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5.


세월호 12주기를 맞이하며,



너와 내가 아닌 우리

 

세월호 참사가 12주기를 맞이했다. 이 사건은 여전히 '대참사'에 해당된다. 2014년 4월 16일, 인천항을 떠나 제주항으로 향하던 여객선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며 승선원 476명 중 304명이 희생되었다. 생존자는 단 172명이었으며,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을 포함해 수 많은 이들은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이유는, 국가의 문제를 알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참사의 주요 원인 중에는 초기 대응의 처참한 실패에도 있다. 

 

당시 정부는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했으나, 2018년 검찰 수사 결과, 실제로 서면 보고 받은 시각은 오전 09:30이었으며, 첫 지시를 내린 시점에서 비서관이 알린 시각은 오전 10:20이었고, 약 50분 이상의 공백이 발생했다. 이러한 대응에 대한 10:00 보고가 실제로는 09:30이었음에도, 10:20이 되어서야 늦게 대응을 시작한 것이다. 

 

일부 생존자들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하여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증언에도, 선장 및 선박 관계자들은 5-10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며, 관계자 중에는 해외로 도피하다가 끝내 사망하거나, 송환되던 중 횡령 혐의가 발각된 일도 있었다. 당시 세월호 선장은 구조의 지시를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남겼고, 선장은 구조선으로 탈출하였지만, 나머지 승객 인원들은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선박 속에 가라앉았다. 

 

이처럼, 당시의 정부 보고에도, 늦장 대응을 하였던 지난 정부와 참사 이후 선박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과 해외 도피 세력에 대한 추적이 이어졌음에도, 관계자들의 횡령 및 비리가 밝혀졌고, 국가 전반의 부패 구조를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팽목항에서 나날이 사망자 수습을 기다리던 희생자 유가족들은 특히 정부에 대한 실망을 표출하였다. 단순히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문제였지만 동시에, 국가 전반에 대한 전 국민적 항쟁이 소환되는 시기였다. 관련 시민 단체들은 이 참사에 대한 해명을 곧바로 요구하였고,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해당 선장 및 관계자들에 대한 수위 높은 처벌을 요구하였다. 

 

결국 국정 농단의 연유로 탄핵의 국면에 도달한 지난 정부의 연류 의혹들도 사실로 판명되면서 탄핵되었다. 이 과정에서 청년 및 대학생들도 입시 비리 의혹을 드러냈고, 전 국민은 국가 전반에 대한 회의 및 불신을 갖게 되는 시점이었다. 비록 다음 정부가 세월호 수습에 대한 많은 다짐을 보였으나, 내각 구성 및 검찰 관계자와 관련된 사법 개혁을 실패하면서, 지난 정부의 관계자를 국가 원수로 선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사건을 두고 '국가적 폭력'이나 '국민을 배신한 정부'라 언급하기도 하였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의 결탁 관계가 처음으로 알려지는 동안에도, 유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지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미수습자 인원의 구출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정권이 바뀌는 동안 수습에 대한 약속은 이어졌음에도, 근본적인 개혁은 더디었고, 이에 지친 국민들은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인물들을 다시 공직의 핵심으로 복귀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국가는 '공직자'의 앉은 모습만 보여준다. 세월호 다음에도 수많은 대참사는 반복되었다. 그럴 때면 국가는 매번 애도를 표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그러나 실제 대처는 여전히 미흡하다. 참사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생존자와 유가족임에도, 이들에 대한 비난의 말은 큰 상처를 남긴다. 희생자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이자 언젠가 어엿한 성인이 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매번 참사가 발생하면 정작 정부는 재발 방지와 예방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이 되풀이된다. 그 당연한 노력이, 국가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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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3. 28. 


정치적 극단화 우려



중앙 정부와 반동적 연합

 

출판과 관련 매체 덕분에, 당에 대한 선전 외에 정치적 표현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점은 이점이다. 그러나 이 매체의 허점은 오히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지금의 출판 시장이 상업적 노출의 빈도 수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상적 검열은 동시에 요구된다. 물론 그러한 반대의 논의를 개진하는 극단적인 분들의 취지까지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 매체 내의 활동가 중에서도 독서를 장려하는 방식들은 도무지 유익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해로운 사고성과, 극단적인 맹동 요소를 부추기는 다분히 건설적이지 못한 선동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도, 한국의 출판 시장이 형성되는 방향과 장래가 보장되지 못하는 '해로운' 이윤 추구의 설정에 목표를 둔다는 수준에서 문제 제기가 거듭 요구된다. 

