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1905년, 러시아에서도 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요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치적 요구는 여전히 개혁 군주라고 평가받는 차르 황제로부터 인민들은 통제되고, 검열됐다는 점을 상기해보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역사는 투쟁의 요구가 절실한 사람들을 쉽게 제거하고, 삭제해버린다. 과연 조선이라고 다르던가. 조선 황제는 더 큰 자본에 편승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타협해갔고, 조선의 기나긴 역사를 제국주의의 부상에 힘입도록 타국에게 굴복시켜갔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키고, 또 본질을 훼손시키는 수정주의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가난한 농민에게」는 당시 정부의 재정 상태와 가난한 인민과 농민들의 처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절박한 요구를 담아낸 역작이다. 지방에서부터 착취된 농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고, 의회에는 노동자와 민중을 대표할 대표자마저 없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의회 제도가 정착되면서부터, 독일에서는 제한적인 투표권만으로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국회로 진출시켰다. 그에 따라, 의회 제도에서는 노동자와 민중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국회에서도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이에 따른 사람들의 요구들도 증가함에 따라 모두가 의회로부터 정치를 제안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됐다. 물론 농노제는 폐지됐고, 8시간 노동 제도는 보장됐다. 그러나 제한적인 국회의 정치적 자유는 여전히 소수의 자본가 수중에서만 작동하고 있다. 곧 인민 다수가 제안하고 있는 정치적인 의제를 더욱 축소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여전히 부르주아지들과도 같은 유산 계급들은 이마저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여, 자본주의를 더욱 빠르게 가속화시키고, 노동 계급과 무산 계급들에게 더욱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들을 부과하고 있다. 임금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또 다시 무산자로 만들어버린다. 쓸모가 없어지면, 다시 자본의 노예로 삼는다. 역사는 노동 계급과 무산 계급들에게는 노동이라는 무거운 무게를 이들의 가족들에게도 꾸준하게, 그리고 지금도 더욱 가중시킨다. 도시 노동자는 자신의 살림을 잃어가지만, 농촌 사회는 각종 개발 및 재난로 인해 더욱 취약해졌다. 그렇다면 토지 제도는 어떠한가. 여전히 소수 독점과 축적된 재산을 이제는 더욱 부풀리고자, 더욱 더 자본가는 더 넓은 토지를 챙기면서 독점으로 소유하고 있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이전시키며, 노동자들과 무산자들의 거주지마저 괴롭히고 있다. 이를 두고 과연 더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겨나게 된 지점이다. 


이 책은 1903년에 쓰였고, 국내에서 처음 번역된 건 1946년 정도이다. 100년이 넘는 기간이 흘러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계급의 논리는 지워지지도 않고, 더욱 더 강해지고, 유효해진다. 8.15이 다가오고, 또 기념하는 지금도, 또 국가적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많은 발전과 눈 부신 도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온통 거짓말과 술수일 뿐이다. 가난한 인민들의 삶의 형태는 비슷해졌고, 또 그림자 속에 갇혀, 숨 죽인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산재로 죽어가거나, 그마저도 없는 무산자들은 삶을 버틸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계급 투쟁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말인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아무도 대변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려 100년이 지난,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과연 그저 먼 과거의 책일 뿐인가. 아니면, 적어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는가. 그러나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낀다면, 이제는 선택할 수도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책이 남기는 교훈은 어쩌면 더 이상 먼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더욱 임박하고 있는 계급 투쟁으로부터 전투를 치르고, 희생된 노동자와 무산자들에게도 앞날을 준비 하는 데 있어 더욱 필요하고, 또 의미 있는 일이다. 자본의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늘 재산을 지킬 준비를 마치는 자본가가 우리의 삶을 충분히 보장해주는가. 또 과연 안전하던가. 그렇지도 않다면, 우리 외침은 끝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이 말은 굶주린 짐승과도 같이 더 큰 한 방을 노리는 자본주의 앞에서는 도무지 끝날 수 없다. 

 

"만국 무산자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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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

 

우리는 지금까지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이 독점자본주의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는 바로 이 본질에 의해 규정된다. 왜냐하면 자유경쟁을 토대로 해서 바로 그 자유경쟁으로부터 성장한 독점이란,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다 높은 사회·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과도적 형태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지금 살펴보고 있는 시대를 특징짓는 독점의 네 가지 유형 또는 독점자본주의의 네 가지 주요 양태들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첫째, 독점은 매우 높은 발전 단계에 도달한 생산의 집중으로부터 성장했다. 그것은 자본가들의 독점적인 연합인 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들이다. 우리는 이것들이 현대의 경제생활에서 얼마나 거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이미 살펴보았다. 20세기 초에 이 독점조직들은 선진국들에서 완벽하게 패권을 차지했다. 카르텔로 가는 최초의 걸음을 먼저 내디뎠던 것은 보호관세율이 높은 나라들(독일, 미국)이었지만, 자유무역 체제인 영국도 그보다 조금 늦었을 뿐 생산의 집중에서 독점조직들이 탄생한다는 기본 현상을 똑같이 보여주었다.

 

둘째, 독점은 가장 중요한 원료산지들, 그것도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산업이자 카르텔화가 가장 많이 진전된 산업들인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의 원료산지들에 대한 약탈을 강화시켰다. 가장 중요한 원료산지들에 대한 독점적인 소유는 대자본의 힘을 무섭게 증대시켰으며, 카르텔화된 산업들과 카르텔화되지 않은 산업들 사이의 모순을 격화시켰다.

 

셋째, 독점은 은행들로부터 성장했다. 은행은 공손한 중개업체에서 금융자본의 독점자본가로 변신했다.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들 어디에서나 세 개에서 다섯 개 정도의 가장 큰 은행들이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인적 융합'을 실현시키고, 전국의 자본과 화폐소득의 대부분을 이루는 수십억의 돈에 대한 처리권을 자신들의 수중에 집중시키고 있다. 현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경제기관과 정치기관에 예외 없이 종속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을 처놓은 금융과두제야말로 독점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넷째, 독점은 식민정책으로부터 성장했다. 금융자본은 식민정책의 많은 '오래된' 동기들에 대한 원료산지 확보·자본수출·교역을 유리하게 하고 이권과 독점이윤을 높이기 위한 세력권 확장의 동기를 부여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성 있는 영토 일반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을 추가했다. 1876년에 그랬던 것처럼, 유럽 열강들이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10분의 1을 그 식민지로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을 때는 식민정책은 토지를 비독점적으로, 말하자면 '선착순'으로 차지하는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 하지만 (1910년 무렵) 아프리카의 10분의 9가 정복되고 전세계가 분할되었을 때, 독점적인 식민지 보유의 시대가, 따라서 세계의 분할과 재분할을 위한 특히 침예한 투쟁의 시대가 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독점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들을 어느 정도로 격화시켰는가는 이미 알려진 대로다. 물가상승과 카르텔의 강압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모순들의 격화는 세계 금융자본의 최종적인 승리와 함께 시작된 역사적 이행기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다.

 

