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차액 지대. 개설 

 

지대 분석의 출발점은 지대로 전환되는 잉여 가치의 일부, 곧 생산물의 총가격 중 일부가 여타의 상품과 마찬가지로 생산 가격 (비용 가격 + 평균 이윤)에 규정된다는 전제이다. 본 분석은 농산물을 주된 고찰 대상으로 삼으나 이는 광산물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해당 생산물의 판매 가격은 (소비된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가치를 합산한) 비용 요소에, 총 투하 자본에 대한 일반 이윤율을 적용하여 산출된 이윤을 더한 수치와 일치한다. 이처럼 평균 판매 가격과 생산 가격이 부합한다는 전제하에, 이윤의 일부가 지대로 전환되어 상품 가격의 일부가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기제를 규명하는 것이 본 논의에서 핵심 과제이다.

 

지대의 일반적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대다수 공장이 증기 기관을 사용하며 소수만이 자연적 폭포를 동력원으로 활용하는 상황을 전제한다. 이때 증기 기관을 사용하는 전형적 공장의 생산 가격을 투하 자본 100 대비 115로 설정하면, 15%의 이윤율은 소비된 자본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 투입된 총자본을 근거로 산출된다. 이러한 생산 가격은 개별 기업의 비용 가격이 아닌, 해당 산업 부문 전체의 평균적 자본 조건에 따른 평균 비용 가격를 준거로 규정된다. , 이는 시장 가격의 진동과 구별되는 평균적 시장 생산 가격이다.

 

상품 가치의 본질은 개별 생산자의 노동 시간이 아니라, 주어진 평균적 생산 조건에서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에 규정되어 결정된다. 이러한 가치 규정 방식은 종국적으로 지배적인 시장 가격 또는 시장 생산 가격의 형태로 발현된다.

 

수력을 동력으로 하는 공장의 비용 가격을 100이 아닌 90으로 전제할 경우, 시장을 지배하는 대다수 상품의 생산 가격 (15% 이윤 포함)115가 해당 공장의 판매 가격으로 설정된다. 이로 인해 수력 이용 공장의 이윤은 (일반적 생산 가격에 규정되는 시장 가격) 115에 의거하여, 통상적인 15를 초과하여 25에 달하게 된다. 이러한 초과 이윤 10의 발생은 상품을 시장 생산 가격보다 고가에 판매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 생산 가격에 부합하게 판매하되, (해당 산업의 평균적 수준을 상회하는) 예외적으로 유리한 생산 조건에서 자본을 운용한 결과다.

 

이로부터 두 가지 사실이 도출된다.

 

첫째, 자연 수력을 이용하는 생산자의 초과 이윤은 (시장 가격의 우연한 변동이나 유통 과정의 일시적 결과가 아니며), 앞서 생산 가격 분석에서 규명된 초과 이윤의 일반적 성격에 부합한다. , 해당 초과 이윤은 유리한 조건을 점유한 생산자의 개별 생산 가격과 그 생산 부문 전체를 지배하는 일반적·사회적 생산 가격 간의 차액으로 규정된다. 이 차액은 상품의 일반적 생산 가격이 개별 생산 가격을 상회하는 초과분과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초과 이윤을 규정하는 두 한계 축은 개별 비용 가격 및 개별 생산 가격과 일반적 생산 가격이다.

 

수력을 이용해 생산된 상품의 가치가 낮은 것은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량, 곧 불변 자본의 구성 요소인 대상화된 노동이 적기 때문이다. 수력 이용 공장의 노동 생산성이 여타 공장보다 높다는 사실은 동일한 상품량을 생산하는 데 더 적은 양의 불변 자본 (대상화된 노동)과 살아있는 노동 (열역 불필요 등)을 소요한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이러한 개별적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상품의 가치와 비용 가격 및 생산 가격을 하락시킨다. 산업 자본가의 관점에서 이는 비용 가격의 저하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가 지불해야 할 대상화된 노동과 살아있는 노동에 대한 임금 노동의 총량이 감소한 결과다. 상품의 비용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개별 생산 가격 또한 낮아진다. 비용 가격이 100에서 90으로 감소하면, 개별 생산 가격은 100: 115 = 90 : 103.5의 비례 관계를 따라 산출되며, 이에 따른 초과 이윤은 기존의 10을 상회하는 11.5에 달하게 된다.

 

개별 생산 가격과 일반적 생산 가격의 격차는 결국 개별 비용 가격과 일반적 비용 가격 간의 차이에 규정되어 결정되는데, 이는 초과 이윤의 한계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초과 이윤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는 (일반 이윤율이 내포된) 일반적 생산 가격이다. 따라서 석탄 가격의 하락 등으로 일반적 비용 가격이 낮아지면, 일반적 비용 가격과 개별 비용 가격의 차액이 축소되어 결과적으로 초과 이윤 또한 감소하게 된다.

 

생산자가 자신의 상품을 개별 가치 또는 그에 기착하는 개별 생산 가격으로 판매해야 한다면 초과 이윤은 소멸한다. 초과 이윤이 발생하는 근거는 선차적으로 상품이 (경쟁을 매개로 하여 개별 가격들이 평준화된) 일반적 시장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사실에 있으며, 후차적으로는 개별 노동의 향상된 생산성이 노동자의 실익이 아닌 고용주의 이익, 곧 자본의 생산성으로 포섭되어 나타난다는 점에 있다. 결국 초과 이윤은 일반적 시장 가격의 유지와 개별적 노동 생산성의 자본으로의 귀속이라는 두 가지 기제가 결합한 결과물이다.

 

초과 이윤의 한계는 일반적 생산 가격 수준에 규정되며, 일반적 이윤율은 이 가격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소다. 따라서 초과 이윤은 일반적 생산 가격과 개별적 생산 가격의 차이, 곧 일반 이윤율과 개별 이윤율 간의 격차 내에서만 성립한다. 이 차액을 상회하는 초과분이 발생한다면, 이는 해당 생산물이 (시장의 기제에 규제되는) 일반적 생산 가격이 아닌 그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됨을 전제한다.

 

둘째, 증기 대신 수력을 동력으로 활용하는 제조업자의 초과 이윤은 여타의 초과 이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부수적 거래나 시장 가격의 일시적 변동에서 기인한 것을 제외한) 모든 전형적 초과 이윤은, 특정 자본이 생산한 상품의 개별 생산 가격과 해당 생산 부문 전체에 투하된 총자본에 근거하여 상품의 시장 가격을 규제하는 일반적 생산 가격 사이의 격차에 규정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여타의 초과 이윤과 구별되는 특수성이 발현된다.

 

수력을 사용하는 제조업자가 일반 이윤율에 규정되는 생산 가격 체계 내에서 초과 이윤을 실현할 수 있는 근거는, 첫째로 수력이라는 자연력의 존재에 있다. (화석 연료를 연소시켜 얻는 증기와 달리), 수력은 자연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되는 자연적 생산 요소다. 이는 노동의 생산물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등가물 지불을 요하지도 않는다. , 수력은 인간의 노동 투입 없이도 생산 과정에 기여하는 무상의 자연적 생산 요소로 초과 이윤 형성의 물리적 기초가 된다.

 

증기 기관을 사용하는 제조업자 역시 무상의 자연력을 활용하며 노동 생산성을 제고한다. 그는 연료인 석탄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하나, 물이 증기로 기화하는 물리적 성질이나 증기의 탄력성 등 자연력 자체에 대해서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력은 노동자들의 필요 생활 수단의 생산 비용을 낮추면서 잉여 가치 (와 이윤)을 제고하며, 협업이나 분업 등에서 기인하는 사회적 노동력과 마찬가지로 자본에 포섭된다.

 

자연력의 독점 및 그에 따른 노동 생산성 향상의 독점은 증기 기관을 운용하는 모든 자본에 공통된 현상이며, 이 독점은 노동 생산물 중 임금으로 전환되는 부분에 비해 잉여 가치의 비중을 높여 일반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는 평균 이윤을 상회하는 개별 이윤의 초과분인 초과 이윤을 창출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수력이라는 특정 자연력의 사용이 초과 이윤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동 생산성을 높인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며, 추가적인 요소의 개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산업 전반에 걸친 자연력의 적용은 (필요 생활 수단의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량에 영향을 주어) 일반 이윤율의 수준을 변동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자체로 일반 이윤율과의 개별적 격차를 창출하지는 않으며, 현재 논의의 핵심은 바로 이 격차의 발생 기제에 있다.

 

우연한 요소를 배제할 때, 특정 생산 부문의 개별 자본이 실현하는 초과 이윤은 (부문 간 이윤율 격차가 끊임없이 균등화되어 평균 이윤율을 형성한다는 전제 아래) 비용 가격 (곧 개별 생산 비용)의 절감에 기인한다. 이러한 절감은,

 

첫째, 자본의 규모가 평균을 상회하면서 생산 공비가 감소하고 협업·분업 등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일반적 원인들이 보다 전면적이고 집약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 규모와 무관하게 새로운 발명, 개량된 기계, 화학적 비법 등 평균 수준을 상회하는 혁신적 생산 수단 및 방법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용 가격의 감축과 그에 따른 초과 이윤은 기능 자본의 투하 방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예외적으로 거대한 자본이 특정 수중에 집적되어 있거나, 또는 일정 규모의 자본이 배타적으로 생산성을 발휘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우위는 해당 예외적인 생산 방식이 일반화되거나 더 발달한 생산 방식에 추월당하는 순간 소멸한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초과 이윤의 원천은 자본 그 자체, 곧 자본의 규모나 운용의 경제성 등 자본 내부의 요인에 내재하며, 이는 동일 부문의 여타 자본이 같은 방식으로 투하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 간 경쟁은 이러한 기술적 차이를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에 규정되는 가치 결정 기제는 생산 조건의 평준화와 상품 가격의 하락을 강제한다.

 

그러나 수력을 이용하는 제조업자의 초과 이윤은 이와 성격을 달리한다. 그가 전유하는 높은 노동 생산성은 자본이나 노동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도, 자본에 포섭된 단순한 자연력의 활용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특정 자연력의 이용과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노동의 비약적으로 강화된 자연발생적 생산성에 근거한다.

 

나아가 해당 자연력은 증기의 탄력성과 같이 동일 생산 부문의 모든 자본이 보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며, 단순히 자본을 생산 부문에 투하한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폭포와 같은) 특수한 지리적 조건 및 그 부속 시설을 점유한 주체만이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독점적 자연력이다. 모든 자본이 물을 증기로 전환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노동 생산성을 제고하는 이러한 자연 조건은 자본의 힘으로 인위적으로 창출될 수 없다. , 이는 특정 공간에 고착된 자연발생적 조건이며, 해당 조건이 결여된 곳에서는 추가적인 자본 지출을 투입하더라도 결코 재현될 수 없는 희소성을 지닌다.

 

이러한 자연 조건은 기계나 석탄 등처럼 노동으로 재현되는 생산물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특정 토지가 보유한 고유의 물리적 속성에 귀속된다. 폭포를 점유한 제조업자는 해당 자연력에 대한 타자의 이용을 배제하는데, 이는 토지 자원의 희소성, 특히 수력을 겸비한 토지의 절대적 한계에 기인한다.

 

비록 한 국가 내 자연적 폭포의 수효는 제한적일지라도, 산업적 활용 범주에 있는 수력의 총량은 기술적 개입에 힘입어 확충될 수 있다. 가령 폭포의 수로를 인공적으로 변경하여 동력을 극대화하거나, 수차를 개량하여 이용률을 제고할 수 있으며, 기존 수차가 부적합할 경우 동력기를 도입하면서 주어진 수력을 한계치까지 활용하기에 이른다.

 

자연력의 점유는 점유자의 수중에서 자본의 생산 과정을 매개로 창출될 수 없는 고도의 생산 조건을 형성하며, 이처럼 독점이 수반되는 자연력은 필연적으로 토지와 결착되어 있다. 이러한 유형의 자연력은 해당 생산 부문의 보편적 조건에 해당하지 않을뿐더러, 인위적으로 재생산되는 조건에도 속하지 않는 고유한 특수성을 지닌다.

 

폭포와 그 부속 토지가 특정 토지 소유자의 수중에 있다고 전제할 때, 소유자는 자본 투하를 매개로 한 폭포 이용을 배제하거나 허용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점한다. 자본은 자생적으로 폭포를 창출할 수 없으므로, 폭포 이용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윤은 자본 자체의 위력이 아닌 독점된 자연력을 이용한 결과로 귀착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초과 이윤은 지대로 전환되어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제조업자가 폭포 사용료로 매년 10 (또는 11.5)을 지불한다면, 그의 이윤은 비용 가격 100 (또는 90) 대비 15%15 (또는 13.5)로 평준화되어 증기 기관 이용 자본가와 동일한 경쟁 선상에 놓이게 된다. 자본가가 폭포를 직접 소유하는 경우에도 실질은 동일하다. 그는 초과 이윤을 자본가로가 아니라 폭포 소유자로 취득하는 것이며, 이 이윤이 자본 외부의 독점적·희소적 자연력에 대한 처분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자체가 초과 이윤의 지대화를 규정한다.

 

첫째로, 이 지대가 본질적으로 차액 지대임은 명백하다. 이는 지대가 상품의 일반적 생산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생산 가격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 해당 지대는 독점적 자연력을 이용하는 특수 자본의 개별 생산 가격과 그 생산 부문 전반에 투하된 자본의 일반적 생산 가격 사이의 차액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둘째로, 이 지대는 투하 자본이나 그에 수반되는 노동 생산성의 절대적 상승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생산 부문의 특수한 개별 자본의 생산성이 예외적이고 유리한 자연 조건으로부터 배제된 여타 자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자본이나 노동의 절대적 생산성 상승은 상품 가치를 하락시킬 뿐이다. 증기 사용이 수력 사용보다 결정적으로 우월하여 석탄은 유상이고 수력은 무상이라는 비용상의 이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면, 수력은 더 이상 이용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초과 이윤이나 지대도 창출하지 못하게 된다.

