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대중의 자생성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의식성

 

우리는 70년대의 운동보다 한층 더 폭 넓고 깊은 우리 운동을 그 시대와 같은 헌신적인 결의와 열정으로 고무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현재의 운동이 갖는 강점은 대중의(주요하게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각성이고 약점은 지도자인 혁명가들의 창발성과 의식성의 부족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최근,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던 모든 견해를 뒤엎을 만큼 위협적인 놀라운 발견이 일어났다. 이 발견을 이룬 것이 『노동자의 대의』다. 『노동자의 대의』는 『불꽃』및 『여명』과 논쟁을 벌이면서, 부분적인 반대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견해차"를 보다 심오한 근원적인 문제, 즉 "자생적 요소와 의식적, '계획적' 요소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로 끌어가려 시도했다. 『노동자의 대의』의 비난 어린 테제는 이렇게 말한다. "발전의 객관적 혹은 자생적 요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불꽃』및『여명』과의 논쟁이『노동자의 대의』로 하여금 이 같은 '전반적인 견해차'에 생각이 미치도록 한 것 외에 다른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유일한 결과야말로 우리에게는 큰 만족이다." 테제는 그 정도로 의미심장하며, 그만큼 명료하게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현재의 이론적, 정치적 견해차의 핵심 전체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자생성과 의식성의 관계라는 문제가 대단한 일반적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에, 따라서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1. 자생적 고양의 시작

 

우리는 앞 장에서 1890년대 중반에 러시아의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견잡을 수 없이 맑스주의에 경도되어 갔음을 지적했다. 1896년의 그 유명한 페테르부르크 산업 전쟁[38]에 뒤이은 노동자 파업의 시기도 바로 이와 같은 견잡을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러시아 전역으로 파업이 확산되어 간 것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인민 운동의 깊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자생적 요소"에 관해 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이러한 파업 운동이야말로 자생적인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생성이라는 것도 그야말로 갖가지다. 파업은 러시아에서 "자생적인" 기계 파괴 등을 수반하며 70년대에도, 그리고 60년대에도 (심지어는 19세기 초반에도) 일어난 바 있다. 이 같은 "폭동들"과 비교하여 본다면 90년대의 파업은 "의식적"이라고까지 할 만하다. 이 기간에 걸쳐 노동자운동이 이루어 낸 이 같은 일보 전진은 그만큼 의미 있는 것이다. 이는 "자생적 요소"가 그 본질상 바로 의식성의 맹아적 형태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원시적인 폭동들도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의식성이 있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체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태고적부터의 믿음을 버렸다. 그들이 집단적인 반격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느끼기 시작하기는 했다. 그리고 당국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을 단호하게 떨쳐 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어쨌거나 투쟁이라기보다는 절망과 복수심의 발현에 훨씬 가까웠다. 90년대의 파업은 우리에게 훨씬 더 번득이는 의식성을 보여 준다. 특정한 요구 사항이 제기되고, 더 적합한 순간이 언제인지 미리 계산되고, 다른 지방의 유명한 사례와 경우들이 논의되는 등등이 그러하다. 폭동이 단순히 짓눌려 온 사람들의 반란이었다면, 체계적인 파업은 이미 그 자체로 계급투쟁의 맹아를 표현했다. 그러나 그것은 맹아일 뿐이다. 저절로 일어난 이 파업들은 노동조합주의적인 것이지 아직 사회민주주의적이지는 않은 투쟁이었다. 그 파업들은 노동자와 고용주의 대립이 각성되고 있음을 알려주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현대의 정치체제 및 사회체제 전체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타협할 수 없는 대립 관계에 놓여 있다는 의식, 즉 사회민주주의 의식이 없었다. 아니,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90년대의 파업은 "폭동들"과 비교할 때의 그 엄청난 진보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자생적인 운동에 머물렀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 의식이 노동자들에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직 외부에서 들여올 수 있을 뿐이었다. 노동자계급은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노동조합주의 의식, 즉 조합으로 단결하여 고용주들과 투쟁하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이러저러한 법률들을 정부가 제정하도록 하는 등등의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마련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모든 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⁴ 사회주의 학설이라는 것은 유산계급의 교육받은 대표자들, 즉 지식인들이 일구어 낸 철학, 역사, 경제 등의 이론들에서 자라난 것이다. 현대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인 맑스와 엥겔스 역시 그 사회적 지위로 볼 때 부르주아 지식인에 속했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사회민주주의 학설은 노동자운동의 자생적 성장과는 전혀 무관하게 발생하였다. 그것은 혁명적인 사회주의적 지식인의 사상 발전의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시기, 즉 18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 학설은 노동해방그룹이 이미 완전히 작성해 놓은 강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혁명적 청년들 대부분을 전취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노동자 대중의 자생적 각성, 의식적인 삶과 의식적인 투쟁에 대한 자각이 현실로 존재했으며, 사회민주주의 이론으로 무장하여 노동자들에게 뛰어든 혁명적 청년도 있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종종 잊혀지곤 하는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하나의 사실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최초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열성적으로 경제 선동에 매달리면서도 — 또한, 이와 관련하여, 당시에는 필사본이었던 소책자 『선동에 관하여』[39]의 정말 유용한 지침들을 매우 중요시하면서도 — 그것을 유일한 임무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애초부터 일반적으로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실로 광범위한 역사적 임무를, 특수하게는 전제주의 타도라는 임무를 내세웠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예를 들자면, 노동자계급해방투쟁동맹[40]을 결성한 페테르부르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895년 말에 『노동자의 대의』라는 제호 아래 신문 창간호를 편집했다. 발간을 막 앞둔 이 신문은 1895년 12월 8일 밤, 즉 9일 새벽, 이 그룹 성원의 한 사람인 아나톨리 알렉세예비치 바네예프*의 집에서 헌병의 습격을 받아 압수되었고, 그리하여 『노동자의 대의』 창간호는 햇빛을 보지 못할 운명에 처해졌다. 이 신문의 사설[41](아마도 이 글은 경찰청 문서 보관실에 있다가 30년쯤 지난 후 『러시아 고사』와 같은 책이 발견할지도 모른다.)은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개괄하고 있는데, 그 첫째 임무로 설정한 것이 정치적 자유의 정취였다. 다음으로 「우리의 장관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는 문맹퇴치위원회들을 경찰이 피멸시킨 사건을 다룬 것이다. 그 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다른 여러 도시들에서 들어온 투고들(예를 들어, 야로슬라블 주 노동자들의 유혈 격전[42])에 관한 글이 실려 있었다. 이처럼 1890년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 "최초의 경험" —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 은 협소한 지역신문, 더 나아가 "경제주의" 성격의 신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파업 투쟁을 전제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운동에 결합하고, 반동적 반(反)문명주의 정치에 억눌려 온 모든 사람에게서 사회민주주의당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을 지향한 신문이었다. 이 시기 운동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신문이 수도의 노동자들과 혁명적 지식인들에게서 전적인 공감을 얻어내어 광범위하게 배포되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계획의 실패는, 당시의 사회민주주의자들로서는 혁명의 경험과 실제적 준비가 부족했던 까닭에 그 시기의 절박한 요구를 충족시킬 힘이 없었다는 점을 보여 줄 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소식지』, 그리고 특히 『노동자 신문』과 1898년 봄에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이 작성한 「선언」[43]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같은 훈련 부족을 당시 활동가들의 과오로 치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운동의 경험을 활용하고 이 경험에서 실천적 교훈을 얻으려면, 이러저러한 부족한 점들의 의미와 그 원인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1895년에서 1898년 사이에 활동했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일부(어쩌면 다수)가 그 당시에도, 즉 "자생적" 운동이 막 시작되고 있던 시기에도 매우 광범위한 강령과 투쟁 전술을 내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지극히 정당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⁴ 대다수 혁명가들의 준비 부족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어서 그 어떤 특별한 우려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임무 설정이 올바르고 이 임무를 실행하려는 시도를 거듭할 만큼의 정열이 있었다면, 일시적 실패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혁명 경험과 조직가적 수완은 획득 가능한 것이다. 필요한 품성을 자신에게서 계발하려는 열정만 있다면 말이다! 결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혁명 과업에서는 절반의 개조를 이루어 낸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흐려지기 시작했을 때(위에 거명한 그물의 활동가들에게는 이 같은 인식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자신의 결점을 미덕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태세로 자신의 자생성에 굴종하기와 맹종하기에 이론적 근거까지 부여하려 시도한 사람들 — 심지어 사회민주주의당의 기관지들까지도 — 이 등장했을 때, 대단치 않았던 불행은 그야말로 재앙이 되어 버렸다. 이 같은 경향을 총괄해야 할 때가 왔으나, 그 경향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협소한 "경제주의"라는 개념 때문에 그 내용은 매우 불분명하게 특징지어지고 있다.

 

2. 자생성에 굴종하기. 『노동자의 사상』

 

이 같은 자생성이 어떻게 문헌상에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앞서 언급한 소식통이 우리에게 전한) 다음의 특징적인 사실을 짚어 보겠다. 그 사실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이후의 두 경향의 반목이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했던 동지들 사이에서 어떻게 발생하여 증대되어 갔는지를 어느 정도 분명히 비춰 주고 있다. 1897년 초, 유형에 처해지기 전에 바네예프와 그의 몇몇 동지들은 어떤 사적인 모임에 참석해야 했다.[44] 그 모임에는 노동자계급해방투쟁동맹의 "노장" 회원들과 "소장"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논의는 주로 조직 문제, 특히 『"노동자의" 소식』 제9~10호(46쪽)에 완결된 형태로 실린 『노동자 상호 부금 규약』에 관해 이루어졌다. "노장파"(당시 페테르부르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들을 농담으로 "12월단원"[45]이라고 불렀다.)와 (나중에 『노동자의 사상』에 밀접하게 관여하게 된) 몇몇의 "소장파" 사이에 금방 첨예한 견해차가 드러났고 격렬한 논쟁이 불붙었다. "소장파"는 게재된 규약의 주요 원칙들을 옹호했다. "노장파"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투쟁동맹을 혁명가 조직이자, 학습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전 서클들이나 다양한 노동자 상호 부금 등이 종속되는 조직으로 굳건히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논쟁 당사자들은 이 같은 견해차 속에서 분열이 시작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이를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노장"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투쟁으로 "경제주의"의 발생과 확산이 러시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점을 현재의 "경제주의자들"은 종종 잊고 있다.) 이 투쟁의 많은 부분이 "문서의 형태로" 남아 있지 않은 유일한 까닭은 활동가 그룹의 성원들이 계승 방안을 전혀 마련해 놓지 못한 채 빈기지 않으리만큼 자주 바뀌었고, 따라서 견해차 역시 어떠한 문서로도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사상』이 등장함으로써 "경제주의"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여러 도시에서 새로운 경향의 성공과 실패가 극히 우연적이었다는 사실, 또 이 "새로운" 경향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모두가 이 특수한 경향이 현실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몇몇 인물들의 준비 부족을 표현한 것인지를 너무나 오랫동안 문자 그대로 전혀 판단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수많은 러시아 서클의 짧은 수명과 그 활동 조건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는 경험한 사람만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사판으로 나온 『노동자의 사상』의 처음 몇 호는 거의 대다수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그 창간호의 사설을 인용하는 것은 오로지 그 사설이 V. I.의 글(「"노동자의" 소식」제9~10호 47쪽 이하)에 재수록된 덕분이다. 물론 그 글은 우리가 앞서 언급한 신문 및 신문 기획 안과는 확연히 다른 이 새 신문을 열심히 — 이성적이라 볼 수 없을 만큼 열심히 — 칭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그런데 이 사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만큼 뚜렷하게 그것은 『노동자의 사상』과 "경제주의" 일반의 정신 전체를 드러냈던 것이다.