독점, 과두제, 자유가 아닌 지배를 향한 열망, 가장 부유하고 힘센 한 줌도 안 되는 민족들이 점점 더 많은 약소민족들을 착취하는 것 모두가, 제국주의를 기생적 자본주의 또는 부패하고 있는 자본주의로 규정하게 하는 현저한 특징들을 발생시켰다. '금리생활자 국가', 고리대금업자 국가의 형성이 제국주의의 경향을 가운데 하나로서 점점 더 뚜렷하게 나타나며 그 나라의 부르주아는 점점 더 자본수출과 '이자놀이'로 생활하게 된다. 이러한 부패 경향이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방해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개별 산업분야들, 개별 부르주아 계층들, 개별 국가들에서 이러한 경향들이 다양한 정도의 차이를 두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자본주의는 전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 발전은 일반적으로 더욱 불균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불균등성은 자본력이 가장 강한 나라들(영국)의 부패에서 특히 잘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급속한 경제적 발전에 관해서 독일의 대은행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저술가 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전 시대(1848~70년)의 그리 느리지 않았던 진보와 이 시대(1870~1905년)에 독일 경제 전체 및 특히 은행이 진보하는 속도의 관계는 거의, 지나간 옛 좋은 시절의 우편마차의 속도와 오늘날의 자동차의 속도—한가롭게 걷고 있는 보행자에게도,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 자신에게도 위험할 정도의—의 관계와 같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한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빠르게 성장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좀 더 '평온한' 식민지 보유로 넘어가고 싶어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단지 평화롭지만은 않은 수단을 통해 더욱 부유한 국민들로부터 빼앗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독일보다 훨씬 급속히 경제가 성장했고, 바로 그 때문에 최근 미국 자본주의의 기생적 특징들이 특히 명백하게 드러났다. 다른 한편으로 공화국인 미국의 부르주아와 군주국인 일본이나 독일의 부르주아를 비교해보면, 그 가장 큰 정치적인 차이점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극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그런 차이점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일정하게 기생적인 특성을 가진 부르주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산업분야들 가운데 한 분야, 많은 나라들 가운데 한 나라의 자본가들이 높은 독점이윤을 획득한 결과 그들은 노동자의 특정 계층을 매수할 수 있는 경제적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비록 일시적이고 매우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그 층을 나머지 모든 노동자들에 맞서 해당 산업과 국가의 부르주아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분할로 인해 제국주의 국민들 사이의 대립이 격화된 것은 이러한 지향을 강화한다. 이렇게 해서 제국주의와 기회주의의 유착이 만들어진다. 이 유착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빨리, 명확하게 영국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은 몇몇 제국주의적인 발전의 특징들이 여기에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몇몇 저술가들, 예를 들어 L. 마르토프는 제국주의와 노동운동 내 기회주의가 유착되어 있다는 사실을—오늘날에는 매우 뚜렷하게 눈에 띄는 사실을—피하고 싶은 나머지 다음과 같은 종류의 (카우츠키와 위스망스(Huysmans)²⁴⁵ 등의) '공식적 낙관주의'에 근거한 주장을 펼친다. 만일 기회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 선진자본주의라면, 또는 기회주의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바로 가장 임금이 높은 노동자들이라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의는 절망적이 될 것이다. 이런 '낙관주의'가 뜻하는 바에 대해 현혹되면 안 된다. 그것은 기회주의에 있어서 낙관주의이고, 기회주의를 은폐하는데 유용한 낙관주의인 것이다. 사실 기회주의의 발전이 특별히 빠르고, 특별히 추악하다는 것이 결코 그것에게 굳건한 승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 다. 건강한 육체에서 악성 종양의 빠른 성장은 단지 종양이 터져서 그로부터 육체가 해방되는 시기를 앞당길 뿐이다. 이 점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거짓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에 관해서 지금까지 이 글에서 서술한 모든 것으로부터, 제국주의는 이행기의 자본주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멸하고 있는 자본주의로 규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관해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최근의 자본주의를 묘사할 때 '연결'²⁴⁶이나 '고립성의 배제' 등과 같은 단어를 흔히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교훈적이다. 예를 들어 은행은 "기능이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순수한 사적 경영 기업은 아니며, 갈수록 사경영의 규제 영역을 넘어 성장하고 있다"²⁴⁷와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문장을 썼던 바로 그 리서는 대단히 진지한 얼굴로 '사회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결'이라는 단어는 대체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것은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포착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 관찰자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것은 피상적이고, 우연적이며, 혼란스러운 것을 그대로 모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관찰자가 소재에 압도되어 그것의 의미와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지분 소유권 및 사적소유자들의 관계들은 '우연히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연결의 배후에 있는 것, 그 토대를 이루는 것은 바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관계다. 대기업이 거대기업이 되고, 대량의 수치를 정밀하게 계산해서 수천만 주민에게 필요한 원료를 3분의 2나 4분의 3, 아니 전부를 계획적으로 조직하게 될 때, 그 원료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수백 또는 수천 베르스타²⁴⁸ 떨어져 있는 적재적소의 생산지점에 수송할 수 있을 때, 수많은 종류의 완제품이 제조되기까지 이런 일련의 하나의 중심부에서 관리될 때, 그러하여 예를 들어 미국의 석유 트러스트가 미국이나 독일에 석유를 공급하고 판매할 때처럼 제조된 생산물을 단일한 계획에 따라 수천만, 수억 소비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될 때가 바로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생산의 사회화가 이루어진 때다. 이때가 되면 사적 경제나 사적 소유의 관계들은 더 이상 그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껍데기, 제때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부패해버리고 마는 껍데기, (최악의 경우에 기회주의라는 종양의 치료가 지연된다면) 오랫동안 부패한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지만 역시 결국 저절로 떨어져 나가고 마는 껍데기가 되는 것이다.

 

독일 제국주의를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독일 은행을 관리하는 일이 한 다스 정도의 사람들에게 맡겨졌다면, 그들의 활동은 오늘날 국민 복지를 주관하는 장관들 대다수의 활동보다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은행가, 장관, 실업가, 금리생활자들을 서로 연결하는 '연결'은 새까맣게 잊혀져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발전 경향을 끝까지 파고들어보자. 전국의 화폐자본은 은행들로 모이고, 은행들은 스스로 카르텔로 결합하며, 전국의 투자자본은 유가증권의 형태가 된다. 이때 바로 생시몽(Saint-Simon)²⁴⁹의 다음과 같은 천재적인 예견이 실현되는 것이다. '경제관계들이 통일된 규제 없이 전개된다는 사실에서 유해한 오늘날 생산의 무정부 상태는, 생산의 조직화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생산은 서로 독립되어 있는 타인들의 경제적 욕구를 알지 못하는 고립된 기업가들이 아니라, 특정 공공기관의 감독을 받게 된다. 보다 높은 관점으로 사회경제의 광범위한 영역을 조망할 수 있는 중앙의 관리위원회가 전체 사회에 유의하게 사회경제를 규제하고, 생산수단을 적임자들에게 배분하여 위임하며, 특히 생산과 소비가 늘 조화를 이루도록 관리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경제활동의 일정한 조직화가 그 기능의 일부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기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은행이다. 우리가 생시몽의 이 말을 완전히 실현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형태만 조금 다를 뿐인 마르크스주의다."²⁵⁰

 

이는 마르크스에 대한 '멋진 반박'이지만, 마르크스의 정확한 과학적 분석으로부터, 비록 천재적이긴 하지만 단지 추측에 지나지 않는 생시몽의 추측으로 퇴보한 것이다. 그리고 추측은 추측일 뿐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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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제국주의 비판

 

우리는 제국주의 비판이라는 것을 그 단어의 넓은 의미에서, 즉 사회의 여러 계급들이 자신들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서 제국주의 정책에 취하는 태도로 이해한다.

 

한편에서는 몇몇의 손에 집중된 거대 규모의 금융자본이 대단히 광범위하고 촘촘한 관계 및 유착의 그물망을 펼쳐 줌소자본가뿐 아니라 가장 영세한 자본가와 소자영업자 대중들까지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를 분할하고 다른 나라들을 지배하기 위해 다른 국민국가의 금융자본가 집단들과 벌이는 투쟁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유산계급을 예외 없이 제국주의의 편으로 넘어가게 만든다. 그것의 전망에 대한 '총체적인' 열광, 제국주의에 대한 광기 어린 옹호, 그것에 대한 가능한 모든 미화 등이 바로 이 시대의 상징이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자계급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노동자계급을 다른 계급과 떨어뜨려놓지는 못한다. 독일의 이른바 '사회민주주의' 당의 현 지도자들에게 붙여진 '사회제국주의자'란 이름은 너무나도 안성맞춤인데, 다시 말해 그들은 입으로는 사회주의자, 행동으로는 제국주의자인 것이다. 홉슨은 이미 1902년에, 영국에는 기회주의적인 '페이비언 협회'²¹⁴에 속한 '페이비언 제국주의자들'이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²¹⁵

 

부르주아 학자와 평론가들은 대개 약간은 위장한 모습으로 제국주의 옹호자로 등장한다. 이들은 제국주의의 완전한 지배와 그 깊은 근원들을 은폐하고, 세론들과 지엽적인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려 애쓰며,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트러스트나 은행에 대한 경찰의 감독 등과 같은 전혀 부질없는 '개혁'안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노력한다.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속성들을 개혁한다는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감히 인정할만큼 뻔뻔하고 노골적인 제국주의자는 훨씬 드물게 나타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세계경제논총》²¹⁶이라는 간행물을 통해 독일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 독일 식민지가 아닌 곳에서의 민족해방운동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들은 인도에서의 동요와 저항들, 나탈(남아프리카)²¹⁷과 네덜란드령 동인도²¹⁸에서의 운동 등을 언급한다. 그 중 한 사람은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여러 민족 대표들이 1910년 6월 28~30일에 개최한 종속국·종속인종 대회에 대한 영문 보고서²¹⁹를 읽고 평론을 쓰면서, 이 대회에서 발표된 연설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제국주의와 투쟁해야 한다, 지배국들은 종속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국제재판소는 강대국과 약소민족 간에 체결된 조약의 집행을 감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회²²⁰는 이러한 순박한 소망들을 표현하는 것에서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현재 형태의 자본주의와 땔 수 없이 결합돼 있다는 인식은 전혀 흔적도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일부 특별히 추악한 지나친 행위들에 대한 반대에 국한되지 않는 한 제국주의와의 직접적인 투쟁은 가망이 없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로 찾기 어렵다."²²¹ 제국주의의 토대들을 개량주의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은 기만이며 "순박한 희망"이기 때문에, 억압받는 민족의 부르주아적 대표자들이 "더 멀리"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억압하는 민족의 부르주아 대표자들은 제국주의 앞에 "과학성"이라는 허울로 위장된 굴종으로 "더 멀리" 뒷걸음질 친다. 이 또한 '논리'가 아닌가!

