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스: 『자본』 제Ⅲ권에 대한 보충 설명

 

 

『자본』 제Ⅲ권은 발간 이래 여러 해석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는 충분히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편집 과정에서 핵심 원칙은 마르크스 원문을 그대로 보존하여, 그가 도출한 독창적 성과를 본인의 문체로 가감 없이 제시하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필자의 개입은 불가피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였고, 보충 설명이 이루어지는 지점에서도 독자가 사실 관계를 명확히 판별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기술의 객관성을 확보하였다.

 

본고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필자가 재료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하여 완결된 저작으로 완성했어야 함을 지적한다. 이는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마르크스 원문을 훼손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자신의 임무로 상정하지 않았으며, 그와 같은 개작을 감행할 어떠한 권한도 부여받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같은 인물은 자신의 고유한 서술 방식에서 과학적 성과를 온전히 후세에 계승할 권리를 지닌다. 나아가 이처럼 위대한 인물의 유고에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필자에게 있어 신의를 저버리는 배신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한 시도는 실로 무익한 일이었을 것이다. 읽을 능력이 없거나 읽으려는 의사조차 없는 이들, 곧 제Ⅰ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노력보다 이미 오해하는 데 더 많은 노고를 쏟아부은 이들을 위해 내용을 부가하는 행위는 아무런 실익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진정한 이해를 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오직 원문 그 자체다. 이들에게 필자의 개작은 기껏해야 미발간 상태인 원안에 대한 주석 정도의 의미밖에 가질 수 없다. 결국 최초의 논쟁 과정에서 이미 원문은 원용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논의가 거듭될수록 원문 전체의 공표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귀결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각을 담아 급하게 집필한 탓에 곳곳에 누락이 존재하는 초고 상태의 저작에서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따라서 난점을 해소하고 본문에서 그 의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핵심 관점들을 더욱 부각하며, 1865년의 원안을 1895년의 정세에 부합하도록 미미하나 중요한 보완을 부가하는 작업에 필자가 개입하는 것은 중대한 가치를 지닌다. 실제로 현시점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된다고 사료되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Ⅰ. 가치 법칙과 이윤율

 


이 두 요소 사이의 외관상 모순을 해결하는 과제는 본문 발행 전후를 막론하고 격렬한 논쟁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는 일종의 경이로운 해법을 기대했으나, 정작 제시된 해결책이 명료하고 합리적이며 산문적인 평범함에 머물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반응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이미 서문에서 언급한 바 있는 로리아다. 그는 드디어 자기와 같은 ‘비미한 존재’라도 마르크스라는 견고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단숨에 붕괴시킬 수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를 마침내 포착했다고 확신하며, 격분 섞인 어조로 이것은 해결이 아닌 순전한 기만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자들이 가치를 논할 때 상정하는 것은 오직 교환 과정에서 실제로 실현되고 확인되는 가치뿐이라는 논리다.

 

‘상품이 가치대로 판매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판매될 공산조차 없는 가치를 연구하는 일은, 분별 있는 경제학자라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며 실질적으로 성립하지도 않는다. 상품이 노동량에 비례해 규정되는 가치대로 판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마르크스가 그 가치를 주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상품의 실제 판매 가치가 지출된 노동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고전파 경제학의 명제를 모순적으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개별 가격이 가치와 불일치하더라도 모든 상품의 총가격과 총가치, 곧 총상품량에 투하된 노동량은 일치한다는 마르크스 설명 또한 논리적 타당성을 결여한다. 본래 가치란 상품 간의 교환 비율을 의미하므로, 총가치라는 관념 자체가 형용 모순이자 불합리하며 무의미한 상정이기 때문이다.’

 

로리아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저작의 서두에서 두 상품의 교환이 성립하는 근거로 그것들이 오직 하나의 동등한 종류 및 크기의 요소, 곧 동일한 노동량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후 상품들이 포함된 노동량과는 판이한 비율로 교환된다고 단언하며, 자신의 이전 논리를 매우 엄숙하게 부정하는 모순에 직면한다.

 

‘이와 같은 ‘불합리’로의 완전한 귀착은 그 어떠한 사례보다도 처참한 ‘이론적 파산’이자, ‘학문적 자살’을 가장 화려하고 엄숙하게 집행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누오바 안톨로지아』, 1895년 2월 1일: 477-479).

 

로리아는 이 지점에서 크게 환호한다. 마르크스를 자신과 다름없는 평범한 사기꾼으로 격하시킨 자신의 판단이 정당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각에서 마르크스는 독자를 기만하며 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평범한 경제학 교수인 자신과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사기꾼의 대명사인 ‘둘카마라’로 묘사되는 로리아 자신은 자신의 직업적 술책에 능숙했던 반면, 서투른 북방인인 마르크스는 전개 과정마다 난처한 처지에 직면하여 궤변을 늘어놓다 결국 장엄한 ‘자살’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상품이 노동으로 규정된 가치대로 결코 판매되지 않으며 판매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고찰은 차후로 미루기로 한다. 여기에서는 우선 ‘가치란 한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비율에 불과하므로, 총가치라는 관념 자체가 이미 궤변이다.’는 로리아의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논리 구조에 따르면, 두 상품의 교환 비율인 가치는 전적으로 우연적 요소에 입각하여 규정되며 외적 조건에 따라 상품에 부과되어 매 순간 가변하는 성질을 띠게 된다. 1톤의 밀이 1그램의 금과 교환되든 1킬로그램의 금과 교환되든, 이는 밀이나 금 자체에 내재하는 조건과는 무관하며 오직 두 객체와 분리된 외적 사정에만 의존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내재적 조건이 교환 과정에서 규정력을 행사함에 따라 가치가 교환 행위와 무관한 자립적 실체로 현존할 수 있고, 나아가 상품들의 총가치를 논하는 것도 성립하겠으나, 로리아는 이러한 전제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단언한다. 요컨대 일정 비율로 교환되는 현상 자체가 곧 가치의 전부이며, 두 상품이 교환되는 비율 그 자체가 가치일 뿐이다. 가치는 가격과 동일하므로, 각 상품은 시장에서 실현되는 가격만큼의 가치를 지닐 뿐이다. 결국 가격을 규정하는 핵심 기제는 수요와 공급이며, 이 범위를 초과하는 근원적 원리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공허한 논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지점에는 결정적인 논리적 결함이 존재한다. 규정적 상태에서 수요와 공급은 상호 일치함을 전제로 한다. 전 세계의 모든 상품을 두 범주로 양분하여 각각을 수요 부문과 공급 부문이라 명명하고, 각 부문이 100만 원의 가격을 체현한다고 상정하자. 이 경우 전체 상품의 가격 또는 가치 총액은 200만 원이 된다.

 

하지만 로리아는 이러한 총계 산출이 무의미하며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두 부문의 합계가 가격 측면에서는 200만 원을 나타낼지 모르나, 가치의 수준에서는 두 부문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논리다. 가격의 연산이 1+1=2라면, 적어도 상품 전체가 문제로 되는 한, 상품 전체를 포괄하는 가치의 연산은 1+1=0이 된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로리아의 논거에 따르면, 한 부문이 다른 부문의 상품에 대해 100만 원을 지불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상황에서 각 부문의 상품 가치는 오직 100만 원으로 한정된다. 두 부문의 상품 전체를 제3자의 수중에 귀속시킨다면, 해당 상품들은 제3자의 내부에서 더 이상 교환될 필요가 없으므로,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제3자는 어떠한 가치도 보유하지 못하며, 궁극적으로 그 누구도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렇듯 가치 개념을 형체도 없이 파괴해 버린 남방인 로리아의 수완은 탄복할 만하며, 이는 가히 속류 경제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브라운이 주재한 『사회 입법 기록』 제7권 제4호 (베를린, 1894년)에 수록된 좀바르트 (1894)의 마르크스 체계 개관은 매우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독일의 학자가 마르크스의 저작(을 통해) 저자의 실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체계에 대한 비판이 단순한 반박이 아닌 이론적 전개에 있음을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그는 비판의 영역을 ‘정치적 야심가들의 몫으로 남겨둠에 따라’ 학술적 태도를 견지한다.

 

좀바르트도 역시 현재 논의 중인 문제를 다루며 마르크스 체계 내 가치의 의의를 고찰한다. 그는 가치가 자본주의적 상품의 교환 관계라는 현상적 수준이나 생산 담당자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가치는 실증적 사실이라기보다 관념적 또는 논리적 사실에 가깝다. 마르크스에게 물질적 규정성으로서의 가치 개념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이 경제 생활의 기초를 이룬다는 사실의 경제적 표현이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서 모든 경제 과정을 궁극적으로 규제하는 가치 법칙의 일반적 내용은, 상품 가치가 노동 생산성이라는 결정적 요소에 따라 관철되는 특수한 역사적 형태라는 점에 있다.

 

생산의 자본주의적 형태에서 가치 법칙의 의의를 이와 같이 파악하는 것은 결코 오류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지나치게 일반적이며, 따라서 더욱 치밀하고 정교한 정식화가 요구된다. 단순히 보편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파악 방식으로는 가치 법칙이 사회의 경제 발전 단계에 대해 가지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의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브라운이 편집하는 『사회 정책 중앙 신문』 제22호 (1895년 2월 25일)에는 『자본』 제Ⅲ권에 관한 슈미트 (1895)의 우수한 논문이 실려 있다. 이 논문에서 특히 주목할 지점은 마르크스가 잉여 가치에서 평균 이윤을 도출하여, 평균 이윤율의 결정 방식과 그 수치가 왜 특정 수준 (예컨대 50%나 100%가 아닌 10%나 15%)을 형성하는가라는 문제에 최초로 해답을 제시했음을 증명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전의 경제학자들이 제기조차 하지 못했던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대답했음을 입증한다. 산업 자본가가 선차적으로 취득하는 잉여 가치가 이윤과 지대의 유일한 원천임을 파악하고 있다면, 이 문제는 필연적으로 해결된다. 따라서 슈미트 논문의 해당 대목은 사실상 로리아와 같은 경제학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진실을 외면하려는 이들의 눈을 뜨게 하려는 노력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그러하다.

 

슈미트 역시 가치 법칙에 관해 형식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가치 법칙을 현실적 교환 과정을 규명하기 위한 과학적 가설로 규정하며, 이것이 외관상 상충하는 경쟁 체계하의 가격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이론적 출발점임을 실증하고자 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가치 법칙 배제 시 자본주의 경제 기제에 관한 어떠한 이론적 안목도 난망해진다. 실제로 필자가 3월 12일 답장을 보낸 슈미트는 1895년 3월 1일 자 서신에서, 생산의 자본주의적 형태에서 가치 법칙을 ‘이론적으로는 필요하나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허구’라고 언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파악은 부당하다. 가치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있어 단순한 가정이나 허구적 장치를 상회하는, 훨씬 더 본질적이고 명확한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좀바르트와 슈미트, 그리고 이들의 관점에 부합하는 속류 경제학자 로리아는 다음의 본질적 지점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곧 우리가 현재 고찰하는 대상은 단순한 논리적 전개 과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자 그 과정이 사고 속에 논리적으로 체현하고 재조직하는 방식이며, 나아가 해당 과정 내부에 존재하는 유기적 연관성들에 대한 엄밀한 논리적 추적이라는 사실이다.

 

결정적인 단락은 제Ⅲ권 제10장 217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 근원은 상품이 단순 상품으로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생산물로서 교환된다는 점에 있다. 자본은 사회적 잉여 가치 총량으로부터 각 자본의 크기에 비례하는 일정한 몫을 요구하며, 이에 따라 동일한 크기의 자본에는 동일한 몫의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가 관철된다.’

 

단순 상품과 자본의 생산물로서의 상품을 구별하기 위해,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 수단을 직접 소유하고 동일한 노동 시간과 강도로 노동하며 상품을 교환한다고 전제한다. 이 경우 두 노동자는 일일 노동으로 생산물에 동일한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지만, 각 생산물의 총가치는 이미 투하된 생산 수단의 가치량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생산 수단의 가치는 자본주의적 경제 범주의 불변 자본에 대응하며, 새로 부가된 가치 중 노동자의 생활 수단에 해당하는 부분은 가변 자본에, 그 나머지 부분은 잉여 가치에 대응한다. 다만 이 전제 하에서는 잉여 가치 역시 노동자 자신의 몫으로 귀속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동자는 상품 교환에 따라 지출된 노동량에 비례하는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며, 투하된 생산 수단의 가치 또한 결손 없이 회수한다.

 

두 노동자는 투입한 ‘불변’ 자본의 가치 부분을 보충하고 남은 잉여분을 매개로 동등한 가치를 획득한다. 이때 잉여 가치량과 생산 수단 가치 사이의 비율, 곧 자본주의적 이윤율에 대응하는 수치는 두 부문 간에 격차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등은 교환 과정에서 각자의 생산 수단 가치를 온전히 회수한다는 사실로 인해 완전히 상쇄되므로,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상품이 가치 또는 그에 근접한 수준에서 교환되는 단계는, 일정 수준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전제로 하는 생산 가격에 따른 교환보다 훨씬 초기적 발전 단계에 해당한다. 가격과 그 운동을 규제하는 가치 법칙의 구체적 기제를 차치하더라도, 가치가 이론적·역사적으로 생산 가격에 선행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이러한 논리는 생산 수단을 직접 소유한 노동자의 경제 형태에 적용되는데, 이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기 노동에 기초한 소토지 소유 농민과 수공업자에게서 일관되게 확인된다. 이는 생산물의 상품화가 동일 공동체 내부가 아닌 서로 다른 공동체 간의 교환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기존의 견해와도 합치한다. 나아가 이 원리는 원시 상태뿐만 아니라 노예제와 농노제에 기반한 후기 사회, 그리고 길드 체제의 수공업 생산 방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각 생산 부문에 투하된 생산 수단은 부문 간 이전이 수월하지 않기에, 이들 부문 간의 관계는 일정 수준까지 서로 다른 국가 간의 관계 또는 결합체 사이의 교환 관계와 상응하는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제Ⅲ권 제10장: 219-220).

 

마르크스가 『자본』 제Ⅲ권을 재검토하였다면 본 단락에 대해 분명 더욱 상세한 논의를 전개하였을 것이다. 현재의 서술은 해당 문제의 핵심적인 윤곽만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이 단락이 내포한 논리적 함의를 보다 정밀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초기 사회의 생산물은 생산자 자신에게 소비되었으며, 생산자들은 자연 발생적인 본원적 공동체 내에 결속되어 있었다. 잉여 생산물이 외부인과 교환을 매개로 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그보다 후대의 사건이다. 이러한 교환은 초기에는 서로 다른 종족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하였으나, 점차 공동체 내부로 침투하면서 공동체가 개별 가족 집단으로 해체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공동체 해체 이후에도 교환의 주체인 가구주는 여전히 노동 농민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한다. 이들은 가계 유지에 필요한 필수품의 대부분을 자신의 농토에서 가족 노동에 의거해 자급하며, 극히 일부분만을 잉여 생산물과의 교환에 따라 외부에서 수급한다. 당시의 가족 단위는 농업과 축산에 종사할 뿐 아니라, 원료를 최종 완성재로 가공하는 가내 공업까지 병행하며 포괄적인 생산 영역을 점유한다. 곡물을 제분하여 빵을 굽는 공정부터 아마와 양모의 방적·염색·직조, 가죽 가공, 가옥의 축조 및 수리, 각종 도구와 기구 제작, 나아가 철공과 금속 세공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는 매우 넓다. 결과적으로 가족 또는 가족 집단은 생산과 소비가 결합한 기초적인 자급자족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19세기 초까지 독일의 농가에서 교환이나 매매를 거쳐 확보해야 했던 품목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는 주로 농민이 제조 공정을 숙지하고 있음에도 적절한 원료가 없거나,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전문 수공업자에게 구매하는 것이 품질과 비용 측면에서 경제적이었던 수공업 제품들에 국한되었다.

 

따라서 중세 농민은 자신이 교환으로 획득하는 물품의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 시간을 매우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마을의 대장장이나 수레 제조공은 농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작업을 수행하였으며, 재봉사와 구두 제조공 역시 농가를 직접 방문하여 가문 소유의 원료로 의류와 신발을 제작하였다. 이처럼 생산 과정이 공개적으로 수행되는 조건에서 노동 시간은 교환 가치를 규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기준이 된다.

 

농민과 판매자 모두 스스로가 노동자였으며, 교환되는 물품은 곧 자신의 노동 생산물이었다. 이들이 물품 생산을 위해 투입한 요소는 오직 노동뿐이다. 도구를 유지·관리하거나 원료를 생산 및 가공하는 과정 전반에서 자신의 노동력 이외에는 어떠한 자본적 지출도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생산물을 타인의 생산물과 교환할 때, 각 물품에 투여된 노동 시간에 비례하여 등가 교환을 수행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해당 생산물에 투여된 노동 시간은 교환 가치의 양적 규정을 위한 유일하고도 가장 적합한 척도였다. 그 이외의 척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농민과 수공업자가 자신의 10시간 노동 생산물을 타인의 1시간 노동 생산물과 교환하는 비합리적 선택을 감수할 가망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소농민적 자연 경제 시기 전반에 걸쳐 상품 교환은 각 상품에 체현된 노동량에 규정되는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제 형태에 화폐가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마르크스가 정식화한 가치 법칙에 부합하는 준거는 더욱 명확해진다. 비록 고리대 자본의 간섭이나 재정적 수탈로 인해 가격이 가치에 평균적으로 수렴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이탈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가치 법칙의 규정력 자체는 더욱 공고해졌다.

 

농민과 도시 수공업자 간의 생산물 교환 역시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초기 단계의 교환은 농민이 직접 팔고 사는 도시 장날에 상인의 매개 없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생산 주체들은 서로의 노동 조건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수공업자 또한 채마밭과 과수원을 가꾸거나 때때로 일정 규모의 경작지 및 가축을 보유하는 등 여전히 농민적 요소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세의 생산자들은 적어도 매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물품에 관한 한, 원료와 보조 재료 및 투여된 노동 시간 등 상대방의 생산비를 상당히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량이 생산물 교환의 척도로서 기능할 때, 곡물이나 가축처럼 생산물 생산 기간이 장기적이고 노동 중단이 빈번하며 성과마저 불확실한 품목의 투입 노동량을 산정하는 일은 지극히 난해하다. 비록 그것이 간접적이고 상대적인 방식일지라도, 수치적 계산에 익숙하지 않은 초기 생산자들에게 이는 암중모색의 긴 과정이 강요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오류의 누적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객관적 기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신이 투하한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은 계산의 방향을 끊임없이 소거하고 정립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교환 품목의 가짓수가 제한적이고 생산 방식이 수 세기에 걸쳐 정체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노동량에 기초한 교환 체계가 안정적으로 확립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생산물의 상대적 가치가 단기간에 정밀하게 확정되었음은, 생산 주기가 길어 가치 산정이 어려운 가축이 초기 화폐 상품으로 널리 통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가축이 보편적 화폐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다수 종족 사이에서 가축과 여타 상품 간의 교환 비율, 곧 가치가 이미 객관적으로 공인되고 확정되어 있어야만 했다. 가축 사육자와 그 교환 상대들은 자신이 투여한 노동 시간에 상응하는 등가를 보상받지 못할 경우 교환을 거부할 만큼 경제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었다. 상품 생산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을수록, 생산자들은 자신이 지출한 노동 시간의 완전한 보전을 실현하기 위해 매우 집요하고 장구한 흥정 과정을 거치며 가치 확정의 정밀도를 유지한다.

 

노동 시간에 기초한 가치 결정에서 출발하여 상품 생산의 전 과정과 가치 법칙의 제반 양태가 관철되는 연관은 『자본』 제Ⅰ권 제1편의 분석과 같이 전개된다. 따라서 특히 노동만이 가치를 형성한다는 조건이 이 과정에서 명확히 도출된다. 이러한 조건들은 당사자들의 의식 여부와 상관없이 객관적 필연성으로 작용하며, 통상적 실천 속에 매개되어 있기에 엄밀한 이론적 규명에 의거해서만 비로소 포착될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가 밝힌 바와 같이 상품 생산의 본성에서 기인하여 자연 법칙과도 같은 강제력을 지니고 관철된다.

 

금속 화폐로의 이행은 화폐 형태 발달에서 가장 결정적인 도약을 의미하나, 이로 인해 노동 시간에 기초한 가치 결정 원리는 상품 교환의 표면에서 은폐된다. 거래되는 상품의 종류가 다변화되고 원거리 무역에 수반하여 유입되는 품목이 증가함에 따라, 개별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 시간을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난망해지면서 화폐는 더욱 확고한 가치 척도로 기능하게 된다. 초기 화폐의 상당 부분이 외부에서 유입되었고, 국내에서 귀금속이 채취되는 경우라도 개별 생산자가 그 채취에 소요된 노동량을 산출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또한 가치를 화폐 단위로 계산하는 관습이 고착됨에 따라, 노동이 지니는 가치 척도적 속성에 대한 의식은 희미해졌으며, 결과적으로 일반적 관념 속에서 화폐는 절대적 가치를 체현하는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요컨대 마르크스의 가치 법칙은 단순 상품 생산의 전 시기에 걸쳐, 곧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의 출현으로 인해 단순 상품 생산이 변형되기 전까지, 어떤 경제 법칙이 타당한 만큼이나 일반적인 타당성을 지닌다. 이 시기 동안 가격은 가치 법칙에 규정되는 가치를 지향하며, 이를 중심으로 운동한다. 따라서 단순 상품 생산이 온전히 발달할수록, 외적인 격렬한 동요가 없는 비교적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균 가격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편차만을 남긴 채 가치와 일치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가치 법칙은 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교환의 시초부터 서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경제적 타당성을 지닌다. 그런데 상품 교환은 상품 교환의 역사가 문자 기록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에서는 적어도 기원전 3,500년, 바빌론에서는 기원전 4,000년 내지 6,000년까지 소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치 법칙은 대략 5,000년에서 7,000년 동안 경제 체제를 지배해 온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직접적인 타당성을 유지해 온 가치 개념을 두고, 상품이 가치대로 판매된 적도 없고 판매될 수도 없기에 건전한 상식을 가진 경제학자라면 누구도 가치를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 강변하는 로리아의 주장에는 실로 경탄을 금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우리는 상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단순 상품 생산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으로의 전환 과정을 고찰함에 있어 상인의 개입을 필수적으로 전제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상인은 모든 사회적 조건이 세습을 토대로 고착된 것처럼 안정적이었던 단순 상품 생산 사회에서 유일하게 혁명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당시 농민은 경작지뿐만 아니라 자유 소유농이나 예속적 소작농 또는 농노라는 사회적 신분 자체를 세습적으로 이어받았으며, 도시 수공업자 역시 자신의 생업과 길드 특권을 양도할 수 없는 자산으로 물려받았다.