 

사설은 푸른 소매의 손[46]이 노동자운동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음을 지적한 후,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노동자운동의 이러한 강인한 생명력은 노동자들이 지도자들의 손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탈취하여 마침내 스스로 그것을 움켜쥐게 되는 까닭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기본 테제가 이후 상세히 전개되고 있다. 실제로는 지도자들(즉 사회민주주의자들, 투쟁동맹의 조직가들)이 경찰에 의해 노동자들의 손에서 탈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런데 사태는 마치 노동자들이 이 지도자들과 투쟁하여 그들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들은 혁명 조직을 강고히 하고 정치 활동을 확대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대신에, 노동조합주의 투쟁만 하라고, 뒤로 가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항상 정치적 이상을 잊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에 운동의 경제적 기초가 흐려지고 있다."라고 천명했으며, 노동자운동의 좌우명은 "경제적 지위를 위한 투쟁"(!), 아니면 더 좋게 말해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라고 천명하였다. 이들은 파업기금이 "수백 개의 다른 조직들보다 운동을 위해 소중하다."라고 선언하였다.(1897년 10월에 나온 이 주장을 1897년 초의 "12월단원들"과 "소장파" 사이의 논쟁과 비교해 보라.) 기타 등등. "'크림층' 노동자들이 아니라 '평균적' 노동자들과 대중을 중요시해야 한다." "정치는 언제나 경제를 충실히 쫓아가는 것이다"* 등과 같은 말들이 유행어가 되어, 대부분의 경우에 합법적으로 나온 문구들을 통해 맑스주의를 단편적으로만 접한 채 운동에 이끌리고 있는 수많은 청년에게는 물리칠 수 없는 영향력을 획득했다.

 

이는 자생성 — V. V. 씨의 "사상"을 되풀이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자생성, 1루블에 1코페이카를 더하는 것이 사회주의니 정치니 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가까운 것이라는 논거와 "무슨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자식들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을 알고 투쟁해야" 한다(『노동자의 사상』 제1호 사설)는 논거에 굴복한 노동자들의 자생성 — 이 의식성을 완전히 눌러 압도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문구들은 서유럽의 부르주아, 즉 사회주의를 중오하며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를 자국의 토양에 이식시키는 일을 해 온 서유럽의 부르주아, 노동자들에게 순수한 노동조합 투쟁[*]만이 훗날의 사회주의 따위를 내세운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자식들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하는 서유럽의 부르주아가 언제나 즐겨 써 온 무기였다. 이제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안의 V. V. 씨 같은 자들"이 이 부르주아적 문구들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현재의 견해차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세 가지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우리가 지적한 바 있는 자생성이 의식성을 압도한 과정 역시 자생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말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아! 이것이 쓰디쓴 진실이다. 그 과정은 완전히 대립되는 두 견해가 공개적으로 투쟁하고 그리하여 한 견해가 다른 하나를 물리쳐 승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수의 "노장" 혁명가들을 헌병이 "탈취"해 가고 점점 더 많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안의 V. V. 씨 같은" "소장파"가 전면에 나섬으로써 이루어졌다. 운동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느껴 본 사람 — 오늘날의 러시아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 이러한 누구나 상황이 바로 이러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이 잘 알려진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우리가 특별히 주장하는 것은, 또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 위해 우리가 "노장파"와 "소장파" 사이의 1897년 초 논쟁에 관한 자료와 『노동자의 대의』 창간호에 관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광범위한 대중(혹은 이제 막 청년이 된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중에 이 문제를 다시 다룰 것이다.

 

둘째, "경제주의"가 드러난 최초의 문헌에서 이미 우리는 너무나 독특한, 그리고 현재의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견해차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특징적인 현상을 볼 수 있다. "순수한 노동자운동"을 지지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운동과의 가장 긴밀하고 가장 "유기적인"(『노동자의 대의』의 표현) 관계를 지지하는 자들, 비(非)노동자 지식인(사회주의적 지식인이라 할지라도)이라면 다 반대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응호하기 위해 부르주아적 "순수한 노동조합주의자들"의 논거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상이 그것이다. 『노동자의 사상』이 창간 때부터 Credo의 강령을 실행하는 데 —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 매진했음이 우리에게 이를 보여 주고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자생성에 굴종하고 "의식적 요소", 즉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 당사자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아무 상관없이 — 그 자체로 노동자에 대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강화함을 의미한다는 것 — 『노동자의 대의』는 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을 보여 주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 의식적 요소가 행하는 역할의 과대평가** 등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노동자들이 "지도자들의 손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탈취"하기만 한다면 순수한 노동자운동은 스스로 자신의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를 마련할 수 있으며 마련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는 커다란 오류이다. 앞서 말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카우츠키의 다음과 같은 매우 정당하고도 중요한 말을 인용하겠다. 이것은 오스트리아사회민주주의당의 새 강령 초안과 관련하여 그가 한 말이다.**

 

우리의 수정주의적 비판가들의 다수는 맑스가 마치 경제 발전과 계급투쟁은 사회주의적 생산 조건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그 필연성에 대한 의식(카우츠키가 강조한 것)까지도 직접적으로 발생시킨다고 주장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 비판가들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 즉 영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이러한 의식으로부터 멀리 있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강령 초안에 근거하면, 위와 같이 반박을 당한 이 굉장한 정통 맑스주의 관점을 오스트리아당 강령을 작성한 위원회 역시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령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자본주의 발전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증대시키면 증대시킬수록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와 투쟁할 가능성을 얻게 되고, 얻게 않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의식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보자면, 사회주의의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필연적이고 직접적인 결과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다. 물론 학설로서의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경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한 그런 경제 관계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낳은 대중의 빈곤과 비참함에 반대하는 투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계급투쟁은 나란히 발생하는 것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전제 조건 아래에서 생겨난다. 현대의 사회주의 의식은 깊이 있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실로 현대의 경제학은 현대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건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이 아무리 원하여도 양자 중 어떤 것도 창출하지 못한다. 둘은 모두 현대의 사회 과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과학의 담지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 지식인(카우츠키가 강조한 것)이다. 현대 사회주의는 이 계급의 개별 구성원들의 머릿속에서 생겨났으며, 그들에 의해 지적으로 탁월한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되는 곳에서 노동자들은 이 사상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도입했다. 이처럼 사회주의적 의식은 von Außen(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도입된 것이지 그 투쟁으로부터 urwüchsig(자생적으로) 자라 나온 것이 아니다. 이에 걸맞게 이전의 하인펠트 강령은 사회민주주의당의 과제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의식과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의식을 도입하는(문자 그대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채워 넣는) 것이라고 너무도 정당하게 말한 바 있다. 이 의식이 계급투쟁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난다면 이렇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새 강령은 옛 강령의 이 명제를 떼어 내서 그것을 위에 인용한 명제에 써야 맞추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상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노동자 대중 자신이 그들 운동의 진행 속에서 마련해 낸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성립할 수 없다면, * 문제는 오직 다음과 같을 뿐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나 아니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냐. 여기에 중도는 없다. (인류는 "제삼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고안해 낸 적이 없으며, 또한 계급 모순으로 찢겨진 사회에서는 계급 외적 또는 계급을 초월한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축소시키는 것, 그로부터 멀어지려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킴을 의미한다. 자생성에 관해 말들이 많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의 자생적 발전은 바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노동자운동을 종속시키는 길이며 Credo의 강령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생적 노동자운동이란 노동조합주의, 즉 Nur-Gewerkschaftlerei(순수 조합주의)이며, 노동조합주의란 바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 사회민주주의당의 임무는 자생성과 투쟁하는 것, 즉 부르주아지의 보호 아래로 들어가려는 노동조합주의의 자생적 지향에서 노동자운동을 끌어내어 그것을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불꽃』 제12호에 실린 "경제주의자들의" 편지의 필자들이 쓴 글, 즉 가장 뛰어난 이데올로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물질적 요소들과 물질적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길에서 노동자운동을 끌어 내릴 수는 없다고 쓴 글은 바로 이런 까닭에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 필자들이 문필 및 사회 활동의 무대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바를 끝까지 일관되게 그리고 의연하게 숙고할 능력이 있다면, 그들은 "불필요한 양손으로 빈 가슴에 팔짱을 끼는 것"밖에는, 그래서…… 그래서 노동자운동을 "최소 저항 노선", 즉 부르주아적 노동조합주의 노선으로 끌고 가는 스트루베 씨와 프로코포비치 씨, 아니면 노동자운동을 성직자 및 헌병 "이데올로기"로 끌고 가는 주바토프 씨 등에게 활동의 장을 제공하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독일의 예를 기억해 보자. 라살레가 독일 노동자운동에 바친 역사적 공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노동자운동이 (슐체-델리치와 그 비슷한 무리들의 호감 어린 참여 아래) 자생적으로 지향해 온 점진적인 노동조합주의와 협동조합주의의 길에서 이 운동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생적 요소의 과소평가, 과정으로서의 전술, 환경과 요소들의 상호 관계 등등에 관한 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 어떤 것이 필요하다. 자생성에 대한 결연한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오랜 세월에 걸친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예를 들자면 베를린의 근로 인민이 점진주의자들의 버팀목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훌륭한 보루로 바뀌는 폐거를 이룬 것이다. 그런데 이 투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결코 끝나지 않고 있다. (독일 운동의 역사를 프로코포비치 식으로, 그 철학을 스트루베 식으로 배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질지 모르겠지만.)[48]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지금 독일의 노동자계급은 몇 가지 이데올로기로 분열되어 있다. 일부 노동자는 가톨릭 노동자 단체와 군주주의적 노동자 단체에 흡수되었고, 다른 일부는 영국 노동조합주의의 부르주아적 숭배자들이 만든 히르쉬-동커연맹[49]에 가입해 있다. 또 다른 일부는 사회민주주의 단체에 결합하였다. 마지막이 나머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이러한 지배권을 획득해 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와 지칠 줄 모르는 투쟁을 해 나갈 때에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묻는다. 하지만 자생적 운동, 즉 최소 저항 노선을 따르는 운동이 도대체 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로 이어진단 말인가? 간단한 이유에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이며, 더 포괄적으로 발전해 왔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포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⁴ 그러므로 한 나라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짧으면 짧을수록, 비(非)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하는 투쟁을 더욱 열정적으로 해야 하며, 노동자들에게 "의식적 요소"를 배격하라고 외치는 형편없는 조언자들에 맞서 더욱 단호하게 경고해야 한다. "경제주의자들의" 편지의 필자들은『노동자의 대의』와 한목소리로, 운동 유아기의 고유한 성격인 편협성을 쓴소리하게 비난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운동은 실제로 유아기에 있다. 따라서 조속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생성에 굴종하여 운동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운동의 편협성이 필요하다. 이미 오래전에 투쟁의 온갖 결정적인 국면을 경험한 노련한 사람들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보다 더 우습고 해로운 일이 있겠는가!

