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이쯤에서 제국주의에 대해 앞에서 말한 것들을 모아 총괄해보도록 하자.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일반이 가진 기본 특성들이 발전한 것이자, 그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 발전 단계의 아주 높은 특정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만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본주의의 몇몇 기본 특성들이 각각 자신의 대립물로 전화하기 시작하며, 자본주의로부터 더 높은 사회·경제체제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특징들이 모든 면에서 형성되고 드러나게 된다. 경제면에서 보면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이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자유경쟁은 자본주의 및 상품생산 일반의 기본 특성이며, 독점은 자유경쟁의 직접적인 대립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눈으로 자유경쟁이 독점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자유경쟁은 대규모 생산을 창출하여 소규모 생산을 몰아내고, 대규모 생산을 더더욱 거대한 규모의 생산으로 대체했으며, 생산과 자본의 집중을 초래하여 그로부터 독점이, 다른 말로는 카르텔·신디케이트·트러스트 및 그것들과 융합하여 수십억을 움직이는 십여 개 은행들의 자본이 자라나와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했다. 이러는 동시에 자유경쟁에서 자라나온 독점은 자유경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위에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면서, 일련의 특별히 침예하고 격렬한 모순·마찰·갈등들을 만들어낸다. 독점은 자본주의에서 더욱 높은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인 것이다.
만약 제국주의를 최대한 간단하게 정의해야 한다면, 제국주의는 독점 단계의 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정의는 가장 중요한 것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금융자본이란 산업가 독점연합의 자본과 융합한 소수의 거대 독점 은행들의 은행자본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 세계 분할이란 아직 어떤 자본주의 강대국도 점령하지 않은 지역으로 아무 방해 없이 확장할 수 있었던 식민정책에서 이미 완전히 분할된 세계 영토를 독점적으로 보유하려는 식민정책으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한 정의는, 요점을 간추리고 있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정의해야 하는 현상의 매우 중요한 특징들을 그것들로부터 연역해내야 하므로 역시나 불충분하다. 따라서 모든 정의는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며, 그것의 발전으로부터 연쇄되어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다 포괄할 수는 없음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기본 양태¹⁷⁷를 포함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1) 독점을 창출하여 그것이 경제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정도로 높은 발전 단계에 도달한 생산과 자본의 집중 (2)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 그리고 이 '금융자본'을 기초로 한 금융과두제의 탄생 (3)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 수출이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획득 (4) 세계를 분할하는 자본가들의 국제적인 독점연합들 형성 (5) 거대 자본주의 열강들에 의해 지구의 영토적 분할 완료. 요약하자면 제국주의란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형성되고, 자본수출이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며, 국제 트러스트들에 의한 세계 분할이 시작되고,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지구의 모든 영토 분할이 완료된 발전 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다.
만약 기본적이고 순수한 경제적 의미(앞에서 내린 정의는 그것에 한정되어 있다)뿐 아니라, 이 단계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일반에 대해 갖는 역사적 위치라든가 노동운동 내부의 두 개의 주요한 경향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제국주의를 어떻게 다르게 정의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정의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보게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앞에서처럼 해석된 제국주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한 단계라는 것을 유념하면 된다. 제국주의에 대해 가능한 한 좀 더 근거가 있는 개념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나는, 최근의 자본주의 경제에서 반박의 여지 없이 확증된 사실들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논설을 되도록 많이 인용하려고 했다. 은행자본 등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 양에서 질로의 전화, 즉 발전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로의 이행이 과연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볼 수 있도록 자세한 통계수치들을 인용한 것도 같은 목적을 위한 것이다. 자연과 사회의 모든 경계가 제한적이고 유동적이라는 것, 따라서 예컨대 제국주의가 '최종' 확립된 것이 어느 해 또는 몇 십 년대인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주의의 정의에 관해서, 무엇보다 먼저 이른바 제2인터내셔널 시대, 즉 1889년부터 1914년까지 25년 동안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던 K. 카우츠키와 논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제시한 제국주의의 정의에 표현된 기본 사상을 카우츠키는 1915년에, 아니 이미 1914년 11월에 매우 단호하게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점들을 언급했다. 