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절대적 초과 가치의 생산
7. 노동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
7-1. 노동 과정 (사용 가치의 생산)
자본가는 노동력을 사용하고자 이를 구매하며, 이 사용 행위가 곧 노동이다. 노동력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노동을 지시하고 소비하면서, 판매자를 잠재적 노동력 상태에서 실제 활동하는 노동자, 현실적 노동자로 전환시킨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상품에 구현하려면, 먼저 그 노동을 사용 가치(특정한 욕구를 충족하는 물건)에 구현해야 한다. 따라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생산을 지시하는 일은 바로 이 특정한 사용 가치다. 사용 가치 또는 재화 생산은 그것이 자본가의 감독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본질적인 일반적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 과정을 특정 사회 형태와 무관하게 고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노동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자연 간 과정이며, 인간은 이 과정으로부터 자신과 자연 사이에서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한다. 인간은 팔, 다리, 머리, 손과 같은 신체적 자연력을 활용하여 자연 소재에 작용한다. 이 작용으로부터 외부 자연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킨다. 곧,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고, 그 힘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둔다.
여기에서는 동물적인 본능적 노동 형태는 논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고자 시장에 나타나는 시기는, 인간 노동이 본능적 형태를 벗어난 지 한참 후다. 우리가 다루는 노동은 오직 인간에게만 고유한 형태의 노동이다. 거미의 직조나 꿀벌의 건축은 인간 건축가를 능가하지만, 가장 서투른 건축가라도 집을 짓기 전에 머릿속으로 먼저 계획한다는 점에서 꿀벌과 구별된다.
노동 과정은 노동자의 머릿속에 관념적으로 이미 존재했던 결과물이 실제로 나타나는 과정이다. 노동자는 자연물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목적을 그 자연물에 구현한다. 이 목적은 법칙처럼 노동자의 행동 방식을 규정하며, 노동자는 자신의 의지를 그 목적에 복종시켜야 한다. 이 복종은 단순히 한순간의 행위가 아니라, 노동 내내 신체 기관의 긴장과 함께 합목적인 의지, 곧 치밀한 주의력을 요구한다. 특히 노동의 내용이나 방식이 노동자의 흥미를 끌지 않고, 그가 노동을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힘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행위를 즐기지 못할수록, 더욱 치밀한 주의력이 필요하다.
노동 과정의 기본 요소
1. 인간의 합목적적 활동 (노동 그 자체)
2. 노동 대상
3. 노동 수단
인간에게 식량이나 생활 수단을 제공하는 토지(경제학적 관점에서는 물도 포함)는 인간의 수고 없이도 존재하는 일반적 노동 대상이다. 자연으로부터 직접 분리된 물건, 곧 물에서 잡힌 물고기, 원시림에서 벤 원목, 광맥에서 채취한 광석 등도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노동 대상이다. 반면, 이미 과거의 노동이 투입된 노동 대상은 원료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채굴되어 세광 과정에 들어가는 광석이 이에 해당한다. 모든 원료는 노동 대상이지만, 모든 노동 대상이 원료는 아니다. 노동 대상은 이미 노동을 거쳐 어떤 변화가 가해졌을 때 비로소 원료가 된다.
노동 수단은 노동자가 자신과 노동 대상 사이에 두고, 자신의 활동을 전달하는 도구 또는 도구들의 조합이다. 노동자는 물질들의 기계적,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활용하여 그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삼아 다른 물질에 작용하게 한다. 과일처럼 신체 기관만으로 채취하는 생활 수단을 제외하면, 노동자가 직접 다루는 일은 노동 대상이 아니라 노동 수단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은 노동자에게 활동 기관의 일부가 된다. 노동자는 자연을 활용해 자신의 신체 기관을 확장하며, 자신의 자연적 존재를 연장하는 셈이다.