 

셋째, 『노동자의 사상』 창간호는 "경제주의"라는 명칭(물론 우리는 이 말을 거부할 생각이 없는데, 어쨌거나 이 별칭은 이미 확립된 것이기 때문이다.)이 새로운 경향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노동자의 사상』이 정치투쟁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사상』 제1호에 게재된 상호 부금 규약에도 정부에 대한 투쟁에 관한 언급이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사상』은 "정치는 언제나 경제를 충실히 따라간다."라고만 생각한다. (다른 한편, 『노동자의 대의』는 그 강령에서 "러시아의 경우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경제투쟁이 정치투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라고 강변하면서 이 명제를 변형시키고 있다.) 만일 정치라는 말을 사회민주주의 정치로 이해한다면, 『노동자의 사상』과 『노동자의 대의』의 이 명제들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매우 빈번히 부르주아적인, 교권주의적인, 혹은 기타 등등의 정치와 연관되어(비록 불가분의 관계는 아닐지라도) 일어난다. 만일 정치라는 말을 노동조합주의 정치로 이해한다면, 즉 모든 노동자의 처지에서 생기는 불행을 막아 주기는 하지만 그러한 처지를 없애 주지는 못하는, 즉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을 소멸시키지 못하는 이러저러한 조치들을 국가로부터 얻어 내려는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지향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면 『노동자의 대의』의 명제들은 올바르다. 실제로 이 같은 지향은 사회주의를 적대시하는 영국의 노동조합주의자들이나 가톨릭 노동자들, "주바토프주의" 노동자들, 기타 등등을 막론하고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정치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노동자의 사상』이 정치투쟁을 부정한다기보다는 정치의 자생성에, 그 무의식성에 굴종하고 있음을 본다. 『노동자의 사상』은 노동자운동 자체로부터 자생적으로 자라 나오는 정치투쟁(더 정확하게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원망과 요구)은 충분히 인정하면서, 현재 러시아의 조건과 사회주의의 일반적인 과제에 상응하는 특수한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거부한다. 우리는 아래에서 『노동자의 대의』의 오류 역시 이와 마찬가지임을 보여 주겠다.

 

3. 자기해방그룹과 『노동자의 대의』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또 지금은 거의 잊혀 버린 『노동자의 사상』 창간호의 사설을 우리가 이렇게 상세히 분석한 까닭은 그 글이 후에 수많은 작은 지류를 이루며 세상에 쏟아져 나온 하나의 일반적인 흐름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극명하게, 그리고 일찍이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V. I.가 『노동자의 사상』 창간호와 그 사설에 열렬한 찬사를 보내며 그 사설이 "거침없이, 그리고 열정적으로"(『"노동자의" 소식』 제9~10호 49쪽) 쓰였다고 한 것은 지극히 온당하신 말씀이었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신이 뭔가 새로운 것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열정적으로" 글을 쓰며, 자신의 견해가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글을 쓴다. 앙다리를 걸치는 데 익숙한 사람, "열정"이라곤 없는 사람들만이 어제는 『노동자의 사상』의 열정을 칭찬했다가 오늘은 반대편을 "논쟁에 열정적"이라고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노동자의 사상』의 『별책 부록』은 검토하지 않을 것이며(뒤에 우리는 다양한 문제들에 관하여 "경제주의자들"의 사상을 가장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는 이 글을 인용하게 될 것이다.), 다만 『노동자자기해방그룹의 호소』(1899년 3월에 나왔고, 1899년 7월 런던의 『전야』 제7호에 재수록)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노동자의 러시아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겨우 주위를 둘러보고 먼저 눈에 들어온 투쟁 수단들을 본능적으로 거머쥐려 하고 있다." 이 「호소」의 필자들은 이렇게 매우 정당하게 말하면서도, 『노동자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이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그들은 본능이란 무의식성(자생성)이며 그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 "먼저 눈에 들어온" 투쟁 수단들은 현대사회에서는 항상 노동조합주의 투쟁 수단들이며 "먼저 눈에 들어온"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조합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 필자들 역시 정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대신에 V. V. 씨를 쫓아 정치는 상부구조이며, 따라서 "정치 선동은 경제투쟁을 위한 선동의 상부구조여야 하고 이 투쟁의 토양 위에서 자라 나와 그것을 쫓아가야 한다."라고 (오직 그렇게만!) 말할 뿐이다.

 

『노동자의 대의』는 아예 곧바로 "경제주의자들"을 "옹호"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창간호(제1호 141~142쪽)에서 『노동자의 대의』는 악셀로트가 유명한 소책자*를 통해 "경제주의자들"에 대해 경고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악셀로트가 어떤 젊은 동지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했으며, 그 후에 이 거짓말을 둘러싸고 악셀로트 및 플레하노프와 논쟁이 불붙자, "당혹감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국외의 모든 소장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이 부당한 비난(악셀로트가 "경제주의자들"을 소견이 좁다고 비판한 것)으로부터 방어해 주고 싶었다."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사실 악셀로트의 그 같은 비난은 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노동자의 대의』도 그 비난이 편집국원인 V. I.를 거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었다. 덧붙여 지적하자면, 앞서 언급한 논쟁에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임무』라는 나의 소책자[51]를 해석한 부분은 악셀로트가 전적으로 옳았으며 『노동자의 대의』는 완전히 틀렸다. 그 소책자는 『노동자의 사상』이 아직 등장하기 전인 1897년에 쓴 것인데, 그때 나는 앞서 그 성격을 규정한 바 있는 페테르부르크 투쟁동맹의 최초의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최소한 1898년 중반까지는 이 경향이 실제로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1897~1898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경제주의" 관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그런 관점을 서술한 소책자를 "경제주의"의 존재와 그 위험성을 반박하는 근거로 인용한 권리가 『노동자의 대의』에게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노동자의 대의』는 "경제주의자들"을 "옹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신도 끊임없이 그들이 범한 주요한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 같은 방향 상실은 『노동자의 대의』 강령의 다음 테제를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발생한 대중적 노동자운동(『노동자의 대의』가 강조한 것)을 동맹의 저술 활동의 성격 및 임무를 주로 규정하게 될(내가 강조한 것) 러시아 상황의 극히 중요한 현상으로 본다." 대중운동이 극히 중요한 현상이라는 데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대중운동에 의한 "임무 규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운동의 자생성에 굴종한다는, 즉 있는 그대로의 노동자운동에 단순히 봉사하는 수준으로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을 귀착시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의 대의』, 자기해방그룹, 그리고 그 밖의 "경제주의자들"의 이해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대중운동이 우리 앞에 새로운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임무, 즉 대중운동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시기에 우리가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임무를 제기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의 대의』는 바로 이 첫째 방식의 이해에 경도되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대의』는 새로운 임무에 관해서는 아무런 명확한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대중운동이 우리에게 제기한 임무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마치 이 "대중운동"이 면제해 주기라도 하는 양 항상 말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려면 『노동자의 대의』가 전제주의 타도를 대중적 노동자운동의 첫째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과제를 눈앞의 정치적 요구를 (대중운동의 이름으로) 얻어내기 위한 투쟁이라는 임무로 격하시키겠다는 사실(『답변』25쪽)을 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노동자의 대의』의 편집자인 끄리첸스키가 제7호에 쓴 글 — 「러시아 운동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똑같은 오류들을 반복하고 있는 그 글[*]은 제처 두고 『노동자의 대의』 제10호로 직접 넘어가자. 물론, 우리는 끄리첸스키와 마르티노프가 『여명』과 『불꽃』에 반대한 문구 하나하나를 톺아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부분은 『노동자의 대의』 제10호가 취한 원칙적인 입장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의 대의』가 아래의 문구들 사이에서 "극단적인 모순"을 보았다고 한 그 희한한 발견도 분석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당은 사전에 미리 고안해 낸 정치투쟁의 계획이나 방법으로 자신의 손을 묶지도, 활동의 폭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사회민주주의당은 당의 현재 역량에 상응하는 한, 모든 투쟁 수단을 인정한다. ……"(『불꽃』 제1호)라는 문구와 "어떤 상황, 어떤 시기에도 정치투쟁에서 경험을 쌓은 강고한 조직이 없다면, 견고한 원칙들에 의해 조명되어 흔들림 없이 실행되는 체계적인 활동 계획 — 그것만을 전술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을 말할 수 없다."(『불꽃』 제4호)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전술에 관해 말하자면, 모든 투쟁 수단, 계획, 방법 등의 — 그것이 합목적적이기만 하다면 — 원칙적인 인정과 당면한 정치적 시기에 흔들림 없이 실행되는 계획에 따라야 한다는 요구를 혼동하는 것은 모든 치료법의 의학적 인정과 현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하나의 특정한 치료법을 고수해야 한다는 요구를 혼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자의 대의』가 우리가 자생성에 굴종하기라고 부른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이 병에 대한 그 어떤 "치료법"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노동자의 대의』는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맑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 (제10호 18쪽)라거나 전술이란 "당과 함께 성장하는 당 임무의 성장 과정" (『노동자의 대의』11쪽)이라는 굉장한 발견을 해내게 된 것이다. 뒤의 이 격언은 『노동자의 대의』가 보여 준 "경향"의 무너지지 않을 기념비이자 유명한 격언이 될 가능성을 죄다 가지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기관지는 다음과 같은 답을 준다. "운동은 운동의 출발점과 이후의 지점들간의 거리가 변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비교할 바 없이 예리한 통찰력은 단지 하나의 희한한 일이 아니라 (만일 그랬다면 이것을 특별히 검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일적인 한 경향의 강령이다. 그것은 R. M.이 (『노동자의 사상』의 『별책 부록』에서) 표현했던 바로 그 강령, 즉 가능한 투쟁이 바람직한 것이며 현 시기에 진행되고 있는 투쟁이 바로 가능한 것이라는 강령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생성에 수동적으로 순응해 가는 끝없는 기회주의의 경향인 것이다.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맑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 이는 맑스주의를 모독하는 것이며, 인민주의자들이 우리와 싸울 때 우리에게 했던 것같이 맑스주의를 희화화하는 것이다. 이는 의식적인 활동가들의 활력과 창발성을 그야말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맑스주의는 그와는 반대로, 사회민주주의당에게 넓디넓은 전망을 열어 보이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길로 "자생적으로" 일어서고 있는 수백만의 강력한 힘을 통제(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하면서, 사회민주주의당의 활력과 창발성에 엄청난 자극을 주지 않는가!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의 역사 전체는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계획들은 어떤 이의 선견지명과 정치적, 조직적 안목의 올바름을 증명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의 근시안과 정치적 오류들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면서, 여러 정치 지도자들이 제기해 왔던 것이다. 독일이 거대한 역사적 굴곡 — 제국의 형성, 제국의회의 개원, 일반 선거법의 제정 — 을 겪을 때, 리프크네히트는 사회민주주의 정치와 과업의 일정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슈바이처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사회주의자특별법이 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을 엄습했을 때 폭력과 테러에 단순히 호소하려 했던 모스트와 하셀만에게는 그들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슈람과 회히베르크, 그리고 (부분적으로) 베른슈타인에게는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비이성적인 과격함과 혁명성으로 이 법을 자초했으므로 이제는 모범적인 행동으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비합법 기관지를 준비하고 이를 발간해 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52]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발생한 투쟁이 종식되고 많은 세월이 흘러, 선택된 길의 적합성을 역사가 최종적으로 판정한 뒤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당과 함께 성장하는 당 임무의 성장이라는 교훈을 뇌까리며 통찰력을 과시하는 것은 물론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비판가들"과 "경제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당을 노동조합주의의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으며 테러리스트들이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계획으로서의 전술"을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이 혼란의 한 해, [*] 바로 그러한 시기에 이처럼 대단한 통찰력에 갇히는 것은 자신에게 "빈곤 증명서"를 발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가 바로 활력과 창발성의 부족, "폭 넓은 정치 선전, 선동, 조직화" [**]의 부족, 보다 폭 넓은 혁명 과업의 설정이라는 "계획"의 부족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바로 그러한 시기에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맑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라고 말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이론적으로 속류화하는 것일 뿐더러, 실천적으로 당을 후퇴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당의 임무는" — 『노동자의 대의』가 우리에게 훈시한다. — "의식적 활동을 통해 객관적인 발전을 단지 촉진시키는 것일 뿐이지 그 발전을 폐기하거나 주관적인 계획으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불꽃』은 이론으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천에서는, 전술에 대한 교조주의적 관점 덕분에, 맑스주의가 의식적인 혁명 활동에 정당하게 부여한 커다란 의의가 발전의 객관적 또는 자생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쪽으로 그들을 끌고 간다." (18쪽.)