 

특히 이들은 언론에 대해 사정상 표면적으로 소비하는 형태로 지식을 습득하고 있을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그들의 발언들은 경청하기보다는, 타 매체의 방문 경로 외에도, 이러한 논의 외에 다른 의견을 개진한다면 '발언' 자체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견에서 통용되는 일부 견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공직자의 글쓰기는 어떤 의도이든 여러 논란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자신의 일부 상태에 대한 또는 개인적인 사견을 토대로 작성된 말들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더불어, 이러한 '정상화' 논리에 대해 잠깐 거론하고 싶다. 정부가 중심의 위치에서 점진적으로 국가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지금의 평균적 위상들에서 더욱 낮아질 때에만 비로소 '정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서민을 배반하는 정부 역시 '좋은 정부'라 부를 수 없다. 특히 파시스트에 의한 공세를 발판으로 삼아 '극우적인' 선동을 부추기는 매체 일반의 경우에도, 그러한 발언들이 모이거나 이전 정부들이 보인 '백색 테러' 행보의 경우 등에서도 확인되지만, 일면적 현상을 기반으로 비논리적으로 관철하여 해석되는 관습은 자본이 일으키는 문제를 더욱 증폭시킬 뿐이며, 이를 맹신하여 지양하기보다는, 애초에 근절하거나 자제해야 할 것이다.   

 

* 그들 전반에서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자본의 '모험적 책동'을 초반부터 부추기는 논리를 답습한 채 이를 유지할 명분만을 강조하는 셈이다. 하여, 그것이 다음 선거를 치르기 위한 방편으로 국민의 안정을 도모하여 임시로 정당화시킬지 몰라도, 지금의 산재한 개혁안 역시 언제나 검토 대상이 된다. 우리가 최소한 자유 민주 정부에 요구한 바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모두 그 신임을 잃었다. 이 역시 그들이 자처한 일이다.  

 

2026. 03. 26. 공산 기관 중앙 통신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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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26.


노동자 평의회에 대한 요구안


 

현재에 대한 정세 판단

 

노동자를 대우하지 않는 사회는 더 이상 좋은 사회라 부를 수 없다. 대다수가 정부의 정책을 옹호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의 노동 계급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2025-2026년 이후로, 주가 변동의 출발은 한국 사회에서 특히 특수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공공 주택의 보급 확장은 노동자 보충 현상의 일부로, 삼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주가 폭등 현상은, 한국의 커다란 이정표를 던지고 있다. 해외 투자 유치를 전략적으로 끌어모으려는 시도가 정부 정책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장기간 주택 안정화에 대한 서민들의 기대치 역시 높아진 상태이다. 그러한 기대 부응에 보답하고자, 정부 부처가 이전 정부보다 고강도의 개혁안들을 제시하면서 높은 강세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극히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운 정부의 정책관이 서민주의로 점차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제적 지표에 대한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임기 초반을 거치고 있는 국가 원수의 실행을 살펴볼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노동자 계급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전위당’ 선전을 통해 기존의 혁명 선전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노동 인민 전반에게는 ‘공산당’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편견 및 오해, 그리고 왜곡된 시각을 밝혀 차분하게 설득해야 하는, 이러한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시점이 도래했다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 당과 비견되는 지금의 거대 정치 양당들에게 너무나 많은 독점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가 변동이 높고, 상품의 시세 가치가 상승하여 금·은의 가치 역시 변동하는 시점에서는 급격한 경제 공황의 타격이 잠정적으로 한국에 더 취약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고자 정부진들은 해외 투자자에 대한 매입 비율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여 각국의 투자 유치에 대한 홍보를 최대한 강행하고, 고소득층들에게 호소하여 높은 세금을 거두는 방식으로 국가 ‘정상화’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승세는 기업 간 ‘타협안’에 따른 안정세를 보이도록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인민들의 반발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 보도지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경쟁력 지수는 이미 일본 정도는 추월한지가 오래이다. 이는 국가 전반 생산력의 밀도 측면에서도 아직은 강세를 보이는 미국과의 관세 전쟁이 남아 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낮아진 경제력을 한국에게 전가하여 더 높은 관세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피해는 결국 노동 인민 생활 전반에도 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 미국과의 우호적인 협상을 이미 진행한 현 정부는 민주당을 이 상황에 대한 유일한 정치적 대안으로 여기지만, 그 정당이 반드시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남은 것이라면, 그들이 ‘진보 정당’이라 부르는 노동자 소수 정당의 약진에 달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한 이상, 지금의 자본가 집단들은 최대한의 술수를 사용하여 이들의 정치적 진입마저 가로막고자 방해 공작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민주당도 결국 그들의 정치적 공세에 합세하여 호소하는 식으로 이러한 노동자 정당의 약진마저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에서 노동자 정당으로,

