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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비판

 

우리는 제국주의 비판이라는 것을 그 단어의 넓은 의미에서, 즉 사회의 여러 계급들이 자신들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서 제국주의 정책에 취하는 태도로 이해한다.

 

한편에서는 몇몇의 손에 집중된 거대 규모의 금융자본이 대단히 광범위하고 촘촘한 관계 및 유착의 그물망을 펼쳐 줌소자본가뿐 아니라 가장 영세한 자본가와 소자영업자 대중들까지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를 분할하고 다른 나라들을 지배하기 위해 다른 국민국가의 금융자본가 집단들과 벌이는 투쟁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유산계급을 예외 없이 제국주의의 편으로 넘어가게 만든다. 그것의 전망에 대한 '총체적인' 열광, 제국주의에 대한 광기 어린 옹호, 그것에 대한 가능한 모든 미화 등이 바로 이 시대의 상징이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자계급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노동자계급을 다른 계급과 떨어뜨려놓지는 못한다. 독일의 이른바 '사회민주주의' 당의 현 지도자들에게 붙여진 '사회제국주의자'란 이름은 너무나도 안성맞춤인데, 다시 말해 그들은 입으로는 사회주의자, 행동으로는 제국주의자인 것이다. 홉슨은 이미 1902년에, 영국에는 기회주의적인 '페이비언 협회'²¹에 속한 '페이비언 제국주의자들'이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²¹

 

부르주아 학자와 평론가들은 대개 약간은 위장한 모습으로 제국주의 옹호자로 등장한다. 이들은 제국주의의 완전한 지배와 그 깊은 근원들을 은폐하고, 세론들과 지엽적인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려 애쓰며,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트러스트나 은행에 대한 경찰의 감독 등과 같은 전혀 부질없는 '개혁'안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노력한다.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속성들을 개혁한다는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감히 인정할만큼 뻔뻔하고 노골적인 제국주의자는 훨씬 드물게 나타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세계경제논총²¹이라는 간행물을 통해 독일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 독일 식민지가 아닌 곳에서의 민족해방운동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들은 인도에서의 동요와 저항들, 나탈(남아프리카)²¹과 네덜란드령 동인도²¹에서의 운동 등을 언급한다. 그 중 한 사람은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여러 민족 대표들이 1910628~30일에 개최한 종속국·종속인종 대회에 대한 영문 보고서²¹를 읽고 평론을 쓰면서, 이 대회에서 발표된 연설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제국주의와 투쟁해야 한다, 지배국들은 종속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국제재판소는 강대국과 약소민족 간에 체결된 조약의 집행을 감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회²²는 이러한 순박한 소망들을 표현하는 것에서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현재 형태의 자본주의와 땔 수 없이 결합돼 있다는 인식은 전혀 흔적도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일부 특별히 추악한 지나친 행위들에 대한 반대에 국한되지 않는 한 제국주의와의 직접적인 투쟁은 가망이 없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로 찾기 어렵다."²²¹ 제국주의의 토대들을 개량주의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은 기만이며 "순박한 희망"이기 때문에, 억압받는 민족의 부르주아적 대표자들이 "더 멀리"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억압하는 민족의 부르주아 대표자들은 제국주의 앞에 "과학성"이라는 허울로 위장된 굴종으로 "더 멀리" 뒷걸음질 친다. 이 또한 '논리'가 아닌가!

 