토지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식량뿐만 아니라 노동 수단의 원천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던지거나, 문지르거나, 누르거나, 자르는 데, 사용하는 돌이 그렇다. 토지 그 자체도 노동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농업에서 사용되려면 고도로 발달한 노동력과 다른 많은 노동 수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노동 과정이 조금이라도 진화하면 특별히 가공된 노동 수단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태고의 동굴에서도 돌로 만든 도구나 무기가 발견된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가공된 돌, 나무, 뼈, 조개뿐만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길들여진 동물들도 중요한 노동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노동 수단을 사용하고 제조하는 일은 인간 고유의 노동 과정을 특징짓는 요소다. (비록 그 원시적인 형태는 일부 동물에게서도 발견되지만). 이 때문에 프랭클린은 인간은 ‘도구를 만든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멸종한 동물 종의 연구에서 화석 유골이 중요하듯이, 과거의 경제적 사회 구조를 탐구하는 데는 노동 수단의 유물이 중요하다. 경제적 시대는 무엇을 생산해는가보다, 어떤 노동 수단을 사용하여 어떻게 생산하는가로 구분된다. 노동 수단은 인간 노동력 발달의 척도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속에서 일하는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노동 수단 중에서도 생산의 골격이나 근유에 비유할 수 있는 역학적 노동 수단은 생산의 혈관에 비유되는 용기 형태의 노동 수단 (예: 관, 통, 바구니, 항아리 등)보다 사회적 생산 시대를 훨씬 더 명확하게 규정한다. 용기로서의 노동 수단은 화학 공업에서 비로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노동 대상에 대한 활동을 중개하는 도구들 외에, 노동 과정 수행에 필수적인 모든 객관적
조건들은 더 넓은 의미에서 노동 수단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수단들은 직접적으로 노동 과정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없으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불완전하게 진행된다. 대표적인 보편적 노동 수단은 토지 그 자체다. 토지는 노동자에게 설 자리를 제공하고, 노동 과정에 작업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의 노동이 투입된 이러한 종류의 노동 수단으로는 공장, 운하, 도로 등이 있다.
노동 과정은 인간 활동이 노동 수단으로부터 노동 대상에 의도된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최종 생산물, 곧 사용 가치 속에 사라지며, 그 생산물은 형태가 변형된 자연 재료가 인간 욕구에 적합하게 된다. 노동은 그 대상과 결합되어 대상화되었으며, 대상은 변형되었다. 노동자의 움직임으로 나타났던 일이 이제 생산물에서는 정지된 형태로 나타난다. 노동자가 방적 노동을 했다면, 그 결과물은 방적된 실이다. 이 전체 과정을 생산물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 수단과 노동 대상은 생산 수단이 되고, 노동 그 자체는 생산적 노동이 된다. 어떤 노동 과정에서 생산된 사용 가치는 그 자체로 생산물인 동시에, 다음 노동 과정에서는 다른 사용 가치를 만들기 위한 생산 수단이 된다. 따라서 생산물은 단순히 노동 과정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노동 과정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광업, 수렵, 어업 등 노동 대상이 농업은 자연 그대로인 채취 산업(단, 미개척지를 개간하는 최초의 농업 포함)을 제외하면, 모든 산업 부문은 이미 노동 과정에서 거친 원료를 다룬다. 농업의 종자가 그 예다. 우리가 흔히 자연 산물로 여기는 동식물조차 현재 모습은 지난 노동 생산물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인간 통제와 노동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변화된 산물이다. 특히 대부분의 노동 수단은 표면적으로도 오랜 노동 흔적을 명백히 보여준다.
원료는 생산물의 주된 실체가 될 수도 있고, 생산물 형성에 보조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보조 재료는 다음과 같이 소비된다.
보조 재료의 소비
1). 증기 기관에 사용되는 석탄, 자동차에 사용되는 휘발유, 말에 주는 건초처럼 노동 수단으로 소비된다.
2). 표백을 위해 아마포에 넣은 염소, 철에 첨가하는 석탄, 양모 사용하는 염료처럼 원료에 변화를 주고자 첨가된다.
3). 작업장 조명이나 난방처럼 노동 수행 자체를 돕는 데 사용된다.
화학 공업에서는 주요 재료와 보조 재료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투입된 원료가 생산물에서 원래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건은 다양한 속성과 용도를 가지므로, 동일한 생산물이 여러 노동 과정에서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곡물은 제분업자, 전분업자, 양조업자, 목축업자에게 원료가 되며, 씨앗으로는 자신을 다시 생산하는 원료가 된다. 마찬가지로 석탄은 광업이 생산물이면서 동시에 광업에 필요한 생산 수단으로 투입된다. 심지어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도 하나의 생산물이 노동 수단과 원료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가축 사육에서 가축은 원료인 동시에 비료 생산 수단이 되는 경우가 그렇다.
소비를 위해 완성된 생산물이 다른 생산물의 원료가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포도가 포도주 원료로 되는 것이다. 반대로, 오직 원료로만 사용되는 생산물도 있는데, 이를 반제품 또는 더 정확하게는 중간 제품이라 한다. 면사나 면포가 그 예다. 이들은 이미 생산물이지만,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는 원료로 기능하고, 최종 공정에서야 비로소 완성된 생활 수단이나 노동 수단이 된다.