 

결국 진보 정당의 약진은 이들이 소수임에도 노동자 정당으로 그나마 부상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시점에서는 서강 제국주의 열강들의 재부흥에 힘업기 위해 열성을 높이며 의존하고 있다. 이번 지방 선거에 대한 의회주의 전반에 걸쳐 다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진보 정당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대부분 회의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중국 공안당과 북한과의 갈등 상황에서 여전히 묶여진 특수한 국내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산당’에 대한 일당 독재 우려는 별도로 논의되더라도, 지금부터는 국내 '공산당' 건설에 앞서 노동자 정당에 대한 진지한 준비에 임하는 소수의 노동 인민들에게 작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국가 보안법을 오랜 기간 견딘 대다수의 노동자 투쟁자들은 ‘개혁 정당’보다 더 낮은 지지율을 만연하게 유지하며 정치적 활동을 병행하였다. 더군다나, 공학 기술이 발달된 상태에서도 현대 사회에 심화된 온갖 정치적 성향 및 부류가 등장하면서 구분 없이 뒤섞이고 있다는 지적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는 특히 자유 사상계에 따른 혼란기를 부추기기에 더 높은 지령으로 우리를 반공산 선전 방식으로 매도하며 그러한 전쟁에 대한 우려를 더욱 조장하게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한 추론일 뿐이다.

 

노동자 정당의 당 선전 활동에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면,  

 

첫째, 당 선전에 앞서 공산당에 대한 대중 인식을 반박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노동자가 학습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변증법을 토대로 올바로 증명하여 상대에게 논증할 수 있을 때, 토론에 의한 대다수 노동자들은 노동자 정당 건설에 많은 조력과 지지를 보탤 수 있다. 물론 이는 의회가 허락하는 방식에 한에서 전개된다. 

 

둘째, 자본주의 제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한 현실에서 노동자 정당의 역할을 전개하여 부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거론해야 한다. 주가나 부동산 정책에 따른 잦은 변동이 발생하는 시기에는 당분간 ‘거품 현상’이 발생하기에 강세의 지지율만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럴 때, 노동자 정당은 자신의 위치에서 전술적인 선전과 홍보를, 그리고 기술적 응용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특히 부르주아 민주정의 구도에서는 이러한 대중 설득의 여지를 어느 정도는 허용하기에, 공권력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 방식 외에도, 노동자 정당의 국가적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하는 일은 관련 활동가들에게도 중요한 지침이 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정당의 부상과 ‘공산당’의 건설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기관지와 청년의 중요성을 논하고 싶다. 특히 다국적인 세계화로 진입한 자본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공교육의 무상화까지 일부분 실현하였기에 이들에게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은 무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과제이다. 이와 더불어 『자본』의 입문 정도를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오해에 대한 반박을 해명하는 방식으로 설득하는 정도라면 또는 우리와 관련된 대학 서적이라도 권장한다면 유익하다. 일부 청년들은 대체로 유익한 활동을 통해 노동자 정당에 대한 필요성과 현존하는 체제와 제도에 대한 모순을 짚을 정도는 되는 대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는 연구 범위 수준에서가 아니라, 특히 노동자 기관지들을 활용하거나 국내 ‘공산당’ 건설에 필요한 상세한 운동의 역사 과정과 전개를 서술한 관련 유인물 자료를 가급적 꾸준하게 제시한다거나, 이를 외부 홍보 방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비록 제안서에 불과하지만, 각 정당의 상황에 맞추어 노동자 정당의 역할에도 이를 응용할 수도 있다. 