 

제국주의의 토대들을 개량주의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제국주의가 낳은 모순들이 더욱 침예해지고 심화되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완화되는 쪽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제국주의 비판의 근본 문제들이다.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은 금융과두제의 억압 및 자유경쟁의 소멸과 결합되어 모든 면에서 반동화가 나타나고 민족의 억압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의 거의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반대파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카우츠키 및 광범위하고 국제적인 카우츠키주의 조류가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한 지점은 카우츠키가 소부르주아적·개량주의적이며 경제적으로는 근본적으로 반동적인 이 반대파와 자신을 구별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것 뿐 아니라 오히려 이 반대파와 실천적으로 융합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제국주의 전쟁은 미국에서 '반제국주의자'라는 반대파를 탄생시켰다. 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최후의 모히칸족²²²들은 이 전쟁을 '범죄'로 규정하고, 다른 나라의 영토를 합병하는 것은 위헌으로 간주했으며, 필리핀 국민들의 지도자 아기날도²²³(처음에는 그에게 조국의 해방을 약속했다가, 나중에 미국 군대를 상륙시켜 필리핀을 합병했다)에게 저지른 행위를 '배외주의자들의 배신 행위'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링컨의 말을 인용했다. "백인이 자기 자신을 통치할 때, 그것은 자치다. 하지만 백인이 자기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들도 통치할 때, 그것은 이미 자치가 아니다. 그것은 폭정이다."²²⁴ 하지만 모든 비판들은 제국주의가 트러스트들과, 즉 자본주의의 토대들과 땔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고, 대규모 자본주의와 그 발전이 낳은 세력들에 가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 "순박한 희망"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비판에서 홉슨의 기본적인 입장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홉슨은 '제국주의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주민들의 '소비력을 높일(자본주의하에서!) 필요성을 호소하며 카우츠키를 예견하게 했다. 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 제국주의, 지나치게 강력해진 은행, 금융과두제 등을 비판하고 있는 인물들로는 우리가 몇 차례 인용한 바 있는 아가트, A. 란스부르크, L. 에쉬베게가 있으며, 프랑스 저술가로는 1900년에 나온『영국과 제국주의L'Angleterre et l'impérialisme』라는 성의 없는 책을 쓴 빅토르 베라르(Victor Bérard)²²⁵가 있다. 이들 모두는 마르크스주의를 전혀 참칭하지 않으면서도 제국주의에 대비하여 자유경쟁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갈등과 전쟁을 유발할 바그다드 철도선 계획을 비난하며, 평화라는 "순박한 희망"을 표명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국제 유가증권 통계학자 A. 네이마르크에 이르러서는 '국제' 유가증권의 가치를 수천 억 프랑으로 계산하고, 1912년에 이렇게 외쳤다. "평화가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 이런 엄청난 금액에도 불구하고 감히 전쟁을 시작하리라고?"²²⁶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이런 순박함은 놀라울 게 없다. 게다가 그렇게 순박하게 보이면서 제국주의 시대의 평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카우츠키가 1914년, 1915년, 1916년에 그와 똑같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의 입장에서 서서 평화에 대해 (제국주의자, 사이비 사회주의자, 사회평화주의자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단언했을 때, 그의 마르크스주의에는 대체 무엇이 남아 있었는가? 제국주의의 모순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해부 대신, 그 모순들을 회피하고 변명하려 드는 개량주의적인 "순박한 희망"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카우츠키가 제국주의에 대해 가하는 경제학적 비판의 전형적인 사례 하나를 가져와보자. 그는 1872년과 1912년의 이집트에 대한 영국의 수출입 수치를 끌어온다. 그 수출입은 영국의 전체 수출입보다 적게 성장했다는 사실이 판명된다. 그러하여 카우츠키는 이렇게 추리한다. "영국이 이집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았다면 오직 경제적 요인의 힘만으로 이집트와 그 나라의 무역²²⁷이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러한 [자본의] 팽창 열망은" "제국주의의 폭력적 방법들이 아니라 평화적인 민주주의에 의해 가장 잘 촉진된다."²²⁸

 

카우츠키의 러시아인 똘마니(이자 러시아의 사회배외주의 옹호자) 스펙타토르(Spectator)²²⁹ 씨가 몇백 번이나 되풀이해서 노래하고 있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 식 비판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을 더욱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힐퍼딩의 글귀를 인용해보자. 카우츠키는 1915년 4월을 비롯해 몇 차례나 걸쳐 이 인용문의 결론에 "모든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공언한 바 있다.

 

힐퍼딩은 이렇게 썼다. "프롤레타리아가 선진 자본주의 정책에 대해 자유무역과 국가 배척시대의 옛날 정책으로 대항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금융자본의 경제정책인 제국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대응이 자유무역일 수는 없으며 오직 사회주의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정책의 목표는 자유경쟁의 재건이라는 이제는 반동적인 이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타도에 의한 경쟁의 완전한 지양이다.“

 

카우츠키는 이 금융자본의 시대에 "반동적인 이상", "평화적인 민주주의", "오직 경제적 요인의 힘만"을 옹호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단절했다. 왜냐하면 그런 이상은 객관적으로 보면 독점자본주의를 독점적이지 않은 자본주의로 되돌리자는 것이며, 개량주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군사점령이 없었다면, 제국주의가 없었다면, 금융자본이 없었다면 이집트(또는 다른 식민지나 반식민지)와의 무역은 더욱 강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이건 무슨 뜻인가? 만약 독점이 일반이, 그리고 금융자본에 의한 '유착'이나 억압(다시 말해 역시 독점)이, 또 일부 국가들의 독점적인 식민지 소유가 자유경쟁을 제한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가 더 빠르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뜻인가?

 

카우츠키의 주장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으나, 그 "의미"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즉 독점이 전혀 없었다면 자유경쟁이 자본주의와 무역을 더 빠르게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무역과 자본주의가 더 빠르게 발전할수록 독점을 낳는 생산과 자본의 집중도 더 강해진다. 그리고 독점은 이미 탄생했다. 바로 자유경쟁 속에서! 만일 독점이 지금에 와서 발전을 지연시키고 있다 해도 여전히 자유경쟁을 지지하는 논거가 되진 못한다. 자유경쟁은 독점을 낳은 후에는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카우츠키의 주장을 어떻게 돌려보아도 그 속에는 반동성과 부르주아적인 개량주의 외에 아무것도 없다.

 

스펙타토르가 말하는 것처럼 영국 식민지들과 영국의 무역이 현재 다른 나라들과 무역보다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고 이 논리를 바꿔 말한다 해도, 이 역시 카우츠키를 구원하진 못한다. 왜냐하면 영국을 타도한 것 역시 단지 다른 나라들(미국·독일)의 독점이고, 또 제국주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카르텔이 수출할 수 있는 생산물들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롭고 독특한 형태의 보호관세를 낳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엥겔스는 『자본론』3권에서 이를 언급했다.²³¹) 여기에서 '혈압 수출', 영국 사람들이 말하는 '덤핑'제도 역시 카르텔과 금융자본의 특징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카르텔은 국내에서 그 생산물을 높은 독점가격으로 판매하는 반면, 해외에서는 경쟁자들을 몰락시키고 자기의 생산을 최대한 확장하는 등을 위해 혈압에 물건을 팔아치운다. 만약 독일이 영국보다 영국 식민지와 무역을 더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독일 제국주의가 영국 제국주의보다 더 젊고 더 강력하며 더 조직적이고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결코 자유무역의 '우월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무역이 보호무역과, 식민지의 종속상태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제국주의가 다른 제국주의와, 한 독점조직이 다른 독점조직과, 한 금융자본이 다른 금융자본과 싸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독일 제국주의가 지닌 우월함은 식민지 국경선이나 보호관세라는 장벽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자유무역과 '평화적인 민주주의'를 비롯하는 '논거'를 끌고 오는 것은 진부한 일인데다, 제국주의의 기본 특성과 특징들을 망각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소시민적인 개량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카우츠키와 똑같이 제국주의를 소시민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부르주아 경제학자 A. 란스부르크가 무역통계 수치를 훨씬 과학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는 임의로 고른 한 나라와 식민지들만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와 (1) 그것에 금융적으로 종속된, 즉 그로부터 돈을 빌린 나라들에 대한 수출과 (2) 금융적으로 독립된 나라들에 대한 수출을 비교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국가 1889년 1908년 증가율

 

독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들 루마니아 48.2 70.8 + 47%

포르투갈 19.0 32.8 + 73%

아르헨티나 60.7 147.0 + 143%

브라질 48.7 84.5 + 73%

칠레 28.3 52.4 + 85%

터키 29.9 64.0 + 114%

합계 234.8 451.5 +92%

 

독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되지 않은 나라들 영국 651.8 997.4 + 53%

프랑스 210.2 437.9 + 108%

벨기에 137.2 322.8 + 135%

스위스 177.4 401.1 + 127%

오스트레일리아 21.2 64.5 + 205%

네덜란드령 동인도 8.8 40.7 + 363%

합계 1,206.6 2,264.4 + 87%

 

란스부르크는 합계를 내지 않았는데, 그런 까닭에 기묘하게도 만일 이 수치들이 뭔가 증명하는 게 있다면 자기 자신의 주장에 상반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들로의 수출은 금융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은 나라들로의 수출보다 많은 일지만 그래도 더 빨리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만일'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는데, 란스부르크의 통계도 결코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수출과 차관의 연관성을 추적하면서 란스부르크는 이렇게 적었다.

 

"1890~1년 독일 은행들은 루마니아에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이미 몇 년 전에 선불로 지급을 끝낸 것이었다. 차관은 주로 독일에서 철도 자재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 1891년 루마니아로 독일이 수출한 금액은 5,500만 마르크였다. 다음해 그것은 3,940만 마르크로 떨어졌고, 그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1900년에는 2,540만 마르크까지 떨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와서야 새로운 차관 두 개를 받은 덕분에 1891년 수준을 회복했다.

 

포르투갈로의 독일의 수출은 1888~9년의 차관의 결과 2,110만 마르크(1890년)로 증가했다. 그리고는 그후 2년간 1,620만 마르크와 740만 마르크로 떨어졌고, 1903년에야 간신히 원래의 수준에 도달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무역수치는 더욱 명확하다. 1888년과 1890년의 차관의 결과 아르헨티나로의 독일의 수출은 1889년에 6,070만 마르크에 달했다. 2년 뒤의 수출은 그 3분의 1도 안 되는 1,860만 마르크에 불과했다. 1901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1889년의 최고점을 넘어섰지만, 이는 새로운 국제와 지방체 발행, 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과 기타 신용 제공에 결부된 것이었다.

