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교조주의와 “비판의 자유”
1. “비판의 자유”란 무엇을 뜻하는가?
“비판의 자유” — 이것은 분명, 어떤 나라에서건 사회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이 시대에 가장 유행하는 슬로건이다. 언뜻 보기에는, 논쟁 당사자들 중 한편이 비판의 자유를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거론하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을 생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학문과 학술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다수 유럽 국가의 헌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진보적 정당들 가운데서 정말 흘러나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건 뭔가 아니야!” — 어디서나 반복되는 이 현대적 슬로건을 들어 보았음에도 논쟁 당사자들 사이의 반목의 본질을 아직 심도 깊게 포착하지는 못한 제삼자라면 누구나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별명이 그렇듯이, 이 슬로건은 사용됨으로써 정당화되고 거의 보통명사가 되어가는 상투어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군.”
실제로, 현대의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안에는 두 가지 경향이 형성되어 왔으며, 그것들 사이의 투쟁은 때로 거세게 타올라 활활 타는 불꽃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고, 때로 사그라져서 암시적인 “휴전협정”의 재 속에서 희미하게 가물거리기도 한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다. “낡은, 교조적” 맑스주의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새로운” 경향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베른슈타인은 너무도 분명하게 말했고, 밀레랑은 보여 주었다.
사회민주주의당은 사회 혁명의 정당에서 민주주의적인 사회 개혁의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베른슈타인은 매우 정연하게 합의된 “새로운” 논거와 사고들로 완전무장을 하여 이 같은 정치적 요구를 내세웠다. 사회주의에 과학적 근거를 부여하고 역사의 유물론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사회주의의 필연성과 불가피성을 입증할 가능성은 부정되었다. 점증하는 빈곤, 프롤레타리아트화,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 등의 사실은 부정되었다. “궁극 목표”라는 개념 자체는 파산선고를 당했으며,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사상은 말할 것도 없이 반박을 당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원칙적인 대립은 부정되었다. 계급투쟁 이론은 다수의 의지에 의해 통치되는 엄격한 민주주의 사회에는 마치 적용될 수 없는 것인 양 부정되었다.
이처럼,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당에서 부르주아적 사회개량주의로 단호하게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는 그에 못지않게 맑스주의의 모든 기본 사상에 대한 부르주아적 비판으로의 단호한 전환을 수반했다. 그런데 이러한 최근의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맑스주의에 반대하여 정치 연단에서, 대학 강단에서, 수많은 소책자와 학자들의 논문에서도 행해져 온 것이다. 또한 교육 받은 계급의 모든 청소년이 수십 년 동안 체계적으로 이 같은 비판의 토양에서 성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새로운 비판적” 경향이 유피테르의 머리에서 나온 미네르바처럼 단번에 너무나 완전한 형태를 띤 것[7]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내용으로 보아, 이 경향은 발전되어 모양을 갖추어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르주아 문헌에서 콘바로 사회주의 문헌으로 옮겨진 것이다.
더 나아가 보자. 베른슈타인의 이론적 비판과 그의 정치적 열망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직 명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느라 고심했다. 프랑스는 이번에도 “계급투쟁이 그 어느 곳보다 더 중국에까지 철저히 진행되었던 나라”(엥겔스의 「밥스의 저작 『브뤼비르 18일』에 부치는 서문」에 나오는 표현) [8]라는 오랜 명성에 값하였다.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적으로 보다 많이 발전된 프랑스의 정치적 조건들로 인해 그들은 베른슈타인주의의 온갖 결과들을 드러내며 금방 “실천적 베른슈타인주의”로 옮겨 갈 수 있었다. 밀레랑은 이러한 실천적 베른슈타인주의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베른슈타인과 풀마르가 그토록 열렬히 밀레랑을 응호하고 칭찬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만약 사회민주주의당이 그 본질상 그저 개혁 정당이며 또 공개적으로 이를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면, 사회주의자는 부르주아 내각에 입각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제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기도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그 본질상 계급 지배의 폐지를 의미한다면, 사회주의자인 장관이 계급 협력에 관한 말들로 부르주아지 세계 전체를 매혹시켜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가? 민주주의적 계급 협력의 진정한 성격을 수도 없이 보여 준 헌병들의 노동자 학살이 있은 후라도 그가 내각에 남아 있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이 지금 교수대, 체적, 유형의 영웅이라고 칭하는 싸르를 환영하는 자리에 그가 개인적으로 참석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가? 그런데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한없는 경멸과 제 얼굴에 침 뻗기에 대한 대가로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인 노동자 대중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타락시키는 것에 대한 대가가 고작 보잘것없는 개혁, 부르주아 정부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것도 그보다는 더 많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개혁의 요란한 계획안들이란 말인가!