 

노동자 정당의 의석 수 확보를 위한 제언 및 요약

 

결론적으로 노동자 평의회를 어느 정도 실현하려면, 

 

1. 현존하는 양당제에 따른 정책적 모순을 짚어내고, 기존의 정책들과 차별화된 제도 및 정책을 고민하여 제시해야 한다.

 

2. 정당한 선거 제도 하에 선출된 의원일 경우, 공개 토론회를 제안하고, 소속된 노동자 정당의 중요성을 설파하여 노동자 정당의 존재를 노동 대중들에게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

 

3. 선진적인 노동 조합 위원회는 국가 보안법의 역사와 기존의 '공산당'에 대한 편견 및 오류를 시정해야 한다.

 

4. 노동자 정당의 기관지와 청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특히 대학 내의 교육 과정에서 노동자 정당들의 역사적인 노력을 밝혀야만 한다. (특히 글을 읽을 줄 아는 여성 지지층에게 충분히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노동자 정당의 부상과 훗날 국내 ‘공산당’ 건설의 토대에도 도움이 된다면, 이들은 다음 선거에서 의석 수 확보에 있어 어느 정도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시점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이는 처음에는 일부 노력이 들어가지만, 관심이 모인다면 곧바로 장담할 수는 없더라도, 노동자 정당에 대한 실질적인 지지율까지는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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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26.


노동자


 

우리는 더 이상 상품을 소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령 어떤 물건을 불가피하게 구매 할 때에도, 그것이 물가 변동에 따라 정당하게 지불된다고 말할 때조차 늘 노동력의 착취가 내재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하든 협동조합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구매하든 결국 노동력의 소모는 동일하다. 노동력의 착취는 시간의 길이를 언제나 연장시킬 수도 있고, 자본가들이 존재하는 한 그러한 상품들은 계속 과잉 생산될 것이다.

 

'잉여 가치'는 자본가들이 창출하는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의 지분에 따라 형성되기도 하지만, 자본은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막대하게 창출된다. 당신은 그것을 '아르바이트'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글고 '장·단기직'이나 '고용' 등이라 말한다. 모두 자본가들이 고안한 개념이다. 우리의 요구는 '법'이 담을 수 없는 지점에 있다. 그리고 법의 상품이 정치가 되어 언론에서 소비될 때조차, 우리는 더 이상 '선거를 치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즉, '나를 죽이는 사람을 내가 뽑는다.'라고 부른다. 선거철이 되면 우리는 그러한 언론 선전과 홍보에 대비한다.

 

당신이 사는 곳에 대해 토지를 계약하여 매매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의 땅이 아니다. 그곳에 사는 당신의 자녀들은 자본가 간의 거래로 대대손손 물려주어 토지를 ‘합법적’으로 수탈하고, 자신의 나라를 파는 매국노를 자처한다. 토지 소유를 일부분 정당화해야 한다는 말도 차분히 살펴보라. 그것은 거짓말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살인마이다. 우리는 '민주화'를 거쳐 '평화롭게' 무기를 들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계급 전투는 끝났는가. 노동자를 연행하는 시도는 그것의 착취에 대한 명분이 아닌가. 상대를 알려면 반대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반대로 생각할 수 없다. 자신이 처한 관점이 전부인 것이라면 자본가의 말이 타당하려면 자신의 관점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자신의 관점을 쉽게 관철하여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정신적 가치에 막연하게 감사하며 안분지족을 추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이기에 그저 자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제국주의와 파시스트의 부상에 힘입은 모든 자본주의 제도의 그늘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 저주받은 이들을 차례로 조사하고, 그러한 재산을 모두 몰수하여 노동자에게 돌아가 자본의 무가치함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임무이다. 당신의 자녀들은 지금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매매당하고 착취된다. 그리고 자신들을 문명인이라 칭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원시인보다 못한 자들인 것이다.  

