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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노동 과정에서 생산물의 가치 형성에 기여하는 요소들은 상이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노동자의 활동은 구체적인 기술이나 목적과는 무관하게, 지출된 노동량만큼 새로운 가치를 생산물에 더한다. 동시에, 생산 수단이 갖는 가치 또한 소멸하지 않고 생산물로 이전되어 그 가치의 일부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면화와 방추 가치는 면사 가치로 보존되며 이전된다. 이러한 가치 이전은 생산 수단이 생산물로 변형되는 노동 과정에서 매개된다.

 

노동자는 동일한 시간 동안 두 가지 노동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는 면화에 새로운 가치를 첨가하고자 생산 수단의 가치를 보존하고자 별도로 노동하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는 행위 그 자체로 기존의 가치를 보존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결과는 동일한 노동 시간 내에 동시에 발생하지만,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다. , 한 측면에서는 가치를 창조하고, 다른 측면에서는 기존 가치를 보존하거나 이전한다.

 

각 노동자는 자신의 고유한 생산적 노동 방식으로부터 새로운 노동 시간과 가치를 추가한다. 방적공은 실을 뽑고, 직조공은 천을 짜고, 대장장이는 쇠를 단련하듯이, 그들은 자신만의 목적에 부합하는 노동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사용 가치(생산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목적적 노동으로만 생산 수단(면화, 방추 등)은 생산물의 구성 요소로 전환된다.

 

생산 수단이 지닌 사용 가치는 소멸하지만, 이는 새로운 사용 가치로 재생되기 위함이다. 가치 형성 과정에서 보았듯이, 어떤 사용 가치가 목적에 맞게 소비되면, 그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데 투입된 노동 시간은 새로운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의 일부가 된다. , 이는 소비된 생산 수단으로부터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되는 노동 시간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치를 보전하여 생산물의 가치 요소로 이전시키는 일은 단순히 노동을 투입하는 일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이는 노동의 특수한 유용성과 생산적 형태로부터 비롯된다. 방족, 직조, 단야와 같은 목적성 있는 생산 활동은 생산 수단을 다시 활성화시켜 노동 과정의 요소로 전환시키고, 이로부터 생산물을 창조한다.

 

노동자가 방적이 아닌 다른 생산적 노동을 한다면, 그는 면화를 면사로 전환시키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면화와 방추의 가치 역시 면사로 이전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노동자가 목공으로 작업을 바꾸더라도, 그는 여전히 하루의 노동으로부터 재료에 가치를 부가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가치를 첨가하는 일은 그의 노동이 방적이나 목공이라는 특정 행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추상적 사회적 노동이라는 노동 일반의 성격 때문이다. 또한, 그가 특정한 가치량을 첨가하는 일은 그의 노동이 특수한 유용성을 지니기 때문이 아니라, 일정 시간 동안 지속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방적공의 노동은 인간 노동력 지출이라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성질로부터 면화와 방추의 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부가한다. 반면에, 방적이라는 구체적이고 유용한 성질로부터 생산 수단의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시키고 보존한다. 이처럼 동일한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노동은 두 가지 상이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 노동에서 단순한 양적 투입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투입되는 노동의 질적 속성은 생산 수단의 기존 가치를 보존한다. 이러한 노동의 이중성은 다양한 현상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어떤 발명으로 인해 방적공이 36시간에 걸쳐 방적하던 면화량을 이제 6시간 만에 처리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의 목적적이고 유용한 생산 할동의 효율은 6배로 증가했다. 6시간 노동의 생산물은 이전의 6배에 달하며, 6kg의 면화가 흡수하던 일과 동일한 노동량을 흡수한다. 이 새로운 방식으로는 면화 1kg당 이전 방식의 1/6에 해당하는 새로운 노동과 가치만이 부과된다. 반면, 36kg의 면사 생산물에는 이전보다 6배의 면화 가치가 포함된다. 6시간의 방적 작업 동안 이전의 6배에 달하는 원료 가치가 보존되어 생산물로 이전된다. 물론 이때 각 1kg의 원료에는 이전의 1/6에 불과한 새로운 가치가 첨가된다. 이는 하나의 분리할 수 없는 과정 속에서 노동이 가치를 보존하는 속성과 가치를 창조하는 속성이 얼마나 본질적으로 다른지 명확히 보여준다.

 

면화 방적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수록, 면화에 부가되는 새로운 가치는 커진다. 반대로, 동일한 노동 시간 내에 더 많은 면화를 방적할수록, 생산물에 이전되어 보존되는 가치는 증가한다. 방적 노동의 생산성이 변하지 않아 방적공이 1kg의 면화를 방적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동일하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면화 자체의 교환 가치가 6배 상승하거나 1/6로 하락한다면, 방적공은 동일한 양의 면화에 동일한 노동량과 가치를 첨가하고, 같은 시간 동안 동일한 양의 면사를 생산한다. 그럼에도, 그가 면화에서 면사로 이전시키는 가치는 면화 가격이 6배 상승했을 때는 이전보다 6배가 되고, 1/6로 하락했을 때는 이전의 1/6이 된다. 이와 동일한 결과는 노동 수단의 유용성은 변함이 없으나 그 가치가 증감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방적 과정의 기술적 조건과 생산 수단의 가치에 변동이 없다면, 방적공은 동일한 노동 시간동안 동일한 양의 원료와 기계를 소비한다. 그가 생산물에 보존하는 가치는 그가 새로 부가하는 가치에 정비례한다. 예를 들어, 2주 동안 그는 1주 동안보다 2배의 노동과 가치를 첨가하고, 동시에 2배 가치의 원료와 기계를 소모한다. 따라서 2주간의 생산물에 보존되는 가치는 1주간의 생산물에 보존되는 가치의 2배가 된다. , 주어진 불변의 생산 조건에서는 노동자가 더 많은 가치를 부가할수록, 더 많은 가치를 이전하여 보존한다. 그러나 그가 더 많은 가치를 보존하는 일은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부가 행위가 불변의 생산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인 볼 때, 노동자는 항상 새로운 가치 첨가량에 비례해 기존 가치를 보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면화 가격이 1원에서 2원으로 오르거나 0.5원으로 떨어지더라도, 1시간 노동으로 생산된 면사 속에 보존된 면화 가치는 2시간 노동으로 생산된 면사 속 가치의 절반에 불과하다. 또한, 노동자의 생산성이 향상되거나 저하된다면, 그는 1시간 동안 더 많거나 더 적은 양의 면화를 방적하게 되며, 이에 따라 1시간 노동 생산물에 보존되는 면화 가치도 달라진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2시간 노동으로 보존하는 가치는 1시간 노동으로 보존하는 가치의 2배가 된다.

 

가치는 사용 가치를 지닌 물건 속에만 존재한다. (인간 역시 노동력의 인격화로 보면 일종의 자연물이며, 노동은 노동력의 육체적 발현이다.) 따라서 어떤 물건이 사용 가치를 잃으면 가치도 상실한다. 하지만 생산 수단은 사용 가치를 잃는다고 해서 가치마저 상실하지는 않는다. 이는 생산 과정에서 원래의 사용 가치 형태를 잃는 동시에 생산물 속에서 새로운 가치 형태를 얻기 때문이다. 가치는 존재할 수 있는 사용 가치를 가져야 하지만, 어떤 사용 가치 안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노동 과정에서 생산 수단이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시키는 일은, 생산 수단이 고유의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상실하는 만큼만 이뤄진다. , 생산 수단은 자신이 잃는 가치만을 생산물에 넘겨준다. 그러나 노동 과정에서 여러 물질적 요소들이 모두 동일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보일러 가열에 사용되는 석탄이나 바퀴 축에 바르는 기름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염료와 같은 보조 재료 역시 소모되지만, 생산물의 속성으로 다시 나타난다. 원료는 형태가 변할지라도 생산물의 실체를 이룬다. 따라서 원료와 보조 재료는 노동 과정에 투입될 때의 독자적인 모습을 잃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 수단은 앞선 경우와 다르다. 도구, 기계, 공장 건물, 용기 등은 원래의 형태를 유지한 채 매일 반복적으로 노동 과정에 투입될 수 있어야만 유용하다. 이들은 노동 과정 중에 고유한 모습을 유지하며, 수명이 다한 후에도 생산물과 별개로 잔해 형태로 남는다. 이러한 노동 수단이 생산에 기여한 전체 기간을 살펴보면, 그 사용 가치는 완전히 소멸되고 그 교환 가치는 생산물로 전부 이전된다.

 

예를 들어, 수명이 10년인 방직 기계의 총가치는 10년간의 노동 과정을 거치며 그 기간의 생산물로 이전된다. 따라서 하나의 노동 수단은 여러 차례 반복되는 노동 과정으로 존재한다. 노동 수단은 인간과 비슷한 운명을 겪는다. 인간이 매일 죽음에 가까워지듯이, 노동 수단도 수명이 정해져 있다. 개인의 정확한 수명 예측은 어렵지만, 생명 보험 회사가 평균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수명에 대한 신뢰성 있는 결론을 도출하듯이, 노동 수단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류의 기계가 평균적으로 얼마나 존속할 수 있는지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어떤 기계의 사용 가치가 평균 6일 동안만 유지된다면, 이 기계는 매일 사용 가치의 1/6을 잃고, 그날의 생산물에 자신의 가치 중 1/6을 이전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노동 수단은 마모되면서 매일 사용 가치를 상실하고, 이에 비례해 매일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하게 된다. 노동 과정에서 생산 수단은 자신이 상실하는 가치 이상을 생산물에 이전하지 않는다. 생산 수단이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도 없다면, 곧 인간 노동의 산물이 아니라면, 그것은 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할 수 없다. 이러한 생산 수단은 사용 가치를 형성하는 데는 기여하지만, 교환 가치를 형성하는 데는 참여하지 않는다. 토지, 바람, , 광석 형태의 금속, 원시림의 나무 등 인간의 노동을 거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생산 수단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나의 흥미로운 현상은 다음과 같다. 가치가 1,000원이고 1000일 후에 마모될 기계를 가정하자. 이 경우, 기계의 가치는 매일 1/1,000씩 생산물로 이전된다. 하지만 기계는 비록 점차 성능이 저하되더라도 노동 과정 전체에 기능적으로 참여한다. 이는 노동 과정과 가치 형성 과정 간 차이를 보여준다. 동일한 생산 수단이 노동 과정의 요소로는 전체적으로 참여하지만, 가치 형성의 요소로는 부분적으로만 계산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 수단이 노동 과정에 부분적으로만 참여해도 가치 형성 과정에는 전체적으로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15kg의 면화로 실을 뽑을 때, 15kg의 낙면이 생겨 면사로 되지 못하고 솜 부스러기가 된다고 가정하자. 15kg의 낙면 발생이 방적의 평균적이고 불가피한 조건이라면, 이 낙면의 가치 역시 면사로 만들어진 100kg 면화의 가치와 함께 면사 가치에 포함된다.

 

100kg 면사를 생산하려면, 15kg 면화가 솜 부스러기로 소모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면화의 낭비는 면사 생산의 필수적인 조건이 되며, 그만큼의 가치를 면사로 이전시킨다. 이 원리는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폐기물에 적용된다. , 이 폐기물이 새로운 생산 수단이나 독립적인 사용 가치로 재활용되지 않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의 대규모 기계 제작 공장에서는 큰 기계를 깎아낸 쇠 부스러기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이 쇠 부스러기는 저녁에 제철소로 운반되어, 다음 날 다시 대량의 철로 가공되고, 공장으로 되돌아온다.

 

생산 수단은 노동 과정에서 원래 형태의 사용 가치를 상실하는 만큼만 새로운 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한다. 생산 수단이 잃을 수 있는 최대 가치는 노동 과정 투입 시점에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량, 곧 그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생산 수단은 노동 과정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보유했던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물에 부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생산 수단의 가치가 3,000(500일의 노동 시간)이라면, 그것은 생산물의 가치에 3,000원 이상을 부가할 수 없다. 생산 수단의 가치는 그것이 생산 수단으로 투입되는 노동 과정으로부터 결정되지는 않으며, 그것이 생산물로 나온 이전의 노동 과정으로부터 결정된다. 노동 과정에서 생산 수단은 단지 유용한 속성을 지닌 물건, 곧 사용 가치로 기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에 투입되기 전에 가치가 없었다면, 그것은 생산물에 어떠한 가치도 이전하지 못한다.

 

생산적 노동이 생산 수단을 새로운 생산물의 형성 요소로 전환시키면서, 생산 수단의 가치는 일종의 윤회 과정을 거친다. 소모된 육체로부터 새로 만들어진 육체로 가치가 이전되는 일이다. 이 과정은 현실적 노동의 배후에서 일어난다. 노동자는 기존의 가치를 보존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노동을 투입하거나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 그가 투입하는 노동은 반드시 특정한 유용한 형태를 가져야 하며, 생산 수단들을 활용해 그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하지 않고서는 유용한 노동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를 부가하면서 동시에 가치를 보존하는 일은 활동 중의 노동력, 곧 살아 있는 노동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이 속성은 노동자에게는 추가적인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지만, 자본가에게는 기존 자본 가치를 보존하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준다. 호황기에는 자본가가 이윤 추구에 몰두하여 이 공짜 선물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공황과 같은 노동 과정에서 강제적 중단은 자본가로 하여금 이를 절실히 깨닫게 만든다.