제국주의의 토대들을 개량주의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제국주의가 낳은 모순들이 더욱 침예해지고 심화되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완화되는 쪽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제국주의 비판의 근본 문제들이다.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은 금융과두제의 억압 및 자유경쟁의 소멸과 결합되어 모든 면에서 반동화가 나타나고 민족의 억압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의 거의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반대파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카우츠키 및 광범위하고 국제적인 카우츠키주의 조류가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한 지점은 카우츠키가 소부르주아적·개량주의적이며 경제적으로는 근본적으로 반동적인 이 반대파와 자신을 구별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것 뿐 아니라 오히려 이 반대파와 실천적으로 융합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제국주의 전쟁은 미국에서 '반제국주의자'라는 반대파를 탄생시켰다. 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최후의 모히칸족²²²들은 이 전쟁을 '범죄'로 규정하고, 다른 나라의 영토를 합병하는 것은 위헌으로 간주했으며, 필리핀 국민들의 지도자 아기날도²²³(처음에는 그에게 조국의 해방을 약속했다가, 나중에 미국 군대를 상륙시켜 필리핀을 합병했다)에게 저지른 행위를 '배외주의자들의 배신 행위'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링컨의 말을 인용했다. "백인이 자기 자신을 통치할 때, 그것은 자치다. 하지만 백인이 자기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들도 통치할 때, 그것은 이미 자치가 아니다. 그것은 폭정이다."²²하지만 모든 비판들은 제국주의가 트러스트들과, 즉 자본주의의 토대들과 땔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고, 대규모 자본주의와 그 발전이 낳은 세력들에 가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 "순박한 희망"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비판에서 홉슨의 기본적인 입장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홉슨은 '제국주의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주민들의 '소비력을 높일(자본주의하에서!) 필요성을 호소하며 카우츠키를 예견하게 했다. 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 제국주의, 지나치게 강력해진 은행, 금융과두제 등을 비판하고 있는 인물들로는 우리가 몇 차례 인용한 바 있는 아가트, A. 란스부르크, L. 에쉬베게가 있으며, 프랑스 저술가로는 1900년에 나온영국과 제국주의L'Angleterre et l'impérialisme라는 성의 없는 책을 쓴 빅토르 베라르(Victor Bérard)²²가 있다. 이들 모두는 마르크스주의를 전혀 참칭하지 않으면서도 제국주의에 대비하여 자유경쟁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갈등과 전쟁을 유발할 바그다드 철도선 계획을 비난하며, 평화라는 "순박한 희망"을 표명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국제 유가증권 통계학자 A. 네이마르크에 이르러서는 '국제' 유가증권의 가치를 수천 억 프랑으로 계산하고, 1912년에 이렇게 외쳤다. "평화가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 이런 엄청난 금액에도 불구하고 감히 전쟁을 시작하리라고?"²²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이런 순박함은 놀라울 게 없다. 게다가 그렇게 순박하게 보이면서 제국주의 시대의 평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카우츠키가 1914, 1915, 1916년에 그와 똑같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의 입장에서 서서 평화에 대해 (제국주의자, 사이비 사회주의자, 사회평화주의자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단언했을 때, 그의 마르크스주의에는 대체 무엇이 남아 있었는가? 제국주의의 모순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해부 대신, 그 모순들을 회피하고 변명하려 드는 개량주의적인 "순박한 희망"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카우츠키가 제국주의에 대해 가하는 경제학적 비판의 전형적인 사례 하나를 가져와보자. 그는 1872년과 1912년의 이집트에 대한 영국의 수출입 수치를 끌어온다. 그 수출입은 영국의 전체 수출입보다 적게 성장했다는 사실이 판명된다. 그러하여 카우츠키는 이렇게 추리한다. "영국이 이집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았다면 오직 경제적 요인의 힘만으로 이집트와 그 나라의 무역²²이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러한 [자본의] 팽창 열망은" "제국주의의 폭력적 방법들이 아니라 평화적인 민주주의에 의해 가장 잘 촉진된다."²²

 

카우츠키의 러시아인 똘마니(이자 러시아의 사회배외주의 옹호자) 스펙타토르(Spectator)²²씨가 몇백 번이나 되풀이해서 노래하고 있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 식 비판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을 더욱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힐퍼딩의 글귀를 인용해보자. 카우츠키는 19154월을 비롯해 몇 차례나 걸쳐 이 인용문의 결론에 "모든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공언한 바 있다.

 

힐퍼딩은 이렇게 썼다. "프롤레타리아가 선진 자본주의 정책에 대해 자유무역과 국가 배척시대의 옛날 정책으로 대항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금융자본의 경제정책인 제국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대응이 자유무역일 수는 없으며 오직 사회주의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정책의 목표는 자유경쟁의 재건이라는 이제는 반동적인 이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타도에 의한 경쟁의 완전한 지양이다.“

 

카우츠키는 이 금융자본의 시대에 "반동적인 이상", "평화적인 민주주의", "오직 경제적 요인의 힘만"을 옹호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단절했다. 왜냐하면 그런 이상은 객관적으로 보면 독점자본주의를 독점적이지 않은 자본주의로 되돌리자는 것이며, 개량주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군사점령이 없었다면, 제국주의가 없었다면, 금융자본이 없었다면 이집트(또는 다른 식민지나 반식민지)와의 무역은 더욱 강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이건 무슨 뜻인가? 만약 독점이 일반이, 그리고 금융자본에 의한 '유착'이나 억압(다시 말해 역시 독점), 또 일부 국가들의 독점적인 식민지 소유가 자유경쟁을 제한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가 더 빠르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뜻인가?