 

칠레에 대한 수출은 1889년의 차관의 결과, 4,520만 마르크(1892년)로 증가했지만, 1년 뒤엔 2,250만 마르크로 떨어졌다.

 

1906년 독일 은행들로부터 새로운 차관을 제공받기로 한 뒤 수출은 4,870만 마르크(1902년)로 증가했지만 1908년에 또 다시 5,240만 마르크로 떨어졌다."²³²

 

란스부르크는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익살스러운 도덕을 끄집어낸다. 차관과 연관된 수출이 얼마나 허약하고 불균형한 것인가, 국내 산업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대신 자본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가, 크루프 사가 대외차관을 얻어내려고 수백만이나 되는 뇌물을 쓰고 있다니 얼마나 '비싼' 것인가 등. 하지만 사실들은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수출의 증대는 부르주아 도덕 따위는 야랑곳하지 않고 일거양득의 이득을 거두는, 즉 첫째로 차관 자체에서 이익을 챙기고, 둘째로 그것이 크루프 사의 제품이나 철강 신디케이트의 철도 자재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될 때 같은 차관에서 또 이익을 챙기는 금융자본의 사기 술책들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나는 란스부르크의 통계가 결코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인용했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카우츠키와 스펙타토르의 통계보다 과학적이기 때문이고, 란스부르크가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접근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등에서 금융자본의 중요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수출과 금융가들의 술책과 연관성, 수출과 특히 카르텔 생산물의 판로와 연관성 등을 하나씩 따로 구분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식민지들 일반과 식민지 아닌 곳들을, 하나의 제국주의와 다른 제국주의를, 하나의 반식민지 또는 식민지(이집트)와 나머지 모든 나라들을 비교하는 것은 바로 그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은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이론적 비판은 마르크스주의와는 전혀 무관하며, 단지 기회주의 및 사회배외주의에 대해 화해와 통일을 주장하는 설교의 서론으로나 쓰고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이 비판이 제국주의의 그 가장 깊고 근본적인 모순들을 회피하고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점들 및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는 자유경쟁 사이의 모순, 금융자본의 거대한 '영업 활동'(및 막대한 이윤)과 자유시장에서의 '정직한' 거래 사이의 모순, 한편에 있는 카르텔 및 트러스트들과 다른 한편에 있는 카르텔화되지 않은 산업들 사이의 모순 등을 말이다.

 

카우츠키가 창조한 저 악명 높은 '초제국주의' 이론도 완전히 똑같은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그가 1915년에 한 주장을 홉슨의 1902년 주장과 비교해보라.

 

카우츠키: "현재의 제국주의 정책이 새로운 초제국주의 정책으로 교체되고, 국민적인 금융자본들이 서로 경쟁을 일삼는 자리에 세계를 공동으로 착취하는 금융자본의 국제연합이 들어설 가능성은 없는가? 어쨌든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생각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기 위한 충분한 전제조건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²³³

 

홉슨: "이렇게 각개가 미개한 속령들을 종자로 거느리는 몇몇 거대 연방제국들에 펼쳐진 기독교권역(Christendom)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현 추세의 가장 합당한 발전이자, 국제제국주의(inter-Imperialism)라는 확실한 토대 위에서 영구적인 평화에 대한 최선의 희망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카우츠키가 초제국주의(ultra-imperialism)라고 불렀던 것을 홉슨은 그보다 13년 전에 국제제국주의(inter-imperialism)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 라틴어 접두사를 다른 라틴어 접두사로 바꾼 것에 의해 새로운 현학적인 단어를 창조한 것을 빼면 카우츠키가 이룩한 '과학적' 사고의 진보란 홉슨이 본질적으로 영국 사제들의 위선이라고 기술한 것을 마르크스주의라고 참칭한 데 있을 뿐이다. 보어 전쟁 이후 이 지체 높으신 분들에게 남아프리카의 전장들에서 많은 사망자들을 잃은데다, 영국 금융가들에게 더 높은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 인상된 세금까지 부담했던 영국 소시민과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제국주의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며,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국제(또는 초)제국주의가 머지않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영국의 사제들이나 상냥한 카우츠키의 선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이론'이 지닌 객관적인, 즉 현실적인 사회적 의미는 단 하나밖에 없다. 대중의 관심을 현 시대의 침예한 모순들과 침예한 문제들로부터 돌려 뭔가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초제국주의'라는 거짓 전망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대중에게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가장 반동적인 위안을 주는 것.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있는 것은 오직 대중에 대한 기만뿐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하고만 비교해봐도, 카우츠키가 독일 노동자(및 모든 나라의 노동자)에게 주입하려 해쓰는 전망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인도, 인도차이나, 중국을 예로 들어보자. 6~7억 인구를 가진 이 세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²³⁴이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몇몇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금융자본에게 착취당하고 있음을 잘 알려져 있다. 이 제국주의 국가들이 방금 거론된 아시아 국가들에서 영토, 이익, 세력권을 지키거나 확대하기 위해서로 편을 갈라 동맹을 맺는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국제제국주의' 또는 '초제국주의' 동맹이 될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모든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서 말한 아시아 지역들의 '평화적인' 분할을 위해 동맹을 맺는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의 동맹일 것이다. 이러한 동맹의 실패들은 20세기 역사에서도, 예를 들면 중국에 대한 열강들의 태도에서 나타나고 있다.²³⁵ 묻건대, 자본주의가 그대로 유지되는 조건(다시 말해 카우츠키가 전제로 삼고 있는 바로 그런 조건)에서 이런 동맹들이 일시적이지 않을 것이라든가, 그것들이 모든 종류의, 모든 가능한 형태의 마찰·분쟁·투쟁들을 제거할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이 과연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하에서 세력권·이익·식민지 등을 분할하는 데 있어 분할 참가국들의 국력, 즉 전반적인 경제력·재정력·군사력 등을 고려하는 것 외에 다른 근거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할 참가국들의 국력은 불균등하게 변화한다. 자본주의하에서 개개의 기업·트러스트·산업부문·국가들이 균등하게 발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 독일의 자본주의적 국력은 당시 영국과 비교해보면 독일이 비참할 정도로 미미했다. 러시아와 비교할 때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10년이나 20년 후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관계가 여전히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영국의 사제들이나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카우츠키의 진부한 소시민적 환상 속이 아닌,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 있는 '국제제국주의' 또는 '초제국주의' 동맹은—그 동맹들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즉 어떤 제국주의 연합에 대한 다른 제국주의 연합이라는 형태는,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전반적 동맹이라는 형태는—불가피하게 전쟁과 전쟁 사이의 '참은 휴지기'에 불과하다. 평화적인 동맹이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에서 다시 평화적인 동맹이 성장하며 양자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는 바, 세계 경제와 세계 정치의 제국주의적 유착과 상호관계라는 같은 토양에서 평화적인 투쟁과 비평화적인 투쟁의 형태가 교대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총명하기 짝이 없는 카우츠키는 노동자를 달래고 그들을 부르주아지의 편으로 넘어간 사회배외주의자들과 화해시키기 위해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를 다른 고리로부터 떼어내는 것을 한다. 즉 중국의 '평정'을 위해 모든 열강들이 맺은 오늘의 평화적인 (그리고 초제국주의적인, 아니 초초제국주의적인) 동맹(의화단 봉기에 대한 진압²³⁶을 기억하라)을 내일의 평화적이지 않은 분쟁에서 떼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쟁은 예를 들어 터키 등의 분할을 위한 모레의 '평화적인' 전반적인 동맹을 준비한다. 제국주의 평화의 시기들과 제국주의 전쟁의 시기들 사이의 생생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신 카우츠키는 노동자들에게 생기 없는 추상을 제시하여 그들의 생기 없는 지도자들과 화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인 힐(Hill)²³⁷은 『유럽의 국제적 발전에서 외교의 역사 A History of the Diplomacy in the International Development of Europe』라는 저서의 서문에서 현대 외교사의 시기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1) 혁명의 시기 (2) 입헌 운동의 시기 (3) 오늘날의 "상업 제국주의" 시기.²³⁸ 그리고 어떤 저술가는 1870년 이후 영국이 취한 '세계 정책'의 역사를 네 시기로 나눈다. (1) 1차 아시아 시기(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 (2) 아프리카 시기(대략 1885~1907년): 아프리카 분할을 둘러싼 프랑스와의 투쟁(프랑스와 전쟁 직전까지 3년 1898년 파쇼다 사건²³⁹) (3) 2차 아시아 시기(러시아에 대항한 일본과의 조약²⁴⁰) (4) '유럽' 시기(주로 독일과 대립)²⁴¹ 이미 1905년에 '은행가' 리서는 "정치적 전초전이 금융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라고 쓰면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금융자본이 어떻게 그 나라들의 정치적 동맹을 준비했는지, 페르시아 때문에 독일과 영국의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중국에 대한 차관 때문에 모든 유럽 자본들의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제국주의 분쟁들과 땔 수 없이 결부돼 있는 '초제국주의' 평화 동맹의 생생한 현실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미화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의 가장 깊은 모순들에 대한 카우츠키의 은폐는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들에 대한 이 저자 자신의 비판에도 흠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는 금융자본과 독점의 시대이며, 그것은 어디에서나 자유가 아니라 지배를 열망한다. 어떤 정치 체제에서나 모든 면에서 반동화가 나타나고 정치 영역에서 모순들이 극단적으로 격화되는 것은 바로 그런 경향들의 결과다. 특히 격화되는 것은 민족역압과 합병에 대한, 곧 민족의 자주성을 침해하려는 열망이다(왜냐하면 합병은 바로 민족자결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힐퍼딩은 제국주의와 격화되는 민족역압 간의 연관성을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새로 개방된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의 수입이 여러 가지 모순을 심화시키며, (민족의식을 자각하게 된) 국민들 사이에 침입자에 대한 저항을 증대시키는데, 이 저항은 외국자본에 해로운 정책의 형태를 쉽게 취할 수 있다. 구래의 사회관계는 완전히 변혁되고, 수천 년간 '역사 없는 민족'을 묶어놓은 농업의 속박은 타파되며, 이들 민족이 자본주의적인 소용돌이 안으로 편입되어간다. 자본주의 자체가 점차 피정복 민족에게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제공한다. 이들은 경제적·문화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한때는 유럽 민족들의 최고의 승고한 목표였던 통일된 민족국가를 자신의 목표로 삼게 된다. 이 민족자주 운동은 유럽 자본의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유망한 착취 지역에서 유럽 자본을 위협하게 되며, 유럽 자본은 권력수단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것에 의해서만 지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우리는 새로 개방된 나라들뿐 아니라 오래된 나라들에서도 제국주의는 합병으로, 민족역압의 강화로, 따라서 저항의 격화로 나아간다는 점을 덧붙여야만 한다. 카우츠키는 제국주의에 의한 정치적 반동에 반대하면서도 제국주의 시대에 기회주의자들과 화합이 불가능하다는 특히 중요해진 문제는 불분명하게 남겨두고 있다. 그는 합병에 반대하면서도 기회주의자들에게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을, 그들이 받아들이기 가장 쉬운 형태로 반대한다. 그는 독일 청중에게 직접 호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당면 문제, 예를 들면 알자스-로렌²⁴⁴은 독일이 합병한 땅이라는 점은 얼버무려버린다. 카우츠키의 이런 '사고의 편협성'을 가늠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만약 어떤 일본인이 미국인들의 필리핀 합병을 비난한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그것이 필리핀을 합병하려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서가 아니라 모든 합병에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일본인의 합병 반대 '투쟁'은 그가 일본의 조선 합병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설 경우에만, 일본으로부터 조선이 분리할 자유를 요구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성실하고 정치적으로 정치한 것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이론적 분석과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비판은 가장 근본적인 모순들을 은폐하고 완화하려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절대로 화해할 수 없는 정신과 유럽 노동운동에서 무너져내리고 있는 기회주의와 화합을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유지하려는 열망으로 시종일관 점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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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패