어떤 사용 가치가 원료, 노동 수단, 또는 생산물이 되는지는 전적으로 그 사용 가치가 노동 과정에서 맡는 역할과 위치에 달려 있다. 이 위치가 바뀌면 사용 가치에 대한 규정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생산물이 새로운 노동 과정에서 생산 수단으로 투입되면, 생산물이라는 성격을 잃고, 살아 있는 노동의 객관적 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방적공은 방추를 실을 뽑는 수단, 아마를 실을 뽑는 대상으로만 다룬다. 방적 재료인 아마와 방추 없이 방적을 할 수 없기에. 이들이 이미 생산물이라는 사실이 전제되기는 한다. 그러나 방적 과정 자체에서는 아마와 방추가 과거 노동 생산물이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이는 빵이 농부, 제분업자, 제빵사에게 있어 과거 노동 산물이라는 사실이 소화 과정과 무관한 일과 같다.
생산 수단이 과거 노동의 산물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면, 이는 그 생산 수단에 결함이 있을 때다. 잘 들지 않는 칼이나 잘 끊어지는 실은 그것을 만든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우수한 생산물은 그것의 유용한 속성을 부여한 과거 노동을 완전히 흡수하여 사라지게 한다.
노동 과정에 쓰이지 않는 기계는 쓸모가 없다. 게다가 자연의 파괴력으로 인해 쇠는 녹슬고 나무는 썩는다. 직조나 편직에 사용되지 않는 실은 낭비된 솜에 불과하다. 살아 있는 노동은 이러한 물건들을 되살려 잠재적인 사용 가치에서 실제 유용한 사용 가치로 전환시킨다. 이 물건들은 노동의 과정으로 흡수되어 유기체의 일부처럼 활성화되며, 목적에 맞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로부터 이 물건들은 개인적 소비를 위한 생활 수단이나 새로운 노동 과정에 투입될 생산 수단 같은 새로운 사용 가치와 생산물의 구성 요소로 유용하게 소비된다.
어떤 생산물은 노동 과정의 결과인 동시에 그 과정의 필수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생산물이 살아 있는 노동과 결합되는 일은 생산물을 사용 가치로 활용하고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노동은 노동 대상과 노동 수단을 소모하므로, 그 자체로 소비 행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산적 소비는 개인적 소비와는 다르다. 개인적 소비가 생산물을 살아 있는 개인 생활 수단으로 소모하는 반면, 생산적 소비는 생산물을 노동력 발휘를 위한 수단으로 소모한다. 따라서 개인적 소비의 결과는 소비자 자신이지만, 생산적 소비의 결과는 소비자와는 별개인 생산물이다.
노동 수단과 노동 대상이 이미 생산물인 경우, 노동은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고자 기존의 생산물을 소비한다. 곧, 한 종류의 생산물을 다른 종류의 생산물을 위한 생산 수단으로 전환하며 소비한다. 하지만 노동 과정은 최초에 인간과 자연 그대로의 토지 사이에서 이루어졌듯이,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노력이 가해지지 않은 천연적 생산 수단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노동 과정은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합목적적 활동이다. 이는 인간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자연을 활용하며, 인간과 자연 간 물질대사를 위한 일반적이고 영구적인 자연적 조건이다. 따라서 노동 과정은 어떤 사회 형태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회 형태에 공통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이 노동 과정을 설명하고자 노동자와 다른 노동자 간 관계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한쪽에는 인간과 그의 노동, 다른 쪽에는 자연과 그 소재만으로 충분했다. 빵의 맛을 보고 누가 밀을 경작했는지 알 수 없듯이, 노동 과정만을 보아서는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 노예 감시인의 잔인한 채찍 아래서인지, 자본가의 감시 아래서인지, 아니면 킨키나투스가 자신의 작은 땅을 경작하는지, 또는 미개인이 돌로 짐승을 사냥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제 장래 자본가에게로 돌아가 보자. 그는 상품 시장에서 생산 수단(객체적 요소)과 노동력(인적 요소)을 구매한 뒤, 자신의 사업에 맞는 생산 수단과 노동력을 전문가처럼 꼼꼼하게 선택했다. 자본가는 이제 구매한 상품인 노동력 소비에 착수한다. 그는 노동자로 하여금 노동으로부터 생산 수단을 소비하게 만든다. 이 노동 과정에서 일반적인 성격은 노동자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자본가를 위해 노동한다는 사실로 인해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본가가 개입했다고 해서 장화를 만들거나 실을 뽑는 특정 방식이 당장 바뀌는 일도 아니다. 자본가는 먼저 시장에서 접하는 노동력을 활용해야 하며, 자본주의가 없던 시절의 노동 방식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노동이 자본에 종속되면서 나타나는 생산 방식 자체의 변화는 나중에 발생하므로, 이는 추후에 논의할 문제다.