 

카우츠키의 주장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으나, "의미"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즉 독점이 전혀 없었다면 자유경쟁이 자본주의와 무역을 더 빠르게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무역과 자본주의가 더 빠르게 발전할수록 독점을 낳는 생산과 자본의 집중도 더 강해진다. 그리고 독점은 이미 탄생했다. 바로 자유경쟁 속에서! 만일 독점이 지금에 와서 발전을 지연시키고 있다 해도 여전히 자유경쟁을 지지하는 논거가 되진 못한다. 자유경쟁은 독점을 낳은 후에는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카우츠키의 주장을 어떻게 돌려보아도 그 속에는 반동성과 부르주아적인 개량주의 외에 아무것도 없다.

 

스펙타토르가 말하는 것처럼 영국 식민지들과 영국의 무역이 현재 다른 나라들과 무역보다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고 이 논리를 바꿔 말한다 해도, 이 역시 카우츠키를 구원하진 못한다. 왜냐하면 영국을 타도한 것 역시 단지 다른 나라들(미국·독일)의 독점이고, 또 제국주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카르텔이 수출할 수 있는 생산물들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롭고 독특한 형태의 보호관세를 낳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엥겔스는 자본론3권에서 이를 언급했다.²³¹) 여기에서 '혈압 수출', 영국 사람들이 말하는 '덤핑'제도 역시 카르텔과 금융자본의 특징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카르텔은 국내에서 그 생산물을 높은 독점가격으로 판매하는 반면, 해외에서는 경쟁자들을 몰락시키고 자기의 생산을 최대한 확장하는 등을 위해 혈압에 물건을 팔아치운다. 만약 독일이 영국보다 영국 식민지와 무역을 더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독일 제국주의가 영국 제국주의보다 더 젊고 더 강력하며 더 조직적이고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결코 자유무역의 '우월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무역이 보호무역과, 식민지의 종속상태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제국주의가 다른 제국주의와, 한 독점조직이 다른 독점조직과, 한 금융자본이 다른 금융자본과 싸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독일 제국주의가 지닌 우월함은 식민지 국경선이나 보호관세라는 장벽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자유무역과 '평화적인 민주주의'를 비롯하는 '논거'를 끌고 오는 것은 진부한 일인데다, 제국주의의 기본 특성과 특징들을 망각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소시민적인 개량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카우츠키와 똑같이 제국주의를 소시민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부르주아 경제학자 A. 란스부르크가 무역통계 수치를 훨씬 과학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는 임의로 고른 한 나라와 식민지들만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와 (1) 그것에 금융적으로 종속된, 즉 그로부터 돈을 빌린 나라들에 대한 수출과 (2) 금융적으로 독립된 나라들에 대한 수출을 비교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국가 1889 1908 증가율

 

독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들 루마니아 48.2 70.8 + 47%

포르투갈 19.0 32.8 + 73%

아르헨티나 60.7 147.0 + 143%

브라질 48.7 84.5 + 73%

칠레 28.3 52.4 + 85%

터키 29.9 64.0 + 114%

합계 234.8 451.5 +92%

 

독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되지 않은 나라들 영국 651.8 997.4 + 53%

프랑스 210.2 437.9 + 108%

벨기에 137.2 322.8 + 135%

스위스 177.4 401.1 + 127%

오스트레일리아 21.2 64.5 + 205%

네덜란드령 동인도 8.8 40.7 + 363%

합계 1,206.6 2,264.4 + 87%

 

란스부르크는 합계를 내지 않았는데, 그런 까닭에 기묘하게도 만일 이 수치들이 뭔가 증명하는 게 있다면 자기 자신의 주장에 상반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들로의 수출은 금융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은 나라들로의 수출보다 많은 일지만 그래도 더 빨리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만일'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는데, 란스부르크의 통계도 결코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수출과 차관의 연관성을 추적하면서 란스부르크는 이렇게 적었다.