 

이제 제국주의의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측면을 살펴볼 터데, 이것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논의들에서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마르크스주의자 힐퍼딩의 결점 가운데 하나가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홉슨보다 한 걸음 뒤쳐졌다는 것이다. 그 측면은 바로 제국주의의 특성인 기생성이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제국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경제적 토대는 독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인즉, 다시 말해 자본주의로부터 자라나와 자본주의의 일반적 환경인 상품생산과 경쟁 속에 존재하며, 이 일반적인 환경과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모순관계에 있는 독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다른 모든 독점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정체되고 부패하는 경향을 낳는다. 가령 잠시 동안이라도 독점가격이 설정되면 기술의 진보를 비롯해 모든 진보, 발전 운동을 자극하는 동기들은 어느 정도 사라지며, 더 나아가서는 기술의 진보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킬 수도 있는 경제적 가능성까지 나타난다. 그런 예로, 미국에서 오웬스(Owens)¹⁹²라는 사람이 병 제조 기계를 발명했던 사건을 들 수 있다. 그 기계는 병 생산에 혁명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으나, 독일의 병 제조업체 카르텔은 오웬스의 특허를 사서 묵히며, 그 기계가 상용화되는 것을 막았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독점이 경쟁을 세계 시장에서 완전히, 아주 오랫동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덧붙여 말하자면 초제국주의 이론이 엉터리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개선의 도입을 통해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독점의 고유한 특성인 정체되고 부패하는 경향은 계속 작용하며, 개별 산업분야나 개별 국가들에서 일정 시기 동안 우위를 점한다.

 

특히 광대하고 풍요롭거나, 입지가 좋은 식민지들에 대한 독점적인 보유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제국주의란 몇몇 나라들에 화폐자본이 대량으로 축적되는 것이고, 그 금액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유가증권으로 천억~1,500억에 달한다. 그 결과 금리생활자, 즉, '이자놀이'로 생활하는 사람들, 어떠한 기업에도 전혀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 빈둥대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계급,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계층이 이례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경제적 기초 중 하나인 자본수출은 금리생활자층의 생산으로부터의 이 완전한 단절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몇몇 해외 나라들과 식민지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의해서 생활하는 나라 전체에 기생성이라는 각인을 새긴다.

 

홉슨은 이렇게 썼다. "1893년에 영국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은 영국 본토의 전체 부의 약 15퍼센트에 해당한다."¹⁹³ 1915년에 이르러 이 자본이 약 두 배 반으로 증대했다는 것을 상기하라. 홉슨은 다시 말하고 있다. "납세자에게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하는 반면, 제조업자와 무역업자에게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가치를 주는 침략적 제국주의는 …… 자기 자본을 투자할 곳을 찾는 자본가들(영어로 이 개념은 인베스터, 즉 투자가, 금리생활자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에게는 커다란 이익의 원천이 된다. …… 영국이 외국 및 식민지 전체와의 교역 곧 수출입 무역으로부터 얻는 연간 수수료 소득은 기펜(Giffen) 경¹⁹⁴에 의하면 1899년의 경우에 총 무역 거래액 8억 파운드의 2.5퍼센트인 1,800만 파운드(약 1억 7천만 루블)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금액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국의 침략적 제국주의를 설명해줄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9천만에서 1억 파운드의 소득, '투자된'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 금리소득자의 소득이다.

 

세계 최고의 '상업' 국가에서 금리생활자의 소득이 외국무역에서 얻는 소득의 다섯 배에 이른다! 여기에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적 기생성의 본질이 있다.

 

그래서 금리생활자국가(Rentnerstaat) 또는 고리대국가라는 개념이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학 문헌들에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세계는 한 줌밖에 안 되는 고리대국가들과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채무자 국가들로 나뉘었다.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해외투자에서 우선순위는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있거나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들에 주어진다. 영국은 이집트, 일본, 중국, 남아메리카에 돈을 빌려준다. 그 나라 함대는 여기서 비상 시 집달리 역할을 한다. 정치적 힘은 채무자의 반란에서 영국을 보호한다."¹⁹⁵ 자르토리우스 폰 발터스하우젠(Sartorius von Waltershausen)¹⁹⁶은 『해외투자의 국민경제 체계 Das Volkswirtschaftliche System』라는 저작에서 네덜란드를 "금리생활 국가"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지금은 영국과 프랑스도 그렇게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¹⁹⁷ 실더는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 다섯 개 공업 국가들은 "명확한 채권국"이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를 여기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단지 이 나라가 "공업적으로 덜 발전"¹⁹⁸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에 대해서만 채권국이다.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영국은 점차 공업국에서 채권국으로 바뀌고 있다. 공업 생산 및 공산품 수출의 절대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 전체에서 이자, 배당금, 증권발행, 중개수수료, 투기에서 나오는 소득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제국주의적 호황의 경제적 토대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유착관계는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¹⁹⁹

 

독일에 대해서는 베를린의 잡지 《디 방크》의 발행인인 A. 란스부르크가 1911년 『금리생활국가 독일Germany-a Rentier State』란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독일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에게 나타나는 금리생활자화 경향을 곧잘 비웃지만, 이때 잊고 있는 것은 중간계급에 관한 한 독일의 상황도 프랑스와 같 수록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²⁰⁰

 

금리생활자 국가는 부패하고 있는 기생적인 자본주의 국가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전체 사회·정치 정세에, 또 특히 노동운동 내의 두 가지 기본 경향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가능한 한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서 증인으로 누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홉슨에게 말하도록 해 보자. 이는 홉슨이 '마르크스주의 정통'을 선호한다는 혐의를 누구에게도 받지 않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영국인이라 식민지와 금융자본, 제국주의에 대한 경험이 가장 풍부한 이 나라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홉슨은 보어 전쟁의 생생한 인상을 기초로 하여 제국주의와 '금융업자'의 이해의 유착, 청부와 납입 등으로부터의 그들의 이윤의 증대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처럼 명백한 기생적 정책을 지휘하고 있는 자들은 자본가들이지만, 한편에서는 그와 똑같은 동기가 특수한 노동자 층에서도 작용되고 있다. 여러 도시들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산업은 정부의 고용이나 하청에 의존하고 있다. 금속공업이나 조선공업의 중심지에서 제국주의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사실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저서의 견해에 따르면,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이 오래된 제국의 힘을 약화시켰다. (1) "경제적인 기생성"과 (2) 종속민족들로 이루어진 군대 편성이다. "첫째로 경제적 기생의 습관이 있는데, 지배 국가는 이것에 의해 자국의 지배계급을 부유하게 만드는 한편, 하층계급을 매수하여 순종시키기 위해서 그 영토, 식민지 및 속령을 이용해왔다." 내가 여기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그런 매수가 경제적으로 가능하려면 높은 독점이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상황에 대해서 홉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제국주의의 맹목성을 나타내는 가장 이상한 징후 중의 하나는 영국, 프랑스, 그리고 기타 제국주의 국가들이 거리낌 없는 무관심 속에서 이 같은 위험한 의존 정책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영국이 가장 앞서가고 있다. 우리가 인도제국을 얻기 위해 써왔던 대부분의 전투는 원주민들에 의해 치러진 것이다. 인도의 경우 대규모의 상비군은 호남의 이집트에서처럼 영국인 지휘관들의 지휘 아래 있었다. 우리가 아프리카 영토와 관련하여 벌였던 전투는 그 남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우리를 위해 원주민들이 치러낸 것이다."

