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생산 시간

 

노동 기간은 자본이 생산 영역에 묶여 있는 생산 시간 그 자체이다. 반면, 자본이 생산 과정에 투여된 전체 시간이 반드시 노동 기간은 아니다.

 

노동력의 자연적 한계로 인한 노동 과정의 중단은 논외로 한다. 다만, 이러한 중단 시기에 고정 자본(공장 건물, 기계 등)이 유휴 상태에 놓인다는 단순한 사실이 노동 과정의 부자연스러운 연장과 주야간 교대 노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동기였음은 이미 살펴본 바 있다. (1권 제104).

 

여기서 핵심은 노동 과정의 길이와 무관하게 생산물이나 생산 자체의 본질적 성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중단이다. 이 기간 동안 노동 대상은 길든 짧든 자연 과정에 내맡겨져 물리적, 화학적, 생리적 변화를 거쳐야 하며, 이로 인해 노동 과정은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정지된다.

 

예컨대, 포도주는 적정 숙성도에 이르기 위해 짜낸 포도즙이 일정 기간 발효를 거친 다음에 다시 보존되어야 한다. 도자기와 같이 생산물이 건조 단계를 필수적으로 거치는 생산 부문, 또는 표백업처럼 생산물의 화학적 속성을 변경하고자 일정한 상태에 두어야 하는 생산 부문또한 다수 존재한다.

 

겨울 보리는 숙성까지 약 9개월이 든다. 파종기와 수확기 사이에는 노동 과정은 거의 완전히 중단된다. 임업에서는 파종 및 준비 노동 완료 후 종자가 최종 완성 생산물로 전환되는 데는 100년 가까이 걸릴 수 있으며, 이 전체 기간 동안 매우 적은 노동만이 추가된다.

 

이 모든 사례에서 생산 시간의 대부분은 추가 노동이 때때로 투입된다. 이미 생산 과정에 묶여 있는 자본에 추가 자본이나 추가 노동을 더 투입해야 하는 상황(앞 장에서 논의된 바), 여기서는 다만 길거나 짧은 중단 이후에만 나타난다. 따라서 이 모든 상황에서 투하 자본의 생산 시간은 두 기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자본이 노동 과정에 투입되어 있는 기간, 둘째는 자본의 존재 형태, 곧 미완성 생산물의 형태가 노동 과정에 있지 않고 자연 과정의 지배에 맡겨져 있는 기간이다. 이 두 기간이 서로 교차되거나 끼어들더라도 상황은 동일하며, 노동 기간과 생산 시간은 일치하지 않는다. 생산 시간은 노동 기간보다 더 길다. 생산 시간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생산물은 완성되고 완결되어 생산 자본의 형태로부터 상품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 기간을 초과하는 생산 시간의 길이가 연장될수록 자본의 회전 시간 역시 연장된다.

 

노동 기간을 초과하는 생산 시간이 곡물의 성숙, 참나무의 성장 등과 같이 피할 수 없는 자연 법칙으로 규정되지 않는 한, 회전 시간은 때때로 생산 시간의 인위적 단축으로부터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다. 예컨대, 옥외 표백 대신 화학적 표백을 도입하거나, 건조 과정에 더욱 효과적인 건조 장치를 도입하는 경우이다. 또는 무두질에서 가죽에 탄닌산을 침투시키는 데 낡은 방식으로는 16-18개월이 필요했지만, 공기 펌프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으로는 불과 1.5-2개월만 필요하다.

 

[쿠르셀-스뇌유,공업기업의 이론과 실제. 2. 파리, 1857].

 

생산 시간 중 자연 과정이 차지하는 부분을 인공적으로 단축시킨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지난 100년간의 철 생산 역사에서 볼 수 있다. 특히 1780년경 발명된 교련법부터 근대의 베세머법과 이후 도입된 최신 처리 방식들에 이르기까지 선철을 강철로 전환시킨 과정이 그 예이다. 생산 시간은 현저히 줄었지만, 이와 동일한 정도로, 고정 자본의 투하액 역시 증가하였다.

 

생산 시간과 노동 기간 간의 괴리를 보여주는 독특한 사례는 미국의 구두골 제조에서 나타난다. 여기서는 상당한 비용이, 완성된 구두골 변형을 막기 위해 목재를 18개월 동안 건조시켜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기간 동안 목재에는 다른 노동 과정이 전혀 가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투하 자본의 회전 시간은 구두골 제조 자체에 필요한 시간뿐만 아니라, 자본이 건조 중인 목재 형태로 유휴 상태에 놓여 있는 시간으로도 결정된다. 목재는 진정한 노동 과정에 투입되기 18개월 전부터 이미 생산 과정에 있다. 이 사례는 유통 영역이 아닌 생산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정의 결과로, 총 유동 자본의 상이한 부분들 간 회전 시간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농업에서는 생산 시간과 노동 기간 사이의 차이가 특히 명료하게 드러난다. 온대 지방에서 토지는 보통 연 1회 곡물을 생산한다. 생산 시간(가을과 겨울 작물의 경우 평균 9개월)의 단축 또는 연장은 유리한 계절과 불리한 계절의 변화 여하에 달려있으며, 공업처럼 정확하게 예정되거나 통제될 수 없다. 다만, 우유나 치즈 등과 같은 부산물만이 비교적 단기간에 계속 생산 및 판매될 수 있다. 그런데 노동 기간은 다음과 같다.

 

독일의 각 지방에서는 기후와 제반 조건을 고려할 때, 세 주요 노동 기간의 노동 일수는 평균 다음과 같다. (3월 중순 또는 4월 상순부터 5월 중순)에는 50-60노동일, 여름(6월 상순부터 8월 하순)에는 65-80노동일, 가을(9월 상순부터 10월 하순 또는 11월 중순 내지 하순)에는 55-75노동일로 볼 수 있다. 겨울에는 거름, 목재, 시장 판매용 물건, 건축 자재 운반 등 해당 계절에 적합한 노동만이 존재한다.’

 

[키르히호프,농업경영학 편람: 160].

 

그러므로 기후 조건이 불리할수록 농업의 노동 기간, 나아가, 자본과 노동이 투하되는 기간은 더욱 단축된다. 러시아가 그러한 예시이다. 이 나라 일부 북부 지방에서는 경작 노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에 130일에서 150일에 불과하다.

 

유럽 러시아 인구 65백만 명 중 5천만 명이 일체의 경작 노동을 할 수 없는 6-8개월의 겨울 동안 비취업 상태에 놓인다면, 러시아가 겪을 손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에는 1500개의 공장에서 노동하는 20만 명의 농민이 있으며, 이 외에도 농촌 곳곳에 독특한 가내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일부 농촌에서는 전체 농민이 대대로 직포업자, 무두장이, 제화업자, 대장장이, 칼 단야공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특히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칼루가, 코스트로마, 페테르부르크 주에서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러한 가내 공업은 이미 점차 자본주의적 생산에 복속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직포업자들은 날실과 씨실을 상인으로부터 직접 또는 중개업자로부터 공급받는다.

 

[주재 외국의 상공업 등에 관한 영국 공관 서기관 보고서, 8, 1865: 86-87 요약].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생산 시간과 그 일부인 노동 기간 간 불일치는 농업을 농촌 부업과 결합시키는 자연적인 기초를 이룬다. 다른 한편, 이 농업 부업은 초기에는 상인으로 농촌에 침투하는 자본가들의 거점이 된다. 이후 자본주의적 생산이 공업과 농업의 분리를 완성할 때, 농촌 노동자는 점차 우연적일 뿐인 부업에 의존하게 되며, 이로 인해 그들의 처지는 악화된다. 자본의 경우, 나중에 (평균 이윤율의 형성 과정에서) 확인하듯이, 회전상의 모든 차이가 보상되지만, 노동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진정한 공업이나 광업, 운수 등 대다수 부문에서는 생산은 균등하게 진행되며, 노동 기간 또한 매년 균등하다. 가격 변동, 사업상 혼란 등 예외적 중단을 제외하면, 매일의 유통 과정에 투하되는 자본 역시 시간상 균등하게 배분된다. 따라서 시장 상황에 변동이 없다면, 유동 자본의 환류(환수) 또는 갱신도 연간 균등하게 배분된다. 반면, 노동 기간이 생산 시간의 일부에 불과한 투자 부문에서는 연중 각 기간마다 유동 자본의 투하액이 매우 심한 불균등을 보이지만, 자본의 환류는 자연 조건으로부터 고정된 시기에,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업 규모가 동일하고, 투하되는 유동 자본의 크기가 동등하더라도, 유동 자본은 연속적인 노동 기간을 가진 기업에 비해 대량으로, 일시에, 장기간에 걸쳐 투하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우, 고정 자본의 수명과 그것이 실제로 생산적으로 기능하는 기간 사이의 차이도 더욱 현저하다. 노동 기간과 생산 시간 사이의 차이로 인해 고정 자본의 사용 기간은 길거나 짧은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중단된다. 예컨대, 농업에서 역축, 농구, 기계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고정 자본이 역축으로 구성될 경우, 작업하는 기간이나 작업하지 않는 기간이나 사료 등에 대한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한 지출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생명이 없는 노동 수단의 경우에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일정한 가치 감소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생산물은 일반적으로 비싸진다. 이는 생산물로의 가치 이전이 고정 자본이 기능하는 시간으로가 아니라 그것이 가치를 상실하는 시간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산 부문에서 고정 자본의 유휴 상태는, 경상비 지출 여부와 관계없이, 고정 자본의 원활한 사용 조건을 형성한다. 이는 방적업에서 일정한 양의 면화 손실(낙면)이 일반적인 조건을 이루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어떤 노동 과정에서든 일반적인 기술적 조건 아래에서 불가피하게 비생산적으로 지출되는 노동력은 생산적인 노동력과 동일하게 계산된다. 노동 수단, 원료, 노동력의 비생산적 지출을 감소시키는 일체의 개량은 생산물의 가치 또한 감소시킨다.

 

농업에서는 노동 기간이 비교적 길며, 노동 기간과 생산 시간 사이의 차이 또한 크다. 이에 대해 호지스킨은 다음과 같이 적절히 지적한다.

 

농업에서 생산물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그는 노동 기간과 생산 시간을 구분하지 않음)과 다른 산업 부문에서 필요한 시간 간의 차이는 농민의 심한 종속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이다. 농민은 1년 이내의 짧은 기간에는 자신의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전체 기간 동안 농민은 제화업자, 재봉업자, 대장장이, 마차 제조업자 및 기타 생산자들(이들은 자기들이 사용할 것이 아닌 생산물을 며칠 또는 몇 주일 만에 만들 수 있음)에게 빚을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자연적 사정과 더불어 농업 노동보다 다른 산업 부문 노동이 생산하는 부()가 더욱 빠르게 증가하는 사정으로 인해, 토지 소유자들은 (전국의 토지를 독점하고 게다가 입법권까지 독점했음에도) 그들 자신과 그들의 하인인 차지 농업가들이 국내에서 가장 종속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호지스킨,대중 경제학, 런던, 1827: 147, 주석].

 

생산물을 다각화하여 연중 각종 수확을 거두고, 나아가, 임금과 노동 수단에 대한 지출을 연간 더욱 균등하게 배분하며, 회전 시간을 단축시키는 모든 방법은 임금, 비료, 종자 등으로 생산에 지출되는 유동 자본의 증대를 요구한다. 이는 휴경지를 두는 삼포농법에서 휴경지가 없는 돌려짓기(윤작)’ 농법으로 전환하는 경우와 같다. 플랑드르 지역에서 사이짓기(간작)’ 농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이짓기에서는 근채류를 재배한다. 동일 경지에 처음에는 인간의 수요 충족을 위한 곡물, 아마, 유채를 심어 수확하고, 이후에는 가축 사육을 위한 근채류를 심는다. 이 방식은 뿔 달린 가축(유각 가축)을 축사에 가두어 둘 수 있어 다량의 퇴비를 얻게 되므로, 이는 돌려짓기의 근간이 된다. 모래땅 지역에서는 경작 면적의 1/3 이상에 사이짓기가 적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지 면적이 1/3가량 확대된 효과가 나타난다.’

 

근채류 외에도 클로버 및 기타 사료 작물 또한 재배된다.

 

농경은 이와 같이 원예 수준으로까지 발달하려면 비교적 다액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헥타르당 투자액이 250프랑으로 계산되지만, 플랑드르 농민들은 헥타르당 500프랑의 투자도 아마 너무 적다고 여길 것이다.’

 

[라벨레,벨기에 농촌 경제론, 브뤼셀, 1863: 59, 60, 63].

 

마지막으로, 조림업을 살펴보자.

 

목재 생산은 기타 대다수 생산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이는 목재 생산에서 자연력이 독립적으로 작용하며, 자연적 성장기에는 인간력이나 자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삼림이 인공적으로 육성되는 경우에도 인간력과 자본력의 소비는 자연력의 작용에 비하면 미미하다. 더욱이, 곡식이 자라지 않거나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토지나 장소에서도 삼림은 잘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조림을 정규적인 투자 영역으로 경영하려면 곡물 재배보다 더 큰 면적을 요구한다. 이는 작은 면적에서는 적절한 삼림 관리 방법(: 벌채)을 시행하기 어렵고, 부수입이 거의 상실되며, 삼림 보호가 곤란하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또한 그 생산 과정은 매우 장기간에 걸치며, 사적 경영의 계획 한계를 넘고, 인간의 일생을 초과하는 경우까지 있다. 임지 확보를 위해 투하되는 자본 (공동체적 생산에서는 불필요하며, 공동체가 조림을 위해 농경지와 목축지로부터 얼마만큼의 토지를 할애할 수 있는지만 문제됨)은 긴 시일이 경과한 뒤에야 비로소 의미 있는 결실을 가져오며, 그 회전은 부분적으로만 진행된다. 특수한 목재를 생산하는 경우, 완전한 회전은 150년이나 걸리는 것들이 많다. 더욱이, 목재 생산이 수지 타산이 맞으려면 매년 목재 생산량의 10배 내지 40배에 달하는 입목을 보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별도의 다른 수입이 없고, 광대한 면적의 삼림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삼림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키르히호프,농업 경영학 편람: 58].

 

생산 시간(상대적으로 짧은 노동 기간을 포함하는)의 장기성과 그에 따른 회전 시간의 연장이라는 사정 때문에 조림은 사적 생산, 나아가, 자본주의적 생산 (개별 자본가 대신 결합된 자본가가 등장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사적 경영임)에는 부적합하다. 농업과 산업 일반의 발전은 오래전부터 삼림을 파괴하는 작용을 해 왔으며, 이에 비하면 그 발전이 거꾸로 삼림의 보존이나 복구에 기여한 일체의 공헌은 전적으로 미미하다.

 

키르히호프로부터 위 인용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구절은 더욱이, 목재 생산이 수지 타산이 맞으려면 매년 목재 생산량의 10배 내지 40배에 달하는 입목을 보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회전이 10년 내지 40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에 1회 진행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축산업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가축 무리 (가축 재고)의 일부는 매년 생산물로 판매되지만, 다른 부분은 생산 과정에 잔존한다. 이 경우, 매년 회전하는 것은 자본의 일부에 불과하며, 이는 고정 자본 (기계, 역축 등)의 경우와 동일하다. 가축 무리에 투하된 자본은 장기간 생산 과정에 고정되어 있는 자본이며, 따라서 총자본의 회전을 연장시키지만, 범주상 의미에서 고정 자본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언급되는 재고 (일정한 양의 자라고 있는 입목 또는 가축 등)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생산 과정 내 노동 대상이자 노동 재료로 존재한다. 일반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이들의 재생산의 자연적 조건에 따라 이 재고의 상당 부분이 이 형태로 존재해야만 한다.

 

회전에 이와 비슷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종류의 재고가 존재한다. 이 재고는 단지 잠재적 생산 자본을 구성할 뿐이지만, 농업의 성질상 다소 대량으로 퇴적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생산에 투하되어 있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점진적으로만 실질적인 생산 과정에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속하는 예로는 밭으로 옮겨지기 전의 퇴비나, 가축 생산에 투입되는 곡물, 건초 등 사료용 재고를 들 수 있다.

 

운영 자본의 상당 부분은 해당 기업의 재고에 묻혀 있다. 이 재고는 보존에 필요한 예방 대책을 적절히 이행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가치를 상실할 수 있으며, 심지어 관리 소홀로 인해 생산물 재고의 일부가 완전히 상실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점에서는 특히 창고, 사료 창고, 곡물 창고, 지하 저장소에 대한 세밀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창고는 언제나 적절히 폐쇄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청결과 환기가 보장되어야 한다. 곡물과 기타 저장 작물들은 때때로 완전히 뒤집어 주어야 하며, 감자와 무는 서리, , 부패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키르히호프,농업 경영학 편람: 292].

 

자기 자신의 사료 필요량, 특히 가축 사육을 위한 자체적인 필요량을 산정할 때에는 생산물과 그 사용 목적을 고려해야 하며, 일반적 필요 충족 외에 뜻밖의 경우를 대비하여 상당한 재고를 남겨둘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자체 생산물만으로는 필요량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다른 생산물(대용품)로 이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지, 또는 최소한 이 부족분을 대신할 다른 생산물을 더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 예컨대, 건초가 부족할 경우, 근채류에 짚을 섞은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각종 생산물의 실물 가치와 시장 가격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에 따라 소비를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귀리는 비싼데, 완두와 호밀이 비교적 저렴하다면, 귀리의 일부 대신 완두 또는 호밀을 말에게 주고, 남는 귀리를 판매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키르히호프,농업 경영학 편람: 300].

 

재고 형성에 대한 고찰 (2권 제621)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잠재적 생산 자본의 크거나 작은 양이 필수적이다. 이는 생산 과정에 점차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생산을 위해 예정된 생산 수단이 크거나 작은 양으로 저장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정한 규모의 자본주의적 기업에서 이 생산용 재고의 크기는 그것의 갱신이 곤란한 정도, 구입 시장의 상대적 거리, 운수 교통 수단의 발전 등에 달려있다. 이 모든 사정은 생산용 재고의 형태로 있어야 할 자본의 최소한에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자본이 투하되어야 할 기간과 일시에 투하되어야 할 자본량의 크기에도 영향을 준다. 이 자본량의 크기 (이는 또한 회전에도 영향을 미침)는 유동 자본이 생산용 재고의 형태로 단순히 잠재적 생산 자본으로 묶여 있는 기간의 장단으로부터 결정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정체 자체가 급속한 갱신 잠재력의 크기나 시장 조건 등에 달려 있는 한, 이 정체는 유통 시간, 곧 유통 영역에 속하는 사정들로부터 생긴다.

