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경성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우리가 잊어버렸던 또는 모르고 있었던 그 역사 이야기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1920년대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였죠. 1910년 8월 우리나라는 강제합병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어떻게 한 때는 일본에 문명을 전해주기도 하고 대마도를 정벌하기도 한 우리나라가 힘없이 그렇게 일본에게 굴복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저 고종이 정치를 못해서였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을사오적만을 탓할 수 있을까? 일본이 1860년대 메이지 유신을 시작해서 근대화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나라는 그저 나라를 꽁꽁 걸어잠그고 근대화의 길을 외면했던 것일까? 사실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조작되고 왜곡되기에 그동안 우리는 그 당시 조선이 그저 무능한 왕과 사리사욕만 채우는 매국노와 부정부패가 만연된 사회, 개화되지 못한 민중들처럼 잘못된 역사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 조선도 근대화의 길을 가기위해 무던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방해공작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등으로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선 힘없는 수많은 민중들을 보면서 비록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음에도 정신만큼은 우리 고유의 사상과 민족의식이 남아있어 결국은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잖아요. 물론 처음의 강압적인 무단통치시기인 1910년대를 지나 1919년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삼일운동으로 일제의 통치가 문화정치로 바뀌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서슬퍼런 일제의 감시하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할 수 밖에 없는 일이였지만 그 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어선 비밀결사 단체인 의열단의 이야기가 바로 조선의 심장 경성을 뒤흔드는 사람들이죠. 1923년 1월 폭탄이 터진 곳은 바로 경성의 종로 경찰서. 이것은 단순한 경찰서의 테러가 아니라 일본의 조선 식민지 통치의 하나의 상징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경성의 심장부에 있는 경찰서가 테러를 당하면서 우리민족에게는 항일의 의지를 일본에게는 간담서늘한 충격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 사건을 전후로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투사 김상옥의 이야기가 치열했던 그 당시의 역사와 함께 우리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네요. 무엇이 그렇게 그들의 목숨보다 가치가 있었던 걸까요? 그 용기와 숭고한 희생정신, 역사가 전해주는 그 치열한 삶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