 

생산 과정에서 실제로 소모되는 일은 생산 수단 사용 가치이며, 이 소비로부터 노동은 생산물을 형성한다. 사실상 생산 수단의 가치 자체는 소비되지 않으므로, 그 가치가 재생산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대신, 그 가치는 보존된다. 이러한 보존은 가치 자체에 대한 조작이 아니라, 가치가 본래 담겨 있던 사용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비록 다른 사용 가치 속으로 들어가지만 말이다. 따라서 생산 수단의 가치는 생산물의 가치에 다시 나타나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재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되는 것은 기존의 교환 가치가 재현되는 새로운 사용 가치다.

 

노동 과정에서 활동하는 노동력, 곧 주체적 요소는 사정이 다르다. 노동은 특정 목적을 위해 수행되며 생산 수단의 가치를 생산물에 이전, 보존하는 동시에 매 순간 추가적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에 해당하는 가치, 예를 들어, 6시간의 노동으로 3원의 가치를 부가했을 때, 생산 과정이 멈춘다고 가정하자. 3원의 가치는 생산물 가치에서 생산 수단가치로부터 이전된 부분을 초과하는 분량이다. 이 가치는 생산 과정 내부에서 발생한 유일한 본원적 가치이며, 이 과정 자체로부터 생산된 유일한 부분이다. 이 새로운 가치 3원은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지출한 돈과, 노동자가 생필품 구매에 사용한 돈을 대체할 뿐이다. 따라서 이 지출된 3원과 관련하여, 새로운 가치 3원은 재생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생산 수단의 가치처럼 외형적으로만 재생산(사실상 이전)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재생산된 것이다. 이 경우 한 가지를 다른 가치가 대체하는 과정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로부터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노동 과정은 노동력 가치의 단순한 등가물을 재생산하는 것을 넘어 계속된다. 노동력 가치의 등가물 재생산에는 6시간이 충분하지만, 노동 과정은 12시간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력의 발휘는 자기 가치를 재생산할 뿐 아니라 일정한 초과 가치를 생산한다. 이 잉여 가치는 생산물의 가치와 그 생산물 형성에 소모된 요소들(생산 수단 및 노동력)의 가치 간 차이다.

 

생산물 가치 형성에 있어 노동 과정의 다양한 요소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사실상 자본 증식 과정에서 각 자본 요소가 갖는 특징적 기능을 보여준다. 생산물 총 가치에서 생산 요소들의 총 가치를 초과하는 부분은, 최초 투입된 자본 가치를 넘어서 증식된 자본의 초과분이다. 생산 수단과 노동력은 최초 자본 가치가 화폐 형태를 벗고 노동 과정의 요소로 변환된 데 불과하다. 이처럼 자본 중에서 생산 수단(원료, 보조 재료, 노동 수단)으로 변환되는 부분은 생산 과정에서 그 가치량이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불변 자본이라고 부른다.

 

자본 중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이와 달리 생산 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동한다. 노동력은 자신의 가치 등가물을 재생산하고, 추가적으로 초과 가치를 창출하는데, 이 잉여 가치는 상황에 따라 그 크기가 변할 수 있다. 이처럼 자본의 이 부분은 불변적인 크기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크기로 전환된다. 따라서 이를 가변 자본이라고 부른다. 결론적으로, 노동 과정의 관점에서 생산 수단과 노동력으로 구별되는 자본 요소들은, 가치 증식 과정의 관점에서는 각각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으로 구분된다.

 

불변 자본의 정의가 그 구성 요소 가치의 변동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면화 1kg 가격이 0.5원에서 흉작으로 인해 1원으로 상승했다고 가정하자. 이전에 0.5원으로 구매되어 가공 중인 면화는 이제 생산물에 1원의 가치를 이전한다. 이미 방적되어 시장에서 유통 중인 면사 역시 원래 가치에서 두 배를 생산물에 이전시킨다. , 면화 가격 상승 이전에 생산된 면사의 가치도 상승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 변동이 방적 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면화의 가치 증식과는 무관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전에 구매한 면화가 아직 방적되지 않았다면, 0.5원이 아닌 1원에 다시 판매될 수도 있다. 또한 면화가 이미 노동 과정에 투입되었다면, 가공 단계가 적을수록, 그 가치는 1원에 더 가깝다. 이 때문에 급격한 가치 변동이 일어날 때, 투기 원칙은 직물보다 면사, 면사보다 면화 자체와 같이 가장 적게 가공된 원료에 투자한다. 이러한 가치 변동은 면화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기인하며, 면화가 생산 수단이자 불변 자본으로 기능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다. 어떤 상품 가치는 물론 그 상품에 투입된 노동량으로 결정되지만, 이 노동량 자체는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이 변화하면, 이전에 생산된 상품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양의 면화라도 풍작일 때보다 흉작일 때 더 많은 노동량을 대표하게 된다. 이것은 모든 상품이 동일한 종류의 개별 표본에 불과하며, 특정 시점에서 가치는 해당 상품을 생산하는 데 당시 사회적 조건에서 필요한 노동량으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원료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미 생산 과정에서 사용 중인 노동 수단(기계 등)의 가치, 그리고 이들이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 부분도 변동할 수 있다. 새로운 발명으로 인해 동일한 종류의 기계가 더 적은 노동으로 생산된다면, 기존 기계 설비의 가치는 다소간 하락하며, 이에 비례해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도 줄어든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가치 변동은 기계가 생산 수단으로 기능하는 과정 외부에서 발생한 일이다. 해당 생산 과정에서 기계는 자신이 원래 보유했던 가치 이상을 결코 이전할 수 없다.


생산 수단의 가치 변동이 생산 과정 중에도 영향을 미치더라도, 이는 생산 수단이 불변 자본이라는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사이의 비율 변동도 자본의 기능적 차이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예를 들어, 10명의 노동자가 적은 가치의 도구로 소량의 원료를 가공하던 상황에서, 기술이 발전해 단 1명의 노동자가 고가 기계로 100배의 원료를 가공하게 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불변 자본(생산 수단의 총가치)은 크게 증가하지만, 노동력에 투입되는 가변 자본은 크게 감소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간 양적 비율만을 바꿀 뿐, 이들의 본질적 차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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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절대적 초과 가치의 생산

 

7. 노동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

 

7-1. 노동 과정 (사용 가치의 생산)

 

자본가는 노동력을 사용하고자 이를 구매하며, 이 사용 행위가 곧 노동이다. 노동력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노동을 지시하고 소비하면서, 판매자를 잠재적 노동력 상태에서 실제 활동하는 노동자, 현실적 노동자로 전환시킨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상품에 구현하려면, 먼저 그 노동을 사용 가치(특정한 욕구를 충족하는 물건)에 구현해야 한다. 따라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생산을 지시하는 일은 바로 이 특정한 사용 가치다. 사용 가치 또는 재화 생산은 그것이 자본가의 감독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본질적인 일반적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 과정을 특정 사회 형태와 무관하게 고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노동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자연 간 과정이며, 인간은 이 과정으로부터 자신과 자연 사이에서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한다. 인간은 팔, 다리, 머리, 손과 같은 신체적 자연력을 활용하여 자연 소재에 작용한다. 이 작용으로부터 외부 자연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킨다. ,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고, 그 힘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둔다.

 

여기에서는 동물적인 본능적 노동 형태는 논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고자 시장에 나타나는 시기는, 인간 노동이 본능적 형태를 벗어난 지 한참 후다. 우리가 다루는 노동은 오직 인간에게만 고유한 형태의 노동이다. 거미의 직조나 꿀벌의 건축은 인간 건축가를 능가하지만, 가장 서투른 건축가라도 집을 짓기 전에 머릿속으로 먼저 계획한다는 점에서 꿀벌과 구별된다.

 

노동 과정은 노동자의 머릿속에 관념적으로 이미 존재했던 결과물이 실제로 나타나는 과정이다. 노동자는 자연물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목적을 그 자연물에 구현한다. 이 목적은 법칙처럼 노동자의 행동 방식을 규정하며, 노동자는 자신의 의지를 그 목적에 복종시켜야 한다. 이 복종은 단순히 한순간의 행위가 아니라, 노동 내내 신체 기관의 긴장과 함께 합목적인 의지, 곧 치밀한 주의력을 요구한다. 특히 노동의 내용이나 방식이 노동자의 흥미를 끌지 않고, 그가 노동을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힘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행위를 즐기지 못할수록, 더욱 치밀한 주의력이 필요하다.

 

노동 과정의 기본 요소

 

1. 인간의 합목적적 활동 (노동 그 자체)

 

2. 노동 대상

 

3. 노동 수단

 

인간에게 식량이나 생활 수단을 제공하는 토지(경제학적 관점에서는 물도 포함)는 인간의 수고 없이도 존재하는 일반적 노동 대상이다. 자연으로부터 직접 분리된 물건, 곧 물에서 잡힌 물고기, 원시림에서 벤 원목, 광맥에서 채취한 광석 등도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노동 대상이다. 반면, 이미 과거의 노동이 투입된 노동 대상은 원료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채굴되어 세광 과정에 들어가는 광석이 이에 해당한다. 모든 원료는 노동 대상이지만, 모든 노동 대상이 원료는 아니다. 노동 대상은 이미 노동을 거쳐 어떤 변화가 가해졌을 때 비로소 원료가 된다.

 

노동 수단은 노동자가 자신과 노동 대상 사이에 두고, 자신의 활동을 전달하는 도구 또는 도구들의 조합이다. 노동자는 물질들의 기계적,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활용하여 그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삼아 다른 물질에 작용하게 한다. 과일처럼 신체 기관만으로 채취하는 생활 수단을 제외하면, 노동자가 직접 다루는 일은 노동 대상이 아니라 노동 수단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은 노동자에게 활동 기관의 일부가 된다. 노동자는 자연을 활용해 자신의 신체 기관을 확장하며, 자신의 자연적 존재를 연장하는 셈이다.

 

토지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식량뿐만 아니라 노동 수단의 원천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던지거나, 문지르거나, 누르거나, 자르는 데, 사용하는 돌이 그렇다. 토지 그 자체도 노동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농업에서 사용되려면 고도로 발달한 노동력과 다른 많은 노동 수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노동 과정이 조금이라도 진화하면 특별히 가공된 노동 수단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태고의 동굴에서도 돌로 만든 도구나 무기가 발견된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가공된 돌, 나무, , 조개뿐만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길들여진 동물들도 중요한 노동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노동 수단을 사용하고 제조하는 일은 인간 고유의 노동 과정을 특징짓는 요소다. (비록 그 원시적인 형태는 일부 동물에게서도 발견되지만). 이 때문에 프랭클린은 인간은 도구를 만든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멸종한 동물 종의 연구에서 화석 유골이 중요하듯이, 과거의 경제적 사회 구조를 탐구하는 데는 노동 수단의 유물이 중요하다. 경제적 시대는 무엇을 생산해는가보다, 어떤 노동 수단을 사용하여 어떻게 생산하는가로 구분된다. 노동 수단은 인간 노동력 발달의 척도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속에서 일하는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노동 수단 중에서도 생산의 골격이나 근유에 비유할 수 있는 역학적 노동 수단은 생산의 혈관에 비유되는 용기 형태의 노동 수단 (: , , 바구니, 항아리 등)보다 사회적 생산 시대를 훨씬 더 명확하게 규정한다. 용기로서의 노동 수단은 화학 공업에서 비로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노동 대상에 대한 활동을 중개하는 도구들 외에, 노동 과정 수행에 필수적인 모든 객관적

조건들은 더 넓은 의미에서 노동 수단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수단들은 직접적으로 노동 과정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없으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불완전하게 진행된다. 대표적인 보편적 노동 수단은 토지 그 자체다. 토지는 노동자에게 설 자리를 제공하고, 노동 과정에 작업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의 노동이 투입된 이러한 종류의 노동 수단으로는 공장, 운하, 도로 등이 있다.

 

노동 과정은 인간 활동이 노동 수단으로부터 노동 대상에 의도된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최종 생산물, 곧 사용 가치 속에 사라지며, 그 생산물은 형태가 변형된 자연 재료가 인간 욕구에 적합하게 된다. 노동은 그 대상과 결합되어 대상화되었으며, 대상은 변형되었다. 노동자의 움직임으로 나타났던 일이 이제 생산물에서는 정지된 형태로 나타난다. 노동자가 방적 노동을 했다면, 그 결과물은 방적된 실이다. 이 전체 과정을 생산물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 수단과 노동 대상은 생산 수단이 되고, 노동 그 자체는 생산적 노동이 된다. 어떤 노동 과정에서 생산된 사용 가치는 그 자체로 생산물인 동시에, 다음 노동 과정에서는 다른 사용 가치를 만들기 위한 생산 수단이 된다. 따라서 생산물은 단순히 노동 과정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노동 과정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광업, 수렵, 어업 등 노동 대상이 농업은 자연 그대로인 채취 산업(, 미개척지를 개간하는 최초의 농업 포함)을 제외하면, 모든 산업 부문은 이미 노동 과정에서 거친 원료를 다룬다. 농업의 종자가 그 예다. 우리가 흔히 자연 산물로 여기는 동식물조차 현재 모습은 지난 노동 생산물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인간 통제와 노동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변화된 산물이다. 특히 대부분의 노동 수단은 표면적으로도 오랜 노동 흔적을 명백히 보여준다.

