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어디 가? 창비청소년문학 54
김한수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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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아니 살아도 이건 도무지 사는 게 아니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에 우겨넣어 맹목적으로 따라오기만을 강요하고 있으니 질풍노도 들끓는 아이들 입장에선 죽을 맛일밖에. 그럼에도 어른들은 좀처럼 숨통을 터주지 않으려는 듯 결연하기만 하다. 측은한 시선, 연민의 눈길보단 오로지 외길, 명문대에 진학하여 사회 지도층이 되는 길로만 매진할 것을 주문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들에겐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을 테다.

 

김한수의 [너 지금 어디가?]엔 온통 루저(loser) 일색이다. 건호도 그 중의 한명이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엄마와 아빠가 성적 만능, 출세지상주의에 물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 눈엔 건호가 결코 루저로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건호가 학원에도 보내주지 않는 너무 무관심한 부모 아니냐며 안달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공부엔 젬병이니 성적 일변도의 체제에선 당연히 소외될 수밖에.

 

존재감 없이 인생을 허비하던 건호에게 기회가 왔다. 장난을 치다 딱 걸려 벌로 교장선생님 텃밭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동안 갈고 닦은 농사 솜씨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담임은 건호에게 자초지종을 묻게 되고 아빠의 텃밭 얘기를 전해 듣게 된다. 이후 아빠와 친해지게 된 담임은 그예 교장선생님 텃밭을 가꿀 동아리 회장으로 건호를 지명하기에 이른다. 그때부터 건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선생님은 물론 친구들도 경탄의 눈길로 건호를 바라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루저 건호의 삶에 드디어 볕 들 날이 온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일으키는 것, 그건 결코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인정의 눈길을 보내는, 딱 그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주위의 시선이 바뀌니 건호도 이제 별 볼 일 없는 애가 아닌 누구에게나 주목 받고 또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탈바꿈하게 될밖에.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자 담임은 “오늘 고생 많았고, 고맙다.”하고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한 뒤 내 어깨를 다독여 주셨다. 담임에게 인사를 하고 교문을 향해 걷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다. 뭐랄까, 내가 굉장히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192쪽)

 

또 건호를 살린 것은 너는 소중하다는, 네가 있어서 고맙다는 그런 소소한 말 몇 마디가 아니었을까? 간곡한 뜻을 진심에 담아 발언하는 순간 듣는 이는 아마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렇게 건호가 살아나고 그의 위상이 우뚝 일어서게 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도 덩달아 영향을 받게 되었다. 아니 상호작용이었다 할까, 더불어 같이 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텃밭 농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많은 아이들의 의식도, 위계질서에도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난다.

 

은따였던 아이가 짱에게 지시를 내리는 거나 짱이 그 지시에 군말 없이 따르는 것도 놀랍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였던 대풍이와 민석이가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것이 특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203쪽)

 

그건 내가 살아나니 더불어 우리도 살아나게 되는 상승작용이었다. 공부에 치어 늘 열패감에 젖어있던 아이들이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고, 자신의 노동이 탐스런 결실로 이어짐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으며 또 수확을 이웃과 나누는 기쁨도 누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잊고 있던 아니 상실했던 자존감이 되살아나게 되었고.

 

이렇게 우리를 일으키고 사람을 살리는 것은 자신을 알아봐 주는 눈빛, 인정해주는 소소한 말 몇 마디였다 하겠다. 마음 맞는 이들과 더불어 서로를 인정해주는, 그런 일에 나설 때 우린 비로소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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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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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작 우리의 본 모습을 제대로 모르기 십상이고 그 가치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기 일쑤다. 그래서 소중하게 간직하지 않고 함부로 없애버리기도 한다. 경제성장이 진행된 이후 이런 풍조는 더욱 심해진 듯 보인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문화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중국이나 일본 등 외지로 나가는 게 나을 경우도 있다. 오히려 그런 곳에서 우리 문화를 오롯이 지키며 살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유홍준 교수가 답사한 일본의 아스카와 나라 지방만 해도 그렇다. 삼국시대 우리의 모습, 그리고 얼마 전까지 우리 시골에서 볼 수 있던 정경이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자는 ‘왜 하필 일본이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유홍준 교수는 이렇게 일본이라 하면 생리적으로 거부감부터 일어나는 이들에게 슬몃 얘기를 건다.