 

또한 각 생산자는 자신에게 할당된 단골과 판매 시장은 물론, 세습적 가업 수행을 위해 어릴 때부터 체득한 숙련된 기예까지 대물림하며 정체된 질서를 유지하였다. 상인은 이러한 폐쇄적 사회에 출현하여 체제를 변혁하기 시작하였으나, 그는 의식적인 혁명가가 아니라 그 반대로 해당 사회의 피와 살로서, 곧 구조 내부에 깊이 뿌리박힌 유기적 구성원으로서 등장하였다.

 

중세의 상인은 결코 고립된 개인주의자가 아니었으며, 당대의 여타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농촌 사회를 지배하던 원시 공산주의 마르크 공동체에서 각 농민은 초기에는 균등한 질과 크기의 경작지 지분을 점유하였고, 마르크 공유지에 대해서도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였다. 이후 마르크 공동체가 폐쇄적 구조로 고착되어 새로운 경작지 지분의 분배가 중단되자, 상속 등에 따른 경작지 지분의 세분화가 진행되었으며 이에 대응하여 공유지에 대한 권리 또한 비례적으로 분할되었다. 그럼에도 완전한 경작지 지분은 여전히 하나의 기본 단위로 기능하였고, 이에 따라 분할된 1/2, 1/4, 1/8의 경작지 지분에는 그에 상응하는 공유지 용익권이 부여되었다.

 

이후 등장한 모든 생산 공동체는 이러한 마르크 공동체의 조직 원리를 전형으로 삼았다. 특히 도시 길드는 마르크 공동체의 구성 원리를 토지가 아닌 수공업적 특권이라는 영역에 대입하여 구현한 것에 불과하였다. 조직 전체가 확보한 특권과 용익권에 모든 구성원이 균등하게 참여하는 운영 원리는 길드 조직의 핵심이었으며, 이는 1527년 엘베르펠트와 바르멘의 ‘면사 조합’ 특허장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툰, 1879: 164 이하). 이러한 원리는 광업 조합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각 광산 지분은 동등한 자격을 가졌으며 그에 따른 권리와 의무 역시 해당 공동체의 경작지 배분 방식과 동일한 논리로 분할되었다.

 

해외 무역을 주도한 상인 조합의 경우도 이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였다. 알렉산드리아나 콘스탄티노플 등지에 거류하며 독자적인 ‘폰다코’ (주택·여관·창고·전시장·판매장을 겸한 중앙 사무소)를 운영했던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각 ‘국민’은 외부 경쟁자와 고객에게 폐쇄적인 완전한 상인 조합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내부 협약으로 정한 가격에 따라 상품을 판매하였고, 공적 검사를 거쳐 보증·검인된 물품만을 취급하였으며, 현지 생산물에 대한 매입 가격 또한 공동으로 결정하였다. 노르웨이 베르겐의 ‘독일 다리’에 근거지를 둔 한자 동맹 상인들은 물론, 그들의 경쟁 상대였던 네덜란드와 영국 상인 역시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였다. 협정 가격보다 낮게 판매하거나 높게 매입하는 구성원이 발생할 경우, 조합 자체의 직접적인 처벌은 차치하더라도 즉각적인 집단적 거래 거부 (보이코트)가 단행되었으며 이는 곧 해당 상인의 무조건적인 파멸을 의미하였다.

 

나아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더욱 긴밀한 형태의 조합들도 출현하였다. 14-15세기 소아시아의 포캐아와 키오스섬의 명반석 광산을 장기간 지배했던 제노바 ‘마오나’가 대표적이며, 14세기 말부터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사업을 전개하며 거류지를 건설한 거대 조직인 라벤스베르크 상사 또한 이에 해당한다. 또한 66,000두카트의 자본과 선박 세 척을 동원하여 1505-1506년 포르투갈의 인도 원정에 참가하여 150%-175%의 순이익을 거둔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 벨저, 페린, 회히슈테터 등과 뉘른베르크의 히르쉬포겔 등 독일 회사들 (하이트, 『중세의 근동 무역사』, 1879: 524), 그리고 루터가 격렬히 비난했던 일련의 ‘독점’ 회사들 역시 이러한 폐쇄적이고 강력한 공동체적 유대를 바탕으로 운영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이윤 및 이윤율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상인들의 활동은 모든 참여자의 이윤율을 균등화하려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 근동의 베네치아 상인이나 북방의 한자 동맹 상인들은 누구나 자기 이웃 상인과 동일한 가격으로 상품을 매입하였고, 수송비 역시 동등하게 부담하였다. 또한 상품 판매 시에도 동일 ‘국민’에 속한 다른 상인들과 같은 가격을 적용받았으며, 귀로에 확보하는 화물 또한 동일한 조건으로 구매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윤율은 모든 이에게 균등하게 보장되었다.

 

거대 상사에서 이윤이 출자된 자본 지분에 비례하여 분배되는 것은, 이는 마르크 공유지에서의 권리 행사가 공인된 경작지 지분에 비례하고 광산 이윤의 배분이 광산 지분에 비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명한 논리다. 따라서 가장 발달한 형태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최종 결과물 중 하나인 평균 이윤율은, 그 가장 단순한 형태에 있어서는 자본의 역사적 출발점 중 하나로 확인된다. 나아가 이는 원시 공산주의로부터 기원하는 마르크 공동체의 직접적 결과물로서 그 성격을 드러낸다.

 

이 최초의 이윤율은 필연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었다. 사업은 만연한 해적 행위뿐 아니라 경쟁국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자행하는 온갖 강압적 수단으로 인해 극히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또한 판매 시장과 조건이 외국 통치자의 특허에 의거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특허는 수시로 파기되거나 취소되기 일쑤였다. 따라서 이윤 항목에는 필연적으로 높은 보험료가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자본의 회전은 완만하고 거래 체결 과정은 난해하였으나, 상업은 상황이 가장 우호적인 시기에 비록 그 지속 기간이 대개 짧았을지라도 독점 이윤을 수반하는 독점적 사업의 성격을 띠었다. 이윤율이 평균적으로 매우 높았다는 사실은 당시 통용되던 매우 높은 수준의 이자율로 증명되는데, 이 이자율은 예외 없이 상업 이윤의 일반적 수준보다는 낮은 지점에서 형성되었다.

 

조합적 공조에 기반하여 획득되는 이 이윤율은 모든 참여자에게 균등하게 분배되나, 오직 해당 조합 또는 ‘국민’ 내에서만 유효한 구속력를 가졌다. 이에 따라 베네치아, 제노바, 한자 동맹, 네덜란드 상인 등은 각 국민별로 독립적인 이윤율을 형성했으며, 초기에는 개별 판매 시장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특수한 이윤율 체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각종 조합별 이윤율의 균등화는 경쟁을 매개로 달성되었다. 초기에는 동일한 국민 내에서 서로 다른 시장 간의 이윤율이 먼저 균등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가령 알렉산드리아가 키프로스, 콘스탄티노플, 트레비존드보다 베네치아의 상품에 대해 높은 이윤율을 보장한다면, 베네치아 상인들은 알렉산드리아에 더 많은 자본을 투하하는 대신 기타 시장에서의 상업에서는 자본을 철수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후 동일한 시장에 동일하거나 동종의 상품을 수출하는 각 국민 간에도 이윤율이 점차 균등화되는 과정이 뒤따랐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특정 국민들은 몰락하여 시장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과정은 정치적 격변들로 인해 끊임없이 중단되었다. 일례로 근동 (레반트) 무역 전체는 몽골과 터키 세력의 침략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492년 이후 전개된 지리상·상업상의 대항해는 이러한 쇠퇴를 더욱 촉진하여 영구적인 상태로 고착시켰다.

 

이후 일어난 판매 영역의 급격한 확장과 이와 관련된 무역로의 변혁은 초기 상업 경영 방식에 본질적인 변화를 야기하지 않았다. 인도 및 아메리카와의 무역은 여전히 조합 체제 아래 수행되었으나, 이제 그 배후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국가적 위세가 자리 잡았다. 근동 무역의 카탈로니아 상인들과 달리 아메리카 무역에서는 통합된 스페인이라는 거대 국가가 등장했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그 뒤를 이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조차 전성기의 상업국이었던 베네치아와 대등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국력을 보유했다. 이러한 국가적 비호는 16-17세기 ‘모험 상인’들에게 강력한 보호막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무장력을 수단으로 조합원을 보호하던 기존 조합의 역할은 점점 더 불필요해진 반면 그 유지 비용은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개인의 수중에 축적된 부가 급격히 증대함에 따라, 개별 상인은 이전 시기 조합 전체가 분담하던 규모의 자본을 독자적으로 출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기존의 조합이 존속하는 경우에도 이는 대체로 무장 상사의 형태로 전환되었으며, 본국의 보호와 주권 아래 새롭게 개척된 영토 전체를 정복하고 독점적으로 수탈하는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새로운 지역의 식민지 건설이 점차 국가 주도로 이루어짐에 따라, 조합 무역의 위상은 개별 상인의 활동 배후로 물러나 점차 자취를 감추었으며, 이에 따라 이윤율의 균등화는 결국 전적인 경쟁의 결과로서 관철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의 고찰은 오직 상업 자본의 이윤율에만 국한되었는데, 이는 당대 경제 구조에서 상업 자본과 고리대 자본만이 지배적이었으며 산업 자본은 태동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생산은 여전히 주로 자기 소유의 생산 수단을 보유한 개별 노동자들의 수중에 있었으므로, 이들의 노동이 자본을 위한 직접적인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생산물 일부가 제3자에게 무상으로 귀속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이는 자본의 증식이 아닌 봉건 영주에 대한 공납 형태를 띠었을 뿐이다. 따라서 상업 자본은 초기 단계에서 적어도 국내 생산물을 매입하는 해외 구매자나 외국 생산물을 구매하는 국내 구매자 사이의 유통 차익에 기반하여 이윤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말기, 특히 이탈리아에서 근동 무역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국면은 전환되었다. 격화되는 외국의 경쟁과 판로 확보의 난항 속에서, 수출 상품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들은 비로소 자신의 생산물을 수출 상인에게 가치 이하의 가격으로 매각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개별 생산자 간의 국내 소매 거래에서는 상품이 평균적으로 그 가치에 따라 판매되나, 세계 무역에서는 상술한 제반 사정으로 인해 대체로 가치와 이탈한 가격 형성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이는 세계 무역과 도매 거래에서는 생산 가격이 지배적인 규정력을 행사하는 반면, 도시의 소매 거래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이윤율이 가격 형성을 주도하는 오늘날의 구조와는 정반대의 구도를 보여준다. 일례로 쇠고기 유통 과정을 살펴보면, 런던의 도매상에서 최종 실수요자에게 유통되는 과정의 가격 마진이 시카고에서 런던의 도매상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가격 인상분 (운임 포함)보다 더욱 크게 나타난다.

 

가격 형성의 이러한 변혁을 추동한 핵심 동력은 산업 자본이었다. 이미 중세 시기에 해운업, 광업, 섬유 공업 분야에서는 산업 자본의 씨앗이 발아되고 있었다. 이탈리아와 한자 동맹의 해양국들이 운영하던 대규모의 해운업은 임금 노동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였으며, 그 당시의 갤리선 또한 임금 노동자나 노예의 노동력 없이는 운용이 불가하였다. 비록 이들의 임금 관계가 이윤 배분형 조합 형태로 인해 일시적으로 은폐되었을지라도, 실질적인 고용 구조는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초기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합이었던 광산 회사들 역시 점차 임금 노동에 기반한 채광 중심의 주식 회사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섬유 공업 분야에서는 상인이 소규모 직물 장인들에게 원료인 실을 공급하고 고정 임금을 지불하며 자신의 계산 아래 상품을 가공하게 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상인은 단순한 중개인에서 벗어나 이른바 ‘선대 상인’으로 변모하였으며, 생산자들을 자신의 자본에 직접적으로 복속시키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잉여 가치 형성의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게 된다. 광산 회사는 배타적인 독점 단체로서의 특수성을 지니기에 논의에서 제외하더라도, 해운업의 경우 이윤이 최소한 통상적인 육상 운송 이윤에 선박 보험료와 마멸 비용 등을 합산한 수준과 일치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섬유업 분야의 선대 상인은 어떠했는가. 그는 자본가의 계산에 의거하여 직접 생산된 상품을, 곧 동종 상품과 경쟁할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 지점에서 상업 자본이 생산 과정에 직접 개입하며 발생하는 가치 증식의 기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상업 자본의 이윤율은 이미 주어진 사실로서 존재하였으며, 적어도 각 지방에서는 일정한 평균치로 이미 균등화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상인이 선대업자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되었는가. 이유는 명백하다. 판매 가격을 타 상인과 동등하게 유지하면서도 더 큰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인은 소규모 장인을 자신에게 예속함으로 인해, 생산자가 단순히 완성품만을 판매해야 한다는 전통적 생산의 제한을 타파하였다. 상인은 노동력을 구매하였고, 이 노동력은 당분간 생산 도구는 소유했으나 이미 원료 소유권은 상실한 상태였다. 따라서 선대 상인은 직조공에게 규칙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대가로 그의 임금을 인하하여, 수행된 노동 시간의 일부를 지불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기존의 상업 이윤에 더해 잉여 가치까지 점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상인은 실 등을 구매하여 직물이 완성될 때까지 직조공의 수중에 맡겨두어야 하므로, 추가 자본을 투하해야 한다. 이전에는 상인은 이 직물을 매입하는 시점에 비로소 그 가격 전체를 지불하면 되었으나, 선대 상인은 그 이전 단계에서 이미 추가 자본을 지출한다. 이는 직조공이 채무 노예 상태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생산 조건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경제적 계산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우리의 상인이 30,000의 자본으로 수출업을 경영하며, 그중 10,000은 국내 상품 구매에 사용되고 20,000은 해외 시장 판매에 투하한다고 상정한다. 이 자본이 2년에 1회 회전할 경우 연간 회전액은 15,000이 된다. 이때 상인이 자기 부담으로 직물을 제조하는 선대 상인으로 전환하고자 한다면 추가 자본 투하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그는 얼마만큼의 자본을 추가해야 하는가. 그가 판매하는 종류의 직물 1필의 생산 시간을 평균 2개월로 상정하고, 또한 그가 모든 거래를 현금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전제할 때, 상인은 직조공에게 2개월분 실을 공급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연간 회전액이 15,000인 상인은 2개월마다 2,500 상당의 직물을 구매하는 셈이다. 이 중 실의 가치가 2,000이고 직조공의 임금이 500이라면, 상인은 생산을 위해 2,000의 추가 자본을 필요로 한다. 이때 이러한 새로운 생산 방식 하에서 추출하는 잉여 가치가 직물 가치의 5%에 불과하다고 상정하면, 잉여 가치율은 25%로 매우 낮은 수준이 된다 (2,000c + 500v + 125s; s´ = 125/500 = 25%; 이윤율 p´ = 125/2,500 = 5%). 이 경우 상인은 연간 회전액 15,000에 대하여 750의 특별 이윤 (= 125 × 15,000/2,500)을 얻게 되며, 결과적으로 투하된 추가 자본을 2 2/3년 (2,000/750)만에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상인은 자신의 판매와 회전을 촉진하여 동일한 자본으로 더 짧은 시간에 이윤을 얻거나, 또는 동일한 시간에 더 큰 이윤을 확보하고자 잉여 가치의 일부를 구매자에게 이전하여 경쟁자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쟁자들 또한 점차 선대 상인으로 전환하게 되며, 결국 참여자들의 특별 이윤 (초과 이윤)은 증가한 자본에 대한 평균 이윤 또는 그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윤율의 균등화가 다시금 이루어지나, 이는 국내에서 창출된 잉여 가치의 일부가 해외 구매자에게 이전된 결과이기에 이윤율은 이전과는 다른 수준에서 형성된다.

 

자본이 산업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다음 단계는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의 도입으로 구체화된다. 17-18세기에 일반적이었던 수출 상인을 겸한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소유주는 기존 수공업자보다 저렴한 생산 비용을 확보하여 경쟁 우위를 점한다. 이러한 경향은 독일의 경우 1850년대까지 폭넓게 나타났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것과 동일한 논리적 과정이 반복되는데, 곧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자본가가 획득한 초과 잉여 가치는 그 자신이나 이윤을 분배받는 수출 상인이 경쟁자보다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된다. 이러한 상태는 새로운 생산 방식인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이 보편화되어 다시금 균등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된다. 이미 확립된 지배적 상업 이윤율은 비록 국지적인 균등화에도, 여전히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강제력을 발휘하며, 산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초과 잉여 가치를 그 규격에 맞추어 무자비하게 삭감한다.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이 생산물의 가격 저감에 기초하여 번성했다면, 대공업은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대공업은 기존 생산 방식의 끊임없는 파괴를 동력 삼아 상품 생산비를 더욱 감축시키며 이전의 모든 생산 방식을 무자비하게 파멸시킨다. 대공업은 자본을 위해 국내 시장을 최종적으로 정복했으며, 자급자족적인 농민 가족의 소상품 생산과 현물 경제를 종식시켰다. 또한 소상품 생산자들 사이의 직접적 교환을 제거하여 국민 전체를 자본에 예속되게 만들었다.

 

대공업은 상업과 공업의 제반 분야에 걸친 이윤율을 하나의 일반적 이윤율로 균등화하며, 이러한 기제로 공업에 합당한 지배적 위상을 확립한다. 이는 대공업이 지금까지 서로 다른 부문 간의 자본 이동을 가로막던 장애물을 대부분 제거하였기에 필연적인 결과다. 이에 따라 교환의 전 영역에서 가치의 생산 가격으로의 전환이 비로소 완성된다. 이러한 전환은 개별 당사자들의 의도나 의식과는 무관하게 객관적인 법칙에 따라 관철된다.

 

경쟁이 일반적 수준을 상회하는 이윤을 평균치로 하락시키며, 최초 취득자인 산업가로부터 초과 잉여 가치를 회수한다는 사실은 이론적으로는 하등의 난점이 없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중대한 곤란이 발생한다. 초과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 분야, 곧 불변 자본에 비해 가변 자본의 비중이 커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낮은 분야들은 그 성질상 농업과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불완전하게 포섭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 구성이 높은 부문에서 상품 가치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생산 가격을 설정하는 과정은 이론적으로는 난해해 보일 수 있으나, 현실에서는 매우 신속하고 원활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가격 상향은 해당 부문의 생산물에 내재된 불충분한 잉여 가치를 평균 이윤율 수준으로 보전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 범주의 상품들이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따라 생산되어 자본주의적 상업에 진입하는 순간, 동종의 다른 상품들과 경쟁하게 된다. 후자, 곧 자본주의 이전의 방식으로 생산된 상품들은 가격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자는 초과 잉여 가치의 일부를 양보하더라도, 당시 지배적인 일반 이윤율을 확보하는 데 무리가 없다. 여기서의 일반 이윤율은 산업 이윤율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상업 자본에 기반하여 형성되어 있었기에, 초기에는 잉여 가치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맺지 않은 채 기능한다.

 

 

Ⅱ. 증권 거래소

 


1. 『자본』 제Ⅲ권 제5편, 특히 제27장은 자본주의적 생산 일반에서 증권 거래소가 점유하는 (지위)를 명확히 규명한다. 그러나 원고가 집필된 1865년 이래로 중대한 구조적 변화가 발생했는데, 이는 오늘날 증권 거래소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하고도 지속적으로 증대하는 기능을 부여했다. 이러한 변화의 진전은 공업과 농업을 아우르는 생산 전 영역은 물론, 교통·통신 수단과 교환 기능을 포함한 상업 전체를 증권 거래업자의 수중으로 집중시키는 경향을 내포한다. 결과적으로 증권 거래소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그 자체를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는 기구로 격상된다.

 

2. 1865년 당시 증권 거래소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여전히 부차적인 위상에 머물러 있었다. 국채가 거래의 근간을 형성했으나 그 절대적 규모는 미미했으며, 유럽 대륙이나 아메리카와 달리 영국 내 주식 은행은 귀족적 개인 은행을 이제 막 흡수하기 시작한 단계로서 수적 중요성 또한 상대적으로 희소했다. 철도주 역시 현재의 시장 점유 수준에 비하면 미약한 상태였다. 특히 직접 생산에 종사하는 주식 회사 형태의 기업은 극히 드물었는데, 이는 ‘주인의 감독’이 필수적이라는 전근대적 독단이 여전히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러한 형태의 기업은 오히려 자본 축적이 지체되었던 독일, 오스트리아, 아메리카 등에서 은행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한적으로 경영되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당시의 증권 거래소는 자본가들이 상호 간에 축적된 자본을 탈취하는 각축장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에게 증권 거래소는 자본주의 경제가 현시하는 전형적인 퇴폐상의 새로운 증거일 뿐이었으며, 나아가 칼뱅주의 교의인 ‘예정설’을 실증하는 무대로 간주되었다. 곧, 세속에서의 은총과 징벌, 풍요에 따른 탐닉과 지배력, 그리고 빈곤에 기인한 결핍과 예속이 오로지 자의성이라는 형태를 빌린 신성한 결정의 발현으로 확증된다는 점을 입증하는 영역으로 각인되었을 뿐이다.