제국주의는 경제의 '국면'이나 단계가 아니라 정책, 즉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특정 정책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제국주의를 '현대 자본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만약 제국주의를 카르텔, 보호정책, 금융업자의 지배, 식민정책 같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든 현상'으로 이해한다면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에 필연적인가라는 문제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동어반복'이 돼버릴 텐데 그렇게 되면 '제국주의는 당연히 자본주의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등. 카우츠키의 이러한 생각은 앞에서 내가 서술한 사상의 핵심 내용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왜냐하면 오랫동안 유사한 사상을 펼쳐온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진영에서의 반론은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주의 내 특정 조류의 반론으로서 일찍부터 알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¹⁷⁸). 그런 그의 사상은 그가 제국주의에 대해 내린 정의를 인용할 때 보다 정확히 드러날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고도로 발전한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거기에 어떤 민족이 살고 있는가와 관계 없이, 더 넓은 농업 지역(강조는 카우츠키)을 정복하고 합병하려는 모든 산업자본주의 민족의 열망에 존재한다."¹⁷⁹/¹⁸⁰
이런 정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이 정의는 제멋대로 민족 문제만을(그 자체로도, 제국주의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분리해서, 다른 민족을 합병하려는 나라들의 산업자본에만 제멋대로 연관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제멋대로 농업 지역의 합병만을 부각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합병을 원한다. —카우츠키가 내린 정의의 정치적 부분이 귀결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옳지만 대단히 불완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압제와 반동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카우츠키 본인이 자신의 정의에 포함시킨 문제의 경제적 측면이다. 카우츠키의 정의가 지닌 오류는 한눈에 번쩍 들어온다. 제국주의의 특징은 산업자본이 아니라 바로 금융자본이다. 프랑스에서 1880년대부터 합병(식민)정책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것이 산업자본이 약화되고 금융자본이 굉장히 급속하게 발전한 것과 관련이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농업 지역뿐 아니라 가장 공업화된 지역도 합병하려고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벨기에에 대한 독일의 욕망, 로렌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욕망), 이는 첫째로 이미 세계 분할이 완결된 탓에 재분할할 때는 모든 종류의 땅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여러 강대국들의 경쟁이야말로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경쟁국을 약화시키고 경쟁국의 헤게모니를 파괴하기 위해서 영토를 장악하려고 한다(독일에게는 벨기에가 영국에 대한 거점으로, 영국에게는 바그다드가 독일에 대한 거점으로 특별히 중요하다).
카우츠키는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영국을 예로 들고 있는데, 아마도 카우츠키 자신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제국주의라는 단어의 순수한 정치적 의미를 영국인들이 규정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국인 홉슨을 데려와서 1902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제국주의론』을 읽어보기로 하자.
"새로운 제국주의가 종래의 제국주의와 다른 점은 첫째는 성장하는 단일 제국의 야망 대신 각각 정치적 확장과 상업적 이득에 대한 똑같은 탐욕 때문에 경쟁하는 여러 제국들의 이론과 실천이 나타난다는 것이고, 둘째는 상업상의 이익보다 금융 또는 투자상의 이익이 우위에 선다는 것이다."¹⁸¹
우리는 카우츠키가 영국을 일반적인 예로 든 것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보았다(그는 고작 영국의 속류 제국주의자나 제국주의의 공공연한 옹호자를 인용할 수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카우츠키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자유주의자 홉슨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음을 확인한다. 홉슨은 현대 제국주의의 두 가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카우츠키는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역사적 구체성을 우롱하고 있다!) 특성들, 즉 (1) 몇몇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2) 상인에 대한 금융가들의 우위를 더 올바르게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공업국이 농업국을 합병하는 것이 주로 문제라면, 그 경우에는 상인의 역할이 가장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카우츠키의 정의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 및 마르크스주의 실천과 단절한 견해들의 총체에 하나의 토대로 기능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카우츠키가 제기한 용어상의 논쟁, 자본주의의 이 가장 새로운 단계를 제국주의라고 부를 것인가, 금융자본 단계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마음대로 불러라.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의 본질은 카우츠키가 합병을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으로 설명하고, 합병 정책에다가 금융자본이라는 똑같은 토대 위에서 언뜻 보기에 가능할 것 같은 다른 부르주아 정책을 대립시키는 데 있다. 그 결과 경제에서 독점과 정치에서 독점적이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고 침략적이지 않은 행동 방식이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바로 이 금융자본 시대에 완성된,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보이는 독특한 현 모습의 토대가 되는 지구의 영토 분할이 제국주의적이지 않은 정책들과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하여 가장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들의 심각성을 폭로하는 대신 그것을 흐리고 무디게 만들고 마르크스주의 대신 부르주아 개량주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카우츠키는 독일에서 합병과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인 쿠노(Cunow)¹⁸²와 논쟁한다. 