 

셋째로, 자연력은 초과 이윤의 원천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높은 노동 생산성을 담보하는 자연적 토대일 뿐이다. 사용 가치는 교환 가치를 매개하는 바탕이지 그 원인은 아니다. 특정 사용 가치가 노동 없이 획득된다면 교환 가치를 지니지 못하며, 반대로 사용 가치가 없는 물건은 교환 가치 또한 가질 수 없다. 각기 다른 가치들이 생산 가격으로 균등화되지 않고 개별 생산 가격이 (시장을 지배하는) 일반적 생산 가격으로 수렴되지 않는다면, 폭포 이용에 따른 노동 생산성의 상승은 단순히 해당 상품의 가격을 하락시킬 뿐 상품에 포함된 이윤 비중을 높이지 못한다. 이는 자본이 고용된 노동의 자연적·사회적 생산력을 자신의 것으로 포섭하지 못할 때 상승된 노동 생산성이 잉여 가치로 전환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넷째로, 폭포가 소재한 토지의 소유권은 폭포를 매개로 생산되는 잉여 가치나 상품 가격의 구성 부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이러한 초과 이윤은 토지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예컨대 제조업자가 주인 없는 토지 위의 폭포를 무상으로 이용하는 상황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토지 소유는 초과 이윤으로 전환되는 가치 부분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자에게 귀속될 초과 이윤을 토지 소유자 (폭포 소유자)의 수중으로 이전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뿐이다. 결국 토지 소유는 초과 이윤 발생의 원인이 아니라, 해당 이윤을 지대의 형태로 전환하여 소유자가 이를 배타적으로 취득하게 만드는 법적·사회적 원인에 불과하다.

 

다섯째로, (토지 소유자가 이를 제3자나 제조업자에게 판매할 때 책정되는) 가격은 제조업자의 개별 생산 가격에는 포함될 수 있으나, 해당 상품의 일반적 생산 가격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는 지대 자체가 폭포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증기 기관 생산 상품의 일반적 생산 가격으로부터 파생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폭포의 가격이라는 개념은 실질적인 경제적 관계를 은폐하는 불합리한 표현에 불과하다. 폭포는 토지나 여타 자연력과 마찬가지로 대상화된 노동을 포함하지 않으므로,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따라서 가치의 화폐적 표현인 가격 또한 본래 존재할 수 없다. 폭포의 가격은 실상 자본화된 지대에 지나지 않는다. 토지 소유권은 소유자로 하여금 개별 이윤과 평균 이윤과의 차액을 전유하게 하며, 매년 반복적으로 획득되는 이 이윤이 자본화되면서, 비로소 자연력 그 자체의 가격인 것처럼 왜곡되어 나타난다.

 

폭포 이용에 따른 연간 10의 제조업자에게 발생하는 초과 이윤이 평균 이자율이 5%을 상회한다면, 이 수익은 자본 200에 대한 연간 이자를 대변하게 된다. 소유자가 제조업자로부터 징수하는 연간 10의 수익을 자본화한 수치인 200, 흡사 폭포 자체의 자본 가치인 것처럼 현상한다. 그러나 폭포가 본래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그 가격 또한 징수된 초과 이윤이 자본주의적 계산 방식에 환산된 결과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다음의 지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200이라는 가격은 수치상 초과 이윤 1020년분에 해당하나, (제반 조건이 불변하는 한) 폭포 소유자는 이를 30년 또는 100년 등 기한의 제한 없이 징수할 수 있다. 반대로, 수력에 적용될 수 없는 혁신적 생산 공법이 도입되어 증기 기반 상품의 비용 가격을 100에서 90으로 하락시킨다면, 기존의 초과 이윤과 지대는 물론 폭포의 가격조차 즉각 소멸하게 된다.

 

그러므로 차액 지대의 일반적 개념이 확립되었으므로, 이제 본격적인 농업 부문에서의 차액 지대를 고찰하고자 한다. 농업에 관한 제반 논의는 대체로 광업 부문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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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초과 이윤이 지대로 전환

 

91. 서론

 

토지 소유의 역사적 제 형태를 분석하는 것은 본고의 범위를 벗어난다. 여기서는 자본이 창출하는 잉여 가치의 일부가 지대의 형상을 취하여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국면에 한하여 토지 소유 문제를 고찰한다. 따라서 농업 또한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지배 아래 놓여 있음을 전제한다. , 농업 생산의 주체는 자본가이며, 그들이 여타 부문의 자본가와 구별되는 지점은 투하 자본과 그에 부수되는 임금 노동이 작용하는 물질적 기초가 토지라는 요소에 국한된다는 점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토지 소유는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에 포섭된 하나의 특수한 조건으로 취급된다.

 

차지 농업가 (농업 자본가)가 곡물을 생산하는 행위는 제조업자가 가공품이나 기계를 생산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농업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포섭되었다는 전제는 해당 생산 양식이 생산의 전 영역은 물론 부르주아 사회의 전 부문을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자본 간 자유 경쟁, 생산 부문 간 자본 이동의 유연성, 그리고 평균 이윤율의 균등화라는 자본주의의 필수적 기제들이 농업 부문에서도 완전히 전개되었음을 내포한다.

 

본고에서 고찰하는 토지 소유는 봉건적 토지 소유나 생계 수단으로 영위되는 소농민적 농업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개입으로 전환된 특수한 역사적 형태다. 본래 소농민적 농업에서 토지 점유는 직접 생산자에게 필수적인 생산 조건이자 농가 번영의 토대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노동자로부터 생산 수단을 분리하는 것을 본질로 하듯, 농업 부문에서도 농촌 노동자로부터의 토지 수탈과 (이윤을 추구하는 농업을 경영하는) 농업 자본가에 대한 농촌 노동자의 종속이 필연적으로 전제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이외의 여타 토지 소유 및 농업 형태가 이전에 존재했거나 현재 존속한다는 사실은 본 분석의 유효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반박은 농업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과 그에 상응하는 토지 소유 형태를 가변적인 역사적 범주가 아닌 고정적인 자연적 범주로 간주하는 경제학자들의 논리적 허점을 드러낼 뿐이다.

 

근대적 토지 소유 형태를 고찰해야 하는 이유는 토지에 대한 자본 투하로 인해 발생하는 특수한 생산 및 교환 관계의 규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찰이 결여된다면 자본에 대한 분석은 완결성을 갖출 수 없다. 따라서 논의의 범위를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주요 식량이자 주민의 주식을 이루는 곡물 생산, 곧 진정한 의미에서 농업에 투하된 자본으로 한정한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밀을 상정할 수 있으나, 동일한 법칙이 적용되는 광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도 무방하다.

 

아마나 염료 식물과 같은 기타 농업 생산물 또는 독립적 축산업 등에 투하된 자본의 지대가 주요 식량 생산 자본이 낳는 지대에 종속됨을 규명한 것은 애덤 스미스의 주요한 업적이다. 스미스 이후 이 분야의 진전은 정체되었으며, 이에 대한 제한이나 추가는 토지 소유를 독립적 주제로 다루는 단계에서 논의될 사안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밀 생산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토지 소유 형태를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으나, 논증의 엄밀성을 기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언급할 것이다.

 

본고에서 전제하는 토지에는 소유권이 설정되어 토지의 부속물로 간주되는 수자원 등의 요소가 포함됨을 명시한다.

 

토지 소유는 특정 주체가 여타 구성원을 배제하고 지구의 일정한 부분을 자신의 배타적 권리 아래 지배하는 독점력을 전제한다. 따라서 본 분석의 핵심은 자본주의적 생산 토대 위에서 이러한 독점이 지니는 경제적 가치, 곧 가치 증식력을 규명하는 데 있다. 토지 소유자가 해당 토지 자산을 사용하거나 남용할 수 있는 법률적 권한을 보유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권한의 행사는 소유자의 자의적 판단과 무관한 객관적 경제 조건에 전적으로 종속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적 토지 소유라는 법률적 관념은 토지 소유자가 여타 상품 소유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관념은 고대 세계에서는 유기적 사회 질서의 해체기에 국한되어 나타났으며, 근대 세계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고도화와 함께 확립되었다. 아시아의 경우, 이 관념은 유럽의 영향 아래 예외적으로 도입되었을 따름이다.

 

시초 축적’ (권 제8)에서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직접적 생산자가 토지의 부속물이라는 종속적 지위 (예속농·농노·노예 등)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인민층으로부터 토지가 수탈될 것을 필연적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전제로부터 토지 소유의 독점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성립을 위한 역사적 전제 조건이며, 피지배 계급의 착취에 기반한 이전의 생산 양식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를 재생산하는 물적 토대로 작용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형성기에 직면했던 기존의 토지 소유 형태는 해당 생산 양식의 운동 법칙에 상응하는 적합한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농업을 자본에 종속시키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 생산 방식에 부합하는 토지 소유 형태를 창출하였다. 이에 따라 봉건적 토지 소유, 씨족 소유, 마르크 공동체의 소농적 소유 등은 각기 상이한 법률적 형태에도,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적합한 경제적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이룩한 주요한 성취 중 하나는 농업을 미발달한 구성원들의 전통적·자연발생적 방식에서 해방시켜 농학의 의식적·과학적 적용을 실현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사적 소유의 조건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의 일이지만 말이다.) 또한, 이 생산 방식은 토지 소유를 이전의 지배·예속 관계로부터 완전히 단절시키는 동시에, 생산 조건으로서의 토지를 토지 소유 및 토지 소유자로부터 실질적으로 분리해냈다.

 

이제 토지는 토지 소유자에게 있어 일정한 화폐 조세 (곧 토지 독점에 기초하여 산업 자본가인 차지 농업가로부터 징수하는 지대)를 표상할 뿐이다. 이로 인해 토지 소유자는 자신의 토지 재산을 스코틀랜드에 둔 채 평생을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에서 영위하게 된다. 이 시기의 토지 소유는 이전의 정치적·사회적 잔재와 부수적 권리들로부터 완전히 해방하며 순수한 경제적 형태를 획득한다. 이는 일찍이 산업 자본가들과 그들의 이론적 대변인들이 토지 소유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며 폐기를 주장했던 전통적 잔재들이 소멸했음을 의미한다.

 

농업을 합리화하여 사회적 규모의 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토지 소유의 전근대적 불합리성을 실증한 점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중대한 역사적 성과다. 다만, 이러한 발전은 자본주의의 여타 성취와 마찬가지로 직접적 생산자의 철저한 빈곤화를 대가로 실현된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몇 가지 예비적 고찰이 요구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현실의 경작자가 자본가 (차지 농업가)에게 고용된 임금 노동자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차지 농업가는 농업을 자본의 특수한 운용 분야로 간주하여 자신의 자본을 투입할 뿐이다. 이 농업 자본가는 화폐 자본의 차입자가 이자를 지불하듯, 특정 생산 분야에 자본을 투하할 권리를 부여받은 대가로 토지 소유자에게 계약상 확정된 화폐액을 정기적으로 지불한다. 경작지, 건축지, 광산, 어장, 삼림 등 대상의 종류와 관계없이 이 화폐액을 지대라 칭한다.

 

지대는 계약에 명시된 임대 기간 전반에 걸쳐 지불되며, 이는 토지 소유권이 경제적으로 실현되고 가치가 증식되는 구체적인 형태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 지점에서는 근대 사회 구조를 이루는 세 가지 주요 계급인 임금 노동자, 산업 자본가, 토지 소유자가 상호 대립하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다.

 

자본은 토지에 투하되어 그 물리적 실체와 결합할 수 있다. 이는 토질의 화학적 개량이나 시비 등과 같이 비교적 일시적인 형태일 수도 있고, 배수로·관개 시설·경지 정리·농장 건물 등과 같이 항구적인 고정 자본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처럼 토지와 일체가 된 자본을 토지 자본이라 명명한다. (철학의 빈곤. CW 6: 205). 이는 고정 자본의 특수한 범주에 해당한다. (차지 농업가가 토지 소유자에게 지불하는) 지대의 총액에는 토지에 결합된 자본 및 그에 따른 개량에 대한 이자가 포함될 수 있으나, 이는 자연 상태 또는 경작 상태의 토지 그 자체를 사용한 대가인 진정한 지대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토지 소유자 수입 중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본고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여기서는 그 개념적 차이를 명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농업의 통상적 생산 과정에 수반되는 일시적 자본 투자는 예외 없이 차지 농업가가 수행한다. 이러한 투자와 합리적 경작 행위는 토지의 무분별한 황폐화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토지의 생산성을 제고하고 생산물을 증대시키면서 토지라는 단순 물질을 토지 자본으로 전환한다. 이에 따라 경작지는 동일한 자연적 조건을 갖춘 미경작지에 비해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 심지어 토지와 결합하여 장기에 걸쳐 소모되는 고정 자본의 상당 부분, (또는 특정 분야의 경우 그 전부가) 차지 농업가의 자본 투하로 인해 형성된다.

 

계약에 명시된 임차 기간이 종료되는 즉시, 토지에 투하된 모든 개량은 토지라는 실체의 불가분한 부속물로 토지 소유자의 소유로 귀속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고도화에 따라 토지 소유자가 임차 기간을 최소한으로 단축시키려는 주요한 동기 또한 여기에 있다). 새로운 임대 계약 체결 시, 토지 소유자는 (토지에 체화된 자본에 대한) 이자를 진정한 의미의 지대에 가산하여 수취하며, 이는 기존 차지 농업가와의 재계약이나 제3자와의 새로운 계약 여부와 무관하게 지대의 실질적 상승을 초래한다.

 

토지를 매각할 경우, 토지의 화폐 가치는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은) 투하 자본이 체현된 만큼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토지 소유자가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의 자본 투하 결과물을 독점하는 기제는, 지대 자체의 변동과는 별개로 경제 발전 과정에서 토지 소유자의 부가 증대하고 소유 자산의 가치가 끊임없이 팽창하는 핵심적인 요인 중 하나다.