 

3. 그러나 오늘날의 사정은 판이하다. 1866년 공황 이후 축적은 가속화된 반면, 영국과 같은 공업국에서 생산의 확대는 축적의 증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별 자본가의 축적 자본 전체를 본래의 사업 확장에 전적으로 재투입하는 것이 한계에 봉착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미 1845년 영국 면공업과 철도 투기 과정에서 가시화된 바 있다. 축적의 진전과 더불어 금리 생활자 층이 형성되었으며, 사업상의 상시적인 긴장에서 탈피하여 향락을 추구하거나 기업 중역으로서 명목상의 직무만을 수행하려는 인구 또한 증가하였다. 나아가 이처럼 부유하는 방대한 화폐 자본의 투자를 용이하게 하려고, 유한 책임 법인이라는 새로운 법적 형태가 도처에서 출현하였으며, 종전의 무제한 변제 의무에 기반했던 주주의 부담 한도 또한 대폭 경감되기에 이르렀다. (1890년 독일의 주식 회사들의 경우, 주식 공모 비율이 40%에 달했다!)

 

4. 이에 따라 산업의 주식 회사 법인화는 특정 분야에서 시작되어 점차 전 산업 영역으로 확산하며, 각 부문은 순차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필연성을 마주한다. 가장 먼저 막대한 고정 자본 투하가 요구되는 철강업과 광업이 주식 제도로 이행하였으며, 이어 화학 공업과 기계 제작 공업이 그 뒤를 이었다. 섬유 공업의 경우 유럽 대륙 전반에서 이러한 전환이 나타났으나, 영국의 경우 랭커셔의 올덤 (방적업)이나 번리 (직물업) 등 일부 지역에서만 국한되는 양상을 보였다. (재봉업 조합은 주식 회사 법인화의 예비 단계에 불과하여 차후 공황이 닥치면 다시 개별 자본가의 수중으로 회귀하는 가변성을 보인다). 이후 양조 공업 분야에서도 기네스, 바스, 올소프와 같은 기업들에 대해 영국 자본가 주도의 기업 매수가 진행되며 주식 회사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다. 나아가 유나이티드 알칼리 등과 같이 공동 경영 체제를 갖춘 거대 기업인 트러스트가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일반적인 개인 기업은 독립된 경제 단위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고, 오직 ‘주식 회사로의 전환’을 위해 규모를 확장하는 예비 단계로서의 성격만을 지니게 되었다.

 

상업 부문 역시 동일한 경로를 밟고 있다. 리프스, 파슨즈, 몰리스, 모리슨, 딜런 등과 같은 주요 상사들은 이미 주식 회사로 전환되었으며, 이러한 추세는 소매업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는 단순히 ‘연쇄 상점 (연쇄점)’이라는 조합 형태에 국한되지 않고 유통 부문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은행을 비롯한 신용 기관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보수적인 영국 금융권조차 예외는 아니다. 새롭게 설립되는 무수한 금융 기관들은 모두 유한 책임 주식 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글린과 같은 유서 깊은 은행들마저 7명의 개인 주주를 둔 유한 책임 회사로 체제를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5. 농업 영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은행 자본이 거대하게 확장됨에 따라, 특히 독일에서는 각종 관료주의적 명칭 아래 은행이 점차 저당권의 실질적 보유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 주식의 유통과 함께 토지의 궁극적 소유권이 증권 거래소로 이전되는 현상이 가속화되며, 이는 토지가 채권자의 수중으로 귀속될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여기에 대평원 경작에 기반한 농업 혁명이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영국과 프랑스의 토지 역시 증권 거래소의 지배하에 놓이는 시기가 도래한다.

 

6. 아울러 해외 투자 전반이 주식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의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바와 같이, 남북 아메리카의 철도와 금광 등 대규모 자본이 투하되는 사업들은 모두 주식 상장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자본의 주식 자본화 (증권화) 추세를 뒷받침한다.

 

7. 식민지 팽창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오늘날 식민지는 오로지 증권 거래소의 부속물로서 운용된다. 실제로 유럽 열강은 증권 거래소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수년 전 아프리카 분할을 감행하였으며, 프랑스는 튀니지와 통킹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아프리카 대륙의 주요 영토들은 니제르, 남아프리카, 독일령 서남아프리카, 동아프리카의 사례 등과 같이 회사들에 직접 임대되었고, 마쇼너랜드와 나탈은 세실 로즈의 손을 거쳐 증권 거래소의 전유물로 포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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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계급들

 

임금, 이윤, 지대를 각각의 수입원으로 삼는 노동력의 소유자, 자본의 소유자 및 토지의 소유자 곧 임금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기초한 부르주아 사회의 3대 계급을 구성한다.

 

부르주아 사회의 경제적 편성이 가장 폭넓고 전형적으로 전개된 지점은 명백히 영국이나, 이곳에서조차 계급 구성이 완전히 분명한 또는 전형적인 형태로 정립되지는 않는다. 비록 농촌에서는 도시에서보다 그 정도가 덜하지만, 중간적·과도적 계급의 존재가 계급 간의 구분을 도처에서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 수단을 노동으로부터 부단히 분리하고 분산된 생산 수단을 대규모로 집중시키는 과정, 곧 노동을 임금 노동으로,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내재적 경향이자 불변의 발전 법칙이다. 이러한 운동 법칙에 상응하여 토지 소유 또한 자본 및 노동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분리되며, 종국에는 모든 토지 소유 형태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적합한 구조로 재편된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 계급을 형성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무엇이 임금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를 세 개의 거대한 사회적 계급으로 규정하는가’ 라는 물음에 답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명백해진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수입과 그 수입원의 동일성이 하나의 계급을 규정하는 표지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세 개의 거대한 사회적 집단이 존재하며, 그 구성원인 개인들은 각각 임금, 이윤, 지대에 기반하여, 곧 자신들이 보유한 노동력, 자본, 토지 소유의 가치 실현에 기초해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견지할 경우 전문직 (자유 직업인)과 공무원 (정부 관리) 또한 별개의 두 계급을 구성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두 사회 집단에 속하며, 각 구성원의 수입이 저마다 동일한 원천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사회적 분업에 따라 노동자뿐 아니라 자본가와 토지 소유자가 각종 이해관계와 위상에 따라 무수히 세분되는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컨대 토지 소유자의 경우 과원, 경작지, 삼림, 광산, 어장 소유자 등으로 세분화될 수 있다.

 

(엥겔스: 여기에서 원고가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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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분배 관계와 생산 관계

 

 

연간 새로 추가된 노동에 기인하여 창출된 가치 및 그에 상응하는 연간 총생산물 중 배분 요건을 갖춘 부분은 세 가지 상이한 수입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가치 분할은 노동력 소유자, 자본 소유자, 그리고 토지 소유자에게 각각 귀속되는 부분들로 표현되며, 이는 새로 창출된 총가치가 각 생산 요소 소유자들 사이에서 배분되는 일정한 방식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형태들은 생산 성과가 사회적으로 배분되는 체계인 분배 관계 또는 분배 형태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통속적인 관념에서 이러한 분배 관계는 모든 사회적 생산의 본성이나 인간 생산 자체의 법칙에서 파생된 자연적 관계로 오인된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들이 상이한 분배 방식들을 보여 준다는 사실이 부인되지는 않으나, 이는 위와 같은 자연적 분배 관계가 미발달하고 불완전하며 왜곡된 채 아직 전형적인 표현과 최고 수준의 전형으로 귀결되지 못한 부차적인 형태로 규정될 뿐이다.

 

이러한 관념에서 유일하게 타당한 지점은, 어떠한 형태의 사회적 생산 (예: 본원적 인도 공동체나 의도적으로 발전한 페루의 공산주의)을 전제하더라도 노동은 언제나 두 개의 부분으로 구별된다는 사실이다. 곧, 노동의 한 부분은 생산자와 그 가족의 직접적인 개인적 소비를 위한 생산물을 창출하며, 생산적 소비의 보전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언제나 잉여 노동으로서, 그 생산물은 일반적인 사회적 욕구 충족을 담보하는 잉여 생산물을 형성한다 (이 잉여 생산물이 어떻게 분배되든, 그리고 누가 이 사회적 욕구의 집행자로서 기능하든). 따라서 상이한 분배 방식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각 방식이 지닌 역사적 차이와 특유한 형태 규정성을 사장시킨 채 그들 사이의 오직 추상적인 공통성에만 침잠할 때 비로소 성립한다.

 

보다 지적이고 비판적 의식을 갖춘 이들은 분배 관계가 지닌 역사적 가변성을 인정하는 듯 보이나, 오히려 생산 관계 자체의 불변적 성격, 곧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여 모든 역사적 전개로부터 독립적인 성격을 더욱 완고하게 고수한다. 이들은 분배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그 근저에 있는 생산의 사회적 규정성은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법칙으로 고착시킴에 따라 생산 관계의 역사적 특수성을 부인한다.

 

반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이와 대립하는 사실을 입증한다. 곧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특수한 역사적 규정성을 지닌 고유한 생산 방식이며, 여타의 생산 양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생산력의 일정 수준과 그 발전 형태를 자기의 역사적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 이 전제 조건 자체는 선행된 역사적 과정의 산물로서 새로운 생산 양식의 토대를 형성하며, 이에 대응하는 생산 관계이자 인간들이 그들의 사회적 생활의 생산에서 맺는 제반 관계 역시 특수하고 역사적이며 일시적인 성격을 지닌다. 결론적으로 분배 관계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생산 관계의 이면이자 그 실질적 발현이므로, 생산 관계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가변성과 일시성을 체현한다.

 

분배 관계를 고찰함에 있어 연간 생산물이 이른바 임금, 이윤, 지대로 분할된다는 표상적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은 통상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것은 분석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생산물은 자본과 수입들로 분할되며, 이 중 임금이 노동자의 수입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은 노동이 미리 자본의 형태로 동일한 노동자와 대립하는 과정을 선행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생산된 노동 조건과 노동 생산물 일반이 자본으로서 직접적 생산자와 대립한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노동의 물질적 조건들이 노동자에 대해 특수한 사회적 성격을 견지하며, 생산 과정 내에서 노동자가 이러한 노동 조건의 소유자 및 타인과 맺는 특수한 관계가 역사적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러한 노동 조건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또한 직접적 생산자로부터 토지 수탈을 전제하며, 결과적으로 특수한 형태의 토지 소유 관계를 그 내부에 포함한다.

 

생산물의 한 부분이 자본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다른 부분은 임금·이윤·지대의 형태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생산 조건의 이러한 특수한 사회적 형태를 전제하고 있다면, 이 방식은 역으로 그 전제 조건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곧, 자본주의적 생산은 단순히 물질적 생산물을 생산할 뿐 아니라, 그 생산물이 생산되는 기반인 생산 관계 및 그에 대응하는 분배 관계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유지시킨다.

 

자본과 그 대립물로서의 토지 소유는 이미 특정한 형태의 선행적 분배를 전제로 성립한다. 곧, 자본은 노동자로부터의 노동 조건 수탈, 소수 개인에게로의 노동 조건의 집적, 그리고 토지의 배타적 소유 등 시초 축적 과정 (『자본』 제Ⅰ권 제8편)에서 전개된 제반 관계를 필수적 토대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근원적 분배는, 생산 관계와 대조하여 분배 관계에 역사적 성격을 부여하고자 하는 통상적 의미의 분배 관계와는 그 결을 달리한다. 후자인 통상적 의미의 분배 관계가 생산물 중 개인적 소비 영역에 귀속되는 권리 관계를 지칭한다면, 이와는 반대로 전자인 근원적 분배는 생산 관계 내부에서 직접적 생산자와 대립하는 특수한 생산 담당자에게 일정 사회적 기능을 부여하는 기초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이 근원적 분배 관계는 현실적 생산 조건과 그 대변자에게 특수한 사회적 성격을 부여함에 따라, 생산의 전반적인 성격과 운동 법칙을 규정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다른 생산 양식으로부터 범주적으로 분리하는 두 가지 규정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생산물을 상품으로서 생산한다. 단순히 상품을 생산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이 생산 양식을 다른 생산 양식으로부터 구별하는 점은 아니지만, 생산물의 일반적 형태가 상품이라는 점이 이 생산 양식의 본질적 특수성을 구성한다. 이는 선차적으로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을 오직 상품으로 판매하는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로 등장함을 의미하며, 곧 노동 일반이 임금 노동의 형태를 취하게 됨을 가리킨다. 이미 위에서 논의하였으므로, 자본과 임금 노동 관계가 어떻게 이 생산 양식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가를 다시 논증할 필요는 없다. 이에 따라 생산 과정의 주체인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는 각각 자본과 임금 노동이라는 경제적 범주가 인격화된 존재에 불과하며, 사회적 생산 관계가 산출한 역사적 담지자로서, 곧 이 특수한 사회적 생산 관계의 산물에 불과하다.

 

생산물이 1) 상품이라는 사실과 2) 그 상품이 자본의 생산물이라는 점은 이미 고유한 유통 관계를 내포한다. 이는 생산물이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 과정에서 특수한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게 되는 특유한 사회적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생산 담당자들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시사하며, 이 관계에 기반하여 생산물의 가치 증식과 그 생산물이 다시 생활 수단 및 생산 수단으로 재전환되는 과정이 규정된다.

 

이와는 별개로,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성격, 곧 상품 형태를 띤 생산물의 성격 및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상품이라는 특성으로부터 가치 결정과 가치에 기초한 총생산의 규제라는 문제가 도출된다. 가치라는 특유한 형태 내에서 노동은 한편으로는 오직 사회적 노동으로서만 인정되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회적 노동의 배분, 생산물 간의 상호 보충과 물질대사, 그리고 사회적 체계로의 포섭 등이 전적으로 개별 자본주의적 생산자들의 우연적이고 상충하는 동기들에 맡겨져 있다. 곧, 노동의 사회적 성격은 존재하되 그 구체적인 실현 방식은 개별 자본의 비체계적인 운동에 맡겨지는 모순적 구조를 형성한다.

 

개별 자본가들은 오직 상품 소유자로서 상호 대립하며, 각자 자신의 상품을 최대한 고가에 판매하고자 하기에, 생산의 규제 과정에서도 개별적 이해관계가 지배적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체제 내부의 법칙은 오직 경쟁과 상호 간에 가하는 강제를 매개로 하여서만 관철되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개별적 편차들이 상쇄된다. 여기서 가치 법칙은 개별 당사자에게는 통제 여지가 없는 맹목적인 자연 법칙처럼 작용하는 내적 법칙으로서, 수많은 우연적 변동 속에서 생산의 사회적 비례를 강제적으로 유지시킨다.

 

상품, 그리고 더욱이 자본의 생산물로서의 상품에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본질인 생산의 사회적 규정들이 사물화되는 현상과 생산의 물질적 기초들이 주체화되는 전도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이는 사회적 관계가 사물 간의 관계로 나타나고, 사물인 생산 수단이 오히려 인간 노동을 지배하는 주체적 동력을 획득하는 자본주의 특유의 물신적 성격을 규정한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두 번째 특징은 잉여 가치의 생산이 생산의 직접적 목적이자 결정적 동기라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은 오직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한에서만 자본으로서 기능하며 본연의 자기 증식을 수행한다. 상대적 잉여 가치의 생산과 잉여 가치의 이윤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이러한 특징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노동자로부터 독립된 자본의 위력으로 전도시킨다. 곧,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자와 대립하며 노동자 자신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저해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가치와 잉여 가치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은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을 사회적 평균 이하로 끊임없이 단축하려는 내적 경향을 지니며, 이에 따른 비용 가격의 최소화 압박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을 제고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오직 자본 생산성의 부단한 증대라는 형태로만 현상될 뿐이다.

 

자본가가 자본의 인격화로서 직접적 생산 과정에서 수취하는 권위나 생산의 관리자 및 지배자로서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은 노예제 또는 농노제 생산 등에 기반한 지배 구조와 본질적으로 판이하다. 종전의 지배가 인신적 예속과 직접적인 강제에 근거했다면, 자본주의적 생산 하에서의 권위는 생산 조건이 노동에 대립하는 자본으로 체현됨에 따라 발생하는 객관적이고 사물적인 규정성에 그 기초를 둔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은 직접적 생산자 집합체를 엄격히 통제하는 권위의 형태로 표출되며, 노동 과정의 사회적 기제는 완전한 위계적 조직 구조를 취한다. 이러한 권위의 담당자는 이전의 생산 양식에서처럼 정치적·신권적 지배자로서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립하는 노동 조건의 인격화로서 그 권위를 수취한다. 그러나 권위의 주체인 자본가들, 곧 상품 소유자로서 대면하는 이들 상호 간에는 가장 완전한 무정부성이 지배하며, 이 무정부성 속에서 생산의 사회적 연관은 개별 주체의 자의를 압도하는 맹목적인 자연 법칙으로서 관철된다.

 

노동이 임금 노동의 형태로, 생산 수단이 자본의 형태로 전제됨에 따라 이 두 필수적 생산 요소의 특수한 결합은 가치 생산물의 일부를 잉여 가치로 발현시킨다. 이 잉여 가치는 이윤 및 지대의 형식을 빌려 자본가의 가처분 부 (富)이자 이득으로 확정된다. 잉여 가치가 자본가의 이윤으로 고착됨에 따라, 재생산 확장을 위해 예정된 추가적 생산 수단은 새로운 추가적 자본으로 전화되며, 결과적으로 재생산 과정의 확대 일반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이라는 역사적 형태로 관철된다.

 

임금 노동이라는 노동의 형태가 생산 과정 전반과 그 방식에 결정적 의의를 지님에도, 가치를 규정하는 근거는 임금 노동 자체가 아니다. 가치 결정의 본질은 사회적 노동 시간 일반에 있으며, 사회가 가처분 총노동량이 개별 생산물에 흡수되는 비중이 해당 생산물의 사회적 비중을 규정한다. 다만 사회적 노동 시간이 상품 가치 결정의 지배적 기제로 작용하는 것은 노동이 임금 노동의 형태를 띠고 생산 수단이 그에 대응하는 자본의 형태를 갖출 때 비로소 관철된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하에서만 상품 생산이 비로소 생산의 일반적 형태로 확립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분배 관계 그 자체를 고찰하더라도, 임금은 임금 노동을, 이윤은 자본을 각각의 존립 근거로 전제한다. 따라서 이러한 특수한 분배 형태는 생산 조건들이 지니는 특수한 사회적 성격과 생산 담당자들 사이에 맺어진 특수한 관계를 선행 조건으로 요구한다. 결론적으로 특수한 분배 관계란 역사적으로 규정된 특수한 생산 관계의 발현이자 귀결에 불과하다.

 

이윤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잉여 가치는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 내에서 새로운 생산 수단을 형성하기 위한 필수 전제이며, 따라서 재생산 과정 전반을 지배하는 결정적 관계를 형성한다. 개별 자본가는 이윤 전체를 개인적 수입으로 소비할 수 있는 주체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보험 및 준비 재원의 비축과 경쟁 법칙의 강제라는 객관적 제약에 직면한다. 따라서 이윤은 결코 분배 범주에 머물지 않고, 자본의 자기 유지와 확장을 위한 구조적 요인으로 기능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 전반은 생산물 가격에 기초하여 규제되며, 이 가격을 규정하는 지배적 생산 가격은 다시 이윤율의 균등화와 그에 대응하는 사회적 부문별 자본 배분에 근거하여 규정된다. 이 과정에서 이윤은 단순히 결과를 나타내는 요소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을 각종 생산 분야에 배치함에 따라 생산 자체를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주도적 동인으로 작용한다.

 

이윤이 기업가 이득과 이자로 분할되는 현상은 외견상 동일한 수입의 분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자기 증식하는 가치, 곧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이 생산 과정을 지배하는 특수한 사회적 형태로서 발전해 온 결과다. 또한 이러한 분할은 그 자체로 신용 체계와 금융 기관의 확립을 촉진하며, 주식 회사 등과 같은 형태를 매개로 하여 생산의 전반적인 양상을 고도화한다. 결과적으로 이자 등과 같은 분배 형태들은 사후적 배분만이 아니라 생산의 규정적 요소로서 가격 형성에 직접 산입된다.

 

토지 소유 그 자체는 생산 과정에서 어떠한 기능도 수행하지 않으므로, 지대를 배타적인 분배 형태의 일종으로 간주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1) 지대가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초과분 으로 제한된다는 점과, (2) 토지 소유자가 이전의 사회적 생활 과정의 절대적 지배자에서 명목상의 토지 임대인, 곧 명목상의 지대 수취인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낳은 특수한 역사적 산물이다. 토지가 토지 소유라는 법적·사회적 형태를 취하는 것은 이 생산 양식의 역사적 전제 조건이며, 특히 토지 소유가 농업의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을 뒷받침하는 임대차 형식으로 구체화되는 것은 자본주의 고유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타 사회 형태에서 나타나는 토지 소유자의 수입을 지대라 칭할 수 있을지라도, 이는 이 생산 양식에서 나타나는 지대와는 그 본질적 규정성에서 판이하다.