 

"1890~1년 독일 은행들은 루마니아에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이미 몇 년 전에 선불로 지급을 끝낸 것이었다. 차관은 주로 독일에서 철도 자재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 1891년 루마니아로 독일이 수출한 금액은 5,500만 마르크였다. 다음해 그것은 3,940만 마르크로 떨어졌고, 그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1900년에는 2,540만 마르크까지 떨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와서야 새로운 차관 두 개를 받은 덕분에 1891년 수준을 회복했다.

 

포르투갈로의 독일의 수출은 1888~9년의 차관의 결과 2,110만 마르크(1890)로 증가했다. 그리고는 그후 2년간 1,620만 마르크와 740만 마르크로 떨어졌고, 1903년에야 간신히 원래의 수준에 도달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무역수치는 더욱 명확하다. 1888년과 1890년의 차관의 결과 아르헨티나로의 독일의 수출은 1889년에 6,070만 마르크에 달했다. 2년 뒤의 수출은 그 3분의 1도 안 되는 1,860만 마르크에 불과했다. 1901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1889년의 최고점을 넘어섰지만, 이는 새로운 국제와 지방체 발행, 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과 기타 신용 제공에 결부된 것이었다.

 

칠레에 대한 수출은 1889년의 차관의 결과, 4,520만 마르크(1892)로 증가했지만, 1년 뒤엔 2,250만 마르크로 떨어졌다.

 

1906년 독일 은행들로부터 새로운 차관을 제공받기로 한 뒤 수출은 4,870만 마르크(1902)로 증가했지만 1908년에 또 다시 5,240만 마르크로 떨어졌다."²³²

 

란스부르크는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익살스러운 도덕을 끄집어낸다. 차관과 연관된 수출이 얼마나 허약하고 불균형한 것인가, 국내 산업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대신 자본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가, 크루프 사가 대외차관을 얻어내려고 수백만이나 되는 뇌물을 쓰고 있다니 얼마나 '비싼' 것인가 등. 하지만 사실들은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수출의 증대는 부르주아 도덕 따위는 야랑곳하지 않고 일거양득의 이득을 거두는, 즉 첫째로 차관 자체에서 이익을 챙기고, 둘째로 그것이 크루프 사의 제품이나 철강 신디케이트의 철도 자재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될 때 같은 차관에서 또 이익을 챙기는 금융자본의 사기 술책들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나는 란스부르크의 통계가 결코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인용했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카우츠키와 스펙타토르의 통계보다 과학적이기 때문이고, 란스부르크가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접근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등에서 금융자본의 중요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수출과 금융가들의 술책과 연관성, 수출과 특히 카르텔 생산물의 판로와 연관성 등을 하나씩 따로 구분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식민지들 일반과 식민지 아닌 곳들을, 하나의 제국주의와 다른 제국주의를, 하나의 반식민지 또는 식민지(이집트)와 나머지 모든 나라들을 비교하는 것은 바로 그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은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이론적 비판은 마르크스주의와는 전혀 무관하며, 단지 기회주의 및 사회배외주의에 대해 화해와 통일을 주장하는 설교의 서론으로나 쓰고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이 비판이 제국주의의 그 가장 깊고 근본적인 모순들을 회피하고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점들 및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는 자유경쟁 사이의 모순, 금융자본의 거대한 '영업 활동'(및 막대한 이윤)과 자유시장에서의 '정직한' 거래 사이의 모순, 한편에 있는 카르텔 및 트러스트들과 다른 한편에 있는 카르텔화되지 않은 산업들 사이의 모순 등을 말이다.

 

카우츠키가 창조한 저 악명 높은 '초제국주의' 이론도 완전히 똑같은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그가 1915년에 한 주장을 홉슨의 1902년 주장과 비교해보라.

 

카우츠키: "현재의 제국주의 정책이 새로운 초제국주의 정책으로 교체되고, 국민적인 금융자본들이 서로 경쟁을 일삼는 자리에 세계를 공동으로 착취하는 금융자본의 국제연합이 들어설 가능성은 없는가? 어쨌든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생각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기 위한 충분한 전제조건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²³³

 