 

또다시 일단의 패거리를 거느린 V. V. 씨에게 어울리는 대단한 이론적 혼란이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자에게 묻고 싶다. 주관적인 계획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객관적인 발전을 "과소평가한다"라면, 그것은 어떻게 나타납니다? 분명 그것은 이러한 객관적 발전이 특정 계급, 계층, 그룹들, 특정 민족들, 민족 그룹들 등등을 생성하거나 강화하고 죽이거나 약화시킨다는 사실, 그것으로 이러저러한 국제적인 정치 세력들과 혁명 정당의 입지 등을 제약한다는 사실을 그가 간과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의 잘못은 자생적 요소를 과소평가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의식적 요소를 과소평가한 데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객관적 발전을 올바로 이해할 만한 "의식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생성과 의식성의 "상대적(『노동자의 대의』가 강조한 것) 중요성에 대한 평가"라는 말 하나만 보아도 "의식성"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만일 그 유명한 "발전의 자생적 요소"가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요소를 그릇되게 평가하는 것은 "의식적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에 만일 그 요소가 의식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들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그것들에 관해 말할 수도 없다. 대체 끄리첸스키 씨는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가? 만일 그가 『불꽃』의 "주관적인 계획"이 오류임을 발견한다면(그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는 이 계획이 도대체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불꽃』이 간과하고 있는 것에서 보이는 의식성 부족, "의식적 요소에 대한 과소평가"를 그의 언어로 비판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주관적인 계획이란 것을 못마땅해하는 그가 "자생적 요소에 대한 과소평가"(!!)를 들먹거리는 것 말고는 다른 논거를 갖고 있지 않다면, 이로써 그가 증명해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자신이 1) 이론적으로는, 별도표에게 충분히 비웃음을 당한 카레예프나 미하일롭스키 식으로 맑스주의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과 2) 실천적으로는, 우리의 합법적 맑스주의자들을 베른슈타인주의에, 그리고 우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경제주의"에 경도시킨 바로 그 "발전의 자생적 요소"에 너무나 만족스러워한다는 사실뿐이다. 또 어떻게 해서라도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을 "자생적" 발전의 길에서 끌어 내리려 결의한 사람들에 대해 그가 "격분"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더 나아가 이제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자연과학이 그 어떤 성과를 거둔다 해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방식대로 번식하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이 그 어떤 성과를 거둔다 해도, 그리고 의식적인 투사들이 아무리 증가한다 해도, 앞으로도 새로운 사회질서의 출현은 주로 자생적 폭발의 결과일 것이다."(19쪽.) 선조들의 지혜로운 말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머리가 모자라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은 없는 법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최신 사회주의자들"(나르치스 투벨릴로프 식의)은 이와 비슷한 명언을 말씀하신다. 누구나 새로운 사회질서의 출현에 참여할 만큼의 머리는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도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참여를 위해서는 "경제주의"가 횡행할 때면 "경제주의"에, 테러주의가 발생하면 테러주의에 항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노동자의 대의』는 테러에 경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했던 올 봄에, 자신으로서는 "새로운" 이 문제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반년이 지난 지금, 이 문제가 더 이상 그처럼 절박한 문제가 아닌 바로 이 시점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우리 앞에 치켜들고 있는 것이다. "테러 분위기의 고양에 대항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당의 임무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노동자의 대의』제10호 23쪽.) 그리고 대회 결의안을 내세운다. "대회는 체계적이고 공격적인 테러는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두 대회』18쪽.) 이 얼마나 분명하고 조리 있는 말인가! 우리는 대항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천명한다. 게다가 비체계적이고 방어적인 테러는 "결의안"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다. 이런 결의안이 무척 안전하며 오류를 범할 우려가 전혀 없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는 마치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하여 말한 사람은 실언할 염려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런 결의안의 작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운동의 꼬무니를 붙잡을 줄 알면 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대의』가 테러 문제를 새로운 문제라고 천명한 것을 『불꽃』이 조소하자, 『노동자의 대의』는 화가 나서 "15년도 더 전에 한 망명 작가 그룹이 제출한 전술적 문제에 대한 결정을 당 조직에 강요하려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요구"(24쪽)라며 『불꽃』을 비난했다. 결정의 올바름을 대중에게, 조직에, 당에 확신시키기 위해 사전에 문제에 관한 이론적인 결정을 하다니 도대체 이 얼마나 의식적 요소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며 권위를 내세우는 거드름이란 말인가! 어느 누구에게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아는 일을 반복하고, "전환"이 있을 때마다 "경제주의"에도, 테러주의에도 굴종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노동자의 대의』는 『불꽃』과 『여명』이 "무형의 혼돈상태를 떠도는 혼령처럼 운동에 대항하여 자신의 강령을 내세우고 있다."(29쪽.)라고 비난하면서, 세속의 현명함이라는 저 위대한 유혼을 일반화시키기까지 한다. 자생적 운동의 위를 떠들뿐만 아니라 그 운동을 "자신의 강령"으로까지 끌어올리는 "혼령"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운동의 꼬무니에서 질질 끌려다니는 것이 그 역할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최상의 경우라면 운동에 전혀 무익할 뿐이며, 최악의 경우라면 그 해악은 무척 큰 것이다. "노동자의" "대의"라는 것이 이같은 "과정으로서의 전술"을 좋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원칙으로까지 격상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 노선은 기회주의라기보다는 (꼬무니라는 단어에서 나온) 꼬무니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운동의 꼬무니를 따라가기로 굳게 결의한 사람들은 영원히, 그리고 절대로 "발전의 자생적 요소를 과소평가할" 염려가 없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새로운 경향"의 기본적인 오류란 자생성에 굴종한 것, 그리고 대중의 자생성이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많은 의식성을 요구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대중이 자생적으로 고양되면 될수록, 운동이 더욱 널리 퍼져 나가면 나갈수록,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활동에서 더 많은 의식성에 대한 요구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속히 커진다.

 

러시아에서 대중은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 같은 엄청난 과제를 실행할 준비를 미쳐 다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빠르게 자생적으로 고양되었다. (그리고 그 성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준비 부족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비극, 모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비극이다. 대중의 고양은 시작된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새로운 지역과 새로운 계층을 잠식해 가면서 끊임없이 (노동자운동의 영향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청년층과 지식층 전반에서 뿐만 아니라 농민층에서도 민심이 들끓었다.), 그리고 성과를 계승하면서 진행되고 확대되었다. 혁명가들은 "이론"에서도, 활동에서도 이러한 대중의 고양에 뒤쳐졌으며, 전체 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중단되지 않고 계승되는 조직을 건설하지 못했다.

 

제1장에서는 『노동자의 대의』가 우리의 이론적 과제를 과소평가하고 "비판의 자유"라는 유행어를 "자생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이 유행어를 반복하는 자들에게는 독일과 러시아에서 보이는 기회주의자 "비판가들"과 혁명가들의 극단적인 입장 대립을 이해할 "의식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다음의 장들에서는, 사회민주주의당의 정치적 임무와 조직활동에서 이 같은 자생성에 굴종하기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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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교조주의와 “비판의 자유”

 

1. “비판의 자유”란 무엇을 뜻하는가?

 

“비판의 자유” — 이것은 분명, 어떤 나라에서건 사회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이 시대에 가장 유행하는 슬로건이다. 언뜻 보기에는, 논쟁 당사자들 중 한편이 비판의 자유를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거론하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을 생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학문과 학술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다수 유럽 국가의 헌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진보적 정당들 가운데서 정말 흘러나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건 뭔가 아니야!” — 어디서나 반복되는 이 현대적 슬로건을 들어 보았음에도 논쟁 당사자들 사이의 반목의 본질을 아직 심도 깊게 포착하지는 못한 제삼자라면 누구나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별명이 그렇듯이, 이 슬로건은 사용됨으로써 정당화되고 거의 보통명사가 되어가는 상투어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군.”

 

실제로, 현대의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안에는 두 가지 경향이 형성되어 왔으며, 그것들 사이의 투쟁은 때로 거세게 타올라 활활 타는 불꽃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고, 때로 사그라져서 암시적인 “휴전협정”의 재 속에서 희미하게 가물거리기도 한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다. “낡은, 교조적” 맑스주의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새로운” 경향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베른슈타인은 너무도 분명하게 말했고, 밀레랑은 보여 주었다.

 

사회민주주의당은 사회 혁명의 정당에서 민주주의적인 사회 개혁의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베른슈타인은 매우 정연하게 합의된 “새로운” 논거와 사고들로 완전무장을 하여 이 같은 정치적 요구를 내세웠다. 사회주의에 과학적 근거를 부여하고 역사의 유물론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사회주의의 필연성과 불가피성을 입증할 가능성은 부정되었다. 점증하는 빈곤, 프롤레타리아트화,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 등의 사실은 부정되었다. “궁극 목표”라는 개념 자체는 파산선고를 당했으며,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사상은 말할 것도 없이 반박을 당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원칙적인 대립은 부정되었다. 계급투쟁 이론은 다수의 의지에 의해 통치되는 엄격한 민주주의 사회에는 마치 적용될 수 없는 것인 양 부정되었다.