 

원료는 생산물의 주된 실체가 될 수도 있고, 생산물 형성에 보조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보조 재료는 다음과 같이 소비된다.


보조 재료의 소비

 

1). 증기 기관에 사용되는 석탄, 자동차에 사용되는 휘발유, 말에 주는 건초처럼 노동 수단으로 소비된다.

 

2). 표백을 위해 아마포에 넣은 염소, 철에 첨가하는 석탄, 양모 사용하는 염료처럼 원료에 변화를 주고자 첨가된다.

 

3). 작업장 조명이나 난방처럼 노동 수행 자체를 돕는 데 사용된다.

 

화학 공업에서는 주요 재료와 보조 재료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투입된 원료가 생산물에서 원래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건은 다양한 속성과 용도를 가지므로, 동일한 생산물이 여러 노동 과정에서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곡물은 제분업자, 전분업자, 양조업자, 목축업자에게 원료가 되며, 씨앗으로는 자신을 다시 생산하는 원료가 된다. 마찬가지로 석탄은 광업이 생산물이면서 동시에 광업에 필요한 생산 수단으로 투입된다. 심지어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도 하나의 생산물이 노동 수단과 원료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가축 사육에서 가축은 원료인 동시에 비료 생산 수단이 되는 경우가 그렇다.

 

소비를 위해 완성된 생산물이 다른 생산물의 원료가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포도가 포도주 원료로 되는 것이다. 반대로, 오직 원료로만 사용되는 생산물도 있는데, 이를 반제품 또는 더 정확하게는 중간 제품이라 한다. 면사나 면포가 그 예다. 이들은 이미 생산물이지만,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는 원료로 기능하고, 최종 공정에서야 비로소 완성된 생활 수단이나 노동 수단이 된다.

 

어떤 사용 가치가 원료, 노동 수단, 또는 생산물이 되는지는 전적으로 그 사용 가치가 노동 과정에서 맡는 역할과 위치에 달려 있다. 이 위치가 바뀌면 사용 가치에 대한 규정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생산물이 새로운 노동 과정에서 생산 수단으로 투입되면, 생산물이라는 성격을 잃고, 살아 있는 노동의 객관적 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방적공은 방추를 실을 뽑는 수단, 아마를 실을 뽑는 대상으로만 다룬다. 방적 재료인 아마와 방추 없이 방적을 할 수 없기에. 이들이 이미 생산물이라는 사실이 전제되기는 한다. 그러나 방적 과정 자체에서는 아마와 방추가 과거 노동 생산물이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이는 빵이 농부, 제분업자, 제빵사에게 있어 과거 노동 산물이라는 사실이 소화 과정과 무관한 일과 같다.

 

생산 수단이 과거 노동의 산물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면, 이는 그 생산 수단에 결함이 있을 때다. 잘 들지 않는 칼이나 잘 끊어지는 실은 그것을 만든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우수한 생산물은 그것의 유용한 속성을 부여한 과거 노동을 완전히 흡수하여 사라지게 한다.

 

노동 과정에 쓰이지 않는 기계는 쓸모가 없다. 게다가 자연의 파괴력으로 인해 쇠는 녹슬고 나무는 썩는다. 직조나 편직에 사용되지 않는 실은 낭비된 솜에 불과하다. 살아 있는 노동은 이러한 물건들을 되살려 잠재적인 사용 가치에서 실제 유용한 사용 가치로 전환시킨다. 이 물건들은 노동의 과정으로 흡수되어 유기체의 일부처럼 활성화되며, 목적에 맞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로부터 이 물건들은 개인적 소비를 위한 생활 수단이나 새로운 노동 과정에 투입될 생산 수단 같은 새로운 사용 가치와 생산물의 구성 요소로 유용하게 소비된다.

 

어떤 생산물은 노동 과정의 결과인 동시에 그 과정의 필수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생산물이 살아 있는 노동과 결합되는 일은 생산물을 사용 가치로 활용하고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노동은 노동 대상과 노동 수단을 소모하므로, 그 자체로 소비 행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산적 소비는 개인적 소비와는 다르다. 개인적 소비가 생산물을 살아 있는 개인 생활 수단으로 소모하는 반면, 생산적 소비는 생산물을 노동력 발휘를 위한 수단으로 소모한다. 따라서 개인적 소비의 결과는 소비자 자신이지만, 생산적 소비의 결과는 소비자와는 별개인 생산물이다.

 

노동 수단과 노동 대상이 이미 생산물인 경우, 노동은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고자 기존의 생산물을 소비한다. , 한 종류의 생산물을 다른 종류의 생산물을 위한 생산 수단으로 전환하며 소비한다. 하지만 노동 과정은 최초에 인간과 자연 그대로의 토지 사이에서 이루어졌듯이,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노력이 가해지지 않은 천연적 생산 수단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노동 과정은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합목적적 활동이다. 이는 인간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자연을 활용하며, 인간과 자연 간 물질대사를 위한 일반적이고 영구적인 자연적 조건이다. 따라서 노동 과정은 어떤 사회 형태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회 형태에 공통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이 노동 과정을 설명하고자 노동자와 다른 노동자 간 관계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한쪽에는 인간과 그의 노동, 다른 쪽에는 자연과 그 소재만으로 충분했다. 빵의 맛을 보고 누가 밀을 경작했는지 알 수 없듯이, 노동 과정만을 보아서는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 노예 감시인의 잔인한 채찍 아래서인지, 자본가의 감시 아래서인지, 아니면 킨키나투스가 자신의 작은 땅을 경작하는지, 또는 미개인이 돌로 짐승을 사냥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제 장래 자본가에게로 돌아가 보자. 그는 상품 시장에서 생산 수단(객체적 요소)과 노동력(인적 요소)을 구매한 뒤, 자신의 사업에 맞는 생산 수단과 노동력을 전문가처럼 꼼꼼하게 선택했다. 자본가는 이제 구매한 상품인 노동력 소비에 착수한다. 그는 노동자로 하여금 노동으로부터 생산 수단을 소비하게 만든다. 이 노동 과정에서 일반적인 성격은 노동자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자본가를 위해 노동한다는 사실로 인해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본가가 개입했다고 해서 장화를 만들거나 실을 뽑는 특정 방식이 당장 바뀌는 일도 아니다. 자본가는 먼저 시장에서 접하는 노동력을 활용해야 하며, 자본주의가 없던 시절의 노동 방식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노동이 자본에 종속되면서 나타나는 생산 방식 자체의 변화는 나중에 발생하므로, 이는 추후에 논의할 문제다.

 

노동 과정이 자본가의 노동력 소비 과정으로 전환되면,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소유한 자본가의 감독 아래 노동한다. 자본가는 노동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고 생산 수단이 합목적적으로 사용되도록 감시한다, 이는 원료 낭비를 막고, 노동 도구가 꼭 필요한 만큼만 닳도록 감시하기 위함이다.

 

둘째, 생산물은 노동자의 소유가 아닌 자본가의 소유물이다. 자본가가 노동력의 하루 가치를 지불하면, 하루 동안 그 노동력을 사용할 권리는 자본가에게 귀속된다. 이는 자본가가 하루 동안 빌린 말의 사용 권리를 갖는 일과 마찬가지다. 상품에서 사용 권리가 구매자에게 있듯이, 노동력 소유자인 노동자는 자신이 판매한 사용 가치, 곧 노동을 제공할 뿐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작업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노동력 사용 가치, 곧 노동은 자본가 소유가 된다. 자본가는 구매한 노동력을 살아있는 효모처럼 그의 소유인 생산물 형성 요소들 (기계, 원료 등)과 결합시킨다. 자본가의 관점에서 노동 과정은 그가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다만, 그는 노동력에 생산 수단을 결합하면서만 이를 소비할 수 있다. 이 노동 과정은 자본가 소유 물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므로, 그 결과물인 생산물 또한 그의 소유가 된다. 이는 그의 포도주 창고에서 일어나는 발효 과정의 생산물이 그의 것과 마찬가지다.

 

7-2. 가치 증식 과정 (초과 가치의 생산)

 

자본가가 얻는 생산물은 실이나 장화 등과 같은 사용 가치다. 장화가 사회적 발전에 기여할지라도, 자본가는 장화 자체를 위해 이를 생산하지 않는다. 상품 생산에서 사용 가치는 그 자체로 사랑받는물건은 아니다. 사용 가치는 교환 가치의 물질적 토대이자, 이를 담는 그릇이므로, 오직 이러한 역할을 할 때만 생산된다.

 

자본가의 목적

 

1. 교환 가치를 지닌 사용 가치, 곧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일.

 

2. 생산에 투입된 상품들의 가치 총액(생산 수단과 노동력의 가치 총액)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상품을 생산하는 일.

 

그는 사용 가치뿐만 아니라 상품을, 그리고 가치뿐만 아니라 초과 가치를 생산하고자 한다.

 

상품 생산이 논의의 초점이므로, 지금까지 다룬 노동 과정은 생산 과정의 한 측면일 뿐이다. 상품 자체가 사용 가치와 가치의 통일체이듯, 상품의 생산 과정도 노동 과정과 가치 형성 과정의 통일이어야 한다.

 

이제 생산 과정을 가치 형성 과정으로 살펴보자. 우리는 각 상품의 가치가 그 사용 가치에 구현된 노동량, 곧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는 자본가가 노동 과정의 결과로 얻은 생산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생산물이 실이라고 가정하고, 이 실에 구현된 노동량을 계산해 보자.

 

면사 생산에는 원료인 면화 10킬로그램이 필요하다. 자본가는 이를 시장에서 가치대로 10원에 구매했으며, 이 가격에는 면화 생산에 투입된 사회적 평균 노동이 이미 담겨 있다. 또한, 면화 가공에 사용된 방추의 소모량을 2원이라 가정하자. (다른 모든 노동 수단을 대표하는 값이다). 12원의 가치를 생산하는 데 24시간(2노동일)이 소요된다면, 이 면사에는 이미 2노동일의 노동이 투입된다. (면화 소비량 10원과 방추 소모량 2).

 

면화 형태가 변하고 방추가 소모되어 사라졌다는 사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 가치 법칙에 따르면, 40kg 면사 가치와 40kg 면화 가치 및 방추 한 개의 가치는 동일하며,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도 같다. 이 경우, 동일한 노동 시간이 한편에서는 면사라는 사용 가치로, 다른 한편에서는 면화와 방추라는 사용 가치로 표현될 뿐이다. 따라서 가치가 면사, 방추, 또는 면화 중 어느 형태로 나타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방적 과정에서 방추와 면화가 결합되어 면사로 변형되는 과정 자체는 그들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치 단순한 교환으로부터 면사라는 등가물로 바뀌는 일과 같다.

 

면화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은, 면화를 원료로 하는 면사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의 일부로 면사에 포함된다. 방적 과정에서 마모되거나 소모되는 방추 생산에 투입된 노동 시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면사의 가치를 결정할 때, 곧 면사 생산에 필요한 총 노동 시간을 계산할 때, 다음의 두 과정을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 순차적 단계로 간주할 수 있다.

 

1. 면화와 소모되는 방추를 생산하는 노동

 

2. 면화와 방추로 면사를 생산하는 노동

 

면사 생산에 투입된 면화와 방추는 모두 과거의 노동 산물이다. 면사 생산에 필요한 여러 작업들이 최종 방적 작업보다 시간적으로 앞섰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 채의 집을 짓는 데 총 30의 노동이 필요하다면, 마지막 30일째 노동이 첫 째 날보다 29일 늦게 시작되었어도 집에 투입된 총 노동 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 재료와 노동 수단에 포함된 노동은 방적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이미 투입된 일로 간주할 수 있다. 요약하면, 면화와 방추와 같은 생산 수단의 가치(12)는 최종 생산물인 면사의 가치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면화와 방추는 사용 가치 생산에 실제로 기여해야 한다. , 이들이 면사로 전환되어야 한다. 어떤 사용 가치가 가치를 담는 그릇이 되든 상관없지만, 그 그릇은 반드시 사용 가치를 지녀야 한다.

 

둘째, 투입된 노동 시간은 주어진 사회적 생산 조건에서 필요한 노동 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면사 1kg을 생산하는 데 면사 1kg만 필요하다면, 그만큼만 소비되어야 한다. 방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본가가 망령이 들어 철제 대신 금 방추를 사용한다 해도, 면사의 가치에는 철 방추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만 계산된다.

