무조건 무소유만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중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와 유의 절묘한 줄다리기. 서로 적당하게 인생을 지탱해야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말이죠. 무소유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무소유를 통해서 더 발전된 개념으로의 유소유 무소유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무소유가 자신에게 맞겠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무소유만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을지 모르겠어요. 무소유가 어떻게 보면 현실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소유라는 것은 그만큼 적극적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소유라는 것이 비단 자신만을 위한 소유도 있지만 타인을 위한 소유도 있지 않겠어요. 그것은 아마도 욕심과 베푸는 것의 차이? 속담에서 본다면 광에서 인심난다 정도가 아니겠어요. 자신이 가진 것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다는 것. 사실 무소유라는 것이 한적한 시골에서의 삶이라고 하면, 유소유라는 것은 도시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아요. 어쩌면 무소유보다 더 힘든 것이 유소유가 아닐까 싶네요. 해당 서평은 순정아이북스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