 

그러므로 이른바 분배 관계는 생산 과정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형태들에 대응하며, 곧 인간 생활의 재생산 과정에서 맺어지는 일정한 관계들에 대응하며 그로부터 파생된다. 이러한 분배 관계의 역사적 성격은 생산 관계가 지닌 역사적 성격의 귀결이며, 생산 관계의 단면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분배는 여타의 생산 양식에서 파생되는 분배 형태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며, 그것이 기원하고 대응하는 각각의 고유한 생산 형태와 필연적으로 함께 소멸한다.

 

오직 분배 관계만을 역사적 범주로 파악하고 생산 관계를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견해는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초기 단계의,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비판에 머문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적 생산 과정을 고립된 개인이 수행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노동 과정과 동일시하는 오류에 근거한다. 노동 과정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라는 일반적 성격을 띠는 한, 그 기초 요소들은 모든 사회적 발전 단계에 보편적이나, 노동 과정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들은 각 단계에 부합하는 물질적 토대와 사회적 형식을 부단히 고도화한다.

 

생산이 일정한 고도화 단계에 도달하면 기존의 역사적 형태는 해체되고 더 높은 단계의 형태로 이행한다. 이러한 변혁의 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전조는, 한편에서는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서의 분배 및 생산 관계와, 다른 한편에서는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 및 그 구성 요소들 사이의 모순과 대립이 심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생산의 물질적 발전과 이를 규정하는 사회적 형식 사이에 구조적 충돌이 발생하며 새로운 체제로 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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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경쟁이 만드는 착각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상품들의 가치, 또는 총가치에 기초하여 규정되는 생산 가격은 다음과 같은 구성 요소로 분해된다.

 

(1) 불변 자본을 보충하는 가치 부분이다. 이는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생산 수단의 형태로 존재하는 체현된 노동을 대변하는 가치 부분이며, 해당 상품의 생산 과정에 투입된 생산 수단의 가치 또는 가격을 의미한다. 여기서 분석의 대상은 개별 상품이 아닌 상품 자본 (일정 기간, 예컨대 1년간 자본의 생산물이 취하는 총체적 형태)을 전제한다. 개별 상품은 이러한 상품 자본의 하나의 구성 요소를 형성할 뿐이며, 그 가치 규정 또한 동일한 구성 부분들로 분해된다.

 

(2) 가변 자본의 가치 부분이다. 이는 노동자의 수입 크기를 나타내며, 노동자를 위한 임금으로 전환되는 형태를 취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 가변 자본에 해당하는 이 가치 부분을 재생산한다. 요컨대 상품 생산 과정에서 불변 자본 부분에 새로이 추가된 노동 중 지불된 노동 부분을 대변하는 가치 구성 요소다.

 

(3) 잉여 가치 부분이다. 이는 상품 가치 중 미지불 노동 또는 잉여 노동이 체현된 부분을 의미한다. 이 가치 부분은 이윤과 지대라는 독립된 형태를 취하며, 이들은 동시에 수입 형태로 나타난다. 곧 이윤은 자본 그 자체에 대한 (또는 자본 소유 그 자체에 기반한) 이자와 기능 자본에 귀속되는 기업가 이득으로 세분되며, 지대는 생산 과정에 토지를 제공한 소유자에게 배분되는 분배분을 형성한다. 이들은 개별 경제 주체들에게 각자의 생산적 기여에 따른 독립적 수입으로 간주되나, 본질적으로는 창출된 잉여 가치가 분할된 형태들에 불과하다.

 

가변 자본 (2)과 잉여 가치 (3)를 포괄하며 항상 임금 (이는 필히 가변 자본의 형태를 거쳐야만 한다)·이윤·지대라는 수입 형태를 취하는 가치 부분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따라 불변 자본 (1)과 구별된다. 가변 자본 (2)과 잉여 가치 (3)의 합계액은 불변 자본에 새로이 투하된 노동이 대상화되어 형성된 가치 총액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변 가치 부분을 제외할 경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올바르다. 곧, 새로 추가된 노동을 대변하는 상품 가치가 항상 세 가지 수입 형태 (임금·이윤·지대)로 분해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이때 세 구성 부분의 가치 크기, 곧 총가치 내에서 각 부분이 차지하는 해당 비율은 이미 규명된 바 있는 각각의 특수 법칙에 의거하여 규정된다.

 

그러나 거꾸로 임금의 가치, 이윤율, 지대율을 가치의 독립적인 형성 형성 요인으로 전제하고, 불변 자본을 제외한 상품 가치가 이들의 합계로부터 규정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곧, 이러한 수입 형태들이 상품 가치나 생산 가격을 구성하는 근원적 요소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정 관계를 전도시키는 잘못된 논리적 귀결이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은 예시에서 명확히 규명된다.

 

총자본 500에서 생산된 가치가 400c + 100v + 150s = 650이며, 잉여 가치 150s가 다시 이윤 75와 지대 75로 분할된다고 전제한다. 분석의 일관성을 위해 해당 자본은 평균적인 가치 구성을 지니며, 그 결과 생산 가격과 가치가 일치한다고 상정한다. 이러한 일치는 일정 개별 자본의 생산물을 총자본 내에서 해당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에 상응하는 생산물로 간주할 수 있는 경우 언제나 성립한다.

 

가변 자본으로 측정되는 임금은 투하 자본의 20%를 차지하며, 잉여 가치는 총자본의 30% (이윤 15%, 지대 15%)에 해당한다. 이때 상품 가치 중 새로이 추가된 노동이 대상화된 부분은 250 (= 100v + 150s)으로 규정된다. 이 가치 총량은 이후 임금·이윤·지대로 분할되는 구체적인 방식이나 비율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결정된다.

 

해당 구성 부분들 사이의 비례 관계를 검토하면, 100의 화폐액으로 지불된 노동력이 실제로는 250의 화폐 가치에 상응하는 노동량을 제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노동자가 필요 노동의 1.5배에 달하는 잉여 노동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10시간의 노동일로 환산할 경우, 노동자는 자신을 위해 4시간을 노동하고 자본가를 위해 6시간의 잉여 노동을 제공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100을 지불받은 노동자의 노동은 250이라는 화폐 가치로 체현된다. 따라서 생산 수단의 가치를 제외하고 새로 창출된 이 250의 가치 이외에 노동자·자본가·토지 소유자 사이에서 분배될 수 있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생산 수단의 가치 400에 새로이 추가된 총가치다. 곧, 이 250의 상품 가치는 상품에 대상화된 노동량에 규정되는 총량이다. 이 가치량은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가 상품 가치로부터 임금, 이윤, 지대라는 수입의 형태로 분배받을 수 있는 배당의 객관적 한계를 형성한다. 곧, 분배의 원천이 되는 가치 실체는 생산 과정에서 이미 확정되어 있으며, 수입의 형태들은 이 결정된 한계 내에서 비례적으로 배분될 뿐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곧 고용된 살아있는 노동력과 투하된 불변 자본 사이의 비율이 고정된 상태에서, 400의 불변 자본을 운동시키는 동일한 노동력에 대해 100이 아닌 150을 지불해야만 한다고 전제하자. 또한 이윤과 지대가 잉여 가치를 앞선 사례와는 다른 비율로 분할한다고 상정하자. 이전에 100의 가변 자본이 운동시킨 것과 동일한 노동량을 150의 가변 자본이 투입되더라도 동원된 노동 총량은 동일하므로, 새로이 창출된 가치는 여전히 250으로 유지되며 생산물의 총가치 역시 650으로 불변하지만, 다만 가치 구성은 400c + 150v + 100s로 재편되며, 100의 잉여 가치 (100s)는 가령 이윤 45와 지대 55의 비율로 분할된다.

 

이러한 변동에 따라 총가치 생산물이 임금·이윤·지대로 분할되는 비율은 판이하게 나타나며, 비록 동일한 노동 총량을 가동하기 위해 투하된 총 투하 자본의 규모 또한 변동한다. 이 경우 임금은 총 투하 자본의 27 3/11%를 점유하며, 이윤과 지대는 총 투하 자본 대비 각각 8 2/11%와 10%의 비중을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총 잉여 가치는 총 투하 자본 대비 18%를 근소하게 상회하는 수준에서 규정된다.

 

임금의 상승은 총노동 중 미지불 노동의 비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잉여 가치의 규모를 변화시킨다. 이 경우 노동자는 10시간의 노동일 중 6시간을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머지 4시간을 자본가를 위해 노동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윤과 지대의 비율도 재구성되며, 이 감소한 잉여 가치는 자본가와 토지 소유자 사이에서 새로운 비율로 분할된다.

 

결론적으로, 불변 자본의 가치가 고정된 상태에서 투하 가변 자본의 가치가 증대됨에 따라 감소한 잉여 가치는 더욱 하락한 총이윤율로 수렴하게 되는데, 여기서 총이윤율이란 총 투하 자본에 대한 총 잉여 가치의 비율을 의미한다.

 

임금의 가치, 이윤율, 지대율의 이러한 변동은 각 구성 부분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는 법칙의 구체적 작용과 무관하게, 새로 창출된 상품 가치인 250이 설정하는 한계 내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오직 지대가 독점 가격에 근거하는 경우에만 예외가 발생할 것이나, 이는 법칙 자체를 변경하기보다 다만 분석을 까다롭게 할 뿐이다. 이는 독점 가격이 형성될 경우, 해당 생산물만을 고찰하면 잉여 가치의 내부 분할 방식만이 변화하는 것이고, 타 상품과의 상대적 가치를 고찰하면 다른 상품의 잉여 가치 일부가 다른 상품들로부터 해당 상품으로 이전되는 차이가 발생할 뿐이기 때문이다.

 

분석된 두 가지 사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치 구성 및 수익률 비교

 

항목

첫째 경우

둘째 경우

생산물의 가치

400c + 100v + 150s = 650

400c + 150v + 100s = 650

새로운 가치

250

250

잉여 가치율

150

66 2/3%

총이윤율

30

18 2/11%

 

 

제1사례

 

생산물 가치는 400c + 100v + 150s = 650이며, 새로 창출된 가치는 250이다. 이때 잉여 가치율은 150%, 총이윤율은 30%로 나타난다.

 

제2사례

 

생산물 가치는 400c + 150v + 100s = 650으로, 새로이 창출된 가치는 250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가변 자본의 증가로 인해 잉여 가치율은 66 2/3%로 하락하며, 총 이윤율 역시 18 2/11%로 저하된다.

 

두 경우 모두 새로운 노동으로 추가된 가치 총량은 250으로 동일하지만, 가변 자본 (임금) (v)과 잉여 가치 (s) 사이의 분배 비율 변화가 잉여 가치율과 이윤율의 변동을 규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선, 잉여 가치가 150에서 100으로 감소하며 기존 크기의 1/3만큼 감소한다. 이에 따라 이윤율은 30%에서 18 2/11%로 1/3 이상 저하하는데, 이는 감소한 잉여 가치가 오히려 증대된 총 투하 자본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율의 저하 폭이 잉여 가치율의 저하 폭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잉여 가치율이 150%에서 66 2/3%로 급격히 하락하는 동안 이윤율은 30%에서 18 2/11%로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하락한다. 결과적으로 이윤율의 저하 비율은 잉여 가치량의 감소 비율보다는 크고, 잉여 가치율의 저하 비율보다는 작은 범주 내에서 규정된다.

 

가변 자본의 증대로 인해 총 투하 자본이 증가했음에도 투입된 노동량이 이전과 동일하다면, 총가치와 생산량 역시 기존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자본 투입의 증대는 개별 자본가에게는 중대한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재생산 과정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가변 자본의 증대는 새로 추가된 노동에 따른 새로 창출된 가치 중 더 큰 비중이 잉여 가치나 잉여 생산물로 전환되지 않고 임금으로, 곧 가변 자본의 형태로 우선 배분됨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생산물 가치는 이전과 같다. 이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불변 자본 가치 400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 추가된 노동을 대변하는 가치 250의 합으로 결정되며, 이 두 요소가 불변이기 때문이다. 이 생산물이 다시 불변 자본의 요소로 투입된다면, 이전과 가치액이 동일한 이 생산물은 이전과 동일한 사용 가치량을 대표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동일한 양의 불변 자본 요소들은 그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반면 임금 인상이 단순히 노동자의 분배분 (분배 몫)이 커진 결과가 아니라 노동 생산성 저하에 기인한 것이라면 상황은 본질적으로 달라진다. 이 경우 투입된 총노동 (지불 노동과 미지불 노동)이 체현된 총가치는 이전과 동일하나, 해당 노동량이 대변하는 실질 생산량은 감소하게 된다.

 

개별 생산물 단위당 더 많은 노동이 투입됨에 따라 각 생산물의 가격은 등귀하며, 이에 따라 상승한 임금 150은 기존 100의 가치가 대변했던 생산물량보다 결코 많지 않을 수 있다. 또한 100으로 감소한 잉여 가치는 (이전에 비해 2/3의 생산물)는 기존 100의 가치액이 대표하던 사용 가치량의 66 2/3%만을 실질적으로 점유하게 된다.

 

나아가 해당 생산물이 불변 자본의 구성 요소로 투입될 경우 불변 자본의 가치 또한 증대한다. 이 경우 상품 가격의 등귀는 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일 노동량에 대한 생산성이 저하되어 상품 가치가 상승했기에 그 결과로서 임금이 인상된 것이다. 비록 임금 인상이 생산물 가격을 등귀시킨 듯한 착각이 발생하나, 이때의 임금 인상은 노동 생산성 하락에 따른 상품 가치 변동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불과하다.

 

기타 조건이 동등한 경우, 곧 동일한 노동량이 투입되어 250의 새로운 가치로 표현되는 상황에서 생산 수단의 가치가 등락하면 생산물의 총가치 역시 그에 비례하여 변동한다. 예를 들어 가치 구성이 450c+100v+150s가 되면 총가치는 기존 650이 아니라 700이 되며, 350c+100v+150s인 경우에는 600으로 하락한다. 이처럼 동일한 노동량을 가동하기 위한 투하 자본의 증감이 불변 자본 부분의 가치 변동에서 기인한다면, 기타 사정이 불변이라는 전제하에 생산물의 가치는 직접적으로 등귀하거나 하락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투하 자본의 증감이 노동 생산성은 불변인 채 가변 자본 부분의 가치 변동으로 발생한다면 생산물의 가치는 불변이다. 불변 자본의 경우 그 가치의 증감을 상쇄할 반대 운동이 존재하지 않으나, 가변 자본의 경우에는 노동 생산성이 불변이라는 전제하에 그 가치의 증감이 잉여 가치의 반대 방향 운동으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의 합 (v+s), 곧 노동으로 생산 수단에 새로이 부가되어 생산물에 체현되는 가치는 불변이다.

 

가변 자본 또는 임금의 증감이 상품 가격의 등락에 따른 결과, 곧 해당 투하 부문 노동 생산성의 변동에 기인한 것이라면 생산물의 가치는 변동한다. 그러나 이 경우 임금의 상승과 하락은 가치 변동의 원인이 아닌 결과에 불과하다.

 

불변 자본 400c가 고정된 상태에서 가변 자본이 100v에서 150v로 증대되고 잉여 가치가 150s에서 100s로 축소된 원인 (100v+150s→150v+100s)이 해당 생산 부문 (예: 방적업)의 생산성 저하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활 수단을 공급하는 부문 (예: 농업)의 생산성 저하에 따른 생활 수단 가격의 등귀 때문이라면 생산물의 총가치는 불변이다. 이 경우 650이라는 총가치는 이전과 동일한 물리적 생산량 (면사량)으로 체현되어 나타난다.

 

이상의 논의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의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부문에서 절약 등으로 불변 자본의 지출이 감소하면, 이는 생활 수단의 가치를 하락시켜 노동 생산성의 직접적인 향상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저하와 잉여 가치의 증대를 초래한다. 이 경우 이윤율은 두 가지 요인으로 상승한다. 곧, 한편으로는 투하된 불변 자본의 가치 자체가 감소하였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잉여 가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잉여 가치가 이윤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고찰할 때 임금을 불변인 것으로 전제했던 이유는, 이윤율의 변동을 잉여 가치율의 변동과 독립적으로 분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전개된 법칙들은 일반적인 것이며, 노동자의 소비에 들어가지 않는 생산물을 생산하여 그 가치 변동이 임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투하 부문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새로운 노동으로 생산 수단 또는 불변 자본 부분에 매년 추가되는 가치는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서로 다른 수입 형태로 분리·분해될 수 있으나, 이것은 결코 가치의 절대적 한계, 곧 상이한 형태들로 배분되는 가치 총액 자체를 변경시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개별 구성 부분들 상호 간의 비율이 변동하더라도 이미 주어진 가치 총액을 변경시킬 수 없다. 예컨대 100이라는 수치는 50+50, 20+70+10, 또는 40+30+30으로 분할되든 그 전체 가치량은 변하지 않는다.

 

생산물 가치 중 이와 같은 수입들로 분할되는 부분은 상품의 가치, 곧 상품에 대상화된 노동량으로 규정되며, 이는 자본의 불변 부분이 해당 구성 상품들의 가치로 규정되는 것과 상응한다. 따라서

 

첫째로, 임금, 이윤, 지대로 분할될 가치량, 곧 개별 가치 부분들의 총액에 대한 절대적 한계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

 

둘째로, 각 분배 범주 자체에 있어서도 평균적이고 규제적인 한계가 사전에 주어져 있다.

 

이러한 한계 설정의 토대는 임금이 이룬다. 임금은 한편으로는 자연 법칙으로 규제되는데, 그 최저 한도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육체적 최소 생활 수단, 곧 일정한 양의 상품들로 규정된다.

 

이 상품들의 가치는 그것들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 곧 생산 수단에 새로 추가되는 노동 (또는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신의 필요 생활 수단의 가치와 등가인 가치를 생산 및 재생산하는 데 필요로 하는 부분으로 결정된다. 노동자의 평균적인 생활 수단 가치가 하루 6시간의 평균 노동과 동등하다면, 그는 하루 노동 시간 중 평균 6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노동하는 셈이다.

 

노동력의 현실적 가치는 단순히 육체적 생존을 위한 최저 한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발전 정도에 따라 상이하며, 육체적 욕구뿐만 아니라 ‘제2의 천성’으로 고착된 역사적·사회적 욕구로도 규정된다. 그러나 각국에서 지배적인 평균 임금은 주어진 시기에 일정한 크기를 가진다.

 

따라서 여타 모든 수입의 가치는 필연적인 한계를 지닌다. 이 한계는 사회적 총자본이 가동하는 총 노동량을 포괄하는 총 노동일 (본질적으로 평균 노동일과 일치함)에서 대상화된 가치 중 임금으로 배분된 부분을 차감한 잔여분과 항상 일치한다. 결국 이러한 가치적 한계는 미지불 노동을 체현하는 가치의 한계, 곧 잉여 노동량으로 규정된다.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필요 노동 부분이 육체적 생존을 위한 최저 한도라는 종국적 한계를 갖는다면, 잉여 노동이 체현하는 나머지 부분, 곧 잉여 가치를 표상하는 가치 부분의 한계는 노동일의 육체적 최대 한도로 규정된다. 다시 말해, 잉여 노동의 한계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 및 재생산하면서 제공할 수 있는 하루 총 노동 시간의 한계로 결정된다.

 

본 고찰의 대상은 매년 새로이 투하된 총노동이 구현하는 가치의 분배이므로, 노동일의 실제 길이가 육체적 최댓값으로부터 어느 정도 편차를 보이는가에 관계없이 이를 불변의 크기로 간주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전제한다.

 

그러므로 잉여 가치를 구성하며 향후 이윤과 지대로 분할될 수 있는 가치 부분의 절대적 한계는 주어져 있으며, 이는 노동일 중 지불 노동을 초과하는 미지불 부분, 곧 총생산물 가치 중 잉여 노동이 실현된 가치 부분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한계 내에서 규정되는 잉여 가치를 총 투하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한 것이 이윤이라면, (이는 제1편에서 규명된 바와 같이) 이윤의 절대량은 본질적으로 잉여 가치량과 동일하다. 따라서 이윤의 한계 또한 잉여 가치의 한계와 마찬가지로 법칙적으로 규정된다.

 

이윤율의 크기 역시 상품의 가치로 규정되는 일정한 한계 내에 제약된다. 이윤율은 총 잉여 가치와 생산에 투하된 사회적 총자본 사이의 비율로 정의된다. 가령 투하 자본이 500이고 창출된 잉여 가치가 100이라면, 이윤율의 절대적 한계는 20%로 확정된다.

 

다른 각종 생산 부문에 투하된 자본들 사이에서 사회적 이윤이 일반 이윤율에 따라 배분되면, 상품의 가치와 불일치하는 생산 가격이 형성된다. 이 생산 가격은 시장 가격의 변동을 규제하는 현실적 평균이다. 그러나 가치와 가격 사이의 이러한 편차가 가치로 규정되는 가격 원리나 이윤의 법칙적 한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에 소비된 자본과 내포된 잉여 가치의 합과 같다면, 생산 가격은 그 상품에 소비된 자본 k에 일반 이윤율 (예: 20%)에 따라 분배된 잉여 가치 귀속분을 가산한 값으로 결정된다. 이때 이윤율은 사회적 총자본으로 창출된 총 잉여 가치와 그 자본 가치 사이의 객관적 비율로 결정된다. 따라서 이윤율이 10%나 100%가 아닌 20%로 나타나는 것은 자본 총량과 잉여 가치 총량 사이의 필연적인 경제적 관계로 인한 것이다.