노동 과정이 자본가의 노동력 소비 과정으로 전환되면,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소유한 자본가의 감독 아래 노동한다. 자본가는 노동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고 생산 수단이 합목적적으로 사용되도록 감시한다, 이는 원료 낭비를 막고, 노동 도구가 꼭 필요한 만큼만 닳도록 감시하기 위함이다.
둘째, 생산물은 노동자의 소유가 아닌 자본가의 소유물이다. 자본가가 노동력의 하루 가치를 지불하면, 하루 동안 그 노동력을 사용할 권리는 자본가에게 귀속된다. 이는 자본가가 하루 동안 빌린 말의 사용 권리를 갖는 일과 마찬가지다. 상품에서 사용 권리가 구매자에게 있듯이, 노동력 소유자인 노동자는 자신이 판매한 사용 가치, 곧 노동을 제공할 뿐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작업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노동력 사용 가치, 곧 노동은 자본가 소유가 된다. 자본가는 구매한 노동력을 살아있는 효모처럼 그의 소유인 생산물 형성 요소들 (기계, 원료 등)과 결합시킨다. 자본가의 관점에서 노동 과정은 그가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다만, 그는 노동력에 생산 수단을 결합하면서만 이를 소비할 수 있다. 이 노동 과정은 자본가 소유 물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므로, 그 결과물인 생산물 또한 그의 소유가 된다. 이는 그의 포도주 창고에서 일어나는 발효 과정의 생산물이 그의 것과 마찬가지다.
7-2. 가치 증식 과정 (초과 가치의 생산)
자본가가 얻는 생산물은 실이나 장화 등과 같은 사용 가치다. 장화가 사회적 발전에 기여할지라도, 자본가는 장화 자체를 위해 이를 생산하지 않는다. 상품 생산에서 사용 가치는 ‘그 자체로 사랑받는’ 물건은 아니다. 사용 가치는 교환 가치의 물질적 토대이자, 이를 담는 그릇이므로, 오직 이러한 역할을 할 때만 생산된다.
자본가의 목적
1. 교환 가치를 지닌 사용 가치, 곧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일.
2. 생산에 투입된 상품들의 가치 총액(생산 수단과 노동력의 가치 총액)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상품을 생산하는 일.
그는 사용 가치뿐만 아니라 상품을, 그리고 가치뿐만 아니라 초과 가치를 생산하고자 한다.
상품 생산이 논의의 초점이므로, 지금까지 다룬 노동 과정은 생산 과정의 한 측면일 뿐이다. 상품 자체가 사용 가치와 가치의 통일체이듯, 상품의 생산 과정도 노동 과정과 가치 형성 과정의 통일이어야 한다.
이제 생산 과정을 가치 형성 과정으로 살펴보자. 우리는 각 상품의 가치가 그 사용 가치에 구현된 노동량, 곧 상품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는 자본가가 노동 과정의 결과로 얻은 생산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생산물이 실이라고 가정하고, 이 실에 구현된 노동량을 계산해 보자.
면사 생산에는 원료인 면화 10킬로그램이 필요하다. 자본가는 이를 시장에서 가치대로 10원에 구매했으며, 이 가격에는 면화 생산에 투입된 사회적 평균 노동이 이미 담겨 있다. 또한, 면화 가공에 사용된 방추의 소모량을 2원이라 가정하자. (다른 모든 노동 수단을 대표하는 값이다). 12원의 가치를 생산하는 데 24시간(2노동일)이 소요된다면, 이 면사에는 이미 2노동일의 노동이 투입된다. (면화 소비량 10원과 방추 소모량 2원).
면화 형태가 변하고 방추가 소모되어 사라졌다는 사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 가치 법칙에 따르면, 40kg 면사 가치와 40kg 면화 가치 및 방추 한 개의 가치는 동일하며,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도 같다. 이 경우, 동일한 노동 시간이 한편에서는 면사라는 사용 가치로, 다른 한편에서는 면화와 방추라는 사용 가치로 표현될 뿐이다. 따라서 가치가 면사, 방추, 또는 면화 중 어느 형태로 나타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방적 과정에서 방추와 면화가 결합되어 면사로 변형되는 과정 자체는 그들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치 단순한 교환으로부터 면사라는 등가물로 바뀌는 일과 같다.