 

이처럼 토지 소유자는 자신의 기여 없이 성취된 사회 발전의 과실을 사적으로 전유한다. 그들은 이른바 열매를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계급이다. 그러나 임차 기간 만료와 동시에 (모든 토지 개량 성과가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이러한 기제는 합리적 농업 전개의 치명적인 장애물로 작용한다. 차지 농업가는 자신의 임차 기간 내에 투하 자본의 완전한 회수를 기대할 수 없는 모든 개량 사업과 지출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적 사정에 대해서는 지난 근대 지대론의 선구자이자 차지 농업가이며 농학자였던 J. 앤더슨을 비롯하여, 오늘날 영국의 현행 토지 소유 제도를 비판하는 진영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월턴의 영국 차지 제도의 역사(1865: 96-97)는 당대 농업 협회들의 노력이 실질적인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 나라 수많은 농업 협회의 노력은 농업 개량의 실질적인 발전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차지 농업가들 역시 (토지 소유자나 관리인, 농업 협회장 못지않게) 노동자의 처우 개선보다는 지주 소유지의 가치와 지대 수입을 높이는 데 훨씬 더 기여하는 한, 양호한 배수 시설과 충분한 시비, 그리고 철저한 경영이 노동력 투입과 결합될 때 토지 개량과 생산 증대에 경이로운 결과를 낳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량에는 막대한 지출이 요구된다. 차지 농업가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토지를 개량하여 그 가치를 높여 놓아도, 결국 그 이익의 대부분을 지주가 지대 인상소유지 가치 상승의 형태로 가로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지 농업가들은 매우 영리하다. 그들은 농업 축제의 연설자들 (지주와 그 관리인들)이 기묘하게도 함구하는 진실, 곧 개량의 결실 대부분이 결국 지주의 주머니로 귀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전임 차지 농업가가 아무리 농장을 개량해 놓았다 하더라도, 그 후계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이전의 개량으로 상승한 토지 가치에 비례하여 지주가 지대를 인상시켰다는 냉혹한 현실뿐이다.’

 

이러한 기제는 일반적인 농업용 토지보다 건물용 대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국의 경우, 자유 보유지로 매각되지 않는 건물용 대지의 압도적 다수는 지주가 99년 또는 그보다 짧은 기간으로 임대한다. 그러나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는 즉시, 그 지상에 세워진 건물은 토지와 일체가 되어 지주의 소유로 귀속된다.

 

토지 임차인은 막대한 지대를 감당해 온 임차 기간이 끝나면, (즉시 임대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가옥을 지주에게 인도해야 할 의무를 진다. 임차 기간의 계약이 만료되는 그 순간, 부동산 중개인이나 감정인이 들이닥쳐 가옥의 상태를 낱낱이 조사하고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원상 복구되었는지 검사한다. 검사를 마치면 그들은 가옥을 점유하여 지주의 재산 목록에 귀속시킨다. 임차인이 막대한 지대를 지불하며 지켜온 가옥이 순식간에 지주의 사유 재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앞으로 상당 기간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방치한다면, 이 나라 가옥 소유의 대부분은 토지와 마찬가지로 대토지 소유자들의 손에 장악되고 말 것이다. 실제로 템플 바 남북의 웨스트엔드 전역이 불과 5-6명의 대지주 소유이며, 현재 고율의 지대로 임대된 가옥들도 곧 임대차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이 나라의 모든 도시에서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배제와 독점을 수반하는 이 탐욕스러운 기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국의 항만 도시 내 부두 시설 거의 전부가 동일한 수탈 과정을 거쳐 거대 지주들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월턴, 영국 차지 제도의 역사: 93)

 

이러한 조건 아래 다음과 같은 사실은 분명하다. 1861년 잉글랜드와 웨일즈를 대상으로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20,066,224명 중 가옥 소유자의 수는 36,032명에 불과하다. 대소유자와 소소유자를 분리하여 인구수 및 가옥수 대비 가옥 소유자의 비율을 산출한다면, 그 격차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건물 소유에 관한 상기 실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첫째, 진정한 의미의 지대와 (토지에 결합된 고정 자본에 대한) 이자를 명확히 구분해 준다. 건물에 대한 이자는 (농업에서 차지 농업가와 토지에 투하한 자본의 이자와 마찬가지로), 임대차 계약 기간에는 산업 자본가 (건축 투기업자 또는 차지 농업가)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이는 (매년 특정 시점에 토지 사용의 대가로 지불되는) 지대 그 자체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며, 지대에 덧붙여지는 추가분을 형성한다.

 

둘째, 토지에 합쳐진 타인의 자본이 계약 종료와 함께 토지 실체와 결합하여 종국에는 토지 소유자의 자산으로 귀속됨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해당 자본에 대한 이자가 지대액에 산입되면서, 결과적으로 지주의 실질적 수입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일부 저술가 (: 캐리)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공격으로부터 토지 소유를 옹호하고,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를 대립이 아닌 상생의 체제로 묘사하기 위해 (토지 소유의 특수한 경제적 표현)인 지대를 이자와 동일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토지 소유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적 대립을 은폐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이자를 지대와 동일시하려는 시도가 주를 이루었다. 당시의 사회적 기저에서 토지 소유는 사적 소유의 원초적이고 정당한 형태로 존중받았던 반면, 자본에 대한 이자는 부당한 고리대로 간주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스와 로크 등은 자본에 대한 이자를 지대의 파생된 형태로 설명하였으며, 이는 튀르고가 지대의 존재를 근거로 이자의 정당성을 도출한 것과 일치한다. 그러나 현대의 저술가들은 지대가 토지에 투하된 자본의 이자를 포함하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토지 소유자가 아무런 비용 부담 없이 타인의 자본에서 이득를 취하고 그 자본 자체를 무상으로 전유한다는 실상을 간과하고 있다.

 

일정한 생산 양식에 수반되는 모든 소유 형태의 정당성은 해당 생산 양식과 그로부터 파생된 생산·교환 관계가 지니는 한시적인 역사적 필연성에 근거한다. 하지만 토지 소유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일정 발전 단계에 이르면 해당 생산 양식의 관점에서조차 불필요하고 유해한 요소로 전락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소유 형태와 구별된다.

 

지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자와 오인되기도 하며, 이로 인해 그 경제적 특수성이 왜곡된다. 지대는 통상 (토지 소유자가 일정 면적의 토지를 임대하여 획득하는) 연간 화폐액으로 산출된다. 그런데 이러한 정기적 화폐 수입은 자본화 과정을 거쳐 의제 자본에 대한 이자로 환산된다.

 

예컨대 평균 이자율이 5%일 때, 연간 200의 지대는 4,000이라는 의제 자본에 대한 이자로 간주된다. 이처럼 자본화된 지대액이 토지의 구매 가격 또는 이른바 토지 가치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는 노동의 가격이라는 표현만큼이나 본질적으로 모순된 범주다. 토지는 인간 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므로, 그 자체로는 가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불합리한 형태의 이면에는 실질적인 생산 관계가 은폐되어 있다. 가령 어떤 자본가가 (연간 200의 지대를 창출하는) 토지를 4,000에 매입한다면, 이는 해당 자본을 이자 낳는 유가 증권에 투자하거나 직접 대부하여 연 5%의 평균 이자를 획득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 , 4,000의 자본이 5%의 이율로 가치 증식되는 과정인 셈이다. 이러한 전제 아래 매입자는 20년이 경과하면 토지 수입만으로 초기 투하 자본인 구매 가격 전액을 회수하게 된다.

 

영국에서 토지 매입 가격을 수입의 몇 년 분으로 산출하는 관례는 지대의 자본화 과정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토지의 구매 가격은 토지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해당 토지가 창출하는 지대를 현행 이자율에 따라 환산한 가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본화 과정은 지대의 존재를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며, 지대 자체가 자본화된 결과물인 토지 가격으로부터 도출되거나 설명될 수는 없다. 논의의 진정한 출발점은 토지 매매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지대 그 자체여야 한다.

 

상기 논의에 따르면, 지대가 일정할 때 토지 가격은 이자율과 반비례 관계를 형성하며 등락한다. 표준 이자율이 5%에서 4%로 하락하면, 연간 200의 지대는 자본 4,000이 아닌 자본 5,000의 연간 가치 증식분을 대변하게 되며, 이에 따라 해당 토지의 가격은 4,000 (20년 분 수입)에서 5,000 (25년 분 수입)으로 상승한다. 이자율이 상승하는 경우에는 이와 반대의 결과가 초래된다.

 

이와 같은 토지 가격의 운동은 지대 자체의 추이와는 무관하게 단순히 이자율에 규제된다.

 

사회 발전에 따라 이윤율은 저하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자율 또한 (이윤율에 규제되는 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다. 더욱이 이자율은 (이윤율의 영향과는 별개로)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의 증가에 따라 저하되므로, 토지 가격은 지대의 운동이나 (지대를 구성하는) 토지 생산물 가격의 변동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지대 그 자체를 (지대가 토지 구매자에 대해 취하는) 이자 형태로 오인하는 것은 지대의 본질적 성질을 몰각한 데서 기인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왜곡된 결론으로 귀착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들에서 토지 소유는 매우 고상한 소유 형태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토지 매입은 극히 안전한 자본 투자 수단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지대를 토지 가격으로 자본화할 때 적용되는 이자율), 곧 지대 수입을 목적으로 토지를 구매할 경우의 수익률은 통상적인 장기 자본 투자의 이자율보다 낮게 형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토지 매수인은 동일한 자본을 여타 분야에 투하할 경우 5%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음에도, 토지 매입 가격에 대해서는 단지 4%의 수익만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역으로 그가 일정한 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투자처에서 동일한 연간 화폐 수입을 얻기 위해 투하하는 자본보다) 더 많은 자본을 지불했음을 의미한다.

 

티에르는 자신의 저술 소유에 관하여(1848년 프랑스 국민 의회에서 프루동에 맞서 행한 연설의 기록물)에서 이러한 현상을 근거로 지대 자체가 낮다는 결론을 도출하였으나, 이는 명백한 오류다. 해당 사실이 입증하는 바는 지대의 낮은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지대를 획득하기 위한 구매 가격, 곧 토지 가격이 고평가되어 있다는 실상일 뿐이다.

 

자본화된 지대가 토지의 가격 (또는 가치)로 표상되고, 이에 따라 토지가 여타 상품처럼 매매된다는 사실은 일부 변호론자들에게 토지 소유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이들은 매수인이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토지에 대해 등가물을 지불하였으며, 대다수의 토지 소유권이 이러한 매매 과정을 거쳐 소유자에게 이전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노예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을 지닌다. 노예 소유자 역시 노예 매입을 위해 현금을 지불하였으며, 노예의 노동 생산물은 단지 그 구매에 투하한 자본에 대한 이자를 대변할 뿐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대의 매매, 곧 토지 가격으로부터 지대 존재의 정당성을 도출하려는 시도는 지대의 존재를 지대의 존재 그 자체로 정당화하려는 순환 논리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토대 위에서 토지 소유가 갖는 자립적·특수한 경제적 형태인) 지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모든 불순물과 부가물을 배제한 채) 이를 전형적인 형태로 고찰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토지 소유의 현실적 영향력을 파악하고, (지대의 본질적 개념이나 성질과 모순되면서도 지대의 존재 형태로 나타나는) 수많은 사실을 이론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론적 왜곡을 야기하는 요소들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차지 농업가가 토지 경작의 대가로 지주에게 지불하는 임차료 형태의 모든 지불금은 지대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지불 명목이 어떠한 구성 요소로 이루어지든, 또는 그 원천이 무엇이든 간에, 특정 지표면에 대한 독점적 권리가 소위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공물을 징수하고 토지에 가격을 설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는 진정한 의미의 지대와 공통된 성격을 갖는다. 나아가 이 수취물이 (토지 임대 수익의 자본화에 불과한) 토지 가격을 결정하는 실질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진정한 지대와 일치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토지에 결합된 자본에 대한 이자는 지대의 외래적인 구성 성분을 형성하며, 경제 발전에 따라 국가 전체 지대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필연적으로 증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자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차지료의 일부 또는 전부는 평균 이윤이나 통상 임금으로부터의 공제분으로 구성될 수 있다. (이 겨우 진정한 의미의 지대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해당 토지의 이론적 가치는 0에 수렴하게 된다).

 

(이윤이나 임금의 일부가) 지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해당 분량이 본래 귀속되어야 할 산업 자본가나 임금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토지 소유자에게 임차료 명목으로 지불되기 때문이다. 엄밀한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 부분은 지대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으나, 현실적으로는 진정한 지대와 마찬가지로 토지 소유권의 경제적 실현 (토지 독점권의 경제적 실현)이자 지주의 수입원을 형성하며 토지 가격 결정에도 동일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본고의 주요 논점은 아니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부재하고 임차인이 산업 자본가가 아니며 경영 방식 또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경우에도, 자본주의적 토지 소유의 형태인 지대가 형식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소농이 주된 임차인인 아일랜드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임차인이 지주에게 지불하는 차지료는 자신의 잉여 노동인 이윤의 일부를 잠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동 도구 (자본)에 대해 마땅히 누려야 할 이자 수익과, 동일한 노동량에 대해 통상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통상 임금의 영역까지 침해한다.

 

토지 개수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 토지 소유자가 차지인의 노동으로 축적된 소자본을 수탈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고리대금업자의 수법과 동일하다. 다만 고리대금업자는 자본 투하에 따른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는 반면, 지주는 그러한 위험조차 감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지속적인 약탈 체제는 아일랜드 토지 입법의 핵심 쟁점이다. 당시의 주요 요구 사항은 지주가 임차인에게 퇴거를 통고할 경우, 임차인이 토지에 실시한 개량 성과나 투하한 자본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파머스턴은 하원은 지주들의 의회라는 냉소적인 답변으로 해당 요구를 일축하였다. (CW 12: 157-162 참조.)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적인 국가에서도 토지 소유자가 토지 생산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고율의 차지료를 징수하는 예외적 사례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공장 지대에서 공장 노동자들에게 소규모 정원이나 여가용 경작지로 토지를 임대하는 경우를 들 수 있으나, 여기서는 논의 범위를 자본주의적 생산이 고도로 발달한 농업 지대로 한정한다. 따라서공장 감독관 보고서는 고찰하지 않는다.