 

사유 재산을 내놓지 않는 부르주아지 집단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수만 있다면,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면서 부르주아지 하수인들의 총기 사용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도 재산의 환수가 아니라, 노동자는 재산의 반납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일수록 배고프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누구의 편에 가담하는가. 계급 투쟁은 지금도 존재한다. 모든 생산 수단의 명의는 부르주아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된다.

 

‘노동자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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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26.


* 이는 주로 일본 사회를 기준으로 '특수한' 고찰을 별도로 마련하였다.  

 

자본과 매춘의 관계

 


일본 지역을 한정할 때, 최근 일본 도쿄에서는 길거리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총무성 통계국: 인구 추계 및 인구 이동」자료에 따르면, 도쿄 도심의 인구 성비는 대략 여성 비율이 51-53% 정도에 해당한다. 이는 농촌 인구의 감소로 인한 도심 지역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오피스 지구 (마루노우치, 니혼 방시 등)은  45-50% , 도쿄 상업 지구 (시부야, 하라주쿠, 긴자 비율 등)에서는 여성의 55-60% 정도의 이동 비율이 추산된다. 일본의 국가 생산력은 1980년대에 '버블 경제'로 인한 특수한 상황을 맞이하여 월등히 높았으나, 이후로는 현재까지 군주제의 기조 아래 여성의 정치적 비중 역할이 다소 낮아짐에 따라, 이러한 특수 노동 (또는 비생산직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 비율이 높아진 상태이다. 

 

특히 '비생산적 노동'이라 불릴 수 있는 성매매의 발달은 일본 사회에서 성노동 여성의 비율을 상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도쿄 도심에서 풍속업에 종사하는 90%가 여성 비율에 해당하므로, 일본 사회에서는 3-5%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주로 경제적 상태가 취약한 20-30대 여성들이 종사한다. 이러한 성매매로 인한 사회 문제는 일본 내에서 크게 대두되고 있다. 물론 일본의 심각한 출산율까지 전파되어 지리적으로 근접한 국내 불안을 일으킨 측면도 다소 존재하지만, 오히려 경제적 독단 연구로 인해 판단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건강 보도지」에 따르면, 생계 위협에 더 취약한 여성· 아동들이 건강에 방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 역시 일본의 높은 의료 수준에 비하면, 여성들이 심리적 소외감에 더 심각하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어떤 이들은 낮에는 생산직 노동에 가담하고, 밤에는 성매매에 종사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러한 계급적 격차는 고대 봉건제 사회가 남긴 전통적 관습과 현대 자본주의 간의 간극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비생산직 노동 인구는 통계 산정 시 자주 생략된다. 일본「경찰청 (NPA)」보도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 아동들의 90%가 여성 아동들이며, 성학대 (강제 추행, 강간 등)는 전체의 1.1-1.6%로 보고된다. 이는 성인 여성만이 아니라, 여아들의 성범죄율 역시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봉건제 사회가 잔존할수록 범죄 및 성매매의 발달에 대한 우려가 심화될 수 있다. 이는 화폐 수단을 언제나 필요로 하고, 거래 대상이 된 박탈된 계급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단순히 성별의 여부를 떠나, 봉건 사회의 가부장제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접근한 크리스틴 델피, 『가부장제와 정치경제학』나 폴린 그로장, 『가부장 자본주의』 등과 같은 지적들은 실제로 여성의 노동 종사의 산정 기준을 가족 내에서만 고찰하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대해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들은 현대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가부장제의 폐지가 인위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주로 지적하지만, 오히려 엥겔스, 『가족, 사유 재산, 국가의 기원』를 오독한 결과로 판단된다. 봉건제 사회의 사회적 발달로 인해 자연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 역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또한 성매매의 발전을 여성 내 담론으로만 한정시킨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에는 봉건제의 역사가 제국주의 형성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봉건제 국가일수록 범죄와 성매매 등의 종사 비중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여성들의 성적 해방이 아닌, 경제적 부담을 제공한다. 

 

* 여기서는 성매매와 관련된 다양한 업종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겠다. 

