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내가 읽어온 책 속 고난과 불행들은 언제나 극복되기 위해존재했다. 손오공과 해리 포터, 나나와 루피에게는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 주어졌고, 그것은 곧 다가올 행복을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일상의 불행은 결코 쉽게 극복되지 않으며, 아주 길게, 어쩌면 평생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 P308
일상의 내가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과는 달리 온라인 속의 나는 누군가 나를 지켜볼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P319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감정이 내 안에서 끓어오르기시작했다. 기쁨과 슬픔과 증오와 행복과 고통과 쾌락을 초월한, 뼛속깊이 차오르는 어떤 강렬한 충동. 어쩌면 한없이 짐승을 닮아 있는, 근원적이고도 강력한 살의. - P322
나에게 있어 고통은 극복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내 삶을 따라다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P346
천장 말고 창문 너머의 세계를 떠올려봐. 거기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랑 나를 연결하면 또다른 선이고, 천장 너머의 또다른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 P350
버티는 거. 그게 제일 위대한 거지. - P365
흥분해 말까지 더듬는 윤도 앞에서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계절이사라져가고 있었다. 화선지에 먹이 번지듯 검게 덮여가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귀에 속삭였던 대화들이 순식간에 혼잣말이 되어버렸다. 너와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다 없던 일이 되었다. - P374
나는 그저 텅 빈 채로 그 자리에서 천천히 낡아갔다. - P377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의 눈 속에 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 그 순간들이, 그때 우리의 마음이 다 진짜였다는 것. 그 한마디로 말미암아 내가 살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마치 경전처럼 주워 삼키고 되새겼기에 내가 간신히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무늬는 알고 있을까? - P395
조도가 낮은 조명에 회백색으로 칠해진 벽면, 오래된 시멘트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나는 결심했다. 진심을 다해서 사랑했던 기억은 그 시절에 남겨놓기로. 나 자신의 미숙함과 절망과 분노와 슬픔, 과오와 아픈 기억들까지도 모두 그곳에 두고 오기로. - P3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