일부러 자신의 눈을 감아 버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주의 내의 새로운 “비판적” 경향이 기회주의의 새로운 변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몸에 걸친 빛나는 제복이나 스스로 갖다 붙인 효과적인 명칭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는가와 실제 무엇을 선동하는가를 보고 사람들을 판단한다면, “비판의 자유”란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기회주의 경향의 자유, 사회민주주의당을 민주주의적 개혁 정당으로 바꾸어 놓을 자유, 사회주의에 부르주아적 사상과 부르주아적 요소를 도입할 자유라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자유 — 위대한 말이다. 하지만 산업의 자유라는 지발 아래 극렬한 약탈 전쟁이 벌어졌으며, 노동의 자유라는 지발 아래 노동자들이 수탈당했다. 이와 똑같은 내적 기만이 감춰져 있는 말이 현재 사용되고 있다. “비판의 자유”가 그것이다. 자신들이 과학을 진일보시켰다고 정말로 확신하는 사람들이라면, 낡은 견해와 새로운 견해가 병존할 자유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낡은 견해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비판의 자유 만세!”라는 현재의 외침을 듣노라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우화가 자꾸만 떠오른다.
우리는 가파르고 험난한 길을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서 걸어가고 있다. 사방에서 적들이 우리를 에위싸고 있으며, 거의 언제나 우리는 그들의 포화 속을 걸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바로 옆에 있는 높으로 발을 헛디디며 빠지지 않고 적들과 싸우기 위해 단결하였다. 그 높에 사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우리를 비난해 왔다. 우리가 특별한 그룹으로 분리해 나와서 타협의 길이 아닌 투쟁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가운데 몇몇이 이렇게 외치기 시작한다. "저 높으로 갑시다!" 우리가 그들에게 수모를 주기 시작하자, 그들은 이렇게 반박하고 나선다. "당신들은 얼마나 뒤떨어진 사람들인가! 그리고 당신들은 어찌 그리 철면피처럼 더 나은 길로 가자고 호소할 자유를 우리에게서 박탈하는가!" 아, 그렇군요, 신사 양반들, 당신들에게는 호소할 자유가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그곳이 높이라 할지라도 가고 싶은 대로 갈 자유도 있소. 우리는 당신들의 진정한 자리가 바로 그 높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고, 당신들이 그리로 이주하도록 힘껏 도와줄 준비도 되어 있소. 그러나 그때 우리의 손을 놓아만 주시지요. 우리를 불잡지 마시고, 자유라는 위대한 말을 더럽히지 마시오. 우리에게도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자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높으로 향하는 사람들과도 싸울 자유가 있기 때문이오!
2. "비판의 자유"의 새로운 응호자들
여기 이 슬로건("비판의 자유")은 아주 최근에 국외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동맹[9]의 기관지인 『노동자의 대의』(제10호)에서 엄중히 제기된 바 있다. 이론적 가정이 아닌 정치적 요구로서, 한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서 제기된 것이다. "국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조직들의 통합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대해 "강고한 통합을 위해서는 비판의 자유가 필수적이다."(36쪽)라는 답변으로.
이 같은 입장 천명으로부터 너무도 명확한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1) 『노동자의 대의』는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전반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옹호하고 있다. 2) 『노동자의 대의』는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기회주의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이 결론들을 살펴보자.
『노동자의 대의』는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진영의 산악파와 지롱드파[10] 사이의 분열을 예언하는 『불꽃』과 『여명』의 경향을 "특히" 못마땅해 한다. "우리 생각에는" — 『노동자의 대의』의 편집장인 끄리첸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사회민주주의 대오 내에서 거론되는 산악파와 지롱드파에 관한 말들은 맑스주의자의 펜을 빌린 이상하고도 피상적인 유비(類比)이다. 산악파와 지롱드파는, 이데올로그 역사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기질이나 지적 경향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계급이나 계층 – 한쪽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소시민, 다른 한쪽은 중간 부르주아지 – 을 대표했다. 그런데 현대 사회주의 운동에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충돌은 없다. 현대 사회주의 운동 안에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포함해 온갖(강조는 끄리첸스키가 한 것) 다양한 형태가 있을지라도, 현대 사회주의 운동은 전체가 하나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해관계와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32~33쪽.)
