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전쟁에 돌입한 또 다른 인민의 벗인 크레벤코 선생을 만나보자.

 

하지만 미하일로프스키나 유자코프 글과는 다른 방식으로 크레벤코, 우리 문화 용병들, 1893, 12, 여행 중에 보낸 편지, 1894, 1를 검토한다. 글들을 완전히 분석하는 건 첫째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그들의 반론과, 둘째로는 그들의 정치 경제 이론에서 실체를 분명히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인민의 벗들의 사고를 완전히 이해하고자, 그들의 전술, 실질적인 목표, 정치 강령을 알아야만 한다. 자신들의 이론적인 견해를 밝힐 때, 어디에서도 직접적으로 그 강령을 일관성 있고, 완전하게 제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명 기고자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정도로, 의견 일치를 보인 한 잡지에서 많은 글들을 참조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 중에서도 크리벤코 글들을 우선적으로 살펴본다. 그 이유로는 크리벤코 글들에 많은 자료가 담겨 있는데다가, 미하일로프스키는 사회주의자고, 유자코프는 경제학자이듯이, 크리벤코는 해당 잡지에서 전형적이라고 볼 수 있는 실용적인 인물이자,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정말 필수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여겨지는 이론적인 핵심이 한 가지 더 있다. 유자코프 선생은 인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인민들의 토지 임차에 대해 의미 없는 문구들을 늘어놓는 걸, 자신이 농민들의 경제적인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추고자, 의미 없는 문구들로 문제들을 눙치는 걸 지켜봐왔다. 유자코프는 수공업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고, 대규모 공장 산업 발달에 관한 자료를 다루는 걸로만 국한시켰다. 그래 놓고는 수공업에 대해 정확히 똑같은 문구들을 반복해서 늘어놓는다. 유자코프는 '인민들의 산업', 곧 수공업을 자본주의적인 산업에 똑같이 대비시키면서, 인민들의 생산은 대부분의 경우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반면에, 자본주의적인 산업은 흔히 인위적으로 창출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단락에서도 유자코프는 '소규모 인민 산업'을 대규모 자본주의 산업과 대비시키면서, '여러분이 눈에 띄는 인민들의 산업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규모가 작고, 노동 도구들이 생산자와 결합된다는' 대답만 듣게 된다. 그러나 경제 구조를 정의내리는 일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데다, 전혀 사실도 아니다. 크리벤코 선생은 소규모 인민 산업은 대규모 자본주의적인 산업보다 총생산량도 훨씬 많고, 더 많은 노동력을 고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크리벤코는 수공업자들의 숫자가 40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를 거론했었는데, 또 다른 자료에서는 7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수공업을 지배하는 경제 형태가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대부분 수공업자들은 생산에서 전혀 독립적이지 않고, 완전히 종속됐다는 점, 그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원료를 가공하는 게 아니라, 상인들이 대준 원료를 가공하고, 그 대가로부터 임금을 지급받는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같은 형태가 지배적이라는 통계는 합법적인 출판물에서도 인용됐다.

 

유명한 통계학자인 S. 카리조메노프 글들 가운데,법률 통신, 1883, 11, 12에 실린 뛰어난 글을 인용해보자. 수공업이 가장 고도로 발달된 중부 지방 주들에서 수공업에 관한 기존에 발표된 통계를 요약하면서, 카리조메노프는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에서 절대적인 우위, 곧 의문의 여지 없이 자본주의 형태에 따른 산업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카리조메노프는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에서 경제적인 역할을 규정할 때, 다음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모스크바 주에서는 연간 수공업 매출액에서 86.5%가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로부터 발생했고,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으로부터는 13.5%에 불과하다. 블라디미르 주에서 알렉산드로프와 포크로브 군에서는 연간 수공업 매출액에서 96%는 대규모 가내 생산과 제조업 체계 몫에 해당했고, 4%만이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이런 점을 반박하려 하지 않았고, 반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점들을 무시한 채로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산업을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인민 산업이라 부를 수 있고, 진정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사실 관계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딱 한 가지 설명만이 할 수 있다. 곧 국내 자유주의자들이 다 그렇듯이, 인민의 벗들 역시도 모두를 단지 평범한 결함들이라 치부하면서부터 국내 노동 인민 착취와 계급 적대를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으로는, 크리벤코는 파블로보 날붙이 사업을 절반은 장인 성격의 사업이라 부른 데서 드러난 바와 같이, 같은 주제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 너무나 깊은 데서 비롯된다. 이렇듯이 인민의 벗들이 도달한 왜곡 깊이는 가히 놀랍다는 말밖에는 덧붙일 말이 없다. 같은 대목에서 어떻게 파블로보 칼 장수들이 장인의 성격을 띠고 있따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크리벤코는 상인이 수공업자로부터 물건을 주문해서 니지니 노브고로드 장터로 보내는 체계를 장인 산업이라 여기는 건 아닐까. 너무나 우습게도 그렇다. 실제로 칼 제조는 외관 상 생산자들이 독립성을 지닌 소규모 수공업 형태로부터 파블로보의 다른 산업들과 비교해볼 때, 가장 동떨어져 있다. N.F. 안넨스키는 '요리용과 공업용 칼 생산은 이미 대부분 공장에 접근하고 있다거나, 더 정확히는 공장제 수공업 형태에 도달한다.' 말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에서 요리용 칼 제조에 종사하는 396명 수공업자들 가운데 단 62, 16%만이 시장을 위해 일하고, 273, 69%은 주인을 위해 일하며, 61, 15%는 임금 노동자들이다. 따라서 그들 가운데 고용주에게 직접적으로 예속되어 있지 않은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칼 산업에서 다른 부문에 대해 같은 필자는 '주머니칼과 자물쇠 중간 위치를 차지한다. 같은 부문에서 수공업자들 대부분은 주인을 위해 노동하지만, 그들과 더불어 시장과 관계를 맺는 수 많은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은 여전히 아주 많다'고 말한다.

 

니즈니노브고로드 주에서는 이런 종류의 칼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들이 총 2,552명 있었는데, 그 중 1,236, 48%는 시장을 위해 노동하고, 1,058, 42%는 주인을 위해 노동하며, 258, 10%는 임금 노동자들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장을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 또한 단지 겉으로만 독립적으로 보일 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구매자 자본에 덜 예속되어 있는 게 아니다. 21,983명 노동 인민, 곧 노동하는 사람의 전체 84.5%가 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니즈니노브고로드 주에서 고르바토프 군 전체 산업 통계를 불러온다면, 금속, 가죽 제품, 마구류, 털천, 삼 방적 등 산업에 종사하는 10,808명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산업 경제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얻을 수 있다. 곧 수공업자들의 35.6%는 시장을 위해 노동하고, 46.7%는 주인을 위해 노동하며, 17.7%는 임금 노동자들이었다. 따라서 여기서도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우위에 있고, 노동이 자본에 예속되어 있는 관계가 지배적이다. 인민의 벗들은 그토록 자유롭게 이런 종류의 사실들을 무시한 또 다른 이유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자본가라는 거대한 기계 회사를 운영하고, 고용주라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생각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용어에서 과학적인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거부한다. 앞 장에서 유자코프 선생은 자본주의 시작점을 정확히 기계 공업에서 시작하면서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을 생략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널리 만연하는 실수로, 부수적으로는 한 국가의 수공업에서 자본주의적인 구성이 무시된 결과를 생기도록 만들었다.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자본주읮거인 산업 형태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는 이미 높은 발전 수준에 도달한 상품 경제, 생산 수단이 개인들의 손에 집중되는 현상, 수중에 생산 수단을 지니고 있지 못해서, 자신의 노동을 타인 소유의 생산 수단으로 적용시키며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 노동하는 노동자 대중 착취라는 모든 특징들이 담긴다. 분명 그러한 구성에 있어 수공업은 순전히 자본주의적이며, 주로 터무니 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기술적으로 뒤떨어져 있으며, 노동자들은 여전히 소규모 농지를 계속해서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춰볼 때, 대규모 기계 공업과는 다르다. 소규모 농지에 있어 상황은 특히 인민의 벗들을 헷갈리도록 만들었는데, 그들은 진정한 형이상학자들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노골적이고, 정반대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은 말한다.

 

'그래, 맞아. 아니, 아니, 악마에게서는 그게 뭐든 간에 이보다 더한 게 생겨나는 법이야.'

 

노동자들에게 토지가 없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토지가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하며, 경제의 전반적인 사회적 구조를 보지도 않은 채, 그런 철학을 위안 삼아 자기 자신을 그 속에 가둔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뻔뻔한 농민 토지 소유주들로부터 강탈 당한 끔찍한 가난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점마저 망각해버린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여전히 비교적 낮은 발전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디에서도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킬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마르크스는 서구 유럽에서부터 오직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노동자를 영원히 착취한다는 법칙을 확립했다. 따라서 인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논법은 완전히 쓸모없다는 게 명백해진다. 왜냐하면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에 따른 자본주의는 노동자 토지로부터 완전한 분리와 어디에도 결부된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자본주의이기를 멈춘 적도 없기 때문이다. 국내 대규모 기계 산업 형태는 산업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을 떠맡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삶의 모든 구체적인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어느 서구 자본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토지와 사슬 고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걸 절대로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말이 나온 김에, 같은 점은 데멘티예프로부터 엄밀한 통계로 입증된 바 있으며, 데멘티예프는 마르크스와는 아주 별개로, 기계를 이용한 생산이 노동자에 따른 완전한 토지로부터 분리와 불가분으로 관련된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같은 연구에서는 러시아도 자본주의 국가이며, 국내 노동자들에 따른 토지와 연관에 있어 아주 미약하고, 실재하지도 않는데다, 자산 소유자인 화폐 소유자, 구매자, 부농, 공장제 수공업자 등의 권력은 아주 굳건하게 확립됐고, 기술적인 진전이 한 차례 더 일어나게 되면, 오랫동안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해왔던 농민은 그야말로 노동자로 변모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입증한다. 그러나 한 나라 수공업에서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인민의 벗들의 잘못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은 주인을 위해서 행하지 않는 산업들에 대해서조차 그들의 생각은 경작자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피상적이다. 어쨌든 그들이 아는 거라고는 세상에는 노동하는 인민과 결합될 수 있는 생산 수단 같은 게 존재하고, 그게 아주 좋다는 반면에, 그들과 분리될 수도 있는 생산 수단은 아주 나쁜 거라는 점 말고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주제넘게도 정치 경제에 관한 질문들에 대한 의견이나 늘어놓는 신사양반들의 생각이 피상적이라는 점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화되는 산업과 그렇지 않은 소규모 생산이 자유롭게 존재하는 산업에 대해 말하면서, 크리벤코는 한 쪽으로 특정 분야들에서 기본적인 생산 비용이 얼마 안 되며, 따라서 소규모 생산을 할 수 있다고만 말한다. 크리벤코는 벽돌 산업을 거론하는데, 거기서는 비용이 벽돌 공장 연간 매출액에서 1/15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필자가 사실 관계를 언급한 거의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에, 따라서 인민의 벗들이 현실에 대해 어떤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주고자 한다.

 

모스크바 젬스트보 경제 통계 보고서에 대한 서술을 볼 수 있다. 해당 산업에서는 주로 보고로즈코예 군 세 개 읍에 집중됐는데, 233개 시설에서 1,402명 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 이 중에서 41%를 차지하는 567명은 가족 노동자들이다. 가족 노동자는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주인 가족 가운데 노동에 참가하는 구성원을 뜻한다. 357천 루블 가치에 해당하는 연간 총 생산량을 보유했다. 해당 산업은 오래된 산업이지만, 철도 건설로부터 판매가 대폭 촉진된 덕분에 지난 15년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철도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가족 생산 형태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는 임금 노동자 착취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또한 해당 산업은 판매를 위해 소규모 업자들이 대규모 업자들에게 의존하는 현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자금 부족 때문에 소규모 업자는 대규모 업자에게 아주 형편없는 가격에다 그 자리에서 벽돌이나 미가공품을 내다 판다. 하지만 그러한 의존도와는 별개로 논문에 첨부된 노동자들 수와 각 시설 당 연간 총 생산량이 표시된 수공업자 가구 별 통계 조사 덕분에 해당 산업 구조 역시도 익히 알 수 있었다.

 

상품 경제가 곧 자본주의 경제라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상품 경제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된다는 법칙이 해당 산업에서도 적용되는지를 확인하고자, 시설들의 규모를 비교해봐야만 한다. 문제는 정확히 생산량에서 역할과 임금 노동 착취에 따른 소규모와 대규모 시설들 사이에서 관계다. 노동자들의 숫자를 기초로 해서, 수공업자 시설들을 가족 노동자와 고용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서,

 

1. 1-5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2. 6-10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3. 10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눈다. 시설들의 규모, 노동자들의 전체 수, 각 집단 별 생산량에 따른 가치를 검토한 결과, 다음 통계를 얻을 수 있었다. 해당 수치들을 살펴보면, 부르주아 또는 그와 동일하고, 산업에 따른 자본주의적인 구조를 인식할 수 있다. 시설이 클수록 중간 집단은 예외지만, 노동 생산성은 더 높아지고,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더 심해지며, 생산 집중도 역시 더 커진다. 거의 전적으로 임금 노동에 기초한 세 번째 집단에서는 전체 시설 수에서 10%를 차지하지만, 총 생산량은 44%에 달한다. 소수 손에 생산 수단이 이렇게 집중되는 현상, 다수 임금 노동자들에 따른 착취와 관련된 현상은 대규모 경영주들은 사실상 원청이기 때문에, 소생산자들에 따른 원청에 대한 의존과 해당 산업에서 노동 억압을 설명해준다. 따라서 노동 계급에 대한 강탈과 착취 원인이 생산 관계 자체에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알다시피 국내 인민주의 경향 사회주의자들은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지녔었고, 수공업에서 노동 억압 원인이 생산 관계에서 그들은 생산 관계가 착취할 수 없도록 만드는 원칙에 기초한다고 선언했었지만, 거기에 있지도 않고, 다른 무언가, 곧 농업과 재정 정책 등에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그런 견해를 굽히지도 않고, 이제 거의 편견에 따른 철옹성을 구축하게 된 근본 토대는 무엇이었으며, 또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수공업에서 생산 관계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사실 관계, 곧 경제 구조에 따른 실제 형태들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묘사하려는 시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지속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회 과학에 따른 유일한 과학적인 방법론, 곧 유물론적인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나이든 사회주의자들의 사고 경과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수공업에 관해서는, 그들은 착취 원인을 생산 관계 외부로 그 책임을 돌린다. 반면에, 대규모 공장 자본주의에 관해서는, 그들은 거기에서 착취 원인이 정확히 생산 관계에 있다는 걸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따라서 화해할 수 없는 모순과 부조화였다. 수공업적인 생산 관계에서는 자본주의적인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대규모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된 지를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수공업과 자본주의적인 산업 사이에서 연관 관계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수공업에서는 인민 공업으로, 자본주의적으로는 인위적인 산업으로 대비시켰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본주의가 인민 제도와 모순된다는 발상이다. 같은 사고는 아주 폭 넓게 퍼져 있고, 니콜라이 온 선생에 따른 수정과 개선을 거쳐, 국내 대중들에게도 제시된 바 있다. 가히 경탄스러울 정도로 비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타성적으로 지속된다. 니콜라이 온에 따르면 공장 자본주의는 실제 현실에 기초해서 판단되는 반면에, 수공업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기초해서 판단이 이뤄진다. 자본주의는 생산 관계에 따른 분석에 기초해서 판단되지만, 수공업에서는 생산 관계를 따로 검토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판단되며, 그러한 문제는 곧장 정치 영역으로 옮겨간다. 생산 관계에 따른 분석에 시선을 돌리기만 한다면, 인민 제도들이 아직 개발되지도 않고, 맹아적인 상태이기는 하나, 지극히 동일한 자본주의 생산 관계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모든 수공업자들이 동등하다는 안일한 편견을 거부하고, 그들 사이에서 차이들을 정확히 제시하자면, 공장 자본가와 수공업자 사이에서 차이가 수공업자 서로 간 차이보다 작다는 게 때때로 증명된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민 제도와 모순되는 게 아니라, 뒤를 잇는 직접적이고, 당면한 연속이자, 발전이라는 점을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인용한 바가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주어진 바에서 임금 노동자들에 따른 비율이 대체로 너무 높다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중요한 건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수공업자들이 드러내는 관계, 곧 자본주의 생산 관계로는 본질적으로 부르우자적이고, 그 부르주아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든, 약하게 드러나든 간에 그런 상태가 중단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의도적으로 부르주아적인 성격이 약한 걸 골라볼 텐데, 모스크바 주 산업에 관한 이사예프에 따르면, 도자기 공업은 순수한 가내 공업이고, 당연히 소규모 농민 공업에서 대표 주자로 여겨진다. 기술이 지극히 단순하고, 장비는 아주 작으며, 생산된 물건들이 보편적이고, 필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세부 사항들을 제시하는 도자기 장인들에 대한 가구 별 통계 조사 덕분에 경제 구조도 연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따. 도자기 공업에서는 수 많은 국내 소규모 인민 공업으로 아주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수공업자들을,

 

1. 가족 노동자와 고용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서, 1-3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2. 4-5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3. 5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눈 다음 동일한 계산을 실시한다. 명백하게도, 해당 공업 역시도 비슷한 사례들이 무수히 인용된다. 부르주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상품 경제로부터 발생하는 동일한 분리, 특히 자본주의적인 분리가 발견되고, 맨 위 집단에서는 이미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임금 노동 착취로 이어진다. 맨 위 집단에서는 전체 시설들에서 1/8을 차지하고, 전체 노동자에서 30%가 총 생산량에서 약 1/3을 생산하며, 노동 생산성은 평균보다 상당히 위에 있다. 생산 관계만으로도 원청 등장과 권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규모가 더 크고, 이윤이 더 많이 나는 시설들을 소유하고, 타인 노동으로부터 순이익을 얻는 맨 위 도공 집단에서는 사실상 평균 5.5명 임금 노동자들이 노동하며, 소수가 어떻게 절약된 돈을 축적하고, 왜 다수는 몰락하고 심지어 소장인들은 생계조자 이을 수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다수가 소수에게 예속되는 건 확실한 사실이며, 필연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어진 생산 관계에서 자본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그렇다. 같은 관계들은 상품 경제로부터 조직된 사회적인 노동 산물이 개인 수중으로 넘어가서, 그들의 손에서 노동 인민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수단, 대중 착취로부터 개인적인 부를 쌓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관계다. 그리고 같은 종류에서 관계가 여전히 덜 발달됐기 때문에, 생산자들에 따른 몰락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자본 축적이 무시해도 될 정도이기 때문에, 착취와 억압이 보다 덜 뚜렷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오로지 노예의 형태를 띤 보다 더 조악한 착취로 이끌 뿐이다. 곧 아직은 노동자 노동력을 가치 그대로 구입하기에는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종속시킬 수 없었던 자본이 노동자를 고리대금으로부터 착취에 따른 진정한 그물에 얽어넣고, 악랄한 방법으로 묶어놓으면서부터 초과 가치뿐만이 아니라, 임금에 따른 상당 부분을 강탈해가고, 더 나아가 노동자로 하여금 주인을 바꾸지 못하게 하면서부터 고통을 가하고, 자본이 노동자에게 일거리를 준다는 점을 혜택으로 강요하면서부터 노동자를 모욕하는 상태로 이어진다. 진정한 인민 산업이 존재한다면, 단 한 명의 노동자도 국내에서 독립적인 수공업자로서 지위를 그런 지위와 맞바꾸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국내 급진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조치들은 노동 인민에 따른 착취와 자본에 대한 노예화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여전히 고립된 실험에만 머무르거나, 노동 인민에 따른 상태를 더욱 더 악화시키고, 주어진 자본주의적인 관계를 세련되게, 다듬고 발전시키며, 강화시킬 뿐이라는 점도 명백하다.

 

하지만 인민의 벗들은 전체적인 비참한 상태와 상대적으로 작은 시설, 극도로 낮은 노동 생산성, 원시적인 기술과 소수 임금 노동자들에도 불구하고, 농민 산업이 자본주의적이라는 점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인민들 사이에서 특정한 관계이고, 그러한 관계는 비교 대상 범주가 더 높은 수준에 있건, 더 낮은 발전 수준에 있건 간에 똑같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그걸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언제나 자본에서 그런 정의에 반대했다. 그래서 본인은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시버의 책에 대한 글을러시아 부에서 기고하면서, '자본은 관계다.'라는 정의를 인용하며, 분개한 마음에 그 뒤에다 느낌표를 달아놓았다. 부르주아 체제에서 범주를 영원하고, 당연하다고 간주한다는 건, 부르주아 철학자들에게서도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자본에 대해서도 그들은 추가 생산을 위해 쓸모가 있는 축적된 노동이라는 그런 정의를 받아들이는 건 그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을 인간 사회에서 영원한 범주로 묘사하고, 그런 행위에서 상품 경제로부터 조직된 축적된 노동이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중으로 들어가서, 타인 노동의 착취를 위해 기여하는 역사적으로 명확하고, 특정한 경제 구성체에 따른 본질을 흐린다. 그리고 생산 관계에 따른 명확한 체계에 대한 분석과 연구 대신에, 그들이 어떤 체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련의 시시한 말 따위를 제시하고, 소부르주아 도덕에서 감상적인 어린애 장난 같이 뒤섞는다. 인민의 벗들은 해당 산업을 인민 공업이라 부르고, 자본주의 산업과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신사 양반들이 소부르주아 이념가들이며, 소생산자들이 상품경제 체제 아래에서 살고 활동하면서, 그들과 시장과 관계가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들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놓는다는 점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이런 현실 구조를 연구하려 하지 않는가. 그랬더라면, 인민 산업들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결과에 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대신에, 자본주의 노선에 따라 조직되지 않고, 어쨌든 발전을 이룬 수공업 분야가 국내에서도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수로부터 생산 수단 독점, 다수로부터 소외, 임금 노동에 따른 착취에서,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에서 본질은 상품 경제로부터 조직된 사회적인 노동 산물이 개인으로부터 점유되는 개념에 필연적이고, 적당한 특징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정의와 자신의 역사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실제로 인민 수공업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에서 전체적인 역사에 있어 훌륭한 실례를 제공해준다. 분명히 단순 협업 형태에서, 도자기 공업에서 맨 위 집단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기원과 시작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상품 경제 덕분에 개별 개인들의 수중에 축적된 저축이 어떻게 자본이 되는지, 그래서 저축 소유자들만이 대규모 처분에 필요한 자금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일차적으로 판매를 독점하고, 그들로 하여금 멀리 떨어진 시장에서 상품들이 팔려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도록 하는지, 상인 자본이 생산자 대중을 어떻게 노예화하고, 자본주의 기계제 수공업, 곧 대규모 생산에 따른 자본주의 가내 체계를 조직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장 확대와 늘어나는 경쟁이 어떻게 개선된 기술로 이어지고, 상인 자본이 산업 자본이 되며, 대규모 기계제 생산을 조직하는지 또한 보여준다. 그래서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수백만 노동 인민과 지역 전체를 노예화한 자본이 공공연하고, 뻔뻔하게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정부를 자신의 하인으로 변모시키는 순간, 천재적인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 이식과 인위적인 생성에 대해 비명을 질러댄다. 실로 적절한 발견이다.

 

그러므로 크리벤코 선생은 '인민의', '현실적인', '적합한' 따위에서 산업에 대해 말했을 때, 크리벤코는 단지 수공업이 많은 발전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점을 감추려고 애쓴다. 이미 유자코프 선생에게도 같은 식의 수법들을 익히 보았다. 유자코프는 농민 개혁을 연구하는 대신에 1861219, 농노제 폐지 선언에 따른 기념비적인 선언에서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공허한 문구들을 사용했었고, 토지 지대를 연구하는 대신에 인민 지대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국내 시장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위해 형성되는지를 연구하는 대신에, 시장 부족으로부터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붕괴된다는 등 철학적인 말을 늘어놓은 바 있다. 같은 대목에서 인민의 벗 선생들이 사실을 얼마나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가지를 더 검토해본다. 주관적인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가장 정확한 언급 가운데 하나로, 곧 크리벤코 선생이 보로네시 농민들의 예산에 대해 1894, 1호에서 언급했었던 부분을 무시하는 건, 불공평하다며 드물게 자세를 낮춰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이 선택한 통계를 기초로 삼아보면, 국내 급진주의자들과 인민의 벗들의 사고와 국내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따른 사고 가운데 현실에서 어떤 생각이 더 정확한지를 확실히 할 수 있다. 보로네시 젬스트보 통계학자인, 시체르비나는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전형적인 농가 24곳 예산 항목들을 덧붙이며, 본문에서도 분석했다. 크리벤코는 같은 분석을 재현하면서도, 방법론이 소농들의 경제를 알기 위한 목적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을 보지 못하거나, 보기를 거부했다. 실제로 24곳의 예산은 크리벤코, 자신이 지적했듯이, 완전히 서로 다른 잘살거나, 중간이거나, 가난한 가구들을 묘사한다. 그러나 시체르비나도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유형에서 가구들을 한 덩이로 묶어, 평균 수치들을 활용했고, 그렇게 해서 그들 간 차이를 완전히 숨겼다. 그러나 소규모 생산자들 내부 분화는 아주 일반적이고, 주요한 사실이라서, 크리벤코가 선택한 빈약한 통계로부터 아주 뚜렷하게 감지된다. 그러나 크리벤코는 농민들의 농업을 다룰 때, 그들을 농장 규모와 농업 유형에 따른 범주로 나누는 대신에, 시체르비나 선생이 그랬듯이 그들을 법적인 범주, 곧 과거 국유지 농민과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으로 구분하고, 자신의 모든 관심을 과거 지주 밑에 있던 농민과 비교했을 때, 과거 국유지 농민의 번영에 돌리면서 같은 범주 내 농민들 간 차이가 범주 간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놓치고 만다. 이를 증명하고자, 24명 농민들을 세 개 집단으로 나눠,

 

a. 6, 잘사는 농민들

 

b. 11, 평균적인 농민들

 

c. 7, 가난한 농민들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 국유지 농민의 농가 당 지출이 541.3루블이고, 예전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 지출은 417.7루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농민들의 지출이 동등하다는 점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과거 국유지 농민들 가운데 지출이 84.7루블인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설령 1,456.2루블을 지출하는 독일 이주민을 제외하더라도, 또 다른 사람은 열 배에 해당하는 887.4루블이었다. 이를 한데 묶어놓는다면, 과연 평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제시하는 범주들로 분류할 경우, 잘사는 농민 농가 당 평균 지출은 855.86루블이고, 중간층 농민은 471.61루블, 가난한 농민은 223.78루블이라는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비율은 대략 4:2:1이다. 계속 이어가서, 시체르비나 발자취를 따라 크리벤코는 많은 법적인 범주에서 농민들 사이에서 개인적인 필요에 따른 경비를 제시한다. 과거 국유지 농민들이 연간 채소 음식에 지출하는 일인 당 경비는 13.4루블이고,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은 12.2루블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수치는,

 

a). 17.7루블

 

b). 14.5루블

 

c). 13.1루블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이 일인 당 고기와 유제품에 지출하는 경비는 5.2루블이고, 과거 국유지 농민들은 7.7루블이었다. 반면에, 경제적인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수치는 각각 11.7루블, 5.8루블, 3.6루블이다. 따라서 법적인 범주에 따른 계산은 이러한 큰 차이를 덮어버리는 데 불과하다는 점이 명백하다. 정녕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들 소득이 예전 지주 밑에 있던 농민들 소득보다 53.7%, 더 크다고 말한다. 24명 농민에서 전체적 평균은 539루블이고, 두 범주로 나누면, 각각 600루블 이상과 약 400루블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면, 소득은,

 

a). 1,053.2루블

 

b). 473.8루블

 

c). 202.4루블

 

최대 10:2 비율일 뿐, 3:2가 아니었다. 또한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들 농가 당 자본 가치는 1,060루블이고, 과거 지주 밑에 있던 농민들은 635루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수치는,

 

a). 1,737.91루블

 

b). 786.42루블

 

c). 363,38루블

 

다시 최대 비율은 10:2이지, 3:2가 아니었다. 이렇게 농민을 법적인 범주로 구분하면서부터 이와 같은 농민 경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져버렸다. 경제적 능력에 따른 많은 유형에서 농가들을 검토한다면, 잘사는 농가는 평균 1,053.2루블 소득을 올리고, 855.86루블 경비를 지출해, 197.34루블 순수익을 얻는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에 비해 중간층 가구는 473.8루블 소득을 올리고, 471.46루블 경비를 지출해서, 농가 당 2.19루블 순수익을 거둔다. 신용 부채와 체납금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분명 생계를 잇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농가 11곳 가운데 5곳이 적자였다. 반면에, 최하층 가난한 집단은 직접적인 손실을 보면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소득이 202.4루블, 경비는 223.78루블로, 21.38루블 적자를 기록했다. 농가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전체적인 평균 순수익 44.11루블을 낸다면, 실제 그림은 명백하게 완전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순수익을 확보한 6명의 잘사는 농민들이 8명의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한 사실을 간과한다. 그들의 농업 성격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순수익을 거둬들여, 산업에 의존할 필요성을 사실상 덜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부농들은 모두 합쳐 자신들 예산에서 6.5%만 산업으로 충당한다. 6,319.5루블 가운데 412루블로, 게다가 해당 산업들은 시체르비나가 언제나 말했듯이, 운반이나 심지어 양치기와 같은 유형으로, 의존과는 거리가 멀고 타인 착취를 미리 전제로 한다. 바로 축적된 저축은 상인 자본으로 전환된다. 농민들은 4개 산업 시설들을 소유하고, 거기서 320루블 소득, 전체 5%를 거둬들이고 있었다.

 

중간층 농민들의 경제는 유형이 달랐다. 그들은 거의 생계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중산층 농민들이 농사만으로는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울 수 없어, 소득 19%를 이른바 산업으로부터 충당했다. 과연 어떤 종류 산업인지는 시체르비나 글에서 알 수 있는데, 7명 농민 가운데 오직 두 사람만이 독립적인 산업, 양복업과 숯 제조에 종사하고, 나머지 5명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있었다. 이들은 이미 반만 농민이고, 반은 노동자이다. 부업을 하면서 농사를 등한시할 수밖에는 없고, 따라서 자신의 농사가 약화된다. 가난한 농민들은 순전히 손해를 보면서 농사를 짓는다. 가계 예산에서는 산업의 중요성이 소득의 24%로 훨씬 더 컸고, 산업이란 거의 전적으로 농민 한 명만 제외하고, 노동력 판매였다. 빈농 가운데 2명은 산업에서 농장 노동으로부터 얻는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3/2를 차지했다. 소생자들에 따른 완전한 분화 과정이라는 점은 아주 명백하다. 소생자들 가운데 상위 집단은 부르주아로 변모했고, 하위 집단은 프롤레타리아가 됐다. 전체적인 평균을 택한다면, 당연히 거기에서는 무엇도 알 수 없고, 시골 지역에서 경제 상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크리벤코 방법론을 채택할 수 있도록 만든 건, 오로지 그러한 허구 평균을 갖고 작업 했기 때문이다. 해당 군 전체에서 농민 농업에서 전형적인 농가들에 따른 지위를 측정하고자, 시체르비나 선생은 농민들을 분여지 크기에 따른 집단으로 나눴더니, 선택된 농가 24곳에서 전반적인 평균 번영 수준이 군 내 평균보다 약 3/1 가량 더 높다고 드러났다. 하지만 계산법에서는 불반족스러웠다. 왜냐하면 24명 농민들 사이에서는 큰 차이가 존재하고, 분여지 크기에 따른 분류는 농민층 분화를 감춰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여지가 번영에서 주요한 원인'이라는 크리벤코 이론은 완전히 틀렸다. 마을 공동체 내 토지를 '동등하게' 분배한다고 해서 말을 소유하지 않은 구성원들이 토지를 포기한 채, 일자리를 찾아 떠나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걸 막아주지 못한다는 점, 또는 다수 말을 소유한 구성원들이 거대한 땅을 임차해서, 또한 이윤이 발생하는 큰 농장을 운영하기를 막아주지 못한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농가 24곳 예산을 가지고 따져보면, 6데샤티나 분여지를 보유한 한 명 부농이 758.5루블의 총소득을 거둬들였고, 7.1데샤티나 분여지를 보유한 중간층 농민은 391.5루블, 6.9데샤니타 분여지를 보유한 빈농은 109.5루블을 거둬들인다는 점을 알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양한 집단 간 소득 비율로는 4:2:1인 반면에, 분여지 비율은 2.6:1:0.8:1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주 당연하게도, 가구 당 22.1데샤티나 분여지를 보유한 부농들은 각각 8.8데샤티나를 추가로 더 빌리는 반면에, 분여지를 더 적게 보유한 9.2데샤티나 가운데 중간층 농민들은 더 적은 규모에서 분여지 7.7데샤티나를 빌렸고, 훨씬 더 적은 분여지 8.4데샤티나를 보유한 빈농들은 불과 2.8데샤티나만 추가로 임차한다는 점이 발견됐다. 크리벤코는 '불행하게도 시체르비나 선생이 제시한 통계에서 주 단위는 말할 거도 없고, 군 단위에서조차 전체적인 상황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전체적인 평균으로 계산하는 잘못된 방법론에 의존하는 당신의 행동도 측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밖에는 없다. 일반적으로 시체르비나 통계는 아주 포괄적이고, 귀중해서 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줬고, 크리벤코 선생이 그러지 못했다면 비난받을 대상은 시체르비나 선생이 아니다. 시체르비나는 농사용 가축에 따른 농민들 분류를 제시했을 뿐, 분여지에 따른 분류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곧 법적인 부분이 아니라, 경제적인 구분에 따른 분류이다. 그리고 선택된 전형적인 24곳 농가에 따른 다양한 범주들 사이에서 비율이 해당 군을 통틀어 다양한 경제적 집단들 사이에서 비율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앞에서 볼 때, 전형적인 24곳 농가에서 전체적인 평균이 해당 군 농가보다 전반적으로 운영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허구 평균 대신에 경제적 범주를 택해보면, 제대로 된 비교를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농가들에서 노동하는 농장 노동자들이 농사용 가축을 갖고 있지 못한 농민들보다 다소 아래에 위치했지만, 농민들에게 매우 근접해간다는 점을 발견한게 된다. 그리고 빈농들은 농사용 가축을 한 마리 보유한 농민들에 아주 가깝게 다가선다. 중간층 농민은 농사용 가축을 두세 마리 보유한 농민들보다 약간 위에 위치해 있다. 반면에, 부유한 농민들은 농사용 가축을 네 마리 이상 보유한 농민들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한 상태에서, 네마리 이상 보유한 농민들에게 근접해간다. 따라서 군 전체에서 이윤이 나는 농사에 규칙적으로 종사하면서, 외부 일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는 농민들이 1/10을 넘어선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들의 소득은 화폐로 표기되고, 따라서 상업적인 성격에 따른 농업을 전제로 한다. 대체로 농민들은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손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전체 가구에서 1/4 이상이 정규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일시저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가구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에, 군 내 농민에서 절반 이상은 가난하고, 무마 농민 26% + 일마 농민 31.3% = 57.3%, 60%에 가깝게, 순전히 적자 상태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차 없는 강탈에 꾸준하게 시달린 끝에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는 없고, 농민들의 약 1/4는 이미 농업보다는 임금 노동에 더 많이 생계를 의존한다. 나머지 중간층 농민들은 어쨌든 정기적인 손실을 보면서 농사를 짓는데, 외부 수입으로 보충하기 때문에, 따라서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크리벤코가 제시한 그림이 실제 상태를 얼마나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통계를 아주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살펴봤다. 당연하게도 허구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거짓이었다. 전형적인 24가구 예산 가운데, 한 명의 잘사는 농민의 총소득 +197.34루블이 가난한 아홉 농가에서 적자를 메워주고, -21.38×9=192.42, 그래서 해당 군 내 10% 부농들이 57% 빈농들의 적자를 상쇄해줄 뿐만이 아니라, 일정한 정도 잉여를 산출해낸다는 점이다. 24곳 농가에서 평균 예산으로부터 44.14루블 잉여를 이끌어내고, 또는 신용 부채와 체납금 15.97루블을 차감한 크리벤코는 그저 중산층과 중하층 농민들의 쇠퇴를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간층 농민들을 언급할 때만, 쇠퇴를 말할 수 있는 반면에, 가난한 농민 대중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수탈, 곧 상대적으로 크고, 튼튼하게 자리 잡은 농장을 소유한 소수 손에서 생산 수단이 집중된 결과로 인한 강탈을 목격한다. 직접적인 수탈을 무시했기 때문에 크리벤코는 농가 예산들에 따른 또 다른 아주 흥미로운 특징, 농민층 분화가 국내 시장을 창출한다는 점을 마찬가지로 증명해준다는 걸 관찰하는 데 실패했다. 최상위에서 밑바닥까지 훑어보면, 산업, 곧 주로 노동력 판매로부터 얻는 소득의 중요성은 점점 커진다.

 

1. 부유한 농민: 6.5%

 

2. 중간층 농민: 18.8%

 

3. 가난한 농민: 23.6%

 

다른 한편으로, 맨 밑바닥에서 최상위 순서로 훑어보면, 농업에서 상품적이라기보다는, 부르주아적인 성격이 증가하고, 처분되는 농산품 비율이 늘어난다. 각 범주 별로 농업에서 거둬들이는 총 소득은

 

a. 3,861.7/1,774.4

 

b. 3,163.8/899.9

 

c. 689.9/175.24

 

분모는 소득 화폐 부문을 가리키며, 최상위 범주에서 맨 밑바닥으로 가면서, 각각 45.9%, 28.3%, 25.4%를 차지한다. 다시금 강탈 당한 농민들로부터 가져간 생산 수단이 어떻게 자본으로 변화하는지를 똑똑히 보게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는, 크리벤코가 활용된 자료로부터 정확한 결론을 분명하게 이끌어낼 수는 없다. 철도와 같이 여행하는 그 지역 한 농민으로부터 들은 걸 기초로, 노브고로드 주 농민 농업에서 화폐적인 성격을 묘사한 뒤에야, 크리벤코에게는 저렴하게 풀을 베고, 좋은 가격에 팔고자, 특별한 능력들을 배양하고, 한 가지에 몰두하도록 만드는 환경, 곧 상품 경제라는 정확한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상품 경제는 상업적인 재능을 일깨우고 세련되게 만드는 학교로 기능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 소설 속 자본주의 고리대금업자 인물인, 콜파예프와 데루노프와 같이 그 외 다른 유형에서 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들이 되는 반면에, 우직하고, 둔한 사람들은 뒤처지고, 퇴화해서, 궁핍해진 끝에 농장 노동자 대열로 들어섰다.

 

전혀 다른 조건들이 지배적인 주 농업이 주 산업인 주, 보로네시 통계에서도 도달한 결론은 정확히 같았다. 이를 본 사람들은 상품 경제 체제가 국가 전반에서 경제 생활에 따른 주된 배경이자, 특히 공동체 농민층에서 가장 큰 바탕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상황이 아주 명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품 경제만으로도 인민들과 농민층이 몰락해서 농장 노동자 대열에 들어선 프롤레타리아와 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들인 부르주아지로 분화됐다는, 곧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전환된다는 점 또한 두드러진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현실을 직시하지도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감히 말하지도 못한다. 크리벤코는,

 

'일부 사람들은 같은 상태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자본주의에 저항할 수 없는 임무라 여긴다. 문제를 다소 다르게 바라본다. 앞서 지적한대로, 자본주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그 역할이 모두를 아우르는데다, 너무나 결정적이어서 그 외 다른 어떤 요인도 국민 경제에서 발생하는 변화에는 책임이 없고, 미래에 다른 어떤 해결책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

 

현재 체계에 대한 정확하고, 직설적인 묘사 대신에, 농민층이 왜 착취자들과 농장 노동자들로 갈라지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는 대신에, 크리벤코는 자본주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알맹이 없는 문장으로 문제를 일축시켜버렸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려면 크리벤코는 다른 요인들이 결정적이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지적한 외에, 곧 착취자들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에 따른 계급 투쟁 외에 다른 어떤 해결책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어야만 했다. 그러나 크리벤코는 무엇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다음 문장을 두고 자신이 보여줬다고 여기는 걸까. 우스울지 몰라도, 인민의 벗들로부터 뭘 더 기대하겠는가.

 

'알다시피 맨 먼저 쇠락한 사람들은 토지가 빈약한 취약 농가들이다. 5데샤티나 미만 분여지를 보유한 농가들을 말한다. 그러나 15.7데샤티나 분여지를 확보한 전형적인 국유지 농민 농장들은 안정성 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실제로 그 정도 소득인 80루블 순수익을 확보하고자, 농가에서는 추가로 5데샤티나를 임차하지만, 그건 그저 농가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악명 높은 토지 빈곤을 자본주의와 결부시키는 그런 '수정주의 사고'는 과연 무엇에 해당하는가. 조금밖에 못 가진 사람들은 그마저도 잃어버리는 반면에, 각각 15.7데샤티나씩으로 많이 가진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이 얻게 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몰락하고, 다른 사람들은 부유해진다는 말을 아무 의미 없이 바꿔 말한 데 불과하다. 무엇도 해명해주지 못하는 토지 빈곤에 대한 의미 없는 말과 결별해야 할 가장 좋은 시점이 다가왔다. 단지 과정만을 묘사해줄 뿐이며, 더군다나 부정확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토지만을 가지고 말할 게 아니라, 생산 수단 전반에 대해 말해야만 하며, 농민들이 토지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고 말할 게 아니라, 토지로부터 분리됐고, 날로 발전하는 자본주의로부터 수탈되고 있다고 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벤코는 자신의 철학적인 담론을 마무리 지으며, 농업이 어떠한 상황 아래에서도 자연 발생성을 유지하며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의도는 없다고 말한다.

 

'말하고자 하는 건, 인위적으로 분리된 산업을 창출하는 게 비이성적이고, 노동자를 토지와 생산 도굴부터 분리시키는 건 자본주의로부터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에 선행하고, 증진시키는 요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게 전부다.'

 

여기서 크리벤코는 다시,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분리되어 착취자 손아귀로 넘어간다면, 노동자가 가난하기 때문이며, 착취자가 토지가 더 많기 때문이라는 심오한 사상을 높게 염두에 뒀다. 그리고 같은 부류의 철학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결정적 요인으로 '편협하게' 간주해서 드러낸다고 비난을 해댄다. 농민과 수공업자 분화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한 번 더 고찰해봤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문제를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하는지를 분명하게 해둘 필요는 있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사회학자가 보기에 농민들은 가난해지는 반면에, 돈을 좇는 사람들과 착취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윤을 이끌어낸다는 걸 의미하는 사실 관계들이, 유물론자들에게 있어서는 상품 생산 자체의 필요에 따른 상품 생산자들의 부르주아적인 분화를 의미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자산 계급과 무산 계급 사이에서 투쟁이 공장에서 뿐만 아니라, 머나먼 오지 마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논지, 모든 곳에서 같은 투쟁은 상품 경제 결과로 등장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 투쟁이라는 논지 근거로 작용하는 사실 관계들이 어떠한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젬스트보 통계가 제공한 자료 덕분에 정확히 서술될 수 있었던 농민들과 수공업자들에 따른 해체와 탈농민화는 국내 현실을 바라보는 사회민주주의적인 인식, 다시 말해 농민과 수공업자가 그러한 단어에서 '단정적인' 의미에서 소생산자, 곧 소부르주아라는 인식에 따른 정확성에서 실질적인 증거를 제공해준다. 같은 논지는 소생산자들이 살아가는 상품 경제 환경이나 그러한 환경 때문에 소생산자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분화되는 걸 이해하지 못한 옛 농민 사회주의에 맞서는 노동 계급 사회주의 이론에서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를 진지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주장을 여기에 집중시켜야 했을 뿐더러, 정치경제학 시각에서도 국내 상품 경제 체제가 아니며, 그래서 농민층 해체가 상품 경제 체제 때문에 비롯된 게 아닐 뿐 아니라, 인민 대중에 따른 강탈과 노동 인민에 다른 착취는 농민을 포함한 한 국가 사회 경제에서 자본주의적인 구조인 부르주아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설명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야만 했다.

 

,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게나, 신사 양반들.

 

사회민주주의 이론에서 실증적인 증거로 택하기를 선호한 건 농민과 수공업 경제에 대한 통계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인민의 벗들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그들의 사고를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대조하는 데 그쳤더라면, 그건 유물론적인 방법론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거기에 덧붙여 인민주의적인 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한 국가에서 현재 사회적·경제적인 현실에서 인민주의자들의 물질적인 토대를 증명해야만 한다. 한 국가에서 농민과 수공업자 경제 대한 예증과 사례들은 농민의 신망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인민의 벗들이 농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인민의 벗들은 한 국가에서 농촌 경제에 따른 부르주아적인 성격을 증명해주고, 따라서 인민의 벗들을 소부르주아에 따른 이념가들로 분류하는 게 적합하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인민의 벗들은 한 국가에서 급진주의자들의 사상과 계획들이 소부르주아들의 이해 관계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드러내준다. 인민의 벗들의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훨씬 더 분명해지는 연관 관계는 도대체 급진적인 사상들이 왜 그토록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또한 인민의 벗들의 정치적인 노예 근성과 기꺼이 타협할 준비가 된 태도 역시도 훌륭하게 설명해준다.

 

마막으로, 자본주의가 아직 채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와 같은 경제학적인 측면들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고찰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인민주의자들은 보통 자신들의 이론을 위한 자료를 끌어오곤 하는 그런 경제학에 대한 연구와 서술은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해 이곳 인민들 사이에 아주 만연한 반발 의식에 실질적으로 대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자본주의가 인민 제도와 모순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부터 더 나아가, 대규모 자본주의를 발전적으로 간주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강도 같은 현 체제에 맞서 싸우는 토대로 삼곳 피어하는 건, 다름 아닌 대규모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한 국가의 급진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농민 대중의 이익을 무시한 채로 '모든 농민을 공장 용광로로 밀어넣기를 바란다는' 등의 비난을 가한다. 모든 주장들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실제 있는 그대로 판단하면서도, 시골 지역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판단하는 놀라운만큼 비논리적이고, 이상한 과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연하게도, 그들에게는 실제 농촌과 그곳의 실제 경제 상태를 보여주기보다 더 좋은 답변을 있을 수 없다. 농촌에 따른 경제 환경을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내 농촌이 따로 떨어진 작은 지역들에서 사회적·경제적인 생활을 규정하는 작고, 흩어진 시장들 또는 중앙 시장에서 작은 부문들의 체계로 구성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각각의 지역에서 시장이 규제하는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대체로 특징적인 모든 현상을 찾을 수 있다. 한때 동등하고, 가부장적이었던 직접 생산자들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로 분화되는 걸 알아내며, 노동 인민 주위에 그물을 치고, 생명소를 빨아가는 자본, 특히 상인 자본에 따른 부상을 알게 된다. 급진주의자들이 제시한 농민 경제에 관한 묘사를 농촌에 따른 경제 생활에 대한 정확한 일차 자료와 대비해보면, 그들의 비판적 사고 체계에서는 각 지역 시장에서 떼 지어 모여 있는 장사치들과 행상, 흥정꾼들, 시장을 장악한 채 노동 인민들을 가차 없이 억압하는 소착취자 무리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대개 '더 이상 농민들은 없고, 장사치만 있다.'는 언급 정도만으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다.

 

'그래, 그 말은 아주 옳다.'

 

'더 이상 농민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상인들 모두를 뚜렷하게 구별되는 집단, 곧 정확한 정치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영리 기업에 종사하고, 그 정도가 어떻든 간에 타인 노동을 점취하는 사람들과 취급하려고 시도해보기를 바란다. 해당 집단에서 경제적인 힘과 지역 전체에 따른 경제 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정확히 수치로 표기하려고 노력해보라. 그런 다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노동하기 때문에 더 이상 농민이 아니게 된 사람들을 정반대 집단으로 설정해보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지한 조사를 위한 기초적인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켜나가려 애쓰다 보면, 부르주아적인 분화라는 아주 생생한 그림을 얻게 될 테고, 더 이상 인민 제도라는 신화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될테니 말이다. 소규모 시골 작취자들 무리는 끔찍한 세력을 대표한다. 특히 고립된 채 혼자 일하는 임금 노동자를 억압하고, 자신들에게 얽어매어 일말의 구제받을 희망조차 앗아가기 때문에 끔찍하다. 앞서 묘사된 체계의 특징인 낮은 노동 생산성과 의사 소통 수단에 따른 부재에서 기인한 시골에 따른 야만적인 환경으로 비춰볼 때도, 그들로부터 착취는 노동 강탈일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인간 존엄에 따른 아시아적인 침해에도 해당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실제 시골을 자본주의와 비교해본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한 국가에서 자본주의에 따른 역할을 발전적이라고 여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작고, 흩어진 시장들을 전국적인 수준에서 단일 시장으로 한데 끌어모으고, 선의를 가진 소규모 착취자 무리를 대신해서, 한 줌 커다란 '조국의 대들보들'을 창조해내며, 노동을 사회화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한편, 지역 착취자들로부터 노동 인민에 따른 예속을 박살내고, 대규모 자본에 종속시킨다. 여기서 종속은 노동 억압과 점진적인 소멸, 야만성, 신체를 손상당한 여성과 아이들 등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과거 예속과 비교해볼 때 발전적이다. 그 이유는 노동 계급 의식을 각성시키고, 침묵하거나 일관성 없는 불만을 의식적인 투쟁으로 전환시키며, 뿔뿔이 흩어진 채 벌어지던 사소하고, 무분별한 반란을 모든 노동 인민 해방을 위한 조직화된 계급 투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같은 투쟁은 대규모 자본주의에 따른 존재라는 바로 그러한 조건 자체로부터 동력이 생겨나며, 따라서 의심할 나위 없이 일정한 성공을 확신한다.