 

일본의 청동기 시대는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땅을 점령하다시피 해서 이룬 문화였으며, 문자의 전래는 왕인 박사의 은혜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반면에 나라시대 동대사 대불의 조성은 그네들의 노력의 결과였으며, 다도와 무사도는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독자적인 문화였다. 그 점은 한국의 문화가 중국에 신세진 점과 마찬가지다. 전진의 순도가 불교를 전래해준 것은 은혜였으며, 월주요의 청자를 벤치마크하여 고려청자를 만들어낸 것은 고려인의 슬기였으며, 문익점은 목숨을 걸고 목화씨를 들여왔다. 한글과 선비문화는 우리들의 창조적인 문화였다. (중랴)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이룩한 문화는 미국문화이지 영국문화가 아니듯, 한반도의 도래인이 건너가 이룩한 문화는 한국문화가 아니라 일본문화이다. 우리는 일본 고대문화를 이런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백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11~12쪽)

 

강변하듯 자기 논리를 따르라며 을러대는 것이 아니라 조곤조곤 유사 사례를 들어가며 풀어나가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상당 부분 벗겨지는 것을 느낀다. 개화시기를 놓쳐 근대사의 주변국가로 전락해버렸던 콤플렉스와 잔혹했던 일제의 학정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도 애써 외면하곤 했는데 이런 것들을 들어내고 차분히 바라보면 일본의 내밀한 모습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고 했는데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증오를 한 꺼풀 걷어내고 나니 가려져 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이전에 까맣게 몰랐던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오게 된 것이리라. 유홍준 교수는 이렇게 한일 간의 이해와 상호 인정이 양국간의 화해를 넘어 두 나라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읽으면서 하나 떠오른 게 있는데 이런 얘기를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만 할 것이 아니라 일본 학자들, 아니 대중들에게도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유홍준 교수라면 그런 일을 능히 감당해 내리라고 믿는다. 아니 적격도 그런 적격이 없을 것이다. 우선 두 나라에 대해 고대사부터 현대 사회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객관적인 지식을 꿰고 있고 양국 간 교류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그게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일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굳게 닫혀 있는 마음 문을 여는 데는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적합할 것인데 이에 관한 한 유홍준 교수에 필적할 만한 이가 거의 없다고 본다.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특유의 너스레에 작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화법에 일본인들이 절로 빨려들지 않을까 싶다. 아스카를 자전거로 순례할 때 들렀던 시골 우동집 주인에게서 가정식 다꽝을 얻어먹고 그분의 부여 여행 얘기를 이끌어내어 결국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정서임을 확인한 대목 같은 것은 현장 강연이나 일본어판 책을 출간할 때 들려주면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여 이 책은 국내 문화유산답사기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단순히 일본 속에 남아 있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넘어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던 고대사회부터 뼈아픈 역사적 대가를 치렀던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해 숙고해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라기는 이 책의 일본어판이 출간되어 일본 독자들이 읽고 우리 못지않게 그들도 지니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열등감과 적대의식 같은 비합리적 태도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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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 꽃보다 시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고민정 글.사진 / 마음의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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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조차 메말라버린 드라이한 이 시대, 다들 시크하고 도도하게 제 잇속을 챙기는 이 때 돌연 우리의 속물 근성이 빤히 드러나버린 사건이 벌어졌지요. 고민정 아나의 얘기, 그 절절한 순애보를 듣고 말입니다. 때묻지 않은 순결한 영혼을 접하게 되니 사라져버린 것 같았던 눈물샘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고요. 정말 그동안 뭣에 홀린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세상 명예와 이익에 휘둘렸던 우리의 뒤틀린 내면을 실감나게 깨우친 것입니다.