면화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은, 면화를 원료로 하는 면사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의 일부로 면사에 포함된다. 방적 과정에서 마모되거나 소모되는 방추 생산에 투입된 노동 시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면사의 가치를 결정할 때, 곧 면사 생산에 필요한 총 노동 시간을 계산할 때, 다음의 두 과정을 동일한 노동 과정에서 순차적 단계로 간주할 수 있다.
1. 면화와 소모되는 방추를 생산하는 노동
2. 면화와 방추로 면사를 생산하는 노동
면사 생산에 투입된 면화와 방추는 모두 과거의 노동 산물이다. 면사 생산에 필요한 여러 작업들이 최종 방적 작업보다 시간적으로 앞섰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 채의 집을 짓는 데 총 30의 노동이 필요하다면, 마지막 30일째 노동이 첫 째 날보다 29일 늦게 시작되었어도 집에 투입된 총 노동 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 재료와 노동 수단에 포함된 노동은 방적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이미 투입된 일로 간주할 수 있다. 요약하면, 면화와 방추와 같은 생산 수단의 가치(12원)는 최종 생산물인 면사의 가치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면화와 방추는 사용 가치 생산에 실제로 기여해야 한다. 곧, 이들이 면사로 전환되어야 한다. 어떤 사용 가치가 가치를 담는 그릇이 되든 상관없지만, 그 그릇은 반드시 사용 가치를 지녀야 한다.
둘째, 투입된 노동 시간은 주어진 사회적 생산 조건에서 필요한 노동 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면사 1kg을 생산하는 데 면사 1kg만 필요하다면, 그만큼만 소비되어야 한다. 방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본가가 망령이 들어 철제 대신 금 방추를 사용한다 해도, 면사의 가치에는 철 방추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만 계산된다.
면화와 방추라는 생산 수단이 면사 가치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12원, 곧 2노동일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방적공의 노동이 면화에 더하는 가치 부분을 살펴보자. 우리는 이제 노동을 노동 과정에서와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노동 과정에서는 단순히 면화를 면사로 바꾸는 합목적적 활동으로 노동을 보았다. 그 목적에 잘 부합할수록 더 나은 실이 만들어진다는 점도 알았다. 방적공의 노동은 주관적으로는 ‘방적’이라는 특정 목적에서, 객관적으로는 특수한 작업 방식, 생산 수단의 성질, 생산물의 사용 가치에서 다른 생산적 노동과 독특한 차이를 보인다. 면화와 방추는 방적에 필수적이지만 대포 생산에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방적공의 노동이 가치를 창조한다는 측면에서는, 대포를 깎는 노동자의 노동과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면사 생산에 투입된 면화 재배자와 방추 제조자의 노동과도 동일하다. 이러한 동일성 때문에 면화 재배, 방추 제조, 방적은 모두 면사 가치라는 하나의 총 가치를 형성하는, 양적으로만 구분되는 부분들이 될 수 있다. 여기서는 노동의 질이나 성질, 내용이 아닌 오직 노동의 양만이 문제이며, 이 양이 계산되어야 한다.
우리는 방적 노동을 단순한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가정한다. 이와 반대되는 가정을 하더라도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의 활동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형태에서 정지된 대상의 형태로, 곧 노동자의 작업에서 생산물로 전환된다. 한 시간 뒤에는 ‘방적’이라는 활동이 일정량의 실로 구현된다. 곧, 한 시간의 노동이 면화에 추가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방적이라는 특수한 활동이 아니라, 방적공의 생명력의 소모로서의 노동 그 자체다. 방적 노동은 노동력 지출이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면화를 면사로 바꾸는 작업에서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만이 인정된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 조건에서 1시간의 노동으로 면화 a 킬로그램이 면사 b 킬로그램으로 바뀐다면, 12시간의 하루 노동은 12a 킬로그램의 면화가 12b 킬로그램의 면사로 전환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는다.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만이 가치를 형성하는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노동 자체와 마찬가지로, 원료와 생산물은 단순한 노동 과정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제 원료는 단지 일정량의 노동을 흡수하는 기능을 한다. 곧, 방적 형태의 노동력 지출이 원료에 더해지면서 원료는 면사로 변한다. 반면, 생산물인 면사는 이제 면화가 흡수한 노동량을 측정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1시간에 1.67kg의 면화가 면사로 바뀐다면, 10kg의 면사는 6시간의 노동을 흡수한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경험적으로 확정된 일정량의 생산물은 특정량의 노동, 곧 응고된 노동 시간을 대표하는 물질적 형태일 따름이다. 이 노동이 방적 노동이고, 재료가 면화이며, 생산물이 면사라는 사실은, 노동 대상 자체가 이미 생산물이라는 점과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다. 노동자가 방적 공장이 아닌 탄광에서 노동한다면, 노동 대상인 석탄은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탄층에서 채굴된 일정량의 석탄의 역시 일정량의 노동을 흡수한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3원이며, 이는 6시간의 노동에 구현된 노동량, 곧 노동자의 하루 평균 생활 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제 방적공이 1시간의 노동에 면화 1.67kg을 면사 1.67kg으로 바꾼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6시간 동안에는 면화 10kg을 면사 10kg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방적 과정에서 면화는 6시간의 노동을 흡수한 셈이다. 이 6시간의 노동은 3원의 금량에 해당하므로, 방적 노동 그 자체로부터 3원의 가치가 면화에 추가된다.
