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바로 땅이 있기 때문이겠죠. 이 땅에 집을 짓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당연한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닌 시절. 그 당연한 것을 위해 어쩌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지켜야 했던 그 때. 조정래 작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작가이고 그의 작품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에 황토라는 작품도 그만큼 기대가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이 새로 쓰여진 게 아니라 이미 74년도에 발표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 작품을 이번에 새롭게 추가해서 장편으로 선보였다고 하는데, 작품의 배경이 바로 일제 말기에서 해방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우리의 땅이지만 우리의 땅이 아니었던 시절. 자신의 땅이었지만 버리고 갈 수 밖에 없었던 시절. 그런 험난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식을 위해서 희생한 한 여인의 인생이 담겨져 있어요. 문득 생각나는 말이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카렛 오하라가 마지막으로 흙을 만지고 희망을 꿈꾸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흙이라는 것은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인 것 같아요. 다른 역사소설에서처럼 위대한 영웅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서 역사 속에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삶의 무게를 견디고 감내하면서 살아갔는지 특히나 남자가 아닌 여자들에게 얼마나 역사는 더 가혹했는지, 하지만 그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꿋꿋히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까지 길러낸 대단한 어머니의 모습. 일제와 해방, 한국전쟁까지 사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역시나 살기 힘든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만들어가지 못하고 외세와 내분으로 얼룩진 아픈 역사의 순간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다른 세 자식으로 형상화 된 것은 아닐까 싶어요. 서로 다른 세 시기. 하지만 그 역사가 가지는 모순들. 역사 속에서 과연 한 개인의 삶은 아무것도 아닐까요?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장 비극적인 역사일 수 있는데, 그런 역사가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요? 그들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픈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