 

면화와 방추라는 생산 수단이 면사 가치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12, 2노동일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방적공의 노동이 면화에 더하는 가치 부분을 살펴보자. 우리는 이제 노동을 노동 과정에서와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노동 과정에서는 단순히 면화를 면사로 바꾸는 합목적적 활동으로 노동을 보았다. 그 목적에 잘 부합할수록 더 나은 실이 만들어진다는 점도 알았다. 방적공의 노동은 주관적으로는 방적이라는 특정 목적에서, 객관적으로는 특수한 작업 방식, 생산 수단의 성질, 생산물의 사용 가치에서 다른 생산적 노동과 독특한 차이를 보인다. 면화와 방추는 방적에 필수적이지만 대포 생산에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방적공의 노동이 가치를 창조한다는 측면에서는, 대포를 깎는 노동자의 노동과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면사 생산에 투입된 면화 재배자와 방추 제조자의 노동과도 동일하다. 이러한 동일성 때문에 면화 재배, 방추 제조, 방적은 모두 면사 가치라는 하나의 총 가치를 형성하는, 양적으로만 구분되는 부분들이 될 수 있다. 여기서는 노동의 질이나 성질, 내용이 아닌 오직 노동의 양만이 문제이며, 이 양이 계산되어야 한다.

 

우리는 방적 노동을 단순한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가정한다. 이와 반대되는 가정을 하더라도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의 활동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형태에서 정지된 대상의 형태로, 곧 노동자의 작업에서 생산물로 전환된다. 한 시간 뒤에는 방적이라는 활동이 일정량의 실로 구현된다. , 한 시간의 노동이 면화에 추가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방적이라는 특수한 활동이 아니라, 방적공의 생명력의 소모로서의 노동 그 자체다. 방적 노동은 노동력 지출이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면화를 면사로 바꾸는 작업에서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만이 인정된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 조건에서 1시간의 노동으로 면화 a 킬로그램이 면사 b 킬로그램으로 바뀐다면, 12시간의 하루 노동은 12a 킬로그램의 면화가 12b 킬로그램의 면사로 전환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는다.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만이 가치를 형성하는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노동 자체와 마찬가지로, 원료와 생산물은 단순한 노동 과정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제 원료는 단지 일정량의 노동을 흡수하는 기능을 한다. , 방적 형태의 노동력 지출이 원료에 더해지면서 원료는 면사로 변한다. 반면, 생산물인 면사는 이제 면화가 흡수한 노동량을 측정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1시간에 1.67kg의 면화가 면사로 바뀐다면, 10kg의 면사는 6시간의 노동을 흡수한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경험적으로 확정된 일정량의 생산물은 특정량의 노동, 곧 응고된 노동 시간을 대표하는 물질적 형태일 따름이다. 이 노동이 방적 노동이고, 재료가 면화이며, 생산물이 면사라는 사실은, 노동 대상 자체가 이미 생산물이라는 점과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다. 노동자가 방적 공장이 아닌 탄광에서 노동한다면, 노동 대상인 석탄은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탄층에서 채굴된 일정량의 석탄의 역시 일정량의 노동을 흡수한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3원이며, 이는 6시간의 노동에 구현된 노동량, 곧 노동자의 하루 평균 생활 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제 방적공이 1시간의 노동에 면화 1.67kg을 면사 1.67kg으로 바꾼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6시간 동안에는 면화 10kg을 면사 10kg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방적 과정에서 면화는 6시간의 노동을 흡수한 셈이다. 6시간의 노동은 3원의 금량에 해당하므로, 방적 노동 그 자체로부터 3원의 가치가 면화에 추가된다.

 

생산물인 면사 10kg의 총가치를 검토해 보자. 이 면사에는 총 2.5노동일(30시간)의 노동이 투입되었다. 이 중 2일분의 노동(24시간)은 소비된 면화와 방추에 포함되어 있었고, 0.5일분의 노동(6시간)은 방적 과정에서 추가되었다. 2.5노동일은 15원의 가치를 지닌 금량에 해당한다. 따라서 10kg 면사의 가격은 15원이며, 1kg의 가격은 1.5원이다.

 

자본가는 놀랄 수밖에 없다. 생산물 가치가 투입된 자본의 가치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가치가 증식되지 않았고, 초과 가치도 생산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면사 10kg의 가격은 15원인데, 이 생산물의 구성 요소들(면화, 방추,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도 시장에서 정확히 15원이 지출되었다. 면사의 가치가 각 구성 요소의 가치보다 크다고 해도 소용없다. 면사의 가치는 이전에 면화, 방추, 노동력에 분산되어 있던 가치들의 단순한 합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존 가치를 합치는 일만으로는 결코 초과 가치가 생길 수 없다. 이제 모든 가치가 하나의 물건에 집중되었지만, 15원이라는 화폐 역시 세 가지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는 집중된 상태였다. 이 결과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1kg 면사의 가치가 1.5원이므로, 자본가가 10kg 면사를 구매하려면 시장에서 15원을 지불해야 한다. 자본가가 집을 이미 지어진 상태로 사든, 직접 짓게 하든, 집에 투입된 돈의 가치는 증식되지 않는다.

 

유행에 밝은 자본가는 나는 더 많은 화폐를 얻고자 돈을 투자했다고 말한다. 선한 의도로 지옥 가는 길이 포장되듯, 그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이윤을 얻으려 했을 수도 있다. 그는 두 번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위협하며, 앞으로는 직접 상품을 만들지 않고 시장에서 완제품을 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동료 자본가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는 어디서 상품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화폐를 먹을 수는 없다. 그는 내 절약 정신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15원을 낭비할 수도 있었지만, 생산적으로 소비해 면사를 만들지 않았는가라고 호소한다. 그렇다. 그래서 그는 이제 나쁜 양심 대신 훌륭한 면사를 갖게 된 것 아닌가.

 

화폐를 쌓아두는 사람의 행동을 반복하는 일은 그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금욕이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는 이미 우리가 확인한 바와 같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황제조차 힘을 잃는다. 그의 금욕이 어떤 장점을 지녔든, 생산물 가치가 투입된 상품 가치의 총액과 동일하므로, 특별한 보상은 없다. 그는 미덕의 보상이 미덕 그 자체라고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해야 할 뿐이다. 하지만 자본가는 더욱 집요하게 주장한다. “면사는 내게 필요 없다. 나는 팔고자 생산했다.” 그렇다면 그는 팔면 된다. 또는 더 간단하게, 앞으로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만 생산하면 된다. 이것은 자본가의 가족 주치의 매컬록이 과잉 생산이라는 유행병에 대한 특효약으로 처방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자본가는 여전히 완강하게 주장한다. “노동자가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가. 내가 재료를 제공했기에,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거기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리고 사회 대다수가 빈털터리인데, 내가 생산 수단(면화, 방추)과 심지어 생활 수단까지 공급하면서 사회에 엄청난 봉사를 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이 모든 봉사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자 또한 자본가를 위해 면화와 방추를 면사로 바꾸면서 봉사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핵심은 봉사가 아니다. 봉사란 상품이든, 노동이든, 어떤 사용 가치의 유용한 효과 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환 가치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3원의 가치를 지불했고, 노동자는 면화에 추가된 3원의 가치로 정확한 등가를, 곧 가치에 대해 가치를 반환했다.

 

이때까지 자본을 뽐내던 우리의 친구는 갑자기 고용된 노동자처럼 겸손해지며 말한다. “나 도 방적공을 감독하고 총괄하는 노동을 했다. 이런 노동 역시 가치를 형성하지 않았는가.”그의 감독과 관리인들은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그러자 자본가는 유쾌하게 웃으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은 우리를 속이려는 것이었다. 그 자신은 그런 주장에 관심이 없다. 그러한 변명과 속임수는 고용된 경제학 교수들에게 맡겨둔다. 그는 실무적인 사람이라, 사업 외의 일은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사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잘 알고 있다.

 

이 문제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노동력의 하루 가치는 3원이며, 이는 노동력 그 자체에 0.5노동일(6시간의 노동)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 노동력 생산에 필요한 매일의 생활 수단은 0.5노동일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노동력에 포함된 과거 노동(노동력의 매일 유지비)과 노동력이 제공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노동(노동력의 매일 지출)은 그 크기가 전혀 다른 두 가지 양이다. 전자는 노동력의 교환 가치를, 후자는 노동력의 사용 가치를 형성한다. 노동자의 생명을 24시간 유지하는 데, 0.5노동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가 하루 종일 노동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 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출하는 가치는 그 크기가 서로 다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할 때, 이미 이 가치 차이를 염두에 둔다. 면사나 장화를 만드는 노동력의 유용한 성질은 그에게 필수 조건일 뿐인데, 이는 가치를 형성하려면, 노동이 유용한 형태로 지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력의 독특한 사용 가치였다. 노동력은 가치의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진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가가 노동력으로부터 기대하는 독특한 봉사이며, 그는 노동자와의 거래에서 상품 교환의 영원한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실제로 노동력 판매자는 다른 모든 상품 판매자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교환 가치를 실현하는 대가로 그 사용 가치를 넘겨준다.

 

교환 가치를 얻으려면 사용 가치를 넘겨주어야 한다. 노동력의 사용 가치인 노동 그 자체는, 팔린 기름이 더 이상 기름 판매자의 것이 아니듯이, 노동력 판매자의 소유가 아니다. 화페 소유자는 이미 노동력의 하루 가치를 지불했으므로, 하루 동안의 노동력 사용, 곧 하루의 노동은 그의 것이다. 노동력이 하루 종일 활동할 수 있는데도, 그 유지에는 0.5노동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곧 하루에 노동이 창출하는 가치가 하루 노동력 가치의 두 배가 된다는 사실은 구매자에게는 큰 행운이다. 그러나 이는 판매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가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유쾌하게 웃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작업장에서 6시간이 아닌 12시간 동안 노동하는 데 필요한 생산 수단을 사용하게 된다. 면화 10kg6시간의 노동을 흡수해 면사 10kg이 되었다면, 면화 20kg12시간의 노동을 흡수해 면사 20kg이 된다.

 

이제 이 연장된 노동 과정의 생산물을 살펴보자. 면사 20kg에는 총 5노동일이 구현되어 있다.

 

· 4노동일(48시간): 소비된 면화(20)와 방추(4)에 투입된 노동

· 1노동일: 방적 과정에서 추가된 노동

 

5노동일(60시간)의 화폐 가치는 30원이다. 따라서 20kg 면사의 가격은 30원이고, 1kg당 가격은 이전과 같이 1.5원이다. 하지만 방적 과정에 투입된 상품들의 가치총액은 27원이다. 생산물의 가치(30)는 투입된 가치(27)보다 1/9만큼 증가하여, 3원의 초과 가치를 창출했다. 마침내 마법이 성공한 것이다.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되었다.

 

문제의 모든 조건은 충족되었고, 상품 교환의 법칙은 전혀 위반되지 않았다. 등가물은 등가물과 교환되었다. 자본가는 구매자로 면화, 방추, 노동력 등 모든 상품의 가치를 정당하게 지불했다. 그 후 다른 모든 상품 구매자처럼 그 상품들의 사용 가치를 소비했다. 노동력의 소비 과정은 동시에 상품 생산 과정이었고, 그 결과 30원의 가치를 지닌 20kg 면사가 생산되었다. 이제 자본가는 시장으로 돌아간다. 이전에는 상품을 구매했지만, 이번에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다.

 

그는 면사를 1kg1.5, 곧 그 가치대로 판매한다. 그런데도 그는 처음에 시장에 투입했던 것보다 3원 더 많이 회수한다.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이 모든 과정은 유통 영역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진행된다.

 

· 유통 내부: 상품 시장에서 노동력 구매로부터 이루어진다.

· 유통 외부: 유통은 단지 생산 영역에서 발생하는 가치 증식 과정을 준비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한 최선의 세계에서는 만사가 최선의 상태에 있다.”라는 명제를 충족시킨다.

 

자본가는 화폐를 생산물 또는 노동 과정의 요소로 사용되는 상품들로 바꾸고, 죽은 물체에 살아 있는 노동력을 결합한다. 이 과정으로부터, 그는 가치(대상화된 과거의 죽은 노동)를 자본(자신을 증식시키는 가치, ‘사랑의 정열로 가슴이 꽉 찬활기찬 괴물)으로 전환시킨다.

 

가치 형성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을 비교하면, 가치 증식 과정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연장된 가치 형성 과정에 불과하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이 과정이, 자본이 지불한 노동력의 가치가 새로운 등가물로 보상되는 시점까지만 진행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가치 형성 과정에 머문다. 그러나 이 지점을 넘어 계속된다면, 가치 증식 과정으로 전환된다.

 

노동 과정과 가치 형성 과정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 과정은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유용한 노동으로 이루어지며, 생산 활동은 생산물의 종류, 목적, 내용에 따라 질적으로 분석된다. 반면, 가치 형성 과정에서는 동일한 노동이 양적인 측면에서만 고려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노동자의 작업 시간, 곧 노동력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지속 시간뿐이다. 노동 과정에 투입되는 상품들은 더 이상 노동력이 가공하는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단순히 대상화된 노동의 양으로 여겨진다. 노동이 생산 수단에 포함된 것인지, 노동력으로부터 추가된 것인지와 관계없이, 노동은 오직 그 지속 시간으로만 측정된다. 이는 몇 시간, 또는 며칠 등으로 계산된다.