생산물인 면사 10kg의 총가치를 검토해 보자. 이 면사에는 총 2.5노동일(30시간)의 노동이 투입되었다. 이 중 2일분의 노동(24시간)은 소비된 면화와 방추에 포함되어 있었고, 0.5일분의 노동(6시간)은 방적 과정에서 추가되었다. 2.5노동일은 15원의 가치를 지닌 금량에 해당한다. 따라서 10kg 면사의 가격은 15원이며, 1kg의 가격은 1.5원이다.
자본가는 놀랄 수밖에 없다. 생산물 가치가 투입된 자본의 가치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가치가 증식되지 않았고, 초과 가치도 생산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면사 10kg의 가격은 15원인데, 이 생산물의 구성 요소들(면화, 방추,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도 시장에서 정확히 15원이 지출되었다. 면사의 가치가 각 구성 요소의 가치보다 크다고 해도 소용없다. 면사의 가치는 이전에 면화, 방추, 노동력에 분산되어 있던 가치들의 단순한 합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존 가치를 합치는 일만으로는 결코 초과 가치가 생길 수 없다. 이제 모든 가치가 하나의 물건에 집중되었지만, 15원이라는 화폐 역시 세 가지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는 집중된 상태였다. 이 결과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1kg 면사의 가치가 1.5원이므로, 자본가가 10kg 면사를 구매하려면 시장에서 15원을 지불해야 한다. 자본가가 집을 이미 지어진 상태로 사든, 직접 짓게 하든, 집에 투입된 돈의 가치는 증식되지 않는다.
유행에 밝은 자본가는 “나는 더 많은 화폐를 얻고자 돈을 투자했다”고 말한다. 선한 의도로 지옥 가는 길이 포장되듯, 그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이윤을 얻으려 했을 수도 있다. 그는 “두 번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위협하며, 앞으로는 직접 상품을 만들지 않고 시장에서 완제품을 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동료 자본가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는 어디서 상품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화폐를 먹을 수는 없다. 그는 “내 절약 정신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15원을 낭비할 수도 있었지만, 생산적으로 소비해 면사를 만들지 않았는가”라고 호소한다. 그렇다. 그래서 그는 이제 나쁜 양심 대신 훌륭한 면사를 갖게 된 것 아닌가.
화폐를 쌓아두는 사람의 행동을 반복하는 일은 그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금욕이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는 이미 우리가 확인한 바와 같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황제조차 힘을 잃는다. 그의 금욕이 어떤 장점을 지녔든, 생산물 가치가 투입된 상품 가치의 총액과 동일하므로, 특별한 보상은 없다. 그는 미덕의 보상이 미덕 그 자체라고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해야 할 뿐이다. 하지만 자본가는 더욱 집요하게 주장한다. “면사는 내게 필요 없다. 나는 팔고자 생산했다.” 그렇다면 그는 팔면 된다. 또는 더 간단하게, 앞으로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만 생산하면 된다. 이것은 자본가의 가족 주치의 매컬록이 과잉 생산이라는 유행병에 대한 특효약으로 처방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자본가는 여전히 완강하게 주장한다. “노동자가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가. 내가 재료를 제공했기에,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거기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리고 사회 대다수가 빈털터리인데, 내가 생산 수단(면화, 방추)과 심지어 생활 수단까지 공급하면서 사회에 엄청난 봉사를 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이 모든 봉사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자 또한 자본가를 위해 면화와 방추를 면사로 바꾸면서 봉사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핵심은 ‘봉사’가 아니다. 봉사란 상품이든, 노동이든, 어떤 사용 가치의 유용한 효과 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환 가치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3원의 가치를 지불했고, 노동자는 면화에 추가된 3원의 가치로 정확한 등가를, 곧 가치에 대해 가치를 반환했다.