 

농민 대중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한 응답으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칼 마르크스에 따른 다음과 같은 말들로부터 전적으로 정당화된다.

 

'비판은 사슬을 장식하고 있던 가공의 꽃들을 뽑아버렸는데, 인간의 상상 속 장식물이 벗겨진 족쇄를 그대로 차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한 사슬을 벗어던져버리고,

살아있는 꽃을 향해 손을 뻗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국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촌을 장식한 가공의 꽃들을 뽑아버리고, 이상화와 환상에 맞서 싸우며, 그걸 파괴하고자 작업을 수행해낸다. 농민 대중을 현재 억압과 점진적인 소멸, 노예화 상태에 머무리지 않도록 하고, 어디서나 노동 인민을 속박하는 사슬 정체가 무엇이며, 사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프롤레타리아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그래서 떨쳐일어나 사슬을 벗어던지고, 현실의 꽃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도록 한다. 인민의 벗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그토록 극도로 혐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처한 위치 덕분에 스스로 계급 의식을 획득하고, 계급 투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노동 인민 대표들에게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와 같은 사상을 펼쳐놓는 순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민들을 공장의 용광로로 밀어넣기를 원한다는 비난에 처한다.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정부와 사회, 곧 도처에서 노동 인민을 속박해온 부르주아 기관들에, 노동 인민의 해방을 향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고도 줏대 없는 인종들은 건방지게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등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인민의 벗들의 정치 강령

 

인민의 벗들의 이론적인 견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니, 인민의 벗들의 정치 강령을 살펴보도록 하자. 무슨 수로 자신들이 불을 끄겠다고 나서는 걸까. 인민의 벗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제안 대신에 어떤 화롤를 제시하고 있을까. 유자코프 선생은 농업부, 러시아 부, 10에서,

 

 

'농민 은행 개편, 식민화 부서 설립, 인민 농업을 위한 국유지 토지 임대차 규제, 토지 임대에 따른 연구와 규제 등이 인민 농업을 회복시키고, 막 생겨나는 금권 정치에 따른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인민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계획'

 

이라고 말한다. 경제 발전에 따른 문제점이란 글에서는 '인민 농업 회복'을 위한 해당 계획들이 뒤이은 '최초로, 그러나 필수적인 조치들'로부터 보완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마을 공동체에 당장 지장을 주는 모든 규제 제거, 보호 감독에 따른 면제, 농업의 사회화에 따른 공동 경작의 채택, 땅에서 얻는 원료 공동체 가공 개발' 같은 조치들이다. 크리벤코 선생과 카리셰프 선생은 여기에다 '저금리 신용, 집단 농장 형태 농업, 보장된 시장, 고용주 이윤을 없앨 가망성', '값싼 엔진 기관을 비롯한 기술 혁신 창안', '박물관, 창고, 대리점'을 덧붙인다. 해당 강령을 검토해보면, 신사 양반들은 현대 사회 입장을 무의식적인 자본주의 체제 입장으로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고치고, 끼워맞춰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지만, 인민의 벗들이 내놓은 모든 발전적인 조치들, 저금리 신용, 기계 개량, 은행 등은 부르주아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라는 점을 알아낼 수 있다. 물론 현재 체계에서는 어떠한 개혁도 쓸모가 없고, 신용, 이민, 세금 개혁, 모든 토지에 따른 농민에게로 이전은 무엇 하나 눈에 띄게 바꾸지도 못하며, 오히려 반대로 과도하 보고 감독과 봉건적이 부과금 존속, 농민 토지 예속 등으로부터 지체된 자본주의 경제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갈 거라던 니콜라이 온 말은 가장 귀중한 이론들 가운데 하나로, 인민의 벗들은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건 지극히 옳았다. 니콜라이 온에게 인민의 벗은, 바실치코프 왕자같이 신용 확대, 발전을 소망하는 경제학자들로 부르주아 같은 자유주의적인 걸 바라면서, 자본주의 관계에 따른 발전과 강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민의 벗들은 농민층 내 생산 관계에 따른 적대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적대를 공개적인 장으로 끌어내려 애쓰거나, 적대로부터 예속화된 사람들 쪽에 합류해서, 투쟁에 나서는 걸 도우려 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만한 조치들로부터 투쟁을 멈추게 하면서부터 화해와 통합을 이루기를 꿈꾼다. 같은 모든 조치들에 다른 결과물은 당연히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는 없다. 모든 종류의 신용, 개량, 은행, 비슷한 '발전적인' 조치들이 오로지 적절히 운영되고, 틀이 잡힌 농장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확실한 저축을 보유한 사람들, 곧 극소수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납득하면서, 앞서 제시된 분화를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농민 은행과 유사 기관들을 아무리 개편하더라도, 그동안 빼앗겨왔고, 또 계속해서 빼앗기는 인민 대중 입장에서는 적절한 농업 수단은 물론이고, 생계를 이을 수단조차 부족하다는,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점을 조금도 바꿔놓지 못한다.

 

집단 농장과 공동 경작도 마찬가지다. 유자코프는 공동 경작을 가리켜, '농업에 따른 사회화'라고 불렀다. 매우 웃기는 말로, 사회화는 단일 마을 경제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생산이 조직되는 걸 요구하고, 생산 수단을 독점해서 현재 국내에서 사회 경제를 주도하는 착취자들에 따른 재산 몰수를 필요로 한다. 시시한 속물적인 훈계가 아닌, 거듭되는 투쟁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런 조치들이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태도로 반쪽짜리 조치들로 변모해서는, 인정 많고 관대한 부르주아에게 근근이 연명해가는 동안에, 피착취자들로부터 투쟁보다는 몇몇 개인들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개량 조치로부터 이득을 얻으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훨씬 더 많은 해악을 끼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신사 양반들은 러시아인 삶에서도 적대를 숨기고자, 얼마나 터무니 없는 시도를 하는지는 물론 현재 투쟁을 끝내려는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그럴 텐데도,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닦는 거나 다름 없다. 그리벤코 주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식층이 공장주들의 기업을 지휘하자, 지식층은 대중 산업을 지휘할 수 있게 됐다.'

 

지식층의 철학 전체는 투쟁과 착취가 존재하지만, 만약 착취자들이 없다면 투쟁과 착취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마찬가지로 징징댄다. 과연 크리벤코는 쓸데없는 문구로 무슨 뜻을 전달하려던 걸까.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 대학과 기타 교육 기관들은 오로지 자신들을 먹여 살려줄 누군가를 찾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지식인'이라는 상표를 찍어내고 있다는 말을 부인할 수 있을까. 오늘날 국내에서 '지식인'을 지탱할 수단을 소유한 건, 오직 소수 부르주아뿐이라는 현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인민의 벗들은 부르주아 계급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까닭에, 국내 부르주아 지식계급이 사라지게 된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 '만약' 부르주아 지식 게급이 아니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만약' 부르주아 지식 계급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국내에도 부르주아 계급도, 자본주의도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은 '만약''그리고'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데 만족한다. 더군다나 신사 양반들은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보태는 걸 거부할 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잘못된 무언가를 들여다보기를 철저하게 거부한다. 일정한 결함들이 제거되면, 인민의 벗들로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아가는 게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아니하다. 그렇다면 크리벤코의 다음 발언은 어떨까.

 

'자본주의 생산과 산업에 따른 자본주의화는 공장제 수공업이 인민들로부터 오로지 결별만 하는 출구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한 인민들의 삶으로 들어와 농업과 원료 산업으로 더 가깝게 접근할 수도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고, 그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

 

크리벤코는 미하일로프스키 선생과 비교해봤을 때는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인 면 같은 수 많은 장점들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주제를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고, 꼼지락대기만 하다가, 부드럽고, 미려한 문장들로 지면을 채운다면, 사업가 개성으로 실용적인 인물인 크리벤코는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신의 터무니없는 견해 일체를 거리낌도 없이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자본주의는 인민의 삶으로 들어올 수 없다.'

 

노동 인민이 생산 수단과 결별하지 않고서도 자본주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음에 드는 상황이다. 적어도 인민의 벗들은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주 명확해졌으니까 말이다.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가 없는 상품 경제, 강탈도, 착취도 없이 인간적인 지주와 자유주의적인 관료들의 팔 아래서 평화롭게 무위도식하는 소부르주아 계급만이 있는 자본주의를 원한다. 국내에 혜택을 줄 의도를 지닌 부서 관료들의 진지한 태도에 힘입은 인민의 벗들은 늑대가 욕심을 감추고 양이 가죽을 감추듯이, 자신들의 속셈을 어떻게 감출지 궁리한다. 그래서 속셈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고자, 우리의 문화 용병들글로 눈을 돌려야 한다.크리벤코는 집단 농장과 국유 형태에 따른 산업은 현 상황에서도 그다지 품어볼 만한 상상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크리벤코에게는 구상은 할 수 있으며, 실질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인상만 느껴진다. 크리벤코는 100루블이 넘지 않는 소액의 지분으로 한 합자 회사로부터 돈 강 지역을 기술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러시아 부사무실을 방문한 어느 기술자의 말을 꺼낸다. 크리벤코는 기술자에게 권유를 받는다.

 

"지분은 사적인 개인들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소유가 됩니다. 회사에 고용된 마을 주민 일부는 통상적인 임금을 받고, 마을 공동체는 토지와 연결 고리를 유지시켜준다는 보장을 해줍니다."

 

정말로 경영의 귀재가 아닌가.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가 존경스럽도록 단순하고, 쉽게 도입되고, 파멸적인 특성들이 모두 제거되는 셈이니 말이다. 단지 요구되는 거라곤, 시골 부자들이 공동체로부터 지분을 사들이고, 기업으로부터 배당금을 받는 게 전부이며, 그 속에서 공동체 주민 일부는 일자리를 얻고, 토지와 유대 관계를 보장받는다. 그런 유대 관계는 토지로부터 생계를 유지받기에는 불충분하지만, 주민들을 지역에 묶어둔 채, 지역 자본주의 기업에 따른 노예로 만들고, 주민들을 주인도 바꾸지 못하기에는 충분하다. 여기서 주인이란, 곧 자본가를 말하며,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사람을 달리 부를 방도가 없기 때문에, 아주 타당한 표기이다. 독자들은 일고의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없는 헛소리에 이미 많은 지면을 할애한 본인에게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헛소리라고 하더라도, 연구할 가치와 필요는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적·경제적 관계들을 나타내고 있고, 따라서 한 국가에서도 아주 널리 퍼져 있는 사회 통념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앞으로 오랫동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국내에서 봉건적인 생산 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 생산 양식으로 전환이 토지로부터 생계를 꾸려나가지도 못하고, 지주에게 소작료를 지불할 수 없게 된 바로 이 순간까지도 농민은 소작료를 지불하고 있으며, 농민으로 하여금 예전에 좋았던 시절에는 독립적인 형태를 띠었거나, 수레꾼 같은 독립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런 유형에 따른 고용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덕분에 상대적으로는 좋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노동이라 여겨졌던 외부 고용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고, 또 계속해서 초래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농민들은 오늘날과 비교해볼 때도, 일정 정도 안녕을 보장받았었다. 십만 명에 달하는 귀족 경찰들과 국내 토지를 끌어모으던 초창기 부르주아들의 보호 아래에서 평온하고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농노로서 안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은 그러한 체계의 그늘을 간단히 무시한 채로, 이상화하고, 환상을 품는다. 여기서 환상이라고 표현한 건, 그 체계가 오래전에 작동을 멈춰버렸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에 따른 대규모 재산 강탈을 불러온, 과거 고용을 족쇄에서 풀려난 일손들에 대한 착취로 변화시킨 자본주의로부터 이미 오래전에 파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소부르주아 기사들은 농민과 토지와 연결 고리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소부르주아 기사들은 그러한 연결 고리를 단독으로 보장해주는 농노제를 원하지는 않는다. 농노제는 그 연결 고리를 걸 수 없도록 만드는 상품 생산과 자본주의로부터 이미 붕괴됐다. 소부르주아 기사들은 농민을 토지로부터 멀리 내쫓지 않은 외부 고용, 노동이 시장을 위해 이뤄지는 반면에, 경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자본을 창출하지 않으며 인민 대중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 외부 고용을 바란다. 사회학에서 주관적인 방법론에나 들어맞을 법한 같은 주장에 대해, 소부르주아 기사들은 여기저기서 좋은 것만 취하고 싶어한다. 물론 실제로는 유치한 바람은 오직 현실을 무시하는 반동적인 환상, 새로운 체계로부터 정말로 발전적이고, 혁명적인 측면들을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 절반은 농노, 절반은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과거 훌륭한 체계, 곧 착취와 억압에 따른 공포로 가득차고 벗어날 수 없는 체계를 영속화하려는 조치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질 뿐이다. 반동들 사이에서 인민의 벗들을 구분해주는 같은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증명하고자, 두 가지를 인용해보자.

 

모스크바 젬스트보 통계에서 포돌스크 군에 사는 K 여사라는 사람의 농장에 대한 묘사를 읽을 수 있다. 묘사 자체가 아니라 농장이 모스크바 통계학자들과, V.V. 보론초프 선생 모두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V. 오를로프 선생은 유명한 K 여사 농장에 대해 '농업이 건강한 상태에 있고, 개인 토지 소유주들에 따른 농장들도 더 잘 운영되고 있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논지에서 확실한 실제 확인 사례로 여겨졌다. 여인의 농장에 대한 오를로프 주장에 비춰볼 때, 그녀는 겨울에 밀가루를 꿔주는 대가로,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지역 농민들의 노동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인은 농민들에게 특히나 친절하게 굴며, 도움을 줬고, 그래서 농민들은 읍에서 가장 잘사는 축에 속할 뿐 아니라, 거의 새로운 추수철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곡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의문은 바로 해당 대목에서 고개를 든다. N. 카블루코프와 오를로프가 생각하듯이, 그런 방식이 농민과 지주 간 적대적인 이해 관계를 할 수 없도록 만들까.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K 여사는 농민들의 노동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취는 전혀 사라지지도 않았다. K 여사는 착취받는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친절함 뒤에 감춰진 착취를 보지 못한 데 대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오를로프는 그렇지 않았다. 오를로프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보이는 친절함에 황홀해 하면서 공장 소유주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잡화점과 주거 등을 제공해주는 사례들을 열광적으로 들려주는 서구 박애주의자들과 정확히 같은 입장을 취한다. 적대적인 이해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사실들의 존재로부터, 결론을 끌어온다는 건,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 바로 첫 핵심이다.

 

둘째 핵심은 오를로프 선생의 설명으로부터 K 여사의 농민들이 뛰어난 수확량 덕분에 가축을 확보했고, 유복한 농장을 소유하게 됐다는 점을 알게 됐다. 유복한 농민들은 '거의'가 아니라, '완전히' 번창하게 됐고, '다수'가 아닌 '유복한 농민들' 모두가 새로운 추수가 거의 되돌아올 때까지가 아니라, 정확히 그 시기까지 충분한 곡식을 보유하게 됐다고 추정해보자. 농민들은 충분한 토지와 '목장 및 목초지'를 소유하고 있다고도 추정해보자.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농민들은 K 여사에게 토지를 임차한 뒤, 노동으로 그 대가를 지급한다. 그럴 경우에, 곧 농민 농업이 정말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경우, 오를로프는 정말로 농민들이 스스로 동의해서, 지금 하고 있듯이 K 여사의 사유지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철저히, 정확히, 그리고 신속히 수행할 거라고 믿는 걸까. 또는 어쩌면 어머니 같은 보살핌으로, 농민들에게서 피땀을 뽑아내는 친절한 여인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결국 목초지와 목장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절망적인 현재 상태보다 더 강력한 도기 부여가 된다고 믿는 걸까.

 

분명 인민의 벗들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진정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로 착취를 없애기보다는 완화시키기를 바라고, 결속보다는 회유를 원한다. 편협한 사회민주주의들을 맹렬하게 비판하는 관점에서부터 시작된 인민의 벗들의 드넓은 이상에는 지주와 자본가들이 공정하게 대해주기만 한다면, '번영을 구가하는' 농민들이 지주와 자본가들에게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거라는 생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하나 더 들어보자. 유자코프는러시아 인민의 토지 소유 할당량이라는 자신의 유명한 글에서, 인민들의 토지 소유, 곧 자유주의자들의 용어로는, 자본주의와 착취를 배제하는 토지 소유에 따른 규모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상세하게 설명했었다. 크리벤코에 따른 탁월한 설명이 있는 뒤, 역시나 자본주의를 인민의 삶에 도입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지주의 신분으로, 크리벤코는 분여지로부터 '식량과 지불금'을 충당하는 반면에, 나머지 일자리로부터 얻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달리 말해, 크리벤코는 농민이 토지와의 연관성을 유지하면서부터, 한쪽으로는 분여지에서 지주로부터, 다른 쪽으로는 일자리에서 자본가로부터 중복된 착취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단지 운명이라고 체념해버리고 만다. 중복된 착취에 시달리는 소생산자들에 따른 같은 상태와 생활 조건은 더군다나 필연적으로 주눅 들고 짓밟힌 심리를 생기도록 만들어, 피억압 계급에 따른 승리는 고사하고, 투쟁에 대한 모든 희망을 앗아가버렸다. 절반만 중세적인 상황은 인민의 벗들의 전망과 이상의 극치이다. 그래서 국내 개혁 이후로,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한 자본주의가 옛날 국내를 떠받치던 기두으로, 가부장적인 절반 농노 상태에 따른 농민층을 뿌리째 뽑아, 절반 농노 상태에 농민층들을 중세와 절반은 봉건적인 상황에서 끌어내고, 현대 순수한 자본주의적인 환경에 가져다놓고는 농민층으로 하여금 자신의 오랜 고향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국내 곳곳을 헤매다 노예 사슬을 끊고, 지역 일자리 제공자에게로 갈 수 밖에 없게 만들면서, 전체적인 계급 착취에 따른 토대가 독사 같이 특정 인물의 약탈과는 거리가 먼 계급 착취라는 점을 드러내고, 자본주의가 가축 수준으로 주눅들고, 굴복한 나머지 농민 인구를 한꺼번에 점점 더 복잡한 사회적·정치적인 삶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이자, 소부르주아 기사님들은 옛 기둥들의 몰락과 파괴에 대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사들은 지금은 눈이 멀어, 새로운 삶에 대한 양식에서 혁명적인 측면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전 착취 체제에 전혀 묶여 있지도 않으면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위치에 있는 새로운 사회 세력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창출해내는지를 전혀 보지 못함에도, 예전의 좋았던 시절에 대해 울부짖는 모습을 여전히 계속해서 보여주고 만다.

 

하지만 인민의 벗들은 현 체제에서도 어떠한 급진적인 변화도 바라는 기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인민의 벗들은 현존하는 토대에서부터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에 전적으로 만족했으며, 실제로 크리벤코는 그런 조치들을 고안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토착 하급 관리 같은 행정 능력들을 과시했다. 크리벤코는,

 

'대체로 인민 사업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와 급진적인 변화의 필요성과, 문제는 특별한 조사와 산업을 인민의 삶에 적용할 수 있거나, 적용 과정에서 심각한 장애물에 부딪칠 수 있다는 걸, 나누는 게 요구된다.'

 

크리벤코는 많은 산업들을 자본주의화되지 않거나, 이미 자본주의화가 발생하고, 대규모 산업과 생존을 놓고 경쟁할 수 있도록 나누면서, 그런 분할에 따른 사례를 직접 제시한다. 또한 이 행정가는 결론을 내린다.

 

'첫째 경우에 소생산은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변동으로 인해, 소생산자들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는 시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역 시장에 따른 팽창과 보다 더 큰 시장으로 합병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술 발전으로부터도 그럴 수 있을까. 또는 기술 발전에 따라 상품 생산에서 자본주의적일 필요는 없는 걸까. 마지막으로, 크리벤코는 대규모 생산 조직도 요구한다. 명백히 여기서 필요한 건, 대규모 생산 조직이고,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기계 등이나 또는 같은 조건과 균형을 맞출 다른 무언가, 곧 값싼 신용, 불필요한 중간 상인들의 제거, 집단 농장 형태에 따른 농업과 고용주들의 이윤을 처분할 여지, 시장 확보, 값싼 엔진 기관 개발, 그 외 기술적인 개선, 또는 다른 혜택들로부터 보상받는다는 전제 아래에서 임금에 따른 일부 삭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종류의 논리는 말로는 드넓은 이상을 말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틀에 박힌 자유주의를 드러내는 인민의 벗들에게는 아주 특징적이다. 앞서 철학자는 고용주들에 따른 이윤을 처분할 여지와 대규모 농업에 따른 조직화를 다름 아닌 출발점으로 삼는다. 아주 훌륭하다. 바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바라기도 하니까.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어떻게 달성하기를 원하는가. 고용주 없이 대규모 생산을 조직하고자, 우선 사회적인 경제에 따른 상품 구조를 철폐하고, 공동체, 공산주의 구조로 대체하는 게 필요하다. 그 아래에서는 현재와 같이 생산이 시장으로부터 규율되는 게 아니라, 생산자 자신, 노동자 조직 자체로부터 규율되고, 생산 수단은 사적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로부터 소유된다. 사적 전유로부터, 공동체적인 전유로 변화는 명백히 우선 생산 형태에 따른 변화를 필요로 하고, 소생산자들과 분리되어 있고, 규모가 작으며, 고립된 생산 과정이 단일한 사회적 생산 과정으로 합쳐지는 게 필요로 해진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가 창출해낸 바로 그 물질적인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스스로 자본주의를 토대로 삼을 의향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인민의 벗들은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가. 인민의 벗들은 침묵한다. 인민의 벗들은 상품 경제에 따른 철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분명히 인민의 벗들의 드넓은 이상은 사회적 생산 체계에 따른 경계를 절대 넘어설 수도 없다. 더구나 고용주에 따른 이윤을 철페하고자,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윤을 획득하는 고용주들에게 이윤을 빼앗아 오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조국을 떠받치는 기둥들을 빼앗아 오고자, 부르주아 체제에 맞선 대중적인 혁명 운동이 필요하다. 해당 체제와는 전혀 유대 관계가 없는 프롤레타리아 노동 계급만이 할 수 있는 운동 말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머릿 속에 투쟁을 전혀 그리고 있지도 않고, 고용주들 스스로 관리 기관들 말고도 다른 유형에서 공적인 인물들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분명 인민의 벗들은 고용주 이윤에 맞선 어떠한 진지한 조치들을 취할 의향을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다. 크리벤코는 단지 자신의 혀가 자신을 압도하는 걸 허락했을 뿐이다. 그리고서 크리벤코는 곧장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다.

 

'고용주 이윤을 처분할 여지' 같은 다른 무언가, 곧 신용과 조직된 홍보, 기술적인 개선으로부터 균형이 맞춰질 수 있다는 거다. 따라서 모든 건 아주 만족스럽게 정리된다. 이윤을 얻을 신성한 권리를 철폐하는 대신에, 다시 말해 고용주 양반들을 아주 화나게 할 절차 대신에, 자본주의에 싸움을 위한 더 나은 무기를 제공하고, 인민의 소부르주아들을 강화하고, 굳건히 하며, 발전시킬 뿐인 아주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은 소부르주아만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심을 전혀 남기지 않고자, 크리벤코는 인상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고용주 이윤 철폐는 임금의 삭감으로부터 균형이 맞춰질 수 있다.'

 

얼핏 듣기에는 완전히 횡설수설처럼 드린다. 그러나 아니다. 소부르주아 사상을 일관되게 적용한 표현이다. 크리벤코는 거대 자본과 소자본 사이에서 투쟁 같은 사실을 관찰하며, 진정한 인민의 벗으로 당연히 소자본가 쪽에 선다. 더 나아가, 크리벤코는 소자본가에 따른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임금 삭감이라는 점을 들은 바 있었다. 노동일 연장과 함께, 국내 수 많은 산업들에서 아주 정확하게 보여지고, 확인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소자본가들을 구하기를 바랐던 크리벤코는 다른 혜택들로부터 보상받는다는 전제 아래에서 임금 일부 삭감을 제안한다. 고용주 양반들은 자신들의 이윤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말이 들려온다. 고용주 양반들은 고용주들에 맞서 임금 삭감 투쟁을 계획하는 훌륭한 행정가를 기꺼이 재무 장관 자리에 앉히려 든다. 순수한 혈통에 따른 부르주아들이 실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하는 바로 그 순간에,러시아 부의 자비롭고, 자유주의적인 행정가들을 슬쩍 쳐다보는 사례 말고도, 더 있다. 러시아 부, 12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라는 독점 문제를 다룬 글이다. 글에서 크리벤코는 독점과 '신디케이트' 같은 발전된 산업 이상'이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해당 제도들이 자본가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국내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에 대해 놀랍다고 표현했다.

 

'설탕이나, 석유 산업은 아직까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설탕과 등유 소비는 여전히 사실상 태동기에 머무르고 있고,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해당 상품들에 따른 일인 당 소비는 미미하다고 판단된다. 해당 산업 분야들은 발전할 여지가 여전히 아주 크고, 상당한 액수에서 자본을 흡수한다고 보인다.'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크리벤코는 국내 시장 위축에 대해러시아 부가 가장 선호하는 발상이 뭐였는지를 잊어버렸다는 점은 특징적이다. 크리벤코는 국내 시장이 여전히 상당한 발전 전망을 갖고 있고, 위축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크리벤코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소비 규모가 더 큰 서구와 비교했다. 이유는 뭘까. 서구 문화 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서로 간 더욱 빈번한 교류로도 이끌고, 개별적인 지역들이 중세식으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무너뜨린 자본주의 기술 발전, 상품 경제와 교환 발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다면 해당 문화에 따른 물질적인 토대는 무엇일까. 절반인 중세적인 농민층에서는 아직 여전히 농촌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쪼개져 있지 않았던 대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프랑스 문화는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크리벤코는 국내 생활상을 좀 더 면밀하게 검토했더라면, 크리벤코는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역에서 농민 인구가 필요로 하는 수준들이 순수한 농업 지역보다 훨씬 더 높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민들의 삶 전체에서 산업으로 영향을 끼칠 정도까지 발전한 국내 수공업을 연구했던 사람들 모두가 한결같이 거론하는 부분이다. 인민의 벗들은 그런 '하찮은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인민의 벗들에게 있어 해명이란 단지 문화나 전반적인 삶이 점점 복잡해진다든지 하는 일뿐이며, 해당 문화와 복잡한 물질적 토대에 대해서는 연구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이 적어도 농촌 경제 상태를 검토라도 해봤더라면, 국내 시장을 창출하는 게 바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농민층 분화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인민의 벗들에게는 시장 발달이 결코 부르주아 계급 발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틀림없이 생각했다. 앞서국내 문제 연대기라는 글에서도, 계속해서 전반적으로 생산 발전 수준이 낮고, 진취성과 자발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독점은 국강 경쟁력 발전을 훨씬 더 지연시킨다고 주장했다. 이에 담배 독점을 거론하면서, 인민 유통 가운데 15,400만 루블을 앗아간다고 추산했다. 경제 체제에 따른 토대가 상품 경제이고, 선도하는 세력은 다른 모든 곳에서도 그렇듯이,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점을 완전히 망각해버렸다. 크리벤코는 글에서도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 방해를 받고 있다는 말하는 대신에, '국가'를 거론하고, 상품과 부르주아 유통을 말하는 대신에, '인민' 유통을 들먹인다. 부르주아라면, 두 용어 사이에서 큰 차이를 결코 알아차릴 수 없다. 그 차이란 정말로 얼마나 극명한지를 보여주고자, 인민의 벗들의 시각에서 권위 있는 잡지인,조국 연보에 실린,금권 정치와 그 토대라는 글의 일부를 살펴보도록 하자.

 

'마를로에 따르면, 금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유주의적인 정부 형태에 대한 사랑, 아니면 취득의 자유라는 원칙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런 특징을 받아들여서, 8년 또는 10년 전 입장이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 측면에 있어서 엄청난 발걸음을 내디뎌왔다는 점을 발견한다. 어떤 신문이나, 잡지를 봐도, 그들 모두 일정 정도 민주주의 원칙을 대표한다고 느껴지고, 인민의 이익을 위해 전력투구를 한다. 하지만 이런 민주주의적인 견해들과 나란히, 심지어 '의존해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간에, 누누이 금권 정치적인 야망들이 추구된다.'

 

여기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상인들이 재무 장관에게 했던 인사말을 인용하면서, 상인들은 금융에 관한 국내 입장을 사기업에 따른 아주 폭넓은 확대 여지에다 바탕을 두면서부터 좋은 결실을

맺게 된 데 대해 국내 부르주아 계급에게 가장 신망 있는 조직이 보내는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 내린다.

 

'금권주의 요소들과 성향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

 

위대한 해방을 위한 개혁의 감동들이 여전히 생생하고, 머나먼 과거에서 여러분 선조들은 자신의 금권 정치, 곧 국내 사기업에 따른 부르주아적인 성격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사실을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진취성과 자발성'의 발달헤 힘입은 인민 유통과 국가 경쟁력 발전을 말하면서도, 왜 그러한 발전에 따른 적대적인 성격, 진취성과 자발성에 따른 착취적인 성격은 언급하지 않았는가. 물론 독점이나 그와 비슷한 제도들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의심할 나위 없이 노동 인민에 대한 상태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 인민은 모든 중세적인 속박 위에서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현대 부르주아적인 속박으로부터 족쇄가 채워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점에 따른 폐지가 전체 인민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경제가 국가의 경제적인 삶의 토대가 된 상황에서 중세적인 제도에 따른 생존은 자본주의에 따른 비참한 현실에다 훨씬 더 가혹한 중세적인 고통을 더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히 폐지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도, 더 빠르고, 더 급진적일수록 좋다는 건 분명하다. 부르주아 사회가 물려받은 절반은 봉건적인 속박들을 제거하면서부터 노동 계급의 손발을 풀어주고, 부르주아 계급에게 대항하는 노동 계급 투쟁을 촉진하고자 말이다. 사실을 숨김 없이 말하려면, 바로 이런 말을 꺼냈어야만 했다. 부르주아 체제에 맞서는 노동 계급 투쟁을 촉진하고자 독점과 그 밖에 모든 종류로 중세적인 제약들을 폐지하는 건, 절대적으로 필수적라고 말이다. 딱 거기까지다. 부르주아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중세와 봉건 제도에 맞서 전체 인민들에 따른 이해 관계가 서로 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품을 수 없었고, 인민들 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깊고 화해할 수 없는 적대를 망각할 수 없었다.

 

인민의 벗들이 곤혹스러워 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인민의 벗들은 농촌 요구에 대해 말을 끄집어냈는데, 특히 크리벤코는,

 

'몇 년 전 몇몇 신문들이 시골에서 필요로 하는 직업들과 지식인들 유형을 논하는 과정에서 목록이 아주 길고 다양하며, 남녀 의사들과, 보조 의사들, 변호사, 교사, 도서관 사서, 서점 주인, 농경 경제학자,

삼림 전문가, 농업 전문가, 아주 다양한 분야 기술자들, 신용 기관 모집인과 관리자, 창고지기 등 거의 모든 직업군을 포괄한다는 게 증명됐다.'

 

여기서 말을 멈추고, 활동이 경제 영역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지식인들과 삼림 및 농업 전문가, 기술자 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농촌에서는 그들을 어떤 식으로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농촌이란 과연 어떤 농촌을 말하는가. 저축한 돈이 있어서, 크리벤코는 기꺼이 지식인들이라 부르는 전문가들 모두에게 각자 기여한 대가를 지부할 수 있는 지주들과 기업형 농민들에게 농촌을 말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농촌이란 실제로는 오랫동안 전문가들과 신용, 창고에 목말랐고, 한 국가에서 모든 경제 문헌에서도 그걸 증언해준다. 그러나 훨씬 더 방대한 또 다른 농촌이 존재하고, 그런 사실을 좀 더 자주 떠올려보는 인민의 벗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도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농촌이란, 몰락하고, 갈취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농민들의 농촌이다. 저축한 돈이라고는 전혀 없어 지식인들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할 수 없을 뿐더러, 굶어죽지 않을 만큼 빵조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이 창고를 지어서, 돕고자 하는 농촌은 바로 그런 곳이다. 말도 없고, 있어도 고작 한 마리뿐인 농민들이 거기에다 뭘 보관한다는 말인가. 과거 1891년에, 당신들에게는 빈농들이 인간미 넘치고, 자유주의적인 처방을 완수할 무렵, 집이나 여관, 가게에다 일상적인 창고를 설치했던 시골과 도시 부농들에게 말을 몽땅 저당 잡힌 사람들이다. 이제 빈농들에게 남은 건 자신의 노동력뿐이다. 그러나 같은 종류의 상품을 보관할 창고는 아직까지 국내 관료들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기서 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진부한지에 대해서는, 농민층 내 기술적인 발전에 대한 감상적인 사고와 바로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착취에 눈을 감는 행위보다 더 두드러진 증거를 찾아보기란 어렵다.러시아 부, 2에서 백치 자유주의자 열정을 지닌 카리셰프는 '아메리카' 귀리, 호밀, 말먹이 귀리 등 개량종 씨앗이 농장에서 확산된, 농민 농업에서 완벽하고, 개선을 이룬 사례들로 말한다. 이어서 일부 지역에서 농민들은 종자를 키울 특수한 땅을 별도로 떼어놓고, 조심스럽게 간 뒤, 거기에다 미리 선별한 곡물 표본들을 손으로 심는다. 그리고 경운기, 가벼운 쟁기, 탈곡기, 키질 기계, 종자 분류기 같은 개량 농기구와 기계 영역에서 많고 다양한 혁신들이 관찰된다. 카리셰프는 인산 비료, 아교 반죽, 비둘기 배설물 같은 '아주 다양한 종류의 비료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카리셰프는 지방 주재원들이 인산 비료 판매를 위해 마을에 젬스트보 상점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V.V. 보론초프의농민 농업에서 발전적 경향에서 자료를 인용한, 카리셰프 글은 모든 감동적인 발전에 감화받은 나머지, 거의 열정 수준으로 치닫고 말았다.

 

'간략하게만 제시할 수 있었던 이런 보고서들은 용기를 주는 동시에 애처롭다고 느껴진다. 용기를 준다는 건, 사람들이 비록 가난하고, 빚에 시달리며, 상당 수는 말 한 마리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고, 절망에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직업을 바꾸지 않은 채 여전히 땅에 대한 진정성을 잃지 않고, 적절히 일구는 일에 자신들의 미래와 힘과 부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경작과 씨 뿌리기, 농기구, 비료 등에 있어 새로운 방식들을 연구하며, 자신들을 먹여 살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조만간 백 배 보상을 안겨줄, 모든 방안을 찾아나서고 있다. 그리고 애처롭다는 건, 각성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문학, 박물관, 창고, 위원회 같은 기구들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들이 농업을 개선하고자, 분투하는 농민에게 과연 어떤 도움을 주는가. 그 농민이 마음대로 할용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물론 아주 초보적인 형태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 발달은 몹시 느리다. 농민은 모범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가 실험용으로 조성한 밭과 모범 농장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농민은 활자로 된 지식을 갈구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우리 농경 문헌들은 또 어디에 있는가. 농민은 비료와 농기구, 종자를 얻으려고 애쓰지만, 도매로 구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할 우리 젬스트보 상점들은 어디에 있는가. 실무진들과 개인, 젬스트보, 당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서서 일을 하라, 오랫동안 무르익어왔던 그 시기가 다가왔다.'

 

인민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가,

당신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질지니.

 

이렇듯, 인민의 소부르주아 계급 벗들은 소부르주아 식 진보 잔치를 즐기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농촌 경제에 대한 분석과 완전히 동떨어진, 오늘날 경제학 역사에서 이토록 놀라운 사실,

곧 농민층의 엄청난 강탈과 농민 농업에서 전반적인 진보가 나란히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을 목격하는 동시에, 농민층을 조화롭고, 동질적인 하나의 전체로 묘사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든 발전에 따른 부르주아적인 성격을 납득하게 된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여전히 모든 귀를 닫고 있다. 옛 국내에서도 사회 혁명적인 인민주의에 따른 훌륭한 장점들을 잃어버린 인민의 벗들은 인민주의의 커다란 실수 가운데 하나로, 곧 농민층 내 계급 적대를 이해하지 못한 실수를 절대 바로잡지 않고 있다. 호르비치는 1870년대, 인민주의자인 농민주의자들은 농민층 내 자연스레 존재하는 계급 적대를 몰랐기에, 착취자, 쿨라크 또는 기생자와 그 희생자인 공산주의 정신에 물든 농민 적대로만 국한해서 파악했다고 적절하게 말했다. 글레브 우스펜스키만이 회의주의적인 입장에서 역설적인 미소로, 보편적인 환상을 거부했다. 농민층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현상 본질 그 자체를 꿰뚫는 비범한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우스펜스키는판박이라는 글에서, 개인주의가 고리대금업자와 채무자 사이뿐만이 아니라, 대체로 농민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인 관계에서 기초가 됐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농촌 경제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자료가 아주 부족했고, 농민층 분화가 아직 그렇게까지 뚜렷하지 않았던, 1860년대와 1870년대에 그러한 환상에 굴복한 건 용서할 수 있고,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분화를 모른 체하려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야만 한다. 농민층 몰락이 정점에 달했고, 사방에서는 농민 농업에서 발전적인 경향에 대한 수 많은 말이 들려오는 최근에도 특히 더 그렇다. V.V. 보론초프도 전적으로 그 주제만을 다루는 책 한 권을 썼었는데, 사실 관계에 따른 부정확성에 관해서는 그다지 비난거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적인 측면, 농경법적인 측면에서, 농민층 발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강탈이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은 농민이 스스로 먹여 살려줄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새로운 경작법을 간절하게, 찾아 헤맸다는 사실에 자신들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동전의 이면으로, 곧 바로 그 농민이 땅으로부터 심하게 분리됐다는 점은 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농민으로부터 분리된 토지가 자본으로 전환되고, 국내 시장이 창출되는 과정 같은 눈 앞의 사실들을 보지 않으려고, 타조처럼 모래에다 머리를 묻는다.

 

한 국가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서 실재하는 양 갈래에서 정반대 과정들을 부정하고, 우리 사회에서 부르주아적인 성격 말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해보려고 애쓰더라도, 분명 쉽지는 않다.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인도주의적이고, 자비로운 문구들을 연호하는 건, 그들의 과학이자, 그들의 정치 활동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게다가 현질서에서 가장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땜질식 처방을 정규 철학으로까지 끌어올린다. 크리벤코는 심오한 어조를 띤 채로 이렇게 말한다.

 

'사소하지만 진심 어린 활동을 한다는 건, 크게 일을 벌여놓고, 행동하지 않기보다는 훨씬 낫다.'

 

얼마나 참신하고, 영리한가. 더 나아가 크리벤코는 사소한 활동이라는 게, 결코 목적이 사소하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라고 말을 잇는다. 그리고 사소한 활동이, 적절하고, 훌륭한 결과로 이어진 활동의 확장에 따른 사례로, 어느 부인이 학교를 세운 일, 농민들 사이에서 협잡꾼들을 몰아내는가 하면, 피고에 자문을 해주고자 지방 순회 법원에 동행하기로 한 변호사 일화에서도, 앞서 젬스트보 노력과 결합되어 가장 번화한 중심징에서, 수공업자들의 창고를 설립한 경우들을 든다. 물론 모두 아주 숭고하고, 인간적이며, 자유주의적이다. 여기서 자유주의적이란, 부르주아 경제 체제를 모든 중세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하고, 따라서 노동자가 그런 조치들로부터 손상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된 체제 자체와 맞서 싸우기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국내 자유주의 출판물들로부터, 모든 주장들을 접해왔다. 러시아 부신사 양반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았더라면, 반대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선 자유주의의 온건한 출발을 알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선조들의 이상을 비난했따면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나무랐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그런 온건하고, 세심한 자유주의적이고, 곧 부르주아에게 봉사하는 활동을 먼저 제안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반대하는 목소리에 기꺼이 호응했다. 선조들과 그들의 이상에 관한 말이 나왔으니, 자유주의적인 인민주의자들의 이론은 그릇되며, 유토피아적인 낙원이었지만, 어쨌든 옛 국내 인민주의자들은 그러한 자유주의에서 온건한 출발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하도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인지라, 인민의 벗들은 그런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릴 수 있었다. 인민의 벗들은 정치 제도에 대한 유물론적인 비판은 사라지고, 현대 국가에 있어 계급적인 성격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 유일하게 남은 수순은 정치적인 급진주의에서 기회주의로 옮겨갈 뿐이라는 점을 자신들의 전술로부터 분명히 입증했다. 여기에 그런 기회주의 몇 가지가 있다.

 

유자코프는 러시아 부, 10에서, 국유재산부를 농업부로 전환하는 조치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관리들의 자리를 바꾸는 데 불과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결국 모든 건 요청 받는 존재가 누구인가에 달려 있다. 인민의 벗들이냐, 아니면 지주와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이냐가 문제지, 이해 관계 그 자체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 같은 글에서,유자코프는 게속해서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건, 국가 개입에서 첫 본연의 임무라고 말한다. 러시아 부, 12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또한 같은 표현을 사용해서, 유자코프 주장을 지원했다. 유자코프는 박애주의적인 헛소리에 대한 설명이 유자코프의 훌륭한 동료들인 서구 유럽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과 똑같다는 점에서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고자, 덧붙인다.

 

'영국 글랜드스톤 토지 법안들, 독일 비스마르크 노동자 보험과 공장 감독, 러시아 농민 은행 발상과 이주 조직화와 쿨라크 이익에 반하는 조치들, 모두는 동일하게 경제적인 약자를 보호하고자, 국가 개입이라는 원칙을 적용한 시도들이다.'

 

그래도 솔직한 말이라는 미덕은 지녔다.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는 글래드스톤과 비스마르크와 같이 자신도 현재 사회적 관계를 고수하기를 원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부르주아 사회를 수습하고, 봉합하기를 바랄 뿐, 맞서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밝힌다. 그들의 근본적인 이론적인 신념은 현재 사회에 기초해서, 지배 계급 이익을 보호해주는 기구, 곧 국가를 개혁 도구로 여긴다는 점과 완변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모든 계급에 우선하는 전지전능한 국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국가가 노동 계급을 지원해줄 뿐만 아니라, 크리벤코도 말했듯이, 현실적이고, 적합한 제도를 만들어낼 거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골수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에게 기대할 건 무엇도 없다. 생산 조건 자체로부터 해체되고, 고립됐으며, 한정된 공간과 착취자에게 묶여 잇는 소생산자들은 간혹 프롤레타리아만큼이나 고통을 겪는 자신들의 착취와 억압에 따른 계급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이 바로, 소부르주아 계급의 근본적이고,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인, 반동적인 계급으로 만드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국가 역시도 계급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위대한 인민의 벗들이여, 그렇다면 왜 정부가 지금까지도 해방적인 개혁 이래로 특히 정력적으로,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만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또 창출했겠는가. 한 국가 안 살림살이가, 상품 경제와 상업, 공업 발전으로 특징짓는 역사적인 시기에, 절대적이고 이른바 초계급적인 정부가 그런 볼성사나운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국가 안 살림살이에서 그러한 변화들이 워낙 사회 깊숙하게 정착되어, 정부는 그걸 인식조차 하지도 못하고, 중간에 무수한 장애물을 가져다 놓았다는 점, 바로 절대적인 정부가 내부적인 삶의 다른 조건에서는 또 다른 계급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해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그러한 변화들을 정부 정책이 불러온 효과라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민의 벗들은 그런 질문들에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다. 보다시피 모든 건, 유물론, 변증법, 헤겔주의, 신비주의, 형이상학이다. 인민의 벗들은 정부에게 친절해지라고, 겸손해지라고 간청만하면, 모든 게 정상적으로 바로잡힐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뿐이다. 겸손하다는 말이 나왔으니, 러시아 부를 인정해주어야 마땅하다. 실로 이 매체는 독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내 자유주의 언론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고 하겠다.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보시라.

 

유자코프는 염세와 인두세 폐지, 토지 상환금에 따른 감축은 인민 농업에 상당한 위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염시를 폐지하는 대신에, 수 많은 간접세들을 새롭게 부과하고, 기존 세금들을 인상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인두세 폐지와 함께 예전 국유지 농민들을 회복시켜준다는 명분으로, 지급하는 대금을 인상시킨 건 어쩔텐가. 익히 알려진 상환금, 정부는 환수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농민들에게 되돌려주지도 않았고, 감축이 이뤄진 뒤에 지불 대금과 토지로부터 얻는 수입 사이에서 불균형, 곧 봉건적인 면역 지대가 직접적으로 부활한 건 지금도 유효하지 않는가.

 

"그래도 괜찮아. 중요한 건, 첫걸음과 원칙이니까. 나머지는 나중에 간청하기만 하면 될 거야."

 

하지만 꽃에 불과할 뿐, 이제 과실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1880년대는 인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인민들이 철저히 몰락하지 않도록 구해줬다.'

 

부끄러울 줄 모르는 노예 근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고전적인 문구로, 앞서 여전히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미하일로프스키 주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국내 자유주의에 따른 진화에 대한 시체드린의 예리한 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도 없다. 자유주의자인 시체드린은 정부 당국에게 가급적 개혁을 해달라고, 간청하도록 시작해서, 다음에는 적어도 뭐라도 달라고 구걸만 하다가,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아무거나 달라고 애원하는 지겹도록,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면서 마무리한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은 지겹도록, 흔들리지 않는 입장을 받아들였다는 점 말고는 달리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시에는 기근이 수백만 명 인민들을 막 덮쳤던 시기로, 정부 태도가 장사꾼 인색으로 시작해서, 소심하게 옮겨간 걸 알고도, 인민의 벗들은 정부가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줬다는 주장을 버젓이 활자로 옮겨 담을 수 있었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농민층에 대한 강탈이 훨씬 더 가속화되고, 정부는 농업부를 창설한 데 이어, 한 두 가지 직접세를 폐지하는 대신에, 간접세 대 여섯 가지를 새롭게 부과하며, 그러면 기근은 4천 만 인민에게 영향을 끼칠 테고, 신사 양반들은 똑같이 낡은 방식으로 글을 써댄다. 굶주린 인구가 5천 만 명이 아니라, 4천 만 명에 불과한데, 정부가 인민 부담을 덜어주고,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준 덕분이라고, 정부가 인민의 벗들의 말을 경청하고, 농업부를 창설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밖에도,

 

러시아 부, 2에서 러시아가 '다행히도' 후진국이며, 자신의 경제 제도를 연대 원칙에 기초할 수 있게끔 해준 요소들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한,국내 문제 연대기필자는, 따라서 국내에서 국제 문제 있어서 경제적인 결속 주창자로 행동할 수 있고, 국내에서도 주어진 이런 기회는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인 힘으로부터 강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반동적인 행위에 대한 변치 않는 가장 확실한 방어벽이 바로 유럽 경찰관인 러시아였다. 국내 정부는 억압받는 인민들로 하여금 서구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종사하는 치욕스러운 입장에 서도록 했다. 경제적 결속에 따른 주창자로 묘사된 경찰관의 본모습이다. 따라서 앞 주장은 실로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다. 인민의 벗인 선생들은 어떤 자유주의자도 능가한다. 인민의 벗들은 정부에 간청하고, 정부를 칭송하고, 엄청난 존경과 열정을 다해 기도를 바친다. 머리를 조아리며, 판석 위에 이마를 찧는 소리는 지나가던 사람조차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여러분은 속물에 대한 독일식 정의를 기억하는가.

 

속물이란 무엇인가.

텅 빈 속을,

두려움과 신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자여.

 

- 괴테

 

같은 식의 정의는 실정과는 맞지도 않다. 신은 부차적인 존재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다른 문제다. 위 정의에서 신이란 단어를, 정부 당국으로 대체한다면, 인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국내 인민의 벗들의 이념적인 상투성과 도덕 수준, 시민으로 용기를 정확하게 표현한 셈이 된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토록 터무니 없는 인민의 벗들은 이른바 지식층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크리벤코는 이렇게 적는다.