 

이처럼,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당에서 부르주아적 사회개량주의로 단호하게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는 그에 못지않게 맑스주의의 모든 기본 사상에 대한 부르주아적 비판으로의 단호한 전환을 수반했다. 그런데 이러한 최근의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맑스주의에 반대하여 정치 연단에서, 대학 강단에서, 수많은 소책자와 학자들의 논문에서도 행해져 온 것이다. 또한 교육 받은 계급의 모든 청소년이 수십 년 동안 체계적으로 이 같은 비판의 토양에서 성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새로운 비판적” 경향이 유피테르의 머리에서 나온 미네르바처럼 단번에 너무나 완전한 형태를 띤 것[7]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내용으로 보아, 이 경향은 발전되어 모양을 갖추어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르주아 문헌에서 콘바로 사회주의 문헌으로 옮겨진 것이다.

 

더 나아가 보자. 베른슈타인의 이론적 비판과 그의 정치적 열망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직 명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느라 고심했다. 프랑스는 이번에도 “계급투쟁이 그 어느 곳보다 더 중국에까지 철저히 진행되었던 나라”(엥겔스의 「밥스의 저작 『브뤼비르 18일』에 부치는 서문」에 나오는 표현) [8]라는 오랜 명성에 값하였다.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적으로 보다 많이 발전된 프랑스의 정치적 조건들로 인해 그들은 베른슈타인주의의 온갖 결과들을 드러내며 금방 “실천적 베른슈타인주의”로 옮겨 갈 수 있었다. 밀레랑은 이러한 실천적 베른슈타인주의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베른슈타인과 풀마르가 그토록 열렬히 밀레랑을 응호하고 칭찬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만약 사회민주주의당이 그 본질상 그저 개혁 정당이며 또 공개적으로 이를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면, 사회주의자는 부르주아 내각에 입각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제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기도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그 본질상 계급 지배의 폐지를 의미한다면, 사회주의자인 장관이 계급 협력에 관한 말들로 부르주아지 세계 전체를 매혹시켜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가? 민주주의적 계급 협력의 진정한 성격을 수도 없이 보여 준 헌병들의 노동자 학살이 있은 후라도 그가 내각에 남아 있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이 지금 교수대, 체적, 유형의 영웅이라고 칭하는 싸르를 환영하는 자리에 그가 개인적으로 참석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가? 그런데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한없는 경멸과 제 얼굴에 침 뻗기에 대한 대가로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인 노동자 대중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타락시키는 것에 대한 대가가 고작 보잘것없는 개혁, 부르주아 정부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것도 그보다는 더 많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개혁의 요란한 계획안들이란 말인가!

 

일부러 자신의 눈을 감아 버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주의 내의 새로운 “비판적” 경향이 기회주의의 새로운 변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몸에 걸친 빛나는 제복이나 스스로 갖다 붙인 효과적인 명칭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는가와 실제 무엇을 선동하는가를 보고 사람들을 판단한다면, “비판의 자유”란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기회주의 경향의 자유, 사회민주주의당을 민주주의적 개혁 정당으로 바꾸어 놓을 자유, 사회주의에 부르주아적 사상과 부르주아적 요소를 도입할 자유라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자유 — 위대한 말이다. 하지만 산업의 자유라는 지발 아래 극렬한 약탈 전쟁이 벌어졌으며, 노동의 자유라는 지발 아래 노동자들이 수탈당했다. 이와 똑같은 내적 기만이 감춰져 있는 말이 현재 사용되고 있다. “비판의 자유”가 그것이다. 자신들이 과학을 진일보시켰다고 정말로 확신하는 사람들이라면, 낡은 견해와 새로운 견해가 병존할 자유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낡은 견해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비판의 자유 만세!”라는 현재의 외침을 듣노라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우화가 자꾸만 떠오른다.

 

우리는 가파르고 험난한 길을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서 걸어가고 있다. 사방에서 적들이 우리를 에위싸고 있으며, 거의 언제나 우리는 그들의 포화 속을 걸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바로 옆에 있는 높으로 발을 헛디디며 빠지지 않고 적들과 싸우기 위해 단결하였다. 그 높에 사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우리를 비난해 왔다. 우리가 특별한 그룹으로 분리해 나와서 타협의 길이 아닌 투쟁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가운데 몇몇이 이렇게 외치기 시작한다. "저 높으로 갑시다!" 우리가 그들에게 수모를 주기 시작하자, 그들은 이렇게 반박하고 나선다. "당신들은 얼마나 뒤떨어진 사람들인가! 그리고 당신들은 어찌 그리 철면피처럼 더 나은 길로 가자고 호소할 자유를 우리에게서 박탈하는가!" 아, 그렇군요, 신사 양반들, 당신들에게는 호소할 자유가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그곳이 높이라 할지라도 가고 싶은 대로 갈 자유도 있소. 우리는 당신들의 진정한 자리가 바로 그 높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고, 당신들이 그리로 이주하도록 힘껏 도와줄 준비도 되어 있소. 그러나 그때 우리의 손을 놓아만 주시지요. 우리를 불잡지 마시고, 자유라는 위대한 말을 더럽히지 마시오. 우리에게도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자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높으로 향하는 사람들과도 싸울 자유가 있기 때문이오!


2. "비판의 자유"의 새로운 응호자들

 

여기 이 슬로건("비판의 자유")은 아주 최근에 국외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동맹[9]의 기관지인 『노동자의 대의』(제10호)에서 엄중히 제기된 바 있다. 이론적 가정이 아닌 정치적 요구로서, 한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서 제기된 것이다. "국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조직들의 통합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대해 "강고한 통합을 위해서는 비판의 자유가 필수적이다."(36쪽)라는 답변으로.

 

이 같은 입장 천명으로부터 너무도 명확한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1) 『노동자의 대의』는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전반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옹호하고 있다. 2) 『노동자의 대의』는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기회주의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이 결론들을 살펴보자.

 

『노동자의 대의』는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진영의 산악파와 지롱드파[10] 사이의 분열을 예언하는 『불꽃』과 『여명』의 경향을 "특히" 못마땅해 한다. "우리 생각에는" — 『노동자의 대의』의 편집장인 끄리첸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사회민주주의 대오 내에서 거론되는 산악파와 지롱드파에 관한 말들은 맑스주의자의 펜을 빌린 이상하고도 피상적인 유비(類比)이다. 산악파와 지롱드파는, 이데올로그 역사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기질이나 지적 경향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계급이나 계층 – 한쪽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소시민, 다른 한쪽은 중간 부르주아지 – 을 대표했다. 그런데 현대 사회주의 운동에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충돌은 없다. 현대 사회주의 운동 안에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포함해 온갖(강조는 끄리첸스키가 한 것) 다양한 형태가 있을지라도, 현대 사회주의 운동은 전체가 하나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해관계와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32~33쪽.)

 

대담한 주장이다! 끄리첸스키는 이미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 즉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주의 운동에 "학자"층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것이야말로 베른슈타인주의를 그렇게 빨리 확산시킬 수 있도록 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듣지도 못했던 말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우리의 저자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도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무엇으로 입증하고 있는가? 알려진 바 없다.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에 대한 단호한 옹호는 그 어떤 논거로도, 사고로도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저자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자신들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반복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그 경향의 대표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근거하여 전체 경향을 판단하는 것보다 더 "피상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뒤에 이어지는 서로 다른, 심지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가지 당 발전의 길과 유형에 관한 다음과 같은 "훈계"(『노동자의 대의』34~35쪽)보다 더 피상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보시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비판의 완전한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프랑스인들의 예야말로 '편협함의 해악'을 전부 보여 주고 있지 않소."라는 훈계 말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답할 뿐이다. 끄리첸스키의 예야말로, 문자 그대로 "일로바이스키 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이 종종 자신을 맑스주의자로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이다. 그에게는 독일의 사회주의정당의 단결과 프랑스의 사회주의정당의 분열을 설명하기 위해 두 나라 역사의 특수성에 천착하고 군사적 반(反)전제주의와 공화제적 의회주의라는 각각의 조건을 대비시키는 것, 꼬뮌[14]과 사회주의자특별법[15]으로 생긴 각각의 결과들을 분석하고 경제생활과 경제의 발전을 비교하는 것,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당의 전례 없는 성장"이 사회주의 역사에서 이론적 오류(될베르거, 뒤링*, 강단 사회주의자들[17])뿐만 아니라 전술적 오류(라살레)와도 정력적으로 투쟁하는 과정을 수반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다. 이런 것은 모두 쓸데없다! 프랑스인들은 인내심이 없어서 서로 말다툼질이고 독일인들은 좋은 친구들이어서 단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보라.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옹호하는 논리를 전적으로 반박하는 사실이 이 비할 데 없이 심오한 사상을 방패로 "기각되고 있다."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과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서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직 역사적 경험에 의해서만 최종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예야말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독일 동료들(또한 부분적으로는 러시아의 기회주의자들: 『노동자의 대의』 제2~3호 83~84쪽 참조)의 뜨거운 격려 속에 스스로 자신의 발로 서려고 시도했던 유일한 나라이다. 프랑스인들의 "비타협성"을 거론하는 것 — 그 "역사적(노즈드료프[18]식 의미에서)" 의의는 차치하고라도 — 은 매우 불쾌한 사실들을 성냐서 내뱉는 욕설로 뭉개 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는 끄리첸스키와 다른 수많은 "비판의 자유" 옹호자에게 독일인들을 선사할 생각도 전혀 없다. 만일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독일의 당의 대오 안에서 아직 용인되고 있다면, 그것은 베른슈타인의 "수정안"을 단호히 배격한 하노버 결의와 (그 전반에 흐르는 외교성에도 불구하고) 베른슈타인에 대한 직접 경고를 포함하고 있는 뤼베크 결의[19]에 독일인들이 복종하는 한에서다. 독일의 당의 이해관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외교성이 얼마만큼 적절했냐에 관해서는, 즉 이 경우에는 나쁜 평화가 좋은 싸움보다 더 나은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해서는 논쟁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베른슈타인주의를 배격하는 그 두 가지 방법의 합목적성을 평가하는 데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당이 두 번이나 베른슈타인주의를 배격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독일인들의 예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도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서 있다."라는 데제를 확인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만인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뿐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노동자의 대의』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앞에 "비판의 자유"라는 요구를 들고 베른슈타인주의를 옹호하며 나서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부당하게 우리의 "비판가들"과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모욕했다고 확신하게 됐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누가? 어디서? 언제 모욕했다는 것인가? 무엇이 부당했던 말인가? 이에 관해서 『노동자의 대의』는 단 한 번도 그 어떤 러시아 비판가나 베른슈타인주의자도 거론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두 가지 가능한 가정 가운데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부당하게 모욕을 당한 측이 남이 아닌 『노동자의 대의』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제10호에 실린 두 편의 글에서 『여명』과 『불꽃』이 『노동자의 대의』에 가한 모욕만이 언급되고 있는 데서 확인되는 바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베른슈타인주의와의 일체의 연대를 그렇게도 완강하게 항상 거부해 왔던 『노동자의 대의』가 자신을 옹호하려 할 때마다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과 비판의 자유를 변호하는 말을 한마디씩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이상한 일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다른 하나는 어떤 제삼자가 부당하게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들이 누구인지 침묵해야 하는가?