 

영국의 차지 농업가 중에는 교육, 전통, 경쟁적 여건 등의 제약으로 인해 자신의 자본을 농업에 투하할 수밖에 없는 소자본가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들은 평균 이윤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이윤에 만족해야 하며, 심지어 그 이윤의 일부를 지주에게 지대의 형태로 지불하면서 토지에 자본을 투입할 권리를 얻는다.

 

토지 소유 계급이 입법 과정에 행사하는 압도적인 영향력은 이처럼 차지 농업가 계급 전체를 기만하고 수탈하는 기제로 작용해 왔다. 1815년 제정된 곡물법 (1846년 폐지)이 그 전형으로, 이는 반자코뱅 전쟁 (나폴레옹 전쟁기) 중에 급등한 지대 수입을 기생적 지주 계급에게 보장하기 위해 인민에게 부과한 일종의 빵 세금이었다. 이 법안은 곡물 수입 자유화 시 형성되었을 가격보다 농산물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면서 지주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그러나 이 곡물법은 입법 주체인 토지 소유자들이 설정한 명목상의 고점, 곧 외국산 곡물의 수입 허용 기준이 되는 표준 가격을 실질적으로 유지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실제 차지 계약은 이러한 인위적인 표준 가격을 전제로 체결되었다. 이 가격 설정에 대한 허상이 붕괴될 때마다 새로운 표준 가격을 명시한 법안이 연이어 제정되었으나, 이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토지 소유자가 지닌 비현실적인 탐욕의 발현에 지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차지 농업가들은 1815년부터 183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수탈적 기만 체계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해당 기간 내내 농업적 빈곤이 사회적 난제로 대두되었으며, 수탈을 견디지 못한 제1세대 차지 농업가들이 몰락한 자리에 새로운 자본가 계급이 진입하는 구조적 재편이 일어났다.

 

더욱 일반적이고 중대한 사실은 농업 노동자의 임금이 적정 평균 수준 이하로 절하되면서, 노동자에게 귀속되어야 할 임금의 일부가 탈취되어 차지료의 구성 성분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희생으로 점유된 잉여분은 지대라는 가면을 쓴 채 최종적으로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이러한 현상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내 극소수의 유리한 주들을 제외하면 당대 농업 지대의 보편적인 실태로 자리 잡고 있다.

 

곡물법 시행 이전 영국의 임금 수준을 다룬 의회 조사 위원회의 보고서 (곡물법 관계의 청원에 대한 특별 조사 위원회의 보고, 1814726), (곡물과 곡물법에 관한 보고서, 18141123)19세기 임금의 역사에서 가장 귀중한 사료임에도 그간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다. 이 문헌은 영국의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이 스스로의 과오를 자백한 기록이기도 하다. 해당 보고서가 명백히 증명하는 바는 반자코뱅 전쟁기 중 발생한 고지대 현상과 그에 따른 토지 가격의 폭등이 노동자 임금의 삭감, 곧 육체적 생존 최저선 이하로 임금을 인하시켜 그 차액을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시킨 결과라는 사실이다.

 

(당시 화폐 가치의 하락, 농업 지역 구빈법의 파행적 운용 등) 제반 여건은 이러한 수탈을 방조하였고, 그 과정에서 차지 농업가의 수입은 급증했으며 토지 소유자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실제로 곡물 관세 도입을 주장하던 (지주와 차지 농업가 측이 내세운) 주요 논거 중 하나는 농업 노동자의 임금을 더 이상 물리적으로 인하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상황은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았으며,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통상 임금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지대의 형태로 전유되고 있다.

 

박애주의적 토지 귀족인 샤프츠베리 백작 (당시 애슐리 경)이 공장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에 동조하여 10시간 노동제 운동의 의회 대변인으로 활동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공업 자본가들은 그가 소유한 촌락 농업 노동자들의 임금 통계를 공개하였다. (권 제255E를 참조). 해당 통계는 이 박애주의적 귀족이 수취하는 지대의 상당 부분이 실상 차지인들이 농업 노동자의 임금에서 갈취하여 상납한 약탈물로 구성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한, 이 기록에 담긴 실태가 1814년과 1815년 조사 위원회가 폭로했던 최악의 상황들에 필적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농업 노동자의 임금을 일시적으로 인상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차지 농업가들은 임금을 (타 산업 분야의) 표준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지대의 동시 감축 없이는 불능하며 자신들을 필연적인 몰락으로 몰아넣을 것이라 강변한다. 이러한 항변은 결국 차지 농업가가 지대라는 명목으로 임금의 일부를 탈취하여 토지 소유자에게 양도해 왔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다.

 

1849년에서 1859년 사이 영국에서는 제반 요인이 결합하여 농업 임금의 상승을 견인하였다. 아일랜드인의 대규모 해외 이주로 인한 농업 노동 공급의 단절, 농업 인구의 제조업 분야로의 비약적인 노동력 흡수, 전시에 따른 군 인력 수요 증가,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이례적인 이민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동시에 1854-1856년의 흉년기를 제외하면, 해당 10년 동안 평균 곡물 가격은 16% 이상 하락하였다. 이에 차지 농업가들은 지대 인하를 강력히 요구하였으나,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관철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궁지에서 차지 농업가들이 강구한 자구책은 증기 기관과 새로운 기계의 대규모 도입에 기반한 생산비 절감이었다. 기계화는 기존의 축력을 대체하여 말 ()을 경영 현장에서 축출했을 뿐만 아니라, 농업 일용 노동자들까지 대거 몰아내며 인위적인 과잉 인구 형성과 새로운 임금 하락을 유도하였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은 해당 10년 동안 전체 인구 증가 대비 농업 인구가 상대적으로 급감하고, 일부 순수 농업 지역에서는 농업 인구의 절대적 감소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강행되었다.

 

당시 케임브리지의 정치경제학 교수였던 포세트 (엥겔스: 체신부 장관 재임 중인 1884년 사망) 역시 18651012일 사회과학대회에서 동일한 취지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노동자들의 국외 이주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그에 따른 임금 상승으로 인해, 차지 농업가들이 기존의 고율 지대를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하기 시작했음.’을 지적하였다. 이는 토지의 고지대 현상이 노동자의 저임금 실태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토지 가격의 고공 행진이 임금 착취라는 요인에 기반하는 한, 토지 가치의 상승은 곧 노동 가치의 하락과 반비례하며, 높은 토지 가격은 본질적으로 낮은 노동 가격의 필연적 귀결이다.

 

프랑스의 실상 역시 이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한편에서는 빵, 포도주, 육류, 채소 및 과일 가격이 급등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가격이 고착됨에 따라 차지료의 인상이 초래된다. (100년 전) 부친 세대의 회계 기록을 대조해 보면, 당시 프랑스 농촌의 일당 수준이 현재와 대등한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사이 육류 가격은 3배나 폭등하였다. 이러한 거대한 구조적 변화의 희생자는 토지를 점유한 부유층이 아니라 이를 경작하는 빈곤층이다. 결국 지대의 증대는 그 기저에 인민의 불행이 심화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뤼비숑, 1837: 101)

 

평균 이윤과 평균 임금으로부터 각각 공제된 결과로의 지대에 관한 실례는 다음과 같다.

 

토지 관리인이자 농업 기사인 J. L. 모턴에 따르면,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임차지의 지대가 소규모 임차지의 지대보다 낮게 형성되는 현상이 확인된다. 이는 대규모 임차지보다 소규모 임차지에서 경쟁이 훨씬 치열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소규모 차지인들은 농업 경영 외에 별다른 대안적 사업을 모색할 여력이 없으며, 적절한 경작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그들은 흔히 자신의 합리적 판단 범위를 상회하는 고율의 지대를 지불하게 된다.’ (1858: 116).

 

모턴에 따르면 이러한 지대 격차는 영국 내에서 점차 완화되는 추세이며, 이는 소규모 차지 농업가들의 대거 이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턴은 지대가 차지 농업가 자신의 임금뿐만 아니라 그가 고용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발생하는 공제분을 명백히 포함하고 있는 실례를 제시한다. 특히 70-80에이커 (30-40헥타르) 미만의 소규모 임차지는 쟁기를 끌 말 두 마리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해당 규모의 차지인은 스스로가 노동자와 다름없는 가혹한 육체 노동에 종사하지 않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그가 직접 노동하는 대신 감독 업무에만 치중한다면, 머지않아 지대를 감당할 수 없는 파산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1858: 118).

 

모턴은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차지 농업가가 극빈층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임차지 규모가 최소 70에이커 이상이어야 하며, 2-3마리의 말을 운용할 수 있는 경영 자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프랑스 학사원 및 농업 중앙회 회원인 라베르뉴는 그의 저서 영국의 농촌 경제(1855)에서 양국의 가축 수입 구조를 비교하며 고유한 분석을 제시한다. (프랑스에서는 소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반면, 영국에서는 이를 말로 대체함에 따라 발생하는 수입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42)

 

구분

프랑스 (단위: 파운드)

영국 (단위: 파운드)

우유

4백만

1,600

육류

1,600

2,000

노동

8백만

-

합계

2,800

3,600

 

 

이 지표는 가축의 활용 방식에 따른 경제적 가치 창출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국의 생산 가치가 높게 평가된 근거는 라베르뉴 스스로도 지적했듯 영국의 우유 가격이 프랑스보다 두 배 높게 책정되었으며, 육류 가격은 양국이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산출되었기 때문이다. (35). 영국의 우유 생산액을 프랑스와 동일한 가격 체계로 보정하여 8백만 파운드로 축소한다면, 영국의 총생산액은 프랑스와 같은 28백만 파운드에 수렴하게 된다.

 

그럼에도 라베르뉴가 생산량과 가격 차이를 치환하여, 특정 품목 (: 우유)의 프랑스 대비 높은 생산 비용이 (이는 기껏해야 차지 농업가와 지주의 이윤이 크다는 점만을 시사할 뿐이다) 영국 농업의 우월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비약이다.

 

라베르뉴는 저서 48쪽에서 영국 농업의 경제적 성과를 해박하게 제시하는 듯하나, 실상은 영국 차지 농업가와 토지 소유자들의 통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곡물 생산이 토지를 황폐화한다.’

 

라베르뉴는 일반적인 결함을 지적하며, 사료 작물이나 뿌리 채소 등은 이와 반대로 토지를 비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사료 식물은 성장에 필요한 주요 요소를 대기로부터 흡수하므로, 토지에서 취하는 양보다 토지에 회귀하는 양이 더 많다. 따라서 이러한 식물들은 생장 과정 자체뿐만 아니라 가축의 분뇨로 전환되면서, 곡물을 비롯한 지력 소모적 작물들이 입힌 손실을 직접 보상하게 된다. 사료 식물과 지력 소모적 작물을 교대로 재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하며, 노포크식 윤작법이 바로 이러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50, 51).

 

영국 농촌 실태에 관한 이러한 허구적 서사를 맹신하는 라베르뉴가, 영국 곡물법 철폐 이후 현지 농업 노동자의 임금이 변칙적 성격을 해소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이미 제권 제25장 제5E에서 상술한 바를 참조하되, 여기서는 18651213일 버밍엄에서 브라이트가 행한 연설의 일부를 살펴본다. 그는 의회 내 대변자가 없는 (선거권이 없는) 무권리 상태의 5백만 가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하였다.

 

5백만 가구 중 1백만 이상이 비참한 구빈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으며, 또 다른 1백만은 그보다 근소하게 나은 처지일 뿐 언제든 빈민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사회 하층민들이 마주한 무지와 고통, 그리고 절망을 직시하라. 이전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들조차 해방에 대한 신념을 품었으나, 이 나라의 최하층 계급에게는 어떠한 개선의 희망도, 갈망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최근 보도된 도셋셔의 농업 노동자 존 크로스의 사례를 보라. 그는 24년간 주 6일간 성실히 복무하며 고용주로부터 우수한 평판 (신원 증명서)을 얻었음에도, 주당 단 8실링의 임금으로 오두막집에서 (병약한 아내와 영아를 포함한) 7명의 자녀를 부양해야 했다. 그가 땔깜을 위해 6펜스 상당의 나무 울타리를 훼손했다는 절도 혐의로 치안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고 14일 또는 20일의 금고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단언컨대 존 크로스와 같은 비극은 영국 전역, 특히 남부 지방에서 수천 건씩 자행되고 있다. 이들의 처지는 너무나 참혹하여, 가장 냉철한 연구자들조차 이들이 어떻게 심신을 부지하는지 규명하지 못할 정도이다. 선거권조차 없는 이 절망적인 5백만 가구가 쉬지 않고 노동하는 동안, 지배 계급이 누리는 부와 사치, 그리고 과잉된 만족감에서 비롯된 무기력을 대조해 보라. 새로운 쾌락을 쫓아 유람하는 지배 계급의 화려함과 시달리는 인민의 삶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겠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모닝 스타, 18651214일 자).

 

다음으로는 잉여 노동 일반, 나아가 잉여 생산물 일반이 지대와 미분화되는 양상을 규명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토대 위에서 지대는 잉여 생산물 중 양적·질적으로 구분되는 고유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잉여 노동의 자연발생적 토대, (곧 잉여 노동을 담보하는 필수적 자연 조건)은 인간의 노동일 전체를 점유하지 않고도 동식물성 토지 생산물이나 어업의 수산물 등의 필요 생활 수단을 획득할 수 있는 자연적 여건에 기인한다.

 

농업 노동 (단순 채취, 수렵, 어로, 축산을 포함)이 지니는 이러한 자연발생적 생산성은 모든 잉여 노동의 근간이 된다. 모든 노동은 시초에 식량의 취득과 생산을 우선적인 목표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은 한랭한 기후에서의 방한용 모피나 거주를 위한 동굴 등과 같은 부수적인 생존 조건도 함께 제공한다).