 

중국 분할의 전망은 홉슨에게 다음과 같은 경제적 평가를 내리게 한다. "그때²⁰¹에는 서유럽의 보다 많은 부분이, 남부잉글랜드의 시골 지역, 리비에라,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관광 지역이나 저택 지역이 이미 보인 바 있는 외양이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즉 극동으로부터 배당금이나 연금을 빼내오는 부유한 귀족의 소집단과, 이보다는 약간 큰 집단으로서 그에 따르는 전문직의 종자와 상인, 그리고 운송업 및 보다 소모되기 쉬운 상품생산의 최종 단계에 종사하는 개인적인 하인과 노동자의 대집단이 그것이다. 주요한 기간산업은 모조리 사라지고 주요 식량과 공업제품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부터 공물로 유입될 것이다." "우리는, 서구 여러 국가들의 보다 큰 동맹, 세계 문명의 대의를 촉진하기는커녕 서양의 기생주의라는 거대한 위험을 불러들일 수도 있는 유럽열강의 연방화, 그 상층계급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부터 막대한 공물을 끌어들여 그것을 가지고 길들여진 가신들의 대군—이 가신들은 더 이상 농업이나 제조업 같은 주요 산업에 종사하지 않고 새로운 금융귀족 정치의 지배 아래서 계속 개인적인 직무나 사소한 산업상의 직무를 수행한다—을 부양하는 일군의 선진공업국까지가 생겨날 가능성을 이제까지 예견해보았다. 고려의 가치도 없는 이론"(전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을 탐색하려 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날 이미 이 상태에 떨어져 있는 남부잉글랜드 여러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상태를 검토하게 하자. 또 그들로 하여금 금융업자·투자가 및 정계와 실업계 중진으로 이루어지는 비슷한 집단의 경제적 지배에 중국을 종속시킴으로써 그런 제도의 거창한 확장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데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자. 그 집단은 유럽에서 소비하기 위해, 세계사상 최대인 잠재적 이윤의 저수지에서 이윤을 빨아내려고 하고 있다.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고 세계 세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이런 해석이나 다른 어떤 단 하나의 해석도 그다지 개연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오늘날 서유럽의 제국주의를 지배하는 세력은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거기에 대처하거나 그것을 전환시키지 않는 한 그것은 대략 이러한 결말을 향해 나갈 것이다."²⁰²

 

저자는 전적으로 옳다. 만일 제국주의 세력들이 저항에 부딪히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러한 상황으로 이끌려갈 것이다. 현재의 제국주의적인 정세에서 '유럽합중국'²⁰³의 의미가 여기서 올바르게 평가되고 있다. 다만 노동운동 내에서도 대다수의 나라들에서 지금 일시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이 바로 이 방향으로 체계적이고 부단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여두어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란 세계 분할과 단지 중국에 대해서만은 아닌 착취를 의미하고, 한 줌밖에 안되는 가장 부유한 나라들을 위한 높은 독점이윤을 의미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층부를 매수할 수 있는 경제적 가능성을 창출하여, 그로부터 기회주의자를 키우고 형성시키고 강화시킨다. 단지 제국주의 일반에, 특히 기회주의에 대항하고 있는 세력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인데, 사회자유주의자 홉슨의 눈에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과거에는 제국주의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당에서 제명됐지만, 지금이라면 독일의 이른바 '사회민주'당의 수뇌가 될 수도 있을 법한 독일의 기회주의자 게르하르트 힐데브란트(Gerhard Hildebrand)²⁰⁴는 홉슨을 훌륭하게 보완하여,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항하기 위한, '대이슬람 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강력한 육해군'을 유지하기 위한, '중국과 일본의 연합'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목적으로 하는 (러시아를 제외한) 서유럽합중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²⁰⁵

 

슐체-게베르니츠의 책에 나오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서술도 우리에게 그와 같은 기생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영국의 국민소득은 1865년과 98년 사이에 거의 두 배가 됐는데, 같은 시기에 '해외로부터' 얻는 소득은 아홉 배로 뛰었다. 제국주의의 "업적"이 "니그로에게 근면의 습관을 가르친 것"(강제성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이라면, 제국주의의 "위험"은 "유럽이 고된 육체노동을 -처음에는 농업노동과 광산노동을, 다음에는 보다 거친 공업노동을 -피부가 검은 인종의 어깨에 떠넘기고 자신은 금리생활자의 역할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로 인해 아마도 피부가 붉은 인종과 검은 인종이 경제적 해방과 그에 이은 정치적 해방을 준비하게 되리라는 것"²⁰⁶이다.

 

영국에서는 경작에 이용되지 않고 부자들의 스포츠와 오락에 사용되는 토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냥 및 여타 유흥을 위한 가장 귀족적인 장소인 스코틀랜드는 "그곳의 과거와 카네기 씨(미국의 억만장자)가 그곳을 먹여 살린다"고 회자되고 있다. 영국은 매년 경마와 여우사냥에 1,400만 파운드(약 1억 3천만 루블)를 소비한다. 영국의 금리생활자는 거의 100만 명에 이른다. 반대로 생산에 고용된 인구의 비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1851년 17.9 4.1 23%

1901년 32.5 4.9 15%

단위 : 100만 명

 

한편 '20세기 초 영국 제국주의'를 연구한 이 부르주아 학자는 영국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노동자의 '상층'과 '진짜 프롤레타리아 하층'을 체계적으로 구분해야 했다. 이 노동자 상층은 대부분 협동조합과 노동조합, 스포츠단체와 수많은 종교단체의 구성원들이다. 선거권이 허용되는 것은 이 층까지이며, 영국에서 선거권은 '여전히 진짜 프롤레타리아 하층'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한돼 있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미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보통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수를 이루고 있을 뿐인 이 상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실업 문제는 주로 런던의 문제이거나 정치인들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²⁰⁷ 프롤레타리아트 하층의 문제일 뿐이다……."²⁰⁸ 여기에서 이 저자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의 기회주의자들도 이 층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금 서술하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과 관련한 제국주의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떠나는 이민은 줄어들고, 임금이 낮고 뒤처진 나라들로부터 그 나라들로 들어가는 이주민(노동자의 유입과 일반 주민의 이주)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떠나는 이민은 홉슨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1884년 이래 감소하고 있다. 1884년에 24만 2천 명이었던 외국으로의 이민자는 1900년에는 16만 9천 명이었다. 독일을 떠나는 이민자들은 1881~90년의 10년간 가장 많은 145만 3천 명에 달했지만, 그후 20년 동안은 각 10년간 54만 4천 명과 34만 1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서 독일로 들어간 노동자의 수가 증가했다. 1907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독일에는 134만 2,294명의 외국인이 있었는데, 그 중 공업노동자는 44만 800명, 농업노동자는 25만 7,329명 있었다.²⁰⁹ 프랑스에서는 광업노동자들이 '대부분'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²¹⁰ 등의 외국인이었다. 미국에서는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 가장 임금이 낮은 직업을 갖고 있었고, 감독으로 승진한 사람과 가장 보수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²¹¹ 제국주의는 노동자의 사이에도 특권을 가진 부류를 분리해서 그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광범위한 대중으로부터 갈라놓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그들 가운데 기회주의를 강화시키며, 노동운동을 일시적으로 부패시킨다는 제국주의의 경향은 영국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무렵보다 훨씬 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특별히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 것은 제국주의의 두 가지 큰 특징이 영국에서는 19세기 중반 경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특징이란 광대한 식민지 영토와 세계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운동에서 기회주의와 영국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특징이 가진 이러한 관련성을 수십 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예를 들면 엥겔스는 1858년 10월 7일 마르크스에게 이렇게 썼다.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실상 갈수록 부르주아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모든 국민들 가운데 가장 부르주아적인 이 국민은 결국에는 부르주아와 함께 부르주아적인 귀족과 부르주아적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지는 데까지 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네. 전세계를 착취하고 있는 국민에게 있어서 이는 분명히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일세." 그로부터 거의 4반세기가 지난 후인 1881년 8월 11일자의 편지에서 엥겔스는 "부르주아에게 몸을 팔거나, 적어도 그들에게서 돈을 받고 있는 패거리들의 지도를 받아들이고 있는 최악인 영국노동조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카우츠키에게 보낸 1882년 9월 12일자 편지에서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당신이 내게 질문한 것은 이렇습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식민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정책 일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똑같습니다. 여기에는 정말이지 노동자 당이라는 것은 없고 보수당과 자유급진당만 있으며, 노동자들은 영국의 세계 시장 독점과 식민지 독점으로 함께 속편하게 먹고살고 있습니다."²¹²(엥겔스는 1892년에 출간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의 2판 서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적었다.)

 

여기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원인은 (1) 이 나라에 의한 전세계의 착취, (2) 세계 시장에서 이 나라의 독점적 지위, (3) 그것의 식민지 독점이다. 결과는 (1) 영국 프롤레타리아트 일부의 부르주아화, (2)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가 부르주아에게 몸을 팔거나 적어도 그들에게서 돈을 받고 있는 자들의 지도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의 제국주의는 한 줌밖에 안 되는 나라들에 의한 세계의 분할을 완성했으며, 이제 이 나라들은 각기 1858년의 영국에 버금가는 '전세계'의 조각들을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있다는 의미에서) 착취하고 있다. 각국은 트러스트, 카르텔, 금융자본,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관계 덕택으로 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본 것처럼, 전세계 식민지 영토 7,500만 평방킬로미터 가운데 6,500만 평방킬로미터, 즉 86퍼센트는 여섯 강대국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고, 그 중 6,100만 평방킬로미터, 즉 81퍼센트는 강대국 세 나라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다.)