 

손도구, , 광주리, 밧줄, 차바퀴 기름, 못 등 모든 비품 및 부속품은 신속한 근거리 조달 기회가 적을수록, 필요 시 즉시 보충할 수 있도록 재고를 더욱 많이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매년 겨울에는 모든 재고품을 면밀히 검사하고, 보충이나 수리가 필요하면 즉시 조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비품 충족을 위해 보유해야 할 재고의 규모는 주로 지방 사정에 달려있다. 수공업자나 상점이 가까이 없는 곳은 인근에 있는 곳에 비해 더 많은 재고를 보유할 필요가 있다. 기타 조건이 동일할 경우, 필요한 재고를 비교적 대량으로 일시에 구매하면 (적절한 구입 시기를 선택한다는 전제하에) 일반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확보하는 이득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유동 자본에서 그만큼 큰 금액을 유출시키며, 기업이 이 금액을 항상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키르히호프,농업 경영학 편람: 301].

 

생산 시간과 노동 기간의 차이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다.

 

유동 자본은,

 

· 구두골 제조: 진정한 노동 과정에 진입하기 전에 생산 시간에 존재할 수 있다.

 

· 포도주, 곡물 종자: 진정한 노동 과정을 거친 후에 생산 시간에 있을 수도 있다.

 

· 농경, 조림업: 생산 시간이 노동 기간으로 인해 때때로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

 

· 조림업과 축산업: 유통할 수 있는 생산물의 대부분이 실제로 생산 과정에 통합되어 있고, 극히 적은 부분만 해마다 유통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유동 자본이 잠재적 생산 자본의 형태로 투하되어야 할 기간의 장단, 따라서 한꺼번에 투하되어야 할 자본량의 크기는, 부분적으로는 생산 과정의 종류 (농업)로부터 결정되며, 부분적으로는 시장의 인접성 여부 등 유통 영역에 속하는 사정들에 달려있다.

 

노동 기간과 일치하지 않는 생산 시간을 노동 기간과 동일시하려는 시도 (이 시도 자체는 또한 가치 이론의 잘못된 적용에서 비롯됨)가 매컬록, 제임스 밀 등으로 하여금 얼마나 불합리한 이론을 낳게 했는지는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 (잉여 가치 학설사20장에서 자세히 설명).

 

우리가 이전에 고찰한 회전 순환은 생산 과정에 투하된 고정 자본의 내구성으로부터 결정된다. 그런데 이 회전 순환은 수년이 걸리는 것이므로, 그것은 또한 고정 자본의 일련의 연간 회전들 또는 1년 안에 반복되는 회전들을 포괄한다.

 

농업에서 이러한 회전 순환은 돌려짓기 농법으로 나타난다.

 

차지 기간은 채택된 윤작 주기를 완전히 이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짧아서는 안 되며, 따라서 삼포농법의 경우 최소 3, 6, 9년 등으로 설정된다. 휴경지를 포함하는 삼포농법을 가정하면, 경지는 6년 동안 4회만 경작되며, 경작 연도에는 겨울 곡물과 여름 곡물을 윤작하고, 토양 성질에 따라 밀과 호밀, 또는 보리와 귀리를 돌려짓기한다. 동일 토지라도 곡물 종류에 따른 수확량, 가치, 판매 가격이 상이하기 때문에, 경지의 수익은 경작 연도 및 윤작 주기의 전반 (최초의 3)과 후반에 따라 변동된다. 풍작·흉작은 토질뿐 아니라 기후에 의존하며, 가격은 다양한 조건에 달려있으므로, 단일 윤작 기간의 평균 수익조차 전반과 후반이 동등하지 않다. 따라서 6년에 걸친 윤작 기간 전체의 평균 연 수확량과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경지 수익을 산출해야 총수익을 파악할 수 있으며, 기간을 절반으로 계산하면 연간 평균치가 상이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삼포농법의 경우 차지 기간은 최소 6년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차지 농업가와 지주 모두에게 더 바람직한 일은 차지 기간을 윤작 주기의 몇 배, 곧 삼포농법은 12, 18년 이상, 칠포농업은 14, 28년 등으로 계약하는 것이다.’

 

[키르히호프,농업 경영학 편람: 117-118].

 

(엥겔스: 원고에 영국의 돌려짓기 농법. 여기에 뜻풀이를 달 것이라는 지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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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노동 기간

 

노동일 길이가 동일하며 매일 10시간의 노동 과정이 진행되는 두 생산 부문, 곧 면방작업과 기관차 제조업을 살펴보자. 면방작업의 경우, 생산물인 면사는 분할할 수 있으며, 매일 또는 매주 일정한 양의 완성 생산물이 공급된다. 이 생산 공정은 매일 또는 매주 새롭게 개시된다. 반면, 기관차 제조업에서는 완성 생산물인 기관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최대 3개월의 노동 과정이 요구된다. 이 노동 과정은 수많은 하루 노동 과정이 연속적으로 결합되어 전개되며,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장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완성 생산물을 산출한다.

 

일일 노동 과정의 길이는 두 부문에서 동일할지라도, 생산 행위의 길이, , 생산물을 완성하여 상품으로 시장에 내보내고 생산 자본이 상품 자본으로 전환되는 데 필요한 반복 노동 과정의 총 지속 시간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며, 두 생산 부문에서 이들 자본이 동일한 비율로 사용된다 해도 여전히 존속한다. 이러한 생산 행위의 길이 차이는 상이한 생산 부문 사이뿐만 아니라, 동일한 생산 부문 내에서도 공급되어야 할 생산물의 규모에 따라 발생한다. 일반 주택은 대공장보다 짧은 노동 과정을 요구하며, 기관차 제조는 3개월이 필요하지만, 전함 건조는 수년이 소요된다.

 

곡물 생산에는 거의 1, 뿔 달린 가축 생산에는 수년, 조림(造林)에는 12년에서 100년이 걸릴 수 있다. 육로 건설은 2-3개월에 완성되나, 철도 부설은 수년을 요구한다. 보통 융단은 1주일에 완성되지만, 고블랭 태피스트리(프랑스의 정교한 융단) 등은 수년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생산 행위에 소요되는 시간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생산 행위의 지속 시간 차이는 투자액이 동등한 경우, 자본의 회전 속도 차이, 곧 주어진 자본액의 투자 기간 차이를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방적 공장과 기관차 제조 공장에서 주간 투하 자본의 규모, 불변 자본 대 가변 자본 분할, 그리고 고정적 구성 부분 대 유동적 구성 부분의 분할이 각각 동일하며, 노동일의 길이와 필요 노동 대 잉여 노동으로의 분할 또한 동등하다고 가정한다. 또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들을 제거하기 위해, 면사와 기관차는 주문에 의해 제조되며, 완성 생산물 인도와 동시에 대금이 지불된다고 전제한다.

 

방적 공장주는 1주일 후 완성된 면사 인도 시 투하된 유동 자본을 회수하고, 면사 가치에 포함된 고정 자본 마멸분까지 보전 받는다 (잉여 가치 제외). 그의 자본은 회전을 완수하며, 동일 자본으로 새로운 순환을 즉시 반복할 수 있다. 반면, 기관차 공장주는 3개월 동안 매주 임금과 원료에 새로운 자본을 투하해야 한다. 3개월이 지나 기관차가 인도된 뒤에야 비로소 이 기간 동안 하나의 생산 행위에 점진적으로 투하되었던 유동 자본이 새로운 순환을 개시할 수 있는 형태로 회수된다. 3개월간의 기계 마멸분 보충 역시 이때 이루어진다.

 

전자의 투자는 1주간 투자이나, 후자의 투자는 12주간(3개월간) 투자다. 기타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후자는 전자보다 12배 많은 유동 자본을 요구한다. 매주 투하되는 자본액이 방적 공장과 기관차 제조 공장에서 동일하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아무런 실질적인 의의를 가지지 못한다. 투하되는 자본의 규모와 무관하게, 전자의 경우 자본은 다만 1주간만 투하되고, 후자의 경우 12주간 투하된다. 이 기관이 경과된 뒤에야 비로소 자본은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거나, 동일 작업을 반복하거나, 또는 다른 종류의 작업을 개시할 수 있다. 이러한 회전 속도의 차이, , 동일한 자본 가치가 새로운 노동 과정이나 가치 증식 과정에 재투입할 수 있기 전에 개별 자본이 투하된 채로 유지되어야 하는 기간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서 생긴다.

 

기관차나 기타 기계 제작에 100노동일이 걸린다고 가정한다. 기계 제조업 종사 노동자들에게 이 100노동일은 방적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분리된 크기를 형성하며, 가정에 따라 100개의 순차적이고 별개인 10시간 노동 과정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생산물인 기계에 대해서는 이 100노동일이 연속적인 크기를 형성하며, 1,000노동 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연결된 생산 행위, 1노동일을 이룬다. 필자는 많든 적든 다수의 연결된 노동일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1노동일을 노동 기간이라 부른다.

 

노동일은 노동자가 하루에 노동력을 지출해야 하는, , 하루 동안 작업해야 하는 노동 시간의 길이를 의미한다. 반면, 노동 기간은 특정 생산 부문에서 완성 생산물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연속적으로 연결된 일정한 수의 노동일을 뜻한다. 이 경우, 개별 노동일의 생산물은 단지 부분 생산물에 불과하며, 이 부분 생산물들이 매일 추가 가공되어 길거나 짧은 노동 시간이 경과한 이후에야 비로소 완성된 모습을 취하며 하나의 완성된 사용 가치로 전환된다. 따라서 공황으로 인한 사회적 생산 과정의 중단과 교란이 미치는 영향은 분할될 수 있는 노동 생산물의 경우와 비교적 긴 연결된 생산 기간을 요하는 생산물의 경우 매우 상이하다.

 

분할될 수 있는 생산물의 경우 (: 면사, 석탄), 오늘의 생산이 내일의 새로운 생산으로 연속되지 않는다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선박, 건물, 철도 등의 경우에서는 사태가 다르다. 이 경우, 노동의 중단은 곧 연결된 생산 행위의 중단을 의미한다. 작업이 더 진행되지 않으면, 그 생산에 이미 소비된 생산 수단과 노동은 쓸모없이 지출된 것이 된다. 작업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중단 기간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의 품질 저하가 생긴다.

 

생산물이 완성될 때까지 고정 자본이 매일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 부분은 노동 기간이 지속되는 전체 기간에 걸쳐 누적된다. 이 지점에서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이 실질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고정 자본은 비교적 장기간 생산 과정에 투하되어 있으며, 아마도 수년에 걸친 기간이 경과하기 전에는 갱신될 필요가 없다.

 

증기 기관이 그 가치 일부를 매일 면사(불연속적인 노동 과정의 생산물)에다 이전하든, 또는 3개월에 걸쳐 기관차(하나의 연속적인 생산 행위의 생산물)에 이전하든, 이는 증기 기관 구입에 필요한 자본 지출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증기 기관의 가치는 전자의 경우 소량으로, 예컨대 매주마다 환류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더 큰 양으로, 예컨대 매 3개월마다 환류할 뿐이다. 그러나 증기 기관 자체는 두 경우 모두 아마도 20년이 경과한 뒤에야 비로소 갱신된다. 증기 기관의 가치가 생산물의 판매로부터 일부분씩 환류되는 개별 기간이 증기 기관 그 자체의 생존 기간보다 짧은 한, 동일한 증기 기관은 몇 개의 노동 기간에 걸쳐 생산 과정에서 기능을 지속한다.

 

유동 자본의 경우 모습이 다르다. 금주에 구매된 노동력은 당주 내에 투입되어 생산물에 대상화된다. 이 노동력은 주말에 지불되어야 하며, 노동력에 대한 자본 투하는 3개월간 매주 반복된다. 금주의 이 자본 부분 지출이 내주 노동력 구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 노동력 지불을 위해 매주 새로운 추가 자본이 지출되어야 하며, 따라서 (모든 신용 관계를 제외한다면) 자본가는 임금을 주 단위로 지불할지라도 3개월 동안 임금을 지불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원료 및 보조 재료 등 유동 자본의 다른 구성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동은 생산물에 점진적으로 누적된다. 노동력에 지출된 가치뿐만 아니라 잉여 가치도 노동 과정 중에 지속적으로 생산물에 이전되지만, 이는 아직 완성된 상품 형태를 갖추지 못하여 유통 능력이 없는 미완성 생산물이다. 원료와 보조 재료로부터 생산물에 차곡차곡 이전되는 자본 가치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다.

 

생산물 (또는 요구되는 유용 효과)의 고유한 성질과 그것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 기간의 장단에 따라, 유동 자본(임금, 원료, 보조 재료)의 지속적인 추가 지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유동 자본의 어떤 부분도 아직 유통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지 못하며, 따라서 동일한 작업의 반복에 활용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 각 부분은 형성되고 있는 생산물의 구성 부분으로 생산 영역 안에 계속 고정되며, 생산 자본의 형태로 묶이게 된다.

 

회전 시간은 자본의 생산 시간과 유통 시간의 합계와 같다. 따라서 생산 시간의 연장은 유통 시간의 연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회전 속도를 감소시킨다. 그러나 현재 논의에서는 다음 두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로, 생산 영역 내 체류 연장: 최초 1주일 동안 노동력 및 원료 등에 투하된 자본은, 고정 자본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 부분과 마찬가지로, 3개월이라는 기간 전체에 걸쳐 생산 영역에 얽매여 있으며, 아직 형성 중인 미완성 생산물에 합쳐져 있으므로, 상품으로 유통에 투입될 수 없다.

 

둘째로, 연속적 추가 자본 투하: 생산 행위에 필요한 노동 기간이 3개월 동안 지속되고, 사실상 하나의 연결된 노동 과정을 이루기 때문에, 끊임없이 매주 새로운 1회분의 유동 자본이 이전 투하된 자본에 추가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순차적으로 투하되는 추가 자본의 양은 노동 기간의 길이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우리는 앞서 면방적업과 기계 제조업에 매주 투하되는 자본액이 같고, 이 자본들이 불변 자본 대 가변 자본, 그리고 고정 자본 대 유동 자본으로 동등한 비율로 분할되어 있으며, 노동일의 길이 역시 동일하다고, , 노동 기간의 길이를 제외한 모든 조건들이 동일하다고 가정하였다. 최초 1주일 동안 투자액 규모는 두 부문에서 같지만, 방적업자의 생산물은 판매될 수 있으며, 그 대금으로 새로운 노동력과 원료 등이 구매될 수 있다.

 

노동 기간의 길이를 제외한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 최초 1주일 동안의 투자액 규모는 두 부문에서 같으나, 방적업자의 생산물은 판매되어 대금이 회수되면서 동일 규모의 생산을 지속할 수 있다. 반면, 기계 제조업자는 3개월이 경과하여 생산물이 완성된 뒤에야 비로소 최초 1주일간 지출된 유동 자본을 화폐로 재전환하여 새로운 작업에 투입할 수 있다. 따라서 첫째, 동일한 자본 투자액의 환류에 차이가 발생한다. 둘째, 3개월 동안 사용된 생산 자본액의 크기는 동등할지라도, 자본 투자액의 크기는 두 부문에서 현저하게 상이하다. 이는 전자의 경우, 동일 자본이 신속하게 갱신되어 동일 작업을 즉시 반복할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 비교적 완만하게 갱신되며, 갱신 시점까지는 이전에 투하된 자본량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본량이 추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 과정의 길이에 따라 자본의 일정한 부분들이 갱신되는 시간의 길이, 곧 자본이 투하되는 시간의 길이가 상이하며, (매일 또는 매주 사용되는 자본의 크기가 동일하다고 해도) 투하되어야 할 자본량 역시 상이하다. 이러한 사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 다음 장에서 고찰될 경우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본의 투하 기간의 길이는 증대하더라도, 투하되어야 할 자본의 양은 이 기간의 길이에 비례하여 증대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포도주 생산). 이 경우, 자본은 더 오랜 기간 투하되지 않으면 안 되며, 결과적으로, 더 많은 양의 자본이 생산 자본의 형태로 묶이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덜 발전한 단계에서는 긴 노동 기간, 따라서 장기간에 걸친 다액의 투자를 요구하는 사업들은, 특히 그 규모가 거대하여야만 수행될 수 있는 경우, 전혀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는 건설되지 않았다. 예컨대, 도로나 운하 등은 공동체 또는 국가의 비용으로 건설되었으며 (노동력은 과거에 대개 강제 노동에 의존), 또는 제조에 비교적 긴 노동 기간이 필요한 생산물은 매우 적은 부분만이 자본가 자신의 자금력으로 제조된다. 가령, 가옥 건축에서는 해당 가옥의 소유자가 될 개인은 건축업자에게 선금을 계속 지불하므로, 사실상 그는 가옥 생산 과정이 진행되는 정도에 따라 그것의 대가를 일부분씩 지불하는 셈이다.