홉슨: "이렇게 각개가 미개한 속령들을 종자로 거느리는 몇몇 거대 연방제국들에 펼쳐진 기독교권역(Christendom)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현 추세의 가장 합당한 발전이자, 국제제국주의(inter-Imperialism)라는 확실한 토대 위에서 영구적인 평화에 대한 최선의 희망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카우츠키가 초제국주의(ultra-imperialism)라고 불렀던 것을 홉슨은 그보다 13년 전에 국제제국주의(inter-imperialism)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 라틴어 접두사를 다른 라틴어 접두사로 바꾼 것에 의해 새로운 현학적인 단어를 창조한 것을 빼면 카우츠키가 이룩한 '과학적' 사고의 진보란 홉슨이 본질적으로 영국 사제들의 위선이라고 기술한 것을 마르크스주의라고 참칭한 데 있을 뿐이다. 보어 전쟁 이후 이 지체 높으신 분들에게 남아프리카의 전장들에서 많은 사망자들을 잃은데다, 영국 금융가들에게 더 높은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 인상된 세금까지 부담했던 영국 소시민과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제국주의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며,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국제(또는 초)제국주의가 머지않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영국의 사제들이나 상냥한 카우츠키의 선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이론'이 지닌 객관적인, 즉 현실적인 사회적 의미는 단 하나밖에 없다. 대중의 관심을 현 시대의 침예한 모순들과 침예한 문제들로부터 돌려 뭔가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초제국주의'라는 거짓 전망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대중에게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가장 반동적인 위안을 주는 것.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있는 것은 오직 대중에 대한 기만뿐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하고만 비교해봐도, 카우츠키가 독일 노동자(및 모든 나라의 노동자)에게 주입하려 해쓰는 전망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인도, 인도차이나, 중국을 예로 들어보자. 6~7억 인구를 가진 이 세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²³이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몇몇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금융자본에게 착취당하고 있음을 잘 알려져 있다. 이 제국주의 국가들이 방금 거론된 아시아 국가들에서 영토, 이익, 세력권을 지키거나 확대하기 위해서로 편을 갈라 동맹을 맺는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국제제국주의' 또는 '초제국주의' 동맹이 될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모든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서 말한 아시아 지역들의 '평화적인' 분할을 위해 동맹을 맺는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의 동맹일 것이다. 이러한 동맹의 실패들은 20세기 역사에서도, 예를 들면 중국에 대한 열강들의 태도에서 나타나고 있다.²³묻건대, 자본주의가 그대로 유지되는 조건(다시 말해 카우츠키가 전제로 삼고 있는 바로 그런 조건)에서 이런 동맹들이 일시적이지 않을 것이라든가, 그것들이 모든 종류의, 모든 가능한 형태의 마찰·분쟁·투쟁들을 제거할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이 과연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하에서 세력권·이익·식민지 등을 분할하는 데 있어 분할 참가국들의 국력, 즉 전반적인 경제력·재정력·군사력 등을 고려하는 것 외에 다른 근거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할 참가국들의 국력은 불균등하게 변화한다. 자본주의하에서 개개의 기업·트러스트·산업부문·국가들이 균등하게 발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 독일의 자본주의적 국력은 당시 영국과 비교해보면 독일이 비참할 정도로 미미했다. 러시아와 비교할 때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10년이나 20년 후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관계가 여전히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영국의 사제들이나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카우츠키의 진부한 소시민적 환상 속이 아닌,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 있는 '국제제국주의' 또는 '초제국주의' 동맹은그 동맹들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즉 어떤 제국주의 연합에 대한 다른 제국주의 연합이라는 형태는,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전반적 동맹이라는 형태는불가피하게 전쟁과 전쟁 사이의 '참은 휴지기'에 불과하다. 평화적인 동맹이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에서 다시 평화적인 동맹이 성장하며 양자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는 바, 세계 경제와 세계 정치의 제국주의적 유착과 상호관계라는 같은 토양에서 평화적인 투쟁과 비평화적인 투쟁의 형태가 교대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총명하기 짝이 없는 카우츠키는 노동자를 달래고 그들을 부르주아지의 편으로 넘어간 사회배외주의자들과 화해시키기 위해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를 다른 고리로부터 떼어내는 것을 한다. 