 

현 정세의 특징은 노동운동의 일반적·근본적인 이익과 기회주의 사이의 적대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경제적·정치적 조건들에 있다. 제국주의는 작은 싹에서 지배적인 체제로 성장했다. 자본주의 독점조직들이 국민경제와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세계의 분할은 완성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영국의 전일적인 독점 대신, 우리는 그 독점에 참가하려는 소수 제국주의 열강들의 투쟁을 목격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20세기 초엽 전체를 특징짓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회주의는 19세기 후반기 동안 영국에서 승리한 것과 같이 수십 년 동안이나 한 나라의 노동운동에서 완전한 승자로 나타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나라들에서 완전히 성숙하고, 무르익고, 썩어버린 나머지, 사회배외주의라는 부르주아 정치와 완전히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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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이쯤에서 제국주의에 대해 앞에서 말한 것들을 모아 총괄해보도록 하자.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일반이 가진 기본 특성들이 발전한 것이자, 그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 발전 단계의 아주 높은 특정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만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본주의의 몇몇 기본 특성들이 각각 자신의 대립물로 전화하기 시작하며, 자본주의로부터 더 높은 사회·경제체제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특징들이 모든 면에서 형성되고 드러나게 된다. 경제면에서 보면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이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자유경쟁은 자본주의 및 상품생산 일반의 기본 특성이며, 독점은 자유경쟁의 직접적인 대립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눈으로 자유경쟁이 독점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자유경쟁은 대규모 생산을 창출하여 소규모 생산을 몰아내고, 대규모 생산을 더더욱 거대한 규모의 생산으로 대체했으며, 생산과 자본의 집중을 초래하여 그로부터 독점이, 다른 말로는 카르텔·신디케이트·트러스트 및 그것들과 융합하여 수십억을 움직이는 십여 개 은행들의 자본이 자라나와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했다. 이러는 동시에 자유경쟁에서 자라나온 독점은 자유경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위에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면서, 일련의 특별히 침예하고 격렬한 모순·마찰·갈등들을 만들어낸다. 독점은 자본주의에서 더욱 높은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인 것이다.

 

만약 제국주의를 최대한 간단하게 정의해야 한다면, 제국주의는 독점 단계의 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정의는 가장 중요한 것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금융자본이란 산업가 독점연합의 자본과 융합한 소수의 거대 독점 은행들의 은행자본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 세계 분할이란 아직 어떤 자본주의 강대국도 점령하지 않은 지역으로 아무 방해 없이 확장할 수 있었던 식민정책에서 이미 완전히 분할된 세계 영토를 독점적으로 보유하려는 식민정책으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한 정의는, 요점을 간추리고 있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정의해야 하는 현상의 매우 중요한 특징들을 그것들로부터 연역해내야 하므로 역시나 불충분하다. 따라서 모든 정의는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며, 그것의 발전으로부터 연쇄되어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다 포괄할 수는 없음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기본 양태¹⁷⁷를 포함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1) 독점을 창출하여 그것이 경제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정도로 높은 발전 단계에 도달한 생산과 자본의 집중 (2)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 그리고 이 '금융자본'을 기초로 한 금융과두제의 탄생 (3)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 수출이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획득 (4) 세계를 분할하는 자본가들의 국제적인 독점연합들 형성 (5) 거대 자본주의 열강들에 의해 지구의 영토적 분할 완료. 요약하자면 제국주의란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형성되고, 자본수출이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며, 국제 트러스트들에 의한 세계 분할이 시작되고,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지구의 모든 영토 분할이 완료된 발전 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다.

 

만약 기본적이고 순수한 경제적 의미(앞에서 내린 정의는 그것에 한정되어 있다)뿐 아니라, 이 단계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일반에 대해 갖는 역사적 위치라든가 노동운동 내부의 두 개의 주요한 경향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제국주의를 어떻게 다르게 정의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정의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보게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앞에서처럼 해석된 제국주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한 단계라는 것을 유념하면 된다. 제국주의에 대해 가능한 한 좀 더 근거가 있는 개념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나는, 최근의 자본주의 경제에서 반박의 여지 없이 확증된 사실들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논설을 되도록 많이 인용하려고 했다. 은행자본 등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 양에서 질로의 전화, 즉 발전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로의 이행이 과연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볼 수 있도록 자세한 통계수치들을 인용한 것도 같은 목적을 위한 것이다. 자연과 사회의 모든 경계가 제한적이고 유동적이라는 것, 따라서 예컨대 제국주의가 '최종' 확립된 것이 어느 해 또는 몇 십 년대인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주의의 정의에 관해서, 무엇보다 먼저 이른바 제2인터내셔널 시대, 즉 1889년부터 1914년까지 25년 동안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던 K. 카우츠키와 논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제시한 제국주의의 정의에 표현된 기본 사상을 카우츠키는 1915년에, 아니 이미 1914년 11월에 매우 단호하게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점들을 언급했다. 제국주의는 경제의 '국면'이나 단계가 아니라 정책, 즉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특정 정책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제국주의를 '현대 자본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만약 제국주의를 카르텔, 보호정책, 금융업자의 지배, 식민정책 같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든 현상'으로 이해한다면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에 필연적인가라는 문제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동어반복'이 돼버릴 텐데 그렇게 되면 '제국주의는 당연히 자본주의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등. 카우츠키의 이러한 생각은 앞에서 내가 서술한 사상의 핵심 내용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왜냐하면 오랫동안 유사한 사상을 펼쳐온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진영에서의 반론은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주의 내 특정 조류의 반론으로서 일찍부터 알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¹⁷⁸). 그런 그의 사상은 그가 제국주의에 대해 내린 정의를 인용할 때 보다 정확히 드러날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고도로 발전한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거기에 어떤 민족이 살고 있는가와 관계 없이, 더 넓은 농업 지역(강조는 카우츠키)을 정복하고 합병하려는 모든 산업자본주의 민족의 열망에 존재한다."¹⁷⁹/¹⁸⁰

 

이런 정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이 정의는 제멋대로 민족 문제만을(그 자체로도, 제국주의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분리해서, 다른 민족을 합병하려는 나라들의 산업자본에만 제멋대로 연관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제멋대로 농업 지역의 합병만을 부각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합병을 원한다. —카우츠키가 내린 정의의 정치적 부분이 귀결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옳지만 대단히 불완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압제와 반동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카우츠키 본인이 자신의 정의에 포함시킨 문제의 경제적 측면이다. 카우츠키의 정의가 지닌 오류는 한눈에 번쩍 들어온다. 제국주의의 특징은 산업자본이 아니라 바로 금융자본이다. 프랑스에서 1880년대부터 합병(식민)정책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것이 산업자본이 약화되고 금융자본이 굉장히 급속하게 발전한 것과 관련이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농업 지역뿐 아니라 가장 공업화된 지역도 합병하려고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벨기에에 대한 독일의 욕망, 로렌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욕망), 이는 첫째로 이미 세계 분할이 완결된 탓에 재분할할 때는 모든 종류의 땅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여러 강대국들의 경쟁이야말로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경쟁국을 약화시키고 경쟁국의 헤게모니를 파괴하기 위해서 영토를 장악하려고 한다(독일에게는 벨기에가 영국에 대한 거점으로, 영국에게는 바그다드가 독일에 대한 거점으로 특별히 중요하다).

 

카우츠키는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영국을 예로 들고 있는데, 아마도 카우츠키 자신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제국주의라는 단어의 순수한 정치적 의미를 영국인들이 규정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국인 홉슨을 데려와서 1902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제국주의론』을 읽어보기로 하자.

 

"새로운 제국주의가 종래의 제국주의와 다른 점은 첫째는 성장하는 단일 제국의 야망 대신 각각 정치적 확장과 상업적 이득에 대한 똑같은 탐욕 때문에 경쟁하는 여러 제국들의 이론과 실천이 나타난다는 것이고, 둘째는 상업상의 이익보다 금융 또는 투자상의 이익이 우위에 선다는 것이다."¹⁸¹

 

우리는 카우츠키가 영국을 일반적인 예로 든 것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보았다(그는 고작 영국의 속류 제국주의자나 제국주의의 공공연한 옹호자를 인용할 수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카우츠키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자유주의자 홉슨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음을 확인한다. 홉슨은 현대 제국주의의 두 가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카우츠키는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역사적 구체성을 우롱하고 있다!) 특성들, 즉 (1) 몇몇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2) 상인에 대한 금융가들의 우위를 더 올바르게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공업국이 농업국을 합병하는 것이 주로 문제라면, 그 경우에는 상인의 역할이 가장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카우츠키의 정의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 및 마르크스주의 실천과 단절한 견해들의 총체에 하나의 토대로 기능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카우츠키가 제기한 용어상의 논쟁, 자본주의의 이 가장 새로운 단계를 제국주의라고 부를 것인가, 금융자본 단계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마음대로 불러라.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의 본질은 카우츠키가 합병을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으로 설명하고, 합병 정책에다가 금융자본이라는 똑같은 토대 위에서 언뜻 보기에 가능할 것 같은 다른 부르주아 정책을 대립시키는 데 있다. 그 결과 경제에서 독점과 정치에서 독점적이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고 침략적이지 않은 행동 방식이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바로 이 금융자본 시대에 완성된,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보이는 독특한 현 모습의 토대가 되는 지구의 영토 분할이 제국주의적이지 않은 정책들과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하여 가장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들의 심각성을 폭로하는 대신 그것을 흐리고 무디게 만들고 마르크스주의 대신 부르주아 개량주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카우츠키는 독일에서 합병과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인 쿠노(Cunow)¹⁸²와 논쟁한다. 쿠노는 조잡하고도 뻔뻔하게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이며 진보적이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진보적이며, 그러므로 그 앞에 납작 엎드려 찬양해야 한다! 이런 논리는 1894~5년에 나로드니키¹⁸³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난하던 조롱,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를 필연적이고 진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선술집이나 개업해서 자본주의를 보급하는 데 애써야 할 것이라던 조롱과 비슷하다.¹⁸⁴ 카우츠키는 쿠노를 반박한다. 맞다.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정책들 가운데 한 형태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정책과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 즉 제국주의나 합병 등과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