 

발전된 자본주의 시대에는 한편으로 거액의 자본이 개개인의 수중에 집적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 자본가와 결합된 자본가(주식 회사)가 출현하며 동시에 신용 제도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시대에는 자본주의적 건축업자가 개개인의 주문으로부터 건축을 진행하는 것은 이미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그는 시장을 목표로 연립 주택들과 도시의 구역 전체를 건설하는 것을 사업으로 삼으며, 이는 개별 자본가가 청부업자로 철도를 부설하는 것을 사업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런던 가옥 건축에 대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변혁 양상은 1857년 은행 위원회에서 한 건축업자의 진술에서 알 수 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젊었을 당시 가옥은 대개 주문으로 건축되었고, 대금은 건축의 일정 단계가 완료됨에 따라 분할 지불되었다. 투기적 건축은 거의 없었으며, 있었다면 주로 노동자들을 규칙적으로 고용하고, 묶여두기 위한 목적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모든 것이 변화했으며, 주문에 의한 건축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새 가옥이 필요한 사람은 투기적으로 건축된 것 또는 아직 건축 중에 있는 것들 중에서 가옥을 구한다. 건축업자는 더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시장을 대상으로 일한다. 그는 다른 모든 산업가와 마찬가지로 판매하기 위한 완성품을 갖추어야 한다. 종래에는 건축업자가 아마 3-4채의 가옥을 동시에 투기적으로 건축했지만, 이제는 광대한 대지를 구매하고 (유럽 대륙 기준으로는 대개 99년 기한으로 임차하고), 그 위에 100채 내지 200채에 이르는 가옥을 건축하여 자기 자금력의 20배 내지 50배 달하는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자금은 저당 설정으로부터 조달되며, 개별 가옥 건축이 진행되는 정도에 따라 돈이 건축업자에게 들어온다. 공황이 닥쳐 선금의 지불이 정지되면 사업 전체가 파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선의 경우, 가옥은 경기가 호전될 때까지 미완성 상태로 남으며, 최악의 경우, 경매에 부쳐져 반값으로 매각된다. 오늘날에는 투기적이고 대규모의 건축이 아니고서는 어떤 건축업자도 살아남을 수 없다. 건축 자체의 이윤은 미미하며, 주된 이윤의 원천은 지대의 상승과 대지의 교묘한 선택 및 활용에 있다.

 

벨그라비아, 타이버니아 (런던 중심지)의 거의 모든 가옥과 런던 주변의 수많은 별장은 가옥 수요를 예상한 이러한 투기로부터 건설되었다. (은행법 특별 위원회 보고서, 1, 1857, 증언록, 질문: 5,413-5,418, 5,435-5,436호 요약).

 

노동 기간이 매우 길고 그 규모가 큰 사업을 완전히 자본주의적 생산에 적합하게 수행하는 것은, 자본의 집적이 이미 고도로 진전되고, 신용 제도의 발전이 자본가에게 자기 자본이 아닌 타인의 자본을 빌려 그것을 걸고 모험해 볼 수 있는 수월한 방법을 제공하게 될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생산에 투하되는 자본이 그 사용자의 소유인지 아닌지에 대한 사정은 자본의 회전 속도나 회전 시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협업, 분업, 기계 사용과 같이 개별 노동일의 생산물을 증대시키는 조건들은 동시에 연결된 생산 행위의 노동 시간을 단축시킨다. 기계는 가옥이나 교량 등의 축조 시간을 단축시키며, 수확기·탈곡기 등은 익은 곡물을 완성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을 줄인다. 조선 기술의 개량은 선박의 속력을 증대시켜 해운업에 투하된 자본의 회전 시간을 단축시킨다. 그러나 노동 기간, 따라서 유동 자본의 투하 기간을 단축시키는 이러한 개량들은 대개 고정 자본의 투하 증가와 결부된다.

 

다른 한편으로, 특정 생산 부문에서는 협업의 확대만으로도 노동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철도의 완성은 대규모 노동자를 동원하여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공사에 착수하면서 단축된다. 이 경우, 회전 시간은 투하 자본의 증대로부터 단축된다. , 더 많은 생산 수단과 노동력이 자본가의 지휘 아래에 결합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노동 기간의 단축은 대개 단기간에 투하되는 자본의 증대와 결부되며, 투하 기간이 단축되는 정도에 따라 투하 자본의 양 역시 증대된다.

 

여기에서 상기해야 할 핵심은 사회적 총자본의 현존량보다는 오히려 생산 수단 및 생활 수단에 대한 지배력이 어느 정도로 분산 또는 개별 자본가의 수중에 결집되어 있는지, 곧 자본의 집적 규모가 어느 정도에 달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신용이 한 개인에게 자본의 집적을 매개·촉진·강화하는 한, 이는 노동 기간 및 회전 시간의 단축에 기여한다. , 노동 기간이 연속적이든 불연속적이든 간에, 특정 자연적 조건들로부터 규정되는 생산 부문들에서는 상기 수단들로는 어떤 단축도 발생할 수 없다.

 

더 빠른 회전이라는 개념은 곡물 생산에는 적용될 수 없다. 여기서는 연간 1회전만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축산업에 관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2-3년생 양이나 4-5년생 황소의 회전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지 묻게 된다.’

 

[구드,정치·농업·상업상의 오류, 런던 1866: 325].

 

조세, 지대 등과 같은 결정된 지불을 위해 더 일찍 현금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가축이 경제적 적정 연령에 달하기 전에 팔려 도살되면 (이는 농업에 큰 손해를 주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육류 가격의 상승를 초래한다.

 

곡물 가격의 불확실성과 낮은 수준으로 말미암아 궁핍해진 (종전에 주로 여름에는 중부 지방 목장에, 겨울에는 동부 지방 축사에 가축을 공급하려고 사육하던) 차지농들은 버터와 치즈의 높은 가격에서 이득을 얻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은 경상비를 지불하기 위해 버터를 매주 시장에 출하한다. 또한 치즈에 대해서는 중매인으로부터 선대를 받는데, 중매인은 치즈가 운반될 수 있는 즉시 가져가며, 가격은 임의로 결정한다.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농업이 경제학 원칙으로 규제되므로, 종전에는 낙농 지방으로부터 사육을 위해 남부로 이송되었던 송아지들이, 지금은 버밍엄, 맨체스터, 리버풀 등 인접 대도시의 도살장에서 대량으로 도살되고 있으며, 때로는 생후 7일 내지 10일밖에 되지 않은 송아지도 포함된다. 엿기름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다면, 차지 농업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어 어린 가축을 더 나이를 먹고 체중이 증대될 때까지 계속 보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젖소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송아지를 기르는 데 젖 대신 엿기름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며, 현행의 놀랄 만한 어린 가축 부족을 상당 부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규모 차지 농업가들에게 송아지를 기를 것을 권고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젖을 먹여 기르면 수지가 맞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첫째, 돈을 지출해야 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둘째, 우리는 이 돈을 회수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지만, 낙농업에서는 곧 회수된다.’

 

[구드,정치·농업·상업상의 오류: 11-12].

 

회전의 연장이 영국의 소규모 차지 농업가들에게 이러한 결과를 발생시킨다면, 그것이 대륙의 소농민들에게는 어떤 혼란을 일으킬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동 기간의 길이(, 유통할 수 있는 상품으로 완성되기까지의 기간)에 상응하여, 고정 자본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 부분은 점진적으로 누적되며, 이 가치 부분의 환류는 지연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연은 고정 자본의 새로운 투하를 일으키지 않는다. 기계는 마멸분의 보충분이 화폐 형태로 환류되는 속도와 관계없이 생산 과정에서 계속 작동한다. 반면, 유동 자본의 경우에는 전개가 다르다. 이 경우, 자본은 노동 기간의 길이에 비례하여 묶여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자본이 임금, 원료, 보조 재료에 계속 투하되어야 한다. 따라서 환류의 지연은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에 상이한 영향을 미친다.

 

고정 자본은 환류가 빠르든 느리든 계속 기능한다. 그러나 환류가 지연되는 경우, 유동 자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 판매될 수 없는 미완성 생산물의 형태 또는 판매되지 않은 상품의 형태로 묶이게 되거나, 또는 현물 형태로 갱신하기 위한 추가 자본이 없을 경우에는 기능을 중단하게 된다.

 

농민은 굶주리고 있는데 그의 가축은 살찌고 있다. 비가 많이 와서 목초는 무성하게 자랐다. 인도의 농민은 자기의 살찐 황소 곁에서 굶어 죽을 것이다. 미신의 가르침은 개개인에 대해서는 가혹하나 사회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역축의 유지는 농경의 진행을 보장하며, 따라서 장래의 생계와 부의 원천을 보장한다. 인도에서는 황소를 보충하기보다 사람을 보충하기가 더 쉽다고 하는 말이 가혹하고 비참하게 들릴 수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다.’

 

[동인도(마드리스와 오리사의 기근) , 1867. 4: 44].

 

이것을마누 법전의 다음 구절과 비교해 보라:

 

승려나 암소를 유지하기 위한 무보수의 헌신은, 천하게 태어난 종족들의 더없는 행복을 보장해 준다.’

 

[마누법전: 1062].

 

5년이 경과하기 전에는 5년생 동물을 시장에 공급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사육 방식을 변경하면서 동물을 더 짧은 시간에 그것의 용도에 따라 길러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베이크웰이 달성한 바이다. 종래 영국의 양은, 1855년까지 프랑스의 양이 그러했듯이, 4년 또는 5년이 되기 전에는 도살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베이크웰의 방법에 따르면 1년생의 양도 이미 비대해지며, 아무리 늦어도 2년 안에는 완전히 성숙한다. 베이크웰은 세심한 선별로부터 양의 골격을 그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축소시켰다. 그의 양은 뉴 레스터라고 불렸다.

 

사육자는 종전에 한 마리의 양을 길러낸 시간에, 이제는 세 마리의 양을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그 양은 키는 더 크지 않지만, 살을 매우 많이 제공하는 부분들이 더욱 넓고, 더욱 둥글고, 더욱 크게 발달하고 있다. 뼈는 자기를 겨우 지탱할 만큼만 있으며, 거의 전체 중량이 고기 덩어리다.’

 

[라베르뉴,잉글랜드의 농촌 경제, 1855: 20].

 

노동 기간을 단축시키는 방법들이 적용될 수 있는 정도는 산업 부문별로 매우 상이하며, 따라서 이 방법들로부터 노동 기간의 길이가 균등화되지는 않는다. 위의 예에서, 새로운 공작 기계의 사용으로부터 기관차 한 대의 제조에 필요한 노동 기간은 실제적으로는 단축될 수 있다. 그러나 방적업에서 과정들의 개량으로부터 매일 또는 매주 생산되는 완성 생산물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빠르게 증가한다면, 기관차 제조업의 노동 기간은 방적업의 그것과 비교하여 볼 때, 상대적으로는 증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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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이론: 리카도


리카도에게 있어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은 가치 법칙의 예외를 해명하는 데 국한된다. 이 예외는 임금률 변화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하며, 해당 내용은 제3권 제11장에서 논의한다그러나 기본적 불명료성은 다음과 같은 대조 속에서 이미 드러난다.


고정 자본의 내구성 차이와 두 자본이 결합되는 비율의 다양성.’

 

[리카도,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92-93].

 

이러한 두 종류의 자본에 관하여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답한다.

 

노동을 유지하는 자본과 도구, 기계 , 건물에 투하된 자본의 비율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리카도,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92].


따라서 고정 자본은 노동 수단과, 유동 자본은 노동에 투하된 자본과 같다.

 

노동을 유지할 자본이라는 표현은 이미 스미스에게 물려받은 오류다. 이는 한편으로 유동 자본을 가변 자본, , 생산 자본 중 노동에 투하된 부분과 혼동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대비가 가치 증식 과정에서 도출된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이 아닌, 유통 과정에서 도출된 것(오래된 스미스 식 혼란)이라는 점에서 이중으로 그릇된 관념을 일으킨다.

 

첫째로, 고정 자본의 내구성 차이와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으로 이루어진 자본 구성의 다양성이 동등하게 취급된다. 그러나 후자의 차이는 잉여 가치 생산의 차이를 규정하는 반면, 전자의 차이는 가치 증식 과정에서 생산 수단의 가치가 생산물로 이전되는 방식, 그리고 유통 과정에서 투하 자본의 갱신 기간 또는 투하되어 있는 시간에 관련된다.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내적 원리(메커니즘)를 배제하고 나타난 현상만을 고찰할 경우, 이 두 차이는 실제로 동등하다. 그 이유는 사회적 잉여 가치가 각 생산 분야의 투하 자본 사이에 분배되어 일반 이윤율이 균등화되고 가치가 생산 가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자본 투하 기간의 차이(: 고정 자본 수명의 차이)와 자본 유기적 구성의 차이(따라서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유통 차이)가 비슷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3권 제2편 참조)

 

둘째로, 유통 과정의 관점에서는 노동 수단과 고정 자본이 한편에, 노동 재료와 임금, 곧 유동 자본이 다른 한편에 놓인다. 이와 반대로, 노동 과정 및 가치 증식 관점에서는 생산 수단(노동 수단과 노동 재료), 곧 불변 자본이 한편에, 노동력, 곧 가변 자본이 다른 한편에 위치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자본1권 제252)에 관하여, 동일 가치량의 불변 자본이 다량의 노동 수단과 소량의 노동 재료로 구성되든, 그 역으로 구성되든 전혀 무관하다. 모든 것은 생산 수단에 투하된 자본과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사이의 비율에 의존한다. 이와 반대로, 유통 과정의 관점, 곧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정한 가치량의 유동 자본이 노동 재료와 임금으로 어떤 비율로 분할되든 역시 무관하다.

 

하나의 관점에서는 노동 재료가 노동 수단과 같은 범주에 속하여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가치에 대립한다. 다른 한편의 관점에서는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이 노동 재료에 투하된 자본 부분과 같은 부류가 되어 노동 수단에 투하된 자본 부분에 대립한다. 이러한 이유로, 리카도의 논의에서는 노동 재료(원료 및 보조 재료)에 투하된 자본 가치 부분이 어느 쪽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완전히 소실된다.

 

해당 가치 부분은 고정 자본 편에 속하기 어렵다. 이는 유통 방식 측면에서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과 전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동 자본 편에 소속시킬 수도 없다. 그렇게 한다면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대립을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대립과 동일시하는 가정, 곧 스미스로부터 계승되어 리카도의 저술에서도 은연중에 유지된 가정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리카도는 강한 이론적 본능으로 이 사실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이 자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게 된다. 경제학에서 자본가가 임금을 선대하며, 이 선대 기간은 임금 지불 주기(매주, 매월, 3개월)에 따라 상이하다고 논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노동자가 지불 주기에 따라 1, 1개월, 또는 3개월간 자신의 노동을 자본가에게 선대하는 것이다.

 

자본가가 임금을 후불하지 않고 노동력을 구매한다고 가정한다면, 1일분, 1주일분, 1개월분, 3개월분의 임금을 선불하는 경우에 비로소 이 기간의 선대를 논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자본가는 노동력이 이미 며칠, 몇 주, 또는 몇 개월간 노동을 수행한 뒤에 지불한다. 따라서 경제학이 논하는 것은 자본가적 전도에 불과하며, 노동자가 노동으로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선대가 자본가가 화폐로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선대로 전환되는 셈이다.

 

자본가가 생산물 자체나 그 가치(여기에 포함된 잉여 가치 포함)을 유통에서 회수 또는 실현하는 데 길거나 짧은 시간이 경과하는 것(생산에 필요한 시간 또는 유통에 필요한 시간이 상이함)은 위의 사정을 전혀 변경시키지 않는다.

 

상품의 구매자가 해당 상품을 어떻게 처분할지는 판매자에게 전혀 무관하다. 자본가가 기계 가치 전체를 한꺼번에 선대해야 하지만, 그 가치가 유통에서 점차적으로, 일부분씩 환류한다고 해서 기계를 더 값싸게 입수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면화 가치 전체가 생산물의 가치에 들어가며 생산물 판매로부터 전부 한꺼번에 보충된다고 해서, 자본가가 면화 값을 더 비싸게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리카도에게 돌아가서,

 

1. 가변 자본의 특징은 자본의 주어진(불변적인) 일정 부분, 곧 주어진 가치액(노동력 가치와 동등하다고 가정. 임금과 노동력 가치의 실제 크기 차이는 무관함)이 자기 증식적이며 가치 형성적인 힘인 노동력과 교환된다는 점이다. 노동력은 자본가로부터 지불된 가치를 재생산할 뿐 아니라, 잉여 가치(기존에 존재하지 않았고 등가로 구매되지도 않은 가치)를 생산한다.


임금에 투하되는 자본 부분의 가변 자본으로의 특성, 곧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힘 때문에 불변 자본과 구별되는 특성은, 이 자본 부분이 유통 과정의 관점에서만 고찰되어 노동 수단에 투하되는 고정 자본과 대립되는 유동 자본으로 나타나자마자 소멸된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력에 투하되는 자본 부분이 불변 자본 중 노동 재료에 투하되는 구성 부분과 함께 유동 자본이라는 같은 항목에 들어가, 불변 자본 중 노동 수단에 투하되는 다른 구성 부분과 대립할 때 이미 발생한다.

 

이 경우, 잉여 가치(곧 투하 가치액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본질)는 전적으로 무시된다. 또한 다음 사실도 간과된다. 임금에 투하되는 자본으로부터 생산물에 첨가되는 가치 부분은 새로 생산(따라서 현실적으로 재생산)되지만, 원료로부터 생산물에 첨가되는 가치 부분은 새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 가치에 유지되고 보존될 뿐이며, 생산물 가치의 구성 부분으로 다시 나타날 따름이다.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을 비교하는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별만이 존재한다.

 

, 상품 생산에 사용된 노동 수단의 가치는 상품 가치에 부분적으로만 들어가며, 따라서 상품 판매로부터 부분적으로만(일부분씩 점차적으로만) 보충된다. 반면, 상품 생산에 사용된 노동력과 노동 대상(원료 등)의 가치는 전부 그 상품에 들어가며, 따라서 그 상품의 판매로부터 전부 보충된다. 이러한 점에서 유통 과정과 관련하여 자본의 일부는 고정 자본으로, 다른 일부는 유동 자본으로 나타난다.


어느 경우든 관심의 대상은 주어진 투하 가치가 생산물로 이전되는 방식과 생산물의 판매로부터 그 투하 가치가 보충되는 방식이다. 여기서 구별은 오로지 가치 이전과 가치 보충이 일부분씩 점차적으로 수행되는지, 아니면 한꺼번에 수행되는지에 있다. 이에 따라 가변 자본과 불변 자본이라는 매우 결정적인 구별은 소멸되고, 결과적으로, 잉여 가치의 형성 및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체 비밀, 곧 일정한 가치와 그것이 표현되는 물건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사정들은 알 수 없게 된다.

 

자본의 모든 구성 부분은 오직 유통 방식으로만 구별될 뿐이다(상품의 유통은 당연히 주어진 기존 가치와 관련될 따름이다). 사실상 임금에 투하되는 자본은 원료, 반제품, 보조 재료에 투하되는 자본과 함께, 노동 수단에 투하되는 자본에 대립하여 하나의 특수한 공통적인 유통 방식을 거친다.