 

가치가 생산 가격으로 전환되는 원리는 이윤의 한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을 구성하는 각종 개별 자본들 사이의 이윤 분배 방식을 변경시킬 뿐이다. 곧, 총자본 내에서 각 개별 자본이 차지하는 크기에 비례하여 사회적 총이윤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시장 가격은 규제적 생산 가격으로부터 상하로 이탈할 수 있으나, 이러한 변동은 장기적으로 상쇄된다. 노동 생산성의 변화에 따른 가치 변동이나 자연적·사회적 재해로 인한 생산의 교란 요인을 제외하고 장기간의 가격 추이를 추적하면, 규제적 평균으로서의 생산 가격과 현실적 시장 가격 사이의 편차 한계가 매우 협소하며 그 차이들이 규칙적으로 상쇄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케틀레가 사회 현상에 대해 지적한 것과 동일한 선상에서, 개별적 변동을 관통하는 규제적 평균의 지배 법칙이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품 가치가 생산 가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어떠한 장애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대는 차액 지대의 형태로 귀착된다. 곧, 지대는 규제적 생산 가격이 특정 자본가에게 부여하는 초과 이윤을 소멸시키는 선으로 한정되며, 이 초과 이윤은 토지 소유자에게 전유된다.

 

따라서 이 경우의 지대는 일반 이윤율이 생산 가격을 규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별 이윤율 간의 편차 내에서 자신의 확정적인 가치 한계를 설정하게 된다.

 

토지 소유가 상품 가치의 생산 가격으로 전환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여 절대 지대를 발생시킨다면, 이 절대 지대는 토지 생산물의 가치가 생산 가격을 초과하는 초과분으로 제한된다. 곧, 토지 생산물에 체현된 잉여 가치가 일반적 이윤율에 따라 자본의 몫으로 귀속되는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만큼이 절대 지대의 한계를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이 차액은 절대 지대의 한계를 이루며, 지대는 본질적으로 상품에 포함된 기존의 잉여 가치 중 특정 부분의 전용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각종 생산 부문에서 잉여 가치가 평균 이윤으로 균등화되는 과정이 인위적·자연적 독점, 특히 토지 소유의 독점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 독점의 영향을 받는 상품이 생산 가격과 가치를 초과하는 독점 가격을 형성하게 되더라도, 상품 가치로부터 규정되는 근본적인 한계가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상품에 설정된 독점 가격은 여타 상품 생산자가 취득할 이윤의 일부를 독점 상품으로 이전시킬 따름이다. 이는 각 생산 부문 간의 잉여 가치 배분에 국부적인 편차를 야기할 뿐, 사회 전체의 잉여 가치 총량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 자체를 변경시키지는 못한다.

 

독점 가격이 설정된 상품이 노동자의 필수 생활 수단의 일부라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보전받는다는 전제하에 이는 임금 인상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잉여 가치를 감소시킨다. 또한 독점 가격은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하락시킬 수도 있으나, 이는 기존 임금이 육체적 최저 한도를 상회하고 있었을 경우에만 실현된다. 이 상황에서 독점 가격은 실질 임금, 곧 노동자가 동일한 노동량의 대가로 획득하는 사용 가치의 양을 삭감하거나 타 자본가들의 이윤을 공제함에 따라 지불된다.

 

독점 가격이 상품 가격의 통상적인 규제 체계에 편차를 일으킬 수 있는 한계는 확정되어 있으며, 이는 수학적으로 정확히 산출될 수 있는 영역 내에 존재한다.

 

새로 부가되어 수입으로 온전히 분해되는 상품 가치의 분할이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 (또는 임금과 잉여 가치) 사이의 비율에 따라 규제적 한계가 설정되듯, 이 잉여 가치가 이윤과 지대로 분할되는 과정 역시 이윤율의 균등화를 지배하는 법칙들에 의거하여 그 한계가 규정된다.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의 분할에 있어 평균 이윤은 두 범주의 합계를 구성하는 규제적 한계가 된다. 평균 이윤은 두 범주 간에 분할될 확정적 가치 총액을 제공하며, 이는 그들이 점유할 수 있는 가치의 전체를 형성한다.

 

특정 분할 비율은 우연적 성격을 띠며, 전적으로 경쟁 관계에 입각하여 규정된다. 일반적인 경우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면 시장 가격은 규제적 평균 가격에 수렴하며 경쟁의 영향력이 소멸되지만, 이 분할 과정에서만큼은 경쟁이 유일한 결정 인자로 작용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생산 요소인 자본에 귀속되는 잉여 가치분을 해당 생산 요소의 두 주체, 곧 화폐 소유자와 기능 자본가 사이에서 분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 평균 이윤의 분할이 일정한 법칙적 한계를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품 가치의 구성 요소로서 평균 이윤이 갖는 내적 한계 자체를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이는 기업의 두 동업자가 외부적 사정에 입각하여 이윤을 불균등하게 분할하더라도, 이윤 총량의 한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따라서 상품 가치 중 생산 수단의 가치에 새로 부가된 노동을 대표하는 부분이 여러 요소로 분할되어 상호 독립적인 수입 형태를 취한다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임금·이윤·지대를 가치 형성의 독립적 원천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곧, 상품의 규제적 가격 (자연 가격 또는 필요 가격) 자체가 이들 개별 수입의 합계나 총계로부터 사후적으로 도출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불변 가치를 차감한 상품 가치가 본래 하나의 총체로서 세 부분으로 분할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임금·이윤·지대의 가격이 각각 독립적으로 결정된 후 이들의 합계로부터 상품 가격이 비로소 형성된다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상품의 가치는 이미 주어진 전제된 크기이며, 임금·이윤·지대 사이의 상대적 비율이 어떠하든 이들의 합계는 가치 총액에 구속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그릇된 견해는 임금·이윤·지대를 각각 독립적인 가치량으로 상정하고, 이들의 총합이 역으로 상품의 가치액을 창출하거나 제한하며 결정한다고 본다.

 

이처럼 임금·이윤·지대가 상품 가격을 형성한다는 논리는 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가 표현되는 부분뿐만 아니라, 불변 가치 부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임이 처음부터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불변 가치를 구성하는 상품들의 가치 역시 결국 임금·이윤·지대의 총액으로 분해될 것이라고 전제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불변 가치 부분의 독립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논리적 귀결에 따르면 가치 개념은 실질적인 의미를 모두 상실하게 된다. 결국 남는 것은 오직 노동력, 자본, 토지의 소유자에게 특정한 화폐액이 지불된다는 사실에 근거한 가격이라는 관념뿐이다.

 

그러나 화폐란 무엇인가. 화폐는 사물이 아니라 가치의 특정한 표현 형태이기에 이미 가치의 존재를 전제한다. 따라서 일정량의 금이나 은이 생산 요소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거나, 이 요소들이 관념 속에서 금·은의 특정량과 등치된다고 상정해 보더라도 가치 규정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금과 은 또한 여타의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다. (계몽된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간파한 것을 두고 커다란 성취로 여긴다). 따라서 금과 은의 가격 역시 임금·이윤·지대로부터 결정된다는 논리에 귀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임금·이윤·지대가 일정량의 금·은과 등치된다는 사실만으로는 이들의 가치를 규정할 수 없는 형국이 된다.

 

이는 상품 가치를 측정할 척도인 금과 은의 가치 자체가 여타 상품의 가치와 무관하게 임금·이윤·지대로부터 선행적으로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임금·이윤·지대의 가치가 일정량의 금·은과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임금·이윤·지대가 그 자체의 수량적 표현과 동일하다고 말하는 순환 논리에 불과하다.

 

먼저 임금을 고찰해 보자. 이러한 가치 구성적 견해 하에서도 노동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금을 규정하는 가격, 곧 임금의 시장 가격이 변동하는 중심축이 되는 가격은 과연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에 대해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으로부터 규정된다는 가설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란 곧 자본 측의 수요를 의미하며, 따라서 노동 수요는 자본의 공급과 동일시된다. 결국 자본의 공급을 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본의 실체가 무엇인지가 선행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자본의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 현상 형태상 자본은 화폐와 상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화폐는 상품의 한 형태에 불과하므로, 결국 자본은 상품의 총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 구성설의 전제에 따르면, 상품 가치는 선차적으로 그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가격, 곧 임금으로부터 규정된다. 이 논리 체계에서 임금은 상품 가격을 형성하는 근원적 요소로 전제되어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의 가격은 자본 총량과 가용 노동량 사이의 비율로부터 규정되어야 한다. 이때 자본의 가격은 자본을 구성하는 상품들의 가격 합계와 일치하며, 노동에 대한 자본의 수요는 곧 자본의 공급량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자본의 공급은 일정 가격을 지닌 상품량의 공급과 일치하며, 이 가격은 선차적으로 노동의 가격으로부터 규정된다. 또한 노동의 가격은 이번에는 상품 가격 중 노동자의 노동과 교환되어 지급되는 가변 자본 부분과 등가 관계를 형성한다.

 

이 가변 자본을 구성하는 상품들의 가격 또한 선차적으로 노동의 가격으로부터 결정되는데, 이는 해당 상품들의 가격이 임금·이윤·지대라는 개별 가격들의 합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임금을 규정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자본을 상정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자본 가치 자체가 이미 부분적으로 임금으로부터 규정되는 종속적 변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쟁 원리를 도입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경쟁은 노동의 시장 가격을 등락시킬 뿐이다. 그러나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한다고 전제한다면, 이때의 임금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규정되는가. 이를 경쟁의 결과라 할 수는 없다. 이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평형 상태란 경쟁이라는 상반된 두 힘이 상쇄되어 그 작용을 멈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쟁으로부터 규제되는 일시적 가격이 아니라, 도리어 경쟁을 규제하는 임금의 본원적 가격, 곧 노동의 자연 가격을 규명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의 필요 가격, 곧 자연 가격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필수 생활 수단에 기반하여 결정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 수단 또한 엄연히 가격을 지닌 상품들이다.

 

결과적으로 노동 가격은 필수 생활 수단의 가격으로부터 규정되는 반면, 생활 수단의 가격은 여타 상품과 마찬가지로 다시 노동 가격으로부터 규정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곧 생활 수단의 가격을 매개로 규정되는 노동 가격은 결국 노동 가격 그 자체로부터 규정된다는 순환 논리에 빠지게 된다.

 

결국 해당 논리 체계에서 노동의 가격이 어떠한 원리로 규정되는지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는다. 노동은 상품으로 간주되기에 항상 가격을 수반하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의 가격을 논증하려면 먼저 가격 일반의 본질이 규명되어야 함에도, 위와 같은 순환적 접근 방식으로는 가격 일반에 대한 어떠한 정의도 도출할 수 없게 된다.

 

설령 노동의 자연 가격이 상술한 방식으로부터 규정된다고 상정할지라도, 상품 가격의 두 번째 구성 요소인 평균 이윤의 규정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곧 일반적인 조건에서 개별 자본이 수취하는 이윤은 무엇으로부터 규정되는가. 평균 이윤은 평균 이윤율로부터 규정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평균 이윤율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규정되는가.

 

자본가 간의 경쟁을 그 원인으로 지목할 수도 있겠으나, 경쟁은 이미 이윤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곧, 경쟁은 동일하거나 상이한 생산 부문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이윤율과 이윤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다. 경쟁은 오직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침에 따라서만 이윤율에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

 

경쟁이 실현하는 기능은 동일 생산 부문의 생산자들이 상품을 단일한 가격으로 판매하게 수렴시키고, 생산 부문 간에는 생산자들이 이미 노동 가격으로부터 선차적으로 규정된 상품 가격에 동일한 비율의 이윤을 부가하여 판매하도록 강제하는 것에 국한된다. 곧 경쟁의 본질적 역할은 상이하게 존재하는 이윤율을 균등화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불균등한 이윤율을 균등화하기 위해서는 이윤이 이미 상품 가격의 구성 요소로서 선행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경쟁은 이윤을 창출하는 원천이 아니며, 균등화가 달성되었을 때 나타나는 이윤율의 수치를 변동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그 수준 자체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필요 이윤율, 곧 자연 이윤율을 고찰하는 목적은 경쟁의 외적 운동과는 무관하게 경쟁을 규제하는 근본적인 이윤율을 규명하는 데 있다. 평균 이윤율은 경쟁하는 자본가들의 상호 작용이 평형을 이룰 때 비로소 가시화된다. 경쟁은 이러한 힘의 평형 상태를 창출할 수는 있으나, 그 일치점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인 이윤율 수치까지 생성해낼 수는 없다.

 

힘의 평형이 달성되었을 때 일반 이윤율이 왜 10%나 20%, 또는 100%라는 일정한 수치를 기록하는가. 이는 경쟁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은 이러한 표준적 수치로부터 편차를 초래하는 이탈 요인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곧 경쟁은 각 자본이 그 규모에 비례하여 균등한 이윤을 확보하도록 하는 상품 가격을 형성시키지만, 이 이윤의 절대적 크기 자체는 경쟁과 무관하다. 경쟁은 단지 모든 편차를 기존의 수치로 끊임없이 수렴시킬 따름이다.

 

개별 주체 간의 경쟁은 각 생산자로 하여금 자신의 상품을 타인과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도록 강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제 기제만으로는 해당 가격이 왜 10, 20, 또는 100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로 규정되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 곧, 경쟁은 가격의 균등화를 강제할 뿐, 가격의 절대적 수준을 규정하는 본질적 요인은 규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윤율과 이윤 그 자체는 임금에 기초하여 규정되는 상품의 부분 가격에 부가되는 하나의 가산액이며, 이는 불분명한 원리에 근거하여 규정된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경쟁의 논리가 시사하는 바는 오직 이 이윤율이 기존의 크기로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일반 이윤율과 ‘필요 가격’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을 때 이미 이 전제했던 바이다.

 

지대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불합리한 논의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상술한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하면, 이윤과 지대는 결국 임금에 기초하여 선차적으로 규정되는 상품 가격에 부가된, 임의적인 법칙에 근거하여 규정되는 단순 가산액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제학자가 경쟁 원리를 규명해야 함에도, 도리어 경쟁이라는 기제가 경제학자들의 모든 논리적 모순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도되어 이용되고 있다.

 

이윤과 지대가 유통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곧 판매를 매개로 발생하는 가격 구성 성분이라는 허구적 관념을 배제한다면 사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유통 영역은 이전에 그 과정에 투입되지 않은 가치를 스스로 산출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할 때, 문제는 단순한 형태로 귀결된다.

 

임금에 기초하여 규정되는 상품 가격의 기초가 100이고, 여기에 임금 지불액의 10%에 해당하는 이윤과 15%에 해당하는 지대가 가산된다고 상정하자. 이 경우 임금·이윤·지대의 합계로 규정되는 상품 가격은 125가 된다. 그러나 25라는 가산액은 상품의 판매 과정 자체에서 발생할 수 없다. 모든 거래 당사자가 100의 가치를 지닌 상품을 서로에게 125에 판매한다면, 이는 그들이 실질적으로 모두 100에 거래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 증식 문제는 유통 과정을 배제한 채 고찰되어야만 한다.

 

125가 세 가지 요소로 분할되는 구조라면, 자본가가 상품을 125에 판매한 뒤 노동자에게 100을, 자신에게 10을, 토지 소유자에게 15를 배분하는 방식은 실질적인 분배 비율에서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이 경우 노동자는 전체 생산물 가치의 4/5 (= 100)를 수취하며, 자본가는 그것의 2/25 (=10)를, 토지 소유자는 그것의 3/25 (=15)를 각각 점유하게 된다. 자본가가 상품을 가치 원가인 100이 아닌 125에 판매한다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노동자에게 자신의 노동이 체현된 생산물 중 4/5만을 지급하는 것과 동일한 귀결을 낳는다.

 

결과적으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80을 지급하고 나머지 20을 보류하여 그중 8을 본인이 수취하고 12를 토지 소유자에게 배분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상황이 전개된다. 다만 이 경우 자본가는 상품을 명목상의 인상 없이 그 가치대로 판매한 셈이 된다. 이는 앞선 전제에서 사실상 이윤과 지대라는 가격 가산액이 임금 가치에 기초하여 규정되는 상품의 본원적 가치와는 무관한, 사후적인 가격 인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회적인 논의를 거쳐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곧 해당 사고 체계 내에서 ‘임금’ (=100)이라는 용어는 특정 노동량을 표현하는 화폐액인 생산물의 가치와 동일시되지만, 이 가치는 실제 지급되는 현실적 임금과는 구별되며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의 잉여분을 남긴다. 다만 여기서 발생하는 잉여분은 가치의 실질적 증대가 아닌, 가격에 대한 명목상의 부가에 근거하여 형성될 뿐이다.

 

따라서 임금이 100에서 110으로 상승할 경우, 기존의 첨가 비율을 적용하면 이윤은 11, 지대는 16 1/2로 산출되며 상품 가격은 총 137 1/2이 된다. 이러한 수치 변화에도 각 요소 간의 상대적 가산 비율은 불변한다. 그러나 이 가치 분할이 항상 임금에 대한 일정 비율의 명목적 부가 형식으로 집행되기 때문에, 상품 가격은 임금의 변동에 종속되어 등락한다.

 

논의의 초기 단계에서 임금은 상품 가치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되나, 분석이 진행됨에 따라 상품 가치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러한 비합리적인 우회적 논증을 거치더라도 사태의 본질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지점으로 귀결된다. 곧 상품의 가치는 그 안에 투입된 노동량에 근거하여 규정되고, 임금의 가치는 노동자의 필수 생활 수단 가격에 근거하여 규정되며, 이 임금을 상회하는 가치 잉여분이 이윤과 지대를 형성한다는 원칙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상품의 전체 가치에서 생산에 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치를 차감한 잉여분, 곧 상품 생산물에 대상화된 살아있는 노동량이 창출한 가치량은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의 자립적이고 상호 독립적인 수입 형태로 분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 분해의 실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가시적인 표면과 그 현상에 매몰된 경제 주체들의 관념 속에서 본래의 결정 관계가 전도된 현상으로 나타난다.

 

어떤 상품의 총가치가 300이며 이 중 200이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생산 수단 (또는 불변 자본의 요소들)의 가치라고 상정한다면, 생산 과정에서 이 상품에 새롭게 부가된 가치의 총액은 100으로 산출된다. 이 100이라는 새로운 가치는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 형태의 수입으로 분할될 수 있는 가치의 전부다. 따라서 임금을 x, 이윤을 y, 지대를 z라고 정의할 때, x+y+z의 합계는 이 사례에서 항상 100이다.

 

그러나 산업 자본가와 상인, 금융업자 및 속류 경제학자들의 관념 속에서 사태의 전개 양상은 완전히 전도된다. 그들에게 있어 상품 가치에서 생산 수단 소모분을 차감한 잉여분이 100이라는 확정된 가치로 존재하고, 이 100이 사후적으로 x, y, z로 분배된다는 사실은 성립하지 않는다. 곧, 가치의 총량이 구성 요소의 분배를 규정한다는 본질적 결정 관계는 그들의 관념 체계에서 부정된다.

 

오히려 상품 가격은 단순히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 가치량에 근거하여 구성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구성 요소들은 상품 가치와 무관하게 상호 독립적으로 결정되며, 개별적으로 확정된 x, y, z의 합계로부터 비로소 상품의 전체 가치량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성 요소들의 합계는 실제 가치 형성 한계인 100과는 무관하게 그보다 크거나 작을 수 있는 가변적인 수치로 나타난다. 곧, 상품의 가치는 가치 형성 요소들의 합계에 근거하여 산출된다.

 

이와 같은 결정 관계의 전도는 다음과 같은 근거들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첫째, 상품의 가치 구성 부분들이 개별적인 수입으로서 상호 대립하며, 이 수입들이 노동·자본·토지라는 성격이 상이한 세 가지 생산 요소와 결부되어 외견상 그 요소들로부터 생성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노동력·자본·토지의 소유는 상품 가치의 각 구성 부분을 해당 소유자에게 귀속시켜 수입으로 전환하게 하는 사회적 형식일 뿐이다. 가치는 수입으로의 전환 과정을 거쳐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수입의 형태를 취하기 이전에 이미 객관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이 세 부분의 상대적 크기가 서로 상이한 범주의 법칙들에 근거하여 규정된다는 점, 그리고 그 법칙들이 실제로는 상품 가치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그에 제한된다는 사실이 현상의 표면에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상술한 전도된 허상을 필연적으로 더욱 강화한다.

 

둘째로,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제Ⅲ권 제11장) 임금의 일반적 상승 또는 저하는 여타 조건이 일정할 때 일반 이윤율을 반대 방향으로 변동시켜 각 상품의 생산 가격을 변화시킨다. 곧, 개별 생산 분야의 자본 구성에 따라 어떤 상품의 생산 가격은 인상되고 다른 상품의 생산 가격은 인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로 인해 특정 생산 분야에서 임금 상승이 평균 가격의 등귀로, 임금 저하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실증적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가격 변동이 실제로는 임금과 독립적인 상품 가치에 규정되며 배후에서 규제된다는 본질적 연관성은 현상적 영역에서 포착되지 않는다.

 

반대로, 임금 상승이 특정 생산 분야의 특수한 사정에 기인한 국부적 현상일 경우, 이에 대응하여 해당 상품 가격의 명목적 등귀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임금이 불변인 타 상품에 대비한 해당 상품의 상대적 가치 증가는 여러 생산 분야 간 잉여 가치의 균등 분배 과정에서 나타난 국부적 일탈에 대한 반작용이자, 특수 이윤을 일반 이윤율로 균등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현상적 파악은 여전히 임금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곧, 상술한 두 사례 모두에서 임금이 상품 가격을 결정한다는 현상적 관계는 파악되지만, 그 관계 이면에 은폐된 근본적 원인은 현상적 파악의 임계를 상회한다.

 

나아가 노동의 평균 가격, 곧 노동력의 가치는 필수 생활 수단의 생산 가격에 규정되므로, 후자인 생산 가격의 등락에 따라 전자인 노동력 가치의 등락이 수반된다. 여기서도 임금과 상품 가격 사이의 상관관계가 ‘실증적으로’ 확인되지만, 이 과정에서는 원인이 결과로, 결과가 원인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시장 가격의 운동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곧, 평균 이상의 임금 상승은 호황기의 특징인 생산 가격 이상의 시장 가격 상승에 대응하며, 이후 발생하는 평균 이하의 임금 하락은 생산 가격 이하의 시장 가격 하락 국면으로 수렴한다.