 

고민정 님의 글에 비친 두 부부의 모습은 정말 천생연분이랄 밖에요. 이런 프로포즈 시를 바친 시인이었니, 시 한 대목 대목 마다 오롯이 담긴 진정성은 잡스런 생각들이 틈입할 여지를 남기지 않고 있답니다.

 

외로움이 
그리움이 
삶의 곤궁함이 폭포처럼 쏟아지던
작은 옥탑방에서도,
그대를 생각하면 
까맣던 밤하늘에 별이 뜨고,
내 마음은 이마에 꽃잎을 인 
강물처럼 출렁거렸습니다.
 (중략)
 
그림은 누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눈이 시렸을 뿐
수 많은 기억들이 봄날의 벗꽃처럼 
흩날려버릴 먼 훗날, 

어려웠던 시간, 나의 눈물이 
그대에게 별빛이 되고 나로 인해 
흘려야했던 그대의 눈물이,
누군가에게 다시 별빛이 될 것입니다. 
(이하 생략)

 

그렇습니다. 정말 시인의 예언처럼 눈물이 고민정 아나에겐 별빛이 되고, 또 고민정 아나의 눈물이 우리들 속물들에겐 다시 별빛으로 다가오고 있지요. 그 앞엔 어떤 악플도 사악한 추측도, 음모론도 감히 자리하지 못하고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느낀 것 중 하나, 꼭 하고 짚고 싶은 것이 고민정 아나의 문장력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간결하고도 의미 심장하게 엮어서 시인과 아나의 인생 역정과 내면의 흐름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문의 어린 왕자 얘기, 존경의 마음이 생겨난 얘기 같은 대목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요. 절절한 내용을 빼어난 문장으로 그려내어 감동이 배가되었다 할까요. 시인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고민정 아나의 글에도 시적인 운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여 그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과시하여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도서 판매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 차원의 그렇고 그런 유의 에세이가 아니라 단언컨대 문학성 측면에서도 한 편의 완결된 글로 손색이 없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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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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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쿠루는 마치 작가 하루키의 분신 같습니다. 그의 전작들이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쓰럽기 짝이 없습니다. 아니 작가의 심경이 주인공에게로 옮겨 들어가 오롯이 그가 되고 만 듯합니다. 그의 취향이, 정서적․심리적 기질이 고스란히 쓰쿠루에게 투영되어 있는 게 읽히니까요. 그런 쓰쿠루, 아니 하루키가 넌짓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당신도 과거에 짓눌린 응어리가 있냐고, 그럼 이제 순례의 길로 나서라고 말입니다. 읽는 동안 “르 말 뒤 페이”가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외롭고 높고 쓸쓸한 핀란드의 풍경이 그려지며 마음결 한없이 잔잔해졌습니다.

 

쓰쿠루의 삶은 갈피를 잡기 힘들게 얽히고설킨 와중에 금방이라도 끊어질듯 간신히 이어지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 졸였다 할까요? 그의 방황은 오로지 시로에게 이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보이던 멤버들 모두에게 동일한 애착과 결속력을 느낀다고 생각했던 쓰쿠루는 그 가운데 유독 시로에게 향한 마음이 각별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꿈에 등장하는 여자, 구로와 시로 가운데 언제나 몽정 상대는 시로 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늘 시로가 연주하던 피아노 선율의 여운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으니. 그러나 현실에선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있는 시로이기에 하이다가 대신 그의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하이다에게 끌린 것도“르 말 뒤 페이”를 좋아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시로의 그림자가 어려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쓰쿠루에게 따스한 온기를 건네준 하이다가 없었다면 삶의 불꽃은 진작 사위어버렸을 것입니다. 하이다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버티다 그마저 사라진 혼돈의 공간에 이제 사라의 부드러운 손길이 다시 그를 감싸게 됩니다. 사라의 권고로 시로에게, 아니 과거의 자신에게로 나아갈 용기를 얻은 쓰쿠루는 이제 시로를 아련히 보내고 시로가 왜, 무엇 때문에 아파했는지 그토록 자신을 지목하여 배제하려고 했는지 알아내려고 핀란드로 향하게 됩니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지경으로 나아가려고 말입니다.