대담한 주장이다! 끄리첸스키는 이미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 즉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주의 운동에 "학자"층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것이야말로 베른슈타인주의를 그렇게 빨리 확산시킬 수 있도록 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듣지도 못했던 말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우리의 저자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도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무엇으로 입증하고 있는가? 알려진 바 없다.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에 대한 단호한 옹호는 그 어떤 논거로도, 사고로도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저자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자신들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반복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그 경향의 대표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근거하여 전체 경향을 판단하는 것보다 더 "피상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뒤에 이어지는 서로 다른, 심지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가지 당 발전의 길과 유형에 관한 다음과 같은 "훈계"(『노동자의 대의』34~35쪽)보다 더 피상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보시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비판의 완전한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프랑스인들의 예야말로 '편협함의 해악'을 전부 보여 주고 있지 않소."라는 훈계 말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답할 뿐이다. 끄리첸스키의 예야말로, 문자 그대로 "일로바이스키 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이 종종 자신을 맑스주의자로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이다. 그에게는 독일의 사회주의정당의 단결과 프랑스의 사회주의정당의 분열을 설명하기 위해 두 나라 역사의 특수성에 천착하고 군사적 반(反)전제주의와 공화제적 의회주의라는 각각의 조건을 대비시키는 것, 꼬뮌[14]과 사회주의자특별법[15]으로 생긴 각각의 결과들을 분석하고 경제생활과 경제의 발전을 비교하는 것,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당의 전례 없는 성장"이 사회주의 역사에서 이론적 오류(될베르거, 뒤링*, 강단 사회주의자들[17])뿐만 아니라 전술적 오류(라살레)와도 정력적으로 투쟁하는 과정을 수반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다. 이런 것은 모두 쓸데없다! 프랑스인들은 인내심이 없어서 서로 말다툼질이고 독일인들은 좋은 친구들이어서 단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보라.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옹호하는 논리를 전적으로 반박하는 사실이 이 비할 데 없이 심오한 사상을 방패로 "기각되고 있다."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과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서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직 역사적 경험에 의해서만 최종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예야말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독일 동료들(또한 부분적으로는 러시아의 기회주의자들: 『노동자의 대의』 제2~3호 83~84쪽 참조)의 뜨거운 격려 속에 스스로 자신의 발로 서려고 시도했던 유일한 나라이다. 프랑스인들의 "비타협성"을 거론하는 것 — 그 "역사적(노즈드료프[18]식 의미에서)" 의의는 차치하고라도 — 은 매우 불쾌한 사실들을 성냐서 내뱉는 욕설로 뭉개 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는 끄리첸스키와 다른 수많은 "비판의 자유" 옹호자에게 독일인들을 선사할 생각도 전혀 없다. 만일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독일의 당의 대오 안에서 아직 용인되고 있다면, 그것은 베른슈타인의 "수정안"을 단호히 배격한 하노버 결의와 (그 전반에 흐르는 외교성에도 불구하고) 베른슈타인에 대한 직접 경고를 포함하고 있는 뤼베크 결의[19]에 독일인들이 복종하는 한에서다. 독일의 당의 이해관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외교성이 얼마만큼 적절했냐에 관해서는, 즉 이 경우에는 나쁜 평화가 좋은 싸움보다 더 나은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해서는 논쟁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베른슈타인주의를 배격하는 그 두 가지 방법의 합목적성을 평가하는 데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당이 두 번이나 베른슈타인주의를 배격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독일인들의 예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도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서 있다."라는 데제를 확인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만인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뿐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노동자의 대의』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앞에 "비판의 자유"라는 요구를 들고 베른슈타인주의를 옹호하며 나서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부당하게 우리의 "비판가들"과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모욕했다고 확신하게 됐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누가? 어디서? 언제 모욕했다는 것인가? 무엇이 부당했던 말인가? 이에 관해서 『노동자의 대의』는 단 한 번도 그 어떤 러시아 비판가나 베른슈타인주의자도 거론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두 가지 가능한 가정 가운데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부당하게 모욕을 당한 측이 남이 아닌 『노동자의 대의』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제10호에 실린 두 편의 글에서 『여명』과 『불꽃』이 『노동자의 대의』에 가한 모욕만이 언급되고 있는 데서 확인되는 바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베른슈타인주의와의 일체의 연대를 그렇게도 완강하게 항상 거부해 왔던 『노동자의 대의』가 자신을 옹호하려 할 때마다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과 비판의 자유를 변호하는 말을 한마디씩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이상한 일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다른 하나는 어떤 제삼자가 부당하게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들이 누구인지 침묵해야 하는가?
이처럼, 우리는 『노동자의 대의』가 그 탄생 순간부터 열중해 왔던(우리는 나중에 이를 보여 줄 것이다.) 숨바꼭질을 계속 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이제, 그지없이 훌륭한 "비판의 자유"가 처음으로 이처럼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런데 사실, 비판의 자유는 지금 비판의 전무 상태, 나아가 독자적 판단의 전무 상태로 귀착되어 있다.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에 관해서는 마치 숨겨야 될 질병(스타로베르의 적확한 표현대로[21])인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바로 그 『노동자의 대의』가 이 질병의 치료를 위해 질병의 독일적 변종에 대한 최신의 독일식 처방을 그대로 베끼라고 제안하다니! 비판의 자유이기는 커녕 노예의,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원숭이의 모방이 아닌가! 현대의 국제적인 기회주의의 동일한 사회적, 정치적 내용은 민족적 특수성에 맞게 이러저러하게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기회주의자 그룹이 오래전부터 특별한 깃발 아래 진군해 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실천적으로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의 정책을 수행하면서 이론은 무시해 왔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혁명적 정당의 몇몇 당원들이 기회주의 진영으로 옮겨 가서, 원칙과 새 전술을 위한 공개 투쟁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 징계 받지 않을 정도로 자기 당을 타락시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애쓰고 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그 같은 이탈자들이 정치적 노예제의 압흑 속에서 "합법" 활동과 "비합법" 활동의 너무나 독특한 상호 관계를 유지하며 똑같은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기타 등등.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가 과연 어떤 것으로 발현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분석하지도 않은 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통합 조건으로 베른슈타인주의와 "비판의 자유"를 말하려 달려드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비록 단 몇 구절일지라도, 『노동자의 대의』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혹은 어쩌면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을 우리가 바로 말해 보자.
