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그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얼핏보면 전혀 그와는 상관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조금만 지켜보면 직접이던 간접이든 어떻게든 그와 연관이 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세 사람인가 다섯 사람을 건너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알 수 있다고 했던 거랑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것이지만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쓰는 것. 넌센스 퀴즈같기도 하지만 정답은 이름. 이처럼 우리의 존재는 단지 내가 존재한다고 해서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내가 정의되고 비로소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의 존재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그랬던 가요? 김춘추님의 꽃이라는 시에서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나는 그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우리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겠죠. 타인이 이야기하는 그. 예전에는 테이프에 나의 목소리를 녹음하곤 했는데 다시 들어보면 전혀 나처럼 느껴지지 않는 느낌처럼 정작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는 다르지 않을까요? 그럼 어떤 것이 정말 나의 모습일까요? 내가 생각하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 그리고 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면서 마치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각각의 색깔로 나뉘어지는 것처럼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치 그것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들을 다시 하나로 합치면 내가 되는 것처럼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여섯가지 이야기들이 어떻게 보면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그라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말이죠. 전체와 부분. 어쩌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많은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들의 단편만 가지고 그것이 마치 그 사람의 모든 것인냥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결코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사는 그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그를 평가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가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그는 과연 어떤 색을 보여주게 될까요?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해서 이야기 되어지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