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에 이어 다른 입술과의 키스들이 뒤따랐다.

가슴을 꿰뚫는, 
너의 흔적은 내게 있어 타인 속으로 사라져 갔다.
계속해 떨어지고 있는 눈발 속에 찍은 
발자취처럼 사라져 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이 몸짓에서 
자신을 또 다른 나에게 바치고 싶은 
욕망과 의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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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 년 동안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
▶ 안톤 슈낙 에세이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연재 3화
▶ 타인 속으로 사라지는 첫 키스의 의미. 
▶ 읽기 : http://naver.me/G3SQYB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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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어머니라는 말,
피곤한 저녁의 벽난로 소리,
어두운 밤의 파도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게 하는
이것들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 속에 흐르는 음악이다.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환호성이며,
부풀고, 격동하는 마음을 가진
자신을 축복하는 소리다.


▶ 40여 년 동안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
▶ 안톤 슈낙 에세이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연재 2화 
▶ 전문 읽기 : http://naver.me/5dX2o2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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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사랑하기 때문에 빛난다"
▶ 40여 년 동안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
▶ 안톤 슈낙 에세이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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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 수록 작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연재 읽기 :
http://naver.me/xWOEXOHl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의 미소, 노을 지는 하늘, 첫사랑, 돌아가신 부모님, 녹슨 철문, 닳은 운동화, 어린 시절의 일기, 한적한 시골길, 어느새 늙어버린 나의 얼굴 등.


어떤 풍경이나 사물은 우리가 얼마나 삶에 무뎌졌는가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면 '벌써 이렇게 늙었나하며'(참 시간 빠르다며) 슬픔에 빠지기도 하지만 많은 일을 이겨낸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마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매 순간 삶을 포기하기보다 끝까지 내 삶을 사랑했구나'라며, 자신의 노고를 담담하게(과장이나 사사로움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그런 마음이 어른의 마음이자 기쁨은 아닐까요.



우리는 살아있어서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슬픔을 느낍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쉽고,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런 슬픔으로 자신이 얼마나 누군가를 사랑했는지, 자신을 아꼈는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것은 아닐까요.


1950여 년부터 1980여 년,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약 40여 년 동안 국어교과서에 실리며, 이렇게 슬픔이 성장의 통로가 됨을 말해주는 에세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안톤 슈탁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에세이죠.


어쩌면 어른의 삶은 기쁨이 많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삶에도 사랑이 있었음을 놓지치 않고 싶은 분에게 안톤 슈탁의 담담한 에세이를 권하여 봅니다.


*
연재 1화
교과서 수록 작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읽기 :
http://naver.me/xWOEXO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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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이방인>의 불편한 진실

출처 : 한국일보, https://goo.gl/MUXozw


범죄를 저지르고 글을 써서 유명하게 된 사람이라면, 이 자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그는 1942년 여름 오후 두 시, 알제리의 해변에서 한 아랍인을 총으로 사살했다.


카인이 동생을 죽인 이유는 양떼를 빼앗겠다는 욕심에서였지만, 이 자는 태양 아래에서 불현듯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살인을 했다. 살인죄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는 출감을 하면서 책을 한 권 쓰는데, 그 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가 책을 쓰게 된 맥락, 성공 비결, 그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다른 책들, 그리고 각각의 대목에 대한 상세한 주석들까지, 이 책의 성공은 아직까지도 흔들림이 없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책세상, 2010)은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라는 뫼르소의 비장한 독백으로 끝난다. 하지만 알제리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카멜 다우드는 저 구절이 뫼르소의 사형집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본다.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에 걸맞은 사면과 감면이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펜과 칼>(마티, 2011)을 보면 된다.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뫼르소가 재판 받는 장면은 순전히 이데올로기적 허구입니다. 프랑스인이 식민지 알제리에서 아랍인을 죽였다고 해서 재판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카멜 다우드의 <뫼르소, 살인 사건>(문예출판사, 2017)은 감면된 형기를 마친 뫼르소가 출옥해서 <이방인>을 썼다고 설정한다. 뫼르소가 책을 써서 유명 인사가 된 것을 모르고 있었던 피살자의 동생 하룬은 책이 나온 지 이십 년이 되어서야 그 책을 읽게 된다. 밤을 꼬박 세워 뫼르소의 책을 읽은 하룬은 형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숨이 막힐 듯한 모욕감을 느꼈다.


“나는 ‘아랍인’이라는 단어를 세고 또 세어봤어. 그 말은 스물다섯 번이나 나왔지만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어. 소금, 눈부심, 거룩한 사명을 짊어진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성찰만 있었을 뿐이야. 뫼르소의 책은 무사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에겐 이름이 없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 것도 말해주는 게 없었어.”, “재판은 가면무도회, 하릴없는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악이었지. 무인도에서 만난 어떤 남자가 자기가 그 전날에 ‘금요일’이라는 사람을 죽였노라고 한들 그를 어쩌겠는가?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왜 재판에서는 아랍인을 죽인 것보다도 자기 엄마가 죽었을 때 울지 않았다는 게 더 큰 죄가 됐을까?”, “다들 살인이 있었던 게 아니고 단지 일사병이 있었을 뿐이라는 걸 증명하느라 애를 쓰더군.”


<이방인>을 읽은 평론가와 독자는 뫼르소가 말려든 사건의 전말을 놓고 오랫동안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이를테면 뫼르소의 친구인 레이몽이 동거하던 아랍계 창녀를 손찌검했고, 그녀의 오빠 무사가 레이몽에게 복수하려는 틀 속에 뫼르소가 우연히 연루되었다는 것이다. 하룬은 자신들에게는 여자 형제가 없다면서 <이방인>에 아랍계 창녀가 나오는 것은 작가의 비틀린 정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프랑스를 대표하는 뫼르소의 애인 마리의 순결함과 아랍 여자의 타락을 비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룬, 아니 카멜 다우드가 실천하고 있는 것은 <이방인> 다시 쓰기다. 그것은 작중에서 “같은 언어로 쓰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로 설명된다(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필기를 한다).


비서구ㆍ제3세계 작가들에게 이런 전략을 열렬히 권했던 사람이 에드워드 사이드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에 집필된 서구의 문학 정전은 반드시 제국주의에 대한 의식적 정당화를 작품 속에 감추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서구의 문학 정전을 읽을 때는 개개의 작품 속에서 침묵하고 있거나 파탄 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것을 ‘대위법적 읽기’라고 불렀으며, 서구의 문학 정전을 비서구ㆍ제3세계의 시각으로 ‘다시 쓰기’ 할 것을 권장했다. <이방인>의 경우 이야기 속에서 어떤 발언권도 얻지 못했던 아랍인이 카뮈의 침묵과 파탄에 해당한다.


장정일 소설가 


출처 : 한국일보, https://goo.gl/MUXo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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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출판사의 도서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가
7월 2주, 알라딘 서점 뇌과학 분야 1위에 올랐습니다.

^^


순위 떨어지기 전에
기념샷 남기면서 소소한 자랑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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