 

잉여 생산물과 지대를 미분별되는 양상은 더브 (1854)의 논의에서도 분리된 형태로 나타난다. 원시적 단계에서 농업 노동과 공업 노동은 분리되지 않았으며, 공업 노동은 농업 노동의 부속물로 존재하였다. 농경 부족이나 가옥 공동체, 또는 가족 단위에서 발생하는 잉여 노동과 잉여 생산물은 농업 과 공업 영역 모두를 포괄하며 병행되었다. 수렵, 어로, 농경이 적절한 도구의 보조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직조와 방적 등의 공업적 행위 역시 초기에는 농업의 부업 형태로 수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규명한 바와 같이 개별 노동자의 노동이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으로 분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계급의 총노동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분할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생존에 필요한 모든 생활 수단과 그 생산 수단을 제조하는 데 투입하는 부분은 사회 전체를 위한 필요 노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 외 나머지 노동자 계급이 수행하는 노동은 잉여 노동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여기서의 필요 노동은 단순히 농업 노동에 국한되지 않으며, (노동자의 평균적 소비에 필수적인) 제반 생산물을 생산하는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일군의 노동자들이 필요 노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일군의 노동자들이 잉여 노동만을 수행하기 때문이며, 그 역 또한 성립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계급 내 또는 계급 간의 분업 체계에 불과하다. 농업 노동과 공업 노동 사이의 분업 역시 이와 동일한 논리로 작동한다. , 일방이 수행하는 순수 공업적 노동의 성격은 타방이 수행하는 순수 농업적 노동의 성격과 상호 대응하며 보완된다. 이러한 순수 농업 노동은 결코 자연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특정 생산 단계에 상응하여 나타난 사회 발전의 산물이며, 인류사 전체를 놓고 볼 때 매우 최근에야 비로소 확립된 특수한 형태다.

 

농업 노동의 일부가 사치재나 식료품이 아닌 공업 원료 생산에 투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업 노동의 일부 또한 농업 및 비농업 노동자 모두를 위한 필수 소비재 생산에 대상화된다. 따라서 사회적 관점에서 이러한 공업 노동을 단순히 잉여 노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오류다. 이 공업 노동은 부분적으로 농업 분야의 필요 노동과 마찬가지로 사회 존속을 위한 필요 노동의 성격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종래의 농업 노동에 자연발생적으로 결속되어 있던 공업적 노동이 분리·독립한 형태에 불과하며, 현재는 순수 농업 노동과 필연적인 상호 보완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소재적 측면에서 고찰할 때, 예컨대 500명의 기계 직조공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잉여 직물, 곧 그들 자신의 의복 수요를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생산물을 창출해 낸다.)

 

끝으로, 지대의 현상 형태 (곧 생산이나 소비를 목적으로 토지 소유자에게 지대라는 명목으로 지급되는 차지료)를 고찰할 때 다음의 사실을 명기해야 한다. 토지처럼 노동의 생산물이 아니어서 그 자체로는 가치를 지니지 않는 사물들이나, 골동품 및 거장의 예술품처럼 노동을 매개로 하여 재생산될 수 없는 물건들의 가격은 전적으로 우연한 사정들의 결합에 기인하여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물건이 상품으로 매매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그것이 독점될 수 있고, 양도될 수 있다는 사실뿐이다.

 

 

 지대의 분석을 왜곡하는 세 가지 주요 오류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적 생산 과정의 상이한 발전 단계에 대응하는 각종 지대 형태를 오인하는 것.

 

지대의 구체적 형태가 무엇이든, 모든 지대 형태의 공통점은 지대 수취가 곧 토지 소유가 경제적으로 실현되는 형태라는 사실이며, 이는 (특정 개인이 지구의 일정한 부분을 점유하는) 토지 소유권의 존재를 전제한다. 이때 토지 소유자가 아시아나 이집트 등처럼 공동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든, 노예제나 농노제하에서 직접 생산자에 대한 인적 지배의 부수적 권한으로 작용하든, 또는 비생산자가 자연에 대해 행사하는 순수한 사적 소유권이든 그 성격은 본질적으로 무관하다.

 

나아가, 식민지 이주민이나 소농의 경우처럼, 사회적 분업이 미비한 상태에서 직접 생산자가 일정한 토지 조각에 결속되어 생산물을 생산하고 취득하는, 토지에 대한 직접적 관계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서로 다른 지대 형태들이 내포하는 보편성, 곧 개별 주체들이 지구의 특정 부분을 배타적으로 점유하도록 허용하는 법률적 허구인 토지 소유가 경제적으로 실현된 결과가 곧 지대라는 공통성은, 기만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각 지대 형태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식별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2) 모든 지대가 본질적으로 잉여 가치이자 잉여 노동의 산물이라는 점으로부터 비롯되는 오류.

 

지대의 미발달한 형태인 현물 지대에서 지대는 직접적인 잉여 생산물의 형상을 띤다. 여기서 기인하는 결정적인 오류는 지대의 특수한 독립적 구성 성분을 잉여 가치나 이윤의 일반적 존재 조건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데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상응하는 지대는 상품 가치 중 잉여 가치 (잉여 노동)의 일부인 이윤을 상회하는 초과분이어야 한다. (, 농산물의 가치는 농업 자본가의 이윤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토지 소유자의 지대까지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존재 조건은 단지 직접 생산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노동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규정할 뿐이다. 따라서 지대라는 특수 형태를 단순히 잉여 노동 일반의 물질적 기초와 동일시하여, 이윤을 상회하는 이 특수한 잉여분이 형성되는 구체적인 원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직접적 생산자는 일정한 형태의 잉여 노동을 수행해야 하며, 이는 생산의 주체적 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잉여 노동이 실제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생산자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자연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노동 시간의 일부만으로도 생산자로의 자신의 재생산과 유지를 위한 필요 생활 수단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노동 시간 전체를 생존을 위한 생산에만 투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적 비옥도는 생산의 출발점이자 토대로 우선적인 한계를 규정하며, 직접적 생산자들이 달성한 사회적 노동 생산성의 발달 정도가 또 다른 결정적 한계를 설정한다.

 

식량 생산은 인간의 생존과 모든 생산 활동의 선결적 조건이므로, (포괄적인 경제적 의미에서의 농업 노동은) 직접 생산자가 자신의 식량을 확보하는 데 노동 시간 전부를 소모하지 않을 만큼 높은 생산성을 담보해야 한다. , 농업 잉여 노동 (그에 따른 농업 잉여 생산물)의 존재가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농업 부문에 투입된 총노동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의 합)은 농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비농업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식량을 충당하기에 충분해야 한다. 이러한 생산적 토대가 마련되어야만 비로소 농업과 공업 사이의 대규모 분업의 기틀이 마련되며, 동일한 농업 부문 내에서도 식량 생산자와 공업 원료 생산자 사이의 세부적인 분업 체계가 성립될 수 있다.

 

식량의 직접 생산자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개별 수준에서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으로 구분될지라도,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는 식량 생산에 할당된 총체적인 필요 노동을 대변한다. 이는 개별 작업장 내의 분업과 구별되는, 사회적 총 분업의 보편적 원리이다. , 모든 형태의 구체적 노동은 특정 재화를 생산하여 그에 대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투여된 필수 노동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업이 각 부문별 수요에 부합하는 적정 비율을 유지한다면, 제반 생산물은 본연의 가치 (또는 고도로 전개된 단계에서의 생산 가격)에 따라 교환되거나, 최소한 (일반 경제 법칙에 의거하여 가치와 생산 가격이 규정된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될 것이다.

 

가치 법칙은 개별 상품이나 물품이 아닌, (분업을 매개로 독립한 각 사회적 생산 부문마다의) 총생산물에 대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개별 상품에 투입되는 노동 시간이 사회적으로 필요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각 상품 범주마다 사회 총노동 시간 중 필요한 비례적 분량만이 할당되어야 한다. 상품이 본질적으로 사용 가치를 체현하기 때문에 이러한 배분은 필연적이다.

 

개별 상품의 사용 가치가 사회적 욕구의 충족 여부에 달려 있다면, 사회적 생산물 전체의 사용 가치는 각 생산물에 대한 양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욕구를 충족할 만큼 충분히 공급되는가에 달려 있다. , 노동이 사회적 욕구의 양적 규정에 부합하도록 각 생산 부문에 적절히 분배되었는지가 관건이며, (이는 자본이 각 생산 부문으로 배분되는 원리와 결부하여 고찰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욕구 (사회적 수준에서의 사용 가치)는 사회 총노동 시간 중 각 생산 분야에 할당될 몫을 결정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이는 개별 상품의 수준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는 법칙으로, 상품의 사용 가치가 곧 교환 가치와 가치의 전제 조건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원리가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 사이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사회적 욕구와 사회적 노동 분배 사이의 비례 관계에서)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상품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 속에 포함된 잉여 가치 역시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면제품의 생산량은 (개별 상품에 투입된 노동 시간이 주어진 조건하에서 필요한 수준이었다 하더라도), 사회적 총노동의 과도한 부분이 특정 부문에 배분되면서 과잉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이 경우 생산물의 일부는 사회적으로 무용지물이 되며, 결국 총생산물은 흡사 사회적으로 필요한 양만큼만 생산된 것과 같은 가치로 판매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총노동 시간 중 특정 생산 부문에 할당되는 몫에 대한 이러한 양적 제한은 가치 법칙 일반이 더욱 전개된 형태에 불과하다. 비록 여기에서의 필요 노동 시간은 개별 상품의 가치 규정과는 다른 수준의 의미를 지니나, 특정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노동 시간의 분량은 엄격히 제한된다. 이때 그 제한의 한계선은 사회적 수준의 사용 가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발현된다.

 

주어진 생산 조건하에서 사회는 총노동 시간 중 오직 일정한 분량만을 특정 종류의 생산물에 할당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잉여 노동 및 잉여 가치 일반이 성립하기 위한 주체적·객관적 조건들은 그것이 취하는 특수한 현상 형태 (이윤 또는 지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오직 잉여 가치 그 자체에만 유효하게 적용되다. 따라서 이러한 일반적 조건들만으로는 지대라는 특수한 형태의 발생 원리를 온전히 규명할 수 없다.

 

(3) 토지 소유의 경제적 실현, 곧 지대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특수성은 지대액의 결정 요인에 있다.

 

지대액은 수취자 개인의 행위나 기여와는 무관하게, 그가 관여하지 않는 사회적 노동의 전반적인 발전에 기인하여 결정된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상품 생산의 토대 위에서, 특히 (그 전체가 상품 생산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하에서는 모든 생산 분야와 그 생산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일반적 법칙들이 흡사 지대와 농산물만이 지닌 고유한 특수성인 것처럼 오인되기 쉽다.

 

지대 수준 (과 그에 따른 토지 가치)는 사회 발전의 경로에서 사회적 총노동이 축적된 결과로 상승한다. 이는 단순히 농산물의 시장 규모와 수요가 확대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비농업 분야를 포함한) 모든 산업 부문이 토지를 필수적인 생산 조건으로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토지 자체에 대한 수요가 직접적으로 증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정한 의미의 농업 지대와 토지 가치는 토지 생산물에 대한 시장의 팽창, 곧 비농업 인구의 증가에 비례하여 상승한다. 이는 식량과 원료에 대한 비농업 인구의 욕구 및 수요 증대에 연동된 결과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본질적 특성상 농업 인구는 비농업 인구에 비해 지속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공업 부문에서는 가변 자본에 대한 불변 자본의 증대가 (비록 불변 자본에 대비한 상대적 감소이긴 하지만) 가변 자본의 절대적 증대와 결부되어 나타나지만,

 

농업 부문에서는 일정 면적을 경작하는 데 필요한 가변 자본이 절대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업에서의 가변 자본 증대는 오직 새로운 토지의 경작을 매개로 해야만 수반될 수 있는데, 이 역시 비농업 인구의 대폭적인 증가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여기서 확인되는 현상은 농업이나 농산물에 국한된 특수성이 아니다. 상품 생산 및 그 완성된 형태인 자본주의적 생산의 토대 위에서는 모든 생산 분야와 생산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다.

 

이들 생산물이 상품, (곧 실현되어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교환 가치를 지닌 사용 가치)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품들이 그에 상응하는 등가물을 형성하며 상품 대 상품, 가치 대 가치로 대립해야만 한다. , 생산물이 생산자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수단으로가 아니라, 오직 타인에게 양도되어 교환 가치 (화폐)로 전환되면서만 비로소 사용 가치를 획득하는 상품)으로 생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품 시장의 확장은 사회적 분업의 고도화를 매개로 가속화된다. 각종 생산 노동의 분리는 각각의 노동 생산물을 상호 간의 상품이자 등가물로 변모시키며, 서로가 서로를 위한 시장으로 기능하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제는 결코 농산물에만 고유한 현상이라 할 수 없다.

 

지대는 오직 상품 생산, 특히 자본주의적 생산의 토대 위에서만 화폐 지대로 고도화될 수 있다. 화폐 지대의 발달은 농업 생산이 상품 생산으로 전환되는 정도, 곧 비농업 생산이 농업 생산으로부터 독립하여 발전하는 정도와 맞물리며, 농산물이 상품이자 교환 가치, 그리고 가치로의 성격을 명확히 정립하는 과정이 이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상품 생산과 그에 따른 가치 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더불어 팽창함에 따라, 잉여 가치와 잉여 생산물의 창출 또한 가속화된다. 그러나 잉여 가치와 잉여 생산물의 생산이 발달할수록, 토지 소유는 토지 독점을 매개로 이 잉여 가치의 증대분을 점진적으로 탈취하며, 결과적으로 지대의 가치와 토지 가격을 상승시키는 기제를 강화하게 된다.