 

이처럼, 우리는 『노동자의 대의』가 그 탄생 순간부터 열중해 왔던(우리는 나중에 이를 보여 줄 것이다.) 숨바꼭질을 계속 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이제, 그지없이 훌륭한 "비판의 자유"가 처음으로 이처럼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런데 사실, 비판의 자유는 지금 비판의 전무 상태, 나아가 독자적 판단의 전무 상태로 귀착되어 있다.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에 관해서는 마치 숨겨야 될 질병(스타로베르의 적확한 표현대로[21])인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바로 그 『노동자의 대의』가 이 질병의 치료를 위해 질병의 독일적 변종에 대한 최신의 독일식 처방을 그대로 베끼라고 제안하다니! 비판의 자유이기는 커녕 노예의,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원숭이의 모방이 아닌가! 현대의 국제적인 기회주의의 동일한 사회적, 정치적 내용은 민족적 특수성에 맞게 이러저러하게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기회주의자 그룹이 오래전부터 특별한 깃발 아래 진군해 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실천적으로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의 정책을 수행하면서 이론은 무시해 왔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혁명적 정당의 몇몇 당원들이 기회주의 진영으로 옮겨 가서, 원칙과 새 전술을 위한 공개 투쟁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 징계 받지 않을 정도로 자기 당을 타락시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애쓰고 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그 같은 이탈자들이 정치적 노예제의 압흑 속에서 "합법" 활동과 "비합법" 활동의 너무나 독특한 상호 관계를 유지하며 똑같은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기타 등등.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가 과연 어떤 것으로 발현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분석하지도 않은 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통합 조건으로 베른슈타인주의와 "비판의 자유"를 말하려 달려드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비록 단 몇 구절일지라도, 『노동자의 대의』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혹은 어쩌면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을 우리가 바로 말해 보자.

 

3. 러시아에서의 비판

 

지금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문제에서 러시아의 주요한 특수성이란 자생적인 노동자운동과 선진적인 사회 여론의 맑스주의로의 전환이라는 두 가지의 시작 자체가 명백히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동의 적(낡은 사회관과 정치관)과 투쟁하기 위해 공동의 깃발 아래 결합되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합법적 맑스주의"의 밀월 시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매우 독창적인 현상이었다. 1880년대, 또는 1890년대 초반에는 이 같은 현상의 가능성 자체를 누구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언론이 전적으로 예속 상태에 있는 전제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불만과 저항이 조금도 자라지 못하도록 탄압했던 극단적인 정치적 반동의 시대에, 이솝의 언어를 빌리기는 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적인 혁명적 맑스주의 이론이 느닷없이 검열을 통과한 서적으로 진로를 열었다. 정부는 (혁명적인) '인민의 의지'의 이론만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 있었으므로, 언제나 그렇듯 그 이론의 내적 발전을 눈치채지 못하고는 '인민의 의지'에 반대하는 경향이라면 어떤 것이건 혼쾌히 받아들였다. 정부가 불현 듯 사태를 깨달아 검열관과 헌병의 중부대가 새로운 적을 찾아내 덮칠 때까지는 상당한(우리 러시아식 셈으로)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한 권 두 권 맑스주의 서적들이 나왔으며, 맑스주의 잡지와 신문들이 창간되었고, 모두 맑스주의자가 되어 맑스주의자들을 치켜세우고 그들의 비위를 맞췄으며, 출판인들은 뜻밖에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맑스주의 서적들에 열광했다. 이 같은 중독된 분위기에 휩싸인 초보 맑스주의자 가운데에 "거드름을 피워 대는 문필가……"[22]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는 이 시기에 관해 마치 과거를 이야기하듯 차분히 말할 수 있다. 우리 문필계의 지면에서 맑스주의가 잠시 꽃을 피웠던 것은 과격파와 온건파의 연합으로 인한 현상이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온건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었다. (이후 그들의 "비판적" 발전으로 명백히 증명된) 이 결론을 몇몇 사람들은 "연합"이 온전했던 시기에 이미 생각한 바 있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후의 "분란"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미래의 "비판가들"과 이러한 연합에 들어갔던 바로 그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사태를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이 같은 질문과 이를 긍정하는 답변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완전히 틀렸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과의 일시적 연합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다. 그 어떤 정당도 그런 연합 없이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합법적 맑스주의자들과의 결합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이 맺은 일종의 최초의 실질적 정치 연합이었다. 이 연합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인민주의에 승리할 수 있었으며, 맑스주의 사상(통속화된 형태이긴 했지만)을 엄청난 규모로 폭 넓게 보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연합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 증거는 1895년에 검열관이 불태워 없앤 맑스주의 저작집 『러시아의 경제 발전에 관련된 자료들』이다. 합법적 맑스주의자들과의 문필 협정을 정치 연합에 비교할 수 있다면, 그 책은 정치 조약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합이 결렬된 것은 "연합 당사자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 경향의 대표자들은 사회민주주의 당의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연합 세력이다. 러시아의 현재 상황은 일차적으로 민주주의적 과제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합의 필수 조건은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와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의 적대적 대립성을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계급에게 폭로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합법적 맑스주의자가 의지해 마지않던 베른슈타인주의와 "비판적" 경향은 사회주의자들에게서 이러한 기회를 박탈하였다. 그들은 맑스주의를 비속화하고, 사회적 모순을 무마하는 이론을 선전하고, 사회혁명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사상을 불합리한 것이라 공표하고, 노동자운동과 계급투쟁을 보잘것없는 점진적 개혁을 위한 "현실적" 투쟁 및 협소한 노동조합주의로 끌고 가는 등의 일을 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의식을 타락시켰다. 이는 전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진영이 사회주의의 독립권을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며, 따라서 그 존재권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천적으로 이는 시작 단계에 있는 노동자운동을 자유주의자들의 부속물로 전락시키려 함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결렬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 결렬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널리 보급된 "합법적" 문헌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간단히 축출되었음을 의미했다는 데에 러시아의 "독특한" 특수성이 있었다. 이제 그 자리는 "예전에 맑스주의자였던 사람들"로 강화되었다. 그들은 "비판의 깃발 아래" 떨쳐 일어섰고 맑스주의를 "분쇄"할 독점권을 획득했다. "교조주의 반대"라는 함성이 들린다. 그리고 (지금은 『노동자의 대의』가 되풀이하고 있는) "비판의 자유 만세"는 금방 유행어가 되었으며 헌병과 검열관들도 이 유행에는 대항해 내지 못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은 유명해진(헤로스트라투스[24] 식으로 유명해진) 베른슈타인의 책 세 권이 러시아어판으로 출간된 예와 주바토프가 베른슈타인, 프로코포비치 씨 등의 책을 추천한 예다(『불꽃』 제10호). 이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 자체로도 힘든데다 순전히 외부의 걸림돌 때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더 어려워진 과제, 즉 새로운 흐름과의 투쟁이라는 과제를 집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흐름은 문필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판"으로의 전환에 뒤이어 사회민주주의 실천가들이 "경제주의"에 호응하여 끌려들게 되는 과정이 나타난 것이다.

 

합법적 비판과 비합법적 "경제주의"의 관계 및 상호 의존성이 어떻게 발생하여 성장해 왔는가 하는 흥미로운 문제는 별도의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것이다. 우리로서는 여기서 이런 관계가 확실히 존재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악명 높은 Credo[25]가 그처럼 정당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 관계를 솔직하게 공식화하고 "경제주의"의 기본적인 정치적 경향을 다음과 같이 무심코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들은 경제투쟁(더 정확하게는 노동조합주의 투쟁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노동조합주의 투쟁은 특유의 노동자 정치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을 하게 하고, 맑스주의 지식인은 정치"투쟁"을 위해 자유주의자들과 결합하게 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인민 속에서의" 노동조합주의 활동은 첫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합법적 비판은 둘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이 같은 언명은 "경제주의"를 겨냥하는 너무나 훌륭한 무기였기 때문에, 만일 Credo가 없었다면 그것을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Credo는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저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쩌면 오히려 그들의 의지에 반해 공개되었을 뿐이다. 적어도, 새 "강령"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데 일조한 이 글의 필자인 나는 연설자가 적어 놓은 그들 견해의 개요가 복사본으로 유포되어 Credo라는 꼬리표를 얻고 심지어 항의문과 함께 인쇄된 것과 관련해 항변과 비난을 들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 에피소드를 거론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경제주의"의 매우 흥미로운 성격을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에 대한 공포증 말이다. 이것은 Credo의 몇몇 필자들만이 아닌 바로 "경제주의" 일반의 성격이다. "경제주의"의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솔직한 지지자인 『노동자의 사상』, (『바데메쿱』[27]에 "경제주의자" 자료들이 공개된 것에 격분한) 『노동자의 대의』, 2년 전 자신의 Profession de foi[28]가 그에 대한 반박문과 함께 공개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던 키예프 위원회**, 그리고 그 밖에도 수많은 "경제주의"의 개별적 대표자가 공개에 대한 공포증을 보여 온 바 있다.

 

비판의 자유를 지지하는 자들이 드러내는 이 비판에 대한 공포증은 교활하기 때문이라고만 설명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 비록 어떤 때는 교활함이 없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새로운 경향의 맹아를 반대파가 공격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내놓는 것은 앞뒤를 생각하지 못한 처사가 아닌가!) 그런 것이 아니라, 대다수 "경제주의자"는 이론적 논쟁, 분과 간의 이견, 광범위한 정치 문제들, 혁명가들을 조직하기 위한 계획 등을 그 어떤 것인 것만으로는 "경제주의"의 본질상 필연적으로) 악의를 품고 바라본다. "이런 건 모두 국외로 넘겨 버려야 하는 건데!" — 상당히 일관된 "경제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한번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 말로써 매우 널리 유포되어 있는 (또한 이번에도 역시 순전히 노동조합주의적인) 관점을 표현한 것이니, 이는 『불꽃』 제12호에 실린 편지의 필자들이 『노동자의 대의』 제10호와 합창으로 다음과 같이, 즉 우리의 일은 여기 우리 땅에서의 노동자운동과 노동자 조직이며 나머지 다른 일은 공론가들이 고안해 낸 것이자 "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라고 피력했던 것과 같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와 러시아의 "비판"의 이런 특수성을 고려할 때,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회주의에 대항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임무는 어떤 것이어야 했는가? 첫째, 합법적 맑스주의의 시대에 겨우 시작되기만 하였다가 이제 다시 비합법 활동에 처해진 이론 작업을 재개하기 위해 부심했어야 했다. 그러한 작업 없이 운동의 성공적인 성장은 불가능했다. 둘째, 사람들의 머리를 극히 타락시켜 놓은 합법적 "비판"과 투쟁하기 위해 적극 나섰어야 했다. 셋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의 강령과 전술을 펼히하려는 온갖 시도들을 폭로하고 반박하면서 실천 운동에서의 혼란과 우왕좌왕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섰어야 했다.

 

『노동자의 대의』가 이 중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뒤에 우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측면에서 이 자명한 진실을 상세히 밝혀야 할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러시아의 "경제주의" 및 우리 조국의 비판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과 "비판의 자유"라는 요구 사이에 어떤 놀라운 모순이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할 뿐이다. 실제 국외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이 『노동자의 대의』의 관점을 확인해 준 결의안의 본문을 쭉 훑어보라.