 

늘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하다

 

몸의 한 부분, 아니 한 몸 같던 친구들에게 단호하게 거부당했을 때, 일방적인 절교 선언을 들었을 때 다자키 쓰쿠루는 어땠을까요? 공동체라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자 전부였는데 그것이 일순간 무너져버렸으니 그 허탈감을 무엇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정신적으로 가장 강인하고 균형을 이룬 듯 보였던 다자키 쓰쿠루가 실은 가장 크게 무너지고 말았지요. 그런데 다시 생을 이어가고, 이제 16년 전 자신에게 닥친 사건에 대해, 그 일의 응어리로 꽉 막힌 내면을 뚫기 위해 순례의 길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다자키를 일으킨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의 온기였습니다. 옆을 지켜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기꺼이 말해주던 따스한 이들 때문이었습니다.

 

몸의 중심 가까이에 차갑고 딱딱한 것이, 1년 내내 녹지 않는 동토의 중심부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이 가슴의 통증과 숨 막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자기 안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태 그는 몰랐다.(…) 그 차가운 중심부를 녹이기 위해선 다른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388)

 

먼저 다가온 이는 하이다였습니다. 연하의 총명한 친구, 순수하고 원리적이며 쓰쿠루의 내면을 꿰뚫어보던 그는 쓰쿠루의 몽정을 시로를 대신하여 받아들이기도 했지요. 그는“르 말 뒤 페이” 음반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로가 애틋하게 연주하던 그 곡 말입니다. 시로와 하이다는 “순례의 해”로 연결되어 있다 할까요. 쓰쿠루에게 하이다는 곁에 없는 시로의 대역이었던 셈입니다, 쓰쿠루는 하이다를 통해 시로에게 이르려 했던 것이지요.

 

하이다가 사라진 다음 이번엔 사라의 온기가 쓰쿠루의 차디찬 가슴을 슬몃 덮습니다. 사라의 따스하고 진정어린 권고로 자신을 짓누르던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다자키는 순례의 길로 나서게 됩니다. 쓰쿠루의 내면에 아직 소화되지 않은 채 걸려 있는 그 무엇이 그들 사이 자연스런 흐름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제 풀어내야 되지 않겠냐고 권했던 것입니다. 그녀의 주선으로 쓰쿠루는 우선 그들의 추억이 어려 있는 나고야로 향합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젊은 날 빛을 뿜던 눈부심 대신 다들 흐려가는 눈빛이었습니다. 더구나 시로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요.

 

구로의 절절한 고백을 듣다.

 

그리고 오른 핀란드 여행길에서 쓰쿠루는 의외의 상황에 직면하고 맙니다. 16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구로, 아니 에리를 만난 것입니다. 거기서 에리는 쓰쿠루를 사랑했었다고 절절하게 고백하며 포옹을 요청합니다. 에리의 넉넉한 가슴과 등 뒤로 감싼 따스한 손길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요. 자신에게는 쓰쿠루가 선망의 대상이었다며 그동안 담아두었던 간곡한 마음을 내보일 때 쓰쿠루의 마음은 눈 녹듯 풀렸을 것입니다. 힐링도 그런 힐링이 없을 테니까요.