 

'문학은 현상들을 사회적인 의미에 따라 평가하고, 모든 능동적인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도록 장려해야만 한다. 문학은 교사와 의사, 전문가가 부족하고, 인민들은 가난과 병마와 문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발언해왔고, 발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탁자에 앉아 카드 놀이를 하거나,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니거나, 귀족 대표가 주최한 모임에서 철갑 상어를 뜯는 게 지겨워진 사람들이 보기 드문 자기 희생 정신을 갖추고, 수 많은 장벽을 뚫으며, 앞으로 선뜻 나설 때, 문학은 그들을 환영해야만 한다.'

 

그리고 두 장을 넘어가서, 경험으로 지혜를 얻게 된 왕년 운동가는 짐짓 사무적인 어조를 띠며, 지방 감독관, 시장, 젬스트보 의장과 의원 같은 직위를 새로운 규정에 따라 받아들이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해서, 망설이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시민들의 요구와 의무에 관한 의식이 발전된 사회에서 그런 망설이는 태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에서는 어떠한 필수적인 측면을 가진 개혁이라면, 완전히 소화해서, 그에 맞는 개혁의 측면들을 활용하고, 발전시키고,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들이 있다면, 사문화시키며, 개혁에 필수적인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기구는 완전히 소외된 상태로 남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도대체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얼마나 한심하고, 하찮은 기회주의이자, 자화자찬에 빠진 소리란 말인가. 사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응접실용 촌평거리들을 죄다 수집하고,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준 데 대해 정부에게 굽실거리며, 카드 놀이에 지겨워진 사람들을 환영하고, 지방 감독관 같은 자리를 꺼리지 말라고, 대중을 가르치는 게 문학의 임무라는 거다. 지금 주간지, 새로운 시대를 읽고 있는 건가. 이건 선진적인 국내 민주주의자들의 기관지러시아 부인데,

 

그러고도 신사 양반들은 선조들의 이상을 말하고, 프랑스가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쏟아붓자, 국내에서 사상을 흡수해 헤르첸과 체르니셰프스키 이론과 가르침을 생산해낼 당시 전통을 오직 자신들만이 수호하듯이 주장한다. 철저한 망신이며, 명백한 언어도단이자, 모욕이다. 비록러시아 부가별로 재미있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같은 유형의 잡지 시평에서 그런 식의 발언들이 큰 웃음이나 그 밖의 어떤 반응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 실로 당신들은 그 이상들을 더럽히고 있다. 최초 국내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실제로 어떤 건지를 카우츠키가 했던 발언에서도 아주 적절하게 묘사된다.

 

'그 시대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

 

국내 공동체적인 생활 체계라는 특수한 사회 질서에 대한 믿음, 그로 인해 이어진 농민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믿음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정부에 맞서는 영웅적인 투쟁 대열에 서도록 만들었다. 당신들은 그 시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엄청난 역사적인 헌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그들의 기억을 충심으로 존경하지 않았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묻는다. 그때의 믿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두 사라져버리지 않았는가. V.V. 보론초프는 작년 마을 공동체가 인민들에게 공동 노력을 연마시키고, 이타적인 감정의 중심이 된다는 등의 주장을 펼 당시에, 심지어 미하일로프스키는 양심에 찔리 나머지, 겸연쩍게 V.V. 보론초프를 훈계하며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어떤 연구도 마을 공동체와 이타주의 사이에서 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굳이 연구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신념을, 무조건적인 신념을 지녔던 시대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 무슨 근거로.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

 

게다가 미하일로프스키는 농촌이 분화되면서부터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머지 인민을 자기네 발치 아래 두는 한 줌 쿨라크로 형성됐다는 데 모든 양심적이 연구자들이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이번에도 옳았다. 농촌은 실제로도 분화되고 있었다. 농촌이 완전히 쪼개 진 건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그리고 옛날 국내 농민 사회주의자도 그와 함께 쪼개지면서, 한편으로는 노동 사회주의에 자리를 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물 소부르주아 급진주의로 타락하고 말았다. 같은 변화는 타락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농민 삶은 특수한 사회 질서이며, 우리나라는 예외적인 발전 경로를 밟아왔다는 이론으로부터 희석된 절충주의도 등장했다. 절충주의는 상품 경제가 경제 발전 토대가 되고, 자본주의로 발전했다는 점은 더 이상 부인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모든 생산 관계에서 부르주아적인 성격이 있고, 그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계급 투쟁이 일어난다는 점은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더불어 근대 사회 토대에 맞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농민들을 각성시킬 목적으로 고안된 정치 강령으로부터 근대 사회 토대를 보존하면서 농민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수습하기를 목적으로 하는 강령도 등장했다.

 

엄밀하게, 모두 이미 러시아 부의 신사 양반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무너뜨리는 데 착수하는 순간 예상됐던 종류로 비판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해준다. 그들은 국내 현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구상을 솔직하고, 양심적으로 설명하거나, 그 본질에 반대되는 주장을 편다든지, 거기에서 끌어온 실질적인 결론들에 대한 정확도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에 신사 양반들은 추상적인 도식과 그 도식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국가가 그와 같은 국면을 거쳐야 한다는 확신을 담은 가장 공허한 문구들과 이미 미하일로프스키로부터 충분하게 접한 바 있는 허튼소리에 스스로를 가두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종종 철저하게 왜곡된 말을 듣게 된다. 크리벤코에게 마르크스는,

 

'만약 우리가 소망하고, 또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자본주의 부침을 피해 더 편리한 다른 경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기사님께서 그런 허튼소리를 내뱉을 수 있었떤 건, 의도적인 왜곡에 탐닉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마르크스 편지, 법률 통신, 1888, 10에서 러시아가 자보눚의 체제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 체르니셰프스키는 칼 마르크스를 높이 평가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크리벤코는 마르크스 실제 발언을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에 이렇게 덧붙인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런 견해들을 공유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실제로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이 존경할 만한 비평가는 적어도 내가 위대한 러시아 학자이자, 비평가를 존경한다는 이유로 내가 문제에 대해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추론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러시아 문인과 범슬라브주의자에 대한 내 비판으로부터도 내가 그 견해들을 거부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을텐데도 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미하일로프스키가 자신을 러시아 특수한 발전 노선이라는 사고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여길 권리가 없고, 자신 또한 그런 사고를 지닌 사람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리벤코는 마르크스가 그런 특수한 발전 노선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그걸 잘못 해석했다. 그야말로 새빨간 왜곡이었다. 방금 마르크스 발언에는 크리벤코가 문제를 다음과 같이 피해 넘겼다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두 가지 모순된 주장들 가운데 하나를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곧 미하일로프스키는 러시아 전반적인 정세에 관한 내 견해들 가운데 하나를 근거로 해서, 스스로 결론을 이끌어낼 만한 바탕이 전혀 안됐다.'

 

이런 발언들이 잘못 해석될 여지를 없애고자, 마르크스는 같은 편지에서 자신의 이론이 러시아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마르크스는 답변에 대한 질문에 있어 대답 자체와 그 질문의 답을 결정할 수도 있는 러시아 통계 검토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이렇게 답했다.

 

'러시아가 서구 유럽 국가들을 모범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도 수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던 최근으로 보인다면, 우선 농민 대부분은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해당 대목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 질문에는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 보이는가. 농민들의 몰락이 자본주의 체제, 곧 자본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탄생 과정인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가정이지만, '만약' 러시아가 그런 경향을 보인다면, 농민 대부분은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될 수밖에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 마르크스 이론은 특정 국가들에 따른 경제 체제의 진화를 연구하고, 또 설명했으며, 러시아에서 이론을 적용하는 건 오로지 유물론적인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에 따라 확립된 선례들을 활용해서, 러시아에 따른 생산 관계와 그 진화를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정교한 완성은 사회 과학에서도 큰 발전이자, 사회주의를 향한 엄청난 진전이었다. 자본이 등장한 직후로, '국내 자본주의 운명'은 국내 사회주의자들에게도 주요한 이론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문제를 둘러싸고, 엄청나게 열띤 논쟁들이 펼쳐졌고, 강령 상 핵심 지점들도 따라서 결정됐다. 그리고 이로부터 약 10년 전, 국내 자본주의로 진화했는지를 놓고도, 어느 개별적인 사회주의자 집단이 국내 경제 현실에 대한 통계를 토대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을 때는, 거기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비판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똑같은 방법론적·이론적인 일반 원칙들을 받아들인 가운데서 통계에 대해 다르게 설명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맞서 진정한 성전으로 돌입한 인민의 벗들 역시나, 사실 관계에 따른 검토로부터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는 법이 없었다. 첫 글에서 본 바와 같이, 인민의 벗들은 여러 미사여구로, 문제를 처리한다. 게다가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합의나, 의견 일치 부족에 대해서도 자신의 재치를 드러낼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런 뒤에, 저명한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진짜와 가짜로 나누는 말장난을 하고는, 마음껏 웃음을 터뜨린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완전한 일치가 지배적이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첫째로 미하일로프스키는 사실을 잘못 전달했고, 둘째로, 현실은 국내 사회민주주의의 약점이 아닌, 강점과 생명력을 증명했다. 최근 시기, 특히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로는 사회주의자들이 많은 경로로부터, 사회민주주의적인 관점들에 도달했으며, 그러한 까닭에 국내 봉토 제도로부터 발달한 부르주아 사회이고, 그 정치 형태는 계급 국가이며, 노동 인민에 따른 착취를 끝장낼 유일한 방안으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이라는 기본적이고, 주요한 논지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논쟁 방법과 국내 삶에서 여러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 있어서도, 특정한 수 많은 문제들을 놓고 의견을 달리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논지 한계 내에서, 농민 개혁이나, 농업과 수공업에 따른 경제적인 상태, 토지 임차 등 피상적인 어조로만 다뤄졌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부터 미리 미하일로프스키를 기쁘게 할 수도 있었다. 농민 개혁이란, 국내에도 올바른 발전을 위해 순탄한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자본가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민의 벗들에게 국가 부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을 공동체가 농업과 제조업을 사회화해서, 수공업자로부터 대량 생산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인민 토지 임차가 인민 농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등, '숭고한 진리'들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적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합의에는, 국내에서 실제로 현재 경제 구조를 명확한 생산 관계 체계로 해명하고, 실제로 경제적 발전이나, 정치를 비롯해서, 여타 모든 유형에서 상부 구조에 대한 해명을 추구하는 사람들 내 견해 차이로 대체됐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통된 입장을 받아들여서, 공동에 따른 정치적 행동으로 확실하게 관련되고, 따라서 그러한 공통된 입장을 받아들이는 모두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부를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게 되는 한편으로, 많은 해결책들이 열려 있는 수 많은 특수한 문제들에 대해 폭 넓은 의견 차이에 대한 여지들도 여전히 남겨놓는다면, 당연하게도, 국내 사회민주주의 힘과 생명력을 입증해주는 데 불과하다. 더군다나 같은 노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상태에서 이뤄진다. 그 많은 측면들을 통합해줄 기관도 없거나, 있을 수도 없고, 오늘날에도 만연한 경찰 감시 상황에서도 볼 때, 개인적인 교류도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적절한 토론을 할 수도,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도 없고, 따라서 서로 의견이 상충된다는 건, 당연할 수밖에는 없다.

 

정말로 재미있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자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을 상대로도 한 반론에서, 크리벤코가 언급한 내용에는 일정 정도 당혹스럽다. 일부 독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분열과 비슷한 무언가가 일어났고,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과거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게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방어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도 국내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이론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다른 어떤 종류로 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한 적도 없다. 진실은 크리벤코와 미하일로프스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응접실에서나 나눌 법한 촌평들에 귀를 기울여왔고, 자신들의 지각 없는 자유주의적인 언행을 감추고자, 마르크스주의를 들먹이는 여러 많은 자유주의자들을 주시했으며, 전매특허인 영리함을 갖춘 전술로부터 동원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작업에 착수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같은 비판이 일련의 일상적인, 부조리와 추잡한 공격들로 이뤄졌다는 점은 전혀 놀랍지도 않다. 크리벤코는 일관되게, 자본주의 산업 발전에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해야만 하며, 농민들의 토지를 사들이거나, 상점과 선술집을 여는 걸 꺼려서는 안 된다. 수 많은 여관 주인들은 국내 의회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벌이는 걸 기뻐하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업자들은 농민 곡식을 사들이는 걸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재미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인민의 벗에게 국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 인민에 대한 착취는 본질 상 자본주의적이며, 기업형 농민들과 유통업자들은 같은 정치·경제적인 특징들 때문에,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분류되어야만 하고, 그런 현실이 농민 분화에 따른 부르주아적인 성격을 증명한다는 점을 일러두자. 그러면 인민의 벗은 비명을 지르며, 그건 서구 유럽 공식과 추상적인 방안들을 무차별적으로 빌려오는 행위이자, 터무니 없는 이단이라고 목소리를 드높인다. 그러나 '사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에 색이 입혀져서,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고귀한 과학과 순수한 이상은 옆으로 밀려나게 되고, 농민 곡식과 땅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단순히 타인 물건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본주의 대표라는 점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 또한 국내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손아귀에 생산 수단을 집중시키면서부터 이미 모든 영역에서, 인민 노동을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게 압력을 가해 부르주아적인 성격에 따른 정책을 입안하고, 강요하며, 결정짓는다는 점을 저 인민의 벗에게 입증해서 보여주자. 그러면 인민의 벗은 버럭 화를 내며, 우리 정부의 전지전능함을 외치고는, 인민의 벗들이 아닌, 자본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들을 끌어들이는 행위가 치명적인 착오이자, 불행이라고, 인공적으로 자본주의를 이식하는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속으로 인민의 벗들은 국내 의회 내에서 여관 주인들이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점. 곧 이른바 계급 꼭대기에 올라선 바로 정부의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신사 양반들, 국내 자본주의 이익이 오직 의회에서만, 그리고 여관 주인들로부터만 대표된다고 생각하시나.

 

추잡한 공격들과 관련해서는 이미 미하일로프스키로부터 사례들도 충분히 지켜봤고, 눈꼴 시린 사회민주주의를 전멸시키기 위한 열망 속에서

 

'일부는 자본주의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게 유일한 목적이라 주장하며, 물론 전문가나 사무직 노동자 같은 한직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도 공장으로 들어간다.'

 

라고 주장한 크리벤코에게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명백히 품위를 상실하고 만 발언들에 대해서는 매번 답변할 필요는 없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이고, 그만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 아무튼 신사 양반들, 그런 정신 상태를 용감하게 계속해서 유지하시길. 당신들이 말한 대로, 이미 여러 조치들로부터 아무리 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원해줬던 황실 정부는 앞으로도 아무런 결함 없이, 그렇게 해나가며, 그래서 당신들의 진부한 무지가 드러나는 걸 막아줄테니 말이다.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교양 넘치는 상류 사회는 막간을 이용해서도,철갑 상어와 카드 놀이를 즐기면서, 기꺼이 형제를 들먹이고, 형제의 상태를 개선시키고자 자비로운 사업들을 고안해낸다. 그리고 그 형제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지방 감독관 같은 농민들의 주머니를 감독하는 자리들을 차지하고 앉아서는, 시민적인 요구와 의무들에 대한 발달된 의식을 자랑할 수 있다는 점을 당신네로부터 알게 되어 아주 기쁘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 정신을 아무렴 계속해서 이어가시길. 절대 방해받지 않을 뿐 아니라, 지지와 칭찬까지 받게 될 지도 모르니. 물론 부레닌과 그 지지자들의 입으로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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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부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서는 조직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잡지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은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들 또는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항해서, 격렬한 비판을 펼치겠다고 예고했다. 그 뒤로 크리벤코 선생,우리의 문화 용병들과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의문학과 삶이 잇달아 발표됐다. 잡지에서는 국가 경제 현실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유자코프,러시아 경제 발전의 문제점들에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잡지는 '인민의 벗들'이라는 견해와 전술을 제시한다고 일반적으로 내세웠고, 따라서 이 신사양반들은 사회민주주의의 최대 적들이다. 그러므로 인민의 벗들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 그들의 사상과 전술 등을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이론적 원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별히 유물사관을 연구했다. 관련된 이론적 원칙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방대한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하면서, 미하일로프스키는 장광설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먼저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유물론적 역사 개념을 자세하게 설명한 적은 있었던가라는 의문은 자연스럽게 제기된다.자본에서 마르크스는 박식함, 모든 경제 문헌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논리력과 결합시키는 작업의 전형을 보여줬다. 오랫동안 잊혔었거나, 오늘날까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경제학 이론가들을 발굴해냈고, 여러 많은 특별 위원회들로부터 제출된 공장 감독관들 보고서나, 전문가 증언에 따른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막대한 양의 사실 자료들을 검토했으며, 한 쪽으로는 자신의 경제 이론들에 대한 논거를 제공하고자, 다른 쪽으로는 명확하게 실증해보였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새로운 시각에서 인류의 지난 날 전체를 설명하고, 역사 철학에 대해 이제까지 존재했던 모든 이론들을 요약했다. 마르크스의 열의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 알려진 모든 이론들을 검토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세계사에서 수 많은 사실들을 연구했다.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 통상적으로 다루는 다윈과 비교는 그런 믿음을 확인하는 데 훨씬 더 큰 기여를 한다. 그렇다면 다윈의 전체적인 연구는 어디까지 도달했는가. 확실한 사실에 입각한 자료에서 진정한 금자탑을 이루고 사상들을 일반화하는 데 어느 정도 근접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윈에 충분히 비견될 만한 마르크스 연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로부터 그런 연구는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대단하고, 폭 넓은 특징에도 불구하고, 모든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 전혀 찾아볼 수는 없다.'

 

장광설은 전반적으로 매우 독특하고,자본과 마르크스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얼마나 미흡한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주장을 펼치는 마르크스 방식의 엄청난 설득력에 압도된 대중이 마르크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마르크스를 칭송하면서도, 이론의 기본적인 내용에는 전혀 눈을 돌리지 않고, '주관적 사회학'이라는 낡은 노래들만 조용히 읊조린다.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의 경제학적 가르침들에 대한 자신의 책 서두로 선택한 매우 적절한 문구를 떠올릴 수 있다.

 

클로프슈토크(Klopstock)를 칭송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모두가 그의 시를 읽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덜 칭송받더라도,

더 열심히 읽히기를 원한다.

 

정확히 그렇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에 대한 칭찬을 줄이는 대신에, 마르크스의 책을 좀 더 부지런히 읽거나, 하다못해 자신이 읽은 내용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만 했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박식함과 논리력을 결합시키는 작업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문구로부터 미하일로프스키는 빛나는 문장이 부족한 본질과 어떻게 결합되는지 전형을 보여준다. 어느 마르크스주의자가 주장했듯이 말이다. 그런 주장은 매우 정당했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논리력은 어떻게 드러났는가. 효과는 무엇이었는가. 미하일로프스키는 저 정광설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은 마르크스의 논리력이 매우 좁은 의미에서, 경제이론들에만 전적으로 집중됐고,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논리력을 드러낸 분야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걸 한층 강조하고자, 매우 세세한 부분과 철저함,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경제학 이론가 등을 강조했다. 마르크스가 이런 이론들을 구축하는 데 있어 본질적으로 새롭거나, 주목할 만한 기여를 한 건 전혀 없고, 이전의 경제학자들이 이뤘던 경제학의 경계를 확장하는 작업이나, 완전히 새로운 경제학 개념을 세우는 데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는 듯이 들린다. 그러나 자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16년 전, 미하일로프스키는 천벅한 부르주아, Y. 주코프스키(Zhukovsky) 선생과 논쟁을 벌일 당시에, 조국 연보, 마르크스에 대해 썼던 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가 다르고, 정서도 더 신선했기 때문에, 어쨌든 당시에 미하일로프스키가 쓴 글의 어조와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현대 사회의 발전 법칙, 경제 작동 법칙을 밝혀내는 게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다'라고 말했었고, 그 방침을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다고 1877년에 말했었다. 그렇다면, 비판자인 그가 인정한 바와 같이 마르크스가 엄격하게 고수했던 방침을 살펴보자. 현대 사회의 경제학적 발전 법칙을 밝혀내기 위한 방침 말이다.

 

서술에서는 설명이 요구되는 몇 가지 질문들에 맞닥뜨린다. 마르크스 이전 모든 경제학자들은 사회 일반에 대해 말하는데, 마르크스는 왜 근대 사회를 말할까. 마르크스는 '근대'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며, 근대 사회를 어떤 특징으로 구분하는가. 더 나아가, 사회의 경제 작동 법칙으로부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가치의 생산만이 유일하게 경제학 법칙들의 대상이지만, 분배는 정치, 곧 정부와 지식인 등이 사회에 행사하는 영향력의 성질에 달려 있다는 말을, 러시아의 부에 속한 사회적 환경의 평론가들과 경제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발상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경제학자들로부터 익히 들어왔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어떤 의미에서 사회의 경제 작동 법칙을 말하고, 심지어 법칙을 가리켜, 자연 법칙이라고까지 말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무수한 사회학자들은 사회 현상은 자연사 현상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며, 따라서 사회 현상들에 대한 연구는 완전히 별개의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을 활용해야 한다는 걸 입증하고자, 수 없이 많은 논문을 쏟아내고 있는 때에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당혹감은 생겨날 수밖에는 없고,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면,자본에 대해 말할 때, 결코 그런 당혹감을 피할 수는 없겠다. 같은 물음들을 자세히 해명하고자, 먼저자본의 서문에서 불과 두세 줄 아래에 나온 단락 하나를 더 인용해보자.

 

'내 관점에서 볼 때, 경제적 사회구성체 발전은 자연사적 과정이라 여겨진다.'

 

엄격한 일관성과 보기 드문 논리력을 보여준자본의 기본적인 발상이 여기에 있음을 확인하는 건 방금 서문에서 인용한 두 단락들을 비교해본다면 충분하다. 먼저 모두에 관한 두 가지 상태들을 주목해보자. 마르크스는 하나의 '경제적 사회구성체 발전', 곧 자본주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만 말하며, 스스로도 다름 아닌 자본주의 형성의 발전 법칙만을 연구했다고 말한다. 바로 첫 번째다. 두 번째로는, 마르크스는 자신의 추론을 풀어나갈 때 활용했던 방법론에 대해서도 주목해보자. 방법론들은 조금 전 미하일로프스키도 말했지만, 관련된 사실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에 기반을 둔다. 주관에 치우친 이 철학자가 그렇게도 노력하게 피해 가려 애썼던자본의 기본적인 발상을 검토해보도록 하자. 정확히 말해, 경제적 사회구성체라는 개념은 무엇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런 구성체 발전이란 어떤 의미에서 자연사 과정으로 여겨질 수 있고, 또 여겨져야만 하는가. 오늘날에도 직면한 물음이다. 오래된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관점에서는 경제적 사회구성체라는 개념이 전혀 필요하지 않음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사회 일반을 말하고, 사회 일반 성격, 사회 일반 목적과 본질 등에 대해 스펜서 학파와 논쟁을 벌인다. 주관에 치우친 사회학자들은 사회 목적은 구성을 이롭게 하고, 정의는 이러저러한 조직체를 요구하고, 사회학은 일종의 유토피아 낙원에서 출발한다는, 주관적 방법론을 주장하던 필자 중 한 사람인 미하일로프스키는 그들의 방법론의 핵심을 훌륭하게 보여주며, 이상적인 조직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체제는 비정상적이고, 파기해야만 한다는 논거에 따라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사회학의 본질적인 임무는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어떤 특정한 부분들을 충족시켜주는 사회적 조건을 규명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회학자가 관심을 기울이는 건, 인간 본성을 충족시켜주는 사회일 뿐, 소수로부터 다수의 노예화와 같이 인간 본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현상에 기초한 어떤 이질적인 사회의 형성 과정이 절대 아니다.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사회의 발전을 자연사의 한 과정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무언가를 바람직하다거나,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받아들이려면, 그 사회학자는 바람직한 게 실현될 수 있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게 제거될 수 있는 조건을 발견해야만 한다는 게 미하일로프스키 논리였다. 더군다나 발전에 관한 말조차 있을 수 없고, 바람직한 걸로는, 다양한 일탈들과 사람들이 충분히 현명하지 못한 결과로 역사에서 발생한 결함들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며,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거니와 그런 이성 체계의 실현을 위한 조건도 발견할 수가 없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따른 발전은 자연사 과정이라는 마르크스에 따른 기본적인 발상이 사회학이라는 제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유치한 도덕률에 따른 근본 자체를 잘라버린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어떻게 이런 기본 발상에 이르렀는가. 사회적인 삶에 따른 많은 영역들로부터 경제 영역을 골라내고, 다른 모든 관계를 결정짓는 기본적이고, 주요한 관계로 생산 관계를 다른 사회적인 관계들로부터 선별해낼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추론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엄습한 의문들을 해결하고자, 내가 착수한 최초 작업은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였다. 내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어졌다. 국가 형태들뿐만 아니라, 벌률 관계들 또한 그 자체나 이른바 인간 정신의 일반적 발전으로부터 파악될 수는 없고, 오히려 헤겔은 18세기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의 선례로부터 시민 사회라는 이름 아래 묶어놓은 총합인 삶의 물질적인 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시민 사회 분석은 정치경제학에서 찾아야만 한다. 내가 도달한 대체적인 결론을 간략하게 표기하자면, 곧 인간은 그들 삶의 물질적인 생산력에서 일정한 발전 단계에 부합하는 생산 관계 말이다. 생산 관계에 따른 총합은 사회의 경제적 구조, 현실적 토대를 이루고, 그 위에 법과 정치적 상부 구조가 세워지고, 명확한 사회적인 의식 형태들이 그 토대에 부합된다. 물질적 삶에 따른 생산 양식은 사회적·정치적·정신적인 생활 과정 일체를 좌우한다. 인간의 의식은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는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에 따른 물질적 생산력은 어떤 발전 단계에 이르면, 여태껏 그 안에서 생산력이 작동해왔던 기존의 생산 관계, 또는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 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생산력 발전 형태들에서 볼 때 이런 관계들은 족새로 변한다. 그러면 사회 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경제적 토대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 구조 전체가 대략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그러한 변화를 고찰함에 있어 자연과학 측면에서 인정되는 생산 조건에 따른 물질적 변화와, 인간들이 갈등을 의식하고, 해결하고자 싸워나가는 틀인 법률적·정치적·종교적·미학적 또는 철학적 간단하게 말해서 이념적 형식들에 따른 변화를 언제나 구분해야만 한다. 한 개인으로 판단할 때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근거로 삼지는 않듯이, 그러한 변화 시기를 정반대로 물질적 삶의 모순,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 사이에 현존하는 갈등으로부터 그 의식을 설명해야만 한다. 대체로 사회에 따른 경제 구성체가 점차 발전해갔던 시대로는 아시아적 생산양식, 고대적 생산 양식, 봉건적 생산양식, 근대 부르주아적 생산 양식을 들 수 있다.'

 

사회학에서 이런 유물론적 사고는 그 자체로도 천재적이다. 한동안 가설일 뿐이었지만, 역사와 사회 문제들을 엄격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걸 최초로 열어주었다. 그때까지 사회학자들은 생산 관계 같은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관계에서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로, 정치적·법적인 형태들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와 연구만을 수행해왔고, 그러한 형태들이 논의 대상 시기에 살았던 이류의 특정한 사고로부터 생겨난다는 점을 우연하게 발견해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사회적 관계들이 인간으로부터 의식적으로 확립됐듯이 말이다. 그러나사회계약론이라는 사고에서 충분히 표현된, 공산적인 사회주의 전체 계통에서 그 자취가 뚜렷하게 드러난 결론은 모든 역사적 관찰과는 완전히 모순됐다.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살면서 맺는 사회적인 관계 총합을 어떤 법칙이 스며든 분명하고 완전한 무언가로 인식한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로 인민 대중은 이런 관계들에 무의식적으로만 적응했을 뿐,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관계로부터 거의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 세기에 걸쳐 맺어온 교환 관계에 대한 해명도 아주 최근에서야 이뤄졌을 뿐이다. 유물론은 인간 사회적 사고 자체 근원까지 깊숙하게 분석해내면서부터 모순을 제거했다. 그리고 사고의 경로가 물질의 경로에 달려 있다는 유물론 결론은 과학적 심리학과 유일하게 양립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또 다른 측면에서, 가설은 최초로 사회학을 과학의 단계로 끌어올렸다. 여태껏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현상들에 따른 복잡한 연결망에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걸 구분하기 어렵다고 여겨왔고, 사회학에서 나타나는 주관론 뿌리가 여기에 있다. 그런 구분을 위한 객관적인 기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유물론은 사회 구조로 생산 관계를 선별해내고, 주관론자들은 사회학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걸 반복해서 부인해오면서, 일반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을 이런 관계들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부터, 완전히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이념적인 사회적 관계들, 곧 형성되기도 전에 인간의 의식을 거쳐가는 것 같고, 사회적 관계를 자각하는 데 있어 스스로를 가둬두는 한 주관론자들은 많은 국가들에서도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들에서 반복과 규칙성을 제대로 관찰할 수도 없었고, 그들의 학문은 기껏해야 그러한 현상들의 묘사, 원재료를 한데 묶어 놓은 데 지나지 않았다. 물질적 사회 관계, 곧 인간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형성된 관계들, 생산물을 교환할 때 인간은 사회적 생산 관계가 존재한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생산 관계에 진입하는 분석은 반복과 규칙성을 관찰하고, 많은 국가들의 체제를 하나의 근본적인 개념, 곧 사회구성체로 일반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회적인 현상들의 묘사에서, 이상적인 관점에서 그것들을 평가하는 데에서 벗어나,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를 다른 국가와 따로 떼어내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연구하는 식의 엄밀한 과학적 분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일반화 덕분이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이런 가설이 최초로 과학적 사회학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또 다른 이유는 오로지 사회적 관계를 생산 관계로 환원시키고, 생산 관계를 생산력 수준으로 환원시키면서부터 사회구성체 발전이 자연사 과정이라는 개념에 확고한 토대를 제공해줬다는 점이다. 그런 견해가 없었다면 사회과학도 없었을 거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관론자들은 역사적인 현상들이 법칙을 따른다는 점을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그 진화를 자연사 과정으로 여기지는 못했는데, 엄밀하게 그들은 인간의 사회적 사고와 목적 앞에서 멈춰버린 채 물질적인 사회 관계로 환원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40년대에 이 가설을 제시한 뒤로 마르크스는 사실에 유념한 자료 연구에도 착수했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사회구성체들 가운데 하나인 상품 생산 체계를 택해, 25년이 넘는 시간을 들인 방대한 양의 통계를 근거로 해서, 구성체 기능과 발전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해냈다. 그 분석은 사회구성원들 간 생산관계에먄 국한됐다. 마르크스는 설명을 위해 이러한 생산 관계 영역 바깥 특징들에 전혀 의존하지 않은 채, 사회적 경제에 따른 상품 구조가 어떻게 발달하고, 자본주의 구조로 변형돼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서로 적대적인 생산 관계라는 경계 내에서 적대적인 계급들을 만들어내고, 어떻게 사회적인 노동에 따른 생산성을 발전시켜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토대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바로자본뼈대다. 하지만 전체적인 핵심은 마르크스는 이런 뼈대에 만족하지 않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경제 이론에 스스로를 가두지도 않았고, 오로지 생산 관계로부터 특정한 사회구성체 발전과 구조를 해명한면서도, 이러한 생산 관계에 조응하는 상부 구조를 어디에서나 끊임없이 면밀하게 검토하면서부터 뼈대에 피와 살을 입혔다. 자본은 큰 성공을 거둔 이유로는 독일 경제학자가 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일상적인 측면에서, 생산 관계에 고유하게 녹아 있는 계급 적대 관계에 따른 실제 사회적 징후와 자본 계급의 지배를 보호해주는 부르주아 정치 상부 구조, 자유와 평등 같은 부르주아 사상들, 부르주아 가족 관계로부터, 살아 있는 생물체로 자본주의 사회에 따른 형성 과정 전체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윈과 비교하는 건 아주 적확하다는 점은 명확해진다. 자본은 확실히 사실에 입각한 자료에 따른 금자탑을 이루고, 사상들을 일반화하는 데 어느 정도 근접했다고 하겠다. 누군가 자본을 읽고도 이렇게 일반화된 사상들을 용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살망 이씨따면, 서문에서까지 이런 사상들을 지적했던 마르크스 잘못은 아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런 비교는 외부적인 측면에서, 어떤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특히 미하일로프스키의 관심을 끌었을 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측면에서도 정확해진다. 다윈이 동물과 식물종은 서로 단절됐고, 우발적이고, 신으로부터 창조된데다, 불변하다는 견해에 종지부를 찍고는, 변화할 수 있는 종의 세습을 확립하면서부터 생물학을 온전히 과학적인 토대 위에 올려놓은 최초 인물인 것처럼 마르크스는 권력자들의 의지에 따르고, 또는 사회와 정부의 의지에 따른 모든 종류의 수정을 허락하고, 우연하게 등장했다고 변화하고, 개인들의 기계적 집합체가 곧 사회라는 견해에도 종지부를 찍고, 특정한 생산 관계에 따른 총합으로부터 경제적 사회구성체라는 개념을 확립하고, 그런 구성체 발전이 자연사 과정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면서부터 사회학을 과학적 토대 위에 올려놓은 최초 인물이다.

 

자본등장 이래로, 유물론 역사 개념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된 명제다. 특정한 사회구성체, 어떤 국가나 국민 또는 계급 등이 아닌 기능과 발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내놓는 또 다른 시도, 유물론만큼 해당 사실들에 질서를 도입할 수 있는 또 다른 시도, 엄격한 과학적 해명을 제시하면서도 명확한 형성 과정에 따른 또렷한 그림을 제시할 수 있는 시도가 이뤄질 때까지, 사적 유물론 개념은 사회과학과 동의어이다. 유물론은 미하일로프스키가 생각하듯이, 대체로 과학적인 역사관이 아니라, 유일한 과학적인 역사관이기 때문이다.자본을 읽고도, 거기에서 어떠한 유물론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보다 더 웃긴 상황이 어디 있는가. 유물론이 어디에 있냐고, 미하일로프스키는 진짜로 당황해서 그렇게 묻는다. 미하일로프스키는공산당 선언을 읽고도, 근대 체제, 법률, 정치, 가족, 종교, 철학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설명이 유물론적인 설명이라는 점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들조차도 여러 생산 관계에 그 뿌리를 두려 하고, 또 두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미하일로프스키는철학의 빈곤을 읽고도, 프루동의 사회학에 대한 분석이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비롯됐다는 점과, 많은 역사적인 문제들에 대해 프루동이 제기한 해결책에 대한 비판이 유물론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자료를 어디에서 구해야 할지에 대해 필자들 자신이 내놓은 말들이 모두 생산 관계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었다.

 

미하일로프스키는자본을 읽고도, 하나의 가장 복잡한 사회구성체에 관한 과학적이고, 유물론적인 분석 모형이 자신 앞에 놓여 있다는 점과, 누구나 그 모형을 인정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걸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 앉아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유물론적 역사 개념을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있었던가와 같은 심오한 질문에 자신의 뛰어난 머리를 쓰고 있었다. 물론 마르크스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질문에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던가라고 말이다. 그러나 미하일로프스키는 경제적 유물론이라는 제목 아래 역사에 관한 궤변을 쏟아냈던 카레예프(Kareyev)와 같은 사람이 그것들을 분류하고, 적절하게 색인을 달아줄 때에만 마르크스 유물론 연구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웃기는 건,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더러 역사적 과정에 대해 알려진 모든 이론들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정말로 재미있는 대목이다. 그러한 이론들의 90%는 무엇으로 구성됐던가. 사회란 무엇이고, 발전이란 무엇인가 따위에 관한 순전히 선험적이고, 교조적이고, 추상적인 담론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런 이론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점과 그것들이 채택하고 있는 기본적인 방법론, 누그러들 줄 모르는 굳걷한 형이상학 때문에 말이다. 사회란 무엇이고, 발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는 건, 시작과 끝이 뒤바뀐다. 단일한 사회구성체를 특별히 연구하지도 않고, 갠며을 확립조차 할 수 없다면, 일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라 할 수 있는 진지한 사실 연구에도 접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전반적인 사회와 발전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과학이 출발점으로 삼았던, 형이상학의 가장 명백한 증상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사실에 대한 연구에 착수할지를 모를 경우에, 언제나 선험적인 일반 이론들을 만들어냈고, 그건 언제나 무익했다. 화학적 과정에 대해 사실에 기반을 둔 연구를 할 능력이 없는 형이상학적 화학자는 물리력으로 화학적 친화성에 대한 이론을 지어낸다. 형이상학적인 생물학자는 생명과 생명력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형이상학적인 심리학자는 영혼의 본질에 대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 자체로 말도 안 되는 방법론이다. 물리적 과정을 별도로 설명하지 않고, 영혼에 대한 주장을 꺼내놓을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해 진보는 영혼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들과 철학적인 담론들을 포기하는 데 있고, 특정한 물리적 과정에 관한 사실 연구를 과학적 토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하일로프스키의 비난은 평생을 연구의 본질에 대한 연구에 쏟아부은 다음, 과학적인 심리학자더러 영혼에 관한 모든 알려진 이론들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형이상적인 심리학자의 비난과 매우 비슷하다. 과학적 심리학자는 영혼에 관한 철학적인 이론들을 내다 버리고, 물리적인 현상들의 물질적인 근저인 신경 과정에 관한 직접적인 연구에 착수해 한 가지 이상 심리학적인 과정에 대한 분석과 해명을 내놓은 사람이다. 형이상학적 심리학자는 그 업적에 관해 읽고 칭송한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심리학자는 과정에 대한 서술과 사실 연구가 훌륭하다고 말하면서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형이상학적 심리학자는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앞서 과학자가 내놓은 매우 새로운 심리학 개념과 과학적인 심리학의 특별한 방법론에 대해 말하는 걸 듣고는 몹시 흥분해서, 실례합니다라고만 외친다.

 

"실례합니다만, 이런 방법론이 형이상학적인 심리학의 연구에서 어디에 설명됐습니까. 그리고 그 연구에는 사실만 담겨 있잖아요. 영혼에 관한 모든 알려진 철학적인 이론들에 대한 검토는 찾아볼 수 없다고요. 전혀 적절치 못한 연구란 말입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울부짖는다. 물론 사회 본질에 대한 선험적인 주장들의 무익함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런 방법론들은 문제의 연구와 해명에 기여하기보다는 영국임 상점 주인의 부르주아 사상들이나, 국내 민주주의자의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 이상들을 사회라는 개념에 넌지시 밀어넣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형이상학적인 사회학자에게자본은 전혀 적절치 못한 연구이다. 그 모든 역사 · 철학들이 생겨났다가도 기껏해야 그 시대 사회사상과 관계들의 징후 정도에만 머무른 채, 아주 조금이나마 진정한 사회적 관계들을 인간이 이해하는 데 머리카락만큼도 기여하지 못하고, 비누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가 내딛는 거대한 발걸음은 정확히 마르크스가 사회와 진보 전반에 관한 모든 주장들을 내다버리고, 하나의 사회와 하나의 발전, 곧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을 내놓았다는 데에 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가 끝이 아닌 제대로 된 출발점에서 시작했다고, 최종적인 결론이 아닌 사실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했다고, 전반적인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일반 이론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결정된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비난을 쏟아붓는다. 그러고는 이렇게 묻는다.

 

'적절한 연구가 어디에서 이뤄졌는가. . 자기 주관에 빠진 사회학자가 이토록 현명할 수 있다니.'

 

주관적인 철학자가 순전히 당혹감 속에서 유물론 연구의 어느 부분에서 입증됐는지에 대해서만 자신의 관심을 국한시켰다면, 그나마 봐줄 만 했다. 그러나 자신이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에 대한 입증은 커녕, 자세한 설명조차 제대로 발견해내지 못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결코 제기된 적 없었던 교조적인 주장을 탓하기 시작했다. 주관적인 철학자는 마르크스가 역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주창했다는 취지에서 블로스(Blos)로부터 단락을 인용하며, 지체 없이 마르크스 이론은 인류에게 그 과거를 설명해줬고, 인류의 과거 전체를 해명해줬다고 주장하는 등의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완전한 거짓이다. 마르크스 이론은 단지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해명한다고 주자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주장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회구성체를 분석하고, 해명함에 있어 유물론을 적용함으로부터, 매우 빛나는 결과를 얻어냈다면, 역사 유물론은 단순한 가설이기를 멈추고, 과학적으로 확인된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건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또한 그런 방법론에 대한 필요성이 특수한 사실 조사와 구체적인 분석을 거치지 않은 다른 사회구성체들로 확장된다는 건 역시도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특정한 종의 동식물 진화를 매우 정확하게 확증하는 건 아직은 불가능하지만, 수 많은 사실들로 입증된 생물진화설은 생물학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생물진화설은 종의 변화라는 역사 전체를 해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 설명에 있어 방법론을 과학적인 토대 위에 올려놓았다고 주장하듯이, 역사 유물론도 모든 걸 해명하고 있다고 절대로 주장한 적이 없으며, 단지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 마르크스, 자본에 따르면 유일하게 과학적인 방법을 보여준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따라서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은 처음에 역사 유물론은 모든 걸 해명한다거나, 모든 역사적인 자물쇠 열쇠를 발견했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편다는 식으로 마르크스 의도를 잘못 전달하고는, 자신이 지어낸 그와 같은 주장들에 인상을 찌푸린 다음에, 마침내 유물론자들이 이해한 대로 정치경제학은 여전히 형성되어가는 중이며, 현재까지 소유한 경제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에서만 거의 한정됐다는 취지에서 엥겔스,반뒤링론사고를 정확하게 인용한 뒤, 이러한 말들이 경제적 유물론의 활동 분야를 매우 심하게 좁히고 있따는 결론에 다다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그가 동원한 논쟁 방법이 얼마나 기발하고, 진심 어리고, 적절한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 속임수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치려면 인간이 얼마나 한없이 단순하고, 자만심에 빠져 있어야만 하는 걸까. 가장 먼저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 뜻을 잘못 전달하고, 그런 뒤 자신이 했던 거짓말덩어리에 얼굴을 찌푸린 다음, 정확한 사고를 적절하게 인용해서, 그들이 경제적 유물론의 활동 분야를 좁히고 있다고 선언하는 건방진 태도를 보이고 만다.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의 왜곡이 어떤 식이고, 그 수준이 어쨌는지는 다음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는 그것들을 어디에서도 입증해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가리키는 그것들은 경제적 유물론의 이론적 토대들을 말한다. 그러면서 미하일로프스키는 사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철학의 역사와 역사 철학을 다루는 저작을 집필할 생각이었고, 그런 글을 1845-1846년에 하나 쓰기도 했지만, 출판은 되지 않았고, 엥겔스는 이 저작 가운데 집필을 마친 부분은 사적 유물론의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됐으나, 경제사에 대한 당시의 지식이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점만 입증해줬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과학적 사회주의와 경제적 유물론 이론에서 근본적인 핵심을 발견했고, 공산당 선언에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는 필자 중 한 사람이 인정했듯이, 그들이 그런 작업에 필요한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정말 매력적인 비판 방식이 아닌가. 엥겔스는 경제 역사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이 빈곤하고, 그런 이유로 철학사에 관한 전반적인 성격의 저작을 출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그것을 잘못 이해해서, 과학적인 사회주의의 근본적인 핵심,공산당 선언에서 이미 제시한 부르주아 체제에 대한 과학적인 비판을 제시하는 그런 저작을 집필하기에는 그들의 지식이 빈곤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두 가지 중 하나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역사 철학 전반을 포괄하려는 시도와 부르주아 체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정치경제학적인 비판을 하기에는,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상상만 하거나, 전자라면, 미하일로프스키가 자신의 그런 부족함을 이해시킨다거나, 수정 또는 덧붙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건 매우 잔인한 행동이다. 철학의 역사에 관한 저작을 출판하지 않고도 하나의 사회구조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서 모든 노력을 집중시키기로 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결정은 아주 높은 수준에서 과학적인 성실성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반면에 자신들의 견해를 정교하게 발전시키기에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백하면서도, 그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한 두 사람에 대해 약간의 말을 덧붙여서 사실을 왜곡시킨 미하일로프스키의 결정은 지적 능력이나 품위가 결여된 논쟁 방법론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의 또 다른 자아인 엥겔스는 역사 이론으로 경제적 유물론을 입증하고자, 더 많은 시도를 했다고 말한다. 엥겔스는 역사에 관한 특수한 저작인,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을 집필했다. 연결고리는 실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미국인인 모건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경제적 유물론 원리들을 발표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경제적 유물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엥겔스는 경제적 유물론자들은 이 책에 지지를 표하고 있다. 게다게 선사 시대에는 계급 투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물질적인 가치의 생산에 더해서 인간 자신의 생산, 곧 노동생산성 발달이 여전히 매우 미성숙했던 원시 시대에 주된 역할을 담당했던 생식이 결정적인 요인임을 나타내주는 유물론 역사 개념 공식에 '수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엥겔스는 모건의 커다란 공헌은 여태껏 풀 수 없었던 그리스와 로마, 게르만 고대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들을 푸는 열쇠를 성의 유대관계에 기초한 북미 인디언 집단들에서 발견했다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미하일로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해서 1840년대 말에 완전히 새롭고 유물론적이며, 진정으로 과학적인 역사 개념이 발견되고, 선포됐다. 그리고 그것은 다윈 이론이 현대 자연 과학에 기여했듯이, 역사학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과학적으로 절대 입증된 바가 없다고 미하일로프스키는 한 번 더 되풀이한다.

 

"거대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실에 기초한 자료에서도 절대 확인된 적이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자본은 적절한 연구가 아니고, 단지 사실 관계와 공들여 진행한 연구들만 담겨 있을 뿐이며, 하다못해 역사 철학의 다른 체계들에 대한 비판과 배제조차 충분히 이유가 밝혀진 적이 없었다."

 

엥겔스 저서,반뒤링론에는 지나가는 김에 해본 재치 있는 시도들일 뿐이라며, 미하일로프스키는 저작에서 다뤄진 방대한 양의 본질적인 물음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고 여긴다. 재치 있는 시도들이란 게 유토피아 낙원으로 시작되는 사회학들이 얼마나 알맹이 없는지를 매우 재치 있게 보여주고 있고, 저작에서는러시아 부에 기고한 신사양반들이 그다지도 열성적으로 고백한, 정치와 법률 체계가 경제 체계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실력설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들이 담겨 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그 속에서 유물론으로 입증된 문제들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진지하게 검토하기 보다는 저작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구 몇 개를 늘어놓는 쪽이 훨씬 더 쉽긴 하다. 그리고 검열관은 그 책의 번역을 절대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기도 하고, 그래서 미하일로프스키는 자신의 철학에서 주관적인 면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 책을 재치 있는 책이라고 부른다. 그보다 훨씬 더 특징적이고, 교훈적인 부분은 마르크스,자본에 대한 언급이다.

 

'자본에는 역사에 대한 눈부신 내용들이 담겨 있지만, 책의 목적 그 자체 때문에 이 책은 오로지 하나의 뚜렷한 역사적 시기에만 그 내용이 집중됐고, 경제적 유물론의 기본적인 명제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단적으로 서술하지 않은 채, 특정한 역사적인 현상들의 묶음의 경제적인 측면을 건드리기만 할 뿐이다."

 

달리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 연구에만 노력을 집중한자본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상부 구조에 대한 유물론적인 분석을 제공하지만, 미하일로프스키는 그러한 분석을 무시하는 걸 선호한다. 자본은 오직 하나의 시기만을 다루고 있지만, 마하일로프스키 자신은 모든 시기를 포괄하기를 원하는데, 그래서 그는 특정한 어떤 시기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 어떤 시기도 실질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모든 시기를 포괄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눈부시고 공허한 상투어와 미사여구들을 늘어놓는다. 그러면 누구도 미사여구를 동원해 문제점들을 묵살하는 기술에서 미하일로프스키를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마르크스 연구들을 다룰 가치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마르크스는 경제적 유물론에 따른 기본적인 명제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단적으로 서술하지 않은 채 특정한 역사적 현상들에 따른 묶음으로부터 경제적인 측면을 건드리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심오한 표현이던가. 단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건드리기만 할 뿐이라니.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쟁점을 흐리는 건 실로 얼마나 단순한 일인가. 마르크스는 상품 생산자들 간 관계 위에 시민 평등, 자유 계약을 비롯한 법치 국가에서 비슷한 원칙들이 기초하고 있다는 걸 그렇게 반복해서 보여주었음에도, 그는 그게 뭐인지, 유물론을 단적으로 서술하고 있기는 한 건지, 아니면 단지 건드리기만 할 뿐이라든지 말하고 있다. 특유의 겸손한 태도로부터 철학자 미하일로프스키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답하는 걸 삼가고, 멋진 말을 늘어놓았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재치 있는 시도로부터 직접적인 결론을 이끌어낸다.