 

사용 가치 생산에 투입된 노동 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간만큼만 계산된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노동력은 반드시 정상적인 조건에서 기능해야 한다. 자동 뮬 방적 기계가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생산 수단이라면, 노동자에게 물레를 쥐여주면 안 된다. 또한, 정상적인 품질의 면화 대신 계속 끊어지는 부스러기 솜을 주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1kg 면사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추가 시간은 가치나 화폐를 창출하지 못한다. 노동의 대상적 요소들이 정상적인지는 노동자가 아닌 전적으로 자본가에게 달려 있는 문제다. 또 다른 조건은 노동력 자체가 평균적인 능률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력은 해당 부문을 지배하는 평균 수준의 기능, 숙련도, 민첩성을 보유해야 한다. 자본가는 노동 시장에서 이러한 정상적인 질의 노동력을 구매하려 노력한다. 노동력은 평균적인 긴장도와 강도로 투입되어야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감시한다. 그는 노동력을 정해진 기간 동안 구매했기에,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려 주의한다. 그는 도둑맞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원료와 노동 수단의 낭비가 없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자본가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법을 가지고 있다. 낭비는 대상화된 노동의 헛된 지출을 의미하며, 이는 생산물이나 그 가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품 분석으로부터 우리는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 사이의 차이를 찾아냈고, 이 차이는 이제 생산 과정의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난다. 노동 과정과 가치 형성 과정의 결합 측면에서 보면, 생산 과정은 상품 생산 과정이다. 반면, 노동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의 결합 측면에서 보면, 생산 과정은 자본주의적 형태다.

 

자본가가 사용하는 노동이 단순한 사회적 평균 노동이든, 더 복잡한 노동이든, 가치 증식 과정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더 복잡한 고급 노동은 숙련되지 않은 노동보다 양성 비용이 더 많이 들고, 생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따라서 이러한 노동력은 가치가 더 커지고, 동일한 시간 안에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나 보석 세공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보상하는 부분과 초과 가치를 창출하는 추가 노동 부분은 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방적 노동에서와 마찬가지로 보석 세공 노동에서도 초과 가치는 오직 노동량의 초과로부터, 곧 동일한 노동 과정(한쪽은 실을 만들고, 다른 쪽은 보석을 만드는)의 시간적 연장으로부터만 발생한다. 한편, 모든 가치 형성 과정에서 고급 노동은 항상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환원된다, 예를 들어, 하루의 고급 노동은 X일의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환산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가가 고용하는 노동자가 단순한 사회적 평균 노동을 수행한다고 가정하면서, 불필요한 조작을 생략하고, 분석을 단순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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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화폐는 구매나 지불 수단으로 가격을 실현할 뿐이므로, 그 자체로는 가치 변화가 이뤄질 수 없다. 또한 본래 형태로 존재하는 화폐는 불변의 가치량으로 고정된다. 따라서 가치 변화는 상품의 재판매와 같은 제2의 유통 행위로부터도 발생할 수 없다. 이러한 행위는 다만 상품을 다시 화폐 형태로 전환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치 변화는 제1의 유통 행위인 화폐(M) - 상품(C) 구매 과정에서 발생해야 한다. 하지만 이 변화는 상품 자체의 가치에서 비롯되는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환은 등가물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상품은 그 가치에 따라 지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 변화는 오직 상품의 현실적인 사용 가치, 곧 상품의 소비 과정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화폐 소유자가 가치를 창출하려면, 유통 영역에서 소비로부터 가치가 생성되는 특수한 상품을 찾아야만 한다. , 그 상품 소비가 노동을 대상화하여 가치를 형성하는 속성을 지녀야 한다. 화폐 소유자는 시장에서 이와 같은 특수한 상품, 곧 노동력을 찾아내게 된다.

 

노동력은 인간이 모든 종류의 사용 가치를 생산할 때마다 발휘하는, 인간의 신체에 내재된 육체적, 정신적 능력의 총체를 의미한다.

 

화폐 소유자가 시장에서 노동을 상품으로 찾아내려면, 특정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상품 교환은 본래 어떤 종속 관계도 내포하지 않으므로, 노동력이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그 소유자가 스스로 그것을 상품으로 내어놓고 판매해야만 한다.

 

노동력의 소유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려면, 그는 그것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능력과 인격에 대한 자유로운 소유자여야 한다. 시장에서 노동력 소유자와 화폐 소유자는 동등한 상품 소유자로 관계를 맺는다. 둘의 유일한 차이점은 한쪽이 판매자이고, 다른 쪽이 구매자라는 점이며, 양자 모두 법적으로 평등한 존재다이러한 관계가 유지되려면, 노동력 소유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항상 일정 시간 동안만 판매해야 한다. 그가 노동력을 한꺼번에 전부 판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파는 일과 같아 자유인에서 노예로, 상품 소유자에서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신의 소유물이자 상품으로 다루어야 하며, 이는 노동력을 일시적이고 한정된 기간 동안만 구매자의 자유재량에 맡겨 사용하게 하면서 노동력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을 때만 이루어진다.

 

화폐 소유자가 시장에서 노동력을 상품으로 발견하려면, 노동력 소유자는 자신이 만든 상품을 판매할 수 없어 자신의 노동력 그 자체를 상품으로 내놓아야 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다른 상품을 판매하려면, 생산 수단(원료, 도구 등)과 생활 수단을 소유해야 한다. 가죽이 없으면 장화를 만들 수 없듯이, 생산자는 미래의 생산물로 살 수 없다. 생산을 시작하기 전과 생산 과정 중에도 소비는 계속된다. 생산물이 상품으로 만들어지면, 생산자는 그것을 판매해야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생산에 필요한 시간에 더해 판매에 필요한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려면, 화폐 소유자는 상품 시장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야만 한다. 여기서 자유롭다는 말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자유인이라는 점이다. 둘째, 그는 자신의 노동력 외에 다른 상품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자신의 노동력을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운’, 곧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자유로운 노동자가 시장에서 화폐 소유자와 마주하게 되는 근본적 이유는, 화폐 소유자나 우리의 당면 관심사가 아니다. 화폐 소유자가 그 사실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이듯, 우리는 그 사실을 이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연적으로 화폐 소유자와 노동력 소유자가 따로 태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계는 자연적이거나 모든 역사적 시대에 보편적인 사회적 관계가 아니다. 이는 수많은 경제적 변혁과 과거 사회적 생산 구조의 몰락을 거쳐 형성된 역사적 발전의 결과이다. (1권 제8, ‘이른바 시초 축적참조.)

 

앞서 고찰한 경제적 범주들 역시 그 역사적 흔적을 지닌다. 생산물이 상품이 되려면, 특정 역사적 조건이 필요하며, 생산자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수단으로 생산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생산물, 또는 그 대다수가 상품 형태를 취하는 경우는 오직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라는 매우 독특한 생산 방식에서만 나타난다이러한 탐구는 상품 분석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비록 생산물의 대부분이 직접 소비되고 상품으로 전환되지 않더라도, 곧 사회적 생산 과정이 교환 가치로부터 아직 지배되지 않더라도, 상품 생산과 상품 유통은 발생할 수 있다. 생산물이 상품 형태로 나타나려면, 사회적 분업이 어느 정도 발전하여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의 분리가 이미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발전은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한 경제적 사회 구성체에서 나타난다.

 

화폐는 상품 교환의 특정 발전 단계를 전제로 한다. 다양한 화폐 형태들(단순한 상품 등가물, 유통 수단, 지불 수단, 퇴장 화폐, 세계 화폐 등)은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기능과 중요도에 따라 상이한 수준을 나타낸다. 하지만 상품 유통이 조금만 발전해도, 모든 화폐 형태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확인된다그러나 자본은 상품 유통이나 화폐 유통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자본의 역사적 존재 조건은 생산 수단과 생활 수단을 소유한 자가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형성된다. 이 단 하나의 역사적 전제 조건이 세계사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자본은 태생부터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존재이다.

 

이제 특수한 상품인 노동력을 더 자세히 고찰해야 한다.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노동력 역시 가치를 가진다. 이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노동력 가치는 이 특수한 상품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노동력은 그 가치만큼 사회적 평균 노동량을 대상화하여 표현하는 존재다. 노동력은 오직 살아 있는 개인 능력으로만 존재한다.

 

노동력 생산은 곧 개인 생존을 전제로 하며, 이는 개인 자신의 재생산 및 생활 유지와 동일하다. 개인이 생존하려면, 일정한 양의 생활 수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력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은 결국 이 생활 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이 된다. , 노동력 가치는 노동력 소유자의 생존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치로 결정된다노동력은 그 발휘인 노동으로부터 비로소 실현된다. 노동 과정에서 사용되는 인간의 근육, 신경, 뇌 등의 힘은 반드시 보충되어야 하며, 이는 소득 증가로부터 이루어진다. 노동력 소유자는 오늘의 노동을 마친 후에도, 내일 동일한 힘과 건강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활 수단의 총량은 노동하는 개인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기에 충분해야 한다의식주와 같은 인간의 자연적 욕구는 한 나라의 기후와 자연적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필수적인 욕구 범위와 충족 방식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산물이므로, 주로 그 나라의 문화 수준, 특히 자유로운 노동자 계급이 어떤 조건과 관습, 기대를 가지고 형성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를 규정하는 데는 다른 상품들과 달리 역사적, 도덕적(정신적) 요소가 포함된다. 하지만 주어진 시대와 나라에서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생활 수단의 평균적인 범위는 이미 정해져 있다.

 

노동력 소유자는 필멸의 존재다. 따라서 화폐가 지속적으로 자본으로 전환되려면, 노동력 판매자는 생명체가 생식으로 자신을 영속화하듯이’, 스스로를 영구화해야 한다. 소모와 사망으로 인해 시장에서 사라지는 노동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노동력으로 보충되어야 한다그러므로 노동력 생산에 필요한 생활 수단의 총량에는 노동자의 자녀들, 곧 이러한 보충 인원의 생활 수단이 포함되다. 이로부터 노동력 소유자라는 독특한 종족은 상품 시장에 영구적으로 존재하게 된다또한, 인간 유기체의 일반적인 본성을 특정 노동 부문에 적합하도록 변화시키고 숙련된 특수 노동력을 양성하고자 일정한 훈련이나 교육이 필요하며, 이는 일정한 비용(상품 또는 그 등가물)을 수반한다. 이러한 비용은 노동력 생산에 지출되는 가치에 포함된다. (보통 노동력의 경우 이 비용은 매우 적다.)

 

노동력 가치는 특정 양의 생활 수단 가치로 분해될 수 있으며, 그 가치는 생활 수단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에 따라 변동한다. 식료품이나 연료 같은 생활 수단은 매일 소비되고, 매일 보충되어야 하는 반면, 의복이나 가구 같은 생활 수단은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소모되므로, 보충 주기가 더 길 수 있다.

 

특정 상품들은 매주, 매분기 등 주기적으로 구매되거나 지불되어야 한다. 이 지출 총합은 연간 어떻게 분배되든 매일의 평균 소득으로 충당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력 생산에 매일 필요한 상품량을 A, 매주 필요한 양을 B, 매분기에 필요한 양을 C라고 가정하자.

 

평균 소득

 

하루 평균 소득 = [365() · 매일 필요한 양 (A) + 52() · 매주 필요한 양(B) + 4(분기) · 매분기에 필요한 양(C) + 기타] / 365

 

와 같이 산정된다.

 

이러한 하루 평균 상품 묶음이 6시간 사회적 노동을 포함한다면, 매일의 노동력에는 반일분의 사회적 평균 노동이 대상화되어 있다. 이는 노동일이 12시간일 때, 노동력의 매일 생산에 반나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노동량은 하루 가치를 형성하는데, 반일분의 사회적 평균 노동이 3원으로 표시된다면, 3원은 노동력의 하루 가치에 해당하는 가격이 된다.

 

노동력 소유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매일 3원에 판매하는 경우, 노동력의 판매 가격은 그 가치와 일치한다. 우리 전제에 따르면, 3원을 자본으로 전환하려는 화폐 소유자는 이 가치를 실제로 지불한다.

 

노동력 가치의 최소 한계는, 노동력 소유자가 생명을 유지하고자 매일 공급받아야 하는, 곧 육체적으로 필수적인 생활 수단의 가치로 결정된다. 노동력의 가격이 이 최소 한계 아래로 떨어진다면, 그 가격은 노동력의 가치보다 낮아진다. 이 경우, 노동력은 위축된 상태로만 유지되고 발휘된다. 어떤 상품이든 그 가치는 정상적인 품질을 유지하며 공급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가치가 사물의 본성에서 결정되는 이 방식에 대해, 로시 등과 함께 잔인하다며 한탄하는 일은 값싼 감상이다.