이때까지 자본을 뽐내던 우리의 친구는 갑자기 고용된 노동자처럼 겸손해지며 말한다. “나 도 방적공을 감독하고 총괄하는 노동을 했다. 이런 노동 역시 가치를 형성하지 않았는가.”그의 감독과 관리인들은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그러자 자본가는 유쾌하게 웃으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은 우리를 속이려는 것이었다. 그 자신은 그런 주장에 관심이 없다. 그러한 변명과 속임수는 고용된 경제학 교수들에게 맡겨둔다. 그는 실무적인 사람이라, 사업 외의 일은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사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잘 알고 있다.
이 문제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노동력의 하루 가치는 3원이며, 이는 노동력 그 자체에 0.5노동일(6시간의 노동)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노동력 생산에 필요한 매일의 생활 수단은 0.5노동일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노동력에 포함된 과거 노동(노동력의 매일 유지비)과 노동력이 제공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노동(노동력의 매일 지출)은 그 크기가 전혀 다른 두 가지 양이다. 전자는 노동력의 교환 가치를, 후자는 노동력의 사용 가치를 형성한다. 노동자의 생명을 24시간 유지하는 데, 0.5노동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가 하루 종일 노동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 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출하는 가치는 그 크기가 서로 다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할 때, 이미 이 가치 차이를 염두에 둔다. 면사나 장화를 만드는 노동력의 유용한 성질은 그에게 필수 조건일 뿐인데, 이는 가치를 형성하려면, 노동이 유용한 형태로 지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력의 독특한 사용 가치였다. 노동력은 가치의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진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가가 노동력으로부터 기대하는 독특한 ‘봉사’이며, 그는 노동자와의 거래에서 상품 교환의 영원한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실제로 노동력 판매자는 다른 모든 상품 판매자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교환 가치를 실현하는 대가로 그 사용 가치를 넘겨준다.
교환 가치를 얻으려면 사용 가치를 넘겨주어야 한다. 노동력의 사용 가치인 노동 그 자체는, 팔린 기름이 더 이상 기름 판매자의 것이 아니듯이, 노동력 판매자의 소유가 아니다. 화페 소유자는 이미 노동력의 하루 가치를 지불했으므로, 하루 동안의 노동력 사용, 곧 하루의 노동은 그의 것이다. 노동력이 하루 종일 활동할 수 있는데도, 그 유지에는 0.5노동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곧 하루에 노동이 창출하는 가치가 하루 노동력 가치의 두 배가 된다는 사실은 구매자에게는 큰 행운이다. 그러나 이는 판매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가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유쾌하게 웃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작업장에서 6시간이 아닌 12시간 동안 노동하는 데 필요한 생산 수단을 사용하게 된다. 면화 10kg이 6시간의 노동을 흡수해 면사 10kg이 되었다면, 면화 20kg은 12시간의 노동을 흡수해 면사 20kg이 된다.
이제 이 연장된 노동 과정의 생산물을 살펴보자. 면사 20kg에는 총 5노동일이 구현되어 있다.
· 4노동일(48시간): 소비된 면화(20원)와 방추(4원)에 투입된 노동
· 1노동일: 방적 과정에서 추가된 노동
총 5노동일(60시간)의 화폐 가치는 30원이다. 따라서 20kg 면사의 가격은 30원이고, 1kg당 가격은 이전과 같이 1.5원이다. 하지만 방적 과정에 투입된 상품들의 가치총액은 27원이다. 생산물의 가치(30원)는 투입된 가치(27원)보다 1/9만큼 증가하여, 3원의 초과 가치를 창출했다. 마침내 마법이 성공한 것이다.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되었다.
문제의 모든 조건은 충족되었고, 상품 교환의 법칙은 전혀 위반되지 않았다. 등가물은 등가물과 교환되었다. 자본가는 구매자로 면화, 방추, 노동력 등 모든 상품의 가치를 정당하게 지불했다. 그 후 다른 모든 상품 구매자처럼 그 상품들의 사용 가치를 소비했다. 노동력의 소비 과정은 동시에 상품 생산 과정이었고, 그 결과 30원의 가치를 지닌 20kg 면사가 생산되었다. 이제 자본가는 시장으로 돌아간다. 이전에는 상품을 구매했지만, 이번에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다.