 

'세계 역사를 해명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을 선포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 게르만 역사에서는 수수께끼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수수께끼 열쇠는 첫째로 경제학 유물론 이론과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고, 거기에 대해 무엇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이고, 둘째로는 경제학적이지 않은 요인의 도움으로 제시됐다. 더욱 재밌는 건 인간 자신의 생산, 곧 생식이라는 단어로부터, 엥겔스는 경제적 유물론의 기본적인 공식과 최소한 언어적으로라도 연결을 유지하고자, 그 단어를 포착한다. 하지만 엥겔스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삶이 이 공식에 따라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논쟁 방법이 경이롭다. 마르크스 이론은 역사를 해명하려면 이념이 아니라, 물질적 사회 관계에서 그 토대를 찾아야만 한다. 사실에 기초한 자료 부족은 이런 방법론을 고대 유럽 역사에서도 특정한 아주 중요한 현상들, 씨족 구조라는 현상 분석에서 적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결과적으로는 수수께끼로 남겨놓았다. 그렇지만 미국의 모건이 수집한 풍부한 자료는 씨족 구조의 본질을 분석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특히 법이나 종교에서 이념적 관계가 아니라, 물질 관계에서 설명을 찾아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명 이러한 점은 유물론적인 방법론을 훌륭하고, 분명하게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미하일로프스키의 경제적 유물론 이론과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아주 어려운 역사적 수수께끼에 관한 열쇠를 발견했다고 그 원리에 비난을 퍼붓는 걸 지켜본 사람들은, 자신을 편들어주는 것과 심하게 혼내는 걸 얼머나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지에 그저 놀라워한다. 두 번째로 철학자 양반은 생식이 경제적 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나 엥겔스 저작들에서 경제적 유물론에 대해 당연하게 말한 걸 읽어본 적은 있던가. 자신들의 세계관을 서술할 때, 단지 유물론이라 불렀을 뿐이다. 기본적인 발상은 사회적인 관계가 물질적이고, 이념적으로 구분된다는 점이었다. 이념적으로는 단지 물질에 있어 상부 구조를 구성하고, 물질적으로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인간 활동의 형태 결과로부터 인간의 의지와 의식과는 독립된 형태를 취한다. 정치적, 법률적 형태에 대한 설명은 삶의 물질적인 조건에서 찾아야 한다고 마르크스는 단락에서도 말한다. 그렇다면 미하일로프스키는 생식 관계가 이념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미하일로프스키가 제시한 설명은 너무나도 독특해서 깊이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생식이라는 문제에 관해 아무리 창의력을 발휘해 최소한 구두로나마 경제적 유물론과 연관성을 규명하려고 애쓴다 할지라도, 아무리 경제를 포함한 다른 현상들과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 현상들에 뒤얽혀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만의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뿌리를 갖는다. 그리고 경제적 유물론의 이론가들이 역사뿐만이 아니라, 심리학과의 관계도 청산하지 못했음을 상키시켜준다. 씨족 유대 관계가 문명국들의 역사에서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장 성이나 가족 간 유대에 대해서도 똑같이 그렇다고 확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더욱 더 복잡해지는 삶의 압박을 받으면서 상당한 수정을 겪어 왔다. 그러나 일정 정도 변증법적 수완으로부터 법적인 관계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관계 자체도 성과 가족 관계에 따른 상부 구조를 구성한다는 게 드러날 수 있다. 깊이 파고들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상속 제도는 거론해볼 수 있다.'

 

운 좋게도 공허한 미아여구만을 늘어놓았던 철학자 양반은 마침내, 입증할 수 있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기가 쉽지 않은 뚜렷한 사실들로 다가갔다. 그렇다면 상속 제도가 성과 가족 관계에서 상부 구조라는 걸 마르크스 비판가는 어떻게 드러내주는지를 살펴보자. 미하일로프스키는 상속으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생산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상속 제도 자체로는 일정 정도 경제적 경쟁이라는 점으로부터 결정된다. 그러나 맨 먼저, 비물질적인 가치들도 상속으로부터 전달된다. 아버지의 정신을 물려받도록 아이들을 기르려는 마음에서도 표현된다.

 

"아 그럼, 아이들의 양육은 상속 제도의 일부라는 거구나."

 

첫째로, 러시아 민법에서는 '부모는 가정 교육으로부터 자녀들의 도덕을 훈련시키고, 정부의 목표를 더욱 더 발전시키고자 노력해야만 한다.'는 조항이 있다. 철학자가 상속 제도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런 건가. 둘째로, 경제적인 영역에만 국한시켜도 상속 제도는 상속으로부터 전달된 생산 산물에 동반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생식에 따른 산물과 직접적으로 수반되는 복잡하고, 치열한 심리 작용 없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상속이 생식 없다는 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상속 제도가 가족과 성 관계 위에 있는 상부 구조라는 점이다. 정말로 아메리카 대륙 발건에 버금가는 발견이다. 이제까지 모든 사람들은 음식을 섭취할 필요성이 재산 소유 제도를 설명해주지 못하듯이, 생식이 상속 제도를 설명해줄 수 없다고 믿었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러시아에서도 봉토 제도가 번성 했던 시기에 토지가 상속으로부터 전달될 수 없다면 그것이 전부 재산일 뿐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당대의 사회 구조의 특수성에서 해명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아마도 그 시대 봉건 영지 소유자의 생식의 산물에 수반된 심리 작용이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게 구별됐다는 걸 그저 문제의 해명이라고 생각한다.

 

인민의 벗들을 한 꺼풀 벗기면, 부르주아가 나타난다. 정말로 상속 제도가 아이들을 양육하는 만큼이나 영원하고, 본질적이며, 신성하다는 걸 제외하고는, 상속 제도와 아이들 양육, 생식에 따른 심리 작용 사이에서 연관성에 대한 미하일로프스키의 고찰에 다른 무슨 의미를 덧붙일 수 있는가. 실제로 미하일로프스키는 상속 제도는 일정 정도 경제적 경쟁이라는 점으로부터 결정된다고 선언하면서부터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남겨두려고 애썼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회피하려는 시도, 헛된 시도였다. 상속이 어느 정도로 경쟁에 의존하는지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채, 무엇이 경쟁과 상속 제도 사이에서 이런 연관성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전혀 아무런 해명도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런 주장을 고려해보란 말인가. 실제로 상속 제도는 사유 재산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고, 사유 재산은 교환의 등장으로부터만 생겨난다. 그 토대는 이제 막 시작된 사회적 노동에 따른 분화와 시장에서 생산물 소외에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 공동체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들을 공동으로 생산하는 한, 사유 재산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업이 공동체를 장악하고, 구성원들은 개별적으로 한 가지 품목의 생산에 참가해서 시장에다 내다 팔 때, 상품 생산자들에 따른 이러한 물리적 고립이 사유 재산 제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유 재산과 상속은 둘 다 별도의 소가족들이 이미 생겨나고, 교환이 발달한 사회 질서의 범주들이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그가 입증하고자 했던 바와 정확히 정반대였다. 뿐만 아니라, 미하일로프스키는 사실에 입각한 또 다른 언급을 하면서, 나름대로 보석과도 같다. 계속해서 유물론을 바로잡으며 말한다.

 

'씨족 유대 관계에 관해, 문명화된 사람들의 역사에서 생산 형태에 따른 영향 아래에서 부분적으로 무색해진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스스로의 연속성과 일반화를 거쳐, 민족적인 유대 관계 속에 녹아들여갔다.'

 

그래서 민족적인 유대 관계가 씨족 유대 관계에 따른 연장선이자, 일반화라는거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사회의 역사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동화에서 빌려오는 게 분명하다.

그에 따르면 사회의 역사는 먼저 모든 사회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이 있고, 그 다음에 그 가족이 부족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족은 국가로 확대된다. 이는 순전히 부르주아적인 발상이다. 독립된 소가족이 지배적이었던 건, 부르주아 체제에서만이었고, 인류 문명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이런 가족 개념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미하일로프스키가 근엄한 태도로 이러한 헛소리를 되풀이하자면, 그저 러시아 역사가 걸어온 경로에 대해서조차 조금의 개념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어떤 사람은 고대 러시아에서 토착민들의 삶을 말할지 몰라도, 모스크바 차르들의 시대인 중세 무렵이 되면, 씨족 유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국가는 씨족 연합체가 아니라, 지역적인 연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지주와 수도원들은 여러 많은 지역에서 농민들을 확보해갔고, 그에 따라 형성된 사회는 순전히 영토 상 연관성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의 민족적인 유대는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적인 유대라고 할 수 없었다. 국가는 각각의 토지들로 갈라져 있었고, 때때로 예전에 누리던 자치의 강력한 흔저들, 행정적 특색, 때로는 군대, 관세, 국경 등을 그대로 유지한 공국들로 나뉘었다. 이런 모든 지역, 토지, 공국들은 하나의 통일체로 '융합된' 특징을 보인 건, 러시아 역사상 오직 현대 시기에 접어든 뒤, 대략 17세기부터였을 뿐이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그와 같은 융합에는 씨족 유대로부터 일어난 게 아니며, 연속성과 일반화로부터 일어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지역 사이에서 교환이 증가하고, 상품 유통이 점차 늘어나며, 작은 지역 시장들이 단일한 러시아 시장으로 집중되면서부터 생겨난다. 이런 과정을 이끌고 지배한 사람들이 상인 자본가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민족적인 유대의 형성은 부르주아 유대의 형성에 지나지 않는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이와 같은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장황한 말을 늘어놓다가도, 진부한 속물들의 사례들만 제시했다. 여기서 진부한다는 건, 그가 생식과 심리 작용으로부터 상속 제도를 설명하고, 씨족 유대로부터 민족성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물이라는 건, 그가 역사적으로 교환에 기초한 일정한 하나의 사회구성체의 범주와 상부 구조를 아이들 양육과 직접적인 성적 유대 같은 일반적이고, 영원한 범주와 동일선상에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주 특징적인 점은 자신의 주관에 빠진 철학자가 미사여구에서 구체적인 사실들로 옮겨가려고 시도하자마자, 스스로 난처한 처지에 빠져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확실히 그는 깨끗이 정리되지 않은 입장에 아주 안도하고 만다. 그 자리에 앉아서는 잔뜩 멋을 부리며, 자신의 주위에 온통 오물을 끼얹는다. 그는 역사가 계급 투쟁이라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이론을 반박하고 싶은 나머지, 심오한 태도로 그 주장은 '극단적'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마르크스로부터 창설되고, 계급 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된 국제노동자협회는 프랑스와 독일 노동자들이 서로 목을 베고, 약탈하는 걸 막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사실에서 유물론이 민족적인 자만심과 민족 간 증오라는 악귀를 청산하지 못했음을 입증한다고 단언한다. 주장에는 상공업 부르주아지에 따른 현실적인 이익이 그런 중오에서 중요한 토대를 구성하고, 민족 감정을 독립적인 요인이라고 말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만 할 뿐이라는 걸 비판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말 나온 김에, 이 철학자가 민족성을 심도 깊게 사고하지 못했음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인터내셔널을 언급할 때면, 언제나 부레닌 식의 반어법을 끄집어낸다.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 수장이었다. 그 조직은 갈가리 쪼개진 게 사실이지만, 다시 부활하게 된다.'

 

물론 내정의 기록자로 부레닌이러시아의 부2호에서 속물 같은 진부한 문고로 상세하게 설명한 공정한 교환의 체제 내에서 국제 연대에 따른 최첨단 조직이 등장할 수 있다면, 그리고 공정하건, 불공정하건,

교환이 언제나 부르주아지 규칙을 전제로 하고, 포함하며 국제적인 충돌의 중단은 교환에 기초한 경제구조가 파괴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인터내셔널을 비웃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미하일로프스키는 개별 국가에서 억압받는 계급을 압제 계급에 맞서 투쟁하도록 조직하고, 단결시키도록, 그런 전국적인 노동 계급 조직들을 세계 자본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단일한 국제 노동 계급 군대로 묶어내는 것 말고는 민족 간 증오에 맞설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는 걸 이해할 수 있겠다. 인터내셔널은 노동자들끼리 서로 목을 베는 걸 막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파리 코뮌 당시에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는 교전 중이던 지배 계급들을 상대로 보여주었던 진실한 태도를 미하일로프스키에게 상기시켜준다면 충분하다. 마하일로프스키는 모든 격렬한 비판에서 특히 역겨운 부분은 그가 동원하는 방법론이다. 그가 인터내셔널 전술에 불만이 있다면, 유럽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직 이름으로 된 사상을 함께하지 않는다면, 어쨌든 유럽 노동자들을 직설적이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다록 내버려두고, 그 자신이 더 편리하다고 여기는 전술과 더 정확하다고 여기는 견해를 설명하게 허용하는 게 옳다. 그러나 명확하고, 뚜렷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미하일로프스키는 엄청난 양의 공허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여기저기에다 무분별한 험담만 늘어놓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터내셔널 사상과 전술을 옹호하는 게 법적으로 금지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러한 행위를 쓰레기라는 표현 말고 다른 어떤 말로 부를 수 있는가. 미하일로프스키는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주장을 펼 때 동원한 방법도 마찬가지다. 직접적이고, 명확한 비판을 위해 자신의 논지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공들여 정확하게 표기하려는 수고를 들이지 않은 채, 자신이 우연히 주워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의 단편들에만 매달려, 그것들을 왜곡시키는 쪽을 선호한다. 다음의 말로부터 여러분들 스스로 판단해보시라.

 

'마르크스는 너무나 똑똑하고, 박식한 나머지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견해와 사회적인 현상들이 법칙에 부응한다는 사고를 발견한다는 게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주의 사다리에서 아래에서 계단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은 그러한 진실을 확립하는 데 들인 수 세기에 걸친 지적 노력과 힘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주장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해서는 왜곡하고, 조롱하고, 정복하려는 비판자의 목적이 쉽게 달성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방법론은 완전히 거짓이고, 사기라는 점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마르크스에 동의하지는 않을 수 있어도, 그가 예전에 사회주의자들과 비교해서 새로운 무언가로 여겨지는 견해들을 매우 정확하게 표현해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새로운 무언가란, 예전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입증하고자, 현존 체제에서 대중들의 억압을 보여주고, 각자는 자신이 생산한 걸 받아가는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준 다음, 그런 이상적인 체제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이라는 개념에서 인간 본성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으로 충분하게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그런 사회주의로 만족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마르크스는 현존 체제를 묘사하고, 판단하며, 비난하는 데만 스스로를 국한시키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현존 체제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을 제시했고, 여러 다양한 유럽과 비유럽 국가들에서도 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현존 체제를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와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사회의 기능 및 발전 법칙,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착취가 필연적이라는 공통적인 기반으로 환원시켰다. 그리고 위대한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과 그들의 형편 없는 아류들인 주관적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똑같은 방식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만이 인간 본성과 조화를 이룬다는 주장을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펼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대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와 같은 객관적인 분석으로부터 마르크스는 체제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한다는 걸 입증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가끔 접하게 되는 필연성에 관한 언급의 기원은 바로 거기에 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그 문제에 있어 동원한 왜곡은 명백하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이론의 전체적인 사실 관계와 본질을 생략하고, 전체 이론이 필연성이라는 한 단어에만 기대고 있듯이, 역사적인 필연성을 요구하는 게, 이것이다라는 게 이론의 증명이듯이 그 문제를 다뤘다. 달리 말해, 교리 내용에 대해서는 무엇도 말하지 않은 채, 오직 껍데기만 붙들고는 그저 닳아빠진 동전일 뿐이라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그것을 마르크스의 가르침으로 변형시키고자 갖은 애를 다 썼다. 물론 그의 우스갯짓을 따가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그런 종류의 행동은 이미 충분히 봐왔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부레닌을 기쁘게 하려고, 또 만족시키고자 까불어대도 내버려두자.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 뒤로, 구석에서 고함을 지르고, 그를 욕하도록 놔두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주장을 되풀이할 필요도 없이 유토피아주의자들 및 이상주의자들과 벌인 마르크스 논쟁은 그 자체로 편파적이었다. 이런 식의 공격을 가리켜 고함지르고, 욕하는 거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미하일로프스키가 그러한 격렬한 비판에서 실제적이고, 명확하고, 진실한 반론을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사회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이러한 논쟁이 극히 중요하다고 여겨, 아무리 주제를 기꺼이 논하려 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고함에 대답하기보다는, 단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코끼리를 향해 짖는 걸 보니, 애완용 강아지가 참 힘이 센가 보군!"

 

미하일로프스키가 역사적인 필연성에 대해 말했던 말은 흥미가 전혀 없지는 않다. 단지 부분적이라도 그것이 우리의 저명한 사회학자, 교양 있는 모임의 자유주의 회원들 사이에서 V.V. 보론초프 선생이 그러하듯이, 마하일로프스키 선생도 이런 수식어를 좋아했다. 진정한 이념적인 상투성을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발상과 개인의 활동의 중요성 사이에서 충돌, 사회적으로 활발한 인물들은 실제로 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때, 스스로를 활동적이라고 여기는 실수를 범하고, 역사적인 필연성이라는 내재적인 법칙들로부터 신비에 싸인 지하 조직으로부터 조종 당하는 꼭두각시들을 말한다. 따라서 자신이 무익하고, 장황하다고 특징짓는, 그 사상으로부터 도출된 결론 역시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꼭두각시 운운하는 모든 헛소리를 어디에서 얻어왔는지를 아마도 모든 독자가 다 알지는 못한다. 핵심은 자기 주관에 빠진 철학자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결정론과 도덕성 사이에서 충돌, 역사적인 필연성과 개인의 중요성 사이에서 충돌 같은 사고 말이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그 주제를 가지고, 엄청난 분량으로 종이를 채웠고, 도덕성과 개인의 역할 쪽에 서서, 이런 충돌을 해결하고자, 감상적이고, 속물 같은 헛소리를 수도 없이 지껄여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기에 충돌이란 전혀 없다. 그것은 결정론이 그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속물 같은 도덕성의 허를 찌를까 봐 두려워한 그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인간의 행위가 필요하다고 상정하고, 자유 의지에 대한 터무니 없는 말을 거부하는 결정론 사상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 또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파괴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와는 정반대로, 인간이 바라는 모든 걸 자유 의지 덕분이라 말하기보다는 엄밀하고,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건 결정론적인 관점 밖에는 없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필연성이라는 사고는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을 조금도 약화시키지 않는다. 모든 역사는 의심할 나위 없이, 능동적인 인물인 개인의 행동들로 구성됐다. 개인의 사회적 활동을 평가하는 데 있어 실제로 제기된 물음은 인간 행동에 따른 성공을 보장하는 건 어떤 조건에서이고, 이러한 행동들은 엄청난 양의 반대되는 행동들에 잠겨 고립된 행동으로 머무르지 않게 보장할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또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여타 국내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은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체제를 만들어낼 목적으로 하는 행동들은 진지한 결실을 맺고자, 대중들을 어떻게 글어들여야만 하는가. 분명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국내 사회 세력 집단들과 국내의 현실에서 실체를 구성하는 계급 투쟁이라는 이해된 방식에서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달려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미하일로프스키는 그것을 정확히 공식화하고, 해답을 내놓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내내 질문의 주변에서만 헤매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대답은 알다시피 국내 경제 체제가 부르주아 사회로 구성됐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체제의 본질 그 자체, 곧 부르주아지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에서 비롯된다는 견해에 기반을 둔다. 여기서 미하일로프스키의 진지한 비판에는 우리 체제가 부르주아 체제라는 견해나, 부르주아 체제의 본질이라는 개념과 그 발전 법칙을 직접적으로 겨냥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하일로프스키는 진지한 물음들을 다루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필연성이 너무 일반적인 범주라는 등 김빠진 미사여구로부터, 사안들을 처리하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미하일로프스키 씨, 계란에서 알맹이를 빼서 던져버리고, 그 껍데기만 갖고 논다면, 어떤 사상이든 너무 일반적인 범주에 해당한다. 당대의 정말로 진지하고, 시급한 문제들을 바깥 껍데기 속에 숨겨두는 건, 미하일로프스키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고, 그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핵심을 강조한다.

 

'경제적 유물론은 영웅들과 군중의 문제를 무시하거나, 잘못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동시대 러시아의 현실과 그 토대를 구성하는 계급 충돌이라는 문제가 미하일로프스키에게는 아마도 너무 일반적이어서, 미하일로프스가 그것을 회피하고 있다. 한편, 노동자건, 농민이건, 공장 소유주건, 지주건 간에 군중과 영웅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문제는 그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그러나 그 문제가 흥미로울지는 몰라도, 노동 계급의 해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유물론자들을 힐난하는 건, 속물적인 학문을 숭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또한 유물론에 대한 자신의 비판 결론을 내리면서, 미하일로프스키는 사실들을 그릇되게 전달하려는 또 한 차례 시도를 하고, 또 한 번 조작을 한다. 공인된 경제학자들이 자본유야무야 덮어버렸다는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견해에서 정확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는 특정한 집단의 독자들인 노동자들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학자들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학자들에게 공정성이나, 과학적인 비판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자본후기에서 그 점에 관해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털어놓았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은 독일 노동 계급이라는 폭 넓은 집단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찬사를 얻은 건 내 노력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다. 경제 문제에 있어 부르주아 관점을 대변하는 마이어(Mayer) 씨는 보불 전쟁 가운데 출간된 소책자에서, 독일인들은 유전적으로 소유하다고 여겨졌던 탁월한 이론 수용 능력이 이른바 독일의 교육 받은 계급들 사이에서는 거의 완전히 사라졌지만, 노동 계급 사이에서는 부활하고 있다고 적절하게 언급한 바 있다.'

 

유물론에 관한 또 다른 조작은 첫 사례와 전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논지는 이랬다.

 

'유물론 이론은 절대로 과학적으로 구체화되고, 입증된 적이 없다.' 그 증거는, '엥겔스, 카우츠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저작에 담긴 역사적인 내용에 관한 훌륭한 각각의 쪽들은 경제적 유물론이라는 딱지를 떼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음표가 화음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사실상 사회적인 삶의 총합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론은 이랬다. 경제적 유물론은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지 못했다.'

 

정말로 낯익은 속임수다. 그 이론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걸 입증하고자, 미하일로프스키는 우선 사회적 삶의 총합을 고려하지 않은 불합리한 의도를 그 이론 탓으로 돌림으로부터 사실을 왜곡시킨다. 사실은 정반대임에도 말이다. 유물론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경제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삶의 모든 측면을 분석할 필요성을 제기한 최초의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런 다음 미하일로프스키는 실제로 유물론자들이 사실상 경제학으로 사회적 삶의 종합을 설명했다고 선포한 뒤, 마지막으로 유물론은 타당하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미하일로프스키는 당신의 조작이 스스로만 타당하다는 걸 보여주고 말았다. 이것이 마하일로프스키가 유물론에 대한 반박에서 전개한 논리의 전부다. 반복해서 말하건대, 여기에는 어떠한 비판도 없으며, 공허하고, 가식적인 수다만 있을 뿐이다. 생산 관계가 다른 모든 토대를 이룬다는 관점에 대해 미하일로프스키가 제기한 반대 의견이 무엇인지를 물어본다면,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가 유물론적인 방법을 활용해 설명한 사회구성체 개념의 정확성과 그 구성체의 자연적·역사적 발전의 정확성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까. 그리고 그가 언급한 필자들이 제시한 많은 역사적 문제들에 관한 유물론적인 설명의 오류를 어떻게 입증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미하일로프스키는 아무런 반대 의견도 제시하지 못했고, 어떠한 반박도 전개하지 못했으며, 아무런 오류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문제의 본질들을 미사여구로 감추려 애쓰면 그저 변죽만 올렸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보잘것없는 속임수들만 꾸며냈을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박은러시아의 부2호에서도 계속 이어졌지만, 그에게 진지한 무언가를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지 조작의 영역에 있어서

그의 독창성이 벌써 바닥이 나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따는 점이다.

 

먼저 미하일로프스키는 사회적 삶의 복잡성에 대한 의견을 늘어놓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갈바니즘조차 경제적 유물론과 연관됐다고 말하는데, 갈바니의 실험들은 헤겔에게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란다. 어쩜 이렇게 재치 있을 수가 있을까. 미하일로프스키는 중국 황제도 쉽게 연결시킬 수 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미하일로프스키는 계속해서,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역사적 과정의 본질은 경제적 유물론 원리 또한 교묘하게 피해갔다. 분명 그것이 생산과 교환 형태의 결정적인 중요성의 발견과 이론의 여지가 없는 변증법적인 과정이라는 두 개의 기둥에 의존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유물론자들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변증법적인 과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달리 말해, 그들의 사회학 이론들이 헤겔의 삼단논법에 기초하고 있따는 말인 셈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에서 헤겔 변증법의 혐의를 씌우는 상투적인 수법을 목격한다.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부르주아 학자들로부터 이미 충분히 너덜너덜해졌다고 여겨지는 비난이다. 그 원리에 반하는 어떠한 근본적인 주장도 내놓을 수 없었던 그 신사양반들은 마르크스의 표현 방법에만 매달려서 그 이론의 근원을 공격함으로부터 본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하일로프스키는 그들의 그런 방봅론에 기대는 걸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는 엥겔스의 반뒤링론에 등장하는 한 장을 핑곗거리로 이용한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공격한 뒤링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헤겔의 삼단논법을 동원해서, 무언가를 입증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마르크스는 실제 과정을 연구하고 조사만 했을 뿐인데다, 마르크스가 인정한 이론의 유일한 기준은 현실과 일치였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때마침 어떤 특수한 사회 현상들의 전개가 헤겔의 법칙, 곧 정반합 이론과 딱 들어맞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현실적으로 전혀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놀라울 게 전혀 없다. 그리고 엥겔스는 더 나아가, 자연의 역사와 사회적인 영역으로부터 사례들을 인용한다. 맨 처음 원시 공산주의가 있었고, 그 다음 사유 재산, 그리고 그 다음에 자본주의 노동 분화가 있었다든지, 또는 맨 처음 초기 유물론, 그 다음 이상주의, 그리고 그 다음에 과학적인 유물론이 있었다는 등이다. 엥겔스는 핵심적으로 무게를 실어 펼친 주장으로는, 유물론자들은 정확하고, 올바르게 실제 역사 과정을 묘사해야만 하며, 삼단논법에 따른 올바름을 증명하고자, 변증법을 강조하는 건, 헤겔주의의 유산, 헤겔주의적인 표현 방식의 유산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삼단논법으로부터 무언가를 입증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누구도 그것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된 상황에서, 변증법적인 과정의 사례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것이 단지 원리의 근원을 가리킬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근원을 들어 어떤 이론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때, 미하일로프스키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엥겔스 주장들에서 이론의 근원 그 이상의 것을 식별해내고자, 유물론자들은 관련된 사실에 힘입어서가 아니라, 삼단논법으로부터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역사적 문제를 해결했다는 증거가 명확히 제시되어야만 한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그걸 증명하려는 시도를 했을까. 전혀 하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마르크스는 공허한 변증법적인 공식을 사실에 기초한 내용들로 꽉꽉 채웠고, 그래서 어느 것도 바꾸지 않고도 그릇에서 뚜껑을 제거하듯이, 변증법을 내용물로부터 제거할 수 있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어느 것도 바뀌지 않은 뚜껑에 대해 그토록 야단법석을 떨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유물론자들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변증법적인 과정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을까. 자신은 정작 이 뚜껑과 씨름하면서도, 과학적 사회주의에 따른 기둥들 가운데 하나와 씨름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굳이 미하일로프스키는 삼단논법의 사례들을 어떻게 분석했는지를 검토하지 않을 거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반복하건대, 과학적 유물론이나, 국내 마르크스주의자와 어떤 관련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은 있다. 무슨 까닭으로 미하일로프스키는 변증법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잗르의 태도를 그렇게 왜곡한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속담에서 말하듯이 미하일로프스키는 종소리를 들었지만, 어디서 들려오는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2. 미하일로프스키는 한 번 더 속임수를 쓴다.

 

1. 에서 마르크스 문헌을 읽으면서 미하일로프스키는 사회과학에서 변증법적인 방법론과 사회 문제 영역에서 변증법적인 사고 등에 관한 언급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됐다. 인간성이 단순한 그는 이러한 방법론이 헤겔의 삼단논법 법칙에 따라 모든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다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그런 생각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을텐데 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인 방법론이라 부르는 건, 사회를 끊임없이 발전하는 그리고 기계적으로 연결되어 별개의 사회적인 요소들에 따른 임의적인 결합을 일체 허락하는 무언가가 아닌 상태에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하는 사회학에서 과학적인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유기체 연구는 특정 사회구성체와 그 기능 및 발전 법칙에 따른 연구로부터 이뤄진 생산 관계에 따른 객관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추후에 미하일로프스키 자신의 주장들에 따른 변증법적인 방법론과 형이상적인 방법론에서 사회학에 따른 주관적인 방법론도 틀림없이 여기에 속하는 개념 사이에서 관계를 실증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당장은 엥겔스,사회주의: 낙원과 과학, 마르크스,자본철학의 빈곤으로부터 주어진 변증법적인 방법론에 따른 정의와 서술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기에서 헤겔의 삼단논법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사회 진화를 경제적인 사회구성체들에 따른 자연적인 역사 발전 과정으로 간주한다는 걸 목격한다. 이 점을 확인하고자, 1872,러시아의 부5호에 제시된 변증법적인 방법론에 대한 서술을 상세하게 인용한다. 이 글에서는 마르크스도자본2판 후기에서 인용한 바 있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이자본에서 활용한 방법론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으레 독일 비평들은 헤겔 식 궤변논법을 향해 악을 써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는 마르크스는 자신의 방법론을 보다 분명하게 입증하고자 언급된 글에서 제시된 방법론에 따른 묘사를 인용한다.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한 가지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현상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찾아내고, 특히나 중요한 점은 변화와 그런 현상들에 따른 발전 법칙, 한 가지 형태에서 또 다른 형태로 이행 법칙, 하나의 사회적인 관계 질서에서 또 다른 질서로 전환하는 법칙이었는데, 거기에는 그게 담겨 있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오직 한 가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바로 엄격한 과학적인 연구로부터 사회적인 관계에 따른 특정한 질서에서 필연성을 보여주고, 그리고 마르크스가 보기에 근본적인 출발점이라 여겨지는 점들을 할 수 있는 한 완전하게 확립해간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는, 사물들에 따른 현존 질서에서 필연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인간들이 그걸 믿든, 안 믿든, 그걸 의식하든, 안 하든 간에 상관 없이 이전의 질서로부터 필연적으로 성장해나와야 하는 또 다른 질서에 따른 필연성을 입증한다면 그것으로도 매우 충분하다. 마르크스는 사회적인 운동을 인간의 의지와 의식, 의도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는 인간의 의지와 의식, 의도를 결정하는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 자연사의 한 과정으로 여긴다. 의식적인 요소가 문명사에서 매우 종속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면, 문명을 주제로 한 비평은 의식의 어떠한 형태나, 결과도 전혀 그 기초로 삼을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곧 사상이 아니라 외부적이고, 객관적인 현상만이 출발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판은 주어진 사실을 또 다른 사실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거고, 사상을 비교하고, 대조하는 건 아니다. 매우 중요한 한 가지 문제로는 두 가지 사실들 모두 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연구되어야 한다는 점과 그것들 서로에게 있어서 사실상 다른 발전 시기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일련의 알려진 현상들, 그것들의 연속성, 서로 다른 발전 단계들 사이에서 관계에 대해 똑같이 정확한 연구가 이뤄져야만 한다. 마르크스는 경제 생활 법칙들이 하나로 이뤄졌고, 과거나 현재나 똑같다는 바로 그 발상을 거부했다. 그와 반대로, 모든 역사적 시기는 스스로 법칙들을 지닌다. 경제적인 삶은 생물학에서 여타 분야들에 등장하는 진화의 역사와 비슷한 현상으로 구성됐다. 초기 경제학자들은 그것들을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에 비유하면서, 경제 법칙들에 따른 본질을 잘못 이해했다. 보다 철저한 분석은 사회적 유기체들이 식물이나,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같은 관점에 따라 자본주의적인 경제 유기체를 연구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마르크스는 경제 생활에 대한 모든 정확한 연구가 가져야만 하는 목표를 엄격하게 과학적인 방식으로 공식화했다. 그런 조사에 따른 과학적인 가치는 특정 사회적 유기체에 따른 기원과 존재, 발전, 소멸과 또 다른 고등 유기체로부터 대체되는 과정을 통제하는 특수한 역사 법칙들을 드러내준다.

 

마르크스는 자본에 대한 다수의 잡지와 신문 비평에서도 찾아내서, 독일어로 번역한 변증법적인 방법론에 대한 서술이 그랬다. 그리고 마르크스 스스로도, 변증법적인 방법론에 대한 그러한 서술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물음이 생겨난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그다지도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삼단논법, 삼분법, 변증법적 과정에 따른 명백성 같은 헛소리에 대해 그러한 서술에서 단 한 마리라도 입에 올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그러한 서술을 거론한 뒤, 자신의 방법론이 헤겔의 방법론과 정반대로 아무렇지 않은듯이 말한다. 헤겔에 따르면, 사상의 발전은 삼단논법의 변증법적인 법칙들과 일치해서 현실 세계의 발전을 결정짓는다. 물론 그런 그의 말이 맞을 경우에만 삼단논법의 중요성, 변증법적인 과정에 따른 명백성을 논할 수 있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그와 반대로 의식은 물질의 영향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전반적인 문제는 현존하는 사물의상태와 그 필연적인 발전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데 있다. 오직 속물들만 관심을 갖는 뚜껑과 껍데기 역할 말고는, 삼단논법에서 그 어떤 다른 역할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과학적 유물론에 따른 기둥들 가운데 하나, 곧 변증법에 대한 비판에 착수하고, 모든 종류의 사물들, 심지어 개구리와 나폴레옹에 대해서까지 말하면서도, 변증법이 무엇인지, 사회 발전은 정말로 자연사 과정인지, 특수한 사회적 유기체로부터 경제적인 사회 구성체에 관한 유물론적인 개념은 올바른지, 구성체들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 방법론들은 옳은지, 사회적 이념들은 정말로 사회 발전을 결정짓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결정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 말이다. 이 경우 단지 그저 이해가 부족했나 보군 하면서 넘어가줄 수 있는 걸까.

 

2. 에서 변증법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이뤄진 뒤, 미하일로프스키는 헤겔의 삼단논법을 동원해 사물을 입증하는 방법론들에 따른 책임을 마르크스에게 전가시켰고, 물론 의기양양하게 싸운다. 그는 미래에 관해서 내재적인 사회 법칙들은 순전히 변증법에 기초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발전 법칙들에 따른 착취자들로부터 착취의 불가피성에 대한 마르크스 주장들은 순전히 변증법적이며, 토지와 자본의 공동 소유라는 마르크스 이상은 그 불가피성과 확실성이라는 의미에서 전적으로 헤겔에 따른 세 가지 용어 사슬의 끝에 기대었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에는 온전히 뒤링으로부터 빌려왔으며, 뒤링은 자신의국민 경제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역사에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미하일로프스키는 뒤링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혼자 힘으로 마르크스를 왜곡하는 이런 방식에 도달했을까.

 

엥겔스는 뒤링에게 매우 훌륭한 답변을 보냈고, 그가 뒤링 비판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엥겔스 답변에만 논의를 국한해본다. 독자들은 미하일로프스키에게도 전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알게 된다.

뒤링은 말한다.

 

'역사적인 묘사에서는 마르크스 책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훌륭한 부분이지만, 학문적으로 변증법이라는 목발에 의존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다. 헤겔에게 있어 부정에 따른 부정이라는 법칙은 더 훌륭하고, 명확한 무언가가 없을 때는 사실상 과거라는 자궁으로부터, 미래를 낳는 걸 돕는 산파로 기능한다. 17세기 이래로 앞에서 지적한 방식으로부터 효과를 발휘해온 사유 재산 폐지는 첫 번째 부정이다. 그 다음으로 부정에 따른 부정의 성격을 띠는 두 번째 부정이 뒤를 잇는데, 곧 사유 재산의 회복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더 높은 형태에서 그것은 토지와 노동 수단들에 따른 공동 소유에 기초한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유 재산을 또한 사회적 재산이라 부르고 있고, 여기에서 헤겔에 따른 더 높은 단계로부터 통일이 등장한다. 거기는 모순이 지양되게 되며, 헤겔에 따른 언어 마술에 따르자면 극복되고, 보존된다.'

 

'여기에 따르면 착취자들로부터 착취의 불가피성은 물질적인 외부 관계에서 역사적인 현실에 따른 자동적인 결과이다. 분별력 있는 사람에게 부정에 따른 부정 같은 헤겔 언어 마술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토지와 자본의 공동 소유에 따른 필연성을 납득시키기란 어렵다. 하지만 마르크스 개념들에 대한 모호한 이종교배는 과학적인 기초로부터 헤겔 변즙법에서 어떤 헛소리가 날조될 수 있는지, 또는 필연적으로 어떤 헛소리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는다. 이런 계약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헤겔의 첫 부정은 타락에 대한 교리문답식 개념이고, 둘째 부정은 구원으로 이어지는 더 높은 단계로부터 통일이라는 개념이라는 걸 분명하게 지적한다. 사실 증명에 있어 종교적인 영역에서 빌려온 이런 말도 안 되는 유추를 토대로 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모호한 재산 세계에 기꺼이 머물러 있고, 심오한 변증법적인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 수 있는 자신의 숙달된 능력에 사실 증명을 맡겨둔다.'

 

엥겔스는 다음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부정에 따른 부정을 활용 외에는 사회 혁명과 토지에 따른 공동 소윶 확립, 그리고 노동으로부터 생산되는 생산 수단의 필연성을 입증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회주의 이론을 종교에서 빌려온 이런 헛소리 같은 비유에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에는 헤겔의 지양된 모순에 따라 더 높은 단계로부터 통일로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유 관계가 더 지배적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러나 부정에 따른 부정을 잠시 놔두고,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유 관계를 들여다보자. 뒤링은 모호한 세계라고 규정했고, 정말 신기하게도 이 점에 관해 정말로 옳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호한 세계에 있는 건 마르크스가 아니라 뒤링 자신이다. 뒤링은 마르스크가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소유권에 따른 더 높은 단계로부터 통일이라는 개념을 마르크스에게 전가시키면서부터 마르크스를 헤겔과 같은 식으로 말할 수 있게 됐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부정에 따른 부정이다. 생산자에게 사유 재산을 다시 확립해주는 게 아니라, 그에게 자본주의 시대에 따른 획득물, 곧 토지와 생산 수단에 따른 공동 소유와 공동 운영에 기초한 사유 재산을 부여한다. 개인 노동으로부터 생겨난 산발적인 사유 재산에 따른 자본주의 사유 재산으로 탈바꿈은 이미 실제적으로 사회화된 생산에 의존하고 있는 자본주의적인 사유 재산으로부터 사회화된 재산으로 탈바꿈보다 비할 데 없이 시간이 걸리고, 폭력적이며, 어려운 과정이라는 건 당연하다. 이게 전부다. 착취자들의 착취로부터 발생한 형국은 따라서 사유 재산을 다시 확립하면서부터 성격이 규정되지만, 노동 자체로부터 생산된 생산 수단과 토지에 따른 사회적인 소유 관계에 토대를 둔다. 독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사회적 소유 관계가 토지와 다른 생산 수단으로 확정되고, 개인적인 소유 관계는 생산품, 곧 소비 품목으로 확장된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여섯 살짜리 아이들까지도 문제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는자본』Ⅰ, 56쪽에서 공동 생산 수단으로부터 작업을 하고, 서로 다른 모든 개인들에 따른 노동력이 공동체, 곧 사회주의 토대 아래에서 조직된 사회에서 결합된 노동력으로부터 의식적으로 적용된 자유로운 개인들에 따른 공동체를 상정한다. 이렇게도 말한다. 공동체에 따른 생산품 전체는 사회적인 산물이다. 생산품 일부는 새로운 생산 수단으로 기능하고, 그때에도 여전히 사회적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부분으로는 생존 수단으로 구성원들로부터 소비된다. 따라서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 부분을 분배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뒤링에게조차 충분히 명확하다.'

 

'계속해서 엥겔스는 그러나 마르크스에 있어 부정에 따른 부정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라고 말을 잇는다. 같은 책, 791쪽과 뒤이은 쪽에서도, 마르크스는 이른바 자본에 따른 본원적인 축적에 대한 경제적·역사적 연구를 담은 이전 쪽들에서 끌어온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 자본주의 시대 이전에 적어도 잉글랜드에서는 자신의 생산 수단을 가진 노동자의 사유 재산에 기초한 소규모 제조업이 존재했었다. 이른바 자본에 따른 본원적인 축적이란 이들 직접 생산자들에 따른 재산 박탈, 곧 노동 소유주에 따른 노동에 기초한 사유 재산 해체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소규모 제조업이 좁고, 원시적인 범위에서 생산 및 사회로만 양립할 수 있고, 특정 단계에서 스스로 소멸을 위한 물질적인 매개체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멸에 있어, 개인적이고, 산발적인 생산 수단이 사회적으로 집중된 생산 수단으로 전환된다는 건, 자본주의에 따른 초기 단계를 구성한다.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고, 노동 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자마자,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스스로 제 발 일어서자마자, 노동에 따른 사회화는 심화됐고, 토지 및 다른 생산 수단은 한층 더 자본으로 전환됐고, 따라서 더 한층 심해진 개인 소유주들에 따른 재산 박탈은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됐다. 남아 있는 박탈 대상은 스스로를 위해 노동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다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였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박탈은 자본주의 생산 자체에 따른 내재적인 법칙들에 따른 작용, 곧 자본의 집중으로부터 달성된다. 한 명의 자본가는 언제나 다수를 죽인다. 이런 집중과 나란히 해, 또는 소수로부터 다수 자본가들의 박탈과 나란히 해, 또는 소수로부터 다수 자본가들에 따른 박탈과 나란히 해 노동 과정에 따른 협동적인 형태, 과학에 따른 의식적인 기술과 적용, 토양에 따른 체계적인 경작이 훨씬 더 확대된 범위로 발전된다. 노동 도구들은 공동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노동 도구들로 전화되고, 노동 도구들을 활용해서, 사회화된 노동이 결합된 생산 수단같이 모든 생산 수단에 따른 절약이 일어난다. 이런 변화 과정에 따른 모든 이점들을 강탈하고, 독점하는 거대 자본들은 꾸준히 소수에게 집중되면서부터, 곤궁, 억압, 노예화, 몰락, 착취가 대량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더불어 노동 계급 봉기도 증가한다. 노동 계급은 자본주의 생산 과정 자체에서 원리로부터 언제나 수적으로 늘어나고, 훈련되고, 단결하고, 조직화된다. 자본은 함께, 그 아래에서 생겨나고, 발달해온 생산 양식에 따른 족쇄가 된다. 마침내 생산 수단에 따른 집중과 노동에 따른 분화는 자본주의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외피는 산산이 폭발해버린다. 자본주의적인 사유 재산의 조종이 울린다. 착취자들은 재산을 몰수당한다.'

 

'독자 여러분에게 물어보자. 변증법적인 장식과 수수께끼, 개념 상 포도당초 무늬는 어디에 있는가. 모든 건 결국 하나고 똑같다는, 뒤섞이고 판단이 잘못된 사상들은 어디에 있는가. 독실한 추종자들을 위한 변증법적인 기적들은 어디에 있으며, 헤겔식 이성 원리에 따른 알 수 없는 변증법적인 헛소리와 종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는 또 어디에 있는가. 뒤링에 따르면, 헤겔의 변증법 없이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설명을 구체화시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르크스는 과거 소규모 제조업이 그 자체의 발전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스스로 소멸하는 조건을 만들었듯이,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생산 양식도 소멸되는 물질적인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왔다는 걸 역사에서 드러내주고, 요약된 형태로부터 여기에 명시한다. 그 과정은 역사적이며, 동시에 변증법적인 과정이라면 아무리 뒤링에게는 불쾌하더라도, 그건 마르크스 잘못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역사적 · 경제적 사실들에 기초해 자신의 증명을 마무리 지은 뒤,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따른 결과인 자본주의적인 착취 방식은 자본주의적인 사유 재산을 생기게 하는 결론으로 나아간 건 오로지 그런 관점에서였다. 소유주에 따른 노동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인 사유 재산에 따른 첫 부정이다. 그러나 자연 법칙에 따른 불변성을 내포한 자본주의적인 생산은 스스로 부정을 생기게 만든다. 바로 부정에 따른 부정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그 과정을 가리켜 부정에 따른 부정이라 특징짓고, 그 과정이 역사적으로 필연이라는 걸 입증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건 아니다. 정반대로, 사실상 그 과정이 이미 부분적으로 발생했고, 또 부분적으로는 미래에 발생할 게 틀림없다는 걸 역사로부터 입증한 뒤에야 명확하게 변증법적인 법칙에 따라 발전하는 과정으로 특징짓는다. 그게 전부다. 그러므로 뒤링은 부정에 따른 부정이 과거라는 자궁으로부터 미래를 낳는 산파로 기능해야 한다거나, 마르크스는 부정에 따른 부정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누구에게나 토지와 자본에 따른 공동 소유에 대한 필연성을 납득시키고 싶어한다고 선언한 건 완전한 사실 왜곡이다'

 

독자들은 뒤링에 대한 엥겔스의 뛰어난 반박이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에게도 전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안다. 미하일로프스키 역시나 마르크스에게 있어 미래는 오로지 헤겔의 사슬 끄트머리에 존재하고, 불가피성의 확신은 믿음을 토대로 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뒤링과 미하일로프스키 선생 간 전반적인 차이는 두 가지 작은 지점들로 요약된다. 입에 거품을 물지 않고는 마르크스에 대해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뒤링은 자신이 쓴역사의 다음 대목에서, 마르크스는자본후기에서 헤겔주의라는 비난을 단호히 물리쳤다는 걸 언급하는 게 필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미하일로프스키는 자신이 변증법적인 방법론이라 여겼던 부분에 대해 마르크스는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해명한 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로, 미하일로프스키의 또 다른 독특한 구석은 시제 사용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마르크스는 미래에 대해 말하면서 왜 현재 시제를 사용하는가라고 의기양양하게 따지고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 문법이나, 가치 있는 비평을 들여다보더라도,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미래는 불가피하고,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여겨질 때면, 미래 시제 대신에 현재 시제가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왜 그렇고, 그게 확실해라고 미하일로프스키는 걱정스럽게 되묻는다. 왜곡까지도 정당화시켜줄 만큼, 자신의 아주 깊숙한 불안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말이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도, 마르크스는 절대적으로 명확한 답변을 내놓았다. 여러분은 그것이 불충분하다가, 잘못됐다고 여길지 모르나, 그 경우 여러분은 정확히 어떻게 틀렸고, 정확히 왜 틀렸는지를 보여주어야지, 헤겔주의 헛소리를 지껄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하일로프스키 자신도 그 답변이 무엇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까지 했던 시기가 있었다. 1877, 미하일로프스키는 주코프스키 선생에게 미래에 대한 마르크스 개념을 억측이라 여길 충분한 근거가 있었지만, 마르크스는 엄청난 중요성을 부여한 노동의 사회화라는 문제를 무시할 만한 도덕적인 권리가 없었다고 썼다. 당연하다. 1877년에 주코프스키는 문제를 회피할 도덕적인 권리가 없었지만, 1894, 미하일로프스키는 그럴 권리를 갖고 있었다. 독수리가 해도 되는 일을 황소가 해서는 안 되는가 보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조국 연보에서 언급된 바 있는 노동에 따른 사회화에 대한 이상한 개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다. 해당 잡지는 1883년에 발행된 7호에서 포스토로니라는 사람으로부터 온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어 발행한 적이 있었다. 포스토로니는 미하일로프스키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마르크스 개념을 억측이라고 여겼다. 포스토로니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자본주의에서 본 질적으로 노동에 따른 사회적 형태는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나의 지붕 아래서 갈고, 망치질 하고, 뒤집고, 올리고, 내리고, 당기는 등 수 많은 여러 작업들을 수행하는 데 해당한다. 해당 체제에서 전반적인 성격은 각자는 자신을 위해 일하고, 신은 모두를 위해 일한다는 속담에 아주 잘 표현된다. 여기에서 노동의 사회적인 형태가 자리 잡을 여지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들은 남자가 문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노동의 사회적인 형태는 하나의 지붕 아래서 일하는 것에 해당한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들을 현재까지는 국내 잡지들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잡지에다 옮기면서 여전히 자본의 이론적인 부분이 대체로 과학적으로 인정된다는 말로 안심시키고 싶어한다. 자본에 대해 약간이라도 진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기에, 대체로 인정되는 과학은 그 책에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가장 초보적인 무지를 계속 드러냈으며, 경제 교과서에나 나오는 시시한 말들을 되풀이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습관적으로 완전히 지나쳐온 문제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문제를 어쨌든 꼼꼼하게 되짚어보아야만 한다. 자본주의 생산에 있어 노동 사회화는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일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노동에 따른 분화와 특정 산업 분야에서 자본가들 수 감소 및 독립된 산업 분야들에 따른 수적 증가와 수 많은 독립된 생산 과정들이 하나의 사회적인 생산 과정으로 통합되는 경향 증가를 동반한 자본 집중에 있다.