 

이로부터 부르주아 경제학이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범주와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범주를 스미스가 혼동한 것을 본능적으로 고집하고, 무비판적으로 한 세기 동안 되풀이해 온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부르주아 경제학은 임금에 투하되는 자본 부분을 원료에 투하되는 자본 부분과 전혀 구별하지 않으며, 오직 형식적으로만, , 자본이 생산물로부터 일부분씩 유통되는지, 일시에 유통되는지 하는 점에서만 불변 자본과 구별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착취의 현실적 운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가 상실된다. 따라서 (투하 가치의 증식이 아니라) 오직 투하 가치의 재현만이 문제로 남는다.

 

리카도가 스미스의 혼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후대 변호론자들이나 스미스 자신의 혼동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리카도가 스미스보다 가치와 잉여 가치를 더 철저하고 날카롭게 전개했으며, 사실상 피상적인 스미스에 반대하여 심오한 스미스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중농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혼동이 전혀 없다. 해마다의 투자와 최초의 투자 사이의 구별은 자본(특히 농업 자본)의 상이한 구성 부분의 상이한 재생산 시간에만 관련된다.

 

한편, 잉여 가치 생산에 관한 그들의 견해(농업 노동만이 자연의 도움을 받아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는 주장)는 그들의 이론 중 위의 구별과는 독립적인 부분(사실상 이론의 핵심)을 이룬다. 잉여 가치의 형성은 자본 자체에서 설명되지 않고, 자본의 특정한 생산 분야인 농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2. 가변 자본 정의에서, 곧 임의의 가치액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데 본질적인 요소는, 자본가가 일정한 주어진(불변적인) 가치량을 가치 형성적인 힘(노동력)과 교환한다는 것, 곧 일정한 가치량을 가치의 생산·자기 증식과 교환한다는 점이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화폐로 지불하든, 생활 수단으로 지불하든 이 본질적 정의에는 어떤 변화도 일으나지 않는다. 다만 자본가가 투하하는 가치의 존재 방식만 다를 뿐이다. 전자의 경우 화폐 형태로 존재하여 노동자가 스스로 시장에서 생활 수단을 구매하며, 후자의 경우 생활 수단의 형태로 존재하여 노동자가 이를 직접 소비한다. 발전된 자본주의적 생산은 노동자가 화폐로 지불받는 것을 전제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이 유통 과정으로부터 매개되는 생산 과정(화폐 경제)을 전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잉여 가치의 창출, 따라서 투하된 가치액의 자본화는 임금(노동력 구입에 지출된 자본)이 화폐 형태인지 현물 형태인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가치 형성적인 힘 사이의 교환에, 곧 불변량이 가변량으로 전환하는 것에 달려 있다.


노동 수단의 다소 고정된 성질은 내구성의 정도, 곧 물리적 속성에 의존한다. 노동 수단은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내구성 정도에 따라 더 빨리 또는 더 느리게 마모되며, 그에 따라 더 장기간 또는 더 단기간 고정 자본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노동 수단은 단순히 내구성이라는 물리적 속성 때문에 고정 자본으로 기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금속 공장의 원료(: 강철)는 그 가공에 사용되는 기계만큼 내구적이며, 이 기계의 일부 구성 부분들(가죽, 목재 등)보다 내구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원료로 역할하는 금속은 유동 자본의 일부를 이루며, 아마도 동일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능하는 노동 수단은 고정 자본의 일부를 이룬다. 따라서 동일한 금속이 어떤 경우에는 고정 자본 항목에, 다른 경우에는 유동 자본 항목에 속하는 것은 소재의 물리적 속성이나 마멸성 차이 때문이 아니다. 이 구별은 오히려 그 금속이 생산 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 곧 어떤 경우에는 노동 대상이고, 다른 경우에는 노동 수단인 역할에서 비롯된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 수단의 기능은 대체로, 반복되는 노동 과정에서 길거나 짧은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봉사하는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노동 수단의 기능으로부터 그 소재의 내구성 정도가 예정된다. 그러나 노동 수단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소재의 내구성 자체가 노동 수단을 고정 자본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동일한 소재라도 원료가 되면 유동 자본이 된다. 그리고 상품 자본과 생산 자본의 구별과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의 구별을 혼동하는 경제학자들에게는, 동일한 소재 또는 동일한 기계가 생산물일 때는 유동 자본이며, 노동 수단일 때는 고정 자본으로 간주된다.

 

노동 수단을 만드는 데 쓰이는 내구적인 소재 자체가 노동 수단을 고정 자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 수단으로의 기능은 비교적 내구적인 소재로 구성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노동 수단 소재의 내구성은 노동 수단의 기능을 위한 하나의 조건이며, 나아가, 노동 수단을 고정 자본으로 만드는 유통 방식의 물질적 기초가 된다. 기타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노동 수단은 소재의 마멸성 대소에 따라 더 낮거나 더 높은 고정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소재의 마멸성 대소는 고정 자본으로 노동 수단의 자격과 분리될 수 없게끔 뒤얽혀 있다.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을 오직 유동 자본의 관점에서만, 곧 고정 자본과 대립되는 것으로만 고찰하고, 그 결과,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구별을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과 동일시한다면, 다음의 전개가 자연스럽다. 고정 자본의 성격이 노동 수단의 소재적 실체로부터 도출되듯이, 유동 자본의 성격 또한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의 소재적 실체로부터 도출되며, 그 다음에 다시 가변 자본의 소재적 실체로부터 유동 자본을 규정하게 된다.

 

임금으로 투하된 자본의 현실적 소재는 노동 그 자체, 곧 활동하고 있는 가치 형성적인 노동력, 살아있는 노동이다. 자본가는 죽은 대상화된 노동(임금에 해당하는 자본 가치)을 이것과 교환하여 자기 자본에 합쳤으며, 이로부터 비로소 그의 수중에 있는 가치는 자기 증식적인 가치로 전환된다. 그러나 자본가는 이 자기 증식력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이 힘은 노동 수단과 마찬가지로 항상 그의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을 이룰 따름이며, 그가 판매하는 완성 생산물처럼 상품 자본의 구성 부분을 이루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산 과정의 내부에서는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인 노동 수단이 노동력에 대하여 고정 자본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이는 노동 재료와 보조 재료가 유동 자본으로 노동력과 동일시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동 과정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 수단과 노동 원료는 물적 요소로 인적 요소인 노동력과 대립한다. 가치 증식 과정의 관점에서 보면, 전자는 불변 자본으로 가변 자본인 노동력과 대립한다. 유통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소재적 차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할 수 있을 뿐이다. 가치의 본성(대상화된 노동)과 활동하고 있는 노동력의 본성(자기를 대상화시키고 있는 노동)을 볼 때, 노동력은 기능하는 동안 끊임없이 가치와 잉여 가치를 창출한다. 그리고 노동력 편에서는 운동(가치의 창출)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의 생산물 편에서는 정지된 형태(산출된 가치)로 나타난다.

 

노동력이 작용을 완료하면, 자본은 더 이상 한편의 노동력과 다른 한편의 생산 수단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가치는 이제 생산물에 첨가된 가치(잉여 가치 포함)가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생산물을 판매하여 얻은 화폐로 끊임없이 새로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것을 생산 자본에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될 때,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노동 재료 등에 투하된 자본 부분과 마찬가지로)은 노동 수단에 고정되어 남아 있는 자본에 대립하여 유동 자본의 성격을 띠게 된다.

 

유동 자본이라는 불변 자본의 일부(원료 및 보조 재료)와 공통되는 제2차적 규정이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의 본질적 규정이라고 가정할 경우, 다시 말해, 노동력에 투하된 가치가 노동력의 소비로부터 생산된 생산물에 전부 이전되고(고정 자본처럼 점차적으로 이전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가치가 생산물의 판매로부터 전부 보충되어야 한다는 것, 임금으로 투하된 자본 부분은 소재적으로 볼 때 활동하고 있는 노동력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기 임금으로 구매하는 소재적 요소(사회적 상품 자본 중 노동자의 소비로 들어가는 부분인 생활 수단)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경우, 고정 자본은 비교적 천천히 마멸되고 보충되어야 할 노동 수단으로 구성되며,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은 더 빨리 보충되어야 할 생활 수단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마멸의 빠름과 느림이라는 경계는 곧 사라진다.

 

노동자가 소비하는 음식과 의복, 그가 일하는 건물, 그의 노동을 지원하는 기구는 모두 소모되는 성질을 가진다. 그렇지만, 이들 상이한 자본들이 지탱할 시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곧 증기 기관은 선박보다, 선박은 노동자의 의복보다, 그리고 노동자의 의복은 그가 소비하는 음식보다도 오래 갈 것이다.’

 

[리카도,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93].

 

리카도는 노동자가 거주하는 가옥, 그의 가구, 나이프·포크·접시 등 소비 기구류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노동 수단과 마찬가지로 내구성을 지닌다. 동일한 물건이나 동일한 종류의 물건이 어떤 경우에는 소비 수단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노동 수단으로 나타난다.

 

리카도가 제시하는 구별 기준은 다음과 같다.

 

자본은 급속히 소모되어 빈번히 재생산될 필요가 있는지, 아니면 천천히 소비되는지에 따라 유동 자본 또는 고정 자본 항목으로 분류된다.’

 

[리카도,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93].


그는 여기에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아 놓는다.

 

이 분류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거기에 경계선이 엄밀하게 그어질 수도 없다.’


[리카도,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93].


이로부터 우리는 중농주의자들의 입장으로 돌아간다. 그들에게 해마다의 투자와 최초의 투자 구별은 사용 자본의 소비 시간, 나아가, 상이한 재생산 시간에 따른 구별이었다. 하지만 중농주의자들에게 사회적 생산의 중요한 사태를 표현하고, 케네,경제표가 유통 과정에 관련하여 서술한 이 구별이, 리카도에게는 주관적이며, 그의 말처럼 쓸데없는 구별로 전락할 뿐이다.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이 오직 재생산 시간, 따라서 유통 시간으로만 노동 수단에 투하된 자본 부분과 구별된다면, 그리고 자본의 한 부분은 생활 수단으로, 다른 부분은 노동 수단으로 구성되며, 전자가 내구성으로만 후자와 구별되는데, 심지어 전자가 내구성이 상이한 각종 물건을 포괄하기까지 한다면,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과 생산 수단에 투하된 자본 사이의 일체의 특징적인 구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것은 가치에 관한 리카도의 학설과 그의 이윤론(사실상 잉여 가치론)에 완전히 모순된다. 그가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을 고찰한 목적은, 자본 크기가 같더라도 생산 부문에 따라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성비가 달라지며, 이것이 가치 법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특히 임금 등락이 각 부문 생산물 가격에 상이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해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국한된 연구 범위 내에서조차, 그는 고정 자본·유동 자본을 불변 자본·가변 자본과 혼동하며 매우 큰 오류를 범했고, 사실상 그 연구를 전혀 그릇된 기초에서 시작한 셈이다.

 

(1)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가치 부분을 유동 자본 항목으로 분류하기 위해 유동 자본 자체의 정의가 그릇되게 전개되고 있으며, 특히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을 유동 자본으로 분류하게 하는 사정들이 그릇되게 전개되고 있다. (2)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이 가변 자본이라는 규정과, 이 자본 부분이 (고정 자본에 대립되는) 유동 자본이라는 규정이 혼동되고 있다.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을 유동 자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제2차적 규정이며, 이 규정은 생산 과정에서 이 자본이 지닌 특징적 차이를 제거한다.

 

첫째, 이 규정에서는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과 원료 등에 투하된 자본이 동등한 의의를 갖는다. 이는 불변 자본의 일부를 가변 자본과 동일시하는 분류로, 불변 자본에 대립하는 가변 자본의 특징적 차이를 전혀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 부분과 노동 수단에 투하된 자본 부분이 서로 대립하기는 하지만, 이는 두 자본 부분이 전혀 상이한 방식으로 가치 생산에 참가한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자본 부분의 주어진 가치가 오직 상이한 기간에 걸쳐 생산물로 이전된다는 점에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경우에 문제로 되는 것은, 상품 생산 과정에 지출된 주어진 가치(임금, 원료 가격, 또는 노동 수단 가격)가 어떻게 생산물로 이전되고, 따라서 또 생산물로부터 유통하며, 생산물의 판매로부터 출발점으로 복귀되거나 보충되는가 하는 것뿐이다. 여기서 유일한 구별은 이 어떻게라는 점에, 곧 그 가치가 이전되는, 따라서 유통하는 특수한 방식에 있다.

 

계약으로 미리 결정된 노동력의 가격이 화폐로 지불되든 생활 수단으로 지불되든, 일정한 주어진 가격이라는 성격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화폐로 지불되는 임금의 경우, 화폐 자체는 생산 수단이 가치뿐 아니라 소재까지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방식과 동일하게 생산 과정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노동자가 임금으로 구매하는) 생활 수단이 직접 유동 자본의 소재적 형태로 원료 등과 동일 항목에 들어가 노동 수단과 대립할 경우, 사태는 다른 외관을 띤다. 한쪽 물건인 생산 수단의 가치가 노동 과정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반면, 다른 쪽 물건인 생활 수단의 가치는 그것을 소비하는 노동력에 재현되고, 이 노동력의 활동으로부터 역시 생산물로 이전된다.

 

이 두 경우에 동등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생산 중에 투하된 가치가 생산물에서 단순히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농주의자들은 이를 중시하여 공업 노동의 잉여 가치 창출을 부인했다). 예컨대, 웨일랜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자본이 어떤 형태로 재현되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생존과 복리에 필요한 각종 식품, 의류, 주택도 또한 변화한다. 그것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비되며, 그것들의 가치는 재현된다.’

[정치경제학 개요: 31-32].

 

생산 수단이나 생활 수단의 형태로 생산에 투하된 자본 가치들은 동등하게 생산물의 가치에 재현된다. 이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완전한 신비화가 성공적으로 완성되고, 생산물 중에 현존하는 잉여 가치의 기원은 완전히 은폐된다. 이로부터 물건들이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사회적·경제적 성격을 그 소재적 본성에서 비롯된 자연적 성격으로 전환시키는 부르주아 경제학에 고유한 물신 숭배가 완성된다.

 

예컨대, ‘노동 수단은 고정 자본이다.’라는 규정은 모순과 혼란을 일으키는 스콜라 철학적 규정에 불과하다.자본1권 제7장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소재적 구성 부분이 노동 수단, 노동 재료, 생산물 중 어느 것으로 기능하는지는 그것이 특정 노동 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 수단이 고정 자본으로 되는 것은 첫째, 생산 과정이 실질적인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이며, 그에 따라 생산 수단이 자본이라는 경제적 규정성과 사회적 성격을 가질 때이며, 둘째, 노동 수단이 가치를 특수한 방식으로 생산물에 이전하는 경우에 한한다. 이 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노동 수단은 그대로 노동 수단일 뿐 고정 자본은 아니다.

 

비료와 같은 보조 재료 역시 노동 수단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노동 수단과 동일한 특수한 방식으로 가치를 이전할 경우 고정 자본이 된다. 결국,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물건들을 분류하는 정의가 아니라, 일정한 범주로 표현되는 일정한 기능이다.

 

임금에 투하된 자본이 어떤 상황에서도 생활 수단 자체에 속하는 속성이라고 규정한다면, ‘노동을 유지하는 것(리카도: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92)이 이 유동자본의 성격이 된다. 이는 생활 수단이 자본이 아닐 경우, 노동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러나 사실은 생활 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면서, 생활 수단은 곧 타인의 노동을 지배하여 자본을 유지하는 속성을 부여받는다. 또 생활 수단 그 자체가 본래부터 유동 자본(임금으로 전환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임금 수준은 주어진 유동 자본량에 대한 노동자 수의 비율에 달려 있다는 명제(경제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명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사실은 노동자가 시장에서 취하는 생활 수단의 양과 자본가가 자기 소비를 위해 처분하는 생활 수단의 양은 노동 가격과 잉여 가치 사이의 비율에 달려 있다.

 

리카도는 바턴과 마찬가지로, 가변 자본과 불변 자본 비율과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 비율을 계속 혼동한다. 이로 인한 이윤율 연구의 모호함은자본3권 제1-3장에서 다룬다. 더 나아가, 그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구별과, 이와 별개의 원인에서 발생하는 자본 회전상의 차이를 동일시한다.

 

유동 자본이 순환하는 시간, 곧 사용자에게 회수되는 시간이 매우 불균등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차지 농업가가 파종을 위해 구입한 밀은 제빵업자가 빵을 굽기 위해 구입하는 밀에 비해서는 고정 자본이다. 전자는 그것을 땅에 뿌리고 1년 동안 아무런 수익을 얻지 못하지만, 후자는 그것을 가루로 빻아 빵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팔아 1주일 안에 원금을 회수하고 동일하거나 다른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리카도,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93-94].

 

특징적인 점은 밀이 종자로 사용되어 생활 수단이 아닌 원료로 기능함에도, 첫째, 본래 생활 수단이기에 유동 자본으로, 둘째, 1년의 한류 기간 때문에 고정 자본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 수단이 고정 자본으로 되는 근거는 환류의 완급뿐만 아니라,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하는 독특한 방식에 있다.

 

스미스가 일으킨 혼동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1.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은 생산 자본과 상품 자본의 구별과 혼동된다. 일례로, 동일한 기계가 상품으로 시장에 있을 경우에는 유동 자본으로 불리지만, 생산 과정에 투입되면 고정 자본으로 규정된다. 결과적으로, 특정 종류의 자본이 왜 다른 종류의 자본보다 더 고정적이거나 유동적인지에 대한 이유는 전혀 파악할 수 없다.


2. 모든 유동 자본은 임금으로 이미 지출되었거나 지출되어야 할 자본과 동일시된다. 존 스튜어트 밀의 경우가 그 예가 된다.


3. 바턴, 리카도 등으로부터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의 구별과 혼동되던 가변 자본과 불변 자본의 구별은 이제 마침내 전자로 완전히 수렴된다. 람지의 경우가 그 예인데, 그는 노동 수단·원료 등 모든 생산 수단을 고정 자본으로 보았고, 오직 임금으로 지출된 자본만을 유동 자본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로 분류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현실적인 구별은 이해되지 못했다.