 

잉여 가치와 잉여 생산물의 실질적인 창출 및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주체는 여전히 자본가다. 반면 토지 소유자는 어떠한 생산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증대하는 잉여 생산물과 잉여 가치의 일부를 단순히 탈취할 뿐이다. 토지 소유자가 점하는 지위의 특수성은 바로 이러한 불로 소득의 성격에 있다.

 

그러나 시장의 확대와 수요의 증가에 따라 토지 생산물의 가치 및 토지 자체의 가치가 상승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 토지 생산물에 대립하는 비농업 상품 세계의 규모와 생산자 수가 팽창한다는 점은 토지 소유자만의 고유한 특수성이라 할 수 없다. 이는 상품 생산 일반이 지니는 보편적인 법칙이 토지라는 특수한 매개 고리를 경유하여 발현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토지 소유자의 어떠한 개입 없이도 수행되기에, 가치량과 잉여 가치량이 증대하고 그 일부가 지대로 전환되는 것이 사회적 생산 과정 및 상품 생산 일반의 발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토지 소유자에게 불분명한 인과적 요인으로 보이게 된다.

 

가령 더브는 이 지점에 착안하여 지대 일반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지대가 농산물의 물리적 양이 아닌 가치에 의거하며, 이 가치는 비농업 인구의 규모와 생산성에 따라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정 생산물이 그에 대응하는 등가물인 여타 상품군의 양적 팽창 및 다양화와 더불어 상품으로 발전한다는 원리는 모든 상품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이다. 이는 이미 가치의 일반적 서술에서 규명된 바와 같이 (CW 29: 280-281), 한 생산물의 교환 능력은 그 외 상품들의 다양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역으로 그 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될 수 있는 규모는 바로 이 교환 능력의 수준에 규정된다.

 

(공업이든 농업이든) 어떠한 생산자도 고립된 상태에서는 가치나 상품을 생산할 수 없다. 생산물이 가치와 상품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오직 특정한 사회적 관계 내에서만 실현된다.

 

첫째, 해당 생산물이 사회적 노동의 구체적 표현으로 인정받고, 그에 투입된 개별 노동 시간이 사회적 총노동 시간의 유기적 일환으로 포섭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이 지닌 이러한 사회적 성격이 생산물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그 생산물의 화폐적 성격 및 (가격에 기초하여 규정되는) 교환 능력으로 현상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대 고유의 원리를 규명하는 대신 잉여 가치나 잉여 생산물 일반을 성립 조건만을 나열하거나, 모든 상품과 가치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속성을 오직 농산물만의 특수성으로 치부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이러한 오류는 가치의 일반적 결정 원리를 개별 상품 가치의 실현 과정에 적용할 때 더욱 천박한 형태로 드러난다. 모든 상품은 오직 유통 과정에서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으며, 가치 실현의 여부와 정도는 전적으로 당대의 시장 상황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농산물이 가치로 전환되고 상품으로서 여타 상품과 대립한다는 점, 곧 농산물이 비농산물과 상호 대립하며 사회적 노동의 특수한 표현으로 정립된다는 사실은 지대 고유의 특성이라 할 수 없다.

 

지대에 진정한 독자성은 농산물이 가치 (상품)로 발전하는 객관적 조건 및 그 가치의 실현 조건이 고도화됨에 따라, 토지 소유권이 아무런 기여 없이 창출된 이 가치의 증대분을 탈취하는 지배력을 동시에 강화한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생산의 발전에 힘입어 창출된 잉여 가치의 증대하는 부분이 지대의 형태로 전환되는 작용 원리야말로 지대 현상의 핵심적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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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자본의 형성


어떤 거래에서든 통상 사회적 합의와 계약이 선행된 후 상호 간의 신뢰가 형성된다고 간주하나, 자본의 역사는 지배와 착취가 개시된 시점에서 폭력적 정당화에 기반한다. 18-19세기 산업 혁명기, 산업 자본가 간의 경쟁 심화로 급박한 화폐 수요가 발생하자 상인들은 대부업에 기반한 타인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갈취하는 수단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자본의 운동은 인류의 지배 역사만큼 진행되었으나, 본격적인 자본주의적 형태는 15-16세기라는 막연한 시점보다는 18-19세기에 등장한 신생 자본의 확립기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산업 자본이 노동자에게 자본을 지급하며 이윤 창출에 몰두할 때, 상업 자본은 경제 불황을 기회 삼아 타인의 자본을 흡수할 기제를 강구한다. 은행의 설립은 바로 이러한 동인에서 기인한다. 국가가 화폐 순환을 관리하고 이자율을 통제하기까지는 수많은 은행업자의 시행착오가 수반되었다. 은행이 강조하는 '개인의 신용'은 자산 보호라는 표면적 의무보다, 타인의 자본을 유치하여 은행 자체의 신뢰도를 높이고 갈취적 구조를 은폐하려는 전략적 홍보 수단에 가까우며, 이전에 유럽 중심의 선진 금융 산업은 미국의 금융 패권으로 이전되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피식민지 국가에 설립된 식민지 은행과 이후 등장한 공·사립 은행들의 자본 축적 비결은 식민지 수탈과 전쟁의 전유물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식민지 주축 은행들이 이를 간과하는 이유는, 경제적 불안전성을 정치적 지도자나 시장 담당자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국가적 착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고착화됨에 따라 은행 자본은 과잉 생산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신용 안정도를 별도의 상품으로 변모시켰으며, 주식 시장의 출현 또한 이러한 강제적인 기제에 근간한다. 


금과 은에 의존하던 이전과 달리, 현대의 화폐 기준은 유가 증권과 실물 화폐를 대체하는 각종 수단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발전 잠재력은 동시에 '자체의 부정'이라는 내재적 위험을 수반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공황의 원인을 인플레이션 등 표면적 현상에 국한하여 진단하는 것은 '자본 시장의 안정화'라는 강박에 매몰된 결과이며, 제도의 본질적인 모순을 도외시한 분석에 불과하다.  


통화주의 


금융 제도의 발달과 수익 창출의 과정에서 통화주의 이론은 핵심적인 위치를 점한다. 유럽은 이전 인민의 과도한 투기 열풍으로 인한 수요 급증과 공급 수축, 그리고 국가의 미흡한 대처가 맞물리며 수차례의 경제 공황을 겪었다. 특히 이자율 산정 및 제어의 실패는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시장 거래 비율이 끊임없이 변동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러한 통화량 조절 기제를 사익 편취에 이용하려는 상업 자본가들의 존재에 있다. 이들은 안전한 투자처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소생산자이자 자본 확장의 주체로 거듭났으며, 이는 곧 '소부르주아' 계급이 형성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현대 은행업의 기틀을 마련한 영국에서는 오브스톤과 존 스튜어트 밀 등이 잉글랜드 은행법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학문적 명성과 공적에도, 통화주의적 이론은 경제 공황으로 심화된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했다는 명확한 이론적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통화량 조절이라는 기술적 방법론이 자본주의 내재적 모순을 덮는 임시방편에 불과했음을 시사한다. 


통화주의는 자유주의 경제 시장에서 통화량을 조절하면서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전제를 전파하여 자본주의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국가가 자유 시민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명분은 '부르주아 국가'의 결속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 착취를 은폐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 노동자의 보험 비용이나 노동자가 기여한 생산적 가치는 통화 정책이라는 합법적 형식 내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이전된다. 결국 통화주의는 절대적인 국가 통제의 실현을 향한 막연한 이상과 결합할 때 가장 위험한 양상을 띤다. 자본가들의 결정에 따른 정책적 결실이 전 국민의 이익으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정작 노동자들은 경제적 위기를 실감하지 못한 채 구조적 위협에 노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성을 직시하는 경제학자는 극히 드물며, 대다수는 실무적 현실을 배제한 채 추상적 수준에서 문제를 진단하는 데 그치고 만다.


자본주의의 발달: 금융업과 대출업의 밀접한 관계


국가 간의 전쟁의 심화 원인은 다각적일 수 있으나, 그 기저에는 화폐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유가와 증시의 급격한 변동은 국가가 시장 제어에 난항을 겪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는 상품 수입 확대를 요구받으며, 생산국은 수출 과세를 충당하기 위해 자본을 선대받아 지불하는 구조에 놓인다. 이전 정부가 축적한 국가적 채무는 단순한 계약 이행으로 해소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는 인민의 가중된 비용 부담으로 전가된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을 파악할 때 비로소 자본주의의 착취적 속성이 비로소 드러난다.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노동자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결착되어 있으나, 모순적으로 대체로 노동자들은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방해 공작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된다. 특히 증시 변동과 대부 산업이 은행과 결합한 현대 사회에서는 '국민의 채무가 곧 국가의 채무'라는 동일시 기제가 작동한다. 이러한 전제에 매몰되는 한 자본주의 제도의 본질적인 모순을 해결하기란 난망하다.  


경제적 문제는 국가가 제시한 통계적 소득 평균치로 단순히 산정될 수 없다. 실제로는 자본 계급의 변동 기준에서 산출되는 잉여 가치와, 그 채무 부담의 원천인 이자율 및 고정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국가의 시장 통제가 강화될수록 투자의 불안전성은 심화되고, 반대로 규제가 완화될수록 투기적 요소는 극대화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국가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증명한다. 은행이 내세우는 자산 가치 보호 및 재화·용역 제공이라는 명분은 실상 자산을 증식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은행은 이러한 기제로부터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자본 수단들을 점유하고 있다. 감가상각을 제외한 이러한 자본 관계의 모순은, 이후 상술한 지대 문제와 결합하며 더욱 심화된 양상으로 전개된다. 오히려 재화와 용역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본 상식에 기초하여서도, 더욱 자산을 불리는 수단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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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

 

이자 낳는 자본과 그 원형인 고리대 자본은 상인 자본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온 노아의 대홍수 이전의 자본 형태다. 이러한 자본 형태는 자본주의 이전의 제반 경제적 사회 구성체에서 보편적으로 포착된다. 고리대 자본이 성립하기 위한 객관적 조건은 적어도 생산물의 일부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 그리고 상품 유통의 진전과 함께 화폐의 각종 기능적 체계를 갖추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고리대 자본의 전개는 상품 거래 및 화폐 거래 자본을 포괄하는 상인 자본의 발달, 특히 화폐 거래 자본의 분화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일례로 고대 로마의 경우, 공화정 후기 이래 수공업 수준이 고대 세계의 평균적 지표를 하회하였음에도, 상인 자본과 화폐 거래 자본, 그리고 고리대 자본은 고대적 형태가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최고 수준의 발달 단계에 도달하였다.

 

화폐 퇴장의 발생 기제는 이미 고찰한 바와 같으나, 직업적 화폐 퇴장자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존재로 부각되는 시점은 그가 화폐 대부자로 전환될 때부터다.

 

상인이 화폐를 차입하는 목적은 이를 자본으로 투하하여 이윤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초기 단계에서도 화폐 대부자와 상인의 관계는 현대 자본주의적 관계와 부합한다. 이러한 특수한 경제적 관계는 당대 가톨릭 대학 측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된 바 있다.

 

실제로 알칼라, 살라만카, 인골슈타트,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가우, 마인츠, 쾰른, 트리어의 대학들은 상업 대부에 수반되는 이자의 합법성을 순차적으로 승인하였다. 이 중 최초 5개 대학의 승인 기록은 리옹시의 영사 기록에 보존되어 있으며, 브류이제 폰투스의 저서 고리와 이자에 관한 논문(리옹) 부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오지에 1842: 206).

 

가부장적 노예제가 아닌 고전 고대의 노예제와 같이, 화폐가 노예나 토지 매입을 매개로 타인의 노동을 사유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모든 사회 구성체에서 화폐는 자본적 증식과 이자 산출의 기제가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이전의 고리대가 취하는 특징적인 현상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여기서 특징적이라는 표현은 해당 형태들이 자본주의적 체제하에서도 종속적으로 잔존하나, 이자 낳는 자본의 본질적 성격을 규정하는 지위는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첫째는 토지 소유자를 중심으로 한 낭비적 귀족층에 대한 고리대이다.

 

둘째는 자기 소유의 노동 조건을 보유한 소생산자에 대한 고리대이다.

 

소생산자의 경우 수공업자도 포함하나, 특히 빈농층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는 자본주의 이전의 조건 아래 소규모 자립 생산이 허용되는 구조에서는 빈농 계급이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리대가 부유한 토지 소유자를 파멸시키고 소생산자를 빈곤화하는 과정은 거대한 화폐 자본의 형성과 집적을 가속한다. 다만 이러한 과정이 근대 유럽의 사례처럼 낡은 생산 양식을 철폐하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확립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해당 사회의 역사적 발전 단계와 그에 수반되는 객관적 조건들에 규정된다.

 

이자 낳는 자본의 전형적 형태인 고리대 자본은 소농과 소규모 수공업 장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소규모 생산 양식에 대응한다. 고도화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같이 생산 조건과 노동 생산물이 이미 자본의 형태로 노동자와 대립하는 구조에서, 노동자는 생산자의 자격으로 화폐를 차입할 필요가 없다. 이 경우의 차입은 전당포 이용과 같은 개인적 필요에 국한될 뿐이다. 반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조건과 생산물의 현실적 또는 명목적 소유자인 경우, 그는 생산자로 화폐 대부자의 자본과 관계를 맺으며 이때 자본은 고리대 자본으로 노동자와 대면한다.

 

F 뉴먼은 은행가가 부자에게, 고리대금업자가 빈자에게 대부하기 때문에 전자는 존경받고 후자는 증오와 멸시를 받는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오히려 무의미한 형태로 제기한 것이다. (1851: 44) 그는 이 사안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사회적 생산 양식 및 그에 상응하는 사회 질서 간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하였으며, 이를 단순히 빈부 격차의 대비로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실제로 소생산자를 빈곤화하는 고리대는 부유한 토지 소유자를 파멸시키는 고리대와 병행하여 진행된다. 일례로 고대 로마 귀족의 고리대가 소농민 계급을 완전히 몰락시키자, 이러한 착취 형태는 종결되고 순수 노예제 경제가 소농 경제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고리대금업자는 생산자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생존 수단 (향후 임금의 형태로 규정될 부분)을 초과하는 잉여 (향후 이윤과 지대로 규정될 부분)를 이자 형태로 점유한다. 따라서 국가 공제분을 제외한 잉여 가치 전체가 이자로 수렴되는 이 단계의 이자율 수준을, 잉여 가치의 일부분만을 구성하는 근대적 이자율과 비교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이러한 비교는 임금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이윤·이자·지대를 포함한 잉여 가치 전체를 생산하여 양도한다는 본질적 사실을 간과한다. 캐리는 이와 같은 비논리적 대비에 근거하여 자본의 발달과 이자율의 하락이 노동자에게 지대한 이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나, 이는 명백한 오류다.