 

소규모 생산자들 스스로 실을 잣고, 옷감으로 만드는 수공업 직조 시대에는 제조업 분야가 방직과 직조는 합쳐진 몇 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생산이 자본주의에 따라 사회화되면, 제조업 독립된 분야들에 따른 수가 증가한다. 면방적은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직조도 마찬가지다. 생산에 따른 바로 이런 분할과 집중은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킨다. 기계 제작, 석탈 채굴 등이 바로 그렇다. 더욱 더 특화된 제조업 각 분야에서, 자본가들 수는 꾸준하게 감소한다. 생산자들 사이에서 사회적인 연결 고리는 더욱 더 튼튼해지고, 생산자들은 단일한 하나로 결합된다. 고립된 소생산자들은 각자 여러 개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따라서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는 독립적이었다. 수공업자 자신이 아마 섬유를 짜고 잣고 만들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거의 독립적이다. 각자는 자신을 위해 일하고, 신은 모두를 위해 일한다는, 곧 무정부 상태에 따른 시장 변동을 뜻하는 속담이 정당화된다는 건, 바로 이러한 작고, 분산된 상품 생산자 체제에서다. 그러나 자본주의로 인해 달성된 노동 사회화 아래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직물을 생산하는 제조업자는 면실 제조업자에게 의존한다. 자본주의로 인해 달성된 노동 사회화에서는 면화를 키우는 자본주의 경작자와 기술 업무 소유자, 석탄 소유자 등에게 의존하는 식이다. 따라서 어떠한 자본가도 서로가 없이는 헤쳐나갈 수가 없다. 각자는 자신을 위해 일한다는 속담은 그런 체제에서는 전혀 적용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각자는 모두를 위해 일하고, 모두는 각자를 위해 일한다. 체제에 따른 성격이 완전히 변한다. 작고 고립된 기업들 체제에서 작업이 그 중 하나에서 멈춰 있다면, 사회 몇몇 구성원들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이며, 전체적인 혼란을 야기하지는 않고 따라서 전반적인 관심을 끌거나, 공공 개입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기업, 곧 고도로 전문화된 산업 분야에 관련해서 거의 사회 전체를 위해 작업을 하고, 또 반대로 사회 전체에 의존하는 기업에서 작업이 차질을 빚으면, 작업은 사회에 따른 다른 모든 기업에서도 차질을 빚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업으로부터만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얻을 수 있고, 기업의 상품들에 접근할 수 있어야지만 자신의 상품을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생산 과정들은 하나의 단일한 사회적 생산 과정으로 흡수되어 통합된다. 그러나 각 분야는 독립된 자본가로부터 굴러가고, 자본가에게 의존하며, 사회적인 생산품들은 자본가의 사유 재산이 된다. 그렇다면 생산 형태가 점취 형태와는 해소할 수 없는 모순으로 향한다는 건 명확하지 않은가. 점취 형태가 생산 형태에 적응해야만 하고, 사회적이며, 사회주의적이 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조국 연보에 기고한 영리한 속물은 전체를 하나의 지붕 아래서 작업하는 문제로 환원시킨다. 이보다 더 빗나간 주장이 어디 있을까. 과정에 있어 사회적인 측면, 곧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연합되며, 조직된다는 점에 대해서 여기서는 파생적이고, 부차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고, 오로지 물질적인 과정과 생산 관계에서 변화만 서술했을 때, 기초적으로는 국내 민주주의자들에게 설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소부르주아 사상에 따른 진흙땅에 아주 깊이 빠져 있어서, 소부르주아 질서 말고는 무엇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미하일로프스키로 돌아가보자.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발전 법칙 자체로부터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기초로 삼은 사실과 주장들에 대해 미하일로프스키는 어떤 반론을 제시했는가. 사회적 경제에 따른 상품 구조에서는 실제로 사회적 노동 과정에서 분화가 증가하지 않고, 자본과 기업의 집중도 없으며, 노동 과정 전반에서 사회화도 없다는 걸 미하일로프스키는 보여줬는가. 아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이런 식의 반박을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노동 사회화와 양립할 수 없는 무정부 상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유한 특징이라는 명제를 뒤흔들어본 적도 있는가. 여기에서도 미하일로프스키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든 자본가들에 따른 노동 과정들이 단일한 사회적 노동 과정으로부터 '융합'된다는 건 사유 재산과 양립할 수 있다고, 또 모순에 대한 일정한 해결책일 수 있다고, 마르크스가 제시한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을 떠올려 볼 수 있다는 걸 미하일로프스키는 증명한 적이 있는가.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하일로프스키의 비판은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가. 조작, 왜곡, 달그락거리는 소음에 불과한 일련의 말들이 바로 그렇다. 세 단계에 따른 연속적인 역사 발전에 대해 수 많은 헛소리를 늘어놓은 뒤, 마르크스에게 심각한 어조로, '그럼 다음은 뭐요'라고 따지는 비판자가 활용한 방법론들의 성격을 달리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미하일로프스키가 설명한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를 넘어서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자신의 학문과 혁명 활동 초기부터 마르크스는 사회학 이론이 현실 과정을 정확히 묘사해야만 한다고 매우 단호하게 요구했다는 점,공산당 선언에서 담긴 공산주의자들에 따른 이론 규범을 참조했을 때도 주목해주기를 바란다. 마르크스는자본에서 이런 요구를 엄격하게 지켰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인 사회 형태에 대해 과학적인 분석을 제시하는 걸 자신의 임무로 삼았고, 눈 앞에서 벌어지는 구성체 발달이 실제로 여러 경향을 지니고 있고, 필연적으로 소멸해 또 다른 형태, 더 높은 단계에서 구성체로 변화한다는 점을 보여준 뒤에 거기에서 멈췄다. 그러나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 원리에 따른 전체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눈을 돌린 채, '그래서 그 다음은 뭐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해댄다. 그러고는 심오한 말을 덧붙인다.

 

'엥겔스가 정확히 어떻게 답변할지 잘 모르겠따는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미하일로프스키, 솔직히 고백해야겠네요. 당신의 그런 비판 정신과 방법론들이 어떤 지를 아주 잘 알겠다. 다음 주장에서는,

 

'중세 시대에 소유주들은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마르크스 사유 재산 개념은 경제적 관계 영역에서조차 유일한 요인도, 지배적인 요인도 아니었다. 훨씬 더 많을 뿐만이 아니라, 마르크스 해석에서 변증법적인 방법론은 마르크스에게로 되돌아가는 걸 제시하지 않는다. 모든 구상들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그림을 제시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그 비율에 대한 그림조차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확해진다. 단지 과거와 현재, 미래 상태에서 모든 대상을 생각하는 인간 정신의 경향을 충족시켜줄 뿐이다.'

 

미하일로프스키, 사안을 왜곡하는 당신의 방식은 구역질날 정도로, 단조롭고 변함없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우선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실제 과정만을 명확히 드러내 보여주는 게 자신의 계획이라는 마르크스 구상안에다 삼단논법으로부터 모든 걸 증명하겠다는 의도를 넌지시 끼워넣으며, 그 다음에는 마르크스 구상이 미하일로프스키 자신이 몰래 끼워놓은 구상,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다른 모든 걸 생략한 채, 오직 첫 단계에서 한 측면만 회복시켜준다는 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뒤, 가장 뻔뻔스러운 방식으로, 구상은 명백히 역사적인 현실에 대한 그림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말았다. 엥겔스가 뒤링에게 말했듯이, 예외적으로라도 정확한 인용을 할 능력이 전혀 없는 인물에게 무슨 진지한 비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떤 측면에서 잘못됐는지를 보여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구상이 명백히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대중을 안심시키는 사람과 도대체 어떤 논쟁을 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 관점에 따른 실제적인 내용을 비판하는 대신에, 미하일로프스키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범주 주제에다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한다. 뒤링에 따른 영원한 진리'에 맞서는 주장을 폈던 엥겔스는 설파된 도덕은 봉건 기독교적인 도덕과 부르주아 도덕, 프롤레타리아 도덕이라는 세 가지 수준에서 도덕이며,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는 세 가지 도덕에 각각 담겨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미하일로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나는 역사를 시기 별로 세 가지로 분할하는 데 기초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범주가 자리 잡는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심오한가. 어떤 사회적인 현상을 그 발전 과정에 따라 검토할 경우, 과거의 유산, 현재의 토대, 미래의 기원이 언제가 그 안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엥겔스는 도덕 역사가 앞에서 언급된 세 가지 요인들에 한정되고, 봉건적인 도덕률 이전에 노예제 도덕률이 선행하지 않았으며, 노예제 도덕률 이전에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도덕률이 선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유물론적으로 해명하면서 도덕 사상에서 현대적인 경향을 자세하게 밝히려던 엥겔스 시도를 진지하게 비판하는 대신에, 미하일로프스키는 가장 공허한 수사로 안내한다. 미하일로프스키가 동원한 비판, 곧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개념이 어떤 책에서 어디에서 설명됐는지를 모르겠다는 발언으로 시작되는 비판에 대해서는, 미하일로프스키가 책들 가운데 하나를 알게 되고, 그걸 보다 정확하게 칭송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877, 미하일로프스키는 자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자본에서 헤겔 변증법이라는 무겁고, 서툴고, 불필요한 뚜겅을 제거한다면, 논문의 다른 장점들을 제쳐두고서라도, 형태와 그 존재의 물질적인 조건 간 관계에 대해 일반적인 질문에 따른 해답을 놀랍도록 공들인 자료에서 목격하게 되며, 질문을 명확한 영역으로 멋지게 공식화할 수 있다.'

 

형태와 존재에 따른 물질적인 조건 간 관계라니. 사회적인 삶에서 다양한 측면들 간 상호 관계, 물질적인 관계에 기초한 이념적 · 사회적 관계에 따른 상부 구조라는 문제를 말한다. 문제에 따른 잘 알려진 해결책은 유물론 원리를 구성하는데, 계속 나아가 보자.

 

'사실 전체로자본, 하나의 사회 형태가 생겨나자마자 어떻게 생산 방식과 새로운 시장과 과학에서 발견 및 발명, 개선된 부분을 스스로에게 종속시키고, 흡수해나가면서 발전해나가고, 전형적인 특징들을 두드러지게 만드는지와 그런 부분들이 사회 형태를 위해 작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지, 그리고 마침내 주어진 사회 형태가 어떻게 물질적인 조건에서 더 이상 변화에 맞서지 못하게 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기여한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1877, 전체로서 자본이 특정한 사회 형태에 대한 유물론적인 물음에 기여했었지만, 1894년에는 유물론적인 설명을 어떤 책의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니 말이다. 1877년에는 자본이 특정한 형태가 물질적인 조건에서 더 이상 변화에 맞서지 못하게 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었던 반면에, 1894년에는 어떠한 물음도 없고, 자본주의 형태가 생산력 발전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확신이 전적으로 헤겔의 삼단논법 끝에 기대어 있다고 밝혀졌다니. 1877, 미하일로프스키는 주어진 사회 형태와 존재에 따른 물질적인 조건 간 관계에 대한 분석은 필자의 논리력과 방대한 학식에 대한 기념비로 영원히 남게 될거라고 썼던 반면에, 1894년에는 유물론 원리가 어디에서도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증명된 적이 없다고 선언해버렸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참으로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우선, 1870년대 국내 농민 사회주의에서 그 부르주아적인 특성 때문에 자유에 코웃음치고, 국내인들의 삶의 적대적인 본질을 열심히 은폐했던, 눈썹 깨끗한 자유주의자들과 싸웠으며, 꿈꾸었던 농민 혁명은 완전히 쇠락한 나머지, 자유주의가 농민층에 따른 대규모 착취를 동반한다는 점을 잊어버린 채, 저 저속하고, 속물적인 자유주의를 불러들였다. 그 자유주의자들은 농민 농업에서 진보적인 경향들에서 고무적인 인상을 확인했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둘째로, 1877, 미하일로프스키는 자신감 넘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로, 마르크스를 자유주의 비판가들로부터 방어하는 임무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마르크스 방법론과 자신의 방법론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런 뒤, 변증법적 유물론과 주관적 사회학 사이에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을 엥겔스 글과 저작, 국내 사회민주주의자들, 그리고 플레하노프의 여러 글들을 읽다보면, 미하일로프스키에 대한 아주 적절한 평을 가끔 마주치는데, 이를 접하게 되자, 미하일로프스키는 진지하게 안장서 문제 전체를 되짚어보는 대신에 단지 이를 악물고, 반항하는 쪽을 택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18721877년에, 마르크스를 환영하는 대신에 의심스러운 칭찬 뒤에 숨어서 마르크스를 향해 짖어대고,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적 최약자들의 방어선, 창과 시골 지역 개선, 박물관과 수공업자들에 따른 협동조합, 마찬가지로 의도만큼은 선한 속물적인 진보 사상들에 만족하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사회 혁명을 옹호하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로 남아 이 사회에서 진정한 혁명적 부류들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조직하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향해 분노하고, 식식댄다.

 

머나먼 과거 영역으로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면, 여러분은 아마도 미하일로프스키가 마르크스 이론 비판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 비평가의 주장들을 종합하고, 요약해보도록 하자. 미하일로프스키가 무너뜨리는 데 착수했던 원리는 첫째로,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 둘째로는 변증법적인 방법론에 기초한다.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에 있어서는, 어떤 책에서 유물론이 설명됐는지 모르겠다고 선언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그런 설명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스스로 유물론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꾸며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유물론이 과도한 주장이라는 걸 이해시키고자, 그는 유물론자들이 인류 전체적인 과거, 현재, 미래를 해명했다는 주장을 편다는 말을 조작해냈으며, 뒤이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단지 하나의 사회구성체만을 해명한다고 인식한다는 점이 그들의 진짜 주장들로부터 드러나자, 그는 유물론자들이 유물론의 범위를 좁히면서부터,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리고 유물론이 작동되는 방법론들을 이해시키고자, 그는 유물론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해명할 만한 충분한 지식이 없었음을 스스로 고백했다는 말을 지어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단지 경제사 전반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1845-1846년에 고백한 게 전부이며, 출판된 논문에서도 자신들의 지식의 불충분함을 드러낸 적이 전혀 없음에도 말이다. 전주곡이 펼쳐지자, 곧바로 비판 자체가 뒤를 이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자본은 단지 하나의 시기만을 다뤘기 때문에 곧 소멸된 반면에, 자신은 모든 시기를 다루기를 원한다고 했다. 또한 자본은 경제적 유물론을 확인시켜준 게 아니라 단지 건드리기만 했을 뿐이라고도 했다. 유물론이 절대 과학적으로 확증된 적이 없다는 인식을 자아낼 만큼 충분히 무게가 실린 진지한 주장들이었다. 뒤이어 완전히 다른 국가에서 역사 이전 시기를 연구한 결과 역시 유물론적인 결론에 도달했음에도, 인간은 전적으로 유물론과 무관하다는 점만이 인용됐다. 더욱이나 생식을 유물론으로 이끌고 가는 게 완전히 잘못이라는 걸 보여주고자, 그리고 그건 언어적 기만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고자, 미하일로프스키는 경제적 관계가 성과 가족 관계에 기초한 상부 구조라는 걸 증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무게감 있는 비평가가 유물론자들을 교환시켜주고자 쏟아낸 서술들은 생식이 없으면 상속할 수 없다는, 복잡한 심리 작용이 생식의 산물들을 '수반한다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정신을 물려받도록 길러진다는 심오한 진로로부터 풍부하게 해주었다. 지나가는 말로, 또한 민족이 씨독 유대의 연장이자, 일반화라는 점도 알게 됐다. 유물론에 대한 자신의 이론적 연구를 이어가면서,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주장 가운데 상당수가 부르주아 체제 아래서 대중들에 따른 억압과 착취가 필연적이라는 주장과 그 체제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있다고 지적했고, 그런 다음에 서둘러 필연성은 너무 일반적인 개념이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신비주의자이자, 형이상학자라고 선언한다. 또한 미하일로프스키는 이상주의자들에 맞선 마르크스의 격렬한 비판이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단정지었지만, 주관적 방법론에 대한 이상주의자들의 견해와 이상주의자에 대한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과 관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두 번째 기둥인 변증법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대담한 비판가가 가한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공격은 방향을 아주 잘 잡았다. 무엇이든 삼단논법으로부터 증명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반박하고자, 엄청난 노력을 들여, 고군분토했고, 변증법적인 방법론이 삼단논법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정확히는 사회학에 따른 이상주의와 주관적인 방법론에 대한 거부에 있다는 점을 애써 무시해버렸다. 그런 다음 특별히 마르크스를 겨냥한 또 다른 공격이 이어졌다. 용감한 뒤링 선생의 도움을 받아,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가 삼단 논법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자본주의 파멸에 따른 필연성을 입증하려는, 놀랄 만큼 터무니 없는 시도를 했다고 뒤집어씌운 다음, 그런 터무니없는 시도에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저명한 사회학자의 얼마나 멋진 승리의 서사시란 말이던가. 그리고 그런 승리를 지켜볼 수 있었다는 건 또 얼마나 교훈적인가.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원리에 대한 비판과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도 없지만, 저 비평가의 이상과 현실 인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특징적인 또 다른 상황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다. 바로 서구 노동 계급 운동에 대한 미하일로프스키의 태도다. 앞에서 유물론이 과학적으로 아마도 독일 인민의 벗들의 과학을 말한다면, 스스로를 정당화시키지 못했다는 미하일로프스키 주장을 앞서 인용한 바 있다. 그러나 유물론이 노동 계급 사이에서 정말로 아주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고 미하일로프스키는 주장한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이 점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경제적 유물론이 폭 넓게 누려온 이른바 성공과 비판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형태로 퍼져나가는 현상은 주로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부터 확립된 일상의 관행 때문이지, 과학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부터 확립된 관행이라는 터무니 없는 표현에는 곧 유물론이 확산된 이유가 현실을 정확히 해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멀어진 채 전망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전망들은 그것들을 받아들인 독일 노동 계급이나, 이해 또는 비판적 사고의 노력 없이 미래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저 믿음을 요구할 뿐이다.

 

달리 말해, 유물론과 과학적 사회주의 확산은 그 원리가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서구 노동 계급 운동 역사에 대해 아주 초보적인 지식만 갖고 있어도, 이런 설명에 따른 완전한 어리석음과 잘못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하다. 과학적 사회주의가 절대 미래를 향한 전망 같은 걸로 치장하지 않았으며, 현재 부르주아 체제를 분석하고,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 따른 발전 경향을 연구할 뿐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마르크스는 1843년에 이미 시류에 대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18439, A. 루게에게 쓴 편지에서도 투쟁을 멈춰라, 당신들의 투쟁은 무의미하다는 시류에 대응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모든 역할은 진정한 투쟁 구호를 제공한다. 이 세계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를 세상에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의식이란 싫든, 좋든,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라고 자신의 구상을 마무리지었다. 과학적 사회주의가 자세히 설명된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저작물인 자본은 미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암시에 스스로를 국한시켰으며, 단지 미래 체제가 발달하는 출발점인 현재 요소들을 추적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도 누구나 알고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에 관한 한, 누구보다 미래 사회를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사람들이 갈등 없이 서로 잘 어울려 사는 체제, 착취가 아닌 인간 본성 조건에 일치하는 사회적인 관계와 발전에 따른 참된 원칙에 기초한 체제를 표현해서 인류에게 영감을 불어넣고자 했던 이들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그러한 사상들을 상세하게 밝힌 건, 굉장히 재능 넘치는 사람들의 집단이자, 가장 굳건한 확신을 가진 사회주의자들이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론들은 삶과 거리를 뒀고, 그들의 강령들은 대규모 기계 공업이 프롤레타리아 노동자 대중들을 정치적 삶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길 때까지, 그리고 투쟁의 진정한 구호를 찾게될 때까지 민중들에 따른 정치적인 운동과 연결되지 않았다. 이 구호를 찾아낸 건 마르크스였다. 단순히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엄밀하고 또 건조하기까지 했던 과학자, 미하일로프스키는 아주 오래 전인 1872년에 마르크스를 이렇게 불렀던, 그 마르크스 말이다. 그리고 전망이라는 수단으로부터 발견된게 아니라, 현재 부르주아 체제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부터 착취에 따른 필연성에 대한 해명, 발전 법칙에 따른 연구로부터 찾아냈다. 물론 미하일로프스키는 러시아 부독자들에게 그러한 분석을 이해하고자, 요구되는 건 지식도, 사고의 노력도 아니라고 단언했지만, 이미 미하일로프스키가 미하일로프스키의 경제학 조력자인 유자코프의 경우 한층 더, 그러한 분석이 확립한 초보적인 진실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켜봐왔기에, 그런 주장은 당연하게도 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대규모 자본주의 기계 공업이 발전하는 곳을 따라, 노동 계급 운동이 확산되고, 발전한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남아 있다. 사회주의 원리는 인간 본성에 일치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논쟁이 중단되고, 동시대 사회 관계에 대한 유물론적인 분석과 현재 착취 체제에 따른 필연성에 대한 해명이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에 꽃을 피운다.

 

이런 태도의 원리에다 진실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방식으로, 전망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씌움으로부터,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물론이 성공을 거둔 진짜 이유를 외면하려고 애썼던 미하일로프스키는 서구 유럽 노동 계급 운동에서 사상과 전술에 대해 가장 저속하고, 속물적인 방식으로 계속해서 조롱을 가한다. 지켜봐왔듯이, 미하일로프스키는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 사회화에 따른 결과로부터,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마르크스가 증명한 점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반박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하일로프스키는 자본주의자들로부터 빼앗긴 걸 되찾을 준비를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군대로부터, 모든 계급 갈등이 중단되고, 지상의 평화와 인간들 간 친선이 지배하게 된다는 발상을 가장 뻔뻔스러운 태도로 조롱한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사회주의 달성이라는 길로 향하는 그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확실한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인민의 벗들은 바람직한 경제적 진화에 따른 분명하고, 되돌릴 수 없는 길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그러면 아마도 이들 인민의 벗들은 실질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소환되기에, 노동자들이 인민의 벗들을 기다리는 동안에 인민의 벗들에 의지해야지, 절대 정당하지 못한 자기 확신으로부터 착취자들에 맞선 독자적인 투쟁을 시작하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정당하지 못한 자기 확신에 빠진 죽음의 주먹을 날리기를 소망하면서, 미하일로프스키는 주머니 사전에나 어룰릴 법한 과학에 노발대발해댄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주머니에나 들어가야 할 1페니짜리, 사회민주주의 소책자라니. 착취받는 사람들에게 해방을 위해 독자적인 투쟁을 벌이라고 가르치는 과학, 계급 적대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넘어가면서, 자신들에게 모든 일을 맡겨주기를 바라는 모든 인민의 벗들을 멀리하라고 가르치는 과학에 가치를 부여하고, 속물주의자들을 그렇게도 커다란 충격에 빠뜨린 1페니짜리 출판물들에서 그 과학을 상세하ㅔ 설명한 사람들이 얼마나 확고한 자기 확신에 찬 사람들이었는지는 이제 분명해진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인민의 벗들에 손에만 맡겨둔다면, 사정이 얼마나 달라질까. 그들은 노동자들에게도 진정으로 아주 방대한 지식과 속물 과학이 뭔지를 잘 보여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 본성에 일치하는 사회구성체를 아주 구체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소개시켜준다. 물론 노동 계급은 그들을 기다리는 데 동의만 하고, 정당하지도 못한 자기 확신으로 투쟁을 시작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2부로 넘어가기에 앞서.

 

전반적인 마르크스 이론이 아니라, 특별히 국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겨냥한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의 비판 2부로 넘어가기에 앞서, 약간의 여담을 늘어놔보자. 마르크스를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 이론을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도 않고, 심각하게 왜곡하기만 했던 미하일로프스키는, 뻔뻔스럽게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국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생각을 왜곡시켰다. 진실은 회복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초기 국내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상과 비교하기에는 아주 손쉬웠다. 1892,러시아 사상6호에 실린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의 글로부터 초기 국내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빌려올 텐데, 거기에서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말했고,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는, 또는 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르크스주의와 평생선을 긋는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 바 있다. 물론 미하일로프스키를 사회주의자들, 또는 국내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분류해놓음으로부터, 그리고 그들과 동경으로 놓음으로부터, 미하일로프스키를 화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논점의 방향이 양자의 경우에는 본질적으로 똑같고, 단지 단호하고, 직설적인 면, 그리고 확신의 일관성 정도에서만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조국 연보관점들을 서술하면서, 미하일로프스키는 이렇게 적는다.

 

'경작하는 사람이 땅을 소유하고, 생산자가 노동 수단을 소유하는 건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이상으로 여겼다.'

 

보다시피 시작은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고, 가장 바람직한 소망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 여전히 존재하는 중세적인 노동 형태는 심각하게 흔들려왔지만, 자유주의든, 비자유주의든 어떤 교리를 위해서 완전히 종식시킬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다.'

 

참으로 이상한 주장이다. 분명 어떤 종류에 따른 노동 형태든, 그것이 다른 어떤 형태로부터 대체된다면 흔드릴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를 분석하고, 해명하거나, 왜 낡은 형태가 대체되는지 확인하고자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자들이 노동 형태를 종식시킬, 곧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현존하는 생산 관계를 재구성할 어떤 수단을 소유하고 있단 말인가. 교리에 따라 이런 관계를 재구성한다는 발상은 터무니 없지 않은가.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계속 귀 기울여보자.

 

'임무는 원래부터 존재하던 문명을 민족적인 심연으로부터 우뚝 세우는 게 아니다. 갈가리 해체시키는 온갖 모순들과 더불어 서구 문명을 우리나라에 완전히 이식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이든 간에 좋은 걸 취해야만 한다. 우리 것이냐, 외국 것이냐는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실용적인 쪽의 문제다. 확실히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며, 이해하기 쉬워서 논의할 것조차 없다.'

 

정말로 이렇게 간단하다. 어디에서 온 것이든 간에 좋을 것을 취하자. 그러면 속임수가 완성된다. 중세적인 형태로부터 노동자의 생산 수단 소유를 취하고, 새로운 곧 자본주의 형태로부터 자유, 평등, 계몽, 문화를 취하라. 그러면 논의할 것조차 없다. 여기서 사회학에 따른 주관적인 방법론은 대낮만큼 명료하다. 사회학은 노동자 토지 소유라는 유토피아 낙원에서부터 출발해서, 여기저기서 좋은 것을 취하라는 소망을 실현시키는 조건을 알려준다. 철학자는 사회적 관계를 많은 제도에 따른 기계적인 단순한 총합, 곧 많은 현상들에 따른 기계적인 단순한 연속같이 보는 형이상학적인 견해를 취한다. 이러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로는 중세적인 형태로부터 토지 경작자 소유를 불쑥 꺼내들며, 하나의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벽돌을 옮겨놓듯, 다른 모든 형태에도 이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사회적인 관계를 연구하지 않은거고, 검토할 소재를 훼손시킨다. 실제로 당신이 받아들이듯이, 독립적으로 분리해서 존재하는 토지 경작자 소유 따위는 없다. 당시에 존재하는 생산 관계에 따른 연결 고리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대규모 토지 소유주들, 곧 지주들에게 토지를 분할해주면 그들은 농민을 착취하고자, 그 토지를 농민들에게서 할당해 토지가 일종의 임금이 되는 구조일 뿐이다. 농민에게 필요한 생산품을 제공해주고, 덕분에 대규모 토지 소유주들은 지주를 위해 초과 생산물을 생산한다. 또한 농민들이 지주에게 봉건적인 노역을 제공할 수단을 안겨준다. 필자는 왜 이러한 생산 관계 체계를 추적하지도 않고, 한 가지 현상만을 골라내어, 완전히 잘못된 방식으로, 그걸 해석하는 함정에 스스로를 가두는 걸까. 바로 필자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당시에 존재하는 노동 형태를 설명하고, 명확한 사회구성체이자, 생산 관계 체계로 제시하는 일은 전혀 시작하지도 않고 있었다. 마르크스 표기에 따르면, 사회를 기능과 발전에 있어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하기를 요구하는 변증법적인 방법론을 미하일로프스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새로운 형태를 논하는 데 있어서도, 왜 노동에 따른 낡은 형태들이 새롭게 대체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정확히 같은 잘못을 반복했다. 미하일로프스키가 보기엔 그러한 새로운 형태가 토지 경작자 소유를 뒤흔든다고 지적하고, 이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데만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다시 미하일로프스키 주장은 완전히 터무니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하일로프스키는 한 가지 현상인 토지 강탈을 골라놓고는, 상품 경제에 기초한 완전히 다른 생산 관계 체계의 한 요소로 제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도 않는다. 상품 경제는 필연적으로 상품 생산자들 사이에서 경쟁과 불평등, 일부 몰락과 다른 사람의 부에 따른 축적을 생기도록 만든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대중 몰락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는 주목했지만, 소수로부터 부에 따른 축적이라는 다른 측면을 무시했으며, 미하일로프스키가 양쪽 모두를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미하일로프스키는러시아의 부, 1894, 1호에서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고 일컫는 방법론들은 실제로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현실을 해명하고, 정면으로 응시할 능력도, 의지도 없던, 미하일로프스키는 무산 계급을 상대로 한 유산 계급의 분투와 함께 이런 삶의 문제들로부터 도피해서는 순수한 유토피아 낙원의 영역으로 굴욕적으로 숨어들어간다.

 

미하일로프스키에게는 뜨겁고도 복잡한 실제 현실을 이상적으로 다루면서부터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고 일컫는 이러한 행동에는 사실상 그가 실제 현실을 분석하고, 해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음을 드러내줄 뿐이다. 대신에 미하일로프스키는 다양한 사회구성체들로부터 개별적인 요소들을 분별없이 뽑아내는, 곧 중세 형태에서 하나를 뽑아내고, 새로운 형태로부터 또 다른 걸 뽑아내는 식으로 유토피아 낙원을 제시했다. 여기에 기초한 이론에는 실제 사회 진화와는 완전히 상이할 수밖에는 없는 운명이다. 공상주의자들은 여기저기서 뽑아낸 요소들로부터 형성된 사회 관계 아래서 살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농민과 쿨라크 간 관계, 수공업자와 구매자 간 관계, 노동자와 공장 소유주 간 관계를 결정짓는 사죄거 관계 아래서 살고 행동해야 했음에도, 그들은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도 그렇다. 이렇듯, 이해조차 하지 못한 관계를 자신들의 이상에 따라서 다시 끼워맞추려는 시도와 노력들은 결국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아주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무대에 등장했을 당시에도, 사회주의라는 문제가 어떻게 러시아에서도 정립됐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출발점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주관적인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착취에 따른 현실을 단지 지적하고, 비난하는 데서 만족하지도 못한 그들은 해명하기를 바랬다. 국내 개혁 이후로, 전반적인 역사가 대중 몰락과 소수 부의 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하고, 보편적인 기술 발전과 더불어 소수 생산자들로부터 막대한 부에 따른 독점을 주목했고, 그러한 양극화 경향이 어디에서나 발생하고, 증가한다는 점을 주목한 그들은 상품 경제가 발전하고, 공고화된 결과로부터 자신들이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경제 조직과 맞닥뜨리며, 필연적으로 대중 착취와 억압을 발생시킨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런 확신에는 그들의 실질적인 계획을 직접적으로 결정짓는 구실을 했고, 따라서 그들은 저 멀리 떨어진 두메 마을에서부터 최신식 공장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투쟁, 국내 경제 현실에 따른 주요한 알맹이를 구성하는 자산 계급에 맞선 무산 계급 투쟁에 결합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럼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을까. 대답은 다시금 현실로부터 제시한다. 자본주의는 산업에 따른 주요 분야들을 대규모 기계 공업 단계로 이끌었다. 이처럼 생산을 사회화하면서부터 자본주의는 새로운 체제를 위한 물질적인 조건들을 창출해냈고, 동시에 새로운 사회적인 동력을 만들어냈다. 다름 아닌 공장 노동 계급,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바로 그렇다.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착취에 종속된 경제적 본질에 있어 국내 노동 인구 전체가 착취에 종속된다. 공장 노동 계급, 도시 프롤레아리아는 그러나, 해방에 있어 특수하고도, 우호적인 위치에 선다. 더 이상 완전한 착취에 기초한 낡은 사회와 어떠한 연결 고리도 갖지 않게 되고, 노동 조건 자체와 삶의 환경이 계급을 구성할 때로 하여금, 정치 투쟁이라는 장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도록 하면서, 또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관심을 공장 노동 계급, 도시 프롤레타리아에게로 돌리고, 모든 희망을 이 계급에게 걸면서부터, 스스로 구상을 계급 의식 발전으로 치환할 수밖에 없고, 현 체제에 맞선 공장 노동 계급, 도시 무산 계급에 따른 직접적인 정치 투쟁을 돕고, 전체 국내 무산자를 투쟁으로 이끌어내는 방향으로부터 스스로 모든 활동들을 설정하게 된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이 싸우는 법

 

그럼 이제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이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서 어떻게 싸우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하일로프스키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적 견해, 그들의 정치적·사회주의적인 활동에 대해 어떤 주장들을 내놓고 있을까.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료 표현한다.

 

'진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선언한 바에 따르면, 역샂거인 필연성의 내재적인 법칙에 따라 국내 자체의 모든 고유한 모순들과 더불어 소수 자본가들이 막대한 몫을 빨아들이면서 스스로 자본주의 생산을 발전시킬거고, 그러는 사이 토지로부터 분리된 농민들은 프롤레타리아로 변모해서 통합되고, 사회화되며, 모자가 다시 나타나 사람들의 머리에 씌어지는 마술이 일어나고, 인류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가 아닌 오직 전망만을 취급하듯이 보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만 다를 뿐 어쨌든 간에 현실 인식에 있어서는 놀랍게도 인민의 벗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미하일로프스키의 생각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하일로프스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예측에서 낙원적인 부분은 전혀 없고, 모든 건 엄밀한 과학 요구에 따라 저울질되고, 측정된다는 걸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종적으로, 그리고 훨씬 더 명백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추상적인 역사 도식의 불변성을 믿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말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에 맞서 무엇도 구체적으로 내놓을 게 없는 사람들 모두가 오랫동안 동원해온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가장 시시하고, 저속한 비난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추상적인 역사 도식의 불변성을 주장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새빨간 거짓말이고, 꾸며낸 말일 뿐이다. 서구에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자본주의가 존재해야 한다고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어디에서도 주장한 적은 없다.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마르크스의 이론을 역사에 대한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철학적 도식이라고, 특정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대한 설명 그 이상이라고 간주한 적도 없다. 오직 주관적인 철학자, 미하일로프스키만이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부족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며, 보편적인 철학 이론이라 주장했다며 마르크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답변으로 미하일로프스키가 엉뚱한 문을 두들기고 있다는 걸 아주 분명하게 해명해주었다.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현실과 주어진 역사, 곧 국내 사회적·경제적 관계 외에 다른 걸 근거로 해서, 사회민주주의 견해를 품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려야 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 창시자인 마르크스는 직접 이론에 있어서 그런 요구 사항을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포한데다, 전체적인 이론에 따른 주춧돌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하일로프스키는 자신이 자신의 귀로 직접 추상적인 역사 도식에 관한 고백을 들었다고 주장하면서부터 마음껏 이런 주장을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하일로프스키는 직접 대화를 나눈 사람들로부터 그 모든 종류의 터무니 없는 헛소리를 들을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나 다른 누군가에게 있어 뭐가 그리도 중요할까. 그건 그저 미하일로프스키가 자신이 대화할 사람들을 선택할 행운을 누렸다는 걸 보여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물론 재치 넘치는 철학자의, 재치 넘치는 대화 상대자가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 등으로 불렀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악당들이 저마다 붉은 옷을 차려 입고 싶어한다는 걸 누가 모르나. 그리고 미하일로프스키는 너무나 명민하 나머지, 그런 광대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구별하지 못했다면, 또는 마르크스를 너무나 심오하게 이해한 나머지,

마르크스가 아주 강력히 전개했던 이론 전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공식화의 기준을 알차리지 못했다면, 단지 미하일로프스키는 영리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해줄 뿐이다.

 

미하일로프스키는 해당 매체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했던 사람으로,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로 명성을 홀로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혼동되지 않도록 유지하고, 글자 그대로 대표해온 플레하노프와 노동해방단이라 할 수 있는 사회주의 단체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미하일로프스키가 그렇게 했더라면, 품위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했어야 하는 행동이다. 미하일로프스키가 최초의 사회민주주의 저작인, 플레하노프, 우리의 차이점들을 참고 삼아 펴보기라도 했다면, 맨 처음 시작 부분에서 단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대신해서, 플레하노프가 단호하게 밝힌 다음 대목을 찾을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위대한 이름의 권위로부터 곧 마르크스 영향력으로부터, 강령을 잠시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미하일로프스키, 당신 러시아어 알아들 수 있을 거 아니오. 국내 정세를 판단할 때, 추상적인 도식들을 주장하는 거와 마르크스 영향력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 차이를, 이제 이해하겠소. 당신이 당신의 대화 상대에게 우연하게 들은 첫 견해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의견이듯이 말하고, 전체 사회민주주의 모임을 대표해서, 핵심 구성원인 한 사람이 천명한 내용을 무시한 게 얼마나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었는지 깨달았소. 그런 다음 플레하노프 선언은 훨씬 더 명확해진다.

 

'되풀이하건대, 가장 일관성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내 현 상황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정책에서는 이런 특정한 과학 이론을 아주 복잡하고, 서로 얽혀 있는 사회적 관계에 적용하려는 최초 시도'

 

라고 말한다. 과연 이보다 어떻게 더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들은 마르크스 이론 가운데 매우 귀중한 방법론만을 주저 ㅇ벗이 빌려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회적인 관계를 해명할 수는 없었겠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 기준을 추상적인 도식 같은 허튼소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마르크스 이론에 따른 정확도와 일치에서 찾았다.

 

여러분들은 이런 주장을 펼칠 때, 필자가 실제로 다른 무언가를 머릿속에 그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미하일로프스키가 상대했던 질문은 '국내에서 자본주의적인 발전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가'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그런 식의 질문은 마르크스주의 공식에서는 전혀 제시된 적이 없었고, 당국 정책이나, 사회 활동, 인간 본성에 조응하는, 사회 이상 같은 헛소리에 그러한 해야만 하는 기준을 발견하는 여러 다양한 토박이 철학자들의 주관적인 방법론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도식을 믿는 인물이라면,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는가를 묻는 쪽이 공정해진다. 그리고 분명 미하일로프스키는 변증법적인 과정에서 명백한, 마르크스 이론에 따른 전반적인 철학에서 중요도, 모든 국가가 그러한 단계를 거쳐야 할 필연성 등에 대해 말했었다. 그렇다면 플레하노프는 거기에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가. 마르크스주의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대답했다. 플레하노프는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은 완전히 제쳐두었다. 오직 주관론자들만 흥미를 느낄 법한, 쓸데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플레하노프는 오로지 현실 사회와 경제 관계와 실제적인 진화만을 다루었다. 플레하노프는 그런 잘못된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내놓기보다는, '국내는 이미 자본주의 길로 들어섰다'고 대답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미하일로프스키는 추상적인 역사 도식들에 대한 믿음에 대해, 내재적인 필연 법칙에 대해, 그리고 비슷한 믿기 힘든 험튼소리에 대해 전문가인 척 말한다. 그리고 미하일로프스키는 이룰 두고,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라고 부른다. 이런 게 격렬한 비판이라면, 엉터리와 같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건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앞에서 인용된 미하일로프스키 주장과 관련해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국내로는 스스로 자본주의적인 생산을 발전시키게 되겠다.' 이 철학자의 견해로는 국내에서는 분명 스스로 자본주의적인 생산에 아직 도달하지도 않았다. 미하일로프스키는 확실히 러시아 자본주의가 150만 노동자들에게 국한된다는 의견을 공유한다. 나중에 뒷 부분에서, 인민의 벗들에서도 유치한 발상과 다시 마주친다. 맹세코 그들은 자유 노동에 따른 모든 다른 형태들을 다음 주제 아래로 분류한다. '국내는 스스로 자본주의적인 생산을 그 고유한 모순들 속에서 발전시킨다.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 토지로부터 분리된 농민들은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된다.' 숲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무는 더 많은 법이다. 그래서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아직 고유한 모순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또는 단순히 말해서, 소수 자본가들로부터 다수 민중의 착취가 존재하지 않고, 인구 절대 다수는 몰락하는 가운데 소수만 배를 불리는 현상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농민에 대한 대규모 강탈이 없었다면, 국내 개혁 이후로 전체 역사가 어떻게 그렇게 비할 데 없는 강도로 전개될 수 있었을까. 실로 엄청난 용기를 지니고 있지 않고서야, 저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는 없었겠다. 그리고 미하일로프스키는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다. '마르크스는 이미 생성된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주의를 다뤘지만, 아직 그것들을 창출해야만 한다.'

 

국내에서도 아직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해야만 한다고. 국내에서, 대중의 벗어날 길 없는 빈곤과 노동 인민에 대한 후안무치한 착취가 목격되는 유일한 국가인 러시아에서. 국내 빈곤층 조건은 아주 타당하게도, 잉글랜드와 비교되어왔다. 그리고 수백만 명은 영구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국가에서 곡물 수출에 따른 꾸준한 증가가 나란히 목격된다. 이런 러시아에서도 아직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미하일로프스키는 살아생전에 그런 빼어난 주장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나온 김에, 나중에 국내 노동 인민의 참을 수 없는 환경에 위선적으로 눈을 감고, 그런 환경을 단지 흔들린다는 표현으로만 묘사하면서부터, 모든 게 정상 궤도에 놓이려면 문명화된 사회와 정부 노력들이 필요할 뿐이라는 걸 보여주고자, 인민의 벗들이 시종일관 끊임없이 사용해온 전술의 일환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들 기사 양반들은 노동 인민들의 환경이 악화되는 게 단지 흔들려서가 아니라, 대중들이 후안무치한 소수 착취자들로부터 수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자신들이 눈을 감는다면, 그러한 착취자들을 보지 않으려고 타조처럼 모래에 묻는다면, 착취자들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런 그들을 향해 당면한 현실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건 부끄러운 겁쟁이 짓이라고 말할 때, 착취라는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인민 대중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로 분리시키는 국내 사회에서 부르주아 구조와 부르주아 지배 기구인 국내 국가에 따른 계급적인 성격에 있다고 말할 때, 따라서 유일한 탈출구는 부르주아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에 있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말할 때, 인민의 벗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인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내쫓기를 원한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인민들의 경제 구조를 파괴하기를 바란다고 으르렁대기 시작한다.

 

모든 점잖지 못한 행동 가운데에서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말해서 가장 괘씸한 부분, 곧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치적인 활동에 대한 미하일로프스키의 격렬한 비판으로 말을 옮겨가보도록 하자. 사회주의자들과 선동가들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수행한 활동들은 합법적인 언론에서 정직하게 논의될 수 없고, 점잖게 검열을 거친 정기 간행물이 이와 관련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요령껏 침묵을 유지할 뿐이라는 점은 모두 알고 있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아주 초보적인 규칙을 망각했고, 독자 대중과 접촉면을 독점한 자신의 상황을 사회주의자들의 얼굴을 더럽히는 데 활용하는 데 전혀 양심의 거리낌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비양심적인 비평가와 싸우는 수단들은 설사 합법적인 출판 영역 바깥이라고 할지라도, 곧 발견된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순진한 척 가장하며 말한다.

 

'내가 알고 있기로,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마르크스주의적인 방관자들, 소극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 그리고 적극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이게 뭐지. 비평가 선생은 처한 환경에 따른 현실이 자본주의 사회이며,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부르주아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이라는 관점을 출발점으로 삼은 사회주의자들이 바로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는 점을 틀림없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어떻게 미하일로프스키는 그들과 일종의 분별없는 속물들을 뒤섞을 수가 있을까. 미하일로프스키는 무슨 권리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단어를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소신들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게 분명한 사람들, 결코 눈에 띄는 집단으로 행동한 적이 없고, 어디에서도 자신들의 구상을 발표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가. 미하일로프스키는 그런 터무니 없는 짓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수 많은 허점을 남겼다.

 

미하일로프스키는 상류 사회의 멋쟁이 분위기를 풍기면서,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아마도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고 농담을 내뱉는다. 대체 누가 언제 어디에서 그렇게 주장했다는 건가. 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이 모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살롱(응접실)에서, 사적인 편지에서, 좋다. 당신도 응접실이나, 편지로부터 그들과 실컷 이야기를 나눠보기 바란다. 하지만 당신은 언론에다 대고 어디에서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마르크스주의 간판을 내건 사람들에게 맞서는 주장을 편다. 그러면서 뻔뻔스럽게도 당신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신 역시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이름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오직 한 모임으로부터만 사용된다는 점과 그들을 다른 누구와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렇듯 미하일로프스키는 나쁜 짓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학생같이 사실을 비틀고, 왜곡시킨다.

 

'내가 여기서 비난을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독자들이 자신의 말을 믿게 하려 애쓴다. 내 귀로 들었고, 내 눈으로 보았다.'

 

당신의 눈에는 속물들과 비열한 악당들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기꺼이 믿어드리지요.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사회주의 활동뿐만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정직한 사회적인 활동이라면 '인민의 의지'(나로드볼리즘)이든, 마르크스주의든, 심지어 입헌주의든 간에 일정한 간판 아래 실질적인 활동을 벌이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 정치적 탄압을 받을 수 있는 현 시점에, 그 이름 아래 자신들의 자유주의적인 비겁함을 감추고, 미사여구나 늘여놓는 일부 사람들과 그에 빌붙어 자신의 둥지를 깃털로 감싸는 몇몇 철저한 악한들이 있다는 점을 누가 모를까. 온갖 종류의 쓰레기로부터 그 이름이 개인적으로 비밀리에 더럽혀진 점에 대한 책임을 앞에서 언급한 사상적인 경향들에 묻는 건, 오직 천박한 속물들만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미하일로프스키에게 전체적인 주장은 일련의 왜곡, 곡필, 조작이다. 앞에서 미하일로프스키가 사회민주주의자의 출발점인 진실들을 왜곡시켰고, 언제 어디에서든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부터 왜곡된 진실을 제시했다는 점을 알았다. 그리고 미하일로프스키가 국내 현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실제적인 인식을 설명했더라면, 미하일로프스키는 오직 한 가지 방식, 곧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의식 발전을 돕고 현 체제에 맞선 정치 투쟁을 위해 조직하고, 단결하면서부터 같은 견해들을 따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미하일로프스키는 또 다른 속임수 하나를 소매 속에 더 감추고 있었다. 상처 입은 무고한 피해자인 척 미하일로프스키는 위선적으로, 눈을 치켜뜨며 능글맞게 선언한다.

 

'이야기를 들으니 매우 기쁘지만, 나는 당신이 반대하는 게 뭔지를 이해할 수가 없군요. 소극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내 논평을 좀 더 주의 깊게 읽어보시오. 그러면 내가 말한 바를 알게 될테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을 거요.'

 

물론 이는 미하일로프스키가 예전에도 썼던 형편 없는 속임수의 재탕에 불과하다. 부탁하건대, 자신이 사회 혁명적인 인민주의를 비판하고 있다고 선언하고는 다음과 같은 말로 넘어갔던 인물의 행동을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지 누가 좀 알려주기를 바란다.

 

'내가 알고 있기로, 인민주의자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농민들의 생각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그에 부응해서, 아내를 회초리로 구타하난 행위나, 인민 대처 방침이라 불려온 정부의 혐오스러운 태형 정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일치시키면서부터 그것들을 촉진시켜나가는 일관성 있는 인민주의자, 일관성 있고 용감한 인민주의자로 변모시켜주는 언덕길이 있어 어쩌다 운 좋게 거기로 미끄러지지 않는 한 농민 의견 따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오직 결사와 같은 방식으로부터 외국의 혁명 운동을 국내에 이식하려 애쓸 뿐 그에 반하는 목소리는 전혀 낼 줄 모르는 겁쟁이 인민주의자, 부농으로 정직하게 살아가고자, 진취적인 농민이라는 민중적인 이상향을 철저히 실행에 옮겨, 땅에 정착한 용감한 인민주의자 말이다.'

 

물론 자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저속한 조롱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설령 인민주의자들이 저런 주장에 대해 같은 지면에서 반박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태까지 인민주의 사상이 불법화됐던 탓에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상이 정확히 어떤 건지도 모른 채, 단지 전해 들은 말만 쉽게 믿어버린다고 할지라도, 저런 사람이 어떤 인물일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같은 의견이다. 아마도 미하일로프스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똑똑히 잘 알고 있으리라. 어쨌든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이 앞의 말과 비슷한 내용을 암시한 대목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글을 읽고, 여기저기에 흩어진 내용들을 끌어모은 다음, 그것들을 비교해서, 진지한 반박거리를 찾아내는 작업보다 더 피곤하고, 생색 안 나고,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 여기까지.