 

생산 과정에 있는 노동자의 생활 수단을 배제하고 노동력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망상이다. 노동 또는 노동력에 대해 말한다면, 노동자와 그의 생활 수단, 곧 노동자와 그의 임금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노동력에 대한 논의는 노동 자체에 대한 논의와 다르다. 이는 소화 능력과 소화 과정을 구분하는 일과 비슷하다. 소화 과정이 이루어지려면 튼튼한 위장 외에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듯, 노동력이 발휘되려면,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노동력의 가치는 그 유지에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치로 표현되므로, 노동력을 논할 때, 생활 수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노동력이 판매되지 않으면, 노동자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오히려 노동자는 노동력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수적인 생활 수단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현실을 가혹한 자연적 필연성으로 느끼게 된다. 이 상황에서 그는 시스몽디가 말했듯, ‘노동력은 팔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노동력은 특수한 상품이기에, 구매자와 판매자가 계약을 맺더라도, 그 사용 가치가 즉시 구매자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노동력의 가치는 유통에 투입되기 이전에 이미 결정된다. 이는 노동력 생산을 위해 일정한 양의 사회적 노동(생활 수단)이 이미 지출되었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사용 가치는 이후에 노동력 발휘에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력 양도(판매)와 구매자의 실제 사용(이용)은 시간적으로 분리된다. 이처럼 형식적인 양도와 현실적인 인도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있을 때, 구매자의 화폐는 대개 지불 수단으로 기능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모든 국가에서, 노동력은 계약된 기간만큼 기능한 뒤에야 (예를 들어, 매주 말에) 대가를 지불받는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력의 사용 가치를 자본가에게 미리 빌려주는 셈이다. ,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구매자의 소비에 맡기고 나서야 그 대가를 받는다. 이는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신용을 제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본가가 파산했을 때,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나, 이보다 더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사건들에서 이러한 신용 관계가 단순한 허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화폐가 구매 수단 또는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더라도, 상품 교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노동력 가격은 가옥 임대료처럼 계약으로 확정되며, 비록 그 대가가 나중에 지불되더라도 노동력은 이미 판매된 상태다. 하지만 이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려면, 노동력 소유자가 판매와 동시에 계약된 가격을 즉시 받는다고 전제하는 일이 더 이롭다


이제 화폐 소유자가 독특한 상품인 노동력에 대해 지불하는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게 되었다. 화폐 소유자가 교환으로부터 얻는 사용 가치는 노동력의 실제 사용, 곧 노동력의 소비 과정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화폐 소유자는 이 과정에 필요한 모든 물건(: 원료)을 상품 시장에서 구매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한다.

 

노동력 소비 과정은 동시에 상품 생산과 초과 가치 생산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다른 상품의 소비와 마찬가지로, 시장이나 유통 영역 밖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화폐 소유자와 노동력 소유자를 따라, 모든 일이 표면에 드러나는 유통 영역을 벗어나,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표지가 붙은 은밀한 생산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곳에서 자본이 어떻게 생산되며, 나아가 자본 그 자체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게 된다. 이윤 창조의 비밀이 마침내 밝혀지는 곳이 바로 여기다.

 

노동력 매매가 이루어지는 유통 또는 상품 교환 영역은 천부 인권의 낙원이다. 이곳을 지배하는 원칙은 자유, 평등, 소유, 그리고 벤담(공리주의)이다.

 

자유! 이는 노동력의 구매자와 판매자가 각자의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적으로 대등한 자유로운 인격으로 계약을 맺으며, 이 계약은 그들의 공동 의지가 법적 형태로 표현된 최종 결과이다.

 

평등! 이는 그들이 오직 상품 소유자로 서로 관계를 맺고, 등가물을 등가물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소유! 이는 각자가 자신의 것만을 자유롭게 처분하기 때문이다.

 

벤담! 이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묶어주는 유일한 힘은 각자의 이기심, 이득, 사적 이익이다.

 

각자는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고, 타인에게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바로 이 이기적인 행동으로부터, 사물의 예정 조화와 신의 섭리에 따라, 그들은 상호 이익, 공익, 나아가 전체의 이익을 실현하게 된다.

 

속류 자유무역주의자들은 단순 상품 유통 및 상품 교환 분야에서 자본과 임금 노동에 기반한 사회에 대한 견해를 도출한다. 그러나 이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변화하는 일을 볼 수 있다.

 

이전의 화폐 소유자는 이제 자본가가 되어 앞서 걷고, 노동력 소유자는 그의 노동자가 되어 뒤따른다. 전자는 사업에 시작할 열의에 차 거만하게 미소 짓고 바삐 걷는 반면, 후자는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 팔아버려 이제 무두질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머뭇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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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본 일반 공식의 모순

 

화폐가 자본이 될 때, 유통 형태는 상품, 가치, 화폐, 그리고 유통 그 자체의 모든 법칙과 모순된다. 이 형태가 단순 상품 유통과 다른 점은 판매와 구매 순서가 역전된 데 있다. 이러한 형태상의 차이가 어떻게 유통 본질을 요술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가.

 

매매 순서의 역전은 당사자 모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자본가는 A에게서 상품을 구매한 뒤 B에게 판매하는 과정(M-C-M)에서, AB는 단순한 판매자나 구매자로 남는다. 자본가는 그들에게 그저 한 명의 구매자나 판매자일 뿐이다. 오직 자본을 축적하려는 자에게만 가치 증식이라는 특수한 목적이 부여되며, 이는 단순 상품 유통(C-M-C)과는 구별되는 본질적인 차이를 낳는다. , 유통 순서의 역전은 거래에 참가하는 모든 당사자가 아닌, 오직 자본을 축적하려는 자에게만 국한되는 현상이다.

 

A에게는 구매자로, B에게는 판매자로 마주하는 자본가는 그들에게 그저 단순한 화폐 소유자나 상품 소유자로 인식될 뿐이다. 자본가는 그들에게 특수한 존재로 드러나지 않으며, 화폐나 상품 자체의 영향력 이상의 어떤 권한도 행사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본가는 거래 외부에 존재하는 특수한 관계로, 그들의 정체는 거래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A로부터 구매와 B에게 판매는 자본가에게만 하나의 연속된 과정이다. 그러나 이 두 거래 사이에 연관성은 오직 자본가에게만 존재할 뿐, A는 자본가와 B 거래에 아무 무관심하고, B 역시 자본가와 A 거래에 관심이 없다.

 

자본가가 매매 순서의 역전으로부터 얻는 이점을 설명하려 한다면, 상대방은 오히려 순서가 잘못 됐다고 지적한다. 그들에게는 거래가 구매로 시작해 판매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판매로 시작해 구매로 끝나는 순서로 보이기 때문이다. 곧 자본가의 구매 행위는 A에게는 판매였고, 자본가의 판매 행위는 B에게는 구매였다. 이처럼 자본 유통은 거래 당사자마다 각기 다른 시점에서 인식된다. 자본가가 개입된 거래는 AB의 관점에서 불필요하고 기만적인 우회 과정에 불과하다. 그들은 AB에게 직접 상품을 팔고, BA에게서 직접 사는, 단순한 단일 거래로 축소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화폐(M) 상품(C) 화폐(M)라는 순환이 상품(C) 화폐(M) 상품(C)이라는 단순 상품 유통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단순 상품 유통이 본질적으로 가치 증식, 곧 초과 가치 창출을 허용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단순한 상품 교환에서 두 상품 소유자는 서로 상품을 교환하고, 화폐는 그저 계산 화폐로 가치를 표현할 뿐 실질적인 상품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환에서 당사자들은 자신에게는 쓸모없는 상품을 넘기고, 필요한 상품을 얻으면서 사용 가치 측면에서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교환이 이면에는 다른 형태의 이익이 존재한다.

 

포도주를 판매자 A와 곡물 구매자 B가 서로 자신의 특화된 생산물(포도주와 곡물)을 교환하면,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발생한다. 동일한 노동 시간 내에 AB는 더 많은 포도주를, BA보다 더 많은 곡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교환으로부터 각자가 스스로 모두 생산해야 할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상대방 상품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교환은 사용 가치 측면에서 명백한 이득을 제공하며, ‘교환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하지만 교환 가치 측면에서는 이러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50의 가치를 지닌 포도주를 가진 사람과 50의 가치를 지닌 곡물을 가진 사람이 교환하는 경우, 교환 가치 증대는 발생하지 않는다. 각자는 이미 동일한 가치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환은 사용 가치를 충족시킬 뿐, 가치 총량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화폐가 유통 수단으로 기능하여 구매와 판매가 분리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상품 가치는 유통 이전에 이미 가격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유통 전제이지 유통의 결과가 아니다. , 유통 과정 자체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단순 상품 유통에서, 내재적 법칙 외에 다른 요인들을 배제하고 추상적으로 고찰하면, 교환은 상품의 형태 변화에 불과하다. 동일한 가치가 한 상품 소유자의 손에서 상품 형태로 존재하다가, 화폐로 전환되고, 다시 또 다른 상품으로 재전환된다. 이는 본질적인 가치 변화 없이 형태만 달라지는 과정이다. 이러한 형태 변화는 가치의 양적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다. 상품 가치는 유통 과정에서 다만 화폐 형태로만 변할 뿐이다. 이는 은행권, 소브린화, 또는 실링화로 교환하는 일과 동일하며, 가치 총량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순수한 형태에서 상품 유통은 등가물 교환이다. 이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이상적인 상황을 전제한다. 사용 가치 측면에서는 교환 당사자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교환 가치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평등이 있는 곳에는 이익이 없다.’는 말처럼, 상품이 그 가치를 벗어난 가격으로 거래될 수는 있으나, 이는 교환 법칙 위반에 해당한다. 따라서 순수한 상품 교환은 가치 증식 수단이 될 수 없다.

 

상품 유통에서 초과 가치가 발생한다는 주장은 종종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혼동하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콩디약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상품 교환에서 동등한 가치가 교환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 반대다. 두 계약 당사자모두 더 큰 가치를 얻고자 더 작은 가치를 내준다. 동등한 가치만 교환된다면, 그 누구도 이익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교환은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주며, 이는 필수적인 속성이다. 그 이유는 물건의 가치가 오직 인간의 욕구와 그 물건 간 관계, 곧 사용 가치에 있기 때문이다.

 

필요는 개인마다 다르다.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판매하지 않으며, 필요하지 않은 잉여 물건을 다른 물건과 교환하여 필요한 것을 얻으려 한다. 이는 덜 필요한 것을 내주고 더 필요한 것을 얻는 과정이다. 두 물건의 교환 가치가 동일한 양의 금으로 표현될 때, 이는 등가 교환으로 판단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는 모두 필요한 것을 얻고자 잉여 물건을 교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콩디약의 논리는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할 뿐 아니라, 상품 생산이 발달한 사회에서 생산자가 자신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킨 후 남은 잉여분만을 유통시킨다는 유치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종종 현대 경제학자들로부터 상업을 잉여 가치의 원천으로 설명할 때 반복된다. 아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상업은 생산물에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생산물이 생산자의 손을 떠나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면 그 가치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상업은 엄밀한 의미에서 생산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상품에 대해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이중으로 지불하지 않는다. 상품의 사용 가치가 구매자에게 더 유용하다면, 상품의 화폐 형태는 판매자에게 더 유용하다. 그렇지 않다면, 판매자는 상품을 팔지 않는다. 따라서 구매자가 판매자의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켜주는 행위는 일종의 생산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동일한 교환 가치를 가진 상품 또는 등가물 간 교환에서는 누구도 유통에 투입한 가치 이상을 얻을 수 없으며, 초과 가치는 발생하지 않는다. 순수한 상품 유통은 등가물 간 교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적인 순수 형태와는 다르다. 따라서 비등가 교환을 가정해 볼 필요가 있다.

 

상품 시장에서 마주하는 일은 오직 상품 소유자들뿐이며, 그들의 영향력은 자신이 가진 상품의 힘에 국한된다. 상품의 물질적 다양성이 교환의 주된 동기가 되며, 이는 상품 소유자들을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만든다. 그들 각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물건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물건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상품들의 사용 가치가 다양한 것 외에, 상품들 간 유일한 구분은 실물 형태(상품)와 전환된 형태(화폐)뿐이다. 따라서 상품 소유자들은 단순히 상품 소유자(판매자)와 화폐 소유자(구매자)로 구별된다.

 

판매자가 어떤 특권으로 상품을 그 가치보다 10% 비싸게, 100의 가치를 110에 판매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판매자는 10의 초과 가치를 얻는다. 하지만 이 판매자는 곧 구매자가 된다. 이때 그에게 나타난 제3의 상품 소유자도 역시 자신의 상품을 10% 비싸게 팔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상품을 10% 비싸게 판매해 얻은 10의 이익은 그 사람이 다시 구매자가 되었을 때, 10의 손실로 상쇄된다. 모든 상품 소유자가 자신의 상품을 동일하게 10% 비싸게 판매한다면, 이는 결국 모든 상품이 제 가치대로 팔리는 일과 같다. 이러한 일반적인 가격 인상은 상품 가치를 금 대신 은으로 평가하는 경우처럼, 화폐 명칭만 상승할 뿐 상품 간 가치 관계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이번에는 반대로, 구매자가 상품을 그 가치보다 낮게 구매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고 가정하자. 그가 구매자로 10% 이익을 얻기 전, 이미 판매자로 10%의 손실을 입는다. 이 경우, 상황은 이전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결론적으로, 초과 가치의 발생, 곧 화폐의 자본으로 전환은 상품을 가치 이상으로 판매하거나 가치 이하로 구매하는 행위로 설명될 수 없다.