 

고리대금업자가 피취득자의 잉여 노동 수탈에 그치지 않고 토지나 가옥 등 소유권을 취득하여 노동 조건 자체를 지속적으로 수탈해 나갈지라도, 노동자로부터 노동 조건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결과가 아닌 그 출발점이자 전제 조건임을 명시해야 한다. 임금 노동자는 그 계급적 규정으로 인해 생산자로 채무 노예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소비자의 자격으로만 채무 관계에 종속될 뿐이다.

 

고리대 자본은 기존의 생산 방식을 보존한 채 직접적 생산자의 모든 잉여 노동을 흡수한다. 생산자에 기인한 노동 조건의 소유와 점유에 기반한 분산적 소규모 생산을 존립 근거로 삼기에, 고리대 자본은 노동을 직접적으로 종속시키거나 산업 자본의 형태로 노동과 대립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고리대 형태는 생산 양식을 퇴보시키고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하며,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 발달 없이 생산자의 빈곤만을 영속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고리대는 한편으로 봉건적 부와 소유 구조를 해체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자가 생산 수단을 직접 소유하는 소농민적·소부르주아적 생산 양식을 약화시키고 파멸시킨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아래에서 노동자는 더 이상 토지나 원료와 같은 생산 조건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발생하는 생산자로부터의 생산 조건 소외 (분리)는 생산 방식 자체의 근본적인 변혁에 대응하는 필연적 과정이다.

 

, 분산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대규모 작업장으로 결집하여 분업과 협업 체계에 포섭되고, 전통적 도구가 기계로 대체되면서 생산 방식은 더 이상 소규모 소유의 생산 도구 분산이나 노동자의 고립을 허용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에서 고리대는 생산 조건을 노동자로부터 분리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없다. 그 물리적·경제적 분리가 이미 생산 양식의 전제 조건으로 완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산 수단이 분산된 구조에서 고리대는 화폐 자산을 집중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고리대는 기존의 생산 방식을 변혁하지 않은 채 기생적으로 고착되어 생산 체계를 빈곤화한다. 이는 생산 방식의 골수를 잠식하여 동력을 약화시키고, 재생산 과정이 점차 열악한 조건 속에서 수행되도록 강제한다. 고대 세계에서 고리대에 대한 인민적 증오가 극에 달했던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당시 생산자가 생산 조건을 직접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보유를 넘어, 해당 사회의 정치적 관계와 공민적 자립성을 담보하는 실질적 토대였기 때문이다.

 

노예제가 지배하거나 봉건 영주와 봉건 관료층 (가신단)이 잉여 생산물을 소비하는 체제 아래에서는, 노예 소유주나 영주가 고리대의 희생양이 된다 하더라도 생산 방식 자체는 변모하지 않으며 도리어 노동자에 대한 수탈만이 가중된다. 채무 관계에 놓인 노예 소유주나 봉건 영주는 자신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피지배층으로부터 더 많은 생산물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고리대금업자는 기존 지배층의 지위를 찬탈하여 고대 로마의 기사 계급처럼 스스로 새로운 착취자로 부상한다. 이 과정에서 가부장적 성격이 짙고 정치적 권력 유지가 주된 목적이었던 전통적 착취자 대신, 오직 금전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신흥 부유층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적 교체에도, 사회의 근간이 되는 생산 방식 그 자체는 여전히 종래의 상태를 유지한다.

 

고리대가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 양식에 혁명적 영향을 미치는 국면은, 고리대가 정치 제도의 안정적 기반인 기존의 소유 형태를 해체하고 분해할 때에만 국한된다. 정치적 재생산의 필수 요건인 기존 소유 체제가 고착된 아시아적 (소유) 형태 내에서 고리대는, 체제 변혁 없이 경제적 쇠퇴와 정치적 부패만을 야기하며 장기간 존속할 뿐이다. 반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여타 객관적 조건들이 성숙한 지점과 시기에 이르러서야, 고리대는 (봉건 영주와 소생산자를 몰락시키는 동시에 노동 조건을 집중시키면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형성하는 주요 동인 중 하나로 기능하게 된다.

 

중세에는 국가 전역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이자율이 부재하였다. 교회가 이자를 수반하는 모든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가운데, 법과 사법 제도가 대부 계약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함에 따라 개별 거래의 이자율은 극도로 높게 형성되었다. 화폐 유통량은 미미했으나 대부분의 지불이 현금으로 강제되었고, 특히 어음 제도의 미비로 인해 경제 주체들의 화폐 차입 수요는 상시 존재하였다.

 

이에 따라 (시대와 장소에 따른) 이자율 및 고리대의 개념적 범주 또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카롤링거 왕조의 카를 대제 시기 (768-814)에는 100%의 이자율을 고리대로 규정한 반면, 1344년 린다우 암 보덴제에서는 216 2/3%의 이율이 실현되기도 하였다. 취리히 시의회는 43 1/3%를 법정 이자율로 확정하였으며, 이탈리아의 경우 12-14세기에 통상 20%를 상회하지 않았으나 간혹 40%에 육박하는 사례도 확인되었다. 베로나는 12 1/2%를 법정 이자율로 설정하였고,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유태인에 한해 10%의 이자율로 정하였으나 기독교도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았다. 한편 13세기 독일 라인 지방에서는 이미 10%의 이자율이 일반적인 수준으로 정착되었다 (휠만, 중세의 도시 제도2: 55-57).

 

고리대 자본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을 결여하고 있음에도, 자본의 착취 기제는 온전히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만적 특성은 현대 부르주아 경제 내에서도 낙후한 산업 부문이나 근대적 생산 체제로의 전환에 저항하는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영국의 이자율을 인도와 같은 국가의 이자율과 대조할 때, 단순히 잉글랜드 은행의 공정 이율을 지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내 공업 형태의 소생산자에게 소규모 설비를 임대하며 부과하는 실질적인 고수익 이자율을 비교의 준거로 채택해야 마땅하다.

 

고리대는 소비에 침잠하는 부와 달리, 그 자체가 자본을 생성하는 동학적 과정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고리대 자본과 상인 재산은 토지 소유로부터 분리된 독립적 화폐 자산의 형성을 가속화한다. 생산물의 상품적 성격이 미분화되고 생산 체계가 교환 가치에 완전히 장악되지 않은 단계일수록, 화폐는 사용 가치로 표상되는 부의 제한적 형태에 대립하여 부 그 자체이자 절대적 부의 체현으로 부각된다. 화폐 퇴장 현상은 바로 이러한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다.

 

세계 화폐나 퇴장 화폐로의 성격을 차치하더라도, 화폐는 지불 수단이라는 특수한 형태를 매개로 상품의 절대적 가치 척도로 군림한다. 특히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기능은 이자 체계와 화폐 자본의 발달을 촉진하는 핵심 동인이 된다. 사치와 퇴폐적 소비에 필요한 화폐는 구매와 채무 이행을 위한 절대적 수단으로 요구되며, 소규모 생산자 역시 지불 의무의 이행을 위해 화폐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주와 국가에 대한 부역 및 현물 납부가 화폐 지대와 화폐 조세로 전환된 사실은 화폐의 기능적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두 경우 모두 화폐 그 자체가 자기 목적적 존재로 요구된다. 반면 퇴장 화폐는 고리대 관계에 포섭되면서 비로소 경제적 현실성을 획득하고 그 잠재적 동기를 실현한다. 퇴장 화폐의 소유자가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기능적 자본이 아닌 화폐로서의 화폐그 자체이나, 이자 수취를 매개로 이 퇴장 화폐를 자본으로 전격 전환시킨다. , 그가 이자를 매개로 타인의 잉여 노동 전부 또는 일부를 사유화하며, 생산 조건이 명목상 타인의 소유로 남아 있음에도, 실질적으로는 이를 지배하는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고리대는 (에피쿠로스의 신들이 세계 사이의 틈새에 거주하듯), 기존 생산 체제의 간극 속에서 기생한다. 상품 형태가 생산물의 보편적 양식으로 확립되지 않을수록 화폐의 희소성은 증대되며, 이에 따라 고리대금업자는 차입자의 지불 능력이나 저항 능력이라는 외재적 한계 외에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절대적 착취자로 군림한다.

 

소농민적 및 소부르주아적 생산 양식에서 화폐가 구매 수단으로 절실해지는 시점은, 생산 수단을 점유한 노동자가 예기치 못한 재해나 우연한 사고로 인해 생산 조건을 상실하거나 일반적인 재생산 과정이 차단될 때다. 생활 수단과 원료는 이러한 생산 조건의 핵심적 구성 요소이나, 가격 등귀로 인해 생산물의 판매 대금이 보충 비용을 하회하거나 흉작으로 인해 종자용 곡물을 현물로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의 귀족은 전쟁을 매개로 평민층을 몰락시켰다. 귀족은 평민에게 병역 의무를 강제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노동 조건을 재생산할 기회를 박탈하고 빈곤화를 초래하였다. 이때 전쟁을 매개로 획득한 전리품인 구리 (화폐)는 귀족의 금고에 축적되었다. 귀족은 평민에게 필요한 실물 상품 (곡물, 가축 등)을 직접 제공하는 대신, 자신들에게 잉여 자산이었던 화폐를 대부하면서 고율의 이자를 수취하고 평민을 채무 노예로 전락시켰다. 카를 대제 치하의 프랑스 농민들 역시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파산을 겪으며, 채무 관계를 기점으로 농노의 지위로 전락되는 경로를 밟았다.

 

로마 제국에서는 기근으로 인해 자유민이 자신의 자녀를 부유층에 노예로 매도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는 계급적 토대의 일반적 전락 과정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세밀히 고찰하면 소생산자의 생산 조건 유지 여부는 수많은 우연적 상황에 종속되어 있으며, 이러한 우연에서 비롯된 상실은 곧 빈곤화로 직결되어 고리대라는 기생적 기제가 개입할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농민의 경우, 가축 한 마리의 폐사만으로도 종전 규모의 재생산 구조가 와해될 수 있다. 이처럼 취약한 기반 위에서 일단 고리대의 착취 연쇄에 고착되면, 그는 경제적 예속 상태를 벗어나 자유를 복원할 기회를 영구히 상실하게 된다.

 

고리대의 핵심적이고 독보적인 활동 기반은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기능에 존재한다. 지대, 이자, 공납, 조세 등 특정 기일에 이행해야 하는 모든 화폐적 채무는 필연적으로 화폐 지불의 필요성을 수반한다. 이러한 경제적 배경으로 인해 고리대는 고대 로마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징세 청부업자의 기능과 밀접하게 결합하여 왔다. 상업이 발달하고 상품 생산이 보편화됨에 따라 구매와 지불 사이의 시차는 더욱 확대되며, 화폐는 정해진 기일에 반드시 인도되어야 하는 강제성을 띤다. 근대의 화폐 공황은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화폐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가 단일한 실체로 통합될 수 있음을 실증한다.

 

나아가 고리대 그 자체가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수요를 증폭시키는 주요 동인이 된다. 고리대는 생산자를 채무의 굴레에 심화시켜 구속할 뿐만 아니라, 가중되는 이자 부담으로 인해 원활한 재생산을 저해하면서 생산자가 상시적 지불 수단을 보유할 여력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고리대는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기능에서 발원하여, 자신의 가장 고유한 활동 토대인 바로 그 기능을 스스로 확장해 나가는 모순적 구조를 형성한다.

 

신용 제도는 고리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전하나, 이를 이자 자체에 대한 도덕적·종교적 반대라는 관점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고대 저술가나 교회 교부, 루터 및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견지했던 이자 금지론과는 논리적 기반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용 제도의 발전이 의미하는 본질은, 이자 낳는 자본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부과하는 객관적 조건과 요구 체계에 전적으로 종속된다는 사실에 있다.

 

근대 신용 제도하에서 이자 낳는 자본은 대체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객관적 조건에 수렴하며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고리대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속하며,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종전의 입법이 부과했던)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다만 이자 낳는 자본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부합하는 차입이 차단되거나 그러한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대상 및 조건하에서는 여전히 고리대 자본의 형태를 유지한다. 구체적으로는 전당포 이용과 같은 개인적 필요에서 비롯된 차입, 부유한 낭비자의 사치적 소비를 위한 차입 등, 그리고 이와는 달리 소농민이나 수공업자 등과 같이 직접적 생산자가 여전히 자신의 생산 조건을 소유하고 있는 비자본주의적 생산 영역이 이에 해당한다. 아울러 자본주의적 생산자라 할지라도 그 사업 규모가 극도로 영세하여 스스로 노동하는 생산자와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경우, 이자 낳는 자본은 고리대 자본으로의 성격을 견지하게 된다.

 

이자 낳는 자본을 고리대 자본과 구별하는 본질적 차이는 자본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그것이 기능하는 객관적 조건과 화폐 대부자에 대립하는 차입자의 사회적 성격이 변화했다는 점에 있다.

