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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정작 우리의 본 모습을 제대로 모르기 십상이고 그 가치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기 일쑤다. 그래서 소중하게 간직하지 않고 함부로 없애버리기도 한다. 경제성장이 진행된 이후 이런 풍조는 더욱 심해진 듯 보인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문화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중국이나 일본 등 외지로 나가는 게 나을 경우도 있다. 오히려 그런 곳에서 우리 문화를 오롯이 지키며 살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유홍준 교수가 답사한 일본의 아스카와 나라 지방만 해도 그렇다. 삼국시대 우리의 모습, 그리고 얼마 전까지 우리 시골에서 볼 수 있던 정경이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자는 ‘왜 하필 일본이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유홍준 교수는 이렇게 일본이라 하면 생리적으로 거부감부터 일어나는 이들에게 슬몃 얘기를 건다.
일본의 청동기 시대는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땅을 점령하다시피 해서 이룬 문화였으며, 문자의 전래는 왕인 박사의 은혜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반면에 나라시대 동대사 대불의 조성은 그네들의 노력의 결과였으며, 다도와 무사도는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독자적인 문화였다. 그 점은 한국의 문화가 중국에 신세진 점과 마찬가지다. 전진의 순도가 불교를 전래해준 것은 은혜였으며, 월주요의 청자를 벤치마크하여 고려청자를 만들어낸 것은 고려인의 슬기였으며, 문익점은 목숨을 걸고 목화씨를 들여왔다. 한글과 선비문화는 우리들의 창조적인 문화였다. (중랴)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이룩한 문화는 미국문화이지 영국문화가 아니듯, 한반도의 도래인이 건너가 이룩한 문화는 한국문화가 아니라 일본문화이다. 우리는 일본 고대문화를 이런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백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11~12쪽)
강변하듯 자기 논리를 따르라며 을러대는 것이 아니라 조곤조곤 유사 사례를 들어가며 풀어나가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상당 부분 벗겨지는 것을 느낀다. 개화시기를 놓쳐 근대사의 주변국가로 전락해버렸던 콤플렉스와 잔혹했던 일제의 학정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도 애써 외면하곤 했는데 이런 것들을 들어내고 차분히 바라보면 일본의 내밀한 모습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고 했는데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증오를 한 꺼풀 걷어내고 나니 가려져 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이전에 까맣게 몰랐던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오게 된 것이리라. 유홍준 교수는 이렇게 한일 간의 이해와 상호 인정이 양국간의 화해를 넘어 두 나라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읽으면서 하나 떠오른 게 있는데 이런 얘기를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만 할 것이 아니라 일본 학자들, 아니 대중들에게도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유홍준 교수라면 그런 일을 능히 감당해 내리라고 믿는다. 아니 적격도 그런 적격이 없을 것이다. 우선 두 나라에 대해 고대사부터 현대 사회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객관적인 지식을 꿰고 있고 양국 간 교류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그게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일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굳게 닫혀 있는 마음 문을 여는 데는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적합할 것인데 이에 관한 한 유홍준 교수에 필적할 만한 이가 거의 없다고 본다.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특유의 너스레에 작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화법에 일본인들이 절로 빨려들지 않을까 싶다. 아스카를 자전거로 순례할 때 들렀던 시골 우동집 주인에게서 가정식 다꽝을 얻어먹고 그분의 부여 여행 얘기를 이끌어내어 결국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정서임을 확인한 대목 같은 것은 현장 강연이나 일본어판 책을 출간할 때 들려주면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여 이 책은 국내 문화유산답사기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단순히 일본 속에 남아 있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넘어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던 고대사회부터 뼈아픈 역사적 대가를 치렀던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해 숙고해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라기는 이 책의 일본어판이 출간되어 일본 독자들이 읽고 우리 못지않게 그들도 지니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열등감과 적대의식 같은 비합리적 태도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