 

생산 가격이 상품 가치에 규정된다면, 시장 가격의 진동적인 운동을 배제할 경우 임금 상승 시 이윤율이 저하하고, 임금 하락 시 이윤율이 상승한다는 반비례 관계가 실증적으로 항상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윤율은 임금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불변 자본의 가치 변동만으로도 변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임금과 이윤율은 상호 반대 방향이 아닌 동일한 방향으로 증감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잉여 가치율과 이윤율이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생활 수단의 가격 상승으로 인해 임금이 등귀하더라도, 노동 강도의 강화나 노동일의 연장에 기반하여 이윤율은 불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현상적 여러 형태는 가치 구성 부분들이 취하는 자립적이고 전도된 형태에 기인한 환각, 곧 상품의 가치가 임금 또는 임금과 이윤의 합계에 규정된다는 환각을 확증한다. 노동의 가격과 노동이 창출한 가치가 현상적으로 일치하는 것처럼 오인된다면, 이러한 오인은 필연적으로 이윤과 지대에도 동일하게 관철된다. 결과적으로 이윤과 지대의 가격, 곧 그 화폐적 표현은 실질적인 노동과 노동이 창출한 가치와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규정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셋째로, 상품의 가치 (또는 이와 외관상으로만 독립적인 생산 가격)가 시장 가격의 부단한 변동과 상쇄에 기반하여 도출되는 규제적 평균 가격으로서가 아니라, 현상적 수준에서 항상 직접적으로 시장 가격과 일치한다고 상정하자. 아울러 재생산이 상시 동일한 조건하에 수행됨에 따라, 자본의 모든 구성 요소에 대한 노동 생산성이 불변의 상태를 유지한다고 상정하자.

 

나아가 마지막으로 상품 가치 중 생산 수단의 가치에 새로운 노동이 부가되어 개별 생산 분야에서 형성되는 가치 부분, 새로 형성되는 가치가 항상 동일한 비율로 임금, 이윤, 지대로 분할된다고 상정하자. 곧 현실적으로 지불되는 임금과 실현되는 이윤 및 지대가 항상 직접적으로 노동력의 가치, 그리고 총 잉여 가치 중 평균 이윤율에 따라 총자본의 각 기능 자본에 배분되는 잉여 가치분, 그리고 이러한 토대 위에서 규정적으로 규제되고 있는 한계 내의 지대와 언제나 직접적으로 일치한다고 전제하자.

 

요컨대 사회적 가치 생산물의 배분과 생산 가격의 규정이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수행되되, 경쟁에서 발생하는 편차가 완전히 배제된 정적인 상태에서 진행된다고 상정하자.

 

이러한 전제하에서 상품의 가치는 불변하며 또 불변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고, 상품 가치 중 수입으로 분해되는 부분 역시 고정된 크기를 유지하며 또 항상 불변의 크기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주어진 불변의 가치 부분은 언제나 동일한 비율로 임금·이윤·지대로 분할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하에서조차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운동은 필연적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 곧, 사전에 주어진 가치량이 상호 독립적인 수입 형태를 띠는 세 부분으로 분해되는 과정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가치량이 임금·이윤·지대라는 각각 독립적으로 규정된 구성 요소들의 합계로 형성되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허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개별 자본과 그 상품 가치의 현실적 운동 과정에서 상품 가치가 가치 분해의 전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분해 산물인 구성 부분들이 상품 가치를 규정하는 선행적 전제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분석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상품의 비용 가격은 개별 자본가에게 주어진 크기로서 나타나며 현실의 생산 과정에서도 언제나 확정된 크기로 나타난다. 이때 비용 가격은 불변 자본 (투하된 생산 수단)의 가치와 노동력 가치의 합에 해당한다. 비록 노동력의 가치가 생산 당사자에게는 ‘노동의 가격’이라는 불합리한 형태로 변형되어 임금이 노동자의 수입으로 오인될지라도, 노동의 평균 가격은 엄연히 주어진 크기로 존재한다. 이는 노동력의 가치가 여타 상품과 마찬가지로 그 재생산에 소요되는 노동 시간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상품 가치 중 임금으로 분해되는 이 가치 부분은 그것이 임금이라는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 곧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그 자신의 생산물 중 일부를 임금이라는 현상적 형태로 지불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에 상응하는 등가를 실제로 생산한다는 사실, 곧 노동자의 일일 또는 연간 노동 중 일부가 자신의 노동력 가격에 포함된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임금은 그에 대응하는 등가가 생산되기 이전에 이미 계약에 의거하여 확정된다. 이처럼 임금은 상품과 그 가치가 형성되기 전부터 크기가 규정되어 있는 가격 요소이자 비용 가격의 구성분이다. 따라서 임금은 상품의 총가치로부터 사후적으로 분리된 부분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총가치를 선제적으로 규정하는 기존의 크기, 곧 가격과 가치를 형성하는 독립적 요소로서 나타나게 된다.

 

임금이 상품의 비용 가격에서 수행하는 것과 동일한 기능을 생산 가격에서는 평균 이윤이 담당한다. 생산 가격은 비용 가격과 투하 자본에 대한 평균 이윤의 합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균 이윤은 자본가 자신의 관념과 계산 속에서 하나의 규제적 요소로서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 곧, 평균 이윤은 서로 다른 투자 분야 간의 자본 이동을 규정지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재생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판매와 계약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

 

평균 이윤이 이와 같은 현실적 의미를 지니는 한, 이는 이미 확정된 크기로 간주된다. 사실상 평균 이윤의 크기는 일정 생산 분야에서 창출된 가치나 잉여 가치와는 무관하며, 해당 분야 내 각각의 개별 투자로 생산된 가치 및 잉여 가치와는 더더욱 무관하다. 따라서 현상적 외관상 평균 이윤은 가치 분할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도리어 상품 가치와는 독립적으로 생산 과정 이전에 주어지는 크기이자 그 자체가 상품의 평균 가격을 규정하는 요인으로 나타난다. 곧, 평균 이윤은 가치를 형성하는 하나의 독립적 요소로 포착되는 것이다.

 

나아가 잉여 가치가 그 각종 부분들로 상호 자립적인 형태로 분할됨에 따라, 이는 한층 더 구체적인 양태로 상품의 가치 형성 전제로서 부각된다. 평균 이윤의 일부인 이자는 기능 자본가와 대립하는 형식을 취하며, 상품 및 그 가치 생산에 이미 선결된 요소로서 독립적인 위상을 점한다. 이자율이 변동하더라도 특정 시점의 개별 자본가에게 이자는 이미 주어진 크기이며, 이 확정된 크기가 개별 상품의 비용 가격에 산입되는 것이다.

 

농업 자본가의 차지료나 기타 기업가의 영업 장소 임대료 형태를 띠는 지대 역시 이와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잉여 가치의 분해 산물인 이 부분들은 개별 자본가에게 비용 가격의 요소로서 사전 규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잉여 가치의 형성 요소들로 전도되어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임금이 상품 가격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이듯, 이들 또한 상품 가격을 형성하는 개별적인 구성 성분으로 현상된다.

 

상품 가치의 분해 산물들이 가치 형성의 전제로 부단히 현상되는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여타의 모든 생산 양식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생산물을 재생산할 뿐 아니라 그 생산 과정에 내재한 사회 경제적 관계 및 경제적 형태들까지 끊임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치의 결과물은 전제로, 전제는 다시 결과로 나타나는 순환이 반복된다. 개별 자본가는 이러한 동일 관계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명한 사실로 수용하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속되는 한, 새로 투입된 노동의 일부는 임금으로, 다른 일부는 이윤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지대로 부단히 분해된다. 이러한 분해 구조는 각 생산 요소 소유자들 사이의 계약 관계 속에 이미 전제되어 있으며, 이들의 상대적인 양적 비율이 변동하더라도 그 형식적 타당성은 유지된다. 가치 구성분들이 각기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며 대립하는 것으로 전제될 수 있는 이유는 그 현상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며, 역으로 그 현상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는 그것이 생산의 선결 조건으로서 부단히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증적 검증과 현상적 발현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자본가가 가치의 결정을 실효적으로 포착하게 되는 유일한 매개인 시장 가격은 그 크기에 있어 위와 같은 임금·이자·지대에 관한 사전 예상에 결코 종속되지 않는다. 곧, 시장 가격은 미리 약정된 이자나 지대의 고저에 의거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변동한다. 도리어 장기간에 걸친 시장 가격의 평균이 임금·이윤·지대의 개별적 평균치를 도출하며, 이 평균치야말로 시장 가격을 궁극적으로 규제하는 불변의 크기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으로 임금·이윤·지대가 가치 생산의 전제이자 개별 자본가의 비용 가격 및 생산 가격의 여건으로서 가치 형성의 구성 성분이라 한다면, 상품 생산에 투입되는 불변 자본의 가치 역시 가치 형성 요소로 간주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불변 자본은 이미 생산된 상품들과 그 가치들의 합계에 불과하다. 이 경우 우리는 여기에서 상품 가치가 다시 상품 가치를 형성하고 이끌어낸다는 불합리한 동어 반복에 직면하게 된다.

 

자본가가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인다면, 비록 자본가로서 그의 관심은 오직 사익과 이해타산적 동기에 국한될지라도, 그는 실무적 실증을 거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곧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은 타 생산 분야에 불변 자본의 일부로 귀속되며, 반대로 타 분야의 생산물은 자신의 생산 과정에 불변 자본으로서 유입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새로운 생산 과정에서 추가 가치가 임금·이윤·지대의 크기에 의거하여 형성되는 것으로 현상한다면, 이는 타 자본가의 생산물로 구성된 불변 자본 부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불변 자본의 가격과 상품의 총가치는 각기 다른 법칙에 의거하여 규제되고 서로 다른 원천에서 비롯된 독립적 가치 요인들인 임금·이윤·지대의 합산으로 도출된 가치 총액으로 귀착된다.

 

넷째로 상품의 가치 관철 여부나 가치 결정 그 자체에 대해 개별 자본가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가치의 결정은 이미 처음부터 자본가의 배후에서 그와 독립적인 관계들에 의거하여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는 각 생산 분야에서 규제적 평균 가격을 형성하는 것이 가치가 아니라, 가치와 구별되는 생산 가격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가치 결정 그 자체가 개별 생산 분야의 개별 자본가와 자본의 관심을 끌며 그들을 규제하는 것은, 노동 생산성의 상승 또는 저하에 따라 해당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이 감소 또는 증가하는 경우에 한정된다. 노동 생산성의 상승으로 필요 노동량이 감소할 경우 자본가는 기존 시장 가격하에서 초과 이윤을 확보할 수 있으며, 생산성 저하로 인해 노동량이 증가할 경우에는 상품 가격의 인상이 강제된다. 이는 각각의 단위 생산물 또는 개별 상품에 배분되는 더 큰 규모의 임금, 불변 자본, 이자의 몫이 할당되기 때문이다.

 

가치 결정이 개별 자본가의 실무적 관심사가 되는 것은, 그것이 해당 상품에 대한 자신의 생산비를 등귀 또는 하락시키는 범주 내로 한정되며, 결과적으로 가치 결정의 변동이 그를 시장 내에서 예외적인 지위에 놓이게 하는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와는 반대로 임금·이자·지대는 개별 자본가에게 이윤 중 기능 자본가로서 자신에게 귀속되는 몫인 기업가 이득을 실현할 수 있는 가격의 규제적 한계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재생산을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상품 판매 가격의 규제적 저지선으로 나타난다. 임금·이자·지대에 준거하여 확정된 비용 가격을 상회하여 평균적 또는 그 이상의 기업가 이득을 판매 가격을 매개로 얻을 수 있는 한, 상품 판매를 거쳐 그 안에 체현된 실제 가치와 잉여 가치를 실현하는가의 여부는 자본가에게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따라서 불변 자본 부분을 제외하면 임금·이자·지대는 상품 가격의 한계를 규정하는 요소이자, 결과적으로 상품 가격을 형성하고 규정하는 원천적 성분으로 현상한다. 가령 자본가가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나 표준적 수준 이하로 삭감하거나, 자본을 저율로 차입하거나, 또는 지대를 통상 수준 미만으로 지불하는 데 관철한다면, 그는 자신의 생산물을 실제 가치나 일반적 생산 가격 이하로 판매하는 행위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는 상품에 포함된 잉여 노동의 일부를 타인에게 무상으로 이전하는 결과가 됨에도, 자본가에게는 문제시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불변 자본 부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가령 특정 산업가가 원료를 그 생산 가격 이하로 확보할 수 있다면, 완성 상품에 포함된 해당 원료 가치 구성 부분을 생산 가격 이하로 판매하더라도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 상품 가격 중 등가에 의거하여 지불 및 보충되어야 하는 구성 요소들을 상회하는 잉여분이 유지되거나 증대되는 한, 자본가의 기업가 이득 역시 불변하거나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크기의 가격으로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생산 수단의 가치를 제외하면, 가격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요소로서 개입하는 실질적인 성분은 오직 임금·이자·지대뿐이다. 따라서 자본가에게는 이 요소들이 상품 가격을 규정하는 직접적인 원천으로 현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가 이득은 맹목적 경쟁 관계에 근거하여 규정되는 시장 가격이 상기한 가격 형성 요소들로 구성된 상품의 내재적 가치를 상회할 때 발생하는 잉여분으로 나타난다. 또는 그 자체가 가격 형성 요소로서 시장 가격에 포함되는 한, 그것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경쟁에 준거하여 규정되는 유동적 파생물로 간주된다.

 

개별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나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임금·이자·지대의 전제된 크기는 불변의 규제적 수치로 취급된다. 여기서 불변이란 수치 자체의 고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경제 주체에게 해당 요소들이 이미 주어진 조건으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변동하는 시장 가격에 대해 일정한 하한선을 형성하고 있음을 뜻한다. 가령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주어진 크기의 임금·이자·지대를 지불하면서도 상품을 일반적 시장 가격 이하로 판매하여 적정한 기업가 이득을 실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미발달하여 임금과 지대는 낮으나 자본 이자가 높은 국가와, 반대로 임금과 지대는 명목상 높지만 이자가 낮은 국가가 있다고 상정하자. 전자의 자본가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동과 토지를 투입하는 반면, 후자의 자본가는 더 많은 자본을 생산에 운용하게 된다. 이처럼 상이한 조건에 놓인 두 자본가 사이의 경쟁 구도를 파악하는 데 있어 임금·이자·지대라는 요소는 결정적인 분석 지표가 된다.

 

결국 이론적 분석과 실천적 이해타산이 공히 시사하는 바는, 상품 가격이 임금·이자·지대, 곧 노동·자본·토지의 가격에 준거하여 규정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이러한 가격 구성 요소들이 실제 시장의 가격 형성 과정에서 실질적인 규제 요인들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 하나의 구성 요소가 남아 있다. 이는 미리 전제되는 고정적 요소가 아니라 상품의 시장 가격에서 파생되는 요소로, 임금·이자·지대의 합계로 형성된 비용 가격을 상회하는 잉여분을 의미한다. 이 제4의 요소는 개별적인 사례에서는 경쟁의 양상에 매개되어 규정되는 것으로 나타나며, 평균적인 관점에서는 장기간의 경쟁 과정을 거치며 규제되는 평균 이윤에 준거하여 규정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섯째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서는 새로이 투입된 노동이 체현하는 가치가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형태로 분할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관념적 전도는 해당 수입 형태의 성립 조건이 결여된 영역에서도 동일한 분할 논리를 적용하게 만드는데, 이는 이미 지대와 관련하여 고찰한 전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체 논외로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곧 모든 가치 형성 과정이 사후적 추측과 유추적 판단에 의거하여 이러한 수입 형태의 범주 안으로 포섭되고 있다.

 

이 경우 수입의 세 가지 형태가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독립적인 노동자, 예컨대 소농민이 자신을 위해 노동하고 생산물을 판매하는 경우를 상정하자. 그는 먼저 자신을 노동자로 고용하는 고용주인 자본가이자, 자신을 임차 농업가로서 상대하는 토지 소유자로 간주된다. 그는 노동자로서의 자신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자본가로서의 자신을 위해 이윤을 요구하며, 토지 소유자로서의 자신에게 지대를 지불하는 분열적 범주를 점유하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그에 상응하는 관계들을 일반적인 사회적 토대로 전제한다면 이러한 범주적 포섭은 타당성을 얻는다. 그가 자신의 잉여 노동을 취득할 수 있는 근거는 노동 자체가 아니라, 이 경우 항상 자본의 형태를 띠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생산물을 상품으로 생산하여 그 가격에 의존하는 한, 직접적인 시장 가격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추산은 상정될 수 있으며, 그가 가치로서 실현할 수 있는 잉여 노동량은 실제 투입된 노동의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일반적 이윤율에 준거하여 규정된다.

 

또한 일반적 이윤율에 준거하여 규정된 잉여 가치 할당량을 상회하는 잉여분이 존재한다면, 이 역시 투입한 노동량에 근거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잉여분은 오직 그가 토지 소유자라는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거해서만 그에게 귀속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부합하지 않는 생산 형태조차 자본주의적 수입 범주 내로 포섭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의 근거를 지니지만, 이로 인해 자본주의적 관계가 모든 생산 양식에 관통하는 자연적 조건이라는 착각은 더욱 공고해진다. 곧, 특수한 역사적 형태인 자본주의의 수입 배분 방식이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법칙으로 오인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을 노동자 자신의 노동 생산물 중 개인적 소비로 귀속되는 부분이라는 일반적인 기초로 전제하고, 이 몫을 자본주의적 한계로부터 해방시킨다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 곧, 현실적인 사회적 노동인 자기 노동의 생산력이 허용하는 역량 내에서, 그리고 인격의 최대한의 발달이 요구하는 수준에 맞춰 소비 지평를 확대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보험 및 준비 재원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욕구에 부응하여 재생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주어진 생산 조건 아래 필요한 수준으로 잉여 노동과 잉여 생산물을 재편해야 한다. 끝으로, 아직 노동할 수 없거나 더 이상 노동할 수 없는 노동 불능 상태의 사회 구성원들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 가용 인구가 항상 수행해야 하는 노동량을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 범주 내에 포괄하여 산입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임금과 잉여 가치, 그리고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에서 특수한 자본주의적 성격을 완전히 소거한다면, 임금·이자·지대·기업가 이득과 같은 기존의 형태들은 모두 소멸한다. 이 경우 형태들이 입각해 있던 외연은 사라지고, 모든 사회적 생산 양식에 관통하는 보편적 토대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태의 범주적 포섭은 봉건적 생산 양식과 같은 이전의 지배적 생산 체제에서도 확인된다. 본질적으로 봉건적 생산 양식에 부합하지 않으며 그 체제 외연에 존재하던 생산 관계들이 봉건적 관계의 범주 안으로 포섭된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일반 자유농 보유지’가 대표적인데, 이는 ‘기사 봉사 보유지’와 달리 실질적으로는 화폐 납부 의무만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오직 명목상으로만 봉건적 관계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기사 봉사 보유지’가 일정 기간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기사에게 수여된 토지였던 것과 달리, 이로부터 전환된 ‘일반 자유농 보유지’에는 그러한 봉사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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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생산 과정의 분석을 위하여

 

본 분석에서는 가치와 생산 가격의 차이를 도외시한다. 사회적 총자본의 연간 총생산물 가치를 고찰할 때, 개별 상품 수준에서 나타나는 가치와 생산 가격의 편차는 상쇄되어 소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생산물의 가치 구성과 그 배분 구조를 분석함에 있어 두 개념의 일치는 논리적 타당성을 지닌다.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는 상품에 체현된 잉여 가치가 분할되어 나타나는 특수한 형태(들)에 불과하다. 잉여 가치의 크기는 이들 분할 부분들의 합계에 대한 양적 한계를 설정하며, 따라서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합은 잉여 가치의 총계와 일치한다. 비록 상품에 포함된 잉여 가치 (잉여 노동)의 일부가 직접적으로는 평균 이윤 형성을 위한 균등화 과정에 참가하지 않음에 따라, 상품 가치의 특정 부분이 가격으로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첫째, 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상품이 불변 자본의 구성 요소가 될 경우 이는 이윤율의 상승으로 이어져 가치와 가격 사이의 편차를 상쇄한다. 반면, 해당 상품이 개인적 소비 수단으로서 수입을 매개로 소비될 경우에는 이윤과 지대가 더 많은 양의 생산물로 표현됨에 따라 사회적 등가성이 달성된다.

 

둘째, 이러한 불일치는 평균적인 운동 과정에서 상쇄되어 제거된다. 가치 형성 과정에서 제외되는 경우에라도 상품 가격으로 구체화되지 않는 잉여 가치 부분이 존재할 수 있으나, 전형적인 상태에서의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액은 총 잉여 가치를 초과할 수 없으며 다만 그보다 작을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전형적인 형태란 노동력 가치에 부합하는 임금 지불을 전제로 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독점 지대 또한 임금의 공제분으로부터 형성되는 특수한 형태가 아닌 한, 언제나 간접적으로는 잉여 가치의 일부로 귀착된다. 독점 지대가 차액 지대의 경우처럼 개별 생산 가격을 초과하는 초과분의 일부가 아니거나, 또는 절대 지대의 경우처럼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잉여 가치의 잉여분이 아닐지라도, 이는 여전히 당해 독점 상품과 교환되는 타 상품들에 체현된 잉여 가치의 일부를 구성한다. 곧, 독점 지대는 사회적 총 잉여 가치가 재분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전된 가치 형태다.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액은 그것들의 원천인 분할 이전의 이미 주어진 잉여 가치의 크기를 초과할 수 없다. 따라서 상품에 내포된 총 잉여 가치 (총 잉여 노동)가 가격으로 온전히 실현되는지 여부는 본 분석의 본질적 타당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실제로 잉여 노동은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는다.