 

사회민주주의당의 사상의 가일층 발전을 위해 우리는 당 문헌에 사회민주주의당의 이론에 대한 비판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정한다. 비판이 사회민주주의당 이론의 계급적, 혁명적 성격에 반하는 쪽으로 나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두 대회』10쪽.)[29]

 

그 근거로 든 것을 보자. 결의안의 "첫 부분은 베른슈타인주의에 관한 뤼베크 당대회 결의안과 일치한다."…… 정신이 단순하신 "동맹원들"은 이 같은 모방으로 자신들이 어떤 testimonium paupertatis[빈곤 증명서]에 서명을 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지경이다! "그러나…… 둘째 부분은 비판의 자유를 뤼베크 당대회보다 훨씬 협소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외동맹의 결의는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를 반대하여 제출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뤼베크를 들먹이는 것은 완전히 황당한 일 아닌가! 하지만 결의안이 "비판의 자유를 협소하게 제한하고 있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독일인들은 하노버 결의안을 통해 베른슈타인이 제출한 바로 그 수정안들을 조목조목 기각했으며, 뤼베크 결의안에서는 본문에 베른슈타인을 거명하며 그에게 개인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의 "자유로운" 모방자들은 러시아 특유의 "비판"과 러시아 특유의 "경제주의"가 그 어떤 것으로 발현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는다. 이 문제에는 침묵을 지키면서 이론의 계급적, 혁명적 성격에 대해 앙상한 강변을 늘어놓는 것은 잘못 해석될 여지를 훨씬 더 많이 남길 뿐이다. 특히, 동맹이 "이른바 경제주의"(『두 대회』8쪽 1항)를 기회주의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나온 김에 짚어 봤을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기회주의자들의 태도가 독일과 러시아에서 극과 극처럼 상반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독일에서는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 한다. 기존의 것이란,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며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세세한 것까지 다 해명된 오래된 강령과 전술이다. 수정안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로 "비판가들"인데, 이들은 별 불일 없는 소수파이고 그들의 수정주의적 지향은 너무나 소심하기 때문에, 다수파가 이 "신종"을 그저 무미건조하게 거부할 뿐 그 이상은 아닌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러시아에서는 비판가들과 "경제주의자들"이 기존의 것을 지키려 한다. "비판가들"은 자신들을 계속 맑스주의자로 간주해 주고 자신들이 온갖 의미에서 다 행사해 온 그 "비판의 자유"를 보장해 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그들은 당적 관계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고, 게다가 비록 권고로나마 비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공인된 당 기관이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주의자들"은 혁명가들이 "현재의 운동의 완전한 권리"(『노동자의 대의』제10호 25쪽)를, 즉 존재하고 있는 것의 존재 "적법성"을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이데올로그들"이 "물질적 요소들과 물질적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불꽃』제12호에 게재된 『편지』) 그 길에서 운동을 "끌어내리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현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벌일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인 그 투쟁을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를, "그들이 현시점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노동자의 사상』의 『별쇄 부록』[30] 25쪽) 그 투쟁을 가능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는 자생성, 즉 "현시점"에 있는 것에 대한 이 같은 숭배가 불만스럽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을 지배해 온 전술의 수정을 요구한다. 우리는 "통합하기에 앞서, 그리고 통합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단호하고 결정적으로 경계를 그어야 한다."(『불꽃』창간 성명에서)고 천명한다. 한마디로, 독일인들은 수정을 거부하면서 기존의 것에 머물러 있으며, 우리는 기존의 것을 숭배하거나 그것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며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자유로운" 독일 결의안 모방자들은 이 같은 "작은" 차이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4. 이론투쟁의 중요성에 관한 엥겔스의 글

 

"교조주의와 공론주의", "당의 경직화 — 사상을 폭력적으로 옮아낸 데 대한 불가피한 형벌" — "비판의 자유"의 열렬한 수호자들이 『노동자의 대의』에서 기사도적으로 무장하여 싸우는 적들이 바로 이것이다. — 우리는 이 문제가 일정에 올라 무척 기쁘다. 다만 거기에 다른 문제 하나를 추가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재판관은 누구인가?

 

우리 앞에는 문건 출판을 알리는 두 개의 선언문이 있다. 하나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의 정기 기관지 『노동자의 대의』의 강령」(『노동자의 대의』제1호 가운데 별쇄본)이고, 또 하나는 「노동해방그룹의 출판 재개 선언」[31]이다. 둘 다 1899년에 나온 것인데, 그때는 이미 "맑스주의의 위기"가 도마에 오른 지 오래였던 때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여러분이 맑스주의의 위기가 언급되는 현상에 대한 지적과 새 기관지가 그 문제에 관해 취하려는 입장을 분명하게 피력한 부분들을 첫째 문건에서 찾아내려 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일 것이다. 이 강령이나 1901년 동맹의 제3차 대회[32]에서 채택한 강령 보완문(『두 대회』15~18쪽) 어디에도 당면한 이론적 활동과 그 절박한 과제들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모든 사회민주주의자가 이론적 문제로 동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내내 『노동자의 대의』 편집진은 그것을 완전히 제쳐 두고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둘째 선언문은 무엇보다 먼저 최근 몇 년 동안 이론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프롤레타리아혁명운동의 이론적 측면에 예리한 관심을 가질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우리 운동 내의 "베른슈타인주의 및 기타 반혁명적 경향을 가차 없이 비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기존에 발행된 『여명』의 각 호를 보면 이 같은 강령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사상의 경직화 등등에 반대하는 목청 높은 문구들이 이론적 사상 발전과 관련된 무기력과 무사태평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예는 (이미 오래전에 독일의 맑스주의자들도 지적한 바 있는) 범유럽적인 현상, 즉 특히 저 악명 높은 비판의 자유란 한 이론을 다른 이론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일적이고 깊이 있는 이론 일체로부터 벗어날 자유이며 절충주의와 무원칙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특히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우리 운동의 실상을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맑스주의의 폭 넓은 보급이 일정 정도 이론적 수준의 저하를 수반한 상황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론적으로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심지어 이론에 전적으로 무지한 상당수 사람이 운동의 실천적 중요성과 그 실천적 성공을 위해 운동에 가담했다. 따라서 『노동자의 대의』가 "현실 운동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한 다스의 강령들보다 중요하다."[33]는 맑스의 금언을 의기양양하게 내세울 때 그것이 얼마나 박자를 못 맞추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론적 혼란의 시대에 이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34] 앞서 인용된 맑스의 말은 고타 강령에 관한 그의 편지에서 따온 것인데, 이 편지에서 그는 원칙을 정식화하는 데 절충주의가 허용되는 것을 신랄하게 질책하고 있다.[35] 맑스는 당의 지도자들에게, 연합의 필요성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면 운동의 실천적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협약을 체결하되 원칙을 거래하거나 이론적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쓰고 있다. 맑스의 생각은 이러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그의 이름으로 이론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혁명 이론이 없다면 혁명 운동도 있을 수 없다. 실천 활동의 가장 협소한 형태에 매몰되는 것이 기회주의의 최신 유행 설교와 서로 열쌈안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생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에서 이론의 중요성은 사람들이 자주 잊고 있는 또 다른 세 가지 상황에 의해 더욱 커지고 있다. 첫째, 우리 당은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제 면모를 갖춰 가고 있으며, 운동을 올바른 길에서 끌어 내릴 위험이 있는 다른 경향의 혁명사상들과 결산조차도 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결산은커녕 오히려 가장 최근에는 비(非)사회민주주의적 혁명 경향이 현저히 활기를 띠게 되었다. (악셀로드는 이미 오래전에 "경제주의자"들에게 이를 예언한 바 있다[36]). 이 같은 상황에서는 언뜻 보기에는 "별것 아닌" 실수가 실로 통달할 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근시안적인 사람들만이 분파들의 논쟁이나 색조의 엄격한 구별을 시기에 맞지 않는다거나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오랜 기간에 걸친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미래는 어떠한 "색조"를 굳혀 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둘째,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운동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민족적 쇼비니즘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또한 청년기의 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는 운동은 다른 여러 나라의 경험을 체험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러한 체험을 위해서는 단순히 그 경험이 어떤 것인지 안다는가, 최신의 결의안들을 그저 베껴 쓴다는가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 경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독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대의 노동자운동이 얼마나 거대하게 성장하여 그 가지를 뻗어 왔는지를 상상해 보기만 해도, 이 같은 과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풍부한 이론적 역량과 정치적 (또한 혁명적)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셋째,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국민적 과제는 전 세계 그 어떤 사회주의정당도 직면해 본 적이 없던 성격의 것이다. 전제주의의 압제로부터 전 인민을 해방시켜야 할 이 과제가 우리에게 맡긴 정치적, 조직적 의무에 관해서는 뒤에 서술하도록 하겠다. 지금은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선진적 이론으로 지도되는 당만이 전위투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고자 하는 독자들이라면, 게르젠, 벨린스키, 체르니셰프스키 같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선구자들과 70년대의 빛나는 혁명가들을 그려 보면 될 것이다. 아니면, 지금 러시아 문학이 획득하고 있는 전 세계적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아니면 또……, 그러나 이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 이론의 중요성이라는 문제에 관해 엥겔스가 1874년에 한 말을 인용해 보자. 엥겔스는 — 우리가 흔히 그러하듯 —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커다란 형태로 두 가지 (정치투쟁, 경제투쟁)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즉 그 둘과 나란히 이론투쟁도 인정하고 있다. 실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강력해진 독일 노동자운동에 바친 그의 조언은 현재의 여러 문제와 논쟁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교훈적인 까닭에, 지금까지 그보다 더 위대한 책을 찾기 힘든 『독일 농민 전쟁』이라는 소책자[*]의 서문을 길게 인용하더라도 독자들이 불평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그 밖의 유럽 노동자들에 비해 두 가지 점에서 본질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이론적인 민족에 속하며, 독일의 이른바 '배웠다는 사람들'이 완전히 잃어버린 이론적 감각을 보존하고 있다.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독일의 과학적 사회주의 — 지금까지 존재한 단 하나의 과학적 사회주의 — 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에 이론적 감각이 없었다면, 이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오늘날의 상황처럼 노동자들의 살과 피로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영국 노동자운동이 개별 노동조합의 그 모든 출중한 조직 상태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전진하지 못하게 만든 근본적 원인들 가운데 하나인 이론에 대한 무관심과 비교해 본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 프루동주의가 프랑스인들과 벨기에인들 사이에 그 원래적 형태로 야기했고 바쿠닌이 에스파냐인들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 더욱 희화화된 형태로 야기했던 비행 및 혼란과 비교해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장점인가를 잘 알 수 있다.