3. 러시아에서의 비판
지금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문제에서 러시아의 주요한 특수성이란 자생적인 노동자운동과 선진적인 사회 여론의 맑스주의로의 전환이라는 두 가지의 시작 자체가 명백히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동의 적(낡은 사회관과 정치관)과 투쟁하기 위해 공동의 깃발 아래 결합되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합법적 맑스주의"의 밀월 시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매우 독창적인 현상이었다. 1880년대, 또는 1890년대 초반에는 이 같은 현상의 가능성 자체를 누구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언론이 전적으로 예속 상태에 있는 전제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불만과 저항이 조금도 자라지 못하도록 탄압했던 극단적인 정치적 반동의 시대에, 이솝의 언어를 빌리기는 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적인 혁명적 맑스주의 이론이 느닷없이 검열을 통과한 서적으로 진로를 열었다. 정부는 (혁명적인) '인민의 의지'의 이론만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 있었으므로, 언제나 그렇듯 그 이론의 내적 발전을 눈치채지 못하고는 '인민의 의지'에 반대하는 경향이라면 어떤 것이건 혼쾌히 받아들였다. 정부가 불현 듯 사태를 깨달아 검열관과 헌병의 중부대가 새로운 적을 찾아내 덮칠 때까지는 상당한(우리 러시아식 셈으로)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한 권 두 권 맑스주의 서적들이 나왔으며, 맑스주의 잡지와 신문들이 창간되었고, 모두 맑스주의자가 되어 맑스주의자들을 치켜세우고 그들의 비위를 맞췄으며, 출판인들은 뜻밖에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맑스주의 서적들에 열광했다. 이 같은 중독된 분위기에 휩싸인 초보 맑스주의자 가운데에 "거드름을 피워 대는 문필가……"[22]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는 이 시기에 관해 마치 과거를 이야기하듯 차분히 말할 수 있다. 우리 문필계의 지면에서 맑스주의가 잠시 꽃을 피웠던 것은 과격파와 온건파의 연합으로 인한 현상이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온건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었다. (이후 그들의 "비판적" 발전으로 명백히 증명된) 이 결론을 몇몇 사람들은 "연합"이 온전했던 시기에 이미 생각한 바 있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후의 "분란"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미래의 "비판가들"과 이러한 연합에 들어갔던 바로 그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사태를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이 같은 질문과 이를 긍정하는 답변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완전히 틀렸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과의 일시적 연합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다. 그 어떤 정당도 그런 연합 없이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합법적 맑스주의자들과의 결합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이 맺은 일종의 최초의 실질적 정치 연합이었다. 이 연합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인민주의에 승리할 수 있었으며, 맑스주의 사상(통속화된 형태이긴 했지만)을 엄청난 규모로 폭 넓게 보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연합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 증거는 1895년에 검열관이 불태워 없앤 맑스주의 저작집 『러시아의 경제 발전에 관련된 자료들』이다. 합법적 맑스주의자들과의 문필 협정을 정치 연합에 비교할 수 있다면, 그 책은 정치 조약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합이 결렬된 것은 "연합 당사자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 경향의 대표자들은 사회민주주의 당의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연합 세력이다. 러시아의 현재 상황은 일차적으로 민주주의적 과제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합의 필수 조건은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와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의 적대적 대립성을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계급에게 폭로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합법적 맑스주의자가 의지해 마지않던 베른슈타인주의와 "비판적" 경향은 사회주의자들에게서 이러한 기회를 박탈하였다. 그들은 맑스주의를 비속화하고, 사회적 모순을 무마하는 이론을 선전하고, 사회혁명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사상을 불합리한 것이라 공표하고, 노동자운동과 계급투쟁을 보잘것없는 점진적 개혁을 위한 "현실적" 투쟁 및 협소한 노동조합주의로 끌고 가는 등의 일을 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의식을 타락시켰다. 이는 전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진영이 사회주의의 독립권을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며, 따라서 그 존재권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천적으로 이는 시작 단계에 있는 노동자운동을 자유주의자들의 부속물로 전락시키려 함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결렬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 결렬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널리 보급된 "합법적" 문헌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간단히 축출되었음을 의미했다는 데에 러시아의 "독특한" 특수성이 있었다. 이제 그 자리는 "예전에 맑스주의자였던 사람들"로 강화되었다. 그들은 "비판의 깃발 아래" 떨쳐 일어섰고 맑스주의를 "분쇄"할 독점권을 획득했다. "교조주의 반대"라는 함성이 들린다. 그리고 (지금은 『노동자의 대의』가 되풀이하고 있는) "비판의 자유 만세"는 금방 유행어가 되었으며 헌병과 검열관들도 이 유행에는 대항해 내지 못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은 유명해진(헤로스트라투스[24] 식으로 유명해진) 베른슈타인의 책 세 권이 러시아어판으로 출간된 예와 주바토프가 베른슈타인, 프로코포비치 씨 등의 책을 추천한 예다(『불꽃』 제10호). 이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 자체로도 힘든데다 순전히 외부의 걸림돌 때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더 어려워진 과제, 즉 새로운 흐름과의 투쟁이라는 과제를 집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흐름은 문필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판"으로의 전환에 뒤이어 사회민주주의 실천가들이 "경제주의"에 호응하여 끌려들게 되는 과정이 나타난 것이다.