4. 매클라우드, 패터슨 등과 같은 영국, 특히 스코틀랜드의 최근 경제학자들은 지극히 시야가 좁은 은행 사무원의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고찰하면서,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을 통지 예금과 요구불 예금의 구별로 전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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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이론: 중농주의자들과 애덤 스미스

 

케네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분을 최초 투자와 해마다의 투자 사이의 구별로 제시한다. 그는 이 구별을 직접적 생산 과정에 결합된 생산 자본의 내부에 한정된 것으로 정당하게 표시한다. 그러나 케네가 차지 농업가의 자본만을 유일한 현실적인 생산적 자본으로 간주했으므로, 이 구별은 농업 자본에서만 발생한다. 그가 자본의 일부 회전 시간은 1, 다른 부분의 회전 시간을 1년 이상(10)으로 설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농주의 학설이 발전함에 따라 이 구별은 다른 종류의 자본, 나아가 일반적인 산업 자본에까지 적용되었다. 해마다의 투자와 몇 년에 걸친 투자 사이의 구별은 사회 전체에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애덤 스미스 이후 많은 경제학자가 이 개념 규정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두 종류의 투자 사이의 구별은 투하된 화폐가 생산 자본의 요소로 전환된 시점에 발생한다. 이 구별은 생산 자본의 내부에만 한정된다. 따라서 화폐 자체를 최초 투자나 해마다의 투자에 산입하는 것은 케네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생산 자본으로 이루어진 두 종류의 투자는 시장의 상품 및 화폐와 대립한다. 또한, 케네는 생산 자본의 두 요소 사이의 구별이 완성 생산물의 가치 속에 들어가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확하게 보았다. 그 결과, 가치가 생산물의 가치와 함께 유통하는 방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또한 보충 또는 재생산 방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 한 요소의 가치는 매년 그 전부가 보충되지만, 다른 요소의 가치는 더 장기간에 걸쳐 일부분씩 보충된다.

 

애덤 스미스가 이룬 유일한 개선은 앞선 범주들을 일반화했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 이 범주들은 더 이상 자본의 특정 형태(차지 농업가의 자본)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형태의 생산 자본에 적용된다. 따라서 농업에 적용되었던 1년간 회전과 다년간 회전 사이의 구별 대신, 상이한 기간을 가진 회전들의 일반적 구별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고정 자본의 1회전은 유동 자본의 회전 기간과 관계없이(1년이든, 1년 이상이든, 이하이든 관계없이) 언제나 유동 자본의 1회전 이상을 포함하게 된다. 결국, 스미스는 해마다의 투자를 유동 자본으로, 최초의 투자를 고정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그러나 그가 이룬 발전은 이러한 범주의 일반화에만 국한될 뿐이며, 설명에 이르러서는 케네보다 훨씬 뒤떨어진다. 스미스가 이 연구에 착수하자마자, 그의 천박한 경험적 방법은 불명료하게 된다.

 

자본을 사용해서 수입이나 이윤을 얻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국부론(): 338].

 

가치가 자본으로 기능하여(잉여 가치를 산출하도록) 투하되는 방식은 자본 투하 분야만큼이나 다양하다. 여기에는 자본이 투하되는 각종 생산 분야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치가 생산 자본으로 투하되지 않는 경우에도 이자 낳는 자본이나 상인 자본처럼, 소유자를 위한 자본으로 기능하는 방식의 문제도 포함된다. 이는 우리가 현재 분석하는 실제 대상, 곧 생산 자본이 투하 분야의 차이와 무관하게 각종 요소로 분할되는 것이 그 요소들의 회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문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이어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자본은 재화를 생산 · 제조하는 데, 또는 재화를 구입해서 다시 판매하여 이윤을 얻는 데 사용된다.’

 

[국부론(): 338].

 

스미스가 여기서 언급하는 내용은 자본이 농업, 제조업, 상업 등 다양한 분야에 투하될 수 있다는 사실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는 자본의 각종 투자 분야를 논하고 있을 뿐이며, 상업과 같이 자본이 직접적 생산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 생산 자본으로 기능하지 않는 영역까지 다룬다. 이러한 접근은 중농주의자들이 설정했던 생산 자본 내부의 구별, 그리고 그 구별이 회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기초 자체를 이미 포기한다. 실제로 그는 생산물 및 가치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며, 다시 생산 자본의 회전 및 재생산의 차이를 낳는 생산 자본 내부의 차이만을 다루어야 할 문제에 상인 자본의 사례를 끌어들이는 오류를 범한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자본은, 사용자의 수중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또는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한, 수입이나 이윤을 낳지 않는다.’

 

[국부론(): 338].

 

여기서 스미스가 가리키는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자본’(!)은 농업, 공업, 상업에 투하된 자본을 의미하며, 그는 이후에 이 자본이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으로 분할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자본 투하 그 자체는 자본을 고정 자본이나 유동 자본으로 결정짓는 요인이 될 수 없다.

 

스미스가 의도한 바가, 이윤을 얻기 위해 투하된 자본이 상품으로 전환된 뒤 반드시 판매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 곧 판매로부터 상품이 판매자의 소유에서 구매자의 소유로 넘어가고, 현물 형태에서 화폐 형태로 전환되어야 하므로, 해당 자본이 사용자의 수중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또는 그에게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한무용하다는 것을 의미했다면, 사태는 다음과 같이 귀결된다. 이전에 생산 자본 형태(생산 과정에 속하는 형태)로 기능하였던 동일한 자본 가치는 이제 상품 자본과 화폐 자본으로, 유통 과정에 속하는 형태로 기능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해당 가치는 이미 고정 자본도 유동 자본도 아니게 된다. 이러한 논리는 원료 및 보조 재료(유동 자본)에서 첨가되는 가치 요소나, 노동 수단(고정 자본)의 소모에서 첨가되는 가치 요소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이 논의 역시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을 해명하는 데 전혀 다가가지 못한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상인의 화물은 돈을 받고 팔리기 전에는 어떠한 수입이나 이윤도 창출하지 못하며, 상인의 화폐 또한 화물과 다시 교환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그의 자본은 끊임없이 한 형태를 떠나 다른 형태로 그에게 돌아온다. 오직 이러한 유통, 곧 계속적인 교환으로부터만 자본은 그에게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본은 지극히 적절하게도 유동 자본이라 부를 수 있다.’

 

[국부론(): 338].

 

스미스가 여기서 유동 자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필자가 유통 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유통 자본이란 유통 과정, 곧 교환을 매개로 하는 전환(소재의 변화와 소유자의 변화)에 속하는 형태의 자본이다. 이는 생산 과정에 속하는 자본 형태인 생산 자본과 대립되는 상품 자본 및 화폐 자본을 일컫는다. 이러한 자본 형태들은 산업 자본가가 자본을 분할하는 특수한 종류들이 아니며, 동일하게 투하된 자본 가치가 자신의 생애 주기 동안 끊임없이 차례로 취하였다가 벗어버리는 상이한 형태들이다.

 

스미스는 자본 가치가 생산 자본 형태로 존재하는 동안 발생하는 그 가치의 유통상 형태 차이와, 생산 자본 각 요소들이 가치 형성 과정에 참가하여 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생기는 형태상의 차이를 혼동한다. 여기에 중농주의자들에 비하여 스미스의 중대한 퇴보가 있다. 우리는 후속 논의에서, 생산 자본과 유통 분야에 있는 자본(상품 자본 및 화폐 자본) 사이의 이러한 근본적인 혼동, 그리고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사이의 혼동이 낳는 결과를 고찰할 것이다. 고정 자본으로 투하된 자본 가치 역시 유동 자본으로 투하된 자본 가치와 마찬가지로 생산물로부터 유통된다. 전자나 후자 모두 상품 자본의 유통으로부터 화폐 자본으로 전환된다. 차이는 다만 고정 자본의 가치는 일부분씩 유통하며, 따라서 또한 길거나 짧은 시간에 걸쳐 일부분씩 보충되어 현물 형태로 재생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스미스가 여기서 유동 자본으로 이해하는 것이 유통 자본, 곧 유통 과정에 속하는 형태의 자본 가치(상품 자본과 화폐 자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가 특히 서투르게 선택한 예에서 입증된다. 그가 예로 드는 상인 자본은 생산 과정에는 전혀 속하지 않으며, 오직 유통 분야에만 존재하고, 유통 자본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자본이 전혀 생산 자본으로 나타나지 않는 예로 설명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는 그 자신이 지적하고 있다. 그는 상인의 자본은 모두가 유동 자본이다.’라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 사이의 구별이 생산 자본 내부의 본질적 구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결국,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이 설정한 구별과 자본 가치가 순환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상의 차이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 두 가지 개념이 서로 뒤섞여 나타난다. 그러나 화폐와 상품 사이의 전환, 또는 이 두 형태 중 하나로부터 다른 하나로 가치가 단순 전환되는 과정만으로는 이윤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결코 알 수가 없다. 스미스가 유통 분야에서만 운동하는 상인 자본에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설명은 전혀 성립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기로 하고, 먼저 고정 자본에 관하여 그가 서술하는 내용을 살펴본다.

 

둘째, 자본은 토지 개량에 사용되거나, 유용한 기계나 생산 도구 구매에 사용되거나, 소유주를 바꾸지 않고 또는 더 이상 유통하지 않고 수입이나 이윤을 가져다주는 물건들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본은 매우 적절하게도 고정 자본이라 부를 수 있다.

 

업종에 따라 사용되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비율은 크게 다르다. 수공업자나 제조업자의 자본 중 일부는 생산 도구 형태로 고정되어야 하며, 이 부분의 크기는 업종별로 상이하다. 그러나 수공업자 자본 중 대부분은 노동자에 대한 임금이나 원료 가격으로 유통되며, 생산물 가격으로부터 이윤과 함께 회수된다.’

 

[국부론(): 338-339].

 

이윤의 원천에 관한 유치한 규정은 논외로 하더라도, 스미스의 약점과 혼란은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예컨대, 기계 제작 업자에게 기계는 상품 자본으로 유통되는 생산물, 곧 스미스의 정의대로라면 수중에서 떠나 소유주를 번경하며 다시 유통하는생산물이다. 따라서 그 자신의 정의에 의하더라도, 기계는 고정 자본이 아닌 유동 자본이어야 한다. 이러한 혼란은 스미스가 생산 자본의 상이한 요소들의 상이한 유통 방식에서 비롯되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사이의 구별을, 동일 자본이 생산 과정 안에서는 생산 자본으로 기능하고, 유통 영역에서는 유통 자본(상품 자본 또는 화폐 자본)으로 기능하며 통과하는 형태상의 차이와 혼동하는 데서 발생한다. 결국, 스미스가 파악해야 할 핵심은, 동일한 물건일지라도 자본의 운동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 여하에 따라 고정 자본(노동 수단, 생산 자본의 요소)으로 기능할 수도 있고, 유동 자본, 곧 상품 자본 (생산 영역에서 유통 영역으로 밀려나오는 생산물)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스미스는 갑자기 자본 구분의 기초 전체를 변경하며, 그가 몇 줄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과 모순되는 진술을 한다. 앞서, 그는 자본을 사용해서 수입이나 이윤을 얻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이는 곧 유동 자본 또는 고정 자본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명제에 따르면,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은 각각 상이한 업종에 사용되는 독립적인 자본이며, 예컨대, 공업이나 농업에 사용된 자본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는 업종에 따라 사용되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비율은 매우 다르다고 말한다. 이제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은 상이하고 독립적인 자본 투하가 아니라(상이한 투자 분야에서 자본 총가치 중 상이한 몫을 차지하게 되더라도), 동일한 생산 자본의 상이한 부분들이 된다. 따라서 후자의 구별은 생산 자본 자체의 분할에 기인하며, 오직 생산 자본에 대해서만 타당한 구별이다. 하지만 또다시 이와 모순되게, 상업 자본이 단순한 유동 자본으로 고정 자본에 대비된다. 스미스 자신이 상인의 자본은 모두가 유동 자본이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상인 자본은 유통 영역에서만 기능하는 자본이므로, 생산 과정에 결합된 자본인 생산 자본과 대립된다. 바로 이 때문에, 상인 자본은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생산 자본의 고정적 구성 부분에 대비될 수 없다.

 

스미스는 그가 제시하는 예에서 생산 도구를 고정 자본으로 규정하고, 임금과 (보조 재료를 포함한) 원료에 투하된 자본 부분(‘생산물의 가격으로부터 이윤과 함께 회수된다’)을 유동 자본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스미스가 먼저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노동 과정의 여러 구성 부분들, 곧 한편으로는 노동력(노동)과 원료,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 도구이다. 이것들이 자본의 구성 부분인 것은 자본으로 기능해야 할 일정한 가치액이 그것들에 지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것들은 생산 자본(생산 과정에서 기능하는 자본)의 소재적 요소이자 존재 방식이다. 그렇다면 왜 그것들의 일부는 고정적이라고 불리는가. 그 이유는 자본의 일부는 생산 도구의 형태로 고정되어야 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부분, 곧 임금과 원료 역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스미스는 기계, 생산 도구 및 이와 비슷한 물건들이 소유주를 바꾸지 않고 또는 더 이상 유통하지 않고 수입이나 이윤을 가져다 준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본은 매우 적절하게도 고정 자본이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광업을 예로 들 경우, 스미스의 구별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광업에서는 원료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 대상인 구리 등은 노동으로부터 먼저 채취되어야 할 자연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채취될 구리는 생산 과정의 생산물로 나중에 상품 또는 상품 자본으로 유통되지만, 생산 자본의 어떤 요소도 구성하지 않는다. 그것에 생산 자본 가치의 어떤 부분도 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생산 과정의 다른 요소들인 노동력과 석탄, 물 등의 보조 재료 역시 소재적으로는 생산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석탄은 전부 소비되며, 그것의 가치만이 생산물로 들어가는데, 이는 기계 등의 가치 일부가 생산물에 들어가는 방식과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는 기계와 마찬가지로 생산물인 구리와는 독립적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의 노동으로부터 생산된 가치가 이제 구리 가치의 한 구성 부분을 이룰 따름이다. 따라서 이 예에서는 생산 자본의 어떤 구성 부분도 소유자를 변경하지 않는다. 또한 소재적으로 생산물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더 이상 유통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경우, 유동 자본이 차지할 자리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스미스의 정의에 따르면, 구리 광업에 사용되는 자본 전체는 고정 자본일 따름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원료가 생산물의 실체를 구성하고, 보조 재료가 가치상으로뿐만 아니라 물체적으로도 생산물에 들어가는 다른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여기에서는 생산물(: 면사)이 생산 과정에서 소비 과정으로 들어갈 때, 소유자를 변경시키는데, 이는 원료(면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면화가 생산 자본의 요소로 기능하는 동안, 그 소유자는 그것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하여 면사를 만들어낸다. 그는 면화를 자신의 수중에서 내놓지 않는다. 또는 스미스의 대단히 그릇되고 진부한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 소유자는 그것을 자기 수중에서 떠나게 하면서, 그것의 소유자를 변경하면서, 또는 그것을 유통시키면서이윤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가 자신의 기계를 유통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료도 유통시키지 않는다. 그의 재료는 방적 기계나 공장 건물과 마찬가지로 생산 과정에 고정되어 있다. 사실, 생산 자본의 일부가 노동 수단의 형태로 항상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석탄이나 면화 등의 형태로도 항상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예컨대, 1주일간 면사 생산에 요구되는 면화와 석탄 등은 완전히 소비되므로, 동일 종류의 신품으로 보충되어야 한다. 이처럼, 생산 자본의 이 요소들은(종류상 동일할지라도) 항상 동종의 신품들로 구성된다. 이에 반해, 동일한 개별 방적 기계나 동일한 개별 공장 건물은 동종의 신품으로 대체됨이 없이 몇 번에 걸친 주간 생산에 계속 봉사한다는 점이 다르다. 생산 자본의 모든 구성 부분은 생산 자본의 요소로 항상 생산 과정에 고정되어 있다. 생산 과정은 이 요소들 없이는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 자본의 모든 요소는 고정적인 것이든 유동적인 것이든 동등하게 생산 자본으로 유통 자본(곧 상품 자본 및 화폐 자본)과 구별된다.

 

노동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생산 자본의 일부는 끊임없이 노동력에 고정되어야 한다. 동일한 노동력은 동일한 기계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자본가로부터 비교적 장기간 사용된다. 노동력과 기계는 구매 방식에서 구별이 존재한다. 기계는 (할부 구매의 경우 제외) 단 한 번에 구매되지만, 노동력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구별은 가치 구성 방식에 있다. 노동자가 지출하는 노동은 생산물의 가치에 전부 투입되는 반면, 기계의 가치는 마모되는 부분만큼 일부분씩만 생산물에 편입된다.

 

스미스가 고정 자본에 대비되는 유동 자본에 대해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자본은, 사용자의 수중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또는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한, 수입이나 이윤을 낳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는 상이한 규정들을 혼동하고 있다. 그는 상품 자본인 생산물이 유통 영역에서 겪는 형식적인 상품 전환(상품 소유자 변경을 매개함), 생산 자본의 상이한 요소들이 생산 과정 중에 겪는 물체적인 전환을 동일 선상에 놓는다. 그는 상품에서 화폐로 전환과 화폐에서 상품으로의 전환(판매와 구매)을 생산 요소들에서 생산물로 전환과 혼동하고 있다.

 

그가 유동 자본의 예로 드는 것은 상품에서 화폐로, 그리고 화폐에서 상품으로 전환하는 상인 자본이며, 이는 상품 유통에 속하는 전환인 상품 유통 일반 공식(C-M-C)과 관련된다. 그러나 유통 영역 내부의 이 전환이 기능하고 있는 산업 자본에 대하여 갖는 진정한 의의는, 화폐가 재전환하는 상품이 생산 요소들(노동 수단과 노동력)이라는 점, 따라서 이 전환이 산업 자본의 연속성을 매개하여 생산 과정을 연속적인 것이나 재생산 과정으로 만든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전환 전체는 유통 영역에서 진행된다. 바로 이 전환이 상품의 현실적 이전을 매개하여 한 사람 수중에서 다른 사람 수중으로 넘어가게 한다. 이와 반대로, 생산 자본이 생산 과정 내부에서 겪는 전환은 노동 과정에서 진행되는 전환으로, 생산 요소들을 원하는 생산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하다.

