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으면 울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수가 없는 현실은 과연 정상일까요? 비정상일까요? 아이들에게 꿈을 가져라고 말하는 어른들. 하지만 과연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뭘까요? 너무나 일찍 세상 속에 나와버린 아이들. 세상을 너무나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 과연 그들이 꿈을 꿀 수 있는 걸까요? 단지 이 책에 나오는 미술학원 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꿈을 빼앗는 어른들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모르겠어요. 입시를 위해서 미술학원을 다녀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본 거랑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그리 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재능은 있지만 그 재능을 마음껏 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각종 대회가 아이들의 재능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치맛바람이나 심사위원들의 입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미술의 현실은 사실 예술을 어떤 정해진 잣대에 맞출 수 없기 때문이겠죠.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술을 하면 살기가 힘들다고 하잖아요. 돈이 많아야 예술을 할 수 있다고 말이죠. 원빈이 그토록 이루고자 하는 꿈이 과연 재능만으로 잡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부모님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초강력 미술학원은 욕망으로 가득찬 어른들과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아이들처럼 어찌보면 우리사회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막막해지는 것 같아요. 사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처럼 가난해서 학원을 다니지도 못하고 집안일을 도우면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울에 있지 않으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고 더구나 학원을 다니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대학에 들어가기도 힘들어진 것처럼 부모님의 능력이 대학입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어찌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이룰 수 있을거라는 희망조차 주지 못하는 사회가 되면 안되겠죠. 단순히 미술학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네요. 제목처럼 울기엔 좀 애매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속에서 찡한 느낌이 드는 건 뭘까요? 웃음 속에 감쳐진 냉혹한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죠. 어찌보면 현실이 힘들수록 더 열심히 일곱번 넘어지면 여덟번 일어나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