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고독한 것이기는 하지만 고립된 것은 아니다. 그 생명은 어딘가의 또다른 생명과 이어져 있다. - P444

생각이라는 건 저마다 모양새를 갖고 색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달과 똑같이 차오르기도 하고 이지러지기도 한다. - P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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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밀접한 관계가 폭력이라는 형태를 통해서가 아니면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이 아오마메는 안타까웠다. 법률을 등지고 몇몇 사람을 살해하고, 그리고 이번에는 누군가에게 쫓겨 살해될 지도 모르는 특이한 상황에 처하면서 우리는 깊은 마음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에 살인이라는 행위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런 관계를 이루는 게 과연 가능했을까.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만났기 때문에 이만큼 끈끈한 신뢰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마 보통 세상에서라면 이런 인연을 맺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P441

원래부터 체계가 없는 것에 체계를 세워보려고 해도 그건 쓸데없는 시도일 뿐이었다. 결국 가 닿을 곳은 한정적이었다. - P452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고 성장한다는 건 변화를 이뤄내는 일이다. - P455

인류가 불이며 도구며 언어를 손에 넣기 전부터 달은 변함없이 사람들 편이었다. 그것은 하늘이 준 등불로서 때로는 암흑의 세계를 환하게 비추어 사람들의 공포심을 달래주었다. 그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시간관념을 부여해주었다. 달의 그같은 무상의 자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밤의 어둠이 쫓겨나버린 현재에도 인류의 유전자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집합적인 따스한 기억으로. -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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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내가 읽어온 책 속 고난과 불행들은 언제나 극복되기 위해존재했다. 손오공과 해리 포터, 나나와 루피에게는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 주어졌고, 그것은 곧 다가올 행복을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일상의 불행은 결코 쉽게 극복되지 않으며, 아주 길게, 어쩌면 평생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 P308

일상의 내가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과는 달리 온라인 속의 나는 누군가 나를 지켜볼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P319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감정이 내 안에서 끓어오르기시작했다. 기쁨과 슬픔과 증오와 행복과 고통과 쾌락을 초월한, 뼛속깊이 차오르는 어떤 강렬한 충동. 어쩌면 한없이 짐승을 닮아 있는, 근원적이고도 강력한 살의. - P322

나에게 있어 고통은 극복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내 삶을 따라다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P346

천장 말고 창문 너머의 세계를 떠올려봐. 거기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랑 나를 연결하면 또다른 선이고, 천장 너머의 또다른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 P350

버티는 거. 그게 제일 위대한 거지. - P365

흥분해 말까지 더듬는 윤도 앞에서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계절이사라져가고 있었다. 화선지에 먹이 번지듯 검게 덮여가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귀에 속삭였던 대화들이 순식간에 혼잣말이 되어버렸다. 너와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다 없던 일이 되었다. - P374

나는 그저 텅 빈 채로 그 자리에서 천천히 낡아갔다. - P377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의 눈 속에 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
그 순간들이, 그때 우리의 마음이 다 진짜였다는 것.
그 한마디로 말미암아 내가 살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마치 경전처럼 주워 삼키고 되새겼기에 내가 간신히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무늬는 알고 있을까? - P395

조도가 낮은 조명에 회백색으로 칠해진 벽면, 오래된 시멘트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나는 결심했다.
진심을 다해서 사랑했던 기억은 그 시절에 남겨놓기로.
나 자신의 미숙함과 절망과 분노와 슬픔, 과오와 아픈 기억들까지도 모두 그곳에 두고 오기로.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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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확실한 인생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 P348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얼굴에 드러나고, 상대에게 의심을 품게 한다. - P373

중요한 건 틀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용입니다. - P377

톱니가 덜컹 소리를 내며 한 칸 전진했다. 한번 앞으로 나아간 톱니가 다시 뒤로 돌아오는 일은 없다. 그것이 세계의 룰이다. - P398

아오마메는 방 안을 새삼 천천히 둘러보았다. 영락없는 모델 룸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청결하고 통일감 있고 필요한 건 모두 갖춰져 있다. 하지만 개성 없이 데면데면한, 그냥 종이로 만든 연극 소품 같은 것이다. 만일 내가 이런 곳에서 죽게 된다면 그건 별로 유쾌한 죽음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가령 무대 배경을 내 맘에 드는 것으로 바꿔본들, 유쾌한 죽음이라는 것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게다가 생각해보면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그 자체가 거대한 모델 룸 같은 게 아닐까. 들어와서 거기에 자리잡고 앉아 차를 마시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그리고 시간이 되면 인사를 하고 나간다. 그곳에 있는 모든 가구는 임시의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창문에 걸린 달 역시 종이로 만든 소품일지도 모른다. - P399

"아마도 내가 길을 너무 멀리 돌아온 거 같아. 그 아오마메라는 이름의 여자애는, 뭐랄까, 오래도록 변함없이 내 의식의 중심에 있었어. 나라는 존재의 중요한 누름돌 역할을 해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게 너무도 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 의미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거 같아."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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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리가 겪는 모든 종류의 폭력과 그가 내미는 손길을 철저히 외면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간 얼굴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야말로 누구보다도 추악했다.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환멸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매일을 보냈다. - P252

알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을 알게 되었을 때의 고독감 - P282

어쩌면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일지도 몰랐다. 커다란 고민에 맞닥뜨렸을 때 충실히 고민하는 대신, 일상의 과업들로 도망쳐버리는 사람. 그렇게 함으로써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다잡고 기어이 모든 감정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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