 

스미스는 다음 사실에만 주목한다. 생산 수단의 일부(진정한 노동 수단)는 자체의 현물 형태를 변화시키지 않고, 점차적으로 소모되면서 노동 과정에서 봉사하며(이것을 그는 그 소유자에게 이윤을 가져다준다.’고 그릇되게 표현함), 또 생산 수단의 다른 부분인 재료는 자체의 현물 형태를 변화시켜 바로 그 변화로 말미암아, 생산 수단으로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생산 자본의 요소들이 노동 과정에서 수행하는 이와 같은 상이한 소재적 역할은 고정 자본과 비고정 자본 사이에서 구별의 출발점을 이룰 뿐, 이 구별 자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구별은 모든 생산 양식(자본주의적이든 비자본주의적이든)에서 동등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 상이한 소재적 역할에 생산물로의 가치 이전에 상이한 방식이 대응하고, 또 생산물의 판매로부터 가치 보충의 상이한 방식이 대응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바로 문제 되는 구별을 이룬다. 따라서 자본이 고정 자본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노동 수단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 수단에 투하된 자본 가치 일부가 생산물 가치의 구성 부분으로 유통되는 동안 그 가치의 다른 부분은 여전히 노동 수단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래의 이윤을 회득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자본)을 보유하거나 그것을 지출하면서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보유하는 경우는 고정 자본이고, 지출하는 경우는 유동 자본이다.’

 

[국부론(): 312].

 

여기서 먼저 주목되는 점은 일반적인 자본가의 견해를 나타내는 천박한 경험적 이윤 개념이다. 이는 스미스의 우수하고 심오한 견해와 완전히 모순된다. 생산물 가격에서 재료와 노동력의 가격이 보충되고 있으며, 노동 도구의 마멸로부터 생산물로 이전된 가치 부분 역시 보충된다. 이 가치 보충 자체로부터는 결코 이윤이 생기지 않는다. 생산물 생산을 위해 투하된 가치가 판매로부터 전부 보충되든지, 일부분씩 보충되든지, 한꺼번에 보충되든지, 점차적으로 보충되든지 하는 것은 다만 보충 방식과 시간만을 변경시킬 뿐이다. 가치 보충이라는 공통 요소를 잉여 가치의 창출로 전환시킬 수는 없다.

 

스미스 이윤 개념의 기초에는, 잉여 가치가 생산물의 판매(유통)로만 실현되므로, 오직 판매(유통)에서 생긴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놓여 있다. 사실상 스미스가 말하는 이윤 발생의 상이한 방식은 생산 자본의 상이한 요소들이 생산 요소로 노동 과정에서 상이하게 기능하고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릇되게 표현하는 데에 불과하다. 따라서 스미스의 구별은 노동 과정이나 가치 증식 과정, 곧 생산 자본 자체의 기능에서 도출되지 않는다. 이는 단지 개별 자본가에게 주관적으로, 자본의 한 부분은 이러한 방식으로, 다른 부분은 저러한 방식으로 유용하다는 수준에서만 타당하다. 이와는 반대로, 케네는 이 구별을 재생산 과정과 그 필연적 조건 자체로부터 도출하였다. 재생산 과정이 연속적으로 수행되려면, 연간 생산물의 가치에서 해마다의 투자 가치는 매년 전부 보충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초 투하 자본 가치는 일부분씩 보충되어 몇 년(: 10)에 걸쳐 비로소 전부 보충되며, 따라서 전부 재생산되면(동종의 신품으로부터 보충되면) 된다. 이와 같이, 스미스는 케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

 

스미스가 규정한 고정 자본은 노동 수단(생산 과정에서 자체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소모될 때까지 계속 생산에 봉사함)이며, 이는 생산물(노동 수단의 도움으로 형성됨)과 대립된다. 그러나 그가 간과하는 점은, 생산 자본의 모든 요소가 항상 그 현물 형태(노동 수단, 재료, 노동력)에서 생산물(상품으로 유통하는 생산물)과 구별된다는 점이다. 또한, 재료 및 노동력으로 구성되는 부분과 노동 수단으로 구성되는 부분 사이의 구별은 다음과 같다. 노동력의 경우,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 구매되며, 노동 수단처럼 지속되는 기간 전체에 걸쳐 구매되는 것이 아니다. 재료의 경우, 꼭 같은 동일한 재료가 아니라 항상 동종의 신품이 노동 과정에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결국, 스미스는 고정 자본의 가치가 유통하지 않는 듯한 환상을 조성한다. 물론 그는 앞서 고정 자본의 마멸분이 생산물 가격의 일부라고 설명했음에도 말이다.

 

고정 자본에 대비시켜 유동 자본을 설명할 때, 스미스는 유동 자본이 고정 자본과 달리 생산 자본 중 생산물의 가치에서 전부 보충되어야 하며, 따라서 생산 자본 중 생산물의 전환에 전부 참가해야 하는 구성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는 유동 자본을 자본이 생산 영역에서 유통 영역으로 이행할 때 취하는 모습(상품 자본, 화폐 자본)과 혼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형태(상품 자본, 화폐 자본)는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과 고정적 구성 부분 모두의 가치 담당자이다. 이 두 형태는 생산 자본에 대립하는 유통 자본이며, 고정 자본에 대립하는 유동 자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고정 자본으로부터 이윤 획득이 그것이 생산 과정에 남아 있기 때문이며, 유동 자본으로부터 이윤 획득이 그것이 생산 과정을 떠나 유통하기 때문이라는 이 부당한 설명은, 불변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과 가변 자본이 회전에서 취하는 동일한 형태 때문에 그들이 가치 증식 과정과 잉여 가치 형성에서 나타내는 본질적 차이를 은폐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체 비밀이 더욱 애매하게 된다. ‘유동 자본이라는 공통 명칭 때문에 이 본질적 차이가 사라진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이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사이의 대립이 아닌,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사이의 대립만이 본질적이고 유일한 구별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스미스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을 각각 그 자체로 이윤을 낳는 자본 투하의 상이한 두 방식으로 지적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정 자본은 유동 자본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떤 수입도 낳지 못한다. 가장 유용한 기계 · 생산 도구는 그것이 가공할 원료를 가져다주는 유동 자본 없이는,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노동자들의 생계를 유지시켜 줄 유동 자본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국부론(): 344].

 

여기에서 수입을 낳는다.’ 또는 이윤을 낳는다.’ 등의 이전 표현들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해진다. 그 표현들은 자본의 두 부분이 모두 생산물의 형성자로 기능한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차지 농업가의 자본 중 농업 용구에 투하되는 부분은 고정 자본이고, 노동자의 임금이나 생활 유지에 사용되는 부분은 유동 자본이다.’

 

[국부론(): 306].

 

(따라서 여기서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사이의 구별이 생산 자본의 상이한 구성 부분들의 상이한 유통 및 상이한 회전에만 적절하게 관련되고 있다.)

 

그는 고정 자본을 보유하면서 이윤을 획득하고, 유동 자본을 지출하면서 이윤을 획득한다. 역축의 가격 또는 가치는 경작 용구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고정 자본이다.’

 

(여기서 그는 역시 정당하게도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을 소재적 요소가 아닌 가치와 관련시키고 있다.)

 

역축의 유지비는 노동자의 유지비와 마찬가지로 유동 자본이다. 차지 농업가는 역축을 보유하면서 이윤을 획득하며, 역축의 유지비를 지출하면서 이윤을 획득한다.’

 

(차지농업가는 역축의 사료를 보유하며 판매하지 않는다. 그는 역축을 노동 도구로 사용하는 동안 역축을 먹이기 위해 사료가 필요하다. 구별은 다만, 역축의 유지에 들어가는 사료는 그 전부가 소비되며 농산물 또는 농산물 판매에서 얻어지는 새로운 사료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어야 하지만, 역축 그 자체는 한 마리마다 순차적으로 노동 능력을 상실하는 정도에 따라서만 보충된다는 점에 있다.)

 

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팔기 위해서 구매 · 사육하는 가축의 가격 · 사육비는 유동 자본이다. 차지 농업가는 가축의 가격 · 사육비를 지출하면서 이윤을 획득한다.’

 

(모든 상품 생산자, 따라서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자 역시 자신의 생산 과정의 결과물인 생산물을 판매한다. 그러나 이 판매 때문에 그의 생산물이 생산 자본의 고정적 구성 부분이나 유동적 구성 부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의 생산물은 이제 생산 과정에서 밀려나 상품 자본으로 기능해야 하는 형태에 놓인다. 살이 찌게 기르는 가축은 생산 과정에서 원료로 기능하며, 역축처럼 노동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가축은 실체로 생산물에 들어가며, 그 가치 전체는 보조 재료 및 사료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생산물에 들어간다. 가축이 생산 자본의 유동 부분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판매되는 생산물(살이 찐 가축)이 원료, 곧 아직 살이 찌지 않은 가축과 동일한 현물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물 형태의 동일성은 우연적이다. 동시에, 스미스는 이 예시에서, 생산 요소에 포함된 가치가 고정적인지 유동적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생산 요소의 물적 모습이 아니라 생산 과정 내부에서 생산 요소의 기능이라는 것을 파악했어야 했다.)

 

씨앗의 가치 전체도 역시 적절하게 고정 자본이다. 씨앗은 토지와 창고 사이를 왕복하지만 결코 소유주를 바꾸지 않으며, 따라서 유통한다고 말할 수 없다. 차지 농업가는 씨앗의 판매로부터가 아니라 증식으로부터 이윤을 획득한다.’

 

[국부론(): 340].

 

여기서 스미스 구별의 모든 불합리성이 특히 명료하게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종자는 소유자가 변경되지 않을 때, 곧 그 종자가 직접 한 해의 생산물 중에서 보충되고 생산물 중에서 공제될 때, 고정 자본이다. 이와 반대로, 생산물 전체가 판매되고 그 가치 일부로부터 타인의 종자가 구매될 때에는 유동 자본이다. 후자의 경우 소유자가 변경되지만, 전자의 경우 그렇지 않다. 스미스는 여기에서도 또 유동 자본과 상품 자본을 혼동한다. 생산물은 상품 자본의 소재적 보유자다. 그러나 생산물 중 이러한 보유자로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유통에 들어가는 부분뿐이며, 자기 자신이 생산물로 나온 그 생산 과정에 다시 직접 들어가지 않는 부분에 한정된다.

종자가 생산물의 일부로 생산물에서 직접적으로 공제되든, 또는 생산물 전체가 판매되어 그 가치의 일부가 타인의 종자 구입으로 전환되든, 두 경우 모두 가치의 보충이 이루어질 뿐이며, 이러한 보충으로부터는 어떤 이윤도 얻어지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에는 종자가 생산물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상품으로 유통에 들어가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그것이 부기상으로만 투하 자본 가치의 구성 부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그것이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씨앗은 생산물을 완성시키기 위해 전부 소비되므로, 재생산이 성립하려면 그 전부가 생산물 중에서 보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원료와 보조 재료는 사용 가치로 노동 과정에 투입될 때, 독자적인 모습을 상실한다. 이와 달리, 진정한 노동 수단은 다르다. 도구, 기계, 공장 건물, 용기 등은 자체의 본래 모습을 유지하며 매일 똑같은 형태로 다시 노동 과정에 투입될 수 있는 동안만 유용하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동안(곧 노동 과정에 있을 동안) 생산물에 대해 자신의 독자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멸한 뒤에도 역시 그 모습을 유지한다. 기계, 도구, 작업용 건물 등의 잔해는 이것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생산물과는 별개로 여전히 존재한다.’

 

[자본1권 제8: 271].

 

생산물 형성에 생산 수단이 이용되는 상이한 방식, 곧 한편의 생산 수단은 생산물에 대해 자체의 독자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의 생산 수단은 모습이 변화되거나 완전히 상실된다는 구별은 노동 과정 자체에 속한다. 따라서 어떤 교환도 없고, 상품 생산도 없이, 예컨대, 가부장제 가족의 단순한 자가 수요 충족을 위해 진행되는 노동 과정에도 해당된다.

 

스미스는 이 구별을 다음과 같이 왜곡한다.

 

첫째, 그는 한편의 생산 수단은 자체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의 생산 수단은 그것을 상실하면서 그 소유자에게 이윤을 가져온다는, 이 문제와 전혀 당치않는 이윤 규정을 끌어들인다.

 

둘째, 그는 생산 요소의 일부가 노동 과정에서 겪는 변화를, 생산물의 교환, 곧 상품 유통(매매)에 속하는 전환(유통하는 상품에 대한 소유권의 이동을 포함함)과 혼동한다.

   

회전은 재생산이 유통으로부터, 곧 생산물의 판매, 생산물에서 화폐로의 전환, 그리고 화폐에서 생산 요소들로의 재전환으로부터 매개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자 자신의 생산물 일부가 그 자신에게 직접 생산 수단으로 쓰이는 한, 그 생산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그것의 판매자로 나타나며, 그의 부기상에 그렇게 나타난다. 이 경우, 재생산의 이 부분은 유통으로부터 매개되지 않고 직접 실시된다. 다만 이처럼, 생산물 중 생산 수단으로 다시 쓰이는 부분은,

 

1. 그것의 가치가 전부 생산물에 들어가고,

 

2. 그 자체가 새로운 생산물 중의 신품으로부터 현물로 전부 보충되는 한, 고정 자본이 아니라 유동 자본을 보충한다.

 

스미스는 이어서 유동 자본과 고정 자본의 구성 요소를 서술한다. 그는 이 두 자본을 형성하는 물건들(소재적 요소들)의 특성이 그 물건들 자체에 소재적으로, 처음부터 내재하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 내부의 일정한 기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열거한다. 그러나 그는 같은 장(2편 제1)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예를 들어, 주택과 같이 직접적 소비를 위해 보유된 일정한 물건은,

 

그 소유자에게는 수입을 제공하고 따라서 그에게 자본으로 기능할지라도, 사회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수입도 제공하지 않으며, 자본으로도 기능하지 않고, 따라서 주민 전체의 수입은 그것으로부터 조금도 증가하지 않는다.’

 

[국부론(): 341].

 

여기에서 스미스는 자본이라는 속성은 물건 자체에 또는 어떤 사정에서도 부착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정 여하에 따라 수행하기도 하고 수행하지 않기도 하는 기능이라는 것을 아주 명백하게 표명한다. 자본 일반에 타당한 것은 그것의 소분류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동일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노동 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다름에 따라 유동 자본의 구성 부분으로도 되고, 고정 자본의 구성 부분으로도 된다. 예컨대, 가축은 역축(노동 수단)일 때는 차지 농업가의 고정 자본의 소재적 존재 방식이지만, 살이 찌게 기르는 가축(원료)일 때는 그의 유동 자본의 구성 부분이다. 더욱이, 동일한 물건이 때로는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으로 기능하고, 때로는 직접적 소비 재원에 속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옥은 그것이 작업장으로 기능할 때는 생산 자본의 고정 부분이지만, 주택으로 기능할 때는 전혀 어떤 자본 형태도 아니다. 동일한 노동 수단이 때로는 생산 수단으로 기능하고, 때로는 소비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경우도 흔하다. (: 영업용 자동차를 가정용으로도 사용하는 경우)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성격을 물건에 고착된 성격으로 보는 것은 스미스 견해에서 비롯된 오류 중 하나이다. 동일한 물건이 노동 과정에서 하는 역할이 달라짐에 따라 노동 수단, 노동 재료, 생산물로 변경되는 점은 이미 노동 과정 분석(자본1권 제7)에서 명확히 밝혀졌다. 고정 자본과 비고정 자본이라는 규정 역시 이 요소들이 노동 과정, 나아가, 가치 형성 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근거를 둔다. 스미스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을 구성하는 물건들을 열거할 때, 생산 자본(생산적 형태로 있는 자본)에 대해서만 타당하고 의의가 있는 생산 자본의 고정적 구성 부분과 유동적 구성 부분 사이의 구별을, 생산 자본과 유통 과정에 있는 자본 형태들(상품 자본과 화폐 자본) 사이의 구별과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그는 같은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동 자본은 각 거래자의 수중에 있는 모든 종류의 식료품 · 원료 · 완제품,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용하고 소비할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유통시키고 분배하는 데 필요한 화폐로 구성된다.’

 

[국부론(): 343].

 

보다 상세히 검토하면, 여기서 유동 자본은 앞선 진술과 상반되게 상품 자본 및 화폐 자본과 다시 동등시된다. 이들은 생산 과정에 전혀 속하지 않으며, 고정 자본에 대립하는 유동 자본이 아닌 생산 자본에 대립하는 유통 자본을 이루는 두 자본 형태다. 이 자본 형태들과 나란히, 재료(원료 또는 반제품)에 투하되어 실제 생산 과정에 결합된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들 역시 다시 나타난다.

 

그는 말한다.

 

사회의 총재고(자본)가 자연스럽게 분할되는 세 부분 중 마지막 세 번째는 유동 자본이다. 이것의 특징은 유통하여 소유주를 바꾸면서 수입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의 네 종류로 구성된다.

 

· 화폐: 화폐는 결코 생산 과정에서 기능하는 생산 자본의 한 형태가 아니다. 단지 자본이 유통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 식로품의 재고: 정육점, 목축업자, 차지 농업가, 곡물 상인, 양조업자 등이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것의 판매로부터 이윤을 얻는다.

 

· 완성된 제조품: 아직 상인이나 제조업자의 수중에 있으며, 진정한 소비자에게 처분·분배되지 않은 것이다.

 

· 원료: 천연 상태에 있거나 다소 가공된 상태로, 의류, 가구, 건물을 만드는 원료로 재배자, 생산자, 포목상, 목재상, 목수, 가구장이, 벽돌 제조업자 등의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이다.’

 

[국부론(): 343].

 

둘째 항목과 넷째 항목은 생산물로, 생산 과정에서 밀려나와 판매되어야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제 상품으로, 나아가, 상품 자본으로 기능하며, 따라서 그것의 최종 용도가 무엇이든(목적하는 사용 가치로 보아 개인적 소비에 들어가야 할 것이든, 생산적 소비에 들어가야 할 것이든), 그것은 지금 생산 자본의 요소를 형성하지 않는 과정에서 일정한 형태를 취하고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는 생산물이다. 이 생산물들은 둘째 항목에서는 식량이며, 넷째 항목에서는 기타 모든 완성 생산물, 곧 완성된 노동 수단 또는 완성된 소비 용품(둘째 항목에 포함된 식량 이외의)으로 구성된다.