 

이 반론은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제국주의와의 화해를 이야기하는 더욱 교묘하고 더욱 은밀한(따라서 더욱 위험한) 설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트러스트 및 은행의 경제적 토대를 건드리지 않는 트러스트 및 은행의 정책과의 '투쟁'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와 평화주의로, 선량하고 순진한 희망들의 표현으로 귀결될 뿐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모순들을 철저하게 폭로하는 대신 회피하고, 그 모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공통점이 없는 카우츠키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런 '이론'이 쿠노 부류들과 뭉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카우츠키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또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카르텔 정책이 대외정책으로 확장되는 초제국주의 단계로 말이다"¹⁸⁵라고 쓰고 있다. 이는 곧 제국주의를 초월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단합하는 단계, 자본주의 아래에서 전쟁이 중식되는 단계,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이 세계를 공동으로 착취"¹⁸⁶하는 단계다.

 

이 '초제국주의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와 얼마나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천천히 다뤄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 책의 전체 계획에 따라 이 문제에 관련된 정확한 경제수치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초제국주의"는 가능한 것일까, 초허튼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

 

만일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순수"한 추상으로 이해한다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명제밖에 없을 것이다. 독점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세계적 독점, 단일한 전세계적 트러스트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 명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식량을 실험실 내에서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아무 내용이 없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초제국주의 '이론'은 '초농업 이론'만큼이나 엉터리다.

 

만일 20세기 초에 들어맞는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시대로서 금융자본의 시대의 "순수하게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서 말한다면, "초제국주의"라는 죽은 추상(현존하는 모순들의 심각성으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는 지극히 반동적인 목적에 기여하는 것)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현대 세계 경제의 구체적인 경제 현실을 그것에 대치시키는 것이다. 초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잡담은, 특히 금융자본의 지배는 실제로는 세계 경제 내부의 불균등성과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들을 약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근본으로부터 잘못된, 그리고 제국주의의 옹호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상을 고취하고 있다.¹⁸⁷

 

R. 칼버(Calwer)¹⁸⁸는 소책자『세계경제입문Einführung in die Weltwirtschaft』¹⁸⁹에서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 무렵에서 세계 경제 내부의 상호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관념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경제수치를 총괄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전세계를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주요 경제권'으로 나누고 있다.

 

(1) 중앙유럽권(러시아와 영국을 제외한 전유럽), (2) 영국권, (3) 러시아권, (4) 동아시아권, (5) 아메리카권. 식민지는 그것이 속한 국가의 '권역'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어느 권역에도 속하지 않는 소수의 나라, 예를 들면 아시아의 페르시아·아프가니스탄·아라비아, 아프리카의 모로코·아비시니아 등은 '제외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 대해 그가 제시한 경제수치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세계 주요 경제권 면적 (100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100만 명) 철도 (천 킬로미터) 상선 (100만 톤) 수출입 합계 (억 마르크) 석탄 채굴량 (100만 톤) 선철 생산량 (100만 톤) 면방적업의 방추 수 (100만 개)

(1) 중앙유럽권 27.6 *(23.6) 388 (146) 204 8 410 251 15 26

(2) 영국권 28.9 *(28.6) 398 (355) 140 11 250 249 9 51

(3) 러시아권 22 131 63 1 30 16 3 7

(4) 동아시아권 12 389 8 1 20 8 0.02 2

(5) 아메리카권 30 148 379 6 140 245 14 19

*괄호 안 숫자는 식민지의 면적과 인구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교통·무역·공업이 매우 발달한) 세 권역, 즉 중앙유럽권, 영국권, 아메리카권을 보자. 이 권역들에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 나라, 독일, 영국, 미국이 있다. 이 나라들 사이의 제국주의적인 경쟁과 투쟁은 독일이 가진 권역이 보장되었고 식민지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중앙유럽'이 완성되는 것은 미래의 일이며, 그것은 필사적인 투쟁 속에서 탄생할 것이다. 당분간 전유럽의 특징은 정치적 분열 상태다. 그에 비해 영국권과 아메리카권에서는 정치적 집중이 매우 많이 진전되었지만, 광대한 식민지를 갖고 있는 영국과 별로 일 없는 식민지밖에 갖고 있지 못한 미국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들에게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다른 두 개의 권력은 자본주의 발전이 미약한 지역으로 러시아권과 동아시아권이다. 러시아권의 인구밀도는 매우 낮고, 동아시아권은 매우 높다. 앞의 지역은 정치적 집중도가 높지만, 뒤의 지역은 낮다. 중국의 분할은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며, 중국을 둘러싼 일본, 미국 등의 투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곧 경제적·정치적 조건들이 이처럼 굉장히 다양하고, 가지각색의 국가들이 성장 속도 등에서 극히 불균형하며,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평화로운' 초제국주의라는 카우츠키의 어리석은 이야기와 대비해보라. 이는 겉면은 소시민이 무서운 현실에서 몸을 숨기려는 반동적인 시도가 아닐까? 카우츠키에게는 '초제국주의'의 맹아로 생각되는(실험실에서 제조된 알약을 초농업의 맹아라고 선언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 카르텔은 세계의 분할하고 재분할하는 실제 사례, 즉 평화로운 분할에서 평화롭지 않은 분할로 이행하거나 그 반대로 이행하는 실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국제 철도 신디케이트와 국제 해운 트러스트에 독일이 참여할 경우, 세계를 평화롭게 분할하고 있었던 아메리카 등지의 금융자본은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세력관계에 근거해서 전혀 평화롭지 않은 방법으로 당장 세계를 재분할하지 않겠는가?

 

금융자본과 트러스트는 세계 경제의 다양한 부분들 사이에 나타나는 성장 속도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히고 있다. 그런데 세력관계가 변화하는 경우, 자본주의 시대에 힘이 아니면 무엇으로 모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세계 경제 전체에서 자본주의와 금융자본의 성장 속도의 차이에 관한 매우 정확한 수치를 철도 통계에서 찾아낼 수 있다.¹⁹⁰ 제국주의가 발전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철도의 길이는 아래와 같이 변화했다.

 

철도 단위 : 천 킬로미터

1890년 1913년 증가량

유럽 224 346 +122

미국 268 411 +143

모든 식민지 82 210 +128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립국과 반독립국 43 137 +94

합계 617 1,104

 

따라서 철도의 발전은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식민지와 독립국(및 반독립국)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네다섯 개의 가장 큰 자본주의 국가들의 금융자본이 이 지역에서 전면적으로 군림하고 지배하고 있다. 식민지와 아시아, 아메리카 등지의 나라들에서 20만 킬로미터의 새로운 철도, 그것은 400억 마르크 이상의 새로운 자본의 투입이 특별히 유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수익이 특별히 보장되고, 제강공장에 이익이 많은 주문이 들어가는 등의 일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은 식민지들과 대양 너머의 여러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 중에서 새로운 제국주의 열강들(예를 들면 일본)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 제국주의의 투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금융자본이 식민지들과 대양 너머의 특히 수익성이 높은 기업들로부터 획득하는 공물은 늘어나고 있다. 이 '노획물'의 분배에서 극히 큰 부분이 생산력 발전 속도에서 항상 선두에 있지는 못한 나라들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가장 큰 강대국들의 철도 길이는 식민지까지 포함했을 때 다음과 같다.

 

1890년 1913년 증가

미국 268 413 145

대영제국 107 208 101

러시아 32 78 46

독일 43 68 25

프랑스 41 63 22

5대 강국 합계 491 830 339

 

이처럼 전체 철도 길이의 약 80퍼센트가 최대 열강 다섯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철도들에서 소유의 집중, 금융자본의 집중은 훨씬 더 엄청나게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영국과 프랑스의 이른바 백만장자들이 아메리카, 러시아 및 다른 나라 철도들의 주식과 회사채들을 굉장히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식민지 덕분에 '그것의' 철도망을 십만 킬로미터나 늘릴 수 있었는데, 이는 독일의 증가량의 네 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시기에 독일의 생산력은, 특히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에 있어서 프랑스와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에 대해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1892년 영국의 선철 생산량이 680만 톤인 데 비해 독일은 490만 톤에 불과했지만, 1912년에는 이미 영국의 900만 톤에 대해 1,760만 톤을 생산하여 영국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¹⁹¹ 분명, 자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한쪽의 생산력 발전 및 자본 축적과, 다른 쪽의 금융자본을 위한 식민지 및 '세력권'의 분할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없애는 데 있어서 전쟁 외의 다른 어떤 수단이 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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