 

칼라가 없는 줄 알았던 다자키에게 “넌 다정하고 쿨하고 조용하고, 그때부터 자기 삶의 방식을 가졌어. 그리고 잘 생기기도 했고.”(371)

 

“있지, 쓰쿠루, 한 가지만 잘 기억해 둬. 넌 색채가 없는 게 아냐. 그런 건 이름에 지나지 않아. 물론 우리가 그걸로 너를 자주 놀렸지만, 그건 다 아무 의미도 없는 농담이야. 넌 정말 멋지고 색채가 넘치는 다자키 스쿠루야. 그리고 근사한 역을 만드는 사람이고. 지금은 건강한 서른여섯 살 시민으로 선거권이 있고 세금도 내고 나를 만나러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까지 올 수 있어. 너에게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어.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 너에게 필요한 건 그것뿐이야. 두려움이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놓쳐선 안 돼.”(387)

 

그리고 과거의 일에 대해 구로는 진심을 담아 사죄의 마음을 전합니다. 구로의 마음을 또렷이 읽은 쓰쿠루도 울렁거립니다. 그러더니 그예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원망이 이해로 바뀌고, 더 나아가 그들의 심경에 공감까지 하게 됩니다.

 

쓰쿠루는 말했다. "지금가지 나는 계속 내가 희생자라고만 생각했어. 이유도 없이 가혹한 짓을 당했다고 생각해왔어. 그 때문에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가 내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비틀었다고. 솔직히 말해, 너희 넷을 원망하기도 했어. 왜 나 혼자만 이런 참혹한 꼴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희생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시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칼날이 나를 벤 건지도 몰라.“(375~376)

 

이제 쓰쿠루는 시로, 과거의 응어리를 벗어나 구로에게 위로를 받고 순례의 길을 마감합니다. 그 회귀점은 출발 원점이었던 사라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순례의 길에 오르라고 격려했던 그녀에게 말입니다. 사라의 승낙을 받기 위해 안달하며, 그녀와 사귀고 있지 싶은 중년 남성에 대한 질투심이 불타오릅니다. 어느새 삶의 의욕이 충만한 자연인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이렇게 쓰쿠루를 회복시킨 힘, 그것은 곁을 지켜주었던 이들이 전해 준 따스한 온기, 또 그 온기에 고무되어 미래로 향해 나아간 순례의 여정, 그리고 시로에게 향해 나아가다 우연히 발견한 구로의 진심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결국 쓰쿠루, 아니 하루키는 더 이상 과거의 굴레에 얽매어 무기력하게 자신을 방치하지 말고 온전한 순례의 길로 오르라고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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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속사정 - 알고 보면 지금과 비슷한
권우현 지음 / 원고지와만년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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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블로그에 연재했던 꼭지들을 묶은 짧은 조선사 에세이물이다.

사회, 경제, 국방 및 정치 네 분야로 나눠 조선시대의 이면을 소프트 터치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많다는 점이다. 기생의 가마 단속, 과부의 재가 문제, 추노에서 대길이 입었던 종이 갑옷, 소설 '은애전'을 낳은 뒷담화 무고자 살인사건 등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빼곡하여 술술 잘 읽힌다.

또 하나 인정해주고 싶은 것은 단순히 조선사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만 늘어놓은 게 아니라 그 시대에 관한 작가의 견해가 부각되고 있어 의미 있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왕위 계승이 능력보다는 정통성 위주, 곧 적장자 세습으로 이뤄졌다면 신권의 트집잡기, 사익추구를 위한 무례한 훼방 같은 것이 많이 줄어들지 않았겠나 짐작해보는 것이나 언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요즘보다 오히려 조선시대가 더 개방적으로 언로가 틔어 있었다고 지적하는 것 등 말이다. 특히 인터넷 댓글을 가지고 국익을 해치고 법치를 무력화시켰다고 단죄하려는 작금의 위정자들의 행태를 비판한 대목은 속이 후련해질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런 것은, 블로그 글과 책으로 펴낸 글은 독자의 기대수준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종이책을 읽는 독자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층을 타겟으로 삼아 책을 출간할 것인지 좀더 면밀하게 따져보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역사서를 읽는 독자는 어느 정도는 배경지식과 사관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이들을 대상으로 가십 위주의 책을 펴낸다면 성에 차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하겠다. 그러니 이게 어린이용인지, 청소년용 소프트물인지 아님 지적인 역사서 매니아들을 위한 것인지 확실히 분별하여 소재와 깊이를 재구성했더라면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웹 상 게시글과 공식적인 출간물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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