 

노동 생산성의 끊임없는 변화로 인해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이 끊임없이 변동하며, 이에 따라 불리한 조건 아래에서 생산된 일부 상품은 필연적으로 개별 가치 이하로 판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윤과 지대의 합계는 실현된 잉여 가치 (잉여 노동)의 총량과 일치하며, 본 연구의 목적상 실현된 잉여 가치는 총 잉여 가치와 동일한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이윤과 지대는 실질적으로 실현되어 상품 가격에 산입된 잉여 가치에 해당하므로, 현실적 관점에서 이들은 가격의 구성 부분을 이루는 총 잉여 가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입의 제3의 형태인 임금은 언제나 자본의 가변적 구성 부분, 곧 생산 수단이 아닌 살아있는 노동력의 구매와 노동자에 대한 보상에 투입되는 부분과 일치한다. 가사 노동 (하인의 노동)과 같이 수입의 지출로 구매되는 노동은 임금·이윤·지대에서 사후적으로 지불되는 것이므로, 상품 가치의 원천적 구성 요소를 형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노동은 상품 가치의 본질적 구조를 분석하는 고찰 대상에서 제외된다.

 

임금은 노동자의 총 노동 시간 중 가변 자본의 가치, 곧 노동의 가격이 재생산되는 부분이 대상화된 결과다. 이는 상품 가치의 구성 부분 중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 또는 노동의 가격을 실질적으로 재생산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노동자의 총 노동 시간은 두 부분으로 분할된다. 전반부는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 수단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수행하는 부분으로, 이는 대가가 지불되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노동력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수적인 필요 노동에 해당한다.

 

노동 시간의 나머지 부분 전체, 곧 노동자가 임금 가치를 상회하여 수행하는 초과 노동 (초과 노동량) 전체는 잉여 노동이자 미지불 노동을 구성한다. 이는 생산된 총 상품 가치 중 잉여 가치 (및 초과 상품량)로 나타나며, 이 잉여 가치는 다시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라는 세분화된 명칭의 수입 형태로 분할된다.

 

따라서 상품 가치 중 노동자가 일정 기간 추가하는 총노동이 실현되는 부분 전체, 곧 연간 생산물의 가치 중 새로이 창출된 가치 전체는 임금의 가치, 이윤, 지대로 분할된다. 이는 총노동이 자신의 임금을 형성하는 필요 노동과, 이윤 및 지대로 분할되는 잉여 가치를 형성하는 미지불 잉여 노동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이 총노동 이외의 다른 어떠한 노동을 수행하지 않으며, 생산물 가치 중 임금·이윤·지대의 형태를 취하는 부분 전체 외에 다른 어떠한 가치도 형성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 가치 중 당해 연도에 새로 추가된 노동을 대표하는 부분은 가변 자본의 가치인 임금과, 이윤 및 지대의 형태로 분할되는 잉여 가치의 합과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 가치 중 당해 연도에 창출된 부분 전체는 임금의 가치,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의 연간 가치 총액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연간 가치 생산물 (v+s) 내에서 자본의 불변 부분 (c)의 가치가 재생산되지 않음은 분명하다. 임금은 생산에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량과 일치하며, 지대와 이윤은 투하 자본의 총자본 가치 (불변 자본 + 가변 자본)를 상회하여 생산된 잉여 가치 (가치 초과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윤과 지대의 형태로 전환된) 잉여 가치의 일부가 수입으로서 소비되지 않고 축적에 투입되는지 여부는 본 분석의 핵심 쟁점과 무관하다. 잉여 가치 중 축적 기금으로 전용되는 부분은 새로운 추가 자본의 형성을 뒷받침할 뿐, 기존 자본 (노동력 또는 노동 수단에 지출된 자본)의 보충에는 기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분석의 명료성을 위해 모든 수입은 전액 개인적 소비로 지출된다고 전제한다.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한편에서는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들이 소비 수단으로 삼는 연간 생산물의 가치에는 당해 생산 과정에 투입된 불변 자본 (c)의 가치량과 동등한 가치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곧, 연간 생산물의 가치는 가변 자본 (v)과 잉여 가치 (s)로 분해되는 수입 부분 외에도, 생산 수단의 가치 이전을 의미하는 불변 자본 가치를 구성 요소로 가진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의 총가치는 ‘임금 + 이윤 + 지대 + c’의 식으로 정식화되며, 여기서 c는 불변 자본의 가치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연간 새롭게 창출된 가치 (임금+이윤+지대)가 어떻게 그보다 큰 ‘임금+이윤+지대+c’의 가치를 지닌 총생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곧, 당해 연도에 창출된 가치 총액이 어떻게 그 자신의 크기를 상회하는 가치를 보유한 생산물 전량을 흡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분석의 핵심적 과제로 부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불변 자본 중 생산물로 이전되지 않아 (따라서 비록 그 가치는 감소하지만) 연간의 상품 생산 이후에도 잔존하는 부분, 곧 사용되나 아직 완전히 소비되지 않은 고정 자본을 분석에서 제외한다면 다음과 같은 국면이 나타난다. 원료와 보조 재료 형태로 투입된 불변 자본은 전량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된 반면, 노동 수단은 일부만이 완전히 마모되거나 부분적으로 소비되어 그 가치의 일부만이 생산 과정에서 이전된 상태다.

 

생산 과정에서 완전히 소비된 불변 자본의 부분은 반드시 현물로 보전되어야 한다. 노동 생산성을 비롯한 제반 조건이 일정하다면, 해당 부분을 대체하는 데에는 이전과 동일한 노동량이 필요하다. 이는 곧 동등한 가치로의 보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누가 수행해야 하며, 실제로 누가 이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첫 번째 문제, 곧 생산물에 포함된 불변 자본 가치의 지불 주체와 수단에 관하여 살펴보면,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는 생산물 가치의 구성 부분으로 재현된다고 상정된다. 이는 불변 자본의 보충 문제를 다루는 두 번째 논의의 전제와도 논리적으로 배치되지 않는다.


『자본』 제Ⅰ권 제7장 ‘노동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에서 규명된 바와 같이, 새로이 투입된 노동은 기존 가치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기존 가치에 부가할 뿐이다. 다만 새로운 노동이 추가되는 과정에서 이전의 가치는 생산물로 이전되어 그 내부에 보존되는데, 이는 노동의 추상적 가치 형성적 특성 (곧 노동 일반으로서의 특성)이 아니라 구체적 유용 노동 (일정한 생산적 노동으로서의 노동)으로서 수행하는 기능에 기인한다.

 

따라서 연간 창출된 총가치인 수입이 지출되는 생산물 속에 불변 자본의 가치 부분을 유지하기 위한 별도의 노동은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년도에 가치와 사용 가치 측면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을 실질적으로 보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노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보충이 수행되지 않으면 사회적 재생산 자체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새로 추가된 노동 전체는 연간 새로운 창출 가치로 표현하며, 이는 전부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으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소비된 불변 자본의 보충을 위해 배분될 잉여의 사회적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다. 여기서 불변 자본의 보충이란, 소비된 불변 자본은 부분적으로는 현물과 가치의 면에서 재생산되어야 하고, 부분적으로는 고정 자본의 마멸분의 경우 단순히 가치의 면에서 재생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간 노동으로 창출되어 (임금·이윤·지대의) 세 가지 수입 형태로 지출되는 가치 총액은, 수입의 가치를 상회하여 불변 자본 가치까지 포함하고 있는 연간 총생산물을 구매하거나 지불하기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파악된다.

 

상기한 과제는 『자본』 제Ⅱ권 제3편에서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을 고찰하며 이미 해결된 바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해당 문제를 재차 규명하는 이유는,

 

첫째, 제Ⅱ권의 논의 단계에서는 잉여 가치가 아직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라는 구체적 수입 형태로 전개되지 않아 이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애덤 스미스 이래의 근대 경제학 전반을 지배하는 고질적인 오류가 바로 임금, 이윤, 지대라는 수입의 형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Ⅱ권에서 우리는 사회적 총자본은 두 개의 부문, 곧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제1부문과 개인적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제2부문으로 구분되었다. 특정 생산물 (예: 밀·곡물)이 개인적 소비와 생산 수단이라는 양면적 용도를 지닌다는 사실이 이러한 분할의 타당성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분할은 결코 가설이 아니라 사실의 표현일 따름이다.

 

한 국가의 연간 총생산물 중 일부는 그 물질적 성격과 무관하게 궁극적으로 개인적 소비 영역으로 귀속되며, 이 생산물에 대해 임금, 이윤, 지대라는 수입이 지출된다. 이 영역의 생산물은 사회적 자본의 특정 부문인 제2부문의 생산물이다.

 

설령 동일한 생산 부문 내에서 제1부문에 속하는 생산 수단을 동시에 생산하더라도, 그러나 해당 자본이 생산적으로 소비될 생산 수단을 공급하는 한, 그것은 현실적으로 개인적 소비에 들어가는 생산물을 생산하는 자본은 결코 아니다.

 

개인적 소비에 제공되어 수입의 지출 대상이 되는 제2부문의 생산물 전체는, 해당 생산에 소비된 자본과 거기서 창출된 잉여분을 합산한 존재 형태다. 따라서 그것은 오로지 소비 수단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생산물로 규정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료나 노동 도구 등 재생산 수단으로 기능하는 제1부문의 연간 생산물은, 설령 그것이 아무리 잠재적으로 소비 수단으로서 전용 여지를 지녔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생산 수단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생산물일 뿐이다.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생산물의 대부분은 물질적 형태상 개인적 소비가 배제된 상태로 존재한다. 가령 농민이 종자용 곡물을 전용하거나 역우를 도축하여 소비할 경우 초래될 경제적 파국이 막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생산물은 본래부터 소비가 허용되지 않는 고유의 현물 형태를 보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기술한 바와 같이, 본 논의에서는 두 부문 모두에서 연간 생산물과 무관하게 현물 및 가치 형태로 존속하는 불변 자본 중 고정 자본 부분은 도외시한다.

 

수입이 소비되는 제2부문의 생산물 가치는 임금·이윤·지대가 지출되는 세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다.

 

제1부분은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와 동등한 부분이다.

 

제2부분은 임금으로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와 동등한 부분이다.

 

제3부분은 생산된 잉여 가치 (이윤 및 지대)와 동등한 부분이다.

 

이때 제2부문 생산물의 제1부분인 불변 자본 가치는 해당 부문의 자본가, 노동자, 토지 소유자 중 누구도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수입의 구성 요소가 아니므로, 반드시 현물로 보충되어야 하며, 이 보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부분이 판매되어야 한다. 반면, 제2부문 생산물의 나머지 두 부분은 해당 부문 내에서 창출된 수입, 곧 임금, 이윤, 지대의 합계 가치와 동등하다. (‘단순 재생산 표식’을 상기할 것).

 

제1부문 생산물 가치 또한 형태상으로는 위와 동일한 부분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부문에서 수입 (임금, 이윤, 지대)를 구성하는 가변 자본 + 잉여 가치의 합계는 제1부문의 생산물의 그 현물 형태상 소비되지 않고, 제2부문의 생산물로 전환되어 소비된다. 곧, 제1부문의 수입 구성 부분은 그 물질적 형태상 생산 수단이기에 생활 수단인 제2부문의 생산물과 교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1부문의 수입 가치는 제2부문의 생산물 중 보충되어야 할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의 소비에 투입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제2부문 생산물 중 자신의 불변 자본을 보충해야 할 가치량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1부문의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에게 그 현물 형태로 소비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해당 제2부문 생산물의 구매에 지출함에 따라 이 과정을 완결한다.

 

다른 한편으로, 제1부문의 수입을 체현하고 있는 제1부문의 생산물은 제2부문에서 현물 형태로 구매되어 생산적으로 소비된다. 이 과정에서 제2부문은 자신의 불변 자본 부분을 제1부문으로부터 공급받은 생산 수단으로 실질적으로 보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1부문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 부분은 노동 수단, 원료, 보조 원료 등으로 구성된 해당 부문 자체의 생산물로 보충된다. 이러한 보충은 부분적으로는 제1부문 내 자본가들 사이의 상호 교환으로 이루어지거나, 부분적으로는 자본가 일부가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을 생산 수단으로 직접 재투입하며 수행된다.

 

『자본』 제Ⅱ권 제20장 2절에서 제시된 단순 재생산 표식은 다음과 같다.

 

Ⅰ. 4,000c + 1,000v + 1,000s = 6,000

Ⅱ. 2,000c + 500v + 500s = 3,000

 

Ⅰ + Ⅱ = 9,000

 

사회적 총생산물의 가치 합계 (Ⅰ + Ⅱ)는 9,000에 달한다.

 

이 표식에 따르면, 제2부문에서는 노동자·자본가 및 토지 소유자에게 500v + 500s = 1,000의 가치가 수입으로 소비되며, 보충되어야 할 2,000c가 잔여분으로 남는다. 이 잔여분은 제1부문의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 (지대 취득자)가 보유한 1,000v + 1,000s = 2,000의 수입으로 소비된다. 곧, 제2부문의 소비될 생산물은 제1부문의 수입으로 처분되며, 생산 수단의 형태를 취하여 직접 소비될 수 없는 제1부문의 수입 부분은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을 보충하는 데 생산적으로 소비된다.

 

한편, 아직 제1부문의 4,000c에 대한 설명이 남아 있다. 이 가치 부분은 제1부문 생산물 6,000 중 제2부문의 불변 자본으로 이미 전환된 2,000을 제외한 잔여분 4,000 (= 6,000 – 2,000)으로 보충된다. 곧, 제1부문 내에서 생산된 생산 수단이 다시 제1부문의 불변 자본을 현물 및 가치 형태로 복구하는 데 투입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상기 수치들이 예시를 위해 임의로 설정된 것이며, 이에 따라 제1부문의 수입 가치와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이 일치하는 설정 또한 자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축적을 도외시한 단순 재생산 과정이 원활하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제1부문의 임금, 이윤, 지대의 총액이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의 가치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이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제2부문은 자신의 생산에 필요한 불변 자본을 보충할 수 없게 되며, 또한 제1부문 역시 자신의 수입을 소비할 수 없는 현물 형태인 생산 수단으로부터 실제 소비할 생활 수단 (소비 수단)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간 상품 생산물의 가치는 개별 투하의 상품 생산물의 가치나 개별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두 부분, 곧 투하된 불변 자본의 가치를 보전하는 부분 A와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형태로 나타나는 부분 B로 분할된다. 기타 사정이 일정하다면, 부분 A는 (1) 결코 수입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며 (2) 언제나 자본, 특히 불변 자본의 형태로 환류한다는 점에서 부분 B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부분 B 역시 내부적 구별을 포함한다. 이윤, 지대, 임금은 모두 수입의 형태를 취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이윤과 지대가 잉여 가치 (미지불 노동)를 체현하는 반면, 임금은 지불 노동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생산물 가치 중 지불된 임금을 대변하며, 따라서 임금을 보충하는 부분, 곧 단순 재생산 전제하에 임금으로 다시 재전환될 부분은 우선 가변 자본 (또는 재생산을 위해 또다시 투하되어야 할 자본의 일부분)의 형태로 환류한다.

 

이 가치 부분은 이중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우선 자본의 형태로 존재하며 자본으로서 노동력과 교환되고, 이후 노동자의 수중에서 노동력 판매의 대가인 수입으로 전환되어 생활 수단을 구매하는 데 소비된다. 이러한 이중적 과정은 화폐 유통의 매개로 입증된다. 가변 자본은 화폐 형태로 투하되어 임금으로 지불되는데, 이는 자본으로서의 가변 자본이 수행하는 첫 번째 기능이다. 가변 자본은 노동력으로 대체되고 노동력의 현실적 발현인 노동으로 전환되며, 이는 자본가 측에서 진행되는 생산적 소비 과정이다.

 

그러나 둘째로, 노동자는 수취한 화폐로 사회적 총생산물 중 해당 화폐 가치에 상응하는 부분을 구매하여 이를 수입으로 소비한다. 화폐 유통이라는 매개 수단을 배제하고 고찰한다면,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의 일부는 이미 자본가의 수중에 자본의 형태로 존재한다. 자본가는 이 부분을 새로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으로 투하하고, 곧 이 부분을 새로운 노동력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주며, 노동자는 이를 직접적으로 또는 타 상품과의 교환을 매개로 수입으로서 소비한다.

 

따라서 생산물 가치 중 재생산 과정에서 임금, 곧 노동자의 수입으로 전환될 부분은 우선적으로 자본의 형태 (구체적으로는 가변 자본의 형태)로 자본가에게 환류한다. 이 가치 부분이 자본의 형태로 환류한다는 사실은 노동이 임금 노동으로, 생산 수단이 자본으로, 그리고 생산 과정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으로 끊임없이 새로 재생산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 중 하나를 이룬다.

 

불필요한 동일시를 방지하기 위해 총생산물 및 순생산물을 총수입 및 순수입과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총생산물은 재생산된 생산물 전체를 의미한다. 고정 자본 중 사용되나 소모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할 때, 총생산물의 가치는 생산 과정에서 투하되어 소비된 자본 가치 (불변 자본 및 가변 자본) + 잉여 가치 (이윤 및 지대)와 동등하다. 이를 개별 자본의 생산물이 아닌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총생산물은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을 구성하는 소재적 요소들 + 잉여 가치가 체현된 잉여 생산물의 소재적 요소들과 동등하다.

 

총수입은 총생산물 가치에서 생산에 투하되어 소모된 불변 자본의 보충분 (또는 이에 상응하는 생산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가치 부분을 의미한다. 따라서 총수입은 임금 (곧 생산물 중 다시 노동자의 수입으로 환류될 부분) + 이윤 + 지대와 동등하다. 반면 순수입은 임금을 차감한 잔여분인 잉여 가치 및 잉여 생산물을 지칭하며, 이는 실질적으로 자본이 실현하여 토지 소유자와 분할하는 잉여 가치 (또는 이를 척도로 하는 잉여 생산물)를 대변한다.

 

기존의 분석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개별 상품의 가치와 각 개별 자본의 총 상품 생산물 가치는 두 부분으로 분할된다. 한 부분은 소모된 불변 자본을 보전하는 데 충당되며, 다른 한 부분은 비록 일부가 가변 자본으로서 자본의 형태로 환류할지라도 그 전체는 총수입으로 전환하여 임금·이윤·지대의 형식을 취하며 총수입을 이룬다. 이러한 가치 구성 원리는 사회의 연간 총생산물 가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개별 자본가의 생산물과 사회적 총생산물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개별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순수입이 총수입과 다르다는 점이다 (곧 후자인 총수입은 임금을 포함하지만 전자인 순수입은 임금을 제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수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민 소득은 임금 + 이윤 + 지대, 곧 총수입 그 자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기초하여 사회 전체를 자본가적 관점에서 규정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추상에 불과하다. 이는 이윤과 지대로 분해되는 잉여 가치 부분만을 실질적인 순수입으로 간주하고, 노동자의 생존 수단인 임금을 자본의 생산 비용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고유의 경제적 논리를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총수입이나, 총생산물 전체가 국민의 순수입과 구별되지 않으며, 국가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세 등의 주장은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을 지배해 온 불합리한 학설의 극단적 귀결일 뿐이다. 곧, 상품의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만 분해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가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논리적 결함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생산물의 일부가 자본으로 재전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기란 매우 용이하다. 다시 말해, (재생산의 확대, 곧 축적을 도외시하더라도) 생산된 가치의 일부는 노동자의 수입으로 기능할 가변 자본으로, 그리고 다른 일부는 수입으로 결코 전환될 수 없는 불변 자본으로도 반드시 재전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매우 쉽다. 이러한 가치 환류 과정의 필연성은 생산 과정에 대한 기초적인 고찰만으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생산 과정 전체를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비로소 난제가 발생한다. 분석에 따르면, 생산물 중 수입 (임금·이윤·지대의 형태)으로 소비되는 부분의 가치는 사실상 이 세 가지 수입의 총액, 곧 수입 가치의 합계로 완전히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해당 생산물이 생산적으로 소비되든 개인적으로 소비되든 이는 여기에서 논외의 문제이며, 핵심은 (가치는 분석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소비되는 생산물 가치 전체가 수입의 총합으로 분해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있다.

 

그러나 수입으로 소비되는 생산물 부분의 가치 역시, 수입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생산물 부분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그 가치 내에 불변 자본 가치 c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생산물 가치가 결코 오직 수입 가치의 합으로만 국한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결국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가치 보충의 사실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대립하는 이론적 모순이 공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이론적 곤란을 회피하는 가장 손쉽지만 그러나 가장 그릇된 방법은, 상품 가치가 수입을 초과하는 가치 부분이 존재하는 현상을 단지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 포착하기 때문에 비롯된 착시로 치부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수입이 타인에게는 자본이 된다.’는 식의 상투적인 문구는 가치 구성의 본질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가로막고 논의를 무의미하게 표류시킬 뿐이다.