 

 

발행자 주석

 

앞서 독자들은 일부 질문들에 대해 추가로 검토했다는 언급들을 보았을 텐데, 실제로는 그런 검토가 이뤄지지는 않았따. 그 이유는 현재 글이러시아 부에 실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사들에 대한 답변의 1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극심한 시간 부족으로 인해, 글을 때맞춰 발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두 달이나 늦어버린 상태에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고 판단을 내렸고, 그래서 글 전체가 인쇄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의 비판에 대한 고찰을 먼저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준비 중인 2, 3부에서 독자들은 1부에서 제시된 검토에 덧붙여, 국내 경제 상태에 대한 글과 뒤이어 나온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상과 전술과 관련해 러시아의 부에서 다른 핵심 인물들인 유자코프와 크리벤코의 사회적·경제적 관점에 대해 검토한 글을 보게 된다.

 


현행 판에 대한 주석

 

현행 판은 초판을 정확히 복사했다. 본문을 편집할 때 전혀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수정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출판에 관계된 일만 했다. 작업을 맡은 건, 소책자가 사회민주주의 정치 선전을 부흥시키는 데 있어 일정 정도 기여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적인 신념에서 피할 수 없는 귀결 가운데 하나로는 그런 정치 선전을 촉진시킬 준비를 한다는 믿음 속에서, 소책자 저자와 견해를 같이하는 모든 사람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론 특히 재발행으로부터도, 이 책자와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모든 기관지들이 할 수 있는 한 널리 배포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를 호소한다지금이야말로 일을 하기에 특히 적당한 때다.러시아 부는 더욱 더 도발적인 논조를 취한다. 사회민주주의 사상이 사회에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부터, 잡지는 프롤레타리아트 이익에는 관심이 없으며, 대중 파멸만 초래한다고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감히 생각건대, 그런 방법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상처를 입히고, 우리 승리를 향한 길을 닦아줄 뿐이다. 하지만 중상모략꾼들이 자신들의 정치 선전 모략을 아주 널리 퍼뜨릴 모든 물질적인 수단을 장악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발행 부수가 수천 부에 달하는 잡지를 소유하고, 열람실과 도서관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특권적인 위치에서 이점을 갖고 있더라도, 언제나 성공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라는 점을 적들에게 증명하고자,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만 하며, 노력이 현실화되리라는 걸 전적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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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장이 소실된「인민의 벗」은 1895-1896년, 당시에 노동해방모임과 사회민주주의 조직, 그리고 지방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비공식적으로 발 빠르게 알려져갔다. 그들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포고와 같은「인민의 벗」은 사회민주주의 동지를 저버린 자들에게 전하는 적나라한 고백과도 같다. 그래서「인민의 벗」을 다듬을 때면, 최대한 문장을 수정해서 고치지 않고, 정정해서 바로잡는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편안하게 누워 한 문장을 그대로 읽을 수도 있지만, 기존에 있던 글을 조금씩 옮기면서부터, 문장이 어울리도록 쓴다. 전에는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세세하게만 신경썼다면, 지금은 말하듯이 쓰는 게 읽는 사람들에게도 더 낫다는 생각이다. 글도 닿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한문을 우리말로 표기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자신의 이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모국어도 언어를 전달하는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정작 우리말로 바꿔봤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에 대한 잘못된 오류는 충분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출판되는 수 많은 연구 서적들과 덧붙인 견해는 더군다나『자본』이라는 뼈대와 대단히 동 떨어지고 멀어져서 복잡하고, 또 어려워진다. 오히려 그런 책은 따로 분량을 정해놓고 읽는다.「인민의 벗」에서 그는 특히 미하일로프스키 선생이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연구에 있어 형이상학적으로만 마르크스를 다뤘다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의 설명 덕분에 사회구성체 연구가 무엇이고, 또 어떤 점에서 비판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대목이다.「인민의 벗」은 정치경제학 서적이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있어서도 기존의 사회 과학에 대한 높은 수준의 비판에서 정수를 보여준다. 명민한 독자들이라면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민파와 같은 주관적인 연구 방법에 매몰된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자신의 주된 시각에 대한 검증 없는 한계를 실감해본다. 개인의 견해를 존중하더라도, 그것이 꼭 사실에 입각하는지를 물어볼 때면 인지도와 전문성에 따른 권위의 문제로 갇혀버리고는 만다. 느낌은 언제든 표현하면 되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도, 특히 혹독하게 비판 당한 그들과과 같은 견해를 가진 기존의 연구자들은 현재에도 과연 없는지를 되묻고, 상대해보게 된다. '인민의 벗'은 얼마나 노동 대중에 대해서도 위선과 기만으로부터 눈가리고 아웅인 일이던가. 


충분한 해명이지만, 흔하게 복제되는 저작권을 염두하더라도, 단순한 인용문이 아니라 번역자의 노고에 대해서는 경의를 먼저 표해본다. 만료된 문서에 대한 시중에 유통되는 출판사에 있어서도 책을 옮기는 과정에서 뒷따르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혼란스럽고, 어지로운 글이라고 여겨졌던 논지를 잘 파악하고, 거듭 정리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는 독자이기 때문에 매우 필사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전히 존경이란 없고, 소송만 남은 법률적인 사유 재산을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현사태를 보노라면, 가끔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문서란 자유이고, 또 연구란 공개인데, 모든 게 돈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도, 또 한 번 막혔을 출판사의 사정을 알게 된다. 물론 시시콜콜 참견하듯이 출판사의 경제적 사정과 어려움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쪽이 낫겠다. 사회민주주의를 홍보하는 방식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인 소모로나, 아무리 봐도 스스로 해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칼 리프크네히트,『군국주의와 반군국주의』를 정식 출판은 못했지만 비공식적으로 번역했었다. 물론 공장 번역기를 돌리면 그만이었다. 누구나 번역할 수 있는 분량을 한 글자 모두 신경써가면서 끝냈고, 얼마 없는 돈을 가지고 신뢰가는 인쇄소로 달려갔을 때는 지금도 놀랍고, 대단히 미친 짓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저 읽기만 했을 때는 몰랐다. 이제는 책 출판이 어렵지도 않고, 이런 일이라면 편집자들과 노동자들이 있다면 일도 아닐 정도로 훨씬 수월하게 작업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모르는 한 단어를 찾기 전까지도, 그에 맞는 글을 더 정확하게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수정해서 고친다는 마음보다 정정해서 바로 쓴다는 마음가짐이 더 들었다. 그들은 상업성을 위해서 더욱 재탕할 수 있고, 잘 팔리는 책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독자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닿는 한 그리고 할 수 있는 한에서도 번역에 있어 매우 아쉽다는 말은 어쩔 수 없이 뒤로 하고서라도, 할 만큼은 충분히 하고 있다는 말이겠다. 그러나 소위 작가라는 작자가 오히려 너무나 이기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지금 이 기록을 쓴 사람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시중에 유통되는 요즘 작가들에게 향하는 말이다. 독자들은 훨씬 더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작가들이 쓴 작품보다 더 뛰어난 글을 여러 차례 읽고는 했다. 그들과 독자의 차이란 단지 알려졌느냐, 덜 알려졌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뒤늦은 독자로도 최선은 다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태도가 생겨난다. 그래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다. 단지 정리이기 때문에『자본』으로 향하기 전에 아마 더 줄여나가야겠다. 작업 방식을 비밀로 하기보다는 공개하는 이유로는 그간의 성장통과 투쟁에 대한 공유를 혼자만 알면서 앓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자본』에 닿을 수 있을 때까지도 아마 꾸준할 필요는 생긴다.   


투쟁이란 느슨하게 흐지부지하거나, 그저 번지르르한 말도 아니고, 정해진 구호가 없는 외침도 아니더라. 그들이 자주 말하는 투쟁 없는 대화와 타협이란 바로 이론과 학습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생략해버린, 또 자신의 반성 없는 자본을 위한 헛된 노동을 두고 밤샘이라고 우겨대더라. 재탕을 우려먹으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고 말았을 때는 이미 뒤늦은 법이다. 그런 논리가 지금 역사 유물론자들의 논쟁으로까지 발전했다. 더군다나 자유주의자와 페미니스트가 손을 맞잡으며 부질 없는 투쟁이라고 부채질하며 둘러댈 때는 둘 모두에게 사치일 뿐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라는 지배적인 역사 앞에 늘 숨어버리는 그들은 얼마나 또 비겁해지는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온데간데없이 자신들만의 전차 앞에서 재탕하는 '민주주의' 를 옹호하다가도, 애쓴 시위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엉덩이 뒤에도 얌체 같이 숨으며 대의이든, 숙의이든 자신들의 머릿속을 헤매고 마는 해석의 변증법으로 갈리면서, 그들만의 혐오스러운 논쟁 아닌 섣부른 대화에 주궁장창이다. 실은 기껏해야 말빨로 자랑질하고, 하다못해 정치질은 또 수준급이라서, 입만 털면 혀가 긴 걸 보니, 여전히 그들에게 놓여진 심연이란 흐리터분한 인식처럼 더욱 어둡고도, 멀어질 뿐이다. 모두 때가 묻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린이도 배운 적 없는 패악질 속에 영원히 파묻혀 징징거리기 일쑤지만 한 두 번만 들어줄 수 있는 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러니 어찌해서 배우지 않을 수 없겠는가. 


언젠가 그는 대중들에게 소비에트 권력이 지닌 힘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렇다면 반대로도 한 번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있어 권력이란 누구의 손에 있고 또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가담한 사람들은 실제로 바뀐 건 그 무엇도 없으면서, 자신들이 여전히 고칠 수 있다고만 믿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해 인민의 벗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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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 노동자 투쟁

 

많은 농민들은 도시 노동자의 불안과 동요를 들었다어떤 농민은 중요한 도시나 공장에서 경찰 공무원으로부터지방 반란이라고 부르는 봉기를 보았다다른 농민은 여기에 참가해서 관리로부터 농촌으로 쫓겨난 노동자를 알고 있다또 다른 농민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노동자 유인물과 소책자를 손에 넣었다어떤 농민은 다만 도시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었다이전에는 학생들만이 봉기를 일으켰다그러나 현재에는 모든 대도시에서도 수 많은 노동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노동자들은 가장 부지런히 노동자들의 주인공장주자본가들과 싸운다노동자 파업을 일으키고공장에서 모두 일제히 일을 쉬면서 임금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하루 10시간이 아니라, 8시간만 노동시키라고 요구 한다노동자는 생활 개선을 요구한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이 더 잘 설비되고기계에 노동자를 보호하는 특수 장치를 설치해서 산업 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병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노동자 살림집은 강아지 굴이 아닌사람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집이 되어야만 한다고 희망한다.

 

그러나 경찰은 노동자 투쟁에 간섭한다경찰은 노동자를 체포하고, 노동자들을 감옥에다 집어넣고는, 고향이나 시베리아, 저 멀리까지 쫓아버린다정부는 법률로부터 노동자 파업과 집회를 금지시킨다노동자는 관리나 정부와 투쟁한다노동자들은 말한다수 백만 노동 대중은 이미 충분히 참아왔고자기 자신도 가난뱅이인 채로 지내면서부자를 위해 실컷 벌었고실컷 착취시켜 왔다고그래서 모든 노동자를 일대 노동 동맹(노동당)에 단결시켜서 공동으로, 보다 좋은 생활을 쟁취하고자 한다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 조직을 쟁취하고자 한다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에서는 부자도 가난뱅이도 있어서는 안 된다그리고 모든 사람이 노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한 움큼이나 가진 부자들이 아니라노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 노동에 따른 성과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기계와 기타 설비에 따른 개선은 모든 사람들의 노동을 쉽게 하려는 까닭이지수 많은 민중을 희생시켜몇몇 사람을 부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라고 불리우며사회에 대한 학설을 사회주의라고 부른다그리고 이 보다는 좋은 사회를 건설하고자 싸우는 노동 동맹은 사회민주당이라고 불리운다이런 정당은 러시아와 터키를 제외하고는모든 국가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또 우리나라 노동자도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부터 성립된 사회주의자와 공동해서사회민주노동당이라고 불리우는 정당을 만들어냈다정부는 사회민주노동당을 박해한다그러나 당은 모든 탄압에도 불구하고자신의 기관지와 소책자를 발행하고비밀 동맹을 만들기까지 해서은밀하게 존재한다그리고 노동자는 비밀 모임을 열 뿐만이 아니라떼를 지어거리로 나타나서 '하루 8시간 노동 만세!', '해방 만세!', '사회주의 만세!'라고 쓴 깃발을 휘날린다정부는 이런 까닭에도 기를 쓰고노동자를 박해한다정부는 그들을 총으로 다스리고자군대까지 움직인다군대는 야로슬라블페테르스부르크리가돈 강가 로스토프, 여러 곳에서 노동자를 쏴 죽였다그러나 노동자는 더욱 굴복하지도 않는다노동자 투쟁은 이어진다. 노동자는 말한다. 

 

'어떠한 박해도감옥도추방도주검도두렵하게 하지는 못하리행동은 정당하다수천만수억 민중을 압제와 가난으로부터해방시키고자 싸운다노동자는 더욱 자신을 자각해간다사회민주주의 수는 모든 국가에서도 재빠르게 늘어간다어떠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겨낸다.'

 

가난한 농민 여러분에게사회민주주의자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무엇을 바라는가민중을 위한 행복을 쟁취하고자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를 원조하고자, 농촌에서도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를 똑똑히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2.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보다 먼저 정치적 자유를 얻고자 노력한다정치적 자유는 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주의 사회 조직 투쟁에서도 모든 노동자를 널리 공공연하게 단결하고자 필요하다먼저 농민 해방과 농노제를 비교해보자농노제 아래에서 농민은 지주 허락 없이는 결혼을 못했으나현재에는 아무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다농노제 아래에서는 농민 촌장이 지정한 날에는 자기 주인을 위해 억지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됐다현재에는 어떤 주인 밑에서든 어느 날에 얼마만큼 품삯으로 일할까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농노제 아래에서 농민은 주인 허락 없이 마을에서 다른 데로 나갈 수도 없었다현재에는 공동체에서 허락하고 세금이 밀린 게 없고여행권을 받아 도지사지방 경찰 서장이 이사하기를 금하지 않는다면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어디로든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곧 이동에 따른 완전한 자유를 아직까지 농민은 갖지 못하고 있고여전히 절반은 농노적 상태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무엇 때문에 농민이 절반은 농노적 상태에 놓여 있는지 또는 어떻게 그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농노제 아래에서 농민은 주인 허락 없이는 재산을 가질 수 없었고토지를 살 수도 없었다현재 농민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공동체에서 나가는 완전한 자유자기 토지를 마음대로 처분하는 완전한 자유는 현재에도 갖고 있지는 못하다농노제 아래에서 농민은 지주에게 체형도 받았다농민은 비록 체형에서 해방되지 못했지만자기 지주에게 벌 받는 일은 없다여기서 자유란 시민적 자유가정 상 자유개인 상 자유재산 상 자유라고 불리운다농민과 노동자는 완전하지는 못하지만자신의 가정 생활을 해나가고개인적인 일을 하고자기 노동을 처리하고 자기 재산을 처분하는 자유를 가진다그러나 국내 노동자도모든 인민도 자기들의 일반 인민 문제를 처리할 자유를 갖고 있지는 않다모든 인민은 농민이 지주 밑에 매여 있으며 관리 아래에서도 매우 예속적이다민중은 관리를 택할 권리도 가지지 못하고국가 전체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대표자를 뽑을 선거권조차 갖고 있지 않다인민은 국가적 문제를 의논하고자회의를 열 권리조차 갖고 있지 않다동의 없이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관리는 오래 전부터 농민 동의 없이 촌장을 임명하듯이신문이나 서적 출판을 간섭한다국가 전체 문제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 앞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말할 수도 없다농민이 지주 노예였듯이인민은 여전히 관리 노예로만 남아 있다농민이 농노제 아래에서는 시민적 자유를 갖지 못하듯이인민은 여전히 정치적 자유를 가지지 못한다정치적 자유란자신들의 일반 인민적·국가적 문제를 처리하는 인민 자유를 뜻한다정치적 자유란 국회에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거하는 인민 권리를 의미한다모든 법률은 심의한 뒤 반포되지 않으면 안 된다또 한 모든 세금은 인민 자신이 선거한 의회에서만 결정되어야만 한다정치적 자유란 인민 자신이 모든 관리를 택하고모든 국가적 문제를 심의하고자집회를 열고 아무런 허가도 없이 마음대로 신문이나 서적을 발행하는 권리를 의미한다모든 다른 유럽 인민은 오래 전부터 이미 정치적 자유를 쟁취했다오직 터키와 러시아에서만 인민은 술탄 군주의 정부와 차르 황제의 전제 정부 아래에서 정치적인 노예 상태에 있다황제에 따른 전제 정치란 황제로부터 무제한적인 전제 권력으로부터모든 법률을 제정하고앞잡이가 된 모든 관리를 임명하는 걸 말한다그러나 황제가 모든 법률모든 관리를 알 수 없는 노릇이다황제로부터 국가에서 무엇이 시행되고 있는가도 알 수 없다황제는 다만 많은 사람들의 가장 지위 높고가장 이름난 관리 의사를 승인할 뿐이다한 사람의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를 희망해도큰 나라를 지배할 수는 없다황제가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게 아니라한 인간의 전제 정치에 대해서는 오직 말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한줌 가장 돈 많고가장 이름난 관리들이 국가를 통치한다황제는 다만 이 소수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만 알고 있다황제는 한줌 궁정 귀족 의사에 반대되는 일에는 무엇도 할 수 없다황제는 자신이 지주고귀족이다황제는 어릴 때부터 오직 이름난 사람들 사이에서만 생활한다그들은 차르를 교육하고교도한다전 인민에 대해 황제는 오직 유명한 귀족돈 많은 지주궁정에 가까운 가장 돈 많은 상인 가운데 소수가 아는 사실만 안다어느 군청에서도 여러분은 황제의 초상을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황제는 즉위식에 참석한 마을 노인들에게,

 

'귀족 회장 말을 잘 들어라'라고 명령했다그리고 니콜라이 2세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곧 황제 자신이 귀족 원조를 얻지 않고는귀족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농민은 귀족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 황제 말을 머릿 속에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황제 지배를 가장 좋은 지배같이 꾸미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인민에게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어떤 사람들은 말한다다른 국가에서는 선거 제도가 시행된다거기서는 부자들이 뽑힌다그런데 부자들은 불공평하게 통치하고가난한 사람을 괴롭힌다그러나 선거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전제 군주 황제가 모든 일을 지배한다황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보다도 위대하다황제는 모든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자에게도 똑같이 공정하다.

 

이런 언사는 거짓말이다누구나 제도가 공정하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있다누구라도, 한낱 노동자날품팔이 농민이라도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는지쯤은 알고 있다그런데 모든 다른 유럽 제국에서는 공장 노동자와 호미를 맨 농업 노동자가 국회로 들어갔다그래서 모든 인민 앞에서 노동자의 괴로운 생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노동자의 보다 좋은 생할을 위해 결합과 투쟁을 권고한다그러나 아무도 국민 대표의 연설을 중지시킬 수 없고경관이더라도 그들에게 손을 댈 수 없다대표자 제도조차 없다그저 부자나 유명한 사람들이 통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그들 가운데 가장 악질분자들이 통치한다궁정에서 보다 교묘하게 비방하고보다 재치 있게 알랑거리고남 흉을 보고굽실거리고아첨하는 무리들이 정치를 쥔다정치는 비밀리에 진행되어인민은 어떤 법률이 준비되는지어떤 전쟁이 일어나는지어떤 세금이 부과되는지어떤 관리가 무슨 까닭으로 포상을 받는지누가 바뀌는지 알 수 없고알 도리도 없다.

 

국내처럼 관리들이 많은 국가도 없다관리들은 어두운 수풀같이 투표권 없는 인민 위에 군림한다한낱 노동자는 결코 수풀에 다다를 수 없고결코 진리에 다다를 수도 없다수뢰·약탈·폭압이라는 죄목으로 관리에게 고발해도억울한 소송은 하나도 발표되지도 않는다곧 윗사람들이 주책이 없는 까닭에억울한 하소연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한 사람 소리는 결코 전 국민 귀에 미치지도 못하고어두운 밀림 속으로 사라지고는경찰 고문실 안에서 질식해버리고 만다인민으로부터 선출되지도 아니하고인민에게 책임 질 의무도 없는 관리 떼는 두꺼운 거미줄을 펼쳐놓는다사람들은 파리 같이 둥우리 속에서 손발을 벌벌 떤다황제의 전제 정치는 관리의 전제 정치다황제의 전제 정치는 인민 관리로부터특히 경찰로부터 농노적 예속이다황제의 전제 정치는 경찰의 전제 정치이다이런 이유로 노동자는 거리로 나와그들의 깃발에 '전제 정치 타도하라!', '정치적 자유 만세!'라고 쓴다.

 

이런 까닭에 수천만 가난한 농민 대중이 도시 노동자의 전투적 외침을 지지하고공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도시 노동자와 같이 시골 노동자와 무산 농민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적의 위협이나폭압에도 결코 놀라지 않으며첫 패배에도 마음 쓰지 말고모든 인민 자유 획득에 따른 결정적 투쟁에 나서서먼저 인민 대표자 소집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인민 자신으로 하여금전 국가에서 이들의 의원을 선출시키자그리고 의원으로 하여금 최고 회의를 만들도록 하라그래서 회의에서 국가에서 대의 제도를 창립하고관리와 경관에 대한 농노적 예속으로부터인민을 해방하고인민에게 언론·집회·결사 자유를 보장하자.

 

사회민주주의자는 먼저 이상을 요구한다최초 요구인 정치적 자유에 따른 요구이다정치적 자유국회 선거에 따른 자유집회에 따른 자유출판에 따른 자유가 고통 속에 있는 인민을 가난과 압박으로부터 곧바로 해방시키는 건 아님을 알고 있다도시와 농촌에 따른 가난한 사람을 곧바로 부자를 위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수단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노동 인민은 자신 이외에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수 없다노동자스스로 자신을 해방하지 않으면아무도 그를 가난에서 해방시키지 않는다그러나 자신을 해방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모든 지방에서전 국가에서 하나의 동맹으로하나의 당으로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나 전제적인 경찰 정부가 일체의 집회일체의 노동 신문노동자 대표에 따른 모든 선거를 금지한다면수백만 노동자는 함께 결합할 수 없다결합하기 위해서는 모든 동맹을 결성할 권리를 가져야만 하고정치적 자유를 지녀야만 한다.

 

정치적 자유가 노동 인민을 곧바로 가난으로부터 해방하지는 않는다그러나 노동자에게는 가난으로부터 싸우는 무기를 준다노동자 자신의 단결 이외에가난과 싸울 다른 수단은 없고또 있을 수도 없다정치적 자유가 없다면 수 많은 인민이 단결할 수도 없다국민이 제 손으로 정치적 자유를 쟁취한 유럽여러 국가에서 노동자는 벌써 오래 전부터 단결해갔다토지도재산도 갖지 못하고는 일생을 다른 사람 아래에서 고용살이를 하고지내는 노동자를 유럽모든 곳에서는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른다몇년 전에 노동하는 인민 결합을 촉구하는 부르짖음이 있었다.

 

"만국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이 말은 최근에도전 세계에서 널리 퍼졌다이 말은 수 많은 노동자 집회에서도 거듭 부르짖어 왔다그렇다면여러분은 이 말을 모든 국어로 씌어진 수 많은 사회민주주의 소책자와 신문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물론 수 많은 노동자들을 하나의 동맹하나의 정당으로 연합한다는 건 오랜 시간인내심꾸준함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노동자는 가난 때문에 지치고자본가나 지주에 대한 끊임 없는 고역으로 우둔해져간다노동자들은 왜 자신들이 영구적으로 가난하고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조차 거의 갖지도 못한다노동자 단결은 여러 가지로도 방해된다곧 정치적 자유가 없는 국가에서는 직접적인 광포한 탄압 또는 사회주의 학설을 선전하는 노동자를 일터에 고용하기를 거절한다든지또는 최후에는 기만이나매수로부터 방해한다그러나 어떤 폭압도어떤 박해도전 노동 대중을 가난과 압박으로부터 해방하는 위대한 사업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무산자 운동을 막아낼 수는 없다사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노동자 수효는 끊임 없이 늘어간다.

 

이웃 나라 독일에서는 대의 제도가 갖춰졌다이전에는 독일에도 무제한적인 절대·전제적 군주 정치가 존재했다그런데 독일인은 무력으로 전제 정치를 타파하고자신의 손으로 정치적 자유를 쟁취했다독일에서는 법률이 한줌 관리로부터 발표된 게 아니라국민 대표 집회에서나의회에서 또는 제국 의회로부터 제정됐다성년이 된 모든 남자는 의회에서 대표를 선거한다그런 까닭에 사회민주당원에게 얼마나 투표됐는가를 계산할 수 있다. 1887년에는 전체 투표 1/10은 사회민주당원에게 투표됐다독일 제국의회로부터 1891년 시행된 사회민주당 투표 수는 약 3배로 늘었다전체 투표 수 1/4 이상이 이미 사회민주당에게 던져진 셈이었다. 200만 이상 성인 남자는 사회민주당 대의원을 의회로 보냈다아직 독일에서는 사회주의가 농촌 노동자들에게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으나농촌 지방으로 확대된다그래서 날품팔이와 무산 빈농 대중이 도시 형제와 서로 손을 잡으며독일 노동자는 승리를 얻고노동자의 가난도 압박도 존재하지 않는 질서를 세울 수 있다.

 

사회 질서 아래에서왜 거대한 국민 대중에 따른 가난이 생기는가를 똑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부유한 도시가 발달하고화려한 상점과 가옥이 건설되고철도가 부설되고공업과 농업에서 모든 기계에 따른 개선이 실시된다그런데 수백만 인민은 변함 없이 가난으로부터 빠져나가지도 못하고오직 가족을 부양하고자자신의 일생을 바치고만 있다뿐만이 아니라실업자는 더욱 증가하고전혀 아무 일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도시에서나농촌에서나더욱 더 증가해간다농촌에서는 굶주리고도시 실업자는 떠돌이와 룸펜 무리를 증가시키고는교외 오막살이나모스크바 피트로 시장에 있는 무서운 빈민굴이나지하실에서 짐승 같은 생활을 지낸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부는 더욱 늘어나고사치는 더욱 더 심해져만 가는데자신의 노동으로부터 모든 부를 만들어 내는 수 많은 사람들은 정작 늘 가난에 시달린다무슨 까닭일까농민은 굶주린 채로 죽어가고노동자는 직업이 없어서 거리를 방황한다그런데도 상인들은 국내로부터 외국에다 수백만 푸드 밀을 수출한다상품을 둘 곳도 없으며팔 곳도 없어서 공장마저 쉰다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먼저 막대한 토지공장제작소기계건물기선 등이 소수 부자 사유로 있기 때문이다토지공장제작소에는 수 많은 인민들이 노동하지만그것은 또 수 많은 부자·지주·상인·공장주들에게 소속된다부자들을 위해 인민이 고용되어 품삯을 위해고작 빵부스러기를 위해 노동한다약간의 노동자 생활비 이상으로 만든 건 모드 부자 손으로 들어가고그들의 이윤, '수입'을 이룬다기계와 노동 개량으로부터모든 이익은 토지 소유자자본가 품 속으로 들어간다그들은 수 많은 부를 축적한다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이 부에서 아주 약간 남은 것만 주어진다노동하는 사람들은 노동하고자 한데 모인다규모가 큰 농장이나대공장에서는 수백 명 또는 수천 명 노동자들이 함께 모인다대단히 여러 가지기계를 사용해서 노동하기 때문에일의 능률도 더욱 높아진다한 사람 노동자는 예전에는 아무런 기계또 쓰지 않고 일하는 수십 명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생산한다그러나 노동에 따른 능률성과 생산성을 이용하는 건모든 노동자들이 아니라다만 소수 대지주·상인·공장주뿐이다지주와 상인은 인민에게 일을 주고 빈민에게는 날품을 준다가까운 공장 또는 농장이 지방 농민을 부양한다는 식으로 말한다그러나 실제로는 노동자가 그의 노동으로부터 스스로 노동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부양한다그런데 지주 토지와 공장 또는 철도에서 일하는 걸 허락받는 대가로 노동자를 아주 약간 생활비를 받고 자신이 생산한 걸 모두 소유자에게 무료로 넘기고 있다곧 실제로 지주나 상인이 노동자에게 자신의 노동 대부분을 무료로 소비해서노동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부양하고 있다.

 

더욱 상세하게 이야기해보자면모든 근대적 국가에서 인민의 가난은노동자가 판매를 위해 시장을 목표로 하고일체 물품을 만들기 때문에 생긴다공장주와 제조업자지주와 붕농은 판매를 하고돈을 받고자 여러 제조품을 생산하고가축을 기르고곡식을 심고 수확한다돈이 도처에서 주요한 힘이 된다인간 노동에서 모든 생산물을 돈과 교환된다필요한 건 무엇이든지 돈으로 살 수 있다곧 무산 대중으로 하여금돈 가진 사람을 위해 노동한다예전에는 토지가 주요한 힘이었다특히 농노제 아래에서 그러했다토지를 가진 사람은 힘과 권력을 가졌었다그러나 지금에는 돈곧 자본이 주요한 힘이 된다토지는 돈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돈 없이는 토지를 충분히 이용할 수도 없다세금 내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쟁기나 다른 기구를 살 수도 없으며가축과 의복다른 모든 도시의 상품도 살 수 없다거의 모든 지주들이 돈을 목적으로 은행에 자기네 토지를 담보로 넣었다돈을 얻고자 정부는 전 세계 부자와 은행가에게 빚을 내고빚 때문에 1년에 수억 루블의 이자를 낸다돈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지금도 서로 무서운 싸움을 벌인다누구든지 더 싸게 사고더 비싸게 팔려고 애쓴다누구든지 남에게 뒤지지 않게 상품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팔고값을 내리고유리한 판매 시장 또는 유리한 주문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려고 애쓴다소자본가소장인소농민 등은 공통 싸움에서 돈 때문에 누구보다 더 곤란에 빠진다그들은 늘 돈 많은 상인이나 돈 많은 농민에게도 뒤떨어진다그들에게는 조그만 저축도 없다그날마다 먹고 산다재정 곤란이나불행한 일이 닥쳐올 때마다그들은 가정 집기를 전당포에다 잡히거나최후에는 아주 헐값으로다가 밭갈이에 쓰는 가축을 팔지 않으면 안 된다그들로는 한 번 부농이나고리대금업자 손에 떨어지면 그뿐으로그 손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드물고대부분은 몰락해간다.


매년 수 많은 소농과 소수공업자가 그의 집을 다 버리고는 거의 무료 단체로 토지를 넘기고는 임금 노동자농업 노동자미숙련 노동자무산자가 되고 만다그런데 부자는 이 돈을 위해 투쟁에서부터 더욱 더 부자가 되고번창해간다부자는 수백만수억 루블을 은행에다 예금한다그리고 자기 자신의 돈뿐만이 아니라은행에 예금한 남의 돈으로도 이익을 본다소자본가는 은행이나 저축 은행에 예금한 수십 루블이나 수백 루블에 대해 1루블 당 3,4카페이카 이자를 받지만부자는 이 수십 루블의 돈으로부터 수백만 루블의 돈을 만들고수백만 루블의 돈으로부터 자기 거래를 확대해서, 1루블 당 10카페이카나 20카페이카씩 벌어들였다.

 

그러므로 금융업에서 지금 상태를 아래로부터 위까지 고치고는 사회주의 기구를 만들 때곧 대지주에게 그들의 토지를공장주에게서 그들의 공장과 경영을은행주에게 그들의 화폐 자본을 몰수할 때그들의 사유 재산을 폐기해서전국 노동 민중 손으로 놓여지게 될 때비로소 민중의 가난은 끝날 수 있다고사회민주주의 노동자는 말한다노동자 노동은 남의 노동으로 사는 돈 많은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도리어 노동자 자신과 그들이 뽑은 대표자들이 처리한다공동 노동에 따른 결과와 모든 개선 및 기계 장점을 모든 노동자도 이용한다부도 더욱 빠르게 증가하는 데왜냐하면노동자가 스스로를 위해 자본가를 위할 때보다더 열심히 노동할 수 있고노동일을 더욱 줄이고노동자 생계가 더욱 좋아져 모든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그러나 금융 상태를 개선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오랫동안 꾸준한 싸움이 필요하다모든 부자모든 자본가모든 부르주아지는 모든 힘을 다해재산을 지킨다모든 유산 계급 및 부자 계급을 수호하고자관리와 군대가 일어선다정부 자신이 유산 계급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노동자는 남의 노동으로 사는 모든 사람에게 대항하는 싸움에서 한 사람같이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노동자는 자신과 모든 무산자를 하나의 노동 계급으로하나의 무산 계급으로단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이 싸움은 노동 계급에게는 결코 쉽지도 않다반드시 노동자 승리로 끝난다왜냐하면부르주아 혹은 남의 노동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든 민중에게는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노동 계급은 모든 민중 절대 다수다노동자 대 자본가는 다수 대 소수를 말한다노동자는 위대한 투쟁을 위해 하나의 사회민주노동당으로 연합해간다경찰 눈을 피하며비밀리에 연합하는 일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역시 연합은 공고히 되고 발전된다인민이 정치적 자유를 자기 손으로 쟁취할 때노동 계급을 연합하는 사업인 사회주의 사업은 독일 노동자 사이에서도 진행되고 있으며훨씬 더 빠르게 진행된다.


3. 부유와 가난농촌에서 재산 소유자와 노동자

 

사회민주주의자는 인민을 가난으로부터 해방하고자 모든 부유한 계급과 싸운다그런데 농촌에서 가난 또한 도시에 못지 않다농촌 가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일일이 말하지는 않겠다농촌에 거주해 본 일이 있는 모든 노동자와 농민은 농촌 가난·굶주림·거덜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농민은 왜 가난하고굶주리고거덜나고 있는가또 어떤 방법으로 궁핍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알기 위해서는 먼저 왜 도시나 농촌에 모든 궁핍과 빈곤이 생기는지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그렇다면무산 농민과 농촌 노동자는 도시 노동자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알았다그러나 불충분하다더구나 농촌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자나 재산 소유자 쪽에 서고어떤 사람들이 노동자나 사회민주주의자 쪽에 서는가를 알아야만 된다지주에 못지않게 자본을 모으고남 노동으로 생활할 수 있는 농민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사실을 명백하게 구명하지 않으면빈곤에 대한 어떤 설명도 쓸모가 없게 된다농촌에서는 누가 서로 연합하고또 도시 노동자와 연합하는가연합이 확실한 동맹이 되고자지주 이외에 동료인 부농이 농민을 속이지 못하도록 하고자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농촌 빈민은 잘 알지 못한다사실을 구명하고자지금 농촌 지주 힘은 어떠하고또 부농 힘은 어떠한가를 살펴봐야만 한다.

 

지주부터 보자면그들의 힘은 먼저 그들의 사유 토지에 따른 수량으로부터 판단할 수 있다특히 러시아 토지 전체 면적은 국유지를 제외하고는농민 분유지와 사유지를 합하면 약 2억 4000만 데샤티나에 달한다농민, 1000만 호 이상 수중에 있는 2억 4000만 데샤티나 가운데 1억 3000만 데샤티나 분유지가 포함됐다개인적 사유자 수중에서는, 50만 이하 가족 수중에는 1억 900만 데샤티나 토지가 있다소수점 이하를 떼버리고 계산해보면농민 한 가족에게는 13데샤티나밖에 안 되지만사유자 한 가족은 218데샤티니이다토지 분배에 따른 불공평은 훨씬 더 심각하다. 1억 900만 데샤티나에 따른 사유지 가운데 700만 데샤티나에 따른 왕궁 토지차르 황제 가족의 사유지가 있다황제는 그의 가족과 더불어 대지주 가운데 첫 번째를 차지한다황제는 러시아에서도 가장 큰 지주이다한 가족이 50만 농민 가족보다 더 많은 토지를 갖고 있다더욱이나교회와 수도원에는 약 600만 데샤티나 토지가 있다목회자들은 농민에게 무욕과 절제를 설교하면서정작 자신들은 정당한 방법과 부정한 방법으로부터막대한 토지를 손에 넣는다다음에 약 200만 데샤티나 토지는 도시와 상인 거주지 소유가 되어 있고같은 수량에 따른 토지가 각종 상공업 단체와 회사 소유로 된다. 9200만 데샤티나 토지인 91,605,845데샤티나지만끝자리 수는 떼어버리고, 50만 이하인 481,358데샤티나는 토지 소유자 가족에게 귀속됐다가족 수 절반은 모두 작은 토지 사유자다각자는 10데샤티나 이하 토지를 가진 데 불과하다토지를 전부 합해봐도, 100만 데샤티나 이하다그런데 1만 6000 세대 가족은 각각 1000데샤티나 이상 토지를 갖는다토지를 전부 합치면 6500만 데샤티나다얼마나 막대한 토지가 대지주 손 안에 집중됐는가는 1000데샤티나 이하 924데샤티나인 소수 가족이 각자 1만 데샤티나 이상 토지를 영유하고 있고그들 토지를 전부 합치면, 2700만 데샤티나에 달한다. 1천 세대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만큼 토지를 200만 세대 농민 가족이 소유한다수천 명 부자들이 이런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는 동안에 더 수 많은 인민이 가난하고굶주릴 수밖에는 없고또 영구적으로 가난하고굶주리게 되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황제 권력도정부 자신도 그때까지는 대지주에 따라 의도대로 일하리라는 걸 알 수 있다또한 빈농이 자신이 지주 계급과 꾸준하고필사적인 투쟁을 위해 단결해서하나의 계급으로 연합하기까지는 누구로부터 또 어디로부터도 원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주의할 점은러시아에서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교양 있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 수는 국가가 훨씬 많은 토지를 갖고 있다따라서 지주 계급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같은 견해를 가진 충고자들은 농민에게 이미 현재에 러시아 영토곧 모든 토지 대부분은 국가에게 귀속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오류가 있으며그들로부터 러시아에서는 1억 5000만 데샤티나의 토지가 국고에 소속됐다는 말을 들었다실상도 그러했다그러나 그들은 1억 5000만 데샤티나가 거의 전부 극북 지방아르항겔스크베르호얀스크오브도르스크 지방 볼모지거나삼림이라는 점을 잊고 있다국고에는 경영 상 전혀 쓸데없는 토지는 400만 데샤티나 이하인데유용한 관유지특히 사마라 지방에서는 대단히 저렴한 값으로 부자에게 임대된다부자는 이런 토지를 수 천수 만 데샤티나씩 얻고는다시 농민에게 3배나 비싸게 빌려준다국고에 토지를 많이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농민에 대한 악질적인 충고자들이다실제로 많은 좋은 토지는 황제를 포함한 대토지 사유자 손에 있고대지주는 국고를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있다빈농인 결합하고결합으로부터 위력을 보이지 않는 한그때까지 국고는 늘 지주 계급의 충실한 하인으로 남아 있는다또 이전에는 오직 귀족만이 지주였다는 점을 잊어서도 안 된다물론 귀족은 지금도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다. 1877-1878년에는 11만 5000명 귀족이 7300만 데샤티나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여전히 화폐 자본이 주요한 힘이 된다상인과 돈 많은 농민이 대단히 많은 토지를 구매한 1863-1892, 30년 간에 귀족들은 6억 루블 이상 되는 금액의 토지를 잃었다고 추측된다곧 사는 토지보다 파는 토지 쪽이 더 많았다그런데도 상인과 유명한 시민은 2억 5000만 루블에 해당하는 상당한 액수의 토지를 얻었다농민카자흐족과 그 외 시골 백성은 3억 루블이나 되는 토지를 샀다매년 평균 러시아 전체 농민은 1000만 루블 상당으로 토지를 사유하고자 사들였다그러므로 여러 종류 농민들이 있다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굶주리고다른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진다부농은 지주 쪽으로 가까워지고노동자에 맞서 부자 쪽으로 간다이런 부농은 더욱 더 늘어만 간다도시 노동자와 결합하고자 하는 빈농은 이 점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이런 부농이 많이 있는지그들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이 힘과 싸우고자 어떤 동맹이 필요한가를 구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지금 농민에 대한 악질적인 충고자에 대해 환기시켰는 데악질적인 충고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려고 든다.

 

'곧 농민은 이미 동맹을 가지고 있다동맹은 공동체다공동체는 큰 힘이다공동체로부터 단결은 농민을 긴밀하게 묶어놓았다공동체에 가입한 농민 조직에 따른 연합 및 동맹은 방대하다.'

 

정당하지도 않다꿈 같은 이야기이다선량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꿈 같은 이야기다이런 동화에 귀를 기울인다면빈농의 도시 노동자와 동맹이라는 사업을 파괴할 뿐이다개별적으로는 농촌 거주자로 하여금 주위를 살펴보게 하라과연 공동체의 단결혹은 공동체가 모든 부자곧 남의 노동으로부터 생활하고 있는 모든 사람과 투쟁을 위한 빈농 동맹과도 비슷한가아니다비슷하지도 않고또 비슷할 턱도 없다각 농촌에각 공동체에 많은 농업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이 있고스스로 농업 노동자를 고용해서 영구하게 토지를 경작하는 부농도 있다부농은 힘이 있는 까닭에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면서도 공동체를 지도한다그러나 과연 부농이 가입하고지도하고 있는 동맹이 꼭 필요하던가꼭 그렇지 않다부농과 투쟁하고자 동맹이 필요하다곧 공동체로부터 동맹은 전혀 소용없다자유의지 동맹도시 노동자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아는 사람들만으로 이뤄진 동맹이 필요하다그러나 공동체는 자유의지 동맹이 아니고정부가 만든 동맹이다공동체는 부농을 위해 일하며서로 협력해서 부농과 투쟁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가입하지 않는다모든 사람들은 자기 의사대로 공동체에 가입하는 게 아니라그들의 부모가 토지에 살고 있고지주 아래로부터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며자신들의 장관이 공동체에 명부를 두게 한 까닭이다빈농은 공동체에서 자유로이 나갈 수 없다경찰 통제로부터 다른 군에 명부를 둔 사람은 자유롭게 가입시키지도 않는다동맹을 위해서는 이 점이야말로절실하게 요구된다다른 사람의 노동으로부터 살고 있는 모든 사람과 투쟁을 위해 일하는 사람과 가난한 농민만으로 이뤄진 자유의사 동맹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힘이 된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그리고 그 시대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농민 간 농업 노동자와 품삯을 벌고자전국에서 방랑하는 노동자가 거의 없던 시대에도부농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도농노 소유자인 주인만이 모든 살마을 압박하고 있던 시대에도공동체는 힘이 됐다그러나 지금은 화폐가 주요한 힘이다돈을 위해 동일한 공동체 구성원들은 날쌘 짐승같이 서로 싸우기 바쁘다돈을 가지고 있던 농민들은 다른 지주보다도 더 심하게 자기 공동체 구성원을 압박하고약탈한다공동체 동맹이 필요한 게 아니라돈과 권력자본 권력에 크게 맞설 수 있는 동맹이여러 가지 단체에 소속하는 모든 농촌 노동자와 빈농 동맹지주와 부농에 대한 투쟁을 위해 도시 노동자와 모든 농촌 빈민 동맹이 필요하다그렇다면 지주 힘을 이제는 알았다이번에는 돈 많은 농민은 얼마나 있는가그들의 힘은 또 어떠한가.

 

지주 힘에 대해서는 그들 소유지의 크기그들이 가진 토지의 수량으로부터 판단한다지주는 자유롭게 자기 토지를 처분하고자유롭게 그것을 사든지팔든지 한다그들의 힘은그들이 가진 토지의 수량으로부터 매우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그런데 농민은 자유롭게 자기 토지를 처분할 권리를 가지지는 못했다자신들의 공동체에 얽매인절반 농노로크게 뒤떨어졌다돈 많은 농민 힘은 분유지 수량에 따라서만 판단할 건 아니다돈 많은 농민은 자신의 분유지로부터 돈이 많은 게 아니다영구적으로 자기 소유로 사거나임대차로부터 기한을 한정해서 사거나 한다그들은 지주로부터자기 동료인 농민으로부터토지를 내버리는 자로부터너무나 가난해서 분유지를 양도하는 자로부터 토지를 산다그러므로 가지고 있는 말의 수효도에 따라부농·중농·빈농을 구별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농민은 대부분 부농이다그가 많은 경작용 가축을 치고 있다면그가 많은 농경지를 가지고 있고분유지 이외 토지를 소유하고예금을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유럽 쪽 러시아에서는 많은 말을 가진 농민이 얼마나 있을까물론 여기서는 어림수로만 짐작해서 설명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각 지방마다 매우 큰 차이가 있다가령 도회지 부근에는 몇 마리 말만 가진 부농도 자주 볼 수 있다어떤 사람은 유리한 체소원예업에 종사하고어떤 사람은 말을 많이 기르지 않고소를 많이 쳐서 우유를 판다러시아에서는 토지로 이익을 보지 않고상업으로 이익을 보는 농민이 도처에 있다곧 버터 제조소밀 제분소 등 공장을 세운다농촌에 살고 있는 자는 누구나 자기 마을이나군에서 부농에 대해 잘 알고 있다그렇지만 빈농에게 있어 어떤 자가 그의 동지고어떤 자가 그의 적인지를 보다 정확하기 알기 위해서는 부농이 얼마나 있고그들의 힘이 어떠한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여기서 말의 숫자로는 부농이 많은가빈농이 많은가를 조사해 보자이미 러시아에서도 전체 농가 호수가 약 1000만 가구에 달한다그들이 갖고 있는 말의 총 수는 약 1500만 필이다. 14년 전에는, 17000만 필이었지만 감소됐다어림수로 계산해보면, 10가구 당 15필 말이 있다그러나 문제는 적은 사람에게 말이 매우 많고대다수에게는 말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말을 갖지 못한 농민은 300만 이상이고약 350만 가구 농가는 1필의 말밖에는 없다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몰락한 농민이거나무산 농민이다가난한 농민이라고 부를 수 있다. 1000만 가구 가운데 650만 가구를 차지한다곧 2/3에 상당한다경작용 가축 2필을 가진 중농이 있다중농은 약 200만 가구가 있고약 400만 필의 말을 갖고 있다그 다음으로는 2필 이상 경작용 가축을 갖고 있는 부농이 있다. 150만 가구이고, 750만 필의 말을 소유한다해당 사실로는 말의 절반이 대략 전체 1/6 가구 사람들에게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이 사실을 알고 나면부농의 힘에 대해 충분히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수효 면에서나그들은 매우 적다여러 공동체와 군에서도그들은 100가구 당 10가구, 20가구 정도다그러나 소수 농가는 가장 부유하다그래서 그들은 전체로도 그 밖의 농민 전체가 소유하고 있는 수량과 동일한 말을 소유한다또 그들이 소유한 경작지도 모든 농민 경작지의 거의 절반이다농민은 자기 가족에게 필요한 수량보다 훨씬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한다.

 

그들은 곡식을 매우 많이 판다곡식은 그들이 먹고자 필요한 게 아니고더 많이 팔고자돈을 모고자 필요하다이런 농민은 돈을 저축할 수 있다그들은 우체국이나 은행에다 예금한다그들은 사유하고자 토지를 산다얼마나 많은 토지가 전체 매년 농민에게 매수되는가를 이제는 알았다토지 대부분은 많지도 않은 부농 수중으로 들어만 간다빈농은 토지를 살 생각은 꿈에도 하지도 못하고어떻게 먹고 지낼지를 걱정한다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모든 은행특히 농민 은행은 모든 농민 토지 획득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다만 극소수 부농만 토지 획득을 조성시킨다그러므로 농민에 대한 악질적인 충고자들은 농민 토지 매수로부터 마치 토지가 자본으로부터 노동으로 흘러가고 있듯이 말하는 데 이는 거짓말이다노동으로부터일하는 무산자에게로 토지는 결코 흘러갈 수 없다토지를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여분의 돈을 갖고 있지 않은 빈농에게는 흘러가지 않는다토지는 다만 돈을 가진 부농에게만자본에게만곧 빈농이 도시 노동자와 동맹해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에게만 흘러간다.