합법적 비판과 비합법적 "경제주의"의 관계 및 상호 의존성이 어떻게 발생하여 성장해 왔는가 하는 흥미로운 문제는 별도의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것이다. 우리로서는 여기서 이런 관계가 확실히 존재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악명 높은 Credo[25]가 그처럼 정당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 관계를 솔직하게 공식화하고 "경제주의"의 기본적인 정치적 경향을 다음과 같이 무심코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들은 경제투쟁(더 정확하게는 노동조합주의 투쟁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노동조합주의 투쟁은 특유의 노동자 정치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을 하게 하고, 맑스주의 지식인은 정치"투쟁"을 위해 자유주의자들과 결합하게 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인민 속에서의" 노동조합주의 활동은 첫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합법적 비판은 둘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이 같은 언명은 "경제주의"를 겨냥하는 너무나 훌륭한 무기였기 때문에, 만일 Credo가 없었다면 그것을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Credo는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저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쩌면 오히려 그들의 의지에 반해 공개되었을 뿐이다. 적어도, 새 "강령"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데 일조한 이 글의 필자인 나는 연설자가 적어 놓은 그들 견해의 개요가 복사본으로 유포되어 Credo라는 꼬리표를 얻고 심지어 항의문과 함께 인쇄된 것과 관련해 항변과 비난을 들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 에피소드를 거론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경제주의"의 매우 흥미로운 성격을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에 대한 공포증 말이다. 이것은 Credo의 몇몇 필자들만이 아닌 바로 "경제주의" 일반의 성격이다. "경제주의"의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솔직한 지지자인 『노동자의 사상』, (『바데메쿱』[27]에 "경제주의자" 자료들이 공개된 것에 격분한) 『노동자의 대의』, 2년 전 자신의 Profession de foi[28]가 그에 대한 반박문과 함께 공개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던 키예프 위원회**, 그리고 그 밖에도 수많은 "경제주의"의 개별적 대표자가 공개에 대한 공포증을 보여 온 바 있다.
비판의 자유를 지지하는 자들이 드러내는 이 비판에 대한 공포증은 교활하기 때문이라고만 설명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 비록 어떤 때는 교활함이 없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새로운 경향의 맹아를 반대파가 공격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내놓는 것은 앞뒤를 생각하지 못한 처사가 아닌가!) 그런 것이 아니라, 대다수 "경제주의자"는 이론적 논쟁, 분과 간의 이견, 광범위한 정치 문제들, 혁명가들을 조직하기 위한 계획 등을 그 어떤 것인 것만으로는 "경제주의"의 본질상 필연적으로) 악의를 품고 바라본다. "이런 건 모두 국외로 넘겨 버려야 하는 건데!" — 상당히 일관된 "경제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한번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 말로써 매우 널리 유포되어 있는 (또한 이번에도 역시 순전히 노동조합주의적인) 관점을 표현한 것이니, 이는 『불꽃』 제12호에 실린 편지의 필자들이 『노동자의 대의』 제10호와 합창으로 다음과 같이, 즉 우리의 일은 여기 우리 땅에서의 노동자운동과 노동자 조직이며 나머지 다른 일은 공론가들이 고안해 낸 것이자 "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라고 피력했던 것과 같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와 러시아의 "비판"의 이런 특수성을 고려할 때,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회주의에 대항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임무는 어떤 것이어야 했는가? 첫째, 합법적 맑스주의의 시대에 겨우 시작되기만 하였다가 이제 다시 비합법 활동에 처해진 이론 작업을 재개하기 위해 부심했어야 했다. 그러한 작업 없이 운동의 성공적인 성장은 불가능했다. 둘째, 사람들의 머리를 극히 타락시켜 놓은 합법적 "비판"과 투쟁하기 위해 적극 나섰어야 했다. 셋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의 강령과 전술을 펼히하려는 온갖 시도들을 폭로하고 반박하면서 실천 운동에서의 혼란과 우왕좌왕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섰어야 했다.