 

둘째 이점은 독일인들이 시간상 마지막으로 노동자운동에 뛰어든 편에 속한다는 데 있다. 독일의 이론적 사회주의가 생시몽, 푸리에, 오언의 어깨 위에, 즉 그 모든 공상과 그 모든 유토피아주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의 가장 뛰어난 두뇌에 속하고 수많은 천재적 예견을 내놓은 사람들이며 그 예견들이 옳았다는 것이 오늘날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그 세 사람의 어깨 위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듯이, 독일의 실천적 노동자운동은 자신이 영국과 프랑스의 운동의 어깨 위에서 발전하였고, 이 운동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경험들을 간단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당시에는 거의 불가피했던 오류들을 오늘날 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노동조합들과 프랑스의 정치적 노동자 투쟁들이 선행하지 않았다라면, 특히 파리코뮌[14]이 던진 엄청난 충격이 없었다라면,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독일 노동자들이 보기 드문 분별력을 가지고서 자신들의 처지에서 나오는 이점들을 이용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이 성립된 이래 처음으로, 투쟁은 그 세 가지 측면 — 이론적 측면, 정치적 측면, 실제적-경제적(자본가에 대한 저항) 측면 — 에 걸쳐서 단일한 음조와 연관을 유지하면서 계획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집중적 공격에 바로 독일의 운동이 가지고 있는 강력함과 불패의 힘이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독일의 운동이 점하고 있는 이러한 유리한 지위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운동의 섬나라라는 특수성과 프랑스의 운동에 가해진 폭력적인 진압 때문에, 현재 독일의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전위에 서 있다. 사건들이 독일 노동자들의 이 명예로운 지위를 얼마나 오랫동안 용인할지는 미리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한, 아마도 독일의 노동자들은 응당 그 지위에 속하는 직분을 이행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과 선동의 모든 영역에서 두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지도자들의 의무로 되는 것이 있으니, 모든 이론적 문제에 대해 더욱더 이해를 높여야 하고, 낡은 세계관에 속하는 전래의 공문구의 영향에서 더욱더 자신을 해방시켜야 하며, 또한 사회주의는 과학으로 된 이래 과학처럼 추진되기를, 즉 연구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이렇게 획득되어 점점 더 명확해져 가는 인식을 더욱 열심히 노동자 대중 속에 보급하여 당 조직과 노동조합 조직 사이의 연결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독일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나아간다 하더라도, 그들이 반드시 운동의 선두에 서서 진군하라는 법은 없지만 — 어떤 한 민족의 노동자들이 선두에서 서서 진군하는 것은 결코 운동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 그렇게 나아간다면 그들은 전투의 대열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점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예기치 않은 중대한 시련이나 큰 사건들이 일어나서 그들에게 더 큰 용기, 더 큰 결의와 실행력을 요구하게 된다면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37]

 

엥겔스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사회주의자특별법[15]이라는 예기치 않은 중대한 시련이 독일의 노동자들을 덮쳤다. 독일 노동자들은 실제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이를 맞았으며 승리로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 앞에는 이보다 더한, 가능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시련이 놓여 있다. 피볼과의 투쟁이 그들 앞에 놓여 있으나, 입힌 국가의 특별법이라는 것은 이 피볼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인증 환자에 불과하다. 이제 역사는 우리에게 당면 임무를 제기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임무보다도 혁명적인 것이다. 이 임무를 실행한다면, 즉 유럽 반동의 가장 강고한 보루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반동(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의 가장 강고한 보루이기도 한 것을 파괴한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70년대 우리의 선각자들과 같은 헌신적인 결의와 열정으로 그보다 천만 배 더 넓고 깊은 우리 운동을 고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선각자들, 70년대의 혁명운동가들이 이미 얻은 바 있는 그 영예로운 칭호를 우리가 획득하리라 기대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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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당내 투쟁은 당에게 힘과 생명력을 줍니다. 분명하게 드러난 경계에 대한 당의 모호함과 둔감함은 당이 취약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당은 자정함으로써 강화됩니다.”

 

— 1852년 6월 24일, 라살레가 맑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

 

서문

 

필자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소책자는 「무엇으로부터 시작 할 것인가?」(『불꽃』 제4호, 1901년 5월)에서 피력했던 사상을 상세히 발전시키기 위해 써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먼저 우리는 그때 했던 (그리고 수많은 개인적 문의와 편지에 대한 답변으로 반복해 드렸던) 약속을 뒤늦게 실행하는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일이 이처럼 늦어진 까닭의 하나는 지난해 (1901년) 6월에 있었던 모든 국외 사회민주주의 조직의 통합 시도였다.[1] 당연히 이 시도의 결과를 끝까지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공했을 경우, 어쩌면 『불꽃』의 조직적 견해를 몇몇 다른 각도의 관점에서 서술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경우든 그것이 성공했다면,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두 가지 경향이 존속하는 상황은 매우 빨리 종결되었을 것이다. 독자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우리가 뒤에 증명해 보일 것처럼, 『노동자의 대의』가 제10호에 경제주의로 돌아선 이후에 그 시도는 그렇게 종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불분명하며 딱히 규정된 바 없는, 그 대신에 더욱 확고해지고 다양한 형태로 부활할 수 있는 그러한 경향에 맞서 단호한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책자의 애초 계획은 일부 변경되었으며 상당히 확대되었다.

 

이 책자의 주요 주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제기했던 세 가지 문제가 되어야 했다. 우리의 정치 선동의 성격과 주요 내용, 우리의 조직적 임무, 전러시아적인 전투조직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건설하는 계획 등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 왔기에, 실패한 일이긴 하지만 『노동자 신문』을 복잡하게 했던 시도의 일환으로(제5장을 보라.) 바로 그 신문에서도 이 문제들을 제기하려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소책자에서 이 세 가지 문제만을 분석하는 데 그치고 논쟁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혹은 논쟁에 거의 치우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관점을 가능한 한 긍정적인 형태로 서술하려 했던 애초의 예정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완전히 실현 불가능해졌다. 우선, “경제주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1901년 12월 『불꽃』 제12호의 「경제주의 옹호자들과의 대담」이라는 글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주의”라는 단어를 넓은 의미로 사용하겠는데, 그 글은 독자들 앞에 놓인 이 책자의 개요를 보여 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의 해결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부분적인 것에서의 견해차라기보다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두 경향의 근본적인 대립으로 보아야 훨씬 잘 설명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관점을 『불꽃』에 실제로 관철시키는 것에 대해 “경제주의자들”이 보이는 당혹감은 우리가 빈번히 문자 그대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ab ovo(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 근본적인 모든 사항에 관한 우리와 모든 “경제주의자”의 입장 차이를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가능한 한 대중적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해야 한다는 점 등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같은 “설명”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럴 경우에 이 소책자의 분량이 현저히 늘어나고 종결이 더디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또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했던 약속을 결코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작업이 늦어진 데 대한 사과에 덧붙여 나는 이 책자의 문학적 퇴고가 매우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드리겠다. 나는 극도로 시급히, 그것도 온갖 다른 일 때문에 작업을 중단해 가면서, 이 글을 써야만 했다.

 

위에 지적한 세 가지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여전히 이 책자의 주요 주제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나는 더 일반적인 다음의 두 가지 문제로부터 글을 시작해야만 했다. “비판의 자유”와 같은 “순수”하고도 “당연한” 슬로건이 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전투 신호인가? 왜 우리는 자생적 대중운동과 관계된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이라는 기본적인 문제에서조차 합일점에 이를 수 없는가? 다음으로, 정치 선동의 성격과 내용에 대한 견해의 서술은 노동조합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조직적 과제에 대한 견해의 서술은 “경제주의자들”을 만족시키는 수공업성과 우리의 견지에서 필수적인 혁명가 조직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다음으로, 전러시아적 정치 신문 “계획”을 반대했던 견해들의 근거가 없어진 만큼, 또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제기했던 문제, 즉 우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필요한 조직의 건설에 여러 방면에서 동시적으로 착수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본질적으로 답하는 사람들이 적어진 만큼, 나는 더욱더 강력히 이 계획을 주장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경제주의자들”과의 결정적인 결렬을 피하기 위해 — 그러나 결렬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사실, 『노동자의 대의』는 일관된 “경제주의”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역사의 온전한 한 시기를 특징짓는 동요와 혼란을 무엇보다 완전히, 무엇보다 극명히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역사적” — 원하신다면 — 의미를 획득하였다는 사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지나치게 세세한 것 같은 『노동자의 대의』와의 논쟁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우리가 이 시기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 등을 이 책자의 결론부에서 보여 주고자 한다.

 

1902년 2월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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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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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를 지나다


장기간 백수에서 미취업 노동자로 겨우 벗어났다. 그동안 하청 노동자로 동종 업계에 몸담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도 그렇다. 취업이라는 주어진 기간 동안 과거 가장 열악한 현장에 남아 일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하는 사람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사용자의 미흡한 태도에 있었다. 가장 미천한 곳에서도,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업계 비밀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자신의 직위가 곧 존엄으로 여기며 직장이 주는 안전에 안주하고 마는 태도를 가진 이들도 참 많았다. 의외로 현장의 손님이자 청중과 관객들은 객체로 방문함에도 직장 내 모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들이다. 객체는 주체가 될 수 있고, 주체가 객체로 상호 작용한다. 가까운 현장의 백수가 노동자가 되기에도 세대를 이어 기나긴 암흑 시절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는 지금도 체감하고 있다.


한 동료가 이전의 직장에 대해 내게 말했다. "이곳은 일하기에는 더 이상 적합한 곳이 아닌 것 같아요." 맞는 말이다. 이전의 직장들은 모두 그러한 곳들 뿐이었다. 그 동료와도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내가 또는 당신이 여기에 존재함은, 단순히 눈 앞에 사물이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본질을 거치는 일이다. 여기에도 수많은 투쟁의 순간들이 깃들어 있다. 예전에 잠깐 읽은 『쇳밥일지』처럼 산업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는 분들에게 직장의 상실 또는 실직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물론 그들은 같은 노동자 출신임에도, 자신들이 일하는 그때까지는, 직장이 주는 돈벌이에 쉽게 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생존 투쟁의 과정이며 반복되는 업무와 일거리가 꾸준하게 들어오는 이상,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설명 하나 없는 비체계적인 구조가 여전히 노동자를 위협하고 억압한다는 말이다.


불안이 감도는 기나긴 시절이다. 누구처럼 일찍 결혼에 성공하여 꽃 피운 '화양연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백수의 공백기에는 끊임없는 잠적만이 남는다. 마음의 불꽃은 일그러진 채 잠식되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혹자는 "일할 수 있음은 큰 다행"이라 말한다. 예전에는 '죽음'을 주로 직시했고, 그것은 늘 생존과 직결된 부분이었다. 최근에 면접관들은 당돌함에 코웃음을 쳤지만 정작 그들이 간과한 사람의 존중은 없었고 자신들의 경력을 과시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들이 놓친 것을 본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인재가 아닌가 싶다. 비록 백수임에도 자신의 건강과 성장, 그리고 용기마저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 어느 누구의 인생도 헛된 일은 없다. 그 실패에 대해 누군가가 함부로 단정할 때에도, 세계는 또다시 나아갈 것이며, 지금의 후퇴에 설레발보다는 더 나은 한 걸음을 위한 전 일보가 된다. 치열한 생존의 전장 속에서도 인간은 성인이 된다. 이는 마치 폭격기를 뚫고 공중전까지 치른 후, 겨우 살아남은 이가 남기는 최후의 전보와도 같다. 결국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백해무익'하더라도 꾸준히 알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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