 

부농은 영구적으로 토지를 살 뿐만이 아니라토지를 몇 년 기한을 두어 임차한다곧 토지를 빌린다그들은 큰 구획에 따른 토지를 차입해서토지를 빈농으로부터 탈취시킨다폴타바 지방 일부에서는얼마만큼 토지를 부농이 차지했는지를 계산했다결과는 어땠을까매 가구 30데샤티나 이상 차지한 사람은 매우 희소했고, 15가구 당 2가구로 비례했다그러나 부농은 모든 임차지 절반을 자기 손아귀에다 넣어버렸다그래서 부농 한 명 당임차지는 75데샤티나였다타우리드 지방에서는 농민이 공동체로부터 국고에서 차입한 토지 가운데 어느 정도 토지를 부농이 탈취했는가라는 게 계산됐다따라서 전체 가구에서 1/5에 해당하는 부농이 전체 임차지에서 3/4를 수중에다 넣었다도처에서 돈만 있으면 토지는 분배되는데돈은 다만 소수 부농에게로 들어간다더욱 자세하게는농민 자신도 많은 토지를 양도한다그들은 분유지를 내버리고 있다가축이 없고종자가 없고농업을 경양할 수단이 없는 까닭에돈 없이는 토지가 있어도 어쩔 수 없다노보체스카 지방에서는 부농 3가구 가운데 1가구 또는 2가구는 분유지를 자기 소유로 하든지다른 공동체 소유로 해서 손에 넣는다그러나 말이 없는 사람과 말이 1필밖에 없는 사람은 분유지를 양도한다타우리드 지방에서는 농가 가구에 따른 1/3이 분유지를 양도했다따라서 농민 전체 분유지에서 1/4인 25만 데샤티나가 양도됐다그리고 25만 데샤티나 가운데 15만 데샤티나, 3/5는 부농 손에 들어갔다여기에서도 빈농에게 공동체 동맹이 적당한지아닌지를 알 수 있다농촌 공동체에서는 돈 가진 자가 힘을 가진다따라서 모든 공동체로부터 규합한 빈농 동맹이 필요하다.

 

토지 구입에서 마찬가지로쟁기와 수확기와 다른 모든 개량 도구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논의도 농민을 속인다농업 창고와 조합이 설립된다그리고 개량된 농구는 농민 상태를 개량한다고 떠벌린다한낱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개량된 농구는 다만 부농 손에만 들어가고빈농이 입수할 여지는 전혀 없다빈농에게는 쟁기나 수확기는 둘째 문제고겨우 살아가는 게 더 먼저다모든 농민에 대한 원조는 부농에 대한 원조일 뿐이다토지도가축도저축도 못 가진 빈농 대중에게는 개량 농구가 값싸진다고 하더라도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사마라 지방한 군에서는 부농과 빈농이 소유한 모든 농구가 계산됐다결과로는가구 1/5, 곧 가장 부유한 농민 일부가 모든 개량 농구에서 거의 3/4를 가지고 있었고가구 절반에 해당하는 빈농은 모두 합해서 1/30을 가지는 데 불과했다말 없는 농민과 말을 1필밖에 못 가진 농민은 해당 지역 2만 8000의 전체 가구 중에서, 1만 가구를 차지했다. 1만 가구가 소유한 개량 농구는 전체 군전체 농가가 소유한 5,724개 개량 농구 가운데 총 7개에 지나지 않았다전체 농민을 원조하듯이 말하는 농업 경영에 따른 개량쟁기와 수확기 보급에서 농민 차지다농업 개량에 따른 개선을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최후로 부농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는 부농이 농업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점이다지주와 마찬가지로 부농도 남의 힘으로 살고 있고 또 부유하다왜냐하면 농민 대중이 몰락하고궁핍하기 때문이다그들은 지주와 마찬가지로 될 수 있는 대로 자기가 고용하는 농업 노동자에 따른 노동을 착취하고될 수 있는 대로는 적게 품삯을 주려고 힘쓴다수백만 농민이 전혀 몰락하지 않고할 수 없이 남에게 일감을 구하지도 않고자기 노동력을 팔지도 않는다면부농은 존재할 수 없고농업 경영을 할 수 없다그런 경우 어디에서도 내버린 분유지를 얻을 수 없고또 어디에서도 농업 노동자는 찾아볼 수 없다그런데 전체 러시아에서는 150만 가구의 부농이 100만 가구를 밑돌지 않는 농업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한다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경영주와 노동자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 대규모 투쟁에서 부농이 노동 계급에 맞서 유산자 쪽에 서는 건 당연해진다.

 

부농 상태와 힘을 알았다그렇다면 빈농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이미 막대한 수효곧 전체 농민 가구에서 약 2/3이 빈농 범주에 속한다고 했다먼저 말을 가지지 못한 농가가 결코 300만 가구를 밑돌지 않았다더욱 많아져 350만 가구에 달했다또한 기근이 있는 해마다 1만 가구의 경영이 몰락해 간다인구는 증가하고생활은 더욱 곤란해진다그러나 모든 좋은 토지는 이미 지주와 부농 손에 떨어져버렸다그러므로 해마다 인민은 더욱 많이 몰락해서도시로 나와 공장에 들어가거나농업 노동자 무리에 들어가 숙련되지 못한 노동자가 된다무마 농민은 완전한 무산자가 되버린다바로 프롤레타리아다무산자는 토지로부터 농업 경영에 따라 겨우 연명해서 생활하는 게 아니라임금 노동으로부터 생활하게 된다도시 노동자의 실제 형편이다무마 농민에게 토지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무마 농가 절반은 자기 분유지를 남에게 빌리든지때로는 대가 없이 공동체에다 양도시킨다왜냐하면 무마 농가에서는 토지를 경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무마 농민은 1데샤티나 또는 많으면 2데샤티나를 경작한다무마 농민은 늘 곡식을 구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왜냐하면 자신이 수확한 곡식만으로는 결코 먹고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전체 러시아에서 약 350만에 달하는 1필의 말을 가진 농민도 조금 생활이 나을 뿐이다물론 예외도 있다이미 중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말 1필을 가진 부농도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예외나 각 지방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국내 전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말 1필을 소유한 농민 전체를 취해본다면농민 전체는 가난한 농민들이고가난한 사람들이다말 1필을 가진 농민이 농업 지방에서 3, 4데샤티나 드물게 5데샤티나를 경작하는 일까지 있다그렇지만 자신이 수확한 곡식만으로 지내지는 못한다풍년에도 무마 농민보다 더 나은 생활을 못 한다따라서 영구하게 배불리 먹지 못하고굶주린다농업 경영은 매우 쇠퇴 상태에 빠지고가축은 여위고가축 사료는 불충분해서 토지 관리는 좋지 못하기까지 하다힘도 없다말 1필을 가진 농민은 자신의 농업 경영 전체에 가축 사육 이외에 약간만 돈을 쓸 뿐이다우오로네지 지방에서는 1년에 20루블 이하를 쓰고 있다부유한 사람은 10배나 더 많이 쓴다. 1년에 20루블은 토치 차용에도가축 구입에도쟁기와 기타 기구 수선에도 방목하는 사람들에게도그 외 일체에 대한 비용이다과연 농업 경영일까물론 아니다과로고고역이고빈곤이다말 1필을 가진 농민 가운데 자신의 분유지를 양도한 사람도 있는데그것이 적지 않다는 건 명백하다가난한 사람이 토지에서 얻는 이익은 극히 적다돈이 없으면 토지에서 돈을 벌기는커녕 자신의 먹거리조차 손에 들어오지 못한다게다가 식료와 의복농업 경영세금 등 모든 일 때문에 돈도 필요해진다우오로네지 지방에서는 일마 농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은 보통 1년에 18루블이었다그런데 모든 비용을 모두 합해도, 1년에 75루블에 이르지 못한다그러므로 토지 구입이라든지개량 농구라든지농업 은행에 대해 말할 때면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왜냐하면 빈농은 이런 일을 행한다는 걸 전혀 생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빈농은 무엇으로부터 돈을 얻는가오직 품삯밖에는 없다일마 농민은 무마 농민과 마찬가지로 품삯으로만 날마다 살아갈 뿐이다그러면 품삯은 무엇을 뜻하는가다른 사람에게로 노동고용된 노동을 뜻한다일마 농민 절반은 경영주를 중지하고 고용꾼프롤레타리아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그래서 이런 농민은 절반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운다사실상 도시 노동자 형제다도시 노동자는 모든 경영자에게 모든 수단으로부터 수탈 당하고 있으므로마찬가지로 모든 부농모든 소유자에 대한 투쟁을 위해 협력하고사회민주주의와 단결하는이외에는 도망칠 길도다른 구제 방법조차도 없다철도 부설을 위해 누가 일하는가청부인은 누구를 수탈하는가누가 나무를 베고재목을 강으로 띄워 보내는가누가 농업 노동자로 일하는가누가 일용직 노동자로 되고 있는가누가 도시와 부두에서 미숙련 노동을 하고 있는가그는 바로 빈농이다그들은 모두 말을 갖지도 못한 농민과 말 1필밖에는 없는 농민이다그러한 노동은 모두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절반인 프롤레타리아가 하고 있다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이 참 많다해마다 러시아 전체 카프카스시베리아를 제외하고는 800때로는 900만 여행권이 나온다이름만 농민이지실제로는 고용꾼이다모두 도시 노동자와 하나의 동맹에 연합되지 않으면 안 되고농촌에 비추는 빛과 앎을 비추는 빛은 모두 이 동맹을 북돋고 공고하게 한다.

 

품삯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모든 관리와 사물을 관리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곧 일반 농민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토지와 품삯이다인민을 원조하려면농촌에서 보다 많은 부업을 일으키고보다 많은 품삯을 줄 필요가 있다이런 언사는 헛소리에 불과하다가난한 농민에게 품삯은 곧 고용 노동이다농민에게 품삯을 주는 건 농민을 고용 노동자로 전화시키는 걸 의미한다물론 원조는 좋은 일이다부농에게는 자본을 필요로 하는 다른 품삯이 있다물레방앗간다른 건물 축조탈곡기 구입장사 등이다그러나 부자 날품일과 빈농 고용 노동을 혼동한다는 건빈농을 속이는 일이다물론 기만은 부자에게 이익이다모든 품삯이 모든 농민에게 적당하고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건그들에게 이익일 뿐이다그러나 가난한 농민에게 참된 선행을 베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그들에게 모든 참을 말하고또 참말만 말해야만 한다.

 

다음으로는 중농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이미 전체 러시아에서는 2필의 경작용 가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대체로 중농으로 보고이런 중농 가구로는 1000만 가구 가운데약 200만 가구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중농은 부농과 프롤레타리아 중간에 서 있다그러므로 그들은 중농이라고 불리운다그들의 생활도 중류다곧 풍년에는 자기 경영만으로 어쨌든 지나가지만궁핍은 늘 그들의 등 뒤에 서 있다그들에게는 저축이 전혀 없든지매우 적다그러므로 그들의 경영도 불안정하다그들은 손에 돈을 넣기가 어렵다자기 겅영으로부터 필요한 돈을 모으는 건 샛별 따기처럼 힘들다날품팔이를 하러 간다는 건농업 경영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하고따라서 농업 경영은 등한시 되기가 쉽다많은 중농도 역시나 날품일 없이는 한시도 지낼 수 없다곧 고용꾼이 되지 않을 수 없다궁핍으로 인해중농은 지주의 노예가 되고할 수 없이 빚을 진다더군다나 중농은 빚을 지지 않을 수 없다그들에게는 부농같이 확실한 수입마저 없다그러므로 한 번 빚을 지게 되면자신의 몸에 굴레를 채운다완전히 몰락하지 않는 한빚에서 발을 뺄 수 없다중농은 지주에게 품을 팔러 가장 많이 간다왜냐하면 지주가 돈을 빌려줄 때는, 2필 말을 갖고 있고농영 경영에 따른 설비가 상당히 정돈되어 몰락하지 않은 농민을 대상으로 하므로중농이 그걸 피해 나가기는 곤란하다단절된 토지임차겨울 동안 빚을 갚고자 지주에 대한 자신을 노예로 만든다지주와 부농 이외에돈 많은 마을 사람도 중농을 압박한다그들은 늘 중농에게서 토지를 빼앗고결코 중농을 압박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중농은 이와 같이 생활한다그들은 물고기도새도 아니다그들은 진정한 경영주도진정한 노동자도 아니다모든 중농은 경영주가 되고자 하고토지 소유주가 되려고만 한다그렇지만 그들의 희망대로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농업 노동자 또는 일용직 노동자를 두고 자신은 남의 노동으로부터 돈을 벌어서남의 덕으로부터 부농이 되려고 힘쓰는 중농은 극히 적다대다수 중농은 사람을 두기는커녕 자신이 고용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기 때문이다부농과 빈농 사이토지 소유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투쟁이 시작된 곳에서는 어디서나중농은 중간에 붕떠서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한다부농은 그들을 자신의 쪽으로 불러서 말한다.

 

"너도 같은 경영주고토지 소유주다너는 맨몸뚱이 노동자와 손 잡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노동자는 말한다.

 

"부농은 너를 속이고또 약탈해간다따라서 너에게는 모든 부농과 투쟁에서 우리 원조 이외에 따로 구조될 방법이 없다."

 

중농 논쟁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는 노동대중 해방을 위해 싸우는 모든 국가에서도 진행된다국내 논쟁은 지금 막 시작됐을 뿐이다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잘 조사해서부농이 어떤 기만으로부터중농을 끌어당기고 있고어째서 부농의 기만을 폭로하고중농으로부터 참된 동지를 찾을 수 있도록 원조해야만 하는가를 분명하게 알아아먄 한다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가 곧 참된 길로 나선다면독일 노동자 동지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농촌 노동자와 공고하게 동맹을 조직할 수 있고노역자의 모든 적으로부터 승리에도 꽤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4. 중농은 어디로.

 

모든 토지 소유자와 부르주아지는 농업 경영 개선값싼 쟁기농업 은행목초 파종 실행가축과 비료에 따른 염가 판매 등을 위해 모든 수단을 취하기를 중농에게 약속하고또 동시에 농민을 모든 농업 동맹곧 경영 개선 목적으로 모든 경영주 사이에 맺은 동맹을 가맹시키면서부터 중농을 자기 쪽으로 만들고자 힘쓴다이런 방법으로 부르주아지는 중농을 노동 동맹,더 나아가 소농프롤레타리아와동맹에서 떼어버리려고 힘쓰고부르주아지와 노동자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그들을 부농부르주아지 쪽에 서게 하려고 힘쓴다사회민주당원인 노동자는 말한다농업 경영 개선은 좋은 일이다값싼 쟁기를 사는 건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상인은 바보가 아닌 다음에서야누구나 구매자를 끌고자 저렴하게 팔려고 힘쓴다그러나 빈농이나 중농에게농업 경영 개선과 쟁기에 따른 염가 판매가 궁핍에서 모면하도록 하고부자 도움을 받지 않고독립하는 데 기여한다는 말은 기만에 불과하다이런 개선과 싼값그리고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고유리하게 파는 동맹과 협동조합이라는 회사에서는 부농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본다부농은 더욱 힘세고더욱 더 혹독하게빈농과 중농을 압박시킨다부농이 부유하게 되는 한자기 수중 토지가축농기구금전 대부분을 쥐고 있을 때까지 빈농뿐만이 아니라중농도 궁핍을 면할 수는 없다한두 사람 중농만 경영 개선과 회사 도움으로부터 부농 대열에 낄 수 있을 뿐이다그러나 모든 인민과 중농도 더욱 궁핍이라는 구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모든 중농이 넉넉하게 살고자 한다면 부농 자체를 내쫓는 게 필요하다도시 노동자와 지방 빈농과 동맹만이 그들을 내쫓을 수 있다부르주아지는 중농에 대해 소농에 대해서까지 말한다.

 

'우리는 너에게 싼 토지와 쟁기를 판다너는 우리에게 네 영혼을 팔아라그러고서 너는 모든 부농에 대한 투쟁을 거절하라.'

 

사회민주당원인 노동자는 다음으로 응답한다.

 

'정말로 저렴하게 팔려면왜 돈이 있는 사람이 사서는 안 되는가장사가 아니다그러나 자신의 영혼만큼은 결코 팔 수 없다.'

 

모든 부르주아지에 대해 도시 노동자와 공동으로 싸우기를 거절한다는 건영구적으로 빈곤과 궁핍 속에 머문다는 걸 뜻한다물건이 저렴해지면서부터 부농은 보다 이익을 더욱 더 많이 번다그러나 공장에서 일하는 돈 없는 사람은 부르주아지에게서 돈을 받지도 못한다부르주아지는 쓸데없는 여물통을 목에 걸고 다니듯이아무 소용 없는 회사 간판을 둘러메고 다닌다. '사회혁명당원'이라고 스스로 칭하는 사람들까지도 부르주아지의 엉덩이 뒤에서 농민에게 가장 필요한 건 회사라고 부르짖는다.

 

국내에서도 모든 회사를 일으키는 운동이 시작됐다그러나 그리 많지는 않았다정치적 자유가 없는 동안에는 적다그런데 독일 농민 사이에서는 모든 종류로 된 회사가 매우 많다그러나 이러한 회사에서는 누구를 제일 많이 원조하는지를 보라모든 독일에서는 14만 농가가 우유와 유제품 판매 때문에조합에도 가맹한다그리고 14만의 농가에서는 110만 필의 소를 친다모든 독일 빈농 수는 400만에 이르렀다그들 중에 겨우 4만 명만이 조합에 든다다시 말해빈농 100명 당 한 사람 비율로 회사를 이용한다. 4만 비농이 소유한 소의 수효는 겨우 10만 필에 불과했다또 중농은 100만 명에 달하며그 중에는 5만이, 5/100이 회사에 참가한다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소의 수효는 20만 필이다돈 많은 농가지주와 부농을 합치면 100만의 1/3이다그 중 100명 당 17, 5만 명이 회사에 또 참가한다그들이 소유한 소의 수효는 80만 필에 달한다.

 

회사에서는 누구를 더 많이 원조하는가를 알 수 있다싸게 사고유리하게 팔고자모든 비슷한 동맹으로부터 중농을 구제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명백히 농민을 우롱한다부르주아지는 빈농과 중농을 자기 쪽으로 이끄는 사회민주주의자 손에서도 매우 저렴하게 탈취하기를 바란다러시아에서도 버터제조조합집합적인 조합이 설립됐다상호 조합(알르체르)와 공동체(미르)로부터 동맹협동 조합 등이야말로일반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부르짖는 사람들 또한 얼마든지 있다그러나 상호 조합과 협동 조합과 공동체에 따른 토지 임차가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를 보라러시아에서는 100가구 가운데 20가구를 밑돌지 않은 수효가 전혀 소를 갖지도 못했었다. 30가구는 소 1필씩을 갖는다이들은 심한 궁핍에 못 견디어 우유를 판다아이들에게 먹일 우유마저 남지를 않는다아이들은 궁핍해서파리같이 죽어 넘어진다그런데도 돈 많은 농민은 3, 4필 또는 그 이상의 소를 갖는다그리고 부농은 모든 소의 절반을 가진다버터제조조합이 누구 이익이 되는가먼저 지주와 농촌 부르주아지 이익이 명백하게 된다또한 중농과 빈농이 그들을 추종한다는 점모든 노동자에 따른 모든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을 궁핍에서 모면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그리고 자신의 처지에서 기어 올라가서 부농 대열이 되고자 하는 중농의 희망은 지주와 농촌 부르주아지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은 명백해진다.

 

부르주아지에 따른 모든 앞잡이는 자기들이야말로빈농 쪽이고친구라고 속이고는 이러한 희망을 지지하고고취시킨다그래서 마음이 순박한 사람들은 양의 가죽 속에 이리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빈농과 중농에게 이익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면서부르주아지의 기만을 되풀이한다서적이나 연설 가운데 다음과 같다.

 

'소농 경영은 가장 편리하고가장 이익이 높다소농 경영은 발달했다그리고 모든 양전이 부르주아지에게 점령되고모든 돈도 그들 수중에 쥐어 있는데빈농은 압박만 받아 평생 동안 약간의 토지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소농에게는 많은 돈을 쓸 곳이 없다고감언이설을 좋아하는 그들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농과 중농은 대농보다 절약 정신이 강하고보다 부지런하고간편하게 생활한다그들은 가축 때문에 목초를 사는 대신짚으로 태워버린다비싼 기계를 사는 대신아침에 일찍 일어나고기계 대신 긴 시간 일한다부자는 물건의 수선을 남에게 맡기지만그들이 쉬는 날에는 스스로 도끼를 잡고목수 일을 하므로대농보다 모든 일에 싸게 먹힌다그들은 경작용 비싼 말황소를 기르는 대신에젖소를 부린다독일에서는 젖소로 경작한다중농과 소농이 부저린히 일하며간편한 생활을 하고방종에 흐르지도 않고사회주의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자기 경영만 생각한다는 건 얼마나 칭찬할 일인가부르주아지에게 파업을 일으키는 노동자에게 이끌리지도 않고부자 뒤에만 붙어서 착한 인간이 되고자기회를 늘 기다린다만일 모두가 이와 같이 열심히 또 근면하고간소하게 생활하고술을 마시지 않고보다 많이 돈을 저축하고사치스러운 옷을 입지도 않고아이를 너무 낳지도 않도록 한다면모두 잘 생활할 수 있고괴롭거나궁핍도 맛보지 않을 수 있다.'

 

부르주아지는 중농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그리고 달콤한 말을 믿고스스로 되풀이하는 사람도 있다실제로 달콤한 언사는 기만이고농민을 조롱한다중농과 소농으로 하여금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게 시키고빵 하나 때문에 애쓰고한 푼 지출까지도 단념시키는 이 궁핍이 혹독한 궁핍을 달콤한 언사로 속살거리는 무리들은 값싸고유리한 경영이라고 부른다물론 3년 동안 한 벌 바지를 입고여름에는 구두 없이 걷고호미를 새끼줄로 동여매어 쓰고젖소에게는 지붕에서 빼낸 썩은 짚을 먹이는 데 비교하면, '보다 싸고보다 이익이 있을 뿐이다.' 부르주아나 부농으로 하여금 '싸고유리한 경영을 담당하도록 한다면곧바로 자신의 달콤한 언사를 잊어버린다소농 경영을 칭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대로 농민에게 이익을 주려고 한다그러나 실제로는 손해만 준다.

 

제비뽑기가 인민을 기만하듯이그들은 달콤한 언사로 일반 사람을 속인다제비뽑기란 무엇인가자신이 50루블짜리 소 1필을 가졌을 때이 소를 제비뽑기에 부치면, 1루블짜리 패를 모든 사람에게 판다물론 1루블로 소를 얻을 수도 있다인민은 이 달콤한 말에 걸려든다. 1루블의 은화가 모이면 100루블이 모였을 때제비를 조사해서 소가 맞은 패를 찾아낸다그러면 다른 패는 모두 빈 패가 된다그렇다면 이 소는 인민에게 싼값인 셈인가아니다매우 비싸다왜냐하면 가격의 2배의 돈이 지출되고제비를 만든 사람과 소를 얻은 사람은 조금도 힘을 들이지도 않고 이익을 보았고돈을 잃은 99명분의 이익을 보았다제베가 인민에게 이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인민을 기만하는 사람이다마찬가지로 모든 회사농업 경영 상에 따른 모든 개선모든 은행그 외의 방법으로부터 괴롭고궁핍에서 해방을 약속하는 사람은 농민을 기만하는 사람이다제비로 한 사람이 이익을 보고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는 일은 여기서도 일어난다중농 한 사람이 곤궁을 면해서부농의 동료로 들어간다그러나 99명의 동료는 궁핍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더욱 더 파산해서 한 평생을 계속 괴롭게 당해야만 한다각 지방 주민이 궁핍을 잊어버렸는가그리고 일생 동안 이 궁핍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파산해서 마을을 떠난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앞서 본 바와 같이모든 러시아에서도 중농 경영에 따른 수효가 200만 이하는 아니다저렴하게 사고유리하게 팔기 위한 동맹 수효가 지금보다 10배 많아졌을 때어떻게 될까. 10만의 중농이 부농으로 올라간다면 너무나 많다무엇을 뜻하는가. 100명의 중농 가운데 5명이 부자가 됐다는 걸 뜻한다나머지 95명은 어찌되는가그들은 여전히 괴로운 생활을 하고훨씬 혹심해진다빈농은 더욱 더 파산한다.

 

부르주아지에게 필요한 건중농과 소능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여그들로 하여금 부르주아지와의 투쟁 없이도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게 하고자신의 근면과 저축에 모든 걸 걸도록 하고농촌과 도시 노동자와 동맹을 더욱 불신하도록 만든다부르주아지는 온 힘을 다해 일반 사람이 걸려든 믿음과 희망을 지지하고자 힘쓰고모든 달콤한 언사를 써가며그를 잠들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모든 감언이설의 기만을 폭로하고자 할 때는그들에게는 세 가지 질문을 제출하면 충분하다.

 

1). 모든 러시아에서 2억 4000만 데샤티나의 경작지 가운데 1억 데샤티나가 토지 소유자에게 소유되고 있을 때노동하고 있는 인민은 가난과 궁핍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1만 6천의 대토지 소유자의 손에 6500만 데샤티나의 토지가 쥐어지고 있는 때에도.

 

2). 150만 가구의 1000만 가구의 모든 농가 가운데 부농이 농민의 모든 경지와 말가축 절반또한 농민 곡식과 저축액보다 훨씬 많은 걸 자신의 수중에 쥐고 있을 때노동하고 있는 인민은 괴로움과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농민 부르주아지가 빈농과 중농을 압박하고농업 노동자와 날품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해서더욱 더 부유해가고 있을 때농가 600만 가구가 늘 굶주리면서 모든 고용 노동으로부터 약간의 빵 조각을 얻고 있는 파산한 빈농인 때에도.

 

3). 돈이 주요한 힘이 되고돈이 모든 것곧 공장도토지도고용 노동자·고용 노예로 인간 자체도 살 수 있을 때노동하고 있는 인민은 괴로움과 가난에서도 해방될 수 있는가돈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고농업 경영도 할 수 없는 때에도소경영주와 빈농이 돈을 얻고자대경영주와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도수 많은 지주·상인·공장주·은행가들이 자신의 수중에 수억 루블을 쥐고그 이외에도 수십억 루블의 돈이 모여 있는 모든 은행을 지배하고 있는 때에도.

 

소농 경영이나회사의 이익에 대해 아무리 미사여구를 나열해봐도이 질문을 결코 회피할 수는 없다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다노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진정한 회사그것은 모든 부르주아지와 투쟁하고자 농촌 빈농과 도시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와 동맹이다동맹이 급속도록 확대하고공고하게 될수록 중농은 더욱 빨리 부르주아지의 약속의 모든 허위를 이해하고우리 쪽이 된다.

 

부르주아지는 이 점을 알고 있다그러므로 달콤한 언사 이외에도 사회민주주의자에 관한 온갖 비방을 퍼뜨리고 다닌다

그들은 말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중농과 소농으로부터 사유권을 박탈한다.'

 

거짓말이다사회민주주의자는 오직 소유자로부터만남의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부터만 소유권을 몰수한다사회민주주의자는 소농과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은 중농으로부터는 그들의 소유권을 결코 몰수하지도 않는다사회민주주의자는 가장 자각하고단결된 도시 노동자뿐만이 아니라농촌 노동자작은 수공업자와 농민까지 포함해서그들이 노동자를 사용하지 않고부자에게 끌리지도 않고부르주아지 쪽으로 가지도 않는다면 모든 노동 대중 이익을 보호하자고 내세운다아직도 부르주아지 지배를 뒤엎지 못한 현재에도 일반적이며또 부르주아지 투쟁을 쉽게 할 수 있는노동자와 농민 생활에서 일체 개선을 위해 투쟁한다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는 농민을 기만하지 않는다농민에게 모든 참만 말한다부르주아지가 지배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개선도 결코 인민을 괴로움과 가난에서 해방하지 못함을 미리 앞서 정직하게 말한다사회민주주의자란 어떤 사람이고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모든 인민에게 알리고자사회민주주의자는 스스로 강령을 만들었다강령이란당이 무엇을 쟁취하는가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하는 모든 점에 대해 간단하게명료하게정확하게 선언해야만 한다사회민주당은모든 인민이 이를 알고 있고또 이를 보고자 부르주아지의 압박으로부터 노동하고 있는 모든 인민 해방을 위해 참으로 투쟁하기를 바라고 있고이런 투쟁을 위해 누구와 단결해야만 하는지또 어떻게 이 투쟁을 지도할 수 있을지를 정당하게 깨달은 사람들만이 당에 가입할 수 있도록명료하고정확한 강령을 내건 유일한 당이다그 밖에도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하고 있는 인민의 괴로움가 가난이 어디에서 생기는가왜 노동자 동맹은 더욱 더 확대되고더욱 더 강대하게 되는가를 강령 속에 정직하게공공연하게정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우리 생활은 비참하다혁명을 일으키라고 부르짖기만으로는 불충분하다그런 건 큰소리로 장담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누구라도 말할 수 있다그러나 큰 이익은 못 된다노동하고 있는 인민은 왜 자신들이 가난하고궁핍에서 해방을 위해 자신들이 누구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똑똑하게 깨달아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을 바라고 있고또 노동하고 있는 인민의 괴로움과 궁핍은 왜 생기는지빈농은 누구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이미 말했다그렇다면우리는 우리들 투쟁으로부터현재 어떤 개선을곧 노동자와 농민 생활에서 어떤 개선을 쟁취할 수 있는지를 말하도록 하자.



5.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인민과 노동자를 위해 어떤 개선을 쟁취하는가.

 

사회민주주의자는 일체의 약탈압박부정으로부터 모든 노동 대중을 해방하고자 싸운다그러나 해방되기 위해서는 노동 계급은 먼저 연합해야만 한다그리고 연합하기 위해서는 결사의 자유 및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또 정치적 자유를 가져야만 한다전체적인 지배가 인민 관리와 경찰의 예속이라는 건 이미 말했다그러므로 정치적 자유는 궁정에 출입할 수 있는 모든 고관귀족졸부 등 소수들 말고도 모든 국민에게 필요하다그 중에서도 노동자와 농민에게 가장 필요하다부자는 관리와 경찰 횡포와 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부자는 고위층에다 탄원할 수 있다그러므로 경찰·관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일삼는 부정한 짓을 부자에게 그러는 일은 훨씬 드물다노동자와 농민이 경찰이나 관리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전혀 없다또 누구에게 탄원한다고 해도탄원할 사람이 없다또 재판을 하더라도 자신의 힘이 미치지도 못한다노동자와 농민은국가에 선거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에대표자 인민 회의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에는경찰과 관리의 질책과 횡포모욕적인 행위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도 없다오직 이런 대표자 인민 회의만이 인민을 관리로부터 예속 상태에서 해방할 수 있다모든 자각한 농민은 황제 정부에서 무엇보다 먼저 중요한 대표자 인민 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신분의 구별 없이부자와 가난한 사람 구별 없이모든 사람들이 대표자를 뽑아야만 한다선거는 관리 간섭 없이 자유로워야만 한다선거를 감시하는 임무를 위임받는 일반인이 맡겨야지마을 경찰이나젬스트보 장관이어서도 안 된다선거가 실시되면 모든 국민에게 선출된 대표자는 모든 국민적인 가난을 심의할 수 있고국내에서 보다 좋은 제도를 세울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재판을 하지 않고경찰이 아무나 투옥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관리의 불법 감금 행위는 엄중하게 처벌해야만 한다관리의 자의적인 행위를 중지시키고자인민은 스스로 관리를 선출하고개개인이 관리에 대한 탄원을 직접 재판소에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해야만 한다그런데 마을 경관을 자치청 젬스트보에게 또한 자치청 장관을 지사에게 고소하면 어찌 되는가물론 자치청 장관은 마을 경관을 옹호하고현 지사는 장관을 옹호해서도리어 탄원자가 혼날 뿐이다탄원자를 감옥에 집어넣든지시베리아와 같이 멀리 유형 보내든지 한다국내에서도 다른 모든 국가에서도 그러하듯이모든 사람들은 인민 집회나 인민 재판소에 탄원을 제출하고자신의 가난을 자유롭게 말하고또는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때에 비로소 관리에게 징벌이 가해진다.

 

인민은 오늘날까지도 관리에 대해 농노적인 예속 상태에 묶여 있다관리의 허가 없이는 국민은 집회를 개최하지도책과 신문을 인쇄하지도 못한다과연 농노적인 예속 상태가 아닌가자유롭게 집회를 열지도 못하고자유롭게 책을 인쇄하지도 못한다면어떻게 관리와 부자에게 정의를 요구할 수 있을까물론 정당한 책의 인쇄도 모든 관리는 금지시킨다그리고 인민의 가난에 대한 정당한 말도 그들은 모두 금지시킨다따라서 사회민주당은 이런 서적을 비밀리에라도 인쇄하고배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런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런 걸 무서워하지 않고더욱 많은 서적을 발행하고인민에게 올바른 책을 읽도록 더욱 더 배포한다따라서 어떤 감옥도어떤 박해도인민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저지하지는 못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신분 제도가 폐지되고국가의 모든 시민이 평등권을 갖도록 요구한다러시아에서는 세금을 바치지 않는 신분과 세금을 바치는 신분이 존재한다특권이 있는 신분과 특권이 없는 신분이 존재하고흰 뼈와 검은 뼈가 존재한다천한 인민에게는 아직도 태형이 남아 있다어떤 국가에서도 노동자와 농민에게 이와 같이 냉대하지는 않다러시아 이외의 어떤 국가에서도 여러 가지 신분을 위해여러 가지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인민이 일어나서 일반 사람들에게도 귀족이 가진 모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해야만 한다농노제 폐지 뒤로 40년이 지난 현재에도 아직까지도 태형이 시행되고납공하는 신분이 존재한다는 건 치욕스럽다사회민주주의자는 인민을 위해 완전한 이동의 자유부업의 자유를 요구한다이동의 자유란 무엇을 뜻하는가농민이 스스로 가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가는 권리가고 싶은 곳으로 이전하는 권리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고어떤 촌락이나 도시라도 선택할 권리를 말한다또한 여행권이 폐지되고어떤 촌장이나 군장도 농민의 자유로운 거주와 노동을 방해하지는 못한다는 걸 뜻한다일반 사람은 자유롭게 도시에 갈 수도 없고자유롭게 새로운 토지에 이주하지도 못할 만큼 아직까지도 관리에게 예속된다정부 대신은 현 지사에게 농민의 자유로운 이주를 허락하지 말라고명령한다현 지사는 일반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일반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그의 생각에 일반 사람은 어린애일 뿐이다장관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다과연 농노적 예속이 아니던가모든 자신의 재산을 방탕하게 낭비하는 귀족이 분별력 있는 경영주와 경작인을 지배하고 있다는 건 과연 인민에 대한 모욕이 아니던가.

 

당시에 농무부 장관이던엘모로프흉작과 인민 기근이라는 책이 있었다이 책에는 '지주 여러분이 노동자의 손을 필요로 할 때에는 그 장소에서는 농민을 이주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백하게 말했었다장관은 또 일반 사람은 이런 말을 듣지 않을 거고듣더라도 그걸 이해하지는 못할 거라고 거침없이 말했었고또 그렇게 생각했었다그는 말했었다.

 

'지주들이 값싼 임금 노동자를 필요로 할 시기에 왜 인민을 내놓는가인민이 더 괴롭게 생활할수록 지주에게는 더 유리하고그들의 가난이 클수록그들은 더 싸게 고용되고모든 압제를 더 온순하게 참고 견딘다이전에는 촌장이 귀족의 이익의 뒷배를 봐줬으나현재에는 자치청 장관과 지사가 그걸 봐준다이전에는 촌장이 마구간에서 농민을 구타했으나현재 농민은 군청에서 태형을 받는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상비군이 폐지되어야만 하고대신에 국민군이 조직되어야만 하며모든 인민이 무장하기를 요구한다상비군이란 인민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인민을 사살하고자 준비된 군대다병사는 수년 간 비인간적으로 교육되지 않았다면과연 그가 자신의 형제를노동자와 농민을 사살할 수 있을까적의 공격에서도 국가를 방위하는 데 있어상비군은 전혀 필요 없다그 역할은 국민군으로도 충분하다국가의 각 시민이 무장한다면국내로는 어떤 적도 무서울 게 없다그리고 국민은 군국주의에 따른 속박에서도 벗어난다정부는 군비를 위해 매년 수억 루블을 쓴다돈은 모두 인민에게 거둔다그런 까닭에 세금은 매우 높고생활은 더욱 괴롭다군국주의는 관리 권력과 국민에 대한 경찰 권력을 강화시킨다군국주의는 다른 인민을특히 중국 영토를 약탈하고자 필요해진다이런 까닭에 인민 부담은 더욱 무거워진다더군다나 새로운 세금이 부과될 경우에는 더 괴롭다모든 인민 무장으로부터 상비군을 폐지하는 건 모든 노동자와 농민에 따른 막대한 부담을 가볍게 한다.

 

인민에 대한 막대한 부담에 따른 경감은 사회민주주의로부터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간접세 폐지로부터 실현된다간접세는 토지농업 경영에서 징수되는 게 아니고상품 가격에 덧붙여져 있다간접세는 상품 구입 시 인민에게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금이다국고는 인민에게 설탕보트카석유성냥그 외 모든 소비품에 대해 과세한다세금은 상인 또는 공장이나국고에다 바치며물론 자신의 돈에서 바치는 게 아니라그 물건을 산 사람이 그에게 내준 돈으로 바친다세금 때문에 보트카설탕석유성냥 가격은 올라간다그리고 각각의 구매자는 보드카 1설탕 1푼트에 대해 상품 가격뿐만이 아니라그에 대한 세금도 지출한다여러분이 1푼트 설탕에 대해 14카페이카를 줬을 때그 중에서 4페이카는 세금이다설탕 제조업자는 이 세금을 이미 국고에다 바친다그리고 국고에 바친 만큼 금액을 각각의 구매자에게 징수한다간접세는 소비품에 부과하는 세금이고사는 사람은 상품을 원래 가격보다 비싼 가격을 무는 형식이다어떤 사람은 이에 대해,

 

'간접세는 가장 정당한 세금이다왜냐하면 산 사람이 자신의 산 물건에 대해 그만큼 바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그러나 정당하지 않다간접세는 가장 부당한 세금이다왜냐하면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지출하는 게 더 괴롭기 때문이다부자는 농민이나노동자보다 10배나 더 많은 수입을 얻는다아니 100배나 더 많은 수입이 있다그러나 과연 부자가 설탕을 100배나 더 많이 살 필요가 있을까보드카나 성냥을 10배나 더 많이 살 필요가 있을까또 석유는 어떠한가물론 그렇지 않다부유한 가정은 석유보드카설탕을 가난한 사람보다 2배 혹은 기껏해야 3배 분량을 사는 데 불과하다그러나 이 점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적은 비례의 금액을 세금 형식으로 자신의 수입에서 지출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빈농 수입을 1년에 200루블이라고 가정했을 때간접세가 붙어 가격이 높아진 60루블 상당의 상품을 산다고 하자. 60루블 가운데 20루블은 세금이 된다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빌린, 1루블에 대해 10카페이카를 간접세 형식으로 지출한다그런데 부농 수입은 1000루블이고세금이 부과한 상품을 150루블만 산다고 했을 때세금은 150루블에 맞추어, 50루블이 지출된다그러므로 부농은 자신의 수입 가운데 1루블에 대해 간접세 형식으로 겨우 5카페이카밖에 지출하지 않는다부자일수록자신의 수입에서 지출하는 간접세 액수가 더욱 작아진다그러므로 간접세는 가장 부당한 세금이다간접세는 가난한 사람에게 부과될 세금이다농민과 노동자는 모든 인구에서 95%를 차지하고전체 간접세에서 9/10 혹은 8/10을 지출한다그런데 노동자와 농민은 모든 수입에서 4/10 이하를 받는다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는 간접세 폐지와 수입 및 상속에 대한 누진세 설치를 요구한다이 방식은 수입이 많을수록누진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방식이다. 1천 루블 수입이 있는 사람에게는, 1루블에 1카페이카씩, 2천 루블 수입이 있는 사람에게는 1루블에 2카페이카씩이하는 여기에 준하도록 과세한다가정 적은 수입, 400루블 이하의 수입을 얻는 사람으로는 전혀 과세하지 않도록 한다가장 큰 부자가 가장 막대한 세금을 지출하도록 한다소득세 혹은 누진 소득세는 간접세보다 훨씬 정당하다사회민주주의자는 간접세 폐지와 누진 소득세 실시를 획득하고자 노력한다그러나 모든 토지 소유자모든 부르주아지는 이를 원치도 않고반대한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오직 빈농과 도시 노동자에 따른 공고한 동맹만이 부르주아지로부터 세제 개선을 쟁취할 수 있다.

 

모든 인민빈농에 대해 중대한 개선은 아동 무상교육제도이다사회민주주의자는 무상교육제도를 요구한다농촌에서는 도시에서보다 학교 수효가 훨씬 적다어디서나 부자 계급부르주아지만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는다모든 아동의 의무·무상 교육만이 인민으로 하여금 문맹 상태에서 어느 정도 해방할 수 있다빈농은 특히 문맹으로 어려움을 겪고교육을 더욱 더 필요로 한다물론 참된 자유로운 교육을 필요로 하는데관리나 승려가 원하는 자유 교육은 아니다사회민주주의자는 각 개인이 어떤 종교든지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얻기를 요구한다다만 유럽 각국 가운데 터키와 러시아에서만 다른 인종에 대해 수치스러운 법률이교도·분리파·유태인에 대한 부당한 법률이 남아 있다이런 법률은 직접 어떤 신앙을 금지하든지그것의 선전을 금지하든지그렇지 않으면 믿는 자의 권리를 일부 박탈한다모든 법률은 가장 부당하고폭력적이고수치스럽다각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믿을 자유뿐만이 아니라좋아하는 종교를 선전하고그 신앙을 변경하는 완전한 자유를 가져야만 한다어떤 관리라도어떤 신앙에 대해 타인에게 질문할 권리를 가져선 안 된다문제는 양심의 문제다누구라도 문제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어느 곳에서든신앙 또는 교회는 있을 수 없다모든 신앙모든 교회는 법률 앞에 평등해먄 한다여러 가지 종파의 승려에 대해서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생활 자료를 주어도 좋지만국가는 국고의 돈으로는 어떤 종교라도 보호해서는 안 된다어떤 승려에게도어떤 그리스 정교도에게도어떤 분파에게도어떤 이교도에게도그 밖의 어떤 자에게도 생활비를 주어선 안 된다사회민주주의자는 이 모든 점에 대해 크게 맞선다앞서 말한 수단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아무런 법규의 절차도 없이 적용되고 있는 동안에는인민은 신앙에 대한 수치스러운 경찰의 압박에 못지않게수치스러운 어떤 종교에 대한 경찰의 특별 대우로부터 해방되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인민을특히 빈농을 위해 어떤 개선을 쟁취하고자는 하는지를 살펴봤다이제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자를 위해공장이나도시 노동자만이 아니라농촌 노동자를 위해 어떤 개선을 쟁취하는지를 살펴보자공장 노동자는 비좁은 곳에서 겨우 생활한다대공장에서 노동한다교양 있는 가문 출신인 사회민주주의자 원조를 이용하는 건 더욱 쉽다따라서 도시 노동자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훨씬 먼저 경영주와 투쟁을 개시해서현저한 개선을 쟁취하고공장법 제정도 쟁취했다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인민을 위해도시와 농촌 가정에서 주인을 위해 일하는 수공업자를 위해서도소경영자를 위해서도수공업자 밑에서 일하는 고용 노동자를 위해서도목수석공 등 건축 노동자 및 목재 노동자를 위해서도미숙련 노동자를 위해서도더불어 농촌 노동자를 위해서도 투쟁을 지속한다모든 노동자들은 지금도 전국에서 확대되어연합하기 시작했다공장 노동자를 뒤쫓아 원조를 얻어보다 좋은 생활 조건을 획득하고자보다 짧은 노동 시간을 위해보다 높은 임금을 위해 연합을 개시했다.

 

사회민주당은 생활 개선을 위한 투쟁에 있어 모든 노동자를 지지하고가장 튼튼하고가장 믿음직한 노동자를 공고한 동맹에 조직하고자 원조하고소책자와 안내서를 배포하고초보적인 사람들을 위해 경험 있는 노동자를 파견하고그 외에도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모두 원조하기를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정치적 자유를 획득할 때대표자 인민 회의에서도 자신의 쪽인 사람노동자 대표자사회민주주의자는 출석한다다른 국가에서도 자기 쪽 동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률 발표를 요구한다사회민주당은 노동자를 위해 쟁취하려고 하는 모든 개선을 열거하지는 않겠다개선은 강령 가운데 충분히 열거했고국내 노동자 사업에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개선 항목 가운데 중대한 점을 충분하게 들어보자.

 

노동 시간은 1주일에 8시간 이상이어서는 안 된다.

 

- 1주일에 하루는 휴식을 위해 늘 노동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잔업 및 야간 업무는 완전히 금지해야만 한다.

 

아동은 16세까지 무상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또 16세까지 고용 노동은 허락되지 않는다.

 

신체에 유해한 사업에서 부녀자는 일해서는 안 된다.

 

노동할 때 모든 상해에 대해서는 고용주가 배상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탈곡기를 다루다가입은 상해에 대해 임금을 지출할 경우모든 고용주는 늘 1주일 분 임금을 지급해야만 한다.

 

농촌에서 고용된 경우 품삯을 2개월에 한 번만, 3개월에 한 번만 지불받아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확히 지불받는 게 매우 중대하다.

그때에는 반드시 현금을 받고물품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

 

고용주는 물품을 줄 경우, 3배나 비싼 가격으로 모든 나쁜 물품을 강요한다무법을 막고자무조건 법률로부터 물품에 따른 품삯 지불을 금지시킨다.

 

정년을 넘은 노동자는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아야만 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모든 계급모든 국가를 부양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들은 관리가 받는 것보다도더 많은 연금을 충분히 받을 권리가 있다.

 

경영주는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서노동자를 위해 만든 규약을 파기하지 않도록공장에 대해서만 아니라대규모 농장에 대해서도일반적으로 고용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기업에 대해서도감독관이 임명되어야만 한다그러나 감독관에는 관리경찰에 근무하는 사람은 임명되어선 안 되고또 장관이나 지사로부터 임명되어서도 안 된다감독관은 노동자로부터 선출한 사람이어먄 한다.

 

노동자로부터 자유롭게 스스로 뽑은 노동자 의뢰인에게는 국고에서 급료를 지불한다.

 

노동자로부터 뽑힌 대표자는 노동자 주택이 잘 설비되는지경영주가 노동자를 토굴이나토막에 거주시키는 건 아닌지노동자 휴식에 관한 규정도 잘 시행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만 한다.

 

정치적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경찰은 전권을 휘둘러인민을 무책임하게 다루는 한노동자들로부터 선출된 어떤 대표자라고 하더라도아무 이익을 줄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경찰은 재판도 없이노동자의 대표자를 체포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말하고법률 위반을 폭로하고노동자로 하여금 연합하도록 호소하고 있는 노동자들까지도 체포한다그러나 정치적 자유를 획득할 때에는 노동자 대표자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

 

모든 공장주지주청부인부농과 같은 고용주에 대해 자신의 임의대로 어떤 노동 임금 삭감이라도불합격품에 대한 삭감벌금 형식으로부터 삭감 등등을 금지시켜야만 한다고용주가 함부로 노동 임금을 삭감하는 건 위법이고또 강제다어떤 형식의 삭감이든경영주는 노동자 임금을 함부로 내려서도 안 된다.

 

고용주는 자신 스스로를 재판해서는 안 된다고용주는 공공 재판에 고소해야만 한다그리고 재판은 노동자 대표와 경영주 대표를 절반씩 뽑아 실시해야만 한다이런 재판만이 노동자에 대한 경영주에 따른 모든 불만족과 경영주에 대한 노동자 불평·불만을 정당하게 심의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상과 같은 개선을 모든 노동 계급을 위해 쟁취하고자 한다각 소유지에서도 노동자각 농장에서도 노동자각 청부인 아래에서 노동자는 신용할 수 있는 사람과 협력해서어떤 개선을 획득할 필요가 있고어떤 요구를 제기할 수 있을지를심의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사회민주당 위원회는 전국 모든 노동자에 대해 자신의 요구를 정확하고또 분명하게 결정하도록 돕고요구로부터 노동자·경영주·관리에게 알리는 안내서를 인쇄하기를 원조한다노동자는 한 사람같이 협력해서자신의 요구를 위해 일어선다면경영주는 분명 양보하고타협한다도시 노동자들은 이미 해당 방법으로부터 많은 개선을 쟁취했다현재 장인·수공업자·농촌 노동자도 자신의 요구를 위해 조직하기 시작했고싸움을 개시한다정치적 자유를 얻지 못한 시기에는 투쟁을 은밀하게모든 소책자 안내서 제작과 노동자 단결을 금지하고 있는 경찰을 따돌리고몰래 해 나가기도 했다그러나 정치적 자유를 쟁취할 때에는투쟁을 한층 더 확대해서모든 사람들 앞에 공공연하게 수행하고전국 모든 노동 대중과 연합해서더 긴밀하게 연합하면서부터폭압으로부터도 자신을 방위해나갈 수 있다많은 노동자는 사회민주노동당과 연합할수록힘은 보다 굳세게 되어 모든 압박에서도모든 고용 노동에서도부르주아를 위한 모든 노동에서도노동 게급에 따른 완전한 해방을 보다 빠르게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사회민주노동당이 노동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모든 농민을 위해서도개선을 쟁취하고자 있음을 밝혔다다음은 당에서는 모든 농민을 위해 어떤 개선을 획득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6.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농민을 위해 어떤 개선을 쟁취하는가.