『노동자의 대의』가 이 중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뒤에 우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측면에서 이 자명한 진실을 상세히 밝혀야 할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러시아의 "경제주의" 및 우리 조국의 비판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과 "비판의 자유"라는 요구 사이에 어떤 놀라운 모순이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할 뿐이다. 실제 국외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이 『노동자의 대의』의 관점을 확인해 준 결의안의 본문을 쭉 훑어보라.
사회민주주의당의 사상의 가일층 발전을 위해 우리는 당 문헌에 사회민주주의당의 이론에 대한 비판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정한다. 비판이 사회민주주의당 이론의 계급적, 혁명적 성격에 반하는 쪽으로 나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두 대회』10쪽.)[29]
그 근거로 든 것을 보자. 결의안의 "첫 부분은 베른슈타인주의에 관한 뤼베크 당대회 결의안과 일치한다."…… 정신이 단순하신 "동맹원들"은 이 같은 모방으로 자신들이 어떤 testimonium paupertatis[빈곤 증명서]에 서명을 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지경이다! "그러나…… 둘째 부분은 비판의 자유를 뤼베크 당대회보다 훨씬 협소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외동맹의 결의는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를 반대하여 제출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뤼베크를 들먹이는 것은 완전히 황당한 일 아닌가! 하지만 결의안이 "비판의 자유를 협소하게 제한하고 있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독일인들은 하노버 결의안을 통해 베른슈타인이 제출한 바로 그 수정안들을 조목조목 기각했으며, 뤼베크 결의안에서는 본문에 베른슈타인을 거명하며 그에게 개인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의 "자유로운" 모방자들은 러시아 특유의 "비판"과 러시아 특유의 "경제주의"가 그 어떤 것으로 발현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는다. 이 문제에는 침묵을 지키면서 이론의 계급적, 혁명적 성격에 대해 앙상한 강변을 늘어놓는 것은 잘못 해석될 여지를 훨씬 더 많이 남길 뿐이다. 특히, 동맹이 "이른바 경제주의"(『두 대회』8쪽 1항)를 기회주의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나온 김에 짚어 봤을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기회주의자들의 태도가 독일과 러시아에서 극과 극처럼 상반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독일에서는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 한다. 기존의 것이란,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며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세세한 것까지 다 해명된 오래된 강령과 전술이다. 수정안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로 "비판가들"인데, 이들은 별 불일 없는 소수파이고 그들의 수정주의적 지향은 너무나 소심하기 때문에, 다수파가 이 "신종"을 그저 무미건조하게 거부할 뿐 그 이상은 아닌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러시아에서는 비판가들과 "경제주의자들"이 기존의 것을 지키려 한다. "비판가들"은 자신들을 계속 맑스주의자로 간주해 주고 자신들이 온갖 의미에서 다 행사해 온 그 "비판의 자유"를 보장해 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그들은 당적 관계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고, 게다가 비록 권고로나마 비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공인된 당 기관이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주의자들"은 혁명가들이 "현재의 운동의 완전한 권리"(『노동자의 대의』제10호 25쪽)를, 즉 존재하고 있는 것의 존재 "적법성"을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이데올로그들"이 "물질적 요소들과 물질적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불꽃』제12호에 게재된 『편지』) 그 길에서 운동을 "끌어내리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현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벌일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인 그 투쟁을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를, "그들이 현시점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노동자의 사상』의 『별쇄 부록』[30] 25쪽) 그 투쟁을 가능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는 자생성, 즉 "현시점"에 있는 것에 대한 이 같은 숭배가 불만스럽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을 지배해 온 전술의 수정을 요구한다. 우리는 "통합하기에 앞서, 그리고 통합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단호하고 결정적으로 경계를 그어야 한다."(『불꽃』창간 성명에서)고 천명한다. 한마디로, 독일인들은 수정을 거부하면서 기존의 것에 머물러 있으며, 우리는 기존의 것을 숭배하거나 그것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며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자유로운" 독일 결의안 모방자들은 이 같은 "작은" 차이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4. 이론투쟁의 중요성에 관한 엥겔스의 글
"교조주의와 공론주의", "당의 경직화 — 사상을 폭력적으로 옮아낸 데 대한 불가피한 형벌" — "비판의 자유"의 열렬한 수호자들이 『노동자의 대의』에서 기사도적으로 무장하여 싸우는 적들이 바로 이것이다. — 우리는 이 문제가 일정에 올라 무척 기쁘다. 다만 거기에 다른 문제 하나를 추가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재판관은 누구인가?