토렌즈와 같이 무관한 관계를 끌어들여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유효 수요란, 소비자가 상품의 생산비보다 더 많은 자본을 지불할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상품을 교환하는 일이다.’

 

유통 과정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단순히 판매자와 구매자로 대립한다. 생산자가 얻는 초과 가치를 소비자가 상품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주장은, 판매자가 특권적으로 상품을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명제를 단지 다르게 표현한 데 불과하다.

 

판매자가 상품 생산자를 대표하듯이, 구매자 역시 자신이 판매한 상품 생산자를 대표하고 있듯이, 이들은 결국 생산자와 생산자가 대립하는 관계이며, 오직 구매와 판매라는 행위로만 구별된다. 생산자가 자신의 상품을 가치보다 높게 팔고, 소비자가 그 상품에 대해 가치보다 높은 값을 지불한다고 말한다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초과 가치가 명목상의 가격 인상이나 판매자의 특권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생산 없이 소비만 하는 계급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계급의 존재는 단순 상품 유통의 맥락에서는 설명될 수 없다. 생산 없이 소비만 하는 계급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이들이 사용하는 화폐는 생산자에게 무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얻은 것이다. 이러한 계급에게 상품을 가치보다 비싸게 판매하는 일은 결국 무상으로 넘겨준 화폐 일부를 속임수로 되찾는 행위에 불과하다.

 

고대 로마에 매년 공물을 바치던 소아시아 도시들의 사례를 보자. 로마는 이 공납으로 받은 화폐를 이용해 다시 이 도시들의 상품을 매우 비싸게 구매했다. 겉보기에는 소아시아 상인들이 높은 가격으로 로마를 속여 공납 일부를 되찾는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 속은 쪽은 소아시아였다. 그들이 받은 상품 대가는 결국 자신들이 바친 공물, 곧 자신들의 화폐였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부를 축적하거나 초과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이 아니다.

 

판매자는 곧 구매자이고, 구매자는 곧 판매자라는 상품 교환의 기본적인 원칙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난관에 부딪힌 이유는 아마도 등장인물들을 개인이 아닌 일반화된 범주(판매자, 구매자)로만 분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매우 교활한 상품 소유자 ABC를 속일 수 있다고 가정하자. A40원의 가치를 지닌 포도주를 B에게 팔고, 그 대가로 50원의 가치를 지닌 곡물을 얻었다. A는 자신의 40원을 50원으로. 곧 적은 화폐를 많은 화폐로 전한시키면서 자신의 상품을 자본으로 바꾸었다.

 

교환 이전, A40원의 포도주, B50원의 곡물을 소유하여 총가치는 90원이었다. 교환 후에도 총가치는 동일하게 90원으로 유지된다. 유통 과정에서 가치는 증가하지 않았지만, AB 사이에 가치 분배만 변했을 뿐이다. 한 쪽에서 초과 가치는, 다른 쪽에서 가치 손실이 된다. 이는 마치 AB로부터 10원을 직접 훔친 일과 같은 결과다.

 

유통 과정에서 가치 총액은 분배상의 변화만으로는 증가할 수 없다. 이는 1파싱화를 1기니에 팔아도, 한 나라의 금속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 일과 같다.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자본가 계급 전체가 서로를 속여서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다.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하더라도 결과는 동일하다. 등가물이든 비등가물이든, 상품 교환 과정에서는 초과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유통, 곧 상품 교환은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논의로부터 왜 자본의 기본 형태를 분석하면서 잘 알려진 상인 자본과 고리대 자본을 다루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상품 유통 자체에서는 초과 가치가 창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자본 형태는 유통 과정에서 이익을 얻지만, 이는 근본적인 가치 증식과는 다른 문제다.

 

화폐(M) - 상품(C) - 화폐´(M´)라는 유통 형태는 상인 자본에서 가장 순수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 자본 순환은 오직 유통 영역 내에서만 이루어진다. 화폐의 자본 전환과 초과 가치 형성을 유통 자체로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등가물 교환이 이루어지는 한 상인 자본은 존재할 수 없도록 보인다. 따라서 상인 자본은 상인이 생산자들 사이에 기생적으로 개입하여 그들을 속여 이득을 취하면서 탄생하듯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랭클린은 전쟁은 약탈이고, 상업은 사기라고 말했다.

 

상인 자본의 가치 증식을 단순히 상품 생산자에 대한 기만과 착취 이상으로 설명하려면, 단순 상품 유통이라는 전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일련의 복잡한 중간 고리들이 필요하다. (3권 제4편을 참조) 상인 자본에 대한 논의는 고리대 자본에 더욱 부합한다. 상인 자본의 경우, 화폐(M) - 상품(C) - 화폐´(M´) 형태에서 구매와 판매라는 유통 운동이 양 끝을 연결하지만, 고리대 자본은 이 매개 고리가 제거된 화폐(M) - 화폐´(M´)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더 많은 화폐를 얻기 위한 화폐 교환으로, 화폐 본성에 모순되며, 상품 교환의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형태다. 이러한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는정치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화식술(재산 축적 기술)을 두 가지로 나눈다. 가정학에 속하는 화식술은 필수적이고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유통에 기반을 둔 상업적 화식술은 자연 법칙에 어긋나고 상호 간 속임수에 근거하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고리대는 극심한 비난을 받는다. 화폐는 본래 상품 교환을 위해 발명되었지만, 고리대에서는 화폐 자체가 이익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이자(τόκος)라는 용어는 자식을 뜻하는데, 이는 화폐가 화폐로부터 또 다른 화폐를 낳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고리대를 모든 생계 수단 가운데 가장 반()자연적인 형태이다.’

 

우리는 연구로부터 상인 자본과 이자 낳는 자본이 파생적 형태임을 알게 된다. 동시에, 왜 이 두 자본 형태가 역사적으로 자본의 근대적 기본 형태보다 먼저 등장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논의된 바와 같이, 초과 가치는 유통 과정 자체에서 발생할 수 없다. 따라서 초과 가치가 형성되려면 유통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작용해야 한다. 유통 밖에서 상품 소유자는 오직 자신의 상품과만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는 상품에 포함된 자신의 노동량을 나타내며, 이 노동량은 상품의 가치량을 구성한다. 가치량은 계산 화폐로 측정되며, 예를 들어, 10원이라는 가격으로 표현된다. 개인의 노동은 상품 가치와 그 가치를 초과하는 잉여분으로 동시에 표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10의 가격이면서 동시에 11일 수는 없으며, 그 자체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질 수도 없다. 상품 소유자는 노동으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지만, 가치 증식하는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다.

 

상품 생산자는 새로운 노동을 투입하여 기존 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첨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죽을 장화로 만드는 과정은 가죽의 가치를 증가시킨다. 동일한 재료에 더 많은 노동이 투입되면서 그 가치가 커진다. 그러나 이 경우, 장화의 가치는 가죽보다 높아지지만, 가죽 자체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가죽이 스스로 가치를 증식시키거나 장화 생산 과정에 초과 가치를 더하는 일은 아니다. 따라서 상품 생산자는 다른 상품 소유자와 접촉하지 않고서는, 곧 유통 영역 외부에서는 가치를 증식시키거나 화폐나 상품을 자본으로 전환시킬 수 없다.

 

자본은 유통에서도, 유통 외부에서도 생길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은 유통에서 생겨야 하는 동시에 유통 외부에서 생겨야 한다. 이 모순적 결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화폐의 자본 전환은 상품 교환 법칙을 준수해야 하며, 등가물 교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 화폐 소유자는 상품을 가치대로 사고팔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유통에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회수해야 한다. 그가 완전한 자본가로 성장(나비로 변태)하는 과정은 유통 영역 안에서 발생해야 하지만, 동시에 유통 영역 밖에서 발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해결해야 할 문제 조건이다.

 

여기가 로도스섬이다. 여기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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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

 

4. 자본 일반 공식

 

상품 유통은 자본 출발점이다. 상품 생산과 유통, 그리고 그 발전된 형태인 상업은 자본이 성립하기 위한 역사적 전제다. 자본의 근대사는 16세기 세계 무역과 세계 시장이 형성된 시점부터 시작된다. 상품 유통에서 다양한 사용 가치 교환과 같은 소재적 내용을 배제하고, 오직 그 경제적 형태만을 고찰하면, 최종 산물로 화폐가 나타난다. 이 화폐가 곧 자본의 최초 현상 형태다.

 

역사적으로 자본은 상인 자본이나 고리대 자본과 같이 화폐 재산 형태로 토지 소유에 대립했다. 그러나 화폐가 자본의 최초 현상 형태라는 점은 자본의 기원을 회고하지 않아도 매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새로운 자본은 항상 화폐의 형태로, 시장(상품, 노동, 화폐 시장)에 나타난다. 화폐로의 화폐와 자본으로의 화폐는 그 유통 형태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상품 유통에서 가장 단순한 형태는 상품(C) - 화폐(M) - 상품(C), 곧 상품을 팔아 화폐를 얻고, 다시 그 화폐로 상품을 사는, ‘구매를 위한 판매.

 

이와는 다른 형태인 화폐(M) - 상품(C) - 화폐(M), 곧 화폐로 상품을 사고, 그 상품을 팔아 다시 화폐로 얻는 판매를 위한 구매가 있다. 이 후자 형태로 유통되는 화폐가 바로 자본으로 전환하는, 잠재적 자본이다.

 

이제 화폐(M) - 상품(C) - 화폐(M) 유통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유통은 두 가지 상반된 국면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국면, 화폐(M) - 상품(C)(구매)에서는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된다. 두 번째 국면, 상품(C) - 화폐(M)(판매)에서는 상품이 다시 화폐로 전환된다. 두 국면이 결합되면 화폐를 상품으로 교환한 뒤, 그 상품을 다시 화폐로 교환한다는 단일한 운동, 곧 상품을 판매하고자 구매하는 단일한 운동이 된다. 구매와 판매에서 형식적 차이를 무시하면, 이는 화폐로 상품을 구매하고 다시 상품으로 화폐를 구매하는 단일한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최종 결과는 화폐와 화폐의 교환, 곧 화폐(M) - 화폐(M) 이다. 예를 들어, 100원으로 2,000그램 면화를 구매한 뒤, 이를 110원에 팔면, 결국 100원을 110원으로 교환한 셈이다.

 

화폐(M) - 상품(C) - 화폐(M)에서 우회적 경로를 거쳐 동일한 화폐 가치를 교환하는 일, 예를 들어, 100원을 100원으로 교환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이럴 바에야 100원을 유통 위험에 노출하지 않고, 보관하는 일이 훨씬 안전하고 간단하다.

 

하지만 상인이 100원에 구매한 면화를 110원에 팔거나, 때로는 50원에 급매하더라도, 그 의 화폐는 독특한 운동 경로를 겪는다. 이는 운동 경로는 곡물을 팔아 옷을 사는 농민의 경우와 같은 단순한 상품 유통, 곧 상품(C) - 화폐(M) - 상품(C)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운동이다. 따라서 화폐(M) - 상품(C) - 화폐(M)와 상품(C) - 화폐(M) - 상품(C)의 형식적 차이를 먼저 살펴봐야 하며, 그 배후에 숨은 본질적 차이도 밝혀져야 한다.

 

두 순환은 모두 상품(C) - 화폐(M)(판매)과 화폐(M) - 상품(C)(구매)라는 두 개의 대립적 국면으로 나뉜다. 이 국면들에서 상품과 화폐라는 동일한 물적 요소가 대립하며, 구매자와 판매자라는 동일한 경제적 주체가 나타난다. 이 두 순환은 모두 두 개의 대립적 국면에서 통일된 형태다. 그리고 이 통일은 세 계약 당사자, 곧 판매만 하는 사람, 구매만 하는 사람, 그리고 구매와 판매를 모두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이루어진다.

 

상품(C) - 화폐(M) - 상품(C)과 화폐(M) - 상품(C) - 화폐(M)의 가장 큰 차이점은 두 유통 국면에서 순서가 서로 반대라는 점이다. 단순 상품 유통은 판매로 시작해 구매로 끝나지만, 자본으로의 화폐 유통은 구매로 시작해 판매로 끝난다. 전자는 상품이 운동의 시작과 끝을 이루고, 후자는 화폐가 그 역할을 한다. 또한 전자는 화폐가, 후자는 상품이 전체 과정을 매개한다.