 

스미스가 여기서 상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의 혼란을 보여준다. 생산자가 자신의 생산물을 상인에게 판매했다면, 그 생산물은 더 이상 그의 자본에서 어떤 형태도 이루지 않는다. 물론 사회적으로 볼 때, 그 생산물은 생산자 이외의 사람 수중에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상품 자본이다. 그러나 그것이 상품 자본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고정 자본도 아니며 유동 자본도 아니다.

 

생산자의 직접적인 자가 소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어떤 생산에서도, 생산물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산자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상품으로 유통하지 않으면, 곧 판매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이 외에 상품의 판매에 따라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잉여 가치도 실현된다는 사실이 더 첨가된다. 생산물은 상품으로 생산 과정에서 나오므로, 그것은 이 생산 과정의 고정적 요소도 아니며 유동적 요소도 아니다.

 

스미스는 여기에서 스스로 진술을 반박하고 있는 셈이다. 완성 생산물은 그것의 소재적 형태나 사용 가치, 유용 효과에 관계없이 모두 상품 자본, 곧 유통 과정에 속하는 형태의 자본이다. 이 형태로 존재하는 한 완성 생산품은 그 소유자에게 생산 자본의 어떤 구성 부분도 이루지 않는다. 물론 이는 완성 생산물이 판매되자마자 그것이 구매자의 수중에서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유동적 부분이든 고정적 부분이든)이 되는 것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 여기서 명백한 것은, 생산 자본에 대립하는 상품 자본으로 특정 시기에 시장에 등장하는 동일한 물건이, 일단 시장에서 벗어나면,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 또는 고정적 구성 부분으로 기능할 수도 있고 기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면방적업자의 생산물인 면사는 그의 자본의 상품 형태이며 그에게는 상품 자본이다. 면사는 노동 재료나 노동 수단으로 그의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으로 다시 기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면사를 구매하는 직조업자의 수중에서는 그것이 그의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의 하나로 그의 생산 자본에 결합된다.

 

한편, 면방적업자에게 면사는 자신의 유동 자본과 함께 고정 자본 일부의 가치(잉여 가치는 제외)를 담고 있는 담당자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계 제조업자의 생산물인 기계는 그의 자본의 상품 형태이며, 그에게는 상품 자본이다. 기계가 이 형태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은 유동 자본도 아니며 고정 자본도 아니다. 이 기계를 사용하는 공장주에게 판매되면, 그 기계는 생산 자본의 고정적 구성 부분으로 전환된다. 생산물이 유용한 형태상 그것이 나온 과정에 다시 생산 수단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우, 예컨대, 석탄이 (난방용으로) 석탄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에도, 생산된 석탄 중 판매 예정인 부분은 유동 자본도 고정 자본도 아닌 상품 자본을 대표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산물은 그 유용한 형태상 노동 재료로든 노동 수단으로든 생산 자본의 어떤 요소도 전혀 될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예컨대, 생활 용품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생활 용품은 그것의 생산자에게는 상품 자본이며,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가치의 담당자이다. 그리고 이 생산물이 고정 자본의 가치를 지니는지 또는 유동 자본의 가치를 지니는지는, 그것의 생산에 사용된 자본이 전부 한꺼번에 보충되어야 하는지 부분적으로 보충되어야 하는지에 따라, 곧 이 자본의 가치가 전부 생산물로 이전되었는지 부분적으로 이전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스미스의 셋째 항목에서 재료(원료, 반제품, 보조 재료)는 생산 자본에 이미 결합된 구성 부분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사실상 사회적 생산물 일반을 구성하는 특별한 종류의 사용 가치로 나타난다. 이 사용 가치는 둘째 항목과 넷째 항목에 열거된 소재적 요소들(생활 수단 등)과 함께 존재하는 상품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료가 확실히 생산 자본에 합쳐진 것으로, 따라서 생산자의 수중에 있는 생산 자본의 요소로 제시되고 있다. 이 혼란은 재료가 한편으로는 생산자(‘재배자 · 생산자벽돌 제조업자)의 수중에서 기능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인(‘포목상 · 목재상)의 수중에서(여기서 재료는 단순한 상품 자본이며,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이 아님) 기능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사실상 스미스는 여기서 유동 자본의 요소들을 열거할 때, 생산 자본에 관해서만 타당한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구별을 망각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상품 자본과 화폐 자본, 다시 말해, 유통 과정에 속하는 두 개의 자본 형태를 생산 자본에 대립시킨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그는 자각 없이 그렇게 한다.

 

마지막으로 주목되는 점은, 스미스가 유동 자본의 구성 부분을 열거할 때, 노동력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바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화폐 자본을 제외한다면, 스미스에게 유동 자본이란 상품 자본의 별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력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한 자본이 아니며 어떤 형태의 상품 자본도 아니다. 노동력은 결코 자본이 아니며, 노동자는 비록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 내놓는다 하더라도 자본가는 아니다. 노동력이 판매되어 생산 과정에 결합될 때, 곧 그것이 상품으로 유통되지 않게 된 뒤에야 비로소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이 된다. 곧 잉여 가치의 원천으로 가변 자본이 되며, 노동력 구매에 지출된 자본 가치의 회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이 된다.

 

스미스는 유동 자본과 상품 자본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유동 자본이라는 항목에 노동력을 끌어들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변 자본은 이 경우,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으로 구매하는 상품인 생활 용품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바로 이 형태 때문에 임금에 지출된 자본 가치가 유동 자본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생산 과정에 결합되는 것은 노동력이고 노동자 자신이지, 노동자의 생존을 유지하는 생활 용품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1권 제23), 사회적으로 볼 때 노동자의 개인적 소비로부터 자기 자신의 재생산도 사회적 자본의 재생산 과정에 속한다. 하지만 이것은 여기서 고찰되고 있는 개개의 자기 완결적인 생산 과정에 대해서는 타당하지 않다. 스미스가 고정 자본 항목에 포함하는 습득한 유용한 재능들’(309), 재능들이 임금 노동자의 것이며,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과 함께 그것들을 판매한다면, 오히려 유동 자본의 구성 부분을 이룬다.

 

스미스가 사회적 부의 전체를 (1) 직접적 소비 재원, (2) 고정 자본, (3) 유동 자본으로 분류하는 것은 그의 큰 오류다. 이에 따르면, 부는 (1) 기능하는 사회적 자본의 어떤 부분도 이루지 않는 소비 재원(비록 이 부분들이 항상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라도)(2) 자본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부의 일부분은 자본으로 기능하고, 다른 부분은 비자본 또는 소비 재원으로 기능한다. 여기서는 암컷과 수컷 중 하나가 되는 것이 포유동물에게 자연적 필연성인 것처럼, 고정 자본 또는 유동 자본 중 하나가 되는 것이 모든 자본의 피할 수 없는 필연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대립은 오직 생산 자본의 요소들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밖에도 고정 자본이나 유동 자본일 수 없는 형태로 있는 매우 큰 양의 자본, 곧 상품 자본과 화폐 자본이 존재한다.

 

개별 자본가적 생산자가 매매에 의하지 않고, 직접 현물 형태 그대로 생산 수단으로 다시 이용하는 생산물 부분을 제외한다면, 자본주의적 기초 위에서는 사회적 생산물의 총량이 상품 자본으로 시장에서 유통한다. 따라서 생산 자본의 고정적 요소와 유동적 요소는 물론, 소비 재원의 모든 요소까지도 상품 자본 중에서 조달된다는 점은 명백하다.

 

사실상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 위에서 생산 수단과 소비용품이 그것들이 나중에 생산 수단이나 소비용품으로 쓰일 운명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먼저 상품 자본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가리킬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력 자체도 상품 자본은 아닐지라도 상품으로 시장에 존재한다. 이 때문에, 스미스에게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혼란이 일어난다.

 

그는 말한다.

 

상품 자본과 화폐 자본이라는 유통 과정 형태를 소재적으로 구별하여 네 종류로 분류한 유동 자본 가운데, 식량, 원료, 완제품은 매년 또는 장단기에 걸쳐 유동 자본에서 분리되어 고정 자본으로 전환되거나, 직접 소비를 위한 재고로 귀속된다. 이러한 과정에 따라 모든 고정 자본은 근원적으로 유동 자본에서 발생하며, 그 존속을 위해 지속적인 유동 자본의 공급이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모든 기계 및 생산 도구는 본래 유동 자본에서 비롯된다. 이는 유동 자본이 해당 도구를 제작하는 원료를 제공하고, 제작에 투입되는 노동력의 생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계 및 생산 도구는 자체의 지속적인 수선과 유지를 위해서도 유동 자본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국부론(): 343-344].

 

생산자가 생산 수단으로 직접 재소비하는 부분을 제외할 때,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반적 명제가 성립한다. 모든 생산물은 그것이 생산 수단(생산 자본의 고정적 요소 또는 유동적 요소)으로 기능하든, 오직 개인적 소비의 수단으로 역할하든, 현물 형태나 유용성에 관계없이 상품으로 시장에 나타나며, 따라서 자본가에게는 그의 자본의 상품 형태인 상품 자본으로 유통한다. 모든 생산물은 상품으로 시장에 투입된다. 그러므로 생산적 소비와 개인적 소비의 모든 요소, 곧 모든 생산 수단과 소비 수단은 시장에서의 구매로부터 다시 조달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생산 자본의 고정적 요소와 유동적 요소, 그리고 모든 형태의 노동 수단과 노동 재료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자명한 이치이다. (다만, 생산 자본의 요소 중 생산물이 아닌 자연 자체로부터 주어지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계가 면화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구매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고정 자본이 본래 유동 자본에서 발생한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오류는 스미스가 유통 자본과 유동 자본(비고정 자본)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더욱이, 스미스는 스스로를 반박한다. 그 자신이 기계를 상품으로 보아 유동 자본의 넷째 항목 일부를 이룬다고 서술한다. 따라서 기계가 유동 자본에서 나온다는 것은, 기계가 기계로 기능하기 이전에 상품 자본으로 기능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이는 방적업자의 자본의 유동적 요소인 면화가 시장의 면화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이후 기계를 만드는 데 노동과 원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고정 자본을 유동 자본에서 도출시키는데, 이 경우, 다음의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기계 제조 과정 자체에도 노동 수단, 곧 고정 자본이 필요하다. 둘째, 원료 생산 역시 고정 자본(기계 등)을 필요로 한다.

 

생산 자본에는 항상 노동 수단이 포함되지만, 노동 재료는 항상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광산). 스미스 스스로도 곧 이어서 다음과 같이 인정한다.

 

토지, 광산, 어장의 경영에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모두가 필요하다. 이는 그가 원료 생산에 유동 자본뿐 아니라 고정 자본도 필요함을 인정한 대목이다. (여기에 새로운 오류가 나타난다.) 이어서 그는 이들의 생산물이 그들 자본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자본까지도 이윤과 함께 보충한다.’

 

[국부론(): 345].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견해이다. 해당 생산물들은 다른 모든 산업 부문을 위한 원료나 보조 재료 등을 공급할 뿐이다. 그들의 가치는 기타 사회적 자본의 가치를 보충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들 자본 자체의 가치(+잉여 가치)를 보충하는 데 그친다. 여기서 스미스에게 미친 중농주의자들의 영향이 다시 한번 명백하게 드러난다.

 

상품 자본 중 노동 수단으로만 쓰일 수 있는 생산물로 구성된 부분은 필연적으로 노동 수단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생산물은 쓸모없이 생산되어 판매되지 못한다. 이는 사회적 견지에서 타당하다. ,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 위에서, 이 생산물들은 상품이기를 멈추는 즉시 (미리 예상된 대로) 사회적 생산 자본의 고정 부분을 형성하는 현실적 요소로 전환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생산물의 현물 형태로부터 발생하는 구별이 존재한다.

 

예컨대, 방적 기계가 방적에 이용되지 않아 생산 요소(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생산 자본의 고정적 구성 부분)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용 가치를 상실한다. 그러나 방적 기계는 이동할 수 있으며, 생산된 나라에서 수출되어 타국에 직접 또는 간접적 교환(원료나 샴페인 등)으로부터 판매될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방적 기계는 생산국 내에서 상품 자본으로만 기능했을 뿐이며, 판매 이후에도 결코 고정 자본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토지와 결합되어 특정 장소에 고정되고, 따라서 해당 장소를 떠나서는 이용될 수 없는 생산물들(: 공장 건물, 철도, 교량, 터널, 부두, 토지 개량 등)은 물리적으로 있는 그대로 수출될 수 없으며, 이동할 수 없다. 이 물건들은 무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판매되자마자 그것들이 생산된 국가 내에서 고정 자본으로 기능해야 한다. 판매를 위해 투기적으로 공장을 건설하거나 토지를 개량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자에게 이 물건들은 자신의 상품 자본 형태, 곧 스미스에 따르면 유동 자본의 형태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물건들은 쓸모없지 않으려면 결국 자국 내에서 그 위치에 고정된 채 생산 과정에서 고정 자본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고정 자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물건들은 주택 등과 같이 소비 재원에 속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사회적 부(자본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의 한 요소일 뿐, 결코 사회적 자본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미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 물건들의 생산자는 그것들을 판매하여 이윤을 얻으므로 유동 자본이다! 반면, 그것들의 이용자, 곧 최종 구매자는 그것들을 생산 과정에서 사용하면서만 이용할 수 있으므로 고정 자본이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견해이다.)

 

예를 들어, 철도와 같은 물건의 소유권은 매일같이 이전될 수 있으며, 그 소유자는 이 권리를 외국에까지 판매하여 이윤을 얻을 수 있다. , 철도 자체는 수출될 수 없으나 그 소유권은 수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물건들은 소재지인 나라에서 유휴 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면 생산 자본의 고정적 구성 부분으로 기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장주 A가 자신의 공장을 공장주 B에게 판매하여 이윤을 얻을 수 있지만, 이 사실은 그 공장이 종전과 같이 고정 자본으로 기능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정한 장소에 고정되어 토지와 분리될 수 없는 노동 수단은, 그것을 생산한 자에게는 상품 자본으로 기능할 뿐 그의 고정 자본을 형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할지라도, 자국 내에서는 필연적으로 미리 예상된 대로 고정 자본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고정 자본이 필연적으로 부동적 물건들로 구성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선박이나 기관차는 운동으로만 작용하지만, 그것들의 생산자가 아닌 사용자에게는 고정 자본으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 생산 과정에 가장 현실적으로 고정되어 모든 생애를 마치는 물건들 가운데도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을 이루는 것이 있다. 예컨대, 기계 운행에 소비되는 석탄이나 공장 조명에 소비되는 가스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물건들이 유동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생산물과 함께 물리적으로 생산 과정을 이탈하여 상품으로 유통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의 가치가 전부 그것들의 도움으로 생산된 상품의 가치로 이전되어, 궁극적으로, 상품의 판매로부터 전부 보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용된 스미스의 언급 중 주목해야 할 구절은 다음과 같다.

 

유동 자본은 그것(기계 · 생산 도구 등)을 만드는 원료를 제공하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계를 유지한다.’

 

[국부론(): 344].

 

중농주의자들에게 임금으로 투하된 자본 부분은 정당하게도 최초 투자와 대립하는 해마다의 투자 항목에 포함되었다. 다른 한편, 그들은 차지 농업가가 사용하는 생산 자본의 구성 부분으로 노동력 자체가 아닌 농업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생활 수단(스미스가 언급한 사람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제시했다. 이는 그들의 독특한 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 중농주의자들에게 노동이 생산물에 추가하는 가치 부분은, 원료·노동 도구 등 불변 자본의 물질적 구성 부분이 추가하는 가치 부분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생활 수단의 가치(노동력 유지를 위해 필수적으로 소비되어야 할)와 동등할 따름이다. 따라서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을 구별하는 것은 중농주의자들의 이론 자체로부터 거부된다. 노동이 그 자체의 가격을 재생산하는 것 외에 잉여 가치를 생산한다면, 노동은 농업에서뿐 아니라 공업에서도 잉여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그러나 중농주의 체계에서는 노동이 오직 농업이라는 생산 부문에서만 잉여 가치를 생산하므로, 잉여 가치는 노동으로부터가 아닌 농업에서 자연의 특수한 활동(협조)으로부터 생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들은 농업 노동을 다른 종류의 노동과 구별하여 생산적 노동이라고 부른다.

 

스미스는 노동자들의 생활 수단을 고정 자본과 대립되는 유동 자본으로 규정하는 데,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1. 유동 자본과 유통 자본의 혼동: 스미스는 고정 자본에 대립하는 유동 자본을 유통 분야에 속하는 자본 형태인 유통 자본과 혼동하고 있다. 이 혼동은 스미스 이후의 경제학자들에게 비판 없이 계승되었다. 그는 상품 자본을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으로 간주하는데, 사회적 생산물이 상품 형태를 취하는 곳에서는 노동자나 비노동자의 생활 수단, 노동 재료, 노동 수단 그 자체가 모두 상품 자본으로부터 마련되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2. 중농주의적 견해의 침투: 스미스의 이론 전개 중 심오하고, 과학적인 부분과 모순됨에도, 그에게 중농주의적 견해가 침투해 있다.

 

투하 자본은 일반적으로 생산 자본으로 전환된다. , 그것은 생산 요소들(이것들 자체는 이전 노동의 생산물이다)의 모습으로 전환되며, 노동력 또한 그중에 포함된다. 오직 이 형태에서만 투하 자본은 생산 과정에서 기능할 수 있다. 우리가 자본의 가변 부분으로 전환된 노동력을 노동자의 생활 수단으로 대체할 경우, 이 생활 수단 자체는 가치 형성의 측면에서 생산 자본의 다른 요소들, 곧 원료나 역축의 생존 수단과 구별되지 않음이 명백해진다. 이 때문에,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의 선례를 따라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도 역축의 생존 수단과 노동자의 생활 수단을 동렬에 놓고 있다.