우리 앞에는 문건 출판을 알리는 두 개의 선언문이 있다. 하나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의 정기 기관지 『노동자의 대의』의 강령」(『노동자의 대의』제1호 가운데 별쇄본)이고, 또 하나는 「노동해방그룹의 출판 재개 선언」[31]이다. 둘 다 1899년에 나온 것인데, 그때는 이미 "맑스주의의 위기"가 도마에 오른 지 오래였던 때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여러분이 맑스주의의 위기가 언급되는 현상에 대한 지적과 새 기관지가 그 문제에 관해 취하려는 입장을 분명하게 피력한 부분들을 첫째 문건에서 찾아내려 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일 것이다. 이 강령이나 1901년 동맹의 제3차 대회[32]에서 채택한 강령 보완문(『두 대회』15~18쪽) 어디에도 당면한 이론적 활동과 그 절박한 과제들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모든 사회민주주의자가 이론적 문제로 동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내내 『노동자의 대의』 편집진은 그것을 완전히 제쳐 두고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둘째 선언문은 무엇보다 먼저 최근 몇 년 동안 이론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프롤레타리아혁명운동의 이론적 측면에 예리한 관심을 가질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우리 운동 내의 "베른슈타인주의 및 기타 반혁명적 경향을 가차 없이 비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기존에 발행된 『여명』의 각 호를 보면 이 같은 강령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사상의 경직화 등등에 반대하는 목청 높은 문구들이 이론적 사상 발전과 관련된 무기력과 무사태평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예는 (이미 오래전에 독일의 맑스주의자들도 지적한 바 있는) 범유럽적인 현상, 즉 특히 저 악명 높은 비판의 자유란 한 이론을 다른 이론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일적이고 깊이 있는 이론 일체로부터 벗어날 자유이며 절충주의와 무원칙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특히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우리 운동의 실상을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맑스주의의 폭 넓은 보급이 일정 정도 이론적 수준의 저하를 수반한 상황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론적으로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심지어 이론에 전적으로 무지한 상당수 사람이 운동의 실천적 중요성과 그 실천적 성공을 위해 운동에 가담했다. 따라서 『노동자의 대의』가 "현실 운동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한 다스의 강령들보다 중요하다."[33]는 맑스의 금언을 의기양양하게 내세울 때 그것이 얼마나 박자를 못 맞추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론적 혼란의 시대에 이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34] 앞서 인용된 맑스의 말은 고타 강령에 관한 그의 편지에서 따온 것인데, 이 편지에서 그는 원칙을 정식화하는 데 절충주의가 허용되는 것을 신랄하게 질책하고 있다.[35] 맑스는 당의 지도자들에게, 연합의 필요성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면 운동의 실천적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협약을 체결하되 원칙을 거래하거나 이론적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쓰고 있다. 맑스의 생각은 이러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그의 이름으로 이론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혁명 이론이 없다면 혁명 운동도 있을 수 없다. 실천 활동의 가장 협소한 형태에 매몰되는 것이 기회주의의 최신 유행 설교와 서로 열쌈안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생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에서 이론의 중요성은 사람들이 자주 잊고 있는 또 다른 세 가지 상황에 의해 더욱 커지고 있다. 첫째, 우리 당은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제 면모를 갖춰 가고 있으며, 운동을 올바른 길에서 끌어 내릴 위험이 있는 다른 경향의 혁명사상들과 결산조차도 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결산은커녕 오히려 가장 최근에는 비(非)사회민주주의적 혁명 경향이 현저히 활기를 띠게 되었다. (악셀로드는 이미 오래전에 "경제주의자"들에게 이를 예언한 바 있다[36]). 이 같은 상황에서는 언뜻 보기에는 "별것 아닌" 실수가 실로 통달할 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근시안적인 사람들만이 분파들의 논쟁이나 색조의 엄격한 구별을 시기에 맞지 않는다거나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오랜 기간에 걸친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미래는 어떠한 "색조"를 굳혀 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둘째,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운동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민족적 쇼비니즘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또한 청년기의 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는 운동은 다른 여러 나라의 경험을 체험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러한 체험을 위해서는 단순히 그 경험이 어떤 것인지 안다는가, 최신의 결의안들을 그저 베껴 쓴다는가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 경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독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대의 노동자운동이 얼마나 거대하게 성장하여 그 가지를 뻗어 왔는지를 상상해 보기만 해도, 이 같은 과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풍부한 이론적 역량과 정치적 (또한 혁명적)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셋째,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국민적 과제는 전 세계 그 어떤 사회주의정당도 직면해 본 적이 없던 성격의 것이다. 전제주의의 압제로부터 전 인민을 해방시켜야 할 이 과제가 우리에게 맡긴 정치적, 조직적 의무에 관해서는 뒤에 서술하도록 하겠다. 지금은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선진적 이론으로 지도되는 당만이 전위투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고자 하는 독자들이라면, 게르젠, 벨린스키, 체르니셰프스키 같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선구자들과 70년대의 빛나는 혁명가들을 그려 보면 될 것이다. 아니면, 지금 러시아 문학이 획득하고 있는 전 세계적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아니면 또……, 그러나 이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 이론의 중요성이라는 문제에 관해 엥겔스가 1874년에 한 말을 인용해 보자. 엥겔스는 — 우리가 흔히 그러하듯 —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커다란 형태로 두 가지 (정치투쟁, 경제투쟁)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즉 그 둘과 나란히 이론투쟁도 인정하고 있다. 실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강력해진 독일 노동자운동에 바친 그의 조언은 현재의 여러 문제와 논쟁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교훈적인 까닭에, 지금까지 그보다 더 위대한 책을 찾기 힘든 『독일 농민 전쟁』이라는 소책자[*]의 서문을 길게 인용하더라도 독자들이 불평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그 밖의 유럽 노동자들에 비해 두 가지 점에서 본질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이론적인 민족에 속하며, 독일의 이른바 '배웠다는 사람들'이 완전히 잃어버린 이론적 감각을 보존하고 있다.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독일의 과학적 사회주의 — 지금까지 존재한 단 하나의 과학적 사회주의 — 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에 이론적 감각이 없었다면, 이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오늘날의 상황처럼 노동자들의 살과 피로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영국 노동자운동이 개별 노동조합의 그 모든 출중한 조직 상태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전진하지 못하게 만든 근본적 원인들 가운데 하나인 이론에 대한 무관심과 비교해 본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 프루동주의가 프랑스인들과 벨기에인들 사이에 그 원래적 형태로 야기했고 바쿠닌이 에스파냐인들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 더욱 희화화된 형태로 야기했던 비행 및 혼란과 비교해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장점인가를 잘 알 수 있다.