 

생산물 전체의 가치가 수입의 형태로 소비될 수 있다면, 옛 자본이 투입된 불변 자본은 어떻게 보충될 수 있겠는가. 각 개별 자본의 생산물 가치가 수입의 합계와 불변 자본 c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사회적 총자본의 생산물 가치 총액이 오직 세 수입의 합계와만 일치하고 불변 자본 가치는 0이 된다는 설정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귀결되며, 이를 설명하려는 분석은 기초적 구성 요소를 규명하지 못한 채 악순환과 악무한의 오류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곧, 불변 자본으로 규정되는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 분해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수입 원천들로 구성되는 상품 가치는 다시 동일한 수입 원천들을 매개로 결정된다는 논리적 반복을 끝도 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상품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 분해된다는 오류 섞인 학설은, 구매자가 불변 자본을 포함하는 총생산물의 전체 가치를 최종적으로 지불해야 한다거나,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의 화폐 유통이 결국 생산자 상호 간의 화폐 유통과 일치해야 한다는 주장 (투크)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 근거가 되는 기본 명제와 마찬가지로 허구적이다.

 

이러한 그릇되고 명백히 불합리한 분석을 야기하는 핵심적인 난제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근본적 상관관계, 잉여 가치의 본질,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전체 토대가 올바르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별 자본의 각 생산물, 곧 개별 상품의 가치는 불변 자본 가치의 이전분과 노동자의 임금으로 전환되는 가변 자본 가치, 그리고 향후 이윤과 지대로 분할될 잉여 가치의 일부라는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가치 구성의 유기적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분석의 출발점이다.

 

이 지점에서 노동자가 임금으로, 자본가가 이윤으로, 그리고 토지 소유자가 지대로 상기한 가치 구성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과연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곧, 개별 소득 주체가 각자의 제한된 수입 원천만을 가지고, 그 원천의 합계보다 큰 가치 체계를 지닌 상품을 획득하는 원리를 규명해야 한다.

 

임금·이윤·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 원천의 가치 총액이, 이들 소득 주체의 소비에 충당되는 상품 전체를 구매하는 기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상품들의 가치는 앞서 세 요소 이외에도 불변 자본이라는 추가적 가치 부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득자들이 세 부분의 가치에 해당하는 수입만으로 어떻게 네 부분의 가치로 구성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잔존한다.

 

이에 대한 분석은 이미 제Ⅱ권 제3편에서 수행된 바 있다.

 

(2) 다음으로, 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동시에 기존 가치를 재생산하지 않고도 새로운 형태의 상품 내에 보전하는 방식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이 인간 노동 일반 (추상적 인간 노동)으로서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구체적 유용 노동으로서 생산 수단의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시키는 이중적 성격에 기인한다.

 

(3) 재생산 과정의 유기적 관련성이 개별 자본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임금과 잉여 가치, 곧 당해 연도에 새로이 부가된 총가치가 체현된 생산물이 어떻게 그 내부에 포함된 불변 자본 부분을 보전하면서도 동시에 개별 수입들의 가치 합계와 등가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더욱이 당해 연도에 투하된 새로운 노동의 총량이 오직 임금과 잉여 가치로만 실현되고 전적으로 이 두 가치의 합계로 표현됨에도, 생산 과정에서 소모된 불변 자본이 어떻게 가치와 소재 양면에서 새로운 불변 자본으로 보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바로 이 지점, 곧 재생산 과정의 제반 구성 요소들이 지니는 가치적 형태와 소재적 성격 사이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는 데 분석의 핵심적인 난제가 존재한다. (제Ⅱ권 제3편 참조).

 

(4) 한편, 잉여 가치의 여러 구성 부분들이 각기 독립적인 수입 형태로 고착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는 또 다른 난제가 존재한다.

 

이는 ‘수입’과 ‘자본’이라는 확정적 규정들이 상호 전도되거나 위치를 변경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해당 범주들이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나 유효한 상대적인 규정에 불과하며 사회적 총생산 과정의 고찰에서는 소멸해 버린다는 착시를 준다. 곧, 개별적 관점에서의 자본과 수입의 구분이 총체적 재생산 과정 내에서 그 위상이 왜곡되는 현상이 분석의 곤란을 가중시킨다.

 

예컨대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제1부문 노동자와 자본가의 수입은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을 가치와 소재 양면에서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일방의 수입이 타방에게는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근거로, 자본과 수입의 범주적 구분이 상품 가치의 실질적 구성과는 무관하다는 사고방식의 논리적 회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개별적 가치 규정이 유기적 유통 과정에서 상호 전환되는 현상을 본질적인 가치 구성의 부정으로 오독한 결과이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수입 지출의 소재적 대상인 소비 수단을 형성할 상품들은 연간 생산 과정에서 여러 가공 단계 (예: 원사에서 모직물로의 이행)를 거친다. 특정 단계에서 그 상품들은 불변 자본의 구성 요소로 기능하던 상품들이었으나, 다음 단계에서는 개인적 소비의 대상이 되어 전적으로 수입으로 귀속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행 과정은 애덤 스미스의 견해처럼 불변 자본이 상품 가치의 외관상의 한 요소에 불과하며, 총체적 연관 속에서는 결국 소거된다는 분석적 오류를 낳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가변 자본과 수입 간의 교환 과정이 교차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수입인 임금을 매개로 상품 가치 중 수입을 형성하는 부분을 구매하며, 이 과정에서 자본가에게는 가변 자본의 화폐 형태를 환류시킨다. 곧, 노동자의 수입 지출 행위는 자본가 측면에서 가변 자본의 가치 형태를 복구시키는 화폐적 회수 과정과 맞물려 진행된다.

 

끝으로 불변 자본을 형성하는 생산물 중 일부는 불변 자본 생산자들 사이에서 현물 형태로 보전되거나 또는 상호 간의 교환을 매개로 보충되며, 이 과정은 최종 소비자와는 무관하게 완결된다. 이러한 기제를 간과할 경우, 소비자의 수입이 총생산물 전체를 보전하며 결과적으로 불변 가치 부분까지 보충한다는 분석적 착시가 초래된다. (제Ⅱ권 제3편 참조).

 

(5) 가치의 생산 가격으로 전형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점을 차치하더라도, 잉여 가치가 다른 생산 요소들에 결부된 독립된 형태들, 곧 이윤과 지대로 전환되면서 또 다른 분석적 난점이 야기된다. 이 과정에서 상품 가치가 이러한 가치 분할의 선행적 토대라는 본질적 사실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곧, 현상화된 수입의 형태들이 가치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가치가 사후적으로 분할되는 것임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상품 가치가 제반 구성 부분으로 분할되고 그 배분액이 수입의 형태로 구체화되는 과정, 그리고 이러한 가치 구성 부분들이 수입의 형태로 전개되는 과정, 곧 서로 다른 생산 요소 소유자들과 결합하여 (그 각각의 가치 구성 부분 사이의 관계로 전환하여) 특정 범주와 자격에 따라 분배되는 일련의 기제는 결코 가치 결정의 원리나 그 내적 법칙을 변동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관상 전개되는 이러한 분배 관계의 역전된 형태 때문에, 가치가 분배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가 가치를 결정한다는 식의 전도된 착시가 지배하게 된다.

 

또한 토지 소유가 절대 지대로 인한 저해가 부분적으로 발생함에도 수행되는, 이윤율의 균등화에 따른 총 잉여 가치의 자본 간 배분이 개별 상품의 가치로부터 불일치하는 지배적 평균 가격, 곧 생산 가격을 형성한다는 사실 역시 가치 법칙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개별 상품 가격에 배분되는 잉여 가치의 분량에 영향을 미칠 뿐이며, 잉여 가치 그 자체나 가격 구성 요소들의 원천인 상품의 총가치를 부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생산 가격의 형성은 가격 법칙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가치의 전형된 관철 형태에 불과하다.

 

이러한 논의는 다음 장에서 다룰 전도와 맞닿아 있는데, 이는 가치가 그 자체의 구성 부분들로부터 생성된다는 분석적 착시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곧, 상품의 각 가치 구성 부분들이 개별 수입으로서 독립된 형태를 취함에 따라, 이를 본래의 원천인 상품 가치와 결부하기보다는 수입의 원천인 개별 소재적 생산 요소와 결부시키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치의 실체인 추상적 노동은 은폐되고, 생산 요소 자체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도된 관념이 형성된다.

 

상품의 가치 구성 부분들은 물질적으로 소재적 생산 요소들과 결부되어 있으나, 이는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서가 아니라 각 생산 당사자 (노동자·자본가·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수입의 원천 (가치 부분)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 구성 부분들이 이미 결정된 상품 가치의 분해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해당 부분들의 합산과 집계를 결합하여 상품 가치가 형성된다는 전도된 통념이 발생한다. 이는 가치의 본질적 규정과 그것이 외견상으로 배분되는 형태를 착시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상품의 가치는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가치의 총합으로부터 규정되고, 다시 이들 수입의 가치는 생산 요소인 노동·자본·토지의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전형적인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곧, 가치의 원천과 가치의 배분 형태를 동일시함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규정하는 모순적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단순 재생산 과정에서 새로 투입된 노동의 오직 일부분만이 불변 자본의 생산 및 보전에 배분된다. 이는 제1부문의 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의 합 [Ⅰ(v+s)]이 제2부문의 불변 자본 [Ⅱc]과 교환되는 상응 관계를 거쳐 구체화된다. 곧, 새로운 노동은 소비 수단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을 소재적으로 보전하는 데 투입되며, 이는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은 추가 노동을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상호 상쇄됨에 따라 전체적인 정합을 이룬다.

 

그러나 총자본의 재생산 관점에서 고찰할 때, 새로운 노동의 직접적 생산물이 아닌 기존 불변 자본은 생산 과정에서 물리적 사고나 소재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또한 노동 생산성의 변화에 따라 해당 불변 자본의 가치가 하락하는 경제적 위험 역시 상존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노동이 체현된 잉여 가치 또는 잉여 생산물의 일부는 이러한 예기치 못한 손실에 대비하는 보험 재원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재원이 전문적인 보험 회사를 주체로 하여 운용되는지 여부는 경제적 본질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이는 수입으로서 개인적으로 소비되지도 않고, 반드시 축적을 위한 자본으로 전환되지도 않는 독자적인 예비분으로서 기능한다.

 

해당 보험 재원이 실제로 축적 재원으로 기능할지, 아니면 단순히 재생산의 돌발적인 결손을 보전하는 데 그칠지는 구체적인 경제적 정황에 따라 결정된다. 주목할 점은 이 보험 재원이 잉여 가치 및 잉여 생산물의 제 구성 요소 중 (확대 재생산을 위한 적립분을 제외하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폐지된 이후의 사회적 생산 체제에서도 반드시 존속해야 할 유일한 범주라는 사실이다. 곧, 이는 체제의 성격과 무관하게 생산 과정의 지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 비축분으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폐지될 경우, 직접적 생산자의 규칙적인 소비분은 현행 체제의 최저 수준에 제한되지 않고 필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또한 노령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생산에 참가할 수 없거나 또는 더 이상 생산에 참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잉여 노동을 제외한다면, 지배 계급을 부양하기 위한 노동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이는 잉여 노동의 성격이 타자를 위한 부역에서 공동체 전체의 후생과 사회적 비축 구축을 위한 의식적 전환임을 의미한다.

 

사회의 발생적 기원을 고찰하면, 당시에는 가공된 생산 수단이 부재하였으므로, 재생산 과정에서 생산물 가치에 이전되어 현물로 보전되어야 할 불변 자본의 개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이 직접적으로 생활 수단을 제공함에 따라 선행적인 생산 과정의 필요성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욕구의 수준이 낮았던 원시 생산자는 생활 수단 채취 이외의 유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 시간을 투입해 자연 생산물을 활, 돌칼, 선박과 같은 생산 수단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원시적 도구 제작 과정은 소재적 측면에서 볼 때, 발달된 경제의 잉여 노동이 새로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축적의 본질적 원리와 근본적으로 상응한다.

 

축적 과정에서는 잉여 노동 (초과 노동)의 생산물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새로운 자본이 이윤이나 지대 같은 잉여 노동의 파생 형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자칫 상품의 가치 전체가 수입에서 구성된다는 분석적 오류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윤의 자본 전환을 정밀하게 분석하면 그 실상은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곧, 추가 노동은 (이것은 항상 수입의 형태를 취한다) 기존 자본 가치를 보전하거나 재생산하는 기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추가 노동이 수입으로서 소비되지 않는 한 새로운 추가 자본을 창출하는 적극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이는 가치가 수입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분할 형태인 수입이 다시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분석상의 난점은 새로 투입된 모든 노동이 (그 가치가 임금으로 분해되지 않는 한) 자본가에게 비용 지출 없이 귀속되는 일반적 형태의 잉여 가치로 발현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로 인해 해당 가치는 이미 투입된 자본을 보충할 필요가 없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부이자 개별 자본가의 순수 수입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 창출된 가치는 개인적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적 소비로도 전용될 수 있으며, 또는 자본으로도 수입으로도 소비될 수 있다. 이 가치 체현물의 구체적인 현물 형태는 그중 일부가 반드시 생산 수단으로 재투하되어야 함을 이미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가치의 형태적 표현인 수입과 그 실질적 기능인 자본 축적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명시한다.

 

그러므로 매년 추가되는 노동이 자본과 수입을 동시에 창출한다는 점은 자본 축적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다만 새로운 자본 형성에 투입되는 노동 (노동일 중 원시 생산자가 생존을 위한 식량 채취 대신 도구 제작에 할애하는 시간과 비견되는 부분)은 잉여 노동의 생산물 전체가 선차적으로 ‘이윤’이라는 형태로 포착되기에 그 실체가 은폐된다. 이 ‘이윤’이라는 규정은 잉여 생산물의 물적·소재적 속성과는 본질적 관련이 없으며, 자본가의 잉여 가치 전유라는 특수한 사회적·계급적 관계를 표상할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생산물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축적의 기제가 이윤 분배라는 형태적 표현에 가려져 있음을 시사한다.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 가치는 수입과 자본, 곧 소비 수단과 추가적인 생산 수단으로 분할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전년도로부터 이월된 기존 불변 자본이 새로운 노동을 매개로 그 가치 측면에서 재생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는 마멸에 따른 감소분을 보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통상적인 재생산 과정에서 유지되는 불변 자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인데, 불변 자본의 가치 보전은 새로운 가치 창출과 구분되어야 한다. 재생산 과정에서 예외적인 손상이 발생하여 보전이 필요한 경우, 이는 보험 재원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사안이다.

 

나아가 새로 투입된 노동이 가치 측면에서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으로 전적으로 분해됨에도, 그 노동의 일부는 항상 소비된 불변 자본의 재생산과 보충에 전용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정적 지점들이 간과된다.

 

첫째, 해당 노동 생산물의 가치 구성분 중 일부는 당해 연도의 새로 추가된 노동이 형성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며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가 이전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가치 부분을 체현하는 생산물 부분은 수입으로 전환될 수 없으며, 현물 그대로 교환 과정을 거치더라도 불변 자본의 소재적 형태인 생산 수단을 보충하는 데 귀속된다.

 

둘째, 새로운 노동의 직접적 결과물인 가치 부분 (제1부문의 가변 자본 v와 잉여 가치 s)은 그 자체로 수입으로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타 부문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을 보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해당 가치는 제2부문의 생산물로 전환됨에 따라 비로소 수입으로 소비될 수 있는 현물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 최종 생산물 역시 전적으로 당해 연도의 새로운 노동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유념해야 한다.

 

단순 재생산이 동일한 규모로 지속되는 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각 요소는 해당 종류의 소재적 형태로 보충되어야 한다. 이때 이 새로운 요소는 수량과 형태가 동등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생산 능력 측면에서 동등성은 확보되어야 한다. 노동 생산성에 변동이 없다면 이러한 현물 보충은 필연적으로 불변 자본이 종전에 보유했던 가치량과 동일한 크기의 가치 보전을 내포하게 된다. 이는 생산 과정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가치 이전과 보전의 필수적 조건이다.

 

노동 생산성이 상승하여 동일한 소재적 요소들을 종전보다 더 적은 노동량으로 재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총생산물 가치 중 보다 작은 비중만으로도 불변 자본의 완전한 현물 보충이 충족된다. 이 경우 보전 후 나머지 부분은 새로운 자본 축적에 투하되거나, 생산물의 더 큰 부분이 소비 수단의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또는 사회적 잉여 노동이 감축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노동 생산성이 저하될 경우에는 생산물의 더 큰 부분이 기존 자본의 보충에 할당되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잉여 생산물은 감소하게 된다. 이는 생산성의 변동이 가치의 보전과 잉여분의 배분 구조를 규정하는 핵심 변수임을 입증한다.

 

이윤 또는 잉여 가치의 특정 형태가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과정을 역사적 특수성을 배제한 채 단순히 새로운 생산 수단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이는 노동자가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수단 확보를 상회하여 노동할 뿐 아니라, 생산 수단의 생산을 위한 추가적 노동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곧, 이윤의 자본 전환은 추가 노동의 일부를 새로운 추가적 생산 수단의 형성에 투입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과정이 ‘이윤의 자본 전환’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잉여 노동에 대한 임의적인 처분권이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에게 귀속되어 있다는 사회적 생산 관계의 실상을 체현할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소재적 실체인 추가적 생산 수단이 자본이라는 화폐적·역사적 의상을 두르고 나타남을 시사한다.

 

이 잉여 노동이 원시 사회에서 생산 수단 형성에 직접 투입되는 노동으로 나타난다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그것이 ‘수입’이라는 매개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사실은 해당 노동의 생산물이 비노동자에게 배타적으로 취득됨을 의미한다. 실질적으로 자본으로 전환되는 대상은 ‘이윤’이라는 명목적 명칭 그 자체가 아니다. 잉여 가치의 자본 전환은 본질적으로 잉여 가치와 그 실체인 잉여 생산물이 자본가의 수입으로서 개인적 소비로 소진되지 않고 생산 과정에 재투하됨을 가리킬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산물이 수입이라는 현상 형태를 거쳐 다시금 자본의 물질적 기초로 고착되는 과정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한다.

 

현실적 전환의 실체는 대상화된 노동인 가치, 또는 그 가치를 직접 체현하고 있는 생산물이며, 또는 해당 가치가 화폐로 실현된 후 그 화폐와 교환을 매개로 하여 확보된 여타의 생산물이다.

 

이윤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국면에서 잉여 가치의 이윤이라는 특수한 형태가 새로운 자본의 본원적 원천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잉여 가치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될 따름이다. 그러나 잉여 가치를 자본으로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이러한 형태적 전환이 아니라,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상품이며 그 가치다.

 

잉여 생산물의 가치가 지불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가치가 잉여 가치로 정의되는 사회적 전제 조건일 뿐, 노동의 대상화나 가치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 축적의 실체는 형태의 변화가 아닌,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 체현된 가치물의 생산적 재투하에 존재한다.

 

가치 구성과 수입 사이의 관계예 대한 오해는 각종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상품들도 역시 그 자체로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거나, 동일한 가치물이 한 사람에게는 수입이나 타인에게는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를 오로지 주관적 관계의 산물로 치분하는 견해 등이 그러하다.

 

실제로 방적업자가 생산한 면사에는 자신의 이윤을 표상하는 가치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때 직물업자가 해당 면사를 구매하는 행위는 방적업자의 관점에서 이윤을 실현해 주는 것이지만, 직물업자 본인의 관점에서는 해당 면사가 단순히 자신의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불변 자본의 일부로 기능할 뿐이다. 이는 가치물이 생산의 순환 과정에서 점유하는 위치에 따라 그 경제적 규정이 객관적으로 결정됨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상대적 관계가 아님을 시사한다.

 

수입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 이미 말한 것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하고 싶다. 가치 측면에서 직물업자의 자본 구성 부분으로 구성되는 것은 면사의 가치다. 면사의 가치가 방적업자의 관점에서 자본과 수입, 또는 지불 노동과 미지불 노동으로 어떻게 분해되는지는 상품인 직물의 가치 결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단, 평균 이윤에 따른 전형은 논외로 한다.)

 

이러한 논의의 이면에는 이윤과 잉여 가치 일반은 상품 가치를 상회하는 잉여분이며, 이 잉여분은 가격 인상이나 상호 기만, 또는 양도 이윤을 매개로 하여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도식이 항상 배후에 숨어 있다 그러나 상품이 생산 가격이나 가치대로 매매된다면, 상품 가치 중 판매자에게 수입의 형태로 귀속되는 구성 부분들 또한 정당하게 지불되는 것이다. 이때 독점 가격에서 기인하는 변수는 여기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로,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상품 요소들이 여타의 모든 상품 가치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와 생산 수단의 소유자에게 귀속될 임금·이윤·지대라는 분해될 수 있는 가치 구성분으로 귀착될 수 있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이는 상품 가치가 해당 상품에 체현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의 척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본주의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제Ⅰ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본의 상품 생산물이 개별 가치 구성 부분들로 분석적으로 분할되어, 일정 부분은 소모된 불변 자본 부분을 대표하며 다른 부분은 가변 자본을, 그리고 나머지는 잉여 가치를 각각 표상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치 해소 논리에도,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 이는 가치의 원천과 그 가치가 재생산 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적 역할이 엄연히 구별됨을 시사한다.

 

슈토르히의 견해는 경제적 규정에 대한 다수의 분석적 오류도 집약하고 있다.

 

‘국민 소득을 구성하는 매매될 수 있는 생산물은 개인에게는 ‘가치’로, 국가적 관점에서는 ‘재화’로 구분하여 고찰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 소득은 개인의 소득과 달리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유용성이나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의 정도를 척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고찰』: 19)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첫째로, 생산 양식이 가치 법칙에 근거하고 자본주의적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한 국가를 국민적 욕구 충족을 위해 기능하는 하나의 유기적 결합체로 상정하는 것은 부당한 추상이다.

 

둘째로, 설령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철폐된 뒤에도 사회적 생산이 유지되는 한, 가치 결정의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곧, 노동 시간의 합리적 규제, 각종 생산 분야로 사회적 노동의 분배,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엄밀한 부기라는 측면에서 가치의 규정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한 비중을 갖게 된다. 이는 사회적 필요와 노동 투입 사이의 객관적 비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기제로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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