 

상품(C) - 화폐(M) - 상품(C) 유통에서 화폐는 결국 사용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전환되어 소비된다. 따라서 화폐는 영구히 소멸한다. 이와 달리, 화폐(M) - 상품(C) - 화폐(M) 유통에서 화폐를 지출하는 일은 다시 화폐를 얻기 위함이다. 상품을 구매하여 화폐를 투입하지만, 이는 상품을 팔아 다시 회수하려는 목적이다. 화폐를 내어놓는 행위 자체가 다시 얻으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화폐는 소비되는 일이 아니라, 다만 투하된다.

 

상품(C) 화폐(M) 상품(C) 유통에서, 하나의 화폐는 두 번 자리를 바꾼다. 판매자가 구매자로부터 화폐를 받고, 그 화폐를 다른 판매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이다. 화폐를 받으면서 시작된 과정은 화폐를 넘겨주며 끝난다. 반대로, 화폐(M) 상품(C) 화폐(M) 유통에서는 화폐가 아니라 상품이 두 번 자리를 바꾼다. 구매자는 상품을 판매자로부터 받고, 그 상품을 다른 구매자에게 넘겨준다. 단순 상품 유통에서 화폐가 두 번 위치를 변경하면서 화폐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최종적으로 이동하지만, 화폐(M) - 상품(C) - 화폐(M)에서는 상품이 두 번 위치를 변경하면서 화폐를 시작점으로 되돌려 놓는다.

 

화폐가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일(환류)은 상품이 구매가보다 비싸게 팔리느냐와는 무관하다. 이는 다만 돌아오는 화폐의 양에만 영향을 줄 뿐이다. 환류 현상 자체는 구매한 상품이 다시 판매되어 화폐(M) 상품(C) 화폐(M) 순환이 완료되면 반드시 일어난다. 이것은 자본으로의 화폐 유통과 단순한 화폐 유통을 구별하는 쉬운 차이점이다. 어떤 상품을 팔아 얻은 화폐가 다른 상품 구매에 사용되면, 상품(C) - 화폐(M) - 상품(C) 순환은 완전히 끝난다.

 

화폐가 출발점으로 환류하는 일은 전체 과정에서 갱신 또는 반복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1리터 밀을 3원에 팔고, 그 돈으로 옷을 사면, 3원은 나에게서 완전히 지출되어 의복 상인의 소유가 된다. 다시 1리터 밀을 팔아 화폐를 얻더라도 이는 첫 번째 거래 결과가 아니라 동일한 거래를 반복한 결과일 뿐이다. 새로운 구매를 마치면 그 화폐는 다시 나를 떠난다. 따라서 상품(C) - 화폐(M) - 상품(C) 유통에서는 화폐 지출과 그 환류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반면, 화폐(M) - 상품(C) - 화폐(M) 유통에서는 화폐를 지출하는 방식 자체가 화폐 환류를 결정한다. 환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활동은 실패하거나 보완적이고 최종적인 판매 국면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과정이 미완성 상태가 된다.

 

상품(C) - 화폐(M) - 상품(C) 순환은 한 상품의 끝에서 시작해 다른 상품의 끝에서 끝나며, 그 상품은 유통에서 벗어나 소비된다. 따라서 이 순환에서 최종 목적은 소비(욕구 충족)와 사용 가치다. 이와 달리, 화폐(M) - 상품(C) - 화폐(M) 순환은 화폐에서 시작해 동일한 화폐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이 순환의 동기와 목적은 교환 가치 그 자체다.

 

단순 상품 유통은 양쪽 끝이 모두 상품으로, 동일한 경제적 형태를 갖는다. 가치량은 같을지라도, 밀과 옷처럼 질적으로 다른 사용 가치를 교환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생산물, 곧 사회적 노동이 대상화된 서로 다른 물질의 교환이다. 그러나 화폐(M) - 상품(C) - 화폐(M) 유통은 그렇지 않다. 이 유통은 언뜻 보면 의미 없는 동어 반복처럼 보인다. 양쪽 끝이 모두 화폐로, 질적으로 다른 사용 가치가 아니다. 화폐는 상품에서 특수한 사용 가치가 사라진 전환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100원을 면화로 바꾼 뒤, 다시 100원으로 되돌리는 일은 무의미해 보인다. 한 화폐액을 다른 화폐액과 구별하는 유일한 방법은 금액 차이뿐이다. 따라서 화폐(M) - 상품(C) - 화폐(M) 과정은 질적 차이가 아닌 양적 차이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 처음에 투입된 화폐보다 더 많은 화폐가 회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100원에 구매한 면화가 100+10, 110원에 다시 팔린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완전한 형태는 화폐(M) - 상품(C) - 화폐´(M´) 이다.

 

초과 가치(잉여 가치) 공식

 

최종 회수한 화폐(M´)는 최초 투입 화폐(M)에 초과 가치(ΔM)를 더한 것과 같다.


M´ = M + ΔM

 

이 공식에서 최종 회수한 화폐(M´)은 최초 투하한 화폐액에 증가분이 더해진 형태다. 이 증가분, 곧 최초 가치를 넘어서는 초과분을 우리는 초과 가치(잉여 가치)라 부른다. 따라서 최초에 투입된 가치는 유통 과정에서 자신을 보존할 뿐 아니라, 그 가치량이 증대되어 초과 가치를 덧붙인다. , 스스로의 가치를 증식시킨다. 바로 이 운동이 가치를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물론 상품(C) - 화폐(M) - 상품(C)에서 양쪽 끝에서 상품(C)과 상품(C)(밀과 의복)이 양적으로 다른 가치량일 수도 있다. 농민이 밀을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팔거나 의복을 싸게 살 수도 있고, 반대로 속임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 차이는 이 유통 형태 자체에 있어서는 우연한 요소에 불과하다. 이 유통은 화폐(M) - 상품(C) - 화폐(M)와 달리, 양쪽 끝의 가치가 동일하더라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두 끝의 가치가 동일하다는 점이, 이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구매를 위한 판매(C-M-C)의 반복은 그 과정의 외부, 곧 소비나 특정한 욕구 충족에서 한계와 목적을 찾는다. 반면, 판매를 위한 구매(M-C-M)는 시작과 끝이 화폐 또는 교환 가치로 동일하기 때문에 무한히 지속될 수 있다. 화폐(M)가 초과 가치(ΔM)를 더해 100원이 110원이 된다고 해도, 질적으로 보면, 110원은 100원과 동일한 화폐다. 양적으로 보아도, 110원은 100원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가치액에 불과하다.

 

110원이 화폐로 지출되면, 그것은 본래의 역할을 포기하고 더 이상 자본이 아니게 된다. 110원이 유통에서 벗어나 퇴장 화폐로 보관되면, 세상 최후의 날까지, 아무리 오래 보존되어도 한 푼도 늘어나지 않는다. 가치 증식 문제에 있어서, 110원의 증식 욕구는 100원의 경우와 동일하다. 둘 다 교환 가치의 한정된 표현이므로, 양적 증대로부터 절대적 부에 도달하려는 동일한 사명을 지닌다.

 

최초 투입된 100원은 유통 과정에서 덧붙여진 10원의 초과 가치(잉여 가치)와 잠시 구별되지만, 이 구별은 곧 사라진다. 과정이 끝난 후, 원래의 100원과 초과된 10원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10원이라는 하나의 가치가 남는다. 110원과 또한 최초의 100원처럼, 다시 가치 증식 과정을 시작하기에 적합한 형태다.

 

화폐는 가치 증식 과정을 다시 시작하고자 하나의 순환을 끝낸다. 따라서 구매와 판매가 완료된 각 순환의 최종 결과는 그 자체가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이 된다. 단순 상품 유통(구매를 위한 판매)은 유통 외부에 있는 최종 목적, 곧 사용 가치 취득과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이다. 반면, 자본으로의 화폐 유통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가치 증식은 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운동 내부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 운동은 한계가 없다.

 

이 운동에서 화폐 소유자는 의식적인 대표자로 자본가가 된다. 그의 주머니는 화폐 운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가치 증식이라는 객관적 내용이 그의 주관적 목적이 되고, 추상적 부의 획득이 그의 유일한 동기가 될 때, 그의 의지와 의식을 가진 인격화된 자본, 곧 자본가로 기능한다.

 

자본가의 진정한 목적은 사용 가치나 개별 거래의 이윤이 아니다. 오직 끊임없는 이윤 추구 운동만이 그의 목적이다. 부에 대한 무한한 탐욕과 정열적인 교환 가치 추구는 자본가와 구두쇠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구두쇠가 화폐를 유통에서 빼내 증식을 추구하는 반면, 자본가는 화폐를 끊임없이 유통에 투입하여 이를 달성한다. 이 점에서 구두쇠는 비합리적인 자본가일 뿐이며, 자본가는 합리적인 구두쇠다.

 

단순 상품 유통에서 상품의 가치가 취하는 독립적인 형태인 화폐는 상품 교환을 매개할 뿐, 운동의 최종 결과에서는 사라진다. 이와 달리, 화폐(M) - 상품(C) - 화폐(M) 유통에서는 상품과 화폐 모두 가치 그 자체의 다른 존재 양식으로 기능한다. 화폐는 가치의 일반적 존재 양식이며, 상품은 가치의 특수한 또는 위장된 존재 양식일 뿐이다.

 

이 운동에서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며, 이 과정에서 자동적인 주체로 전환된다. 자기 증식하는 가치가 취하는 독특한 현상 형태를 고려할 때, 자본은 화폐이면서 동시에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가치는 이 과정에서 주체다. 가치는 화폐와 상품 형태를 끊임없이 번갈아 취하며 자신의 양을 변화시키고, 원래 가치로부터 초과 가치를 뿜어내며 스스로를 증식시킨다. 가치가 초과 가치를 창출하는 운동은 가치 자신의 운동이므로, 가치 증식은 자기 증식이다. 가치는 그 자체로 가치이기 때문에, 가치를 낳는 신비스러운 속성을 획득한다. 가치는 마치 살아 있는 자식을 낳거나 적어도 황금 알을 낳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치는 화폐와 상품 형태를 번갈아 취하고 벗으며 스스로를 유지하고 증대시킨다. 이 과정을 지배하는 주체로, 가치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는 독립적인 형태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형태는 오직 화폐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화폐는 가치 증식 과정에서 출발점과 종착점이다. 예를 들어, 100원이 110원이 되는 식이다. 그러나 화폐 자체는 가치의 두 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상품 형태를 취하지 않고는 자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화폐 퇴장의 경우와 같은 화폐와 상품 사이에 적대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가는 모든 상품이 아무리 보잘것없고 고약한 냄새나 보일지라도, 그것이 사실상 화폐이며, 내면적으로는 화폐를 더 많은 화폐로 만드는 기적의 수단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상품(C) - 화폐(M) - 상품(C)의 단순한 상품 가치에서, 상품 가치는 사용 가치와 무관한 화폐 형태를 취할 뿐이다. 그러나 화폐(M) - 상품(C) - 화폐(M)의 자본 유통에서는, 가치가 스스로 운동하고 발전하는 실체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상품과 화폐는 단순한 형태에 불과하다. 나아가 가치는 이제 상품 간 관계를 표현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과 사적인 관계를 맺는 일처럼 보인다.

 

가치는 최초 가치인 자신과 초과 가치인 자신을 구분한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존재라는 점과 비슷하다. 비록 10원의 초과 가치로 인해 최초의 100원이 자본이 되지만, 자본이 되는 순간(아들이 생겨 아버지가 되는 순간), 둘의 구별은 사라지고, 110원이라는 하나의 가치가 된다.

 

이리하여 가치는 이제 과정 중의 가치가 되며, 이로부터 화폐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로 가치는 자본이 된다. 가치는 유통에서 나와 다시 유통에 들어가며, 이 순환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고 증식시킨다. 더 커진 형태로 유통을 빠져나온 뒤에도 이 동일한 순환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화폐(M) - 화폐´(M´), 화폐를 낳는 화폐’, 이것이 자본의 최초 해설자인 중상주의자들이 자본을 묘사한 말이다.

 

판매를 위한 구매, 더 정확히는 더 비싼 값으로 판매 위한 구매, 곧 최초 투입 화폐(M) - 상품(C) - 최종적으로 회수한 화폐(M´)는 상인 자본에만 해당되듯이 보인다. 그러나 산업 자본 역시 상품으로 전환되었다가 판매로부터 더 많은 화폐로 재전환되는 화폐다. 산업 자본의 순환은 다음과 같다.

 

산업 자본의 순환도

 

화폐(M) 상품(C)[생산 수단(MP), 노동력(LP)] 생산 과정(P) 새로운 상품(C´) - 화폐´(M´).

 

구매와 판매 사이(유통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이 운동 형태를 전혀 바꾸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자 낳는 자본의 경우, 최초 투입 화폐(M) - 상품(C) - 최종적으로 회수한 화폐(M´) 유통은 단축된 형태로 나타난다. 중간 단계 없이 그 최종 결과인 화폐(M) - 화폐´(M´), 곧 화폐가 더 큰 화폐가 되고, 가치가 자신보다 더 큰 가치가 되는 과정으로 간결하게 표현된다. 따라서 화폐(M) - 상품(C) - 화폐´(M´)는 유통 분야에서 자본이 취하는 자본의 일반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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