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부서진 말이라고 해서 예전에 소극장에서 봤던 연극이 한 편 기억이 나더라구요. 유리 동물원이라고.. 그래서 혹시 유리로 만들 말들이 부서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말이라는 게 타는 말일수도 있고 우리가 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고귀한 존재가 세상의 풍파에 부서져버린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유리 동물원이라는 작품에서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붕괴되어가는 내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어찌보면 말이라는 것도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또한 약하고 쉽게 변질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싶어요. 저자인 박이문 교수의 이력을 보면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에서 철학적인 사유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와 너 그리고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 그 곳에서 떠오르는 의문들과 생각들을 한 편의 시에 잘 녹아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기존의 서정적인 시의 느낌과는 조금은 다른 깊이 있는 자기 철학의 시라고나 할까요? 그리 과장하지 않아도 오히려 단순하고 간결하고 절제된 묘미. 하지만 그 속에는 나와 세상 그리고 우주를 모두 담고 있는 듯 원대함이 느껴지는 듯해요. 시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그것이 지극히 보편적인 것은 아닐까요?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또한 너를 비롯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처럼 우리는 문득 혼자인 듯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 아닐까요? 철학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일상적인 생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지만 결국에는 철학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왜? 박이문 작가는 말들이 부서졌다고 했을까요? 철학으로 삶의 진리를 알고자 했으나 철학으로는 알 수 없는 삶의 다양하고도 얼핏 아이러니하기까지도 한 인생에 대한 경외감은 아니었을까요? 세상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 세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에서 우리는 어떤 해답을 찾고자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