 

생활 수단은 스스로 자기의 가치를 증식시킬 수 없다. , 자기의 가치에 잉여 가치를 추가할 수 없는 것이다. 생활 수단의 가치는 생산 자본의 다른 요소들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다만 생산물의 가치에 다시 재현될 수 있을 따름이다. 생활 수단은 그 자체가 지닌 가치 이상을 생산물에 추가할 수 없다. 이는 원료나 반제품 등과 마찬가지로, 노동 수단으로 구성되는 고정 자본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 생활 수단은 (적어도 그 대가를 지불하는 자본가에게) 생산물 형성 과정에서 전부 소비되며, 그 가치가 전액 보충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 고정 자본의 보충은 점차적이며, 일부분씩 진행된다. 따라서 생산 자본 중 노동력(또는 노동자의 생활 수단)에 투하된 부분은, 노동 과정이나 가치 증식 과정의 측면에서 생산 자본의 다른 소재적 요소들과 구별되지 않으며, 오직 소재적으로만 구별된다. 이 자본 부분은 생산물을 형성하는 객체적 요소 중 고정 자본 범주에 속하는 부분에 대립하는 다른 부분(스미스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재료)과 함께 유동 자본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될 따름이다.

 

임금으로 지출되는 자본 부분이 생산 자본의 유동 자본에 속하며, 생산 자본의 고정적 구성 부분과 대립하여 생산물을 형성하는 객체적 요소(원료 등)와 공통된 유동적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은, 가치 증식 과정에서 가변 부분이 불변 부분에 대립하여 수행하는 기능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러한 사정은 다만 투하 자본 가치의 이 부분이 유통으로부터, 곧 생산물의 가치로부터 보충되고 갱신되며, 따라서 재생산되어야 하는 방식에만 관계된다. 노동력의 반복 구매는 유통 과정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나 노동력에 지출되는 가치는 생산 과정에서 비로소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닌 자본가를 위해) 일정한 불변량에서 가변량으로 전환되며, 오직 이 전환으로부터 투하 가치는 자본 가치, 곧 자기를 증식시키는 가치로 전환된다. 하지만 스미스처럼 노동력에 지출되는 가치가 아닌 노동자의 생활 수단에 지출되는 가치를 생산 자본의 유동적 구성 부분이라고 규정한다면, 가변 자본과 불변 자본의 구별에 대한 이해, 나아가,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 일반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노동력에 지출되는 자본 부분이 생산물 형성의 객체적 요소들에 투하되는 불변 자본과 대립되는 가변 자본이라는 규정은, 이 자본 부분이 회전의 측면에서 생산 자본의 유동 부분에 속한다는 규정 아래에 파묻힌다. 이러한 매몰은 노동력 대신 노동자의 생활 수단을 생산 자본의 요소로 간주하면서 완성된다. 노동력의 가치가 화폐로 투하되든, 또는 직접 생활 수단으로 투하되든 그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반 위에서는 예외일 수밖에 없다.

 

스미스가 노동력에 투하되는 자본 가치의 결정적 특성을 유동 자본으로 규정한 것(이것은 중농주의자들의 전제, 농업 노동만이 생산적이다.’에 의존하지 않는 중농주의적 규정이다), 그의 후계자들이 이 자본 부분을 가변 자본으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스미스 자신이 다른 곳에서 전개한 더욱 심오하고, 정확한 사상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나, 그의 이 오류는 널리 퍼졌다. 사실상 후대의 저술가들은 고정 자본에 대립하는 유동 자본이라는 점을 노동력에 지출되는 자본 부분의 결정적 특징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생활 수단에 지출된다는 점을 유동 자본의 본질적 특징으로 삼았다. 이러한 규정은 필연적으로 다음 학설과 결부되었다. 생활 필수품으로 구성되는 노동 기금(임금 기금)은 하나의 주어진 크기이며, 이는 한편으로, 사회적 생산물에 대한 노동자 몫의 한계를 물리적으로 제한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전부가 노동력 구입에 지출되어야 한다는 학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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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투하 자본의 총 회전: 회전 순환

 

생산 자본의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은 회전 방식과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이미 확인하였다. 아울러, 개별 기업 내 고정 자본의 구성 부분들 또한 그 수명과 재생산 시간의 차이로 인해 상이한 회전 시간을 보인다. (동일 기업 내 유동 자본 구성 부분의 회전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또는 외관상의 차이는 본 장 제6항에서 상세히 다룬다.)

 

1. 투하 자본의 총 회전은 각 구성 부분의 평균 회전으로 정의되며, 계산 방법은 후술한다. 회전 시간만을 문제 삼는다면 평균 도출은 간단하나,

 

2. 여기에는 단순한 양적 차이뿐 아니라 질적 차이 또한 있다.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유동 자본은 그 가치 전부를 생산물로 이전하며, 생산 과정을 중단 없이 진행시키기 위해 생산물 판매로부터 끊임없이 현물 보충이 이루어져야 한다. 반면, 고정 자본은 가치의 일부(마멸분)만을 생산물에 이전함에도 생산 과정에서 계속 기능한다. 따라서 고정 자본은 유동 자본만큼 자주 보충될 필요가 없으며, 길고 짧은 주기를 두고 현물로 보충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보충 필요성, 곧 재생산 시간은 고정 자본의 구성 부분별로 양적인 차이뿐 아니라 질적인 차이도 갖는다. , 내구연한이 긴 일부 고정 자본은 매년 또는 단기간에 걸쳐 현물로 보충되어 기존 자본에 첨가될 수도 있는 반면, 다른 속성의 고정 자본은 내구연한이 끝난 시점에 일시에 보충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정 자본의 각종 구성 부분들의 특이한 회전들을 동일한 회전 형태로 전환하여, 오직 양적인 차이(회전 길이)만을 가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질적 동일성은 연속적 생산 과정의 형태인 생산 순환(PP)을 기점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생산 과정(P)의 일부 요소는 끊임없이 현물 보충이 필요하나, 다른 요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폐 순환(MM´) 형태는 회전의 이러한 동일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가령, 10,000원 가치의 기계가 수명이 10년일 때, 그 가치의 1/101,000원이 매년 화폐로 재전환된다고 가정한다. 1,000원은 1년 동안 화폐 자본에서 생산 자본, 이어 상품 자본을 거쳐 다시 화폐 자본으로 복귀한다. 이는 화폐 순환(MM´) 형태로 고찰된 유동 자본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화폐 형태로 돌아온 것이며, 이 화폐 자본 1,000원이 연말에 다시 어떤 기계의 현물 형태로 재전환될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투하된 생산 자본의 총 회전 계산 시, 우리는 이 자본의 모든 요소를 화폐 형태로 고정시켜, 화폐 형태로 복귀하면 회전이 종결된 것으로 간주한다. 가치는 언제나 화폐로 투하되는 것으로 전제하며, 이는 가치의 화폐 형태가 계산 화폐 형태에 불과한 연속적 생산 과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평균치를 산출할 수 있다.

 

3. 투하된 생산 자본의 압도적 비중이 고정 자본(그 재생산 시간 및 회전 시간이 다년간의 순환으로 이루어짐)으로 구성된 경우에도, 유동 자본의 연간 반복 회전으로 인해 연간 회전한 자본 가치는 투하 자본의 총가치를 초과할 수 있다. 예시로, 고정 자본이 80,000원이고 재생산 시간이 10년이라면, 매년 8,000(1/10)이 화폐 형태로 복귀한다. , 고정 자본은 연간 회전의 1/10을 완수한다. 유동 자본은 20,000원이며 연 5회 회전한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총자본은 100,000원이다. 연간 회전한 고정 자본은 8,000원이고, 연간 회전한 유동 자본은 20,000× 5= 100,000원이다. 따라서 연간 총 회전한 자본은 108,000원으로, 투하 자본보다 8,000원 더 많다.

 

이는 자본이 1.08(=108,000/100,000) 회전했음을 의미한다.

 

4. 따라서 투하 자본의 가치 회전 시간은 투하 자본의 현실적인 재생산 시간 또는 그 구성 부분들의 현실적인 회전 시간과 구별된다. 가령, 4,000원의 자본이 연 5회 회전한다고 할 때, 회전한 자본은 4,000× 5= 20,000원이다. 그러나 매 회전의 종결 시점에 복귀하여 다시 투하되는 것은 최초에 투하된 4,000원의 자본뿐이다. 투하한 자본의 크기는 이 자본이 반복하여 자본으로 기능하는 회전 수로부터 변동되지 않는다(이때 잉여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위의 3번 예시의 전제에 의거, 연말에 자본가에게 복귀하는 것은 (a) 유동 자본 구성 부분에 다시 지출될 20,000원의 가치액과 (b) 마멸분으로, 투하 고정 자본 가치에서 분리된 8,000원이다. 이와 별도로, 생산 과정에는 종전과 동일한 고정 자본이 잔존하지만, 그 가치는 80,000원에서 72,000원으로 감소한다. 그러므로 투하 고정 자본이 수명을 다하여 생산물 또는 가치의 형성자로 기능할 수 없어 대체되어야 할 시점까지는 9년간의 생산 과정이 더 진행된다. 이처럼, 투하 자본 가치는 몇 개의 회전을 포함하는 하나의 순환을 완수하며, 이는 위의 경우, 10개의 연()회전으로 이루어진다. 이 순환은 사용된 고정 자본의 수명, 곧 재생산 시간 또는 회전 시간으로부터 규정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발전과 함께 사용되는 고정 자본의 가치량과 수명이 증대하면서, 산업의 생애 및 각 투자 부문에 투하된 산업 자본의 생애 또한 다년간(평균 10년 등)의 생애로 발전한다. 고정 자본의 발전은 한편으로 이 생애를 연장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발전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생산 수단의 끊임없는 변혁으로 인해 이 생애는 또한 단축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발전은 생산 수단의 변화를 수반하며, 생산 수단이 물리적 수명을 다하기 오래전에 도덕적 가치 감소의 결과로, 그것들을 끊임없이 대체해야 할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대공업의 가장 핵심적인 부문에서는 현재 이 생명 순환을 평균 10년으로 볼 수 있으나, 여기서 정확한 연수는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고정적 구성 부분으로 인해 자본이 얽매이는, 상호 관련된 회전들로 이루어진 다년간의 순환은 주기적 공황의 물질적 기초 중 하나를 형성한다. 이 순환 속에서 기업은 침체, 중위 호황, 지나친 활황, 공황의 순차적 시기들을 거친다. 물론 자본 투하 시기는 매우 상이하며 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공황은 항상 새로운 대규모 투자의 출발점을 형성한다. 따라서 사회 전체를 고찰할 때, 공황은 대체로 다음 회전 순환을 위한 새로운 물질적 기초를 제공한다.

 

5. 회전 계산 방식에 관해서는, 미국의 한 경제학자의 견해를 인용한다.

 

일부 생산 부문에서는 투하 자본 전체가 1년 동안 수차례 회전 또는 유통한다. 다른 부문에서는, 일부는 1년에 한 번 이상 회전하지만, 나머지 일부는 그만큼 빈번하게 회전하지 않는다. 자본가가 이윤 계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전체 자본이 그의 수중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평균 시간, 곧 한 번 회전하는 데 필요한 평균 시간이다.

 

특정 사업에 종사하는 이가 총자본의 1/210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건물과 기계에, 1/42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도구 등에, 그리고 나머지 1/41년에 2회 회전하는 임금과 원료에 지출한다고 가정한다. 그의 총자본이 50,000원이라고 할 경우, 그의 연간 지출은 다음과 같다.

 

연간 지출 표 ()

 

· 자본 구성 부분: 건물 및 기계

· 투하 자본 비율: 1/2

· 투하 자본 (): 25,000

· 갱신/회전 주기: 10년간

· 연간 지출 (): 25,000/10 = 2,500

 

· 자본 구성 부분: 도구 등

· 투하 자본 비율: 1/4

· 투하 자본 (): 12,500

· 갱신/회전 주기: 2년간

· 연간 지출 (): 12,500/2 = 6,250

 

· 자본 구성 부분: 임금 및 원료

· 투하 자본 비율: 1/4

· 투하 자본 (): 12,500

· 갱신/회전 주기: 1/2년간 (2)

· 연간 지출 (): 12,500 × 2 = 25,000

 

· 자본 구성 부분: 총계

· 투하 자본 비율: 1

· 투하 자본 (): 50,000

· 갱신/회전 주기: -

· 연간 지출 (): 33,750

 

1년간 지출은 33,750원이다.

 

따라서 그의 전체 자본이 1회전하는 평균 시간은 18개월(= 12개월 × 50,000/33,750)이다.

 

다른 사례로부터 확인한다. 총자본 50,000원 중 1/410년에, 다른 1/41년에 회전하며, 나머지(2/4)1년에 2회 회전한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연간 지출(회전액)은 다음과 같이 산출된다.

 

연간 지출 표 ()

 

· 자본 구성 부분: 1 부분

· 투하 자본 비율: 1/4

· 투하 자본 (): 12,500

· 갱신/회전 주기: 10년간

· 연간 지출 (): 12,500/10 = 1,250

 

· 자본 구성 부분: 2 부분

· 투하 자본 비율: 1/4

· 투하 자본 (): 12,500

· 갱신/회전 주기: 1년간

· 연간 지출 (): 12,500 × 1 = 12,500

 

· 자본 구성 부분: 3 부분

· 투하 자본 비율: 2/4

· 투하 자본 (): 25,000

· 갱신/회전 주기: 1/2년간 (2)

· 연간 지출 (): 25,000 × 2 = 50,000

 

· 자본 구성 부분: 총계

· 투하 자본 비율: 1

· 투하 자본 (): 50,000

· 갱신/회전 주기: -

· 연간 지출 (): 63,750

 

1년간 총 회전액은 63,750원이다.

 

[스크로프,정치경제학 원리, 포터 편집, 뉴욕 1841: 142, 143].

 

6. 자본의 각종 부분들의 회전에서 현실적 차이와 외관상 차이

 

위의 스크로프는 같은 곳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공장주, 농장주, 또는 상인이 임금 지불에 지출하는 자본은 가장 빨리 유통한다. 노동자들에게 매주 임금을 지급한다면, 그 돈은 외상 대금 상환이나 물건 구매에 사용될 것이므로, 이 자본은 아마 매주 1회 회전할 수 있다. 원료 또는 완성 재고품에 투하한 자본은 그만큼 빨리 유통하지 않는다. 원료 구입과 완성 재고품 판매 사이에 걸리는 시간에 따라, 동등한 신용 조건으로 매매한다고 전제할 때, 1년에 2회 또는 4회 회전할 수 있다. 도구와 기계에 투자한 자본은 더 느리게 유통한다. 이는 그것들이 평균적으로 아마도 5년 또는 10년에 겨우 1회 회전(소비되고 갱신됨)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몇 차례 안 되는 작업에서 소모되는 도구들도 다수 존재하지만, 건물(공장, 점포, 창고, 헛간 등)과 도로, 관개 시설 등에 지출된 자본은 거의 전혀 유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설비들 역시 앞서 언급된 것들과 마찬가지로, 생산에 기여하는 동안 완전히 소모되며, 생산자가 작업을 지속하려면 재생산되어야 한다. 다만, 다른 것들보다 느리게 소비되고, 재생산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것들에 투하된 자본은 아마도 20년 또는 50년 만에 회전할 것이다.’

 

[스크로프,정치경제학 원리: 141, 142].

 

스크로프는 여기서 지불 기간 및 신용 조건으로 인해 개별 자본가에게 발생하는 유동 자본 특정 부분의 흐름 차이와 자본의 성질로 말미암은 차이를 혼동한다. 그는 임금이 현금 판매 또는 외상 판매로부터 발생한 매주의 수입에서 매주 지불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첫째로, 지불 기간의 장단, 곧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신용을 제공해야 하는 시간의 장단 여하에 따라(임금 지불 기간이 1, 1개월, 3개월, 반년인지 등에 따라) 임금 자체에 대한 논의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한 다음 법칙이 적용된다.

 

지불 수단(그리고 일시에 투하되어야 할 화폐 자본)의 양은 지불 주기의 길이에 정비례한다.’

 

[자본1권 제33(b): 183].

 

둘째로, 매주 생산물에는 주간 노동이 부가하는 신규 가치 총량뿐 아니라 소비된 원료 및 보조 재료의 가치 또한 포함된다. 생산물에 포함된 이 가치는 유통 과정에서 화폐 형태로 전환되며, 생산 연속을 위해 동일한 생산 요소로 재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노동력과 원료 및 보조 재료 모두에 적용된다. 그러나 앞서 확인했듯(6, 2, A), 생산의 연속을 위해서는 생산 수단 재고가 필요하며, 이 재고는 생산 부문과 유동 자본 요소 구성 부분(: 석탄 대 면화)에 따라 상이한 규모를 가진다. 따라서 해당 재료들은 현물로 끊임없이 보충되어야 하나, 새로운 구매가 끊임없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매매의 반복 빈도는 준비된 재고의 크기와 소진 기간으로부터 규정된다.


노동력의 경우, 이러한 재고는 형성되지 않는다. 노동력에 지출된 자본 부분의 화폐로 재전환은 보조 재료 및 원료에 지출된 부분의 재전환과 나란히 진행된다. 다만, 화폐가 노동력으로 재전환되는 과정과 원료로 재전환되는 과정은 분리되어 진행된다. 이 두 구성 부분의 구매 및 지불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 노동력은 비교적 짧은 기간(: 매주)마다 구매되지만, 생산용 재고는 비교적 긴 기간을 두고 구매된다. 또한, 자본가는 생산용 재고 외에 완성 상품의 재고 또한 보유해야 한다. 판매 곤란을 제외하고서라도 일정한 양의 주문품이 생산되어야 한다고 가정할 경우, 주문품의 최종 부분이 생산되는 동안 이미 완성된 부분은 창고에서 대기한다. 더불어, 유동 자본 회전의 차이는 이 자본의 일부 요소가 다른 요소에 비해 더 오랫동안 생산 과정의 준비 단계(목재 건조 등)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스크로프가 여기서 제시하는 신용 제도는, 상업 자본과 마찬가지로, 개별 자본가에게 회전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사회적 규모에서 신용 제도가 회전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그것이 생산뿐 아니라 소비까지도 촉진시키는 경우에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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