쿠노는 조잡하고도 뻔뻔하게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이며 진보적이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진보적이며, 그러므로 그 앞에 납작 엎드려 찬양해야 한다! 이런 논리는 1894~5년에 나로드니키¹⁸³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난하던 조롱,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를 필연적이고 진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선술집이나 개업해서 자본주의를 보급하는 데 애써야 할 것이라던 조롱과 비슷하다.¹⁸⁴ 카우츠키는 쿠노를 반박한다. 맞다.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정책들 가운데 한 형태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정책과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 즉 제국주의나 합병 등과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
이 반론은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제국주의와의 화해를 이야기하는 더욱 교묘하고 더욱 은밀한(따라서 더욱 위험한) 설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트러스트 및 은행의 경제적 토대를 건드리지 않는 트러스트 및 은행의 정책과의 '투쟁'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와 평화주의로, 선량하고 순진한 희망들의 표현으로 귀결될 뿐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모순들을 철저하게 폭로하는 대신 회피하고, 그 모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공통점이 없는 카우츠키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런 '이론'이 쿠노 부류들과 뭉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카우츠키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또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카르텔 정책이 대외정책으로 확장되는 초제국주의 단계로 말이다"¹⁸⁵라고 쓰고 있다. 이는 곧 제국주의를 초월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단합하는 단계, 자본주의 아래에서 전쟁이 중식되는 단계,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이 세계를 공동으로 착취"¹⁸⁶하는 단계다.
이 '초제국주의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와 얼마나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천천히 다뤄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 책의 전체 계획에 따라 이 문제에 관련된 정확한 경제수치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초제국주의"는 가능한 것일까, 초허튼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
만일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순수"한 추상으로 이해한다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명제밖에 없을 것이다. 독점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세계적 독점, 단일한 전세계적 트러스트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 명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식량을 실험실 내에서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아무 내용이 없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초제국주의 '이론'은 '초농업 이론'만큼이나 엉터리다.
만일 20세기 초에 들어맞는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시대로서 금융자본의 시대의 "순수하게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서 말한다면, "초제국주의"라는 죽은 추상(현존하는 모순들의 심각성으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는 지극히 반동적인 목적에 기여하는 것)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현대 세계 경제의 구체적인 경제 현실을 그것에 대치시키는 것이다. 초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잡담은, 특히 금융자본의 지배는 실제로는 세계 경제 내부의 불균등성과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들을 약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근본으로부터 잘못된, 그리고 제국주의의 옹호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상을 고취하고 있다.¹⁸⁷
R. 칼버(Calwer)¹⁸⁸는 소책자『세계경제입문Einführung in die Weltwirtschaft』¹⁸⁹에서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 무렵에서 세계 경제 내부의 상호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관념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경제수치를 총괄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전세계를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주요 경제권'으로 나누고 있다.
(1) 중앙유럽권(러시아와 영국을 제외한 전유럽), (2) 영국권, (3) 러시아권, (4) 동아시아권, (5) 아메리카권. 식민지는 그것이 속한 국가의 '권역'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어느 권역에도 속하지 않는 소수의 나라, 예를 들면 아시아의 페르시아·아프가니스탄·아라비아, 아프리카의 모로코·아비시니아 등은 '제외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 대해 그가 제시한 경제수치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세계 주요 경제권 면적 (100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100만 명) 철도 (천 킬로미터) 상선 (100만 톤) 수출입 합계 (억 마르크) 석탄 채굴량 (100만 톤) 선철 생산량 (100만 톤) 면방적업의 방추 수 (100만 개)