그는 면사를 1kg을 1.5원, 곧 그 가치대로 판매한다. 그런데도 그는 처음에 시장에 투입했던 것보다 3원 더 많이 회수한다.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이 모든 과정은 유통 영역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진행된다.
· 유통 내부: 상품 시장에서 노동력 구매로부터 이루어진다.
· 유통 외부: 유통은 단지 생산 영역에서 발생하는 가치 증식 과정을 준비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한 최선의 세계에서는 만사가 최선의 상태에 있다.”라는 명제를 충족시킨다.
자본가는 화폐를 생산물 또는 노동 과정의 요소로 사용되는 상품들로 바꾸고, 죽은 물체에 살아 있는 노동력을 결합한다. 이 과정으로부터, 그는 가치(대상화된 과거의 죽은 노동)를 자본(자신을 증식시키는 가치, ‘사랑의 정열로 가슴이 꽉 찬’ 활기찬 괴물)으로 전환시킨다.
가치 형성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을 비교하면, 가치 증식 과정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연장된 가치 형성 과정에 불과하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이 과정이, 자본이 지불한 노동력의 가치가 새로운 등가물로 보상되는 시점까지만 진행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가치 형성 과정에 머문다. 그러나 이 지점을 넘어 계속된다면, 가치 증식 과정으로 전환된다.
노동 과정과 가치 형성 과정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 과정은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유용한 노동으로 이루어지며, 생산 활동은 생산물의 종류, 목적, 내용에 따라 질적으로 분석된다. 반면, 가치 형성 과정에서는 동일한 노동이 양적인 측면에서만 고려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노동자의 작업 시간, 곧 노동력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지속 시간뿐이다. 노동 과정에 투입되는 상품들은 더 이상 노동력이 가공하는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단순히 대상화된 노동의 양으로 여겨진다. 노동이 생산 수단에 포함된 것인지, 노동력으로부터 추가된 것인지와 관계없이, 노동은 오직 그 지속 시간으로만 측정된다. 이는 몇 시간, 또는 며칠 등으로 계산된다.
사용 가치 생산에 투입된 노동 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간만큼만 계산된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노동력은 반드시 정상적인 조건에서 기능해야 한다. 자동 뮬 방적 기계가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생산 수단이라면, 노동자에게 물레를 쥐여주면 안 된다. 또한, 정상적인 품질의 면화 대신 계속 끊어지는 부스러기 솜을 주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1kg 면사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추가 시간은 가치나 화폐를 창출하지 못한다. 노동의 대상적 요소들이 정상적인지는 노동자가 아닌 전적으로 자본가에게 달려 있는 문제다. 또 다른 조건은 노동력 자체가 평균적인 능률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력은 해당 부문을 지배하는 평균 수준의 기능, 숙련도, 민첩성을 보유해야 한다. 자본가는 노동 시장에서 이러한 정상적인 질의 노동력을 구매하려 노력한다. 노동력은 평균적인 긴장도와 강도로 투입되어야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감시한다. 그는 노동력을 정해진 기간 동안 구매했기에,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려 주의한다. 그는 도둑맞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원료와 노동 수단의 낭비가 없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자본가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법을 가지고 있다. 낭비는 대상화된 노동의 헛된 지출을 의미하며, 이는 생산물이나 그 가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품 분석으로부터 우리는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 사이의 차이를 찾아냈고, 이 차이는 이제 생산 과정의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난다. 노동 과정과 가치 형성 과정의 결합 측면에서 보면, 생산 과정은 상품 생산 과정이다. 반면, 노동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의 결합 측면에서 보면, 생산 과정은 자본주의적 형태다.
자본가가 사용하는 노동이 단순한 사회적 평균 노동이든, 더 복잡한 노동이든, 가치 증식 과정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더 복잡한 고급 노동은 숙련되지 않은 노동보다 양성 비용이 더 많이 들고, 생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따라서 이러한 노동력은 가치가 더 커지고, 동일한 시간 안에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나 보석 세공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보상하는 부분과 초과 가치를 창출하는 추가 노동 부분은 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방적 노동에서와 마찬가지로 보석 세공 노동에서도 초과 가치는 오직 노동량의 초과로부터, 곧 동일한 노동 과정(한쪽은 실을 만들고, 다른 쪽은 보석을 만드는)의 시간적 연장으로부터만 발생한다. 한편, 모든 가치 형성 과정에서 고급 노동은 항상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환원된다, 예를 들어, 하루의 고급 노동은 X일의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환산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가가 고용하는 노동자가 단순한 사회적 평균 노동을 수행한다고 가정하면서, 불필요한 조작을 생략하고, 분석을 단순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