둘째 이점은 독일인들이 시간상 마지막으로 노동자운동에 뛰어든 편에 속한다는 데 있다. 독일의 이론적 사회주의가 생시몽, 푸리에, 오언의 어깨 위에, 즉 그 모든 공상과 그 모든 유토피아주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의 가장 뛰어난 두뇌에 속하고 수많은 천재적 예견을 내놓은 사람들이며 그 예견들이 옳았다는 것이 오늘날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그 세 사람의 어깨 위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듯이, 독일의 실천적 노동자운동은 자신이 영국과 프랑스의 운동의 어깨 위에서 발전하였고, 이 운동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경험들을 간단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당시에는 거의 불가피했던 오류들을 오늘날 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노동조합들과 프랑스의 정치적 노동자 투쟁들이 선행하지 않았다라면, 특히 파리코뮌[14]이 던진 엄청난 충격이 없었다라면,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독일 노동자들이 보기 드문 분별력을 가지고서 자신들의 처지에서 나오는 이점들을 이용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이 성립된 이래 처음으로, 투쟁은 그 세 가지 측면 — 이론적 측면, 정치적 측면, 실제적-경제적(자본가에 대한 저항) 측면 — 에 걸쳐서 단일한 음조와 연관을 유지하면서 계획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집중적 공격에 바로 독일의 운동이 가지고 있는 강력함과 불패의 힘이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독일의 운동이 점하고 있는 이러한 유리한 지위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운동의 섬나라라는 특수성과 프랑스의 운동에 가해진 폭력적인 진압 때문에, 현재 독일의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전위에 서 있다. 사건들이 독일 노동자들의 이 명예로운 지위를 얼마나 오랫동안 용인할지는 미리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한, 아마도 독일의 노동자들은 응당 그 지위에 속하는 직분을 이행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과 선동의 모든 영역에서 두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지도자들의 의무로 되는 것이 있으니, 모든 이론적 문제에 대해 더욱더 이해를 높여야 하고, 낡은 세계관에 속하는 전래의 공문구의 영향에서 더욱더 자신을 해방시켜야 하며, 또한 사회주의는 과학으로 된 이래 과학처럼 추진되기를, 즉 연구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이렇게 획득되어 점점 더 명확해져 가는 인식을 더욱 열심히 노동자 대중 속에 보급하여 당 조직과 노동조합 조직 사이의 연결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독일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나아간다 하더라도, 그들이 반드시 운동의 선두에 서서 진군하라는 법은 없지만 — 어떤 한 민족의 노동자들이 선두에서 서서 진군하는 것은 결코 운동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 그렇게 나아간다면 그들은 전투의 대열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점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예기치 않은 중대한 시련이나 큰 사건들이 일어나서 그들에게 더 큰 용기, 더 큰 결의와 실행력을 요구하게 된다면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37]
엥겔스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사회주의자특별법[15]이라는 예기치 않은 중대한 시련이 독일의 노동자들을 덮쳤다. 독일 노동자들은 실제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이를 맞았으며 승리로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 앞에는 이보다 더한, 가능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시련이 놓여 있다. 피볼과의 투쟁이 그들 앞에 놓여 있으나, 입힌 국가의 특별법이라는 것은 이 피볼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인증 환자에 불과하다. 이제 역사는 우리에게 당면 임무를 제기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임무보다도 혁명적인 것이다. 이 임무를 실행한다면, 즉 유럽 반동의 가장 강고한 보루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반동(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의 가장 강고한 보루이기도 한 것을 파괴한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70년대 우리의 선각자들과 같은 헌신적인 결의와 열정으로 그보다 천만 배 더 넓고 깊은 우리 운동을 고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선각자들, 70년대의 혁명운동가들이 이미 얻은 바 있는 그 영예로운 칭호를 우리가 획득하리라 기대해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