(1) 중앙유럽권 27.6 *(23.6) 388 (146) 204 8 410 251 15 26
(2) 영국권 28.9 *(28.6) 398 (355) 140 11 250 249 9 51
(3) 러시아권 22 131 63 1 30 16 3 7
(4) 동아시아권 12 389 8 1 20 8 0.02 2
(5) 아메리카권 30 148 379 6 140 245 14 19
*괄호 안 숫자는 식민지의 면적과 인구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교통·무역·공업이 매우 발달한) 세 권역, 즉 중앙유럽권, 영국권, 아메리카권을 보자. 이 권역들에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 나라, 독일, 영국, 미국이 있다. 이 나라들 사이의 제국주의적인 경쟁과 투쟁은 독일이 가진 권역이 보장되었고 식민지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중앙유럽'이 완성되는 것은 미래의 일이며, 그것은 필사적인 투쟁 속에서 탄생할 것이다. 당분간 전유럽의 특징은 정치적 분열 상태다. 그에 비해 영국권과 아메리카권에서는 정치적 집중이 매우 많이 진전되었지만, 광대한 식민지를 갖고 있는 영국과 별로 일 없는 식민지밖에 갖고 있지 못한 미국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들에게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다른 두 개의 권력은 자본주의 발전이 미약한 지역으로 러시아권과 동아시아권이다. 러시아권의 인구밀도는 매우 낮고, 동아시아권은 매우 높다. 앞의 지역은 정치적 집중도가 높지만, 뒤의 지역은 낮다. 중국의 분할은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며, 중국을 둘러싼 일본, 미국 등의 투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곧 경제적·정치적 조건들이 이처럼 굉장히 다양하고, 가지각색의 국가들이 성장 속도 등에서 극히 불균형하며,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평화로운' 초제국주의라는 카우츠키의 어리석은 이야기와 대비해보라. 이는 겉면은 소시민이 무서운 현실에서 몸을 숨기려는 반동적인 시도가 아닐까? 카우츠키에게는 '초제국주의'의 맹아로 생각되는(실험실에서 제조된 알약을 초농업의 맹아라고 선언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 카르텔은 세계의 분할하고 재분할하는 실제 사례, 즉 평화로운 분할에서 평화롭지 않은 분할로 이행하거나 그 반대로 이행하는 실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국제 철도 신디케이트와 국제 해운 트러스트에 독일이 참여할 경우, 세계를 평화롭게 분할하고 있었던 아메리카 등지의 금융자본은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세력관계에 근거해서 전혀 평화롭지 않은 방법으로 당장 세계를 재분할하지 않겠는가?
금융자본과 트러스트는 세계 경제의 다양한 부분들 사이에 나타나는 성장 속도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히고 있다. 그런데 세력관계가 변화하는 경우, 자본주의 시대에 힘이 아니면 무엇으로 모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세계 경제 전체에서 자본주의와 금융자본의 성장 속도의 차이에 관한 매우 정확한 수치를 철도 통계에서 찾아낼 수 있다.¹⁹⁰ 제국주의가 발전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철도의 길이는 아래와 같이 변화했다.
철도 단위 : 천 킬로미터
1890년 1913년 증가량
유럽 224 346 +122
미국 268 411 +143
모든 식민지 82 210 +128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립국과 반독립국 43 137 +94
합계 617 1,104
따라서 철도의 발전은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식민지와 독립국(및 반독립국)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네다섯 개의 가장 큰 자본주의 국가들의 금융자본이 이 지역에서 전면적으로 군림하고 지배하고 있다. 식민지와 아시아, 아메리카 등지의 나라들에서 20만 킬로미터의 새로운 철도, 그것은 400억 마르크 이상의 새로운 자본의 투입이 특별히 유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수익이 특별히 보장되고, 제강공장에 이익이 많은 주문이 들어가는 등의 일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은 식민지들과 대양 너머의 여러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 중에서 새로운 제국주의 열강들(예를 들면 일본)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 제국주의의 투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금융자본이 식민지들과 대양 너머의 특히 수익성이 높은 기업들로부터 획득하는 공물은 늘어나고 있다. 이 '노획물'의 분배에서 극히 큰 부분이 생산력 발전 속도에서 항상 선두에 있지는 못한 나라들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가장 큰 강대국들의 철도 길이는 식민지까지 포함했을 때 다음과 같다.
1890년 1913년 증가
미국 268 413 145
대영제국 107 208 101
러시아 32 78 46
독일 43 68 25
프랑스 41 63 22
5대 강국 합계 491 830 339
이처럼 전체 철도 길이의 약 80퍼센트가 최대 열강 다섯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철도들에서 소유의 집중, 금융자본의 집중은 훨씬 더 엄청나게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영국과 프랑스의 이른바 백만장자들이 아메리카, 러시아 및 다른 나라 철도들의 주식과 회사채들을 굉장히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식민지 덕분에 '그것의' 철도망을 십만 킬로미터나 늘릴 수 있었는데, 이는 독일의 증가량의 네 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시기에 독일의 생산력은, 특히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에 있어서 프랑스와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에 대해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1892년 영국의 선철 생산량이 680만 톤인 데 비해 독일은 490만 톤에 불과했지만, 1912년에는 이미 영국의 900만 톤에 대해 1,760만 톤을 생산하여 영국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¹⁹¹ 분명, 자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한쪽의 생산력 발전 및 자본 축적과, 다른 쪽의 금융자본을 위한 식민지 및 '세력권'의 분할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없애는 데 있어서 전쟁 외의 다른 어떤 수단이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