즉 중국의 '평정'을 위해 모든 열강들이 맺은 오늘의 평화적인 (그리고 초제국주의적인, 아니 초초제국주의적인) 동맹(의화단 봉기에 대한 진압²³을 기억하라)을 내일의 평화적이지 않은 분쟁에서 떼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쟁은 예를 들어 터키 등의 분할을 위한 모레의 '평화적인' 전반적인 동맹을 준비한다. 제국주의 평화의 시기들과 제국주의 전쟁의 시기들 사이의 생생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신 카우츠키는 노동자들에게 생기 없는 추상을 제시하여 그들의 생기 없는 지도자들과 화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인 힐(Hill)²³유럽의 국제적 발전에서 외교의 역사 A History of the Diplomacy in the International Development of Europe라는 저서의 서문에서 현대 외교사의 시기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1) 혁명의 시기 (2) 입헌 운동의 시기 (3) 오늘날의 "상업 제국주의" 시기.²³그리고 어떤 저술가는 1870년 이후 영국이 취한 '세계 정책'의 역사를 네 시기로 나눈다. (1) 1차 아시아 시기(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 (2) 아프리카 시기(대략 1885~1907): 아프리카 분할을 둘러싼 프랑스와의 투쟁(프랑스와 전쟁 직전까지 31898년 파쇼다 사건²³) (3) 2차 아시아 시기(러시아에 대항한 일본과의 조약²⁴⁰) (4) '유럽' 시기(주로 독일과 대립¹ 이미 1905년에 '은행가' 리서는 "정치적 전초전이 금융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라고 쓰면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금융자본이 어떻게 그 나라들의 정치적 동맹을 준비했는지, 페르시아 때문에 독일과 영국의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중국에 대한 차관 때문에 모든 유럽 자본들의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제국주의 분쟁들과 땔 수 없이 결부돼 있는 '초제국주의' 평화 동맹의 생생한 현실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미화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의 가장 깊은 모순들에 대한 카우츠키의 은폐는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들에 대한 이 저자 자신의 비판에도 흠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는 금융자본과 독점의 시대이며, 그것은 어디에서나 자유가 아니라 지배를 열망한다. 어떤 정치 체제에서나 모든 면에서 반동화가 나타나고 정치 영역에서 모순들이 극단적으로 격화되는 것은 바로 그런 경향들의 결과다. 특히 격화되는 것은 민족역압과 합병에 대한, 곧 민족의 자주성을 침해하려는 열망이다(왜냐하면 합병은 바로 민족자결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힐퍼딩은 제국주의와 격화되는 민족역압 간의 연관성을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새로 개방된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의 수입이 여러 가지 모순을 심화시키며, (민족의식을 자각하게 된) 국민들 사이에 침입자에 대한 저항을 증대시키는데, 이 저항은 외국자본에 해로운 정책의 형태를 쉽게 취할 수 있다. 구래의 사회관계는 완전히 변혁되고, 수천 년간 '역사 없는 민족'을 묶어놓은 농업의 속박은 타파되며, 이들 민족이 자본주의적인 소용돌이 안으로 편입되어간다. 자본주의 자체가 점차 피정복 민족에게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제공한다. 이들은 경제적·문화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한때는 유럽 민족들의 최고의 승고한 목표였던 통일된 민족국가를 자신의 목표로 삼게 된다. 이 민족자주 운동은 유럽 자본의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유망한 착취 지역에서 유럽 자본을 위협하게 되며, 유럽 자본은 권력수단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것에 의해서만 지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우리는 새로 개방된 나라들뿐 아니라 오래된 나라들에서도 제국주의는 합병으로, 민족역압의 강화로, 따라서 저항의 격화로 나아간다는 점을 덧붙여야만 한다. 카우츠키는 제국주의에 의한 정치적 반동에 반대하면서도 제국주의 시대에 기회주의자들과 화합이 불가능하다는 특히 중요해진 문제는 불분명하게 남겨두고 있다. 그는 합병에 반대하면서도 기회주의자들에게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을, 그들이 받아들이기 가장 쉬운 형태로 반대한다. 그는 독일 청중에게 직접 호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당면 문제, 예를 들면 알자스-로렌²⁴⁴은 독일이 합병한 땅이라는 점은 얼버무려버린다. 카우츠키의 이런 '사고의 편협성'을 가늠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만약 어떤 일본인이 미국인들의 필리핀 합병을 비난한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그것이 필리핀을 합병하려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서가 아니라 모든 합병에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일본인의 합병 반대 '투쟁'은 그가 일본의 조선 합병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설 경우에만, 일본으로부터 조선이 분리할 자유를 요구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성실하고 정치적으로 정치한 것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이론적 분석과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비판은 가장 근본적인 모순들을 은폐하고 완화하려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절대로 화해할 수 없는 정신과 유럽 노동운동에서 무너져내리고 있는 기회주의와 화합을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유지하려는 열망으로 시종일관 점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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