 

모든 노역자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가난한 농민은 도시 노동자와 동맹해서 모든 부르주아지그 중에서는 부농에 대해서도 투쟁을 감행해야만 한다부농은 자신이 고용하는 농촌 노동자에 대해 보다 싸게 지출하고보다 오랫동안보다 가혹하게 일하도록 노력한다가난한 농민은 부유한 농민을 제외한 특수한 자신들의 동맹을 결성해야만 한다그러나 국내에서는 부농과 빈농을 모두 포함한 모든 농민이 많은 점에서는여전히 농노의 처지로 뒤떨어져 있다모두 열등하고천하고 납공하는 신분을 이루고 있다모두 경찰 관리와 자치청 장관에게 예속된다모두 절단된 토지용수지경지초원지주 때문에 농노 시대와 똑같은 방법으로 노동한다모든 농민은 새로운 농노 상태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모든 사람은 지주를 미워한다지주야말로지금까지 농민으로 하여금 부역 제도 아래에서 혹사시켰고토지경지용수지초원에서도 고역을 시키고가축이 경지를 밟아서 생긴 손해 때문에 사역을 시키고경의를 표하고자 수확기에는 부녀자를 내도록 만들었다빈농은 모든 고역 때문에 부농보다 더 많은 해를 입는다부농은 지주를 위한 노동에서도 해방된다그럼에도 지주는 역시 부농을 매우 압박한다그래서 부농은 빈농과 함께 한 상태에 놓여 있는 지방과 관구가 국내에서 많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모든 전국 노동자와 빈농은 두 손으로두 길에서한 손으로는 모든 노동자와 동맹해서 모든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을다른 한 손으로는 모든 농민과 동맹을 맺어농촌에서 관리와 투쟁하고농노제를 강제하는 지주와 투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빈농은 부농에게 분리해서 자신의 특수한 동맹을 결성하지 않는다면부농은 빈농을 속이고배척하며 스스로 지주 쪽으로 간다그리고 토지를 갖지 않은 농민을 그대로 내버려둘 뿐만이 아니라그에게 단결하는 자유를 주지도 않는다빈농이 부농과 함께 농노적 노예 상태에서 대항하지 않는다면빈농은 현 상태에서도 꼼짝 못하고도시 노동자와 단결하는 완전한 자유를 얻지도 못한다가난한 농민은 맨 처음에 지주를 공격해서최악의 가장 유해한 부역 제도에 따른 노예 상태만이라도 폐지시켜야만 한다이 점에서는 다수 부농과 부르주아지까지도 함께 빈농 쪽에 선다왜냐하면 지주의 거만함은 모든 사람을 싫증나게 만들기 때문이다그러나 지주 권력을 축소시키자마자부농은 곧 가변을 벗어던지고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발톱을 편다그러나 이 발톱은 물건을 수집하는 발톱이고이미 많이 모아들였다그러므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고강고하고파괴하기 어려운 동맹을 도시 노동자와 함께 조직하자.

 

도시 노동자는 지주의 나쁜 습관을 타파하기를 원조하고부농을 진압한다가난한 농민은 도시 노동자와 동맹 없이는 결코 모든 노예 상태와 모든 궁핍과 빈곤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다도시 노동자 이외에는 어떤 사람도 가난한 농민을 원조할 수 없고자신을 믿는 이외에 어떤 사람에게도 맡길 수는 없다그러나 보다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위대한 투쟁이라는 첫 걸음에서 곧바로 획득할 수 있는 개선도 있다다른 국가에서는 오래 전에 소멸한 관리의 예속 상태가부역적·농노적인 노예 상태가 모든 전국 농민에게도 지금 곧 벗어날 수 있는 노예 상태가 국내에서도 많이 현존한다.

 

그렇다면 사회민주노동당은 모든 전국 농민을 적어도 최악의 농노적인 노예 상태에서도 해방하고자모든 부르주아지와 투쟁에서 가난한 농민의 손을 자유롭게 하고자먼저 어떤 개선을 쟁취할 수 있는가사회민주당에 따른 최초 요구로는 '납공할 의무가 있는농민에게 부과된 모든 배상금에 따른 지출모든 임대료 및 그 외 일체 부담을 폐지한다전국 황제의 귀족 위원회·귀족 정부는 농민을 농노적인 예속에서 해방했을 때농민에게 자신들의 사유 토지를더욱 농민이 예로부터 경작하고 있던 토지를 사도록 만들었다바로 약탈이다귀족 위원회는 황제 정부의 원조로부터 직접 농민을 약탈했다약간의 절단된 분유지를 받기를 바라지 않은 농민에게 대해서는 군사적 집행 처분 할 목적으로강제적인 재판 규정을 실시하고자황제 정부는 여러 지방에 군대를 파견했다군대 원조박해사살 없이는 귀족 위원회는 농노 해방 당시에도 농민을 약탈할 수는 결코 없었다지주와 귀족 위원회는 농민을 어떻게 기만하고약탈했는지를 농민을 늘 생각해야만 한다왜냐하면 현재에도 농민을 위한 새로운 법률이 심의될 때에는여전히 황제 정부가 늘 지주와 귀족 위원회를 임명했기 때문이다황제는 1903년 2월 26일자 선언을 발표했다그 속에서 황제는 농민에 관한 법률 수정과 개선을 약속했다그러나 누가 수정했는가누가 개선하는가그것은 다시 귀족이 한다또 관리가 한다농민 생활 개선을 위해 농민 위원회가 창립되지 않는 동안에도 농민은 늘 기만된다지주자치청 장관모든 관리는 이미 충분히 농민을 혹독하게 부렸다자치청 장관과 지사라고 부르는 모든 관리로부터모든 방탕한 귀족 자식의 예속은 충분하다농민은 스스로 자신의 사업을 수행하고스스로 새로운 법률을 심사하고실행하는 자유를 요구해야만 한다농민은 자유롭게 선거된 농민 위원회를 요구해야만 한다이걸 쟁취하지 않는다면 귀족 관리는 늘 기만하고약탈해간다농부 스스로 자신을 해방하지 않는다면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에 잡고자 연합하지 않는다면어떤 사람이라도 관리 앞잡이로부터 해방하지도 않는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배상금 지출임대료 지출그 외 일체 부담에 따른 완전하고즉각적인 철폐를 요구하고 있으며배상금에 따른 납입금을 인민에게 반환해주기를 요구한다모든 전국 농민은 귀족 위원회로부터 농노제에서 해방된 그때부터도수억 루블에 따른 돈을 지출한다농민은 돈을 도로 달라고 요구해야만 한다정부로부터 대지주 귀족에게 특별세를 부과시키자수도원과 제후가 영유하는 토지황제 가족으로부터 땅을 반환시키자대표자 인민 위원회로부터 농민 이익이 되도록 돈을 처분시키자국내에서도 농민에 대한 멸시농민에 대한 박해굶주려 죽는 수백만 농민의 무서운 사망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다귀족 위원회는 아직까지도 농민을 약탈했으므로농노 해방부터 매년 옛 농노 후계자에게 낡은 납공을 강요하고배상금과 임대료를 착취해 온 까닭에 국내 농민은 지금도 굶어 죽고 있다약탈하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임을 지도록 하자굶어 죽게 된 사람에게 참된 원조를 주고자 귀족과 대지주에게 돈을 징수하자굶어 죽는 농민에게 자선이나 약간의 선물도 필요 없다굶어 죽는 농민에게 매년 지주와 국가에게 바치고 있는 돈을 반환하도록 요구하자대표자 인민 위원회와 농민 위원회는 참 원조로부터 굶어 죽는 사람에게 충분하게 줄 수 있다.

 

사회민주노동당은 연대 제도와 토지 처분에 관해 농민을 압박하는 모든 법률에 따른 즉각적인 완전한 폐지를 요구한다. 1903년 2월 26일에 있었던황제 선언은 연대제에 따른 철폐를 약속한다이미 철폐에 관한 법률이 발표됐지만불충분하다그 외에 농민 토지 처분에 관해 농민을 압박하는 모든 법률에 따른 즉각적인 철폐가 필요하다그렇지 않으면 농민은 연대 제도가 철폐될지라도완전히 자유롭게 되지 못하고절반은 농노인 상태로 여전히 남게 된다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처분하는 완전한 자유누구에게도 상의하지 않고토지를 양도하고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팔아 넘기는 완전한 자유를 얻어야만 한다모든 귀족·상인·시민은 자유롭게 토지를 처분할 수 있으나농민은 그렇지도 못하다농민은 갓난애다유모처럼 감시하고자 농민에게는 자치청 장관을 붙여둘 필요가 있다농민에게는 자신의 분유지 팔기를 금지해야만 한다그런 와중에도 분유지를 신용하는 바도 있어서농민에게 선을 희망하면서도농민에게는 토지를 팔기를 금해야만 한다고 말한다인민파와 사회혁명당원은 부화뇌동해서 국내 농민을 약간 노예 상태로 남겨두고는 토지를 팔지 않도록 하는 쪽이 좋다는 걸 인정해버린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는 말한다한낱 허례허식이다그건 한낱 말뿐이다달콤한 언사에 지나지도 않는다사회주의를 쟁취할 때에는노동 계급이 부르주아지를 정복할 때에는 모든 토지가 공유되고누구라도 토지를 팔 권리는 없어진다그러나 그때까지 어떻게 할 건가귀족과 상인은 팔 수 있지만많은 농민은 팔 수 없다귀족과 상인은 자유지만농민은 절반인 농노 상태에 있다농민은 또 장관에게 허가를 얻어야만 한다따라서 달콤한 언사로 가려진 하나의 기만에 불과하다귀족과 상인에게 토지를 판다는 걸 허락되고 있는 이상그때까지 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파는 완전한 권리와 귀족상인과 마찬가지로 매우 자유롭게 토지를 처분하는 완전한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노동 계급이 모든 부르주아지를 정복할 때에는노동 계급은 대지주에게서 토지를 몰수한다노동하는 사람들은 함께 협력해서경작하고토지 경영자로는 자유롭게 위임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노동을 경감하고자 모든 기계를 소유하고교대로 매일 8시간 때로는 6시간 노동을 하고자노동 계급은 대농장에서 협동조합 농업경영을 수립한다이전과 같이는 혼자서 경영하기를 바라는 소농은 시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팔고자경작하는 게 아니고노동 조합에 따른 빵고기채소를 제공하는 데 비해 노동자는 무료로 소농에게 농구가축비료의복그 외 필요한 모든 걸 제공한다금전 때문에도 대경영주와 소경영주 사이에서 투쟁이 생기지 않는다남을 위해 일하는 고용 노동은 없어지고모든 노동자는 스스로를 위해 일한다노동 상 모든 개선과 기계는 노동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을 경감하고생활을 개선하고자 이용된다그렇지만 모든 사려 깊은 사람들은사회주의가 단번에 실현되는 건 결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따라서 모든 부르주아지와모든 사람들과모든 정부와 필사적인 투쟁을 감행해야만 한다또한 모든 전국에 걸친 모든 도시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을 견고한 강철 같은 동맹으로 단결해야만 한다위대한 사업이다사업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그러나 아직은 사회주의를 획득하지 못한 동안에는 대경영주는 늘 금전을 위해 소경영주와 투쟁한다과연 대농은 자유롭게 토지를 팔아도 좋으나소농은 토지를 팔면 안 되는가다시 한 번 되풀이하자농민은 갓난애도 아니다농민은 누구에게도 지배시키기를 허락하지 않는다농민은 매우 제한 없이 귀족과 상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를 손에 넣어야만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농민 토지는 자신의 것이 아니고공동의 것이다그러므로 각자는 사회적인 토지를 파는 걸 결코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건 또 하나의 기만이다귀족과 상인에게도 농민 같은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가귀족과 상인은 짝이 되어 함께 토지와 공장을 그리고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걸 사지 않는가어찌해서 귀족 단체에는 아무런 압박도 가하지 않고농민에게는 모든 경찰에 따른 먹지도 못한 걸 제한과 금지를 하려고 기회를 노리는가결코 농민은 관리에게 선행을 받은 일이 없다다만 구타와 연공과 치욕을 받았을 뿐이다농민들은 스스로 모든 일을 스스로 손으로 하지 않는 동안완전한 평등에 따른 권리와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지 않는 동안에는 결코 지위에 따른 개선을 기대할 수는 없다아무도 방해할 수는 없다자진해서 어떤 구성의어떤 형식의 단체라도 조직하는 데 동의하고 있고자유롭게 어떤 단체 계약에도 서명하고자 한다그리고 어떤 관리라도 농민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에 간섭할 게 아니고누구라도 농민을 영리하게 만들려고도 않고농민을 위해 압박과 금지를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또 하나 농민을 위해 중대한 개선을 쟁취하고자 힘쓴다농민 귀족의 노예 상태농노적인 노예 상태를 즉시 제한하려고 힘쓰고 있다세상에 궁핍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에는궁핍이 제거되지 않은 동안에는토지와 공장이 부르주아지 손에 있는 동안에는세상에서 주요한 힘이 돈인 동안에는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되지 않는 동안에는모든 노예 상태가 제거되지 않는다그러나 아직은 사회주의가 시행되지 않은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특히 나쁜 노예 상태가 국내 농촌에서도 많이 남아 있다모든 지주에게는 이익이지만모든 농민을 압박하고지금 당장에라도 폐지해야만 하고또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농노적인 노예 상태가 국내에서도 많이 잔존한다그렇다면 어떤 노예 상태를 농노적인 노예 상태라고 부르는가모든 농촌 주민은 지주 토지가 농민 토지와 나란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농노해방기에는 농민으로부터 필요한 토지경지방목지그리고 용수지를 전달했다농민은 절단된 토지와 경지용수지 없이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좋거나싫거나 불문하고 지주에게 청해서 가축에게 물을 먹이든지경지를 달라고 해야만 한다그런데도 지주는 자신의 경영을 스스로 하지도 않고또 한 푼도 쓰지 않으며농민을 혹사시킨다농민은 절단된 토지로부터 지주에게 돈을 받지도 않고 노동한다자신의 말을 갖고지주 토지를 경작하고곡식과 벌판 풀을 모으고지주를 위해 곡식을 거두고어떤 곳에서는 지주 토지에다 자신의 비료를 뿌려주며지주의 집에는 옷감과 계란과 그 밖의 모든 음식을 가져다 준다농노제 시대와 똑같다농노 시대에 농민은 지주 세습지에 거주해서해당 지주를 위해 노동하며귀족 위원회 손에서 해방된 때에도 농민 손에서 떠난 동일한 토지 때문에 다만 지주를 위해 노동한다부역 제도와 완전히 틀리지 않는다어떤 지방에서는 농민 자신은 노동을 주인을 위한 노동또는 '판쉬나'라고 부른다바로 농노적인 노예 상태이다.

 

지주와 귀족 위원회는 농노해방 때에도 이전과 같이 농민을 사역시킬 수 있도록 고의로 농민 분유지를 절단해서쐐기처럼 지주 토지를 사이에 넣거나농민에게서 닭을 몰수해서 못 기르게 한다거나고의로 나쁜 토지에 이전시키거나용수지로 가는 길을 지주 토지로 막아버렸다농민들로 하여금 고난의 그물 속에 붙잡히도록이전과 같이 맨손인 채로 포로가 되도록 고의로 꾸며놓았다농촌은 국내에도 얼마나 있는가농민이 인근 지주 포로가 되어농노 시대와 똑같이 포로 상태에 놓여 있는 곳도 무수하다농촌에서는 빈농이나 부농이나모두 손 발이 묶여 지주 손에 결박된다따라서 빈농은 부농보다 훨씬 더 괴로운 생활을 한다부농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고주인을 위한 노동에 자신을 대신해서 농업 노동자를 보낸다반면에빈농은 몸둘 곳도 전혀 없고지주는 결박하려고 새끼를 꼰다농노 상태에 있는 빈농에게는 흔히 탄식할 시간도 없다지주에 대한 노동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모든 빈농과 도시 노동자와 하나의 동맹하나의 당에 자유롭게 연합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그렇다면 곧 단숨에 농노 상태를 폐지할 방법은 과연 없을까사회민주당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두 가지 방법을 농민에게 제공한다그러나 모든 농노 상태에서 모든 가난한 농민을 구원한다는 건 오직 사회주의뿐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풀이하고자 한다왜냐하면 대체로 부자가 힘을 가지고 있으면그들은 늘 어떻게 해서든지 빈농을 압박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모든 농노 상태를 한 걸음에 결코 폐지할 수 없다그러나 빈농과 중농부농까지도 압박하는 가장 나쁘고 가장 추한 농노적인 노예 상태를 굳세게 배격해서곧 농민을 위해 현실 개선을 쟁취할 수 있다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농촌에서 농업 노동자와 가장 가난한 농민부농과 지주로부터 신입받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롭게 선출된 재판소 설치다.

 

2. 자유롭게 선출된 농민 위원회다농민 위원회는 부역 제도 폐지와 농노제 잔재 폐지를 위해 모든 방법을 심의하고채택할 권리를 가질 뿐 아니라절단된 토지를 압수해서 농민에게 반환하는 권리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자세하게 살펴보자면신임을 받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선출된 재판소는 노예 상태에 관한 농민 호소를 모두 심사한다재판소는지주가 농민 궁핍을 이용해서 너무 비싸게 토지 차지료를 결정한다면인하하는 권리를 가진다재판소는 농민을 법 이외에도 지출에서 권하는 권리를 가진다지주가 여름 노동 절반 액수로부터 겨울에 농민을 고용했다면 재판소는 사건을 심사해서정당한 품삯을 사정한다물론 관리로 구성되지 않고자유롭게 선출된 신임받는 사람들로부터 구성된 농촌 농업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으로부터 선출된 사람 수효는 반드시 부농과 지주로부터 선출된 사람 수효보다 적어서도 안 된다재판소는 또 노동자와 경영주 간 모든 사건도 해결한다노동자와 모든 가난한 농민은 재판소에서 보다 쉽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상호 간 연합을 성취해서어떤 사람들을 신용할 수 있고진실로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 쪽이 될 수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또 하나 방법은 더욱 중대하다각 군에 따른 농업 노동자·빈농·중농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출된 자유로운 농민 위원회다어느 사람이라도 어떤 노예 상태가 압박하는지는 농민 자신보다도 잘 알 수는 없다또한 농노적인 노예 상태로부터 생활해 온 지주 죄악을 농민 자신보다 더 잘 폭로할 수는 없다농민 위원회는 절단됐던 토지초원경지그 밖의 것이 어떻게 부정한 방법으로 농민 손에서 떠나갔는가를 심의한다그래서 토지를 그저 압수할 건가 또는 대지주로 하여금 토지를 구입한 사람에게 배상시킬지를 심의한다농민 위원회는 적어도 다수 귀족 지주 위원회가 몰아넣은 고난의 그물로부터 농민들을 해방한다농민 위원회는 관리 간섭에서 농민을 구원하고농민 자신이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를 원하고또 처리할 수 있다그리고 농민과 궁핍을 상의하고참된 가난한 농민 쪽이 되어도시 노동자와 동맹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는 등 원조한다농민 위원회는 벽촌에서 농민이 자신의 발로 일어서서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쥐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는 농민에게 경고한다.

 

어떤 귀족 위원회어떤 관리 위원회도 신용하지 말라.

 

대표자 전체 인민 회의를 요구하라.

 

농민 위원회 창립을 요구하라.

 

모든 서적과 신문을 인쇄하는 완전한 자유를 요구하라.

 

모든 사람은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고대표자 모든 인민 위원회농민 위원회신문지상에서 자신의 의견과 희망을 진술하는 권리를 가질 경우누가 노동자 쪽이 되고누가 부르주아지 쪽이 되는가는 매우 빠르게 알려진다매우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자신의 진짜 의견을 숨기고 있던 몇몇은 고의로 속였다그러나 앞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생각하고숨길 필요도 없게 되며모든 문제를 빠르게 알아갈 수 있다이미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쪽으로 부농을 끌어당기고 있다농노제 노예 상태를 보다 빠르게 폐지할수록그 정도가 크면 클수록농민이 참된 자유를 보다 많이 획득할수록가난한 농민은 더욱 빠르게 서로 연합하고부농도 더욱 빠르게 모든 부르주아지와 결합해간다그리고 마음대로 결합시키도록 하자부농이 결합으로부터 더 강력하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나무서워하지는 않는다같이 연합하면 된다동맹으로부터가난한 농민과 도시 노동자 동맹은 더욱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수이고상대 쪽 10만 명 동맹에 비해 수천 만 명의 동맹이 된다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쪽으로 중농과 소농을 끌어들이고자 노력한다기만하려고 애쓰고충동질하고분리시키고각 개인을 부농으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친다부르주아지가 어떤 수단으로어떤 기만책으로 중농을 충동질하는지를 이미 말했다그러므로 가난한 농민에게 눈을 열어주고부르주아지에 대한 도시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에게 있어 특수한 동맹을 공고하게 해야만 한다농촌 각 주민으로 하여금자신의 주위를 잘 살피도록 하자부농이 얼마나 자주 영주와 지주에 대해 반대말을 하고 있는지를인민에 대한 압박을 호소하고영주 토지가 황폐하게 내러벼졌다고 얼마나 죽는 소리를 해대는가농민이 토지를 압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떠들어대기를 또 얼마나 즐기는가.

 

부농이 말하는 걸 믿을 수 있는가아니다빈농들은 인민을 위해 토지를 바라고 있다빈농은 이미 토지를 매입하든지임차해서 손에 넣었다그러나 아직 충분하지는 못하다지주에 대항해서 빈농은 오랫동안 부농과 함께 걸어 나갈 수는 없다다만 지주에 대항한 첫 단계에서만 부농과 함께할 수 있을 뿐이며다음 단계에서는 다른 길을 걷는다따라서 처음 한 걸음 뒤에 밟는 중요한 걸음은 분명하게 구별한다농촌에서 첫 걸음은 농민의 완전한 해방으로부터 농민이 얻을 완전한 권리와 절단지 반환을 위한 농민 위원회 설치다그리고 농촌과 도시에서 밟아야 할 마지막 걸음은 모든 토지와 공장을 모든 지주와 부르주아지로부터 몰수해서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간다처음과 마지막 걸음 사이에서 적지 않은 투쟁을 치루지 않으면 안 된다그리고 첫 걸음과 마지막 걸음을 혼동하는 사람은 투쟁을 방해하는 사람이며자신으로는 알지도 못하고빈농의 눈을 가리고 마는 사람이다가난한 농민은 처음 한 걸음을 모든 농민과 함께 밟고 나간다일부 부농은 퇴각을 시작하고, 100명의 농민 가운데 한 사람은 어떤 노예 상태라도 달갑게 받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거대한 인민 큰 덩어리는 하나를 위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평등권은 모든 농민에게 필요해진다지주로부터 노예 상태는 모든 사람의 수족을 결박시킨다그러나 마지막 걸음을 모든 농민이 함께 걸어가는 일은 결코 없다같은 시기에 모든 부농은 농업 노동자에게 반항하고또 일어선다거기서 먼저 빈농과 사회민주주의자인 도시 노동자와 공고한 동맹이 필요하다농민에게 처음과 마지막 걸음을 함께 밟고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농민을 기만하는 사람이다그 사람은 농민 자신 간에 일어나는 위대한 투쟁을 잊어버린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농민에게 주지육림 같은 이상향을 약속하는 게 아니다사회민주주의자는 먼저 모든 노동 계급에 따른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투쟁을 위해폭 넓은 모든 국민적 투쟁을 위해서도 완전한 자유를 요구한다사회민주주의자는 적지만확실한 첫 걸음을 지시한다일부 사람들은노예 상태 제한과 절단지 반환을 위해 농민 위원회를 창설하려는 요구가 장애와 장벽이 된다고만 생각한다그 이상 더 나아가지도 말라고 말한다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사회민주주의가 희망하는 데 있어 대단히 곡해하고 있다노예 상태 개선과 절단지 반환을 위해 농민 위원회를 설립하려는 요구는 장애도 아니다요구는 하나의 문이다보다 멀리넓게 열린 길을 따라 가장 끝까지 가려면국내에서도 모든 노역자 대중을 완전하게 해방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려면먼저 이 문에 들어가야만 한다농민은 이 문을 빠져 나가지 않고서는암흑 속에서노예 상태 속에서만 남아 있다완전한 권리나참된 자유 없이 농민은 자신들 안에서 노동자 동무가 누구고적이 누구인가를 철저하게 구분하지도 못한다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문을 가리키고먼저 모든 공동체모든 인민은 문으로 몰려와서타파해야만 한다고 말해야만 한다그러나 자신을 인민파라거나사회혁명당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다그들도 농민에게 선행하기를 바라고떠들고부르짖고손을 휘두르며 원조를 희망한다그러나 그들은 이 문을 보지 않는다농민에게 자신의 토지를 자유롭게 지배할 권리를 전혀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할 때마다그들은 얼마나 눈이 먼 자들이던가그들은 때때로 농민에게 '선행을 하라'는 등 농노 소유자와 같은 말을 한다동무로부터는 원조를 많이 얻지도 못한다자신이 파괴하지 안흐면 안 될 최초의 문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면농민에게 아무리 선행하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도시뿐만 아니라농촌 지주공동체 내부 부농에 대항해서 자유로운 국민적인 투쟁 길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도 모른다면아무리 사회주의를 위해 노력한들 무엇을 획득할 수 있는가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는 꾸준하게 가장 가까운 최초 관문을 지시한다현재 모든 종류로부터 선량한 희망을 말하고참된 길을 지시하고어떻게든 처음 한 걸음을 밟고 나가는가를 분명하게 깨닫도록 하는 건 곤란하지 않다국내 농민은 노예 상태에 떨어져 있어 그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40년 간이나농민의 동지들이 직접 글로 쓰기도 하고연설하기도 했다지주가 모든 절단지를 빌미로 해서 얼마나 불법적으로 농민을 약탈하고혹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국내 사회민주주의자가 나타나기 오래 전부터 농민 모든 동지로부터 많은 책도 씌어졌다농민을 곧 구제해야만 하고노예 상태에서 미약하게나마 해방해야만 한다는 건 모든 정직한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따라서 경찰과 정부 관리까지도 말한다그렇다면어떻게 첫 걸음을 내딛는가그리고 먼저 어떤 문을 파괴할 지에 달려 있다.

 

해당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들은 특히 농민에게 선행하기를 원하는 사람 가운데 두 가지 다른 해답을 준다모든 농촌 프롤레타리아는 두 가지 해답을 분명하게 깨달아야만 하고스스로 확정적인강고한 의견을 갖도록 노력한다인민파와 사회혁명당원은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농민 사이에서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을 발달시켜야만 한다공동체 동맹을 공고하게 한다각자 농민에게 자신의 토지를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를 줄 필요는 없다공동체로 하여금 권력을 더 많이 갖도록 하자국내 모든 토지를 영구하게 공동체 토지로 만들자토지가 보다 쉽게 자본에서 노동에 이전되도록 토지 구매에 관한 모든 걸 농민에게 경감하도록 해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다른 해답을 내린다.

 

"농민은 먼저 귀족과 상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를 예외 없이 쟁취한다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자유롭게 처분하는 완전한 자유를 가진다가장 더러운 노예 상태를 절멸시키고자절단지 반환을 위해 농민 위원회를 창설해야만 한다공동체 동맹이 필요한 게 아니고모든 국내에서 가지각색 농민을 모아놓은 가난한 농민 동맹도시 노동자와 농촌 프롤레타리아 동맹이 필요하다모든 종류의 협동조합과 공동체 토지 구매는 늘 부농에게만 많은 이익을 주고중농을 기만해간다."

 

국내 정부는 농민에 대한 억압을 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그러나 국내 정부는 대단하지도 않은 완화로 그때만을 모면하고모든 일을 관리시켜 처리한다귀족 위원회는 농민들을 기만하듯이관리 위원회도 농민들을 속였기 때문에 농민들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농민은 자유로운 농민 위원회 선거를 요구해야만 한다문제는 관리로부터 예속 완화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농민 자신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움켜쥔다는 점에 있다처음에 다만 첫 걸음을 내딛도록 하자처음에는 다만 가장 나쁜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자적어도 농민들에게도 자신의 힘을 느끼게 하고자유롭게 상의하도록 하여 연합하자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단된 토지가 흔히 가장 불법적인 농노적 노예 상태에 쓸모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초보적이고가장 정당한 요구가 바로 농민으로 하여금 모든 농노적인 노예 상태 폐지를 위해 관리가 참가하지 않은 농민 위원회를 자유롭게 선출하도록 하자는 걸 안다자유로운 농민 위원회에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힘을 다해농촌 프롤레타리아와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특수한 동맹을 공고하게 한다사회민주주의자는 농촌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첫 걸음을 내딛고결속해서두 걸음세 걸음을 내딛으며프롤레타리아에 따른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원조한다내일 두 번째 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어떤 요구를 내걸을 건지를 지금 당장 말할 수 있는가아니다결코 말할 수는 없다왜냐하면 부농과 모든 협동조합에 종사하는 많은 교양인들은 내일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다음 날 지주와 결합하지 못하고지주 권력을 끝까지 타도할지도 모른다훌륭한 일이다사회민주주의자에게는 좋은 일이다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는 도시와 농촌 프롤레타리아에게 모든 토지를 지주로부터 압수해서자유로운 인민 국가에게 양도하기를 요구하도록 충고한다사회민주주의자는 농촌 프롤레타리아가 기만당하지 않도록프롤레타리아의 완전한 자유 쟁취라는 종국적인 투쟁을 위해 보다 잘 결합하도록 주의 깊게 살핀다.

 

그러나 다른 양상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정반대의 사태가 일어나리라 예상하는 건 그럴듯할지도 모른다부농과 많은 교양인들은 열악한 노예 상태가 일단 완화되고배제되자마자내일이라도 지주와 결합하기 때문이다그리고 모든 농촌 프롤레타리아에 반대해서모든 농촌 부르주아지는 일어선다지주만을 투쟁 대상으로 삼는 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모든 부르주아지와 싸우고먼저 투쟁을 위해 될 수 있는 대로많은 자유와 활동 여지를 요구하고투쟁을 용이하도록 하고자노동자에 따른 생활고 경감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어쨌든 가장 중요하고도당연한 임무는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절반인 프롤레타리아도시 프롤레타리아 동맹을 공고하도록 한다동맹을 위해 인민의 완전한 정치적 자유와 농민의 완전한 평등과 농노적 노예 상태 폐지가 필요하다그리고 동맹이 결성되고공고하게 될 때에 부르주아지가 중농을 충동질해 온 모든 기만을 보다 쉽게 폭로할 수 있다모든 부르주아지에게정부의 모든 힘에 대항해서 쉽고 재빠르게 두 걸음세 걸음그리고 마지막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틀림없이 승리 길로 나아가 속히 모든 노동 대중에 따른 완전한 해방을 쟁취한다.


7. 농촌에서 계급 투쟁

 

계급 투쟁이란 무엇인가인민 일부분에 따른 다른 부분에 대한 투쟁이고압박 당하는 권리 없는 노역자 대중에 따른 특권 소유자·압박자·기생자에 대한 투쟁이고고용 노동자·프롤레타리아 토지 소유자 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이다국내 농촌에서는 위대한 투쟁이 계속 진행됐고지금도 진행된다모든 사람들은 투쟁을 인정하지만그 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농노제가 존재했을 때모든 노동 대중은 황제 정부를 방위하고보호하고지지하고 있던 자신들의 압박자·지주 계급과 싸운다농민은 연합할 수도 없었다농민은 그 당시에 암흑 세계에 짓눌리고 있었다농민은 도시 노동자와 형제 관계에 있지도 못하고원조도 받지 못했다그러나 농민은 할수 있는 한 힘 닿는 데까지 싸웠다농민은 정부 박해와 사형 집행·태형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농노제는 신의 성전으로부터 채용되고신으로부터 교지된다.'

 

모든 힘을 다해 설교한 승려를 농민은 믿지 않았다농민은 여러 곳에서 봉기하고정부는 농민 총 봉기를 두려워해서 양보했다농노제는 폐지됐으나완전히 폐지된 건 아니었다농민은 권리가 전혀 없는 하등 납공 의무만 있는 비천한 신분으로 남겨졌다그러므로 농민은 아직도 계속해서 동요한다농민은 완전하고참된 자유를 찾아가고 있다농노제 폐지 뒤로 새로운 계급 투쟁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간 투쟁이 벌어진다부는 더욱 커지고철도가 부설되고큰 공장이 건설되고도시는 더욱 더 인구가 늘어가고보다 더 화려해진다그러나 소수 사람들은 모든 부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인민은 더욱 가난하게 되어파산하고굶주리고남의 밑으로 고용 노동을 하러 떠난다도시 노동자는 모든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부자에 대한 새로운 위대한 투쟁을 시작한다도시 노동자는 사회민주당 아래에 연합해서한 걸음한 걸음앞으로 나가서 위대한 종국적인 투쟁을 준비하고모든 인민을 위해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면서꾸준하게 굳게 협력하고자신의 투쟁을 감행한다드디어 농민은 견디지 못한다1902년 봄 폴타바하르코프 및 기타 여러 지방에서도 농민들은 분개했다농민들은 지주에게 몰려가서 지주 곡창을 열어젖히고전 재산을 스스로 분배하고농민이 씨 뿌리고 거두었고또한 지주가 집어간 곡식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주고토지를 새롭게 분배하도록 요구했다농민은 극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보다 좋은 토지를 찾아갔다농민은 투쟁하지 않고굶어 죽기보다는 압제자와 투쟁으로 죽는 쪽이 더 낫다고 결심했다그렇지만 농민은 보다 좋은 토지를 쟁취하지는 못했었다


황제 정부는 농민들을 일반 폭동자약탈자라고 선고했다황제 정부는 적을 대하듯이 군대를 보냈다그래서 농민은 패했다농민들은 총에 맞아죽고짐승같이 몸을 찢기고죽을 정도로 얻어맞았다황제 정부는 농민들을아무리 터키인이라도 결코 자신의 적인 기독교도로부터 그럴 정도로 잔인하게 하지는 않을 만큼 학대했다황제의 사자인 지사는 실제로 사형 집행인같이 누구보다 많이 혹독하게 폭동을 자행했다병사는 농민의 처와 딸에게 능욕을 가했다모든 걸 다한 뒤에 농민을 관리 재판으로부터 판결하고농민에게는 지주를 위해 80만 루블을 내도록 했다수치스럽고비밀스러운 고문 재판에서 변호인은황제 사자오보렌스크 지사그 외 황제 종복이 어떻게 농민을 학대하고괴롭혔는지를 말하는 건 허락되지도 않았다농민은 옳은 사업을 위해 싸웠다국내 노동 계급은 황제의 종복들로부터 총에 맞거나얻어맞아 죽은 수난자들을 회고하며늘 존경한다이 수난자들은 노동 대중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운 전사였다농민은 참패했다그러나 더욱 일어난다최초의 패배로부터 의기가 꺾이지는 않는다자각한 노동자는 도시와 농촌에 따른 노동 대중에게 농민 투쟁에 대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알도록 하고보다 희망 있는 새로웉 투쟁을 분비하고자 전력을 다한다계급 의식을 가진 노동자는 농민이 패배하고농민 봉기가 진압된 이유는 무엇이고황제와 황제 부하에게 농민과 노동자가 승리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를 농민에게 분명히 보여주고자 모든 힘을 다하여 애쓴다농민 봉기가 진압된 이유는 무지하고의식 없는 대중 봉기곧 일정하고명백한 정치적 요구국가 기구를 바꾸라는 요구가 없는 봉기였기 때문이다또한 농민 봉기는 준비가 없는 까닭에 진압됐다그리고 농민 봉기는 농촌 프롤레타리아가 도시 프롤레타리아와 연합하지 못한 까닭에 진압됐다최초 농민 봉기가 실패한 세 가지 원인이다.

 

봉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목적 의식을 가지고준비를 잘 갖추고모든 국내를 장악하고또 도시 노동자와 동맹을 맺어야만 한다그리고 도시 노동자 투쟁에서 한 걸음한 걸음은사회민주주의 책자와 신문 하나 하나는농촌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계급 의식이 있는 노동자 연설 한 마디한 마디는 봉기를 자주 일어나도록 하고승리로 끝마칠 수 있도록 가까이 오도록 한다농민은 더욱 견딜 수 없기 때문에말 없이 또 반항 없이 죽기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스스로 봉기해갔다농민들은 모든 약탈과 압박과 고통을 너무나도 심하게 받아왔기 때문에또 황제의 은총에 대한 나쁜 평판의 진상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굶주린 사람들일생 동안 남을 위해 노동한 사람들씨 뿌리고 또 거둬들인 사람들그러나 지금 지주 곡식 창고 옆에서 굶어 죽게 된 사람들곡식을 분배하는 게 정당하고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부자곧 지주와 부르주아지들이 보다 좋은 토지와 공장을 움켜쥐고인민을 노동시키고 있다는 점을 농민은 잊어버리고 만다농민은 부자 계급의 옹호를 위해 승려가 설교할 뿐만이 아니라많은 관리와 병사를 가진 황제 정부도 또한 황제의 옹호를 위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어버리고 만다황제 정부는 이 점을 농민에게 깨닫도록 한다황제 정부는 짐승같이 참혹하게 국가 권력이 무엇이고누구에게 도움을 주고누구를 옹호하는지를 농민에게 알린다.

 

다만 될 수 있는 대로교훈을 농민에게 상기시키면 된다농민들은 국가 기구 전환이 왜 필요하고정치적 자유가 왜 필요한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매우 많은 국민은 이 점을 깨달으며매우 무식하지 않은사려 깊은 모든 농민이 무엇보다 먼저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 가지 중요한 요구를 안다면농민 봉기는 계획 없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첫째 요구는전제적 지배를 탈피하고국내에서도 인민 지배 확립을 위해 대표자 모든 인민 회의를 소집한다.

 

둘째 요구는모든 사람들과 각 분야 살마에게 도서와 신문을 인쇄할 완전한 자유를 갖도록 한다.

 

셋째 요구는농민과 다른 신분과 완전한 평등을 법률로 인정하고최우선으로 모든 농노적인 노예 상태 폐지를 위해 선거로부터 농민 위원회를 건설한다.

 

세 가지는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중요하고기본적인 요구다그리고 요구를 깨닫고인민 자유를 위한 투쟁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를 깨닫는 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농민은 요구를 깨달을 때비로소 빠르게 장구하고꾸준하고굳세게 투쟁을 준비하고또 혼자가 아니라 도시 노동자사회민주주의자와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금방 깨닫는다자각한 농민 개개인과 노동자 개개인으로 하여금곁에서 가장 총명하고가장 장래성 있고가장 용감한 동지들을 모으도록 하자모든 사람들은 어떤 투쟁을 수행하고무엇을 요구할지를 깨닫고자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설명하도록 노력하게 하자자각한 사회민주주의자로부터 서서히 주의 깊게그러나 꾸준하게 자신의 학설을 농민에게 가르치고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소책자를 읽도록 하고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모임에서부터 소책자를 설명하도록 하자그러나 서적으로부터 사회민주주의 학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말고주위에서 생기고 있는 모든 압박과 부정을각각의 실례로부터 겨를을 포착하고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사회민주주의 학설은 모든 압박에 대한 투쟁모든 약탈에 대한 투쟁모든 부정에 대한 투쟁에 대한 학설이다오로지 압박 원인을 알고자신의 전 생애에 있어 어떤 경우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싸우는 사람만이 참된 사회민주주의자다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가자각한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신의 도시와 농촌에서 함께 모여모든 노동 계급에게 이익을 가져오고자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한 두 가지 경우로는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가 자신의 농촌에 찾아왔을 때모든 농촌은 거미줄에 걸린 파리와 같이 인근에 사는 지주에게 손발이 잡혀 일생을 노예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노예 상태에서 어디로도 도망갈 곳도 없다가장 총명하고사려 깊으며장래성 있는 농민을 선택해서농민에게 왜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가를 설명하고또한 지주가 어떻게 농민을 기만해서귀족 위원회에서 어떻게 농민을 착취하는지를 폭로하고부자의 힘과 황제 정부의 지지를 널리 알리고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 요구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농민이 지극히 간단한 모든 기구를 이해할 경우에는 지주에게 일제히 공격할지아니면 최초의 중요한 요구도시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요구를 공장주에게 제출할 지를 협력해서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지주로부터 큰 촌락이나몇몇 마을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면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부근 사회민주당 위원회에서 안내문을 입수하는 게 가장 좋다사회민주당 위원회는 안내문 내용 안에서 처음부터 농민은 어떤 노예 상태로 고통을 받는가제일 먼저 무엇을 요구하는가구체적으로 말하면토지 임차료를 더 저렴하게 하고겨울철 고용 때에도 실제 가격으로 계산하고절반 가격으로 계산하지 말고가축이 밭을 밟거나곡식을 먹을 때 생긴 손해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지도 말고다른 여러 가지 요구에 대해 압박하지도 말기를 적어놓는다안내문으로부터 문자를 읽을 줄 알게 된 농민은 문제를 잘 깨닫고 나서부터문제를 읽을 줄 모르는 농민에게 내용을 잘 설명해준다그렇게 되면 농민은사회민주주의는 같은 쪽이 되어 일어서고또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약탈을 배격한다는 걸 분명하게 알아간다농민은 결속해서 일어선다면어떠한 경감이 아무리 적더라도경감임을 틀림없다는 걸 알고쟁취할 수 있는가 하고모든 국가에서 어떠한 큰 경감을 사회민주주의자인 도시 노동자와 위대한 공동 투쟁으로부터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깨닫는다농민은 더욱 열심히 투쟁을 준비해가고장래성 있는 투사를 어떻게 찾아내고자신의 요구를 위해 어떻게 협력하고 일어서는지를 배우게 된다도시 노동자가 하고 있듯이파업을 일으키는 데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실제로 농촌에서는 더욱 곤란하지만때때로 실행할 수는 있다다른 여러 국가에서는 지주와 돈 많은 농민은 다수의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농번기에 노동 대중이 성공적으로 파업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빈농이 파업을 준비하고모든 사람은 일반적인 요구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동의하고요구가 안내서 안에서 설명되든지또는 모임에서 충분히 토론된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결속해서일어선다따라서 지주는 양보하거나약간의 약탈로부터 겨우 생활을 유지한다파업의 결속을 굳게 하고원기 왕성한 시기에 일어난다면지주와 군대를 가진 관청이더라도어떠한 수단으로든 기만하기는 곤란해진다시일이 경과해서지주에게 파산이 닥쳐올 때에 지주는 속이 수그러든다물론 새 사업이다새 사업은 처음에는 잘 되지 않는다도시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단결된 투쟁을 하지는 못했다또 협력해서 어떤 요구를 제출할지를 알지 못하고단순히 기계를 부수고공장을 파괴했을 뿐이다노동자는 결속해서 일어선다고 하더라도먼저 한 걸음 내디디면힘든 상태 경감 이상은 쟁취하지 못하더라도인민은 협력적 공격에 익숙해져서더욱 더 결정적인 투쟁을 준비한다는 걸 깨닫는다따라서 농민은 가장 흉포한 약탈자에게 어떻게 공격을 가하고결속해서 경감을 어떤 방법으로 요구하고어떻게 자유를 위한 위대한 투쟁을 서서히억세게 전국적으로 준비해야 하는가를 깨닫는다자각한 노동자와 농민 수효는 더욱 늘어가고농촌 사회민주주의자 동맹은 더욱 더 강고해서지주로부터 노예 상태승려로부터 납공 경찰의 포학경찰의 압박이 있을 때마다 더욱 더 인민의 눈을 뜨고인민을 결속한 맞서는 힘에 대해 국가 제도를 변혁하는 게 필연적이라는 사상에도 익숙해진다.

 

소책자 맨 처음에는 도시 노동자는 길거리광장으로 나가서 모든 사람 앞에 공공연하게 자유를 요구하고,

 

'전제 정부를 타도하라!'

 

라고 깃대에 쓰고또한 구호를 부르짖는다고 말했었다도시 노동자 대중은 다만 길거리에서 부르짖고행진하기 위해서만 아니라위대한 결정적인 투쟁을 위해 일어서는 날이노동자는 한 사람같이

 

"우리는 투쟁이라는 파도 속에서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획득한다."

 

라고 부르짖는 날이투쟁이라는 파도 속에 죽고 넘어질 100명을 대신해서새로운 보다 더 확고한 1000명의 투사는 일어서는 날이 속히 다가온다농민도 모든 국내 도처에서부터 일어나서도시 노동자를 원조하고농민과 노동자 자유를 위해 최후까지 싸운다어떤 황제 쪽 연대도 대항할 수 없다승리는 노동 대중 머리 위에 온다그리고 노동 계급은 모든 노역자를 속박으로부터해방하고자 드넓은 길을 걸어 나간다노동 계급은 사회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에서 자유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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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1905년, 러시아에서도 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요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치적 요구는 여전히 개혁 군주라고 평가받는 차르 황제로부터 인민들은 통제되고, 검열됐다는 점을 상기해보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역사는 투쟁의 요구가 절실한 사람들을 쉽게 제거하고, 삭제해버린다. 과연 조선이라고 다르던가. 조선 황제는 더 큰 자본에 편승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타협해갔고, 조선의 기나긴 역사를 제국주의의 부상에 힘입도록 타국에게 굴복시켜갔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키고, 또 본질을 훼손시키는 수정주의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가난한 농민에게」는 당시 정부의 재정 상태와 가난한 인민과 농민들의 처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절박한 요구를 담아낸 역작이다. 지방에서부터 착취된 농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고, 의회에는 노동자와 민중을 대표할 대표자마저 없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의회 제도가 정착되면서부터, 독일에서는 제한적인 투표권만으로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국회로 진출시켰다. 그에 따라, 의회 제도에서는 노동자와 민중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국회에서도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이에 따른 사람들의 요구들도 증가함에 따라 모두가 의회로부터 정치를 제안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됐다. 물론 농노제는 폐지됐고, 8시간 노동 제도는 보장됐다. 그러나 제한적인 국회의 정치적 자유는 여전히 소수의 자본가 수중에서만 작동하고 있다. 곧 인민 다수가 제안하고 있는 정치적인 의제를 더욱 축소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여전히 부르주아지들과도 같은 유산 계급들은 이마저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여, 자본주의를 더욱 빠르게 가속화시키고, 노동 계급과 무산 계급들에게 더욱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들을 부과하고 있다. 임금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또 다시 무산자로 만들어버린다. 쓸모가 없어지면, 다시 자본의 노예로 삼는다. 역사는 노동 계급과 무산 계급들에게는 노동이라는 무거운 무게를 이들의 가족들에게도 꾸준하게, 그리고 지금도 더욱 가중시킨다. 도시 노동자는 자신의 살림을 잃어가지만, 농촌 사회는 각종 개발 및 재난로 인해 더욱 취약해졌다. 그렇다면 토지 제도는 어떠한가. 여전히 소수 독점과 축적된 재산을 이제는 더욱 부풀리고자, 더욱 더 자본가는 더 넓은 토지를 챙기면서 독점으로 소유하고 있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이전시키며, 노동자들과 무산자들의 거주지마저 괴롭히고 있다. 이를 두고 과연 더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겨나게 된 지점이다. 


이 책은 1903년에 쓰였고, 국내에서 처음 번역된 건 1946년 정도이다. 100년이 넘는 기간이 흘러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계급의 논리는 지워지지도 않고, 더욱 더 강해지고, 유효해진다. 8.15이 다가오고, 또 기념하는 지금도, 또 국가적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많은 발전과 눈 부신 도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온통 거짓말과 술수일 뿐이다. 가난한 인민들의 삶의 형태는 비슷해졌고, 또 그림자 속에 갇혀, 숨 죽인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산재로 죽어가거나, 그마저도 없는 무산자들은 삶을 버틸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계급 투쟁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말인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아무도 대변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려 100년이 지난,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과연 그저 먼 과거의 책일 뿐인가. 아니면, 적어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는가. 그러나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낀다면, 이제는 선택할 수도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책이 남기는 교훈은 어쩌면 더 이상 먼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더욱 임박하고 있는 계급 투쟁으로부터 전투를 치르고, 희생된 노동자와 무산자들에게도 앞날을 준비 하는 데 있어 더욱 필요하고, 또 의미 있는 일이다. 자본의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늘 재산을 지킬 준비를 마치는 자본가가 우리의 삶을 충분히 보장해주는가. 또 과연 안전하던가. 그렇지도 않다면, 우리 외침은 끝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이 말은 굶주린 짐승과도 같이 더 큰 한 방을 노리는 자본주의 앞에서는 도무지 끝날 수 없다. 

 

"만국 무산자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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