 

치안 국가의 방관

 

정치·법적인 시각에서 일본 사회와 비교할 때, 범죄 및 매춘의 비율이 높을수록 치안의 부재와 처벌의 권한이 반비례한다는 시각으로 인해 군대와 경찰 내에서도 동시에 관련 범죄 피해가 발생한다. 이를 겪는 여성들은 성차별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지만, 그 원인을 파악함에 있어 계급 사회 내 신고 부재로 인해 자신의 위치조차 부담된다는 지적 역시 거론된다. 이러한 지적에는 치안 유지 사회일수록 폐쇄적 요인으로 인해 성적 차이로 인한 부담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국가 전반의 경제력 역시 저해하는 요인이며, 지배 계급의 정치적인 악용 여지 역시 증가함을 간과한다. 이를테면, 거리를 청소하는 정책 방식으로 부랑자나, 매춘부 등을 생산하고, 이들을 길거리로 내쫓는 자본주의 사회의 깊은 요인들은 오히려 또 다른 성적 차별을 일으키며, 범죄에 노출될 여지를 높인다. 일본 사회 내 가정 성폭력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으며,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마저 성매매 지역 일대를 방관하는 사례가 보고되며, 가상 거래 수단의 발달과 더불어 금융 사기 및 가상 성매매 역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일본의 밤거리 중 특정 구역 내에서는 치안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알려졌다. 특정 구역에서 고리대금업 및 범죄 조직들이 가출 일본 여성들과 연류된다거나, 이들의 성범죄 노출 위협을 증가시킨 점은 일본 사회에서도 적잖이 논란이 되는 중이다. 

 

노동자 여성의 계급적 임무 

 

지금처럼 각계의 노동자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는 여성을 단순히 가정만 수호하는 '신성한' 존재로만 판단할 수 없다. 오히려 자본가 계급에게 가장 적나라한 도구적 존재로 이용되는 여성 노동자들의 사회적 위협을 밝히고 싶다. 물론 일부 여성조차 계급적 구분 관점에 대해 처음부터 다소 '불편한' 시각을 내비칠 수도 있다. 그것은 높은 사회적 긴장 요구와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자신의 내적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부장제의 책임과 의무가 동반된 여성에게는 이러한 계급적 요구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과 무관하다고 회의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인식이란 대부분 국가 통계의 산정 오류에서 기인하는 경향에서도 설명되지만, 자본가 집단이 여성 노동자를 배척하는 방식으로 정치적인 고의적 결단을 내린다거나, 일부 조건을 협상하여 자본에 매수된 상태에서 직장 내 성폭력 사실을 은폐하거나, 특히 고위직 인물에게 이들은 취약하게 노출된다. 이러한 통계 자료의 부재는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 과정과 깊은 관계를 가지므로, 철학적 해석보다는 경제적 접근이 더 유의미할 수 있다. 물론 부르주아 사회로 진입할수록, 그러한 관계의 표면적인 측면은 오히려 고립된 측면을 강화했으며, 오히려 기술적 발달의 진입을 늦추고, 여성들의 '정치적 자유'를 더욱 위축시킬 뿐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회의적인 시각이 자리잡기 이전에 조금은 긴 시간을 인내하여 꾸준하게 이들을 정치적 요구의 주체로 설득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제국주의 역사와 성적 착취의 연쇄

 

이처럼, 제국주의 전쟁의 긴장을 또다시 부추기는 사회일수록 지배 계급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론하고 싶다. 최근 처음 부임한 여성 총리가 일본 정부의 위안부 사건과 강제 동원 사실에 침묵할 때, 각국의 자국민들에게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강제 징용된 재외인들의 존재와 이들이 착취 노동자 출신들이었다는 점을 알릴 필요가 있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무관하지 않으며, 여성·아동을 성적 착취의 대상만으로 보는, 그러한 시각이 일본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미국 사회는 더 큰 성추문 사건이 발생했기에, 그것이 정치적 계급의 이동 및 형성 과정과 더불어, 국가에 소속된 이들을 자국민으로만 한정하여 그러한 피해에 종사한 이들에 대해서는 정작 쉬쉬하게 된다. 이는 동아시아 내 베트남·대만 등지에서 미군과 일부 한국인이 자행한 성폭력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는다. 이는 자본의 관계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한 국가에 소속된 '자국민'만을 보호한다는 사실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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