 

무산자가 산업가나 상인으로 신용을 획득하는 경우, 이는 그가 자본가로 기능하며 차입 자본을 매개로 미지불 노동을 점유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다. , 그는 잠재적 자본가로 신용 체계에 포섭된다. 재산은 없으나 역량과 사업 수완을 갖춘 개인이 자본가로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경제학적 변호론자들에게 상찬받아 왔다. 이러한 기제는 기존의 개별 자본가들에게는 위협적인 경쟁자들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측면이 있으나,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그 토대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 하층으로부터 새로운 역량을 부단히 충원하면서 그 지속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구조적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중세 가톨릭 교회가 신분, 출신, 재산에 구애받지 않고 피지배 계급의 우수한 인재들을 등용해 위계 질서를 구축하면서 사제 계급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세속인을 압제했던 이치와 같다.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탁월한 인물들을 흡수하는 역량이 뛰어날수록, 그 지배 체제는 더욱 안정화되는 동시에 피지배층에게는 한층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근대 신용 제도의 창설자들은 이자 낳는 자본 일반을 부정하거나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공공연히 승인하는 지점에서 출발하였다.

 

본고에서는 빈민을 고리대로부터 보호하고자 설립된 몽 드 피에테와 같은 초기 자선 전당포 (1350년 프랑쉬콩테, 15세기에 설립된 이탈리아 페루지아 및 사보나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상술하지 않겠다.

 

이러한 기관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오직 경건한 선의가 그 정반대의 결과로 전도되는 역사의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빈민 보호를 기치로 내건 기관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고리대금업을 수행하는 주체로 변질되었으며, 오늘날 영국의 노동자 계급은 그 후에 격인 전당포에 최소 100%에 달하는 고율의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 아울러 17세기 말 챔블랜이나 브리스코 등이 토지 자산을 담보로 지폐를 발행하여 귀족층을 고리대에서 구제하고자 했던 토지 은행식의 신용 착각에 대해서도 논의를 생략하기로 한다.

 

12세기와 14세기 베네치아 및 제노바에 설립된 신용 조합은 해상 무역과 도매 상업이 구태의연한 고리대의 지배 및 화폐 거래 독점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는 실무적 요구에 힘입어 탄생하였다. 이들 도시 공화국에 세워진 진정한 의미에서 은행들은 공공 신용 기관의 역할을 겸하며 (국가에 조세 담보 대부를 제공하였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신용 조합을 설립한 상인 계급이 당대 사회의 중추 세력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부와 자신들을 고리대의 압박에서 구출하는 동시에, 국가 기구를 자신들에게 더욱 공고히 종속시키는 데 전략적 이해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정치적 구도 속에서 (1694) 잉글랜드 은행 설립 당시 토리당은 은행의 정치적 성격을 문제 삼으며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들은 은행을 본질적으로 공화주의적 기관으로 규정하며, 베네치아, 제노바, 암스테르담, 함부르크와 같이 번영하는 은행이 존재하는 곳은 모두 공화국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반면, 전제 군주정인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는 은행이라는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는 논거를 들어 신용 제도의 확산을 배격하였다.

 

(1609년 설립) 암스테르담 은행과 (1619년 설립) 함부르크 은행은 근대적 신용 제도의 비약적 발달을 이끈 선구적 형태라기보다, 단순한 예금 은행의 기능에 충실하였다. 이들 은행이 발행한 수표는 실질적으로 예탁된 귀금속의 영수증에 불과하였으며, 오직 수치인의 이서를 거처서야만 비로소 유통되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상업과 제조업의 발달로 상업 신용과 화폐 거래가 고도화되었고, 이러한 발전 과정 속에서 이자 낳는 자본은 점차 산업 자본과 상업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었다. 이와 같은 종속 관계는 당시의 낮은 이자율 수준에서 명확히 입증된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현재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경제 발전의 전형으로 평가받았으며, 그 경제적 고도화에 따라 피취득자의 빈곤을 전제로 하던 낡은 고리대의 독점 체제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18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에서는) 네덜란드를 전형으로 삼아 이자율의 강제 인하를 촉구하는 여론이 고조되었고, 입법 방향 역시 이에 부응하였다. 이러한 요구의 본질적 목적은 이자 낳는 자본을 산업 자본 및 상업 자본의 논리에 완전히 종속시키는 데 있었다.

 

이 움직임의 선구적 인물은 영국 개인 은행업의 시조인 차일드였다. 그는 기성복 제조 업체인 모제즈 앤드 선개인 봉제업자의 독점 체제를 공격했듯이, 고리대금업의 독점적 지위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차일드는 영국 증권 매매업의 초석이자 동인도 회사의 지배자로, 모순적으로 무역의 자유를 명분 삼아 해당 회사의 독점권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차일드는 만리의 저작 오해받는 화폐 이자(1668)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논리를 전개한다.

 

비겁하고 전전긍긍하는 고리대금업자들의 대변인인 그는 논리 중 가장 취약한 지점을 공격하고 있다. 그는 낮은 이자율이 부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그것을 단순히 부의 결과물이라 단언한다.’ (상업에 관한 연구(1669), 번역판, 암스테르담과 베를린, 1754년 판: 120).

 

상업이 국가를 부유하게 하고 이자율 인하가 상업을 진흥시킨다면, 이자의 인하 또는 고리대의 제한은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결정적 원인임에 틀림없다. 특정 사안이 상황에 따라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한다는 주장은 결코 불합리하지 않다.’ (상업에 관한 연구(1669): 155).

 

달걀이 암탉의 원인이고 암탉이 달걀의 원인이다. 이자율의 인하는 부의 증대를 일으키며 증대된 부는 다시 이자율을 더욱 하락시킨다.’ (상업에 관한 연구(1669): 156).

 

근면의 가치를 옹호하는 반면, 반대자는 나태를 비호하고 있다.’ (상업에 관한 연구(1669): 179).

 

이처럼 고리대에 대항하여 이자 낳는 자본을 산업 자본에 종속시키려 했던 격렬한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수 전제 조건을 근대적 은행 제도의 형태로 구축하려는) 유기적 창출 활동의 서곡이었다. 근대적 은행 제도는 모든 유휴 화폐 예비금을 집적하여 화폐 시장에 투입하면서 고리대 자본의 독점력을 와해시키는 한편, 신용 화폐를 창출하면서 귀금속 자체가 지녔던 독점적 지위를 제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차일드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이르는 영국의 은행 제도 관련 문헌들은 고리대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고리대의 예속으로부터 상업, 산업, 국가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일관된 요구를 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신용이 발휘하는 경이로운 효과나, 귀금속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이를 지폐로 대체하면서 얻게 될 파급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공존하였다. 잉글랜드 은행과 스코틀랜드 은행의 창립자인 패터슨 (1658-1719)은 이러한 지평 위에서 존 로 (1671-1729)의 선구적 인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당시 잉글랜드 은행의 설립에 반대하여,

 

모든 금세공업자와 전당포 주인들은 격렬한 분노의 함성을 터뜨렸다.’ (매콜리, 1855: 499).

 

잉글랜드 은행은 설립 초기 10년 동안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였다. 외부의 강력한 적대에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은행권은 명목 가치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에서 통용되었다. 귀금속 거래를 매개로 원시적 은행 업무를 독점하던 금세공업자들은 잉글랜드 은행을 극도로 시기하였다. 자신들의 사업 영역이 축소되고 할인율이 저하되었으며, 무엇보다 정부와의 독점적 거래권이 경쟁 상대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1848: 73).

 

잉글랜드 은행 설립 이전인 1683년에도 이미 국립 신용 은행에 관한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그 주요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대량의 상품을 보유한 사업가들이 시장 상황이 불리할 때 손실을 감수하며 매도하는 대신, 은행의 위탁을 받아 상품을 예탁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재고 자산을 담보로 신용을 확보하면서 노동자를 고용하고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프란시스, 1848: 39-40).

 

이러한 구상은 각고의 노력 끝에 (런던) 비숍스게이트 스트리트의 데본셔 하우스에서 실현되었다. 해당 은행은 산업가와 상인들에게 예탁 상품 가치의 3/4까지 어음 대부를 실행하였다. 어음의 유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계 인사들이 협동 기구를 결성하였으며, 은행 어음 소지자는 누구나 조합 내에서 현금과 동일한 효력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난해한 운영 체계와 상품 가치 하락에 따른 높은 위험 부담으로 인해 이 은행은 큰 번창을 거두지 못하였다.

 

(영국의 근대적 신용 제도 형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촉진했던) 저술들의 실질적 내용을 고찰하면, 거기에는 이자 낳는 자본과 대부 가용 생산 수단 전반을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필수 전제 조건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요구만이 일관되고 있음을 포착하게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용된 논리나 표현들은 생시몽주의자들이 피력했던 은행 및 신용에 관한 추상적 관념과 (단어 하나하나까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중농주의자들에게 경작자가 토지를 실제로 경작하는 사람이 아닌 대규모 차지 농업가를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시몽의 근로자는 단순 노동자가 아닌 산업 자본가와 상업 자본가를 지칭하며 이러한 용어법은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통용된다.

 

근로자는 조수와 보조자, 육체 노동자를 필요로 하며, 영리하고 능숙하며 성실한 인재를 구한다. 그는 그들을 지휘하여 일하게 하며, 그들의 노동은 그의 하에서 비로소 생산적 성격을 띤다.’ (앙팡탕, 생시몽파의 종교, 1831: 104).

 

생시몽이 그의 유작인 신기독교(1825)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노동자 계급의 대변자로 자처하며 이들의 해방을 최종 목표로 선언했다는 사실은 간과될 수 없다. 그 이전의 저작들은 본질적으로 봉건 사회와 대비되는 근대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찬미였으며, 나폴레옹 시대의 군인이나 입법자와 대조되는 산업가 및 은행가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치중하였다. 이는 동시대 오언의 저술들과는 선을 긋는 지점이다! 생시몽주의자들에게 산업 자본가는 여전히 가장 탁월한 형태의 근로자로 간주되었다.

 

생시몽의 저작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면, 신용과 은행에 관한 그의 공상이 1852년 생시몽주의자 페레르가 주도하여 설립된 크레디 모빌리에 (Crédit Mobilier)’로 실현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신용 은행은 (신용 제도나 대규모 산업이 근대적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프랑스와 같은 국가에서만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형태였으며,

 

영국과 미국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크레디 모빌리에의 싹은 이미 생시몽의 학설(1831)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된다. 은행업자가 일반 자본가나 고리대금업자보다 낮은 이율로 대부할 수 있음은 자명한데, 이는 은행업자가,

 

차입자의 신용을 평가하는 데 있어 지주나 개인 자본가들보다 오판의 위험이 적어 산업가에게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 수단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

 

저자 자신은 주석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덧붙이고 있다.

 

유휴 자산가와 근로자 (산업 자본가) 사이를 은행업자가 매개하면서 발생하는 이익은, 무질서한 사회 구조가 이기주의 (각종 사기와 기만의 형태로 발현되는)에 제공하는 기회들로 인해 상쇄되거나 소멸되기도 한다. 은행업자는 양자 사이에 개입하여 때로는 양측 모두를 착취하면서 사회적 해악을 야기한다.’

 

여기서 근로자산업 자본가를 지칭한다. 그러나 근대적 은행 제도가 운용하는 자금을 단순히 유휴 자산가의 자금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오류이다.

 

첫째, 해당 자금에는 산업가와 상인이 일시적 유휴 화폐 형태로 보유하는 자본, 곧 화폐 예비금이나 차기 투자 대기 자본이 포함된다. 이는 유휴 자본일 뿐 자산가의 도식적 자본과는 성격이 다르다.

 

둘째, 은행 자금에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수입과 저축 중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축적을 위해 예치된 부분이 포함된다.

 

이 두 요소야말로 은행 제도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 동력이다.

 

그럼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귀금속 형태의 화폐는 여전히 체제의 토대를 이루며, 신용 제도는 본질적으로 이 토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둘째, 신용 제도는 사회적 생산 수단이 (자본과 토지 소유권의 형태로) 사적 개인에게 독점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 신용 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내재적 형태인 동시에, 이 생산 양식을 그 최고이자 최후의 단계로 밀어붙이는 결정적 추진력이다.

 

영국의 이자에 관한 약간의 고찰(저자 미상, 1697)에서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은행 제도는 그 조직적 구성과 집중도 측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창출한 가장 인위적이며 정교한 산물이다. 비록 상업과 산업의 실질적 운동이 잉글랜드 은행의 궤도 외부에 존재하고 은행이 그 운동에 대해 전적으로 수동적인 입장을 견지할지라도, 잉글랜드 은행과 같은 기관이 상업과 산업 전반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은행은 비록 형식적 범주일지라도 사회적 규모에서 생산 수단의 일반적 부기를 담당하고 그 분배의 형태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개별 자본가 (또는 특정 개별 자본)의 평균 이윤은 해당 자본이 직접 착취하는 잉여 노동이 결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총자본이 착취하는 총 잉여 노동에 규정되며, 총 잉여 노동에서 각 개별 자본은 총자본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배당을 수취할 뿐이다. 자본이 지닌 이러한 사회적 성격은 신용 및 은행 제도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비로소 매개되고 완전히 실현된다.

 

나아가 신용 및 은행 제도는 사회 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본과 아직 능동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잠재적 자본까지 산업 자본가 및 상업 자본가의 처분에 맡긴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대부자나 사용자는 더 이상 해당 자본의 소유자나 생산자가 아니게 된다. 이처럼 신용 및 은행 제도는 자본의 사적 성격을 철폐하면서, 자본 자체의 부정을 내재적으로 포함한다. 은행 제도는 자본의 분배권을 사적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로부터 회수하여 하나의 특수한 업무이자 사회적 기능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은행과 신용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체제 내부의 한계 너머로 몰아붙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는 동시에, 공황과 사기를 촉발하는 가장 유효한 동인 중 하나가 된다.

 

나아가 은행 제도는 화폐를 각종 형태의 유통 신용으로 대체하면서, 화폐란 본질적으로 노동과 그 생산물이 지닌 사회적 성격을 특수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함을 드러낸다. 동시에 이러한 사회적 성격은 사적 생산이라는 토대와 대립하기에, 필연적으로 여타 상품과 병존하는 하나의 사물 또는 특수한 상품의 형상으로 자신을 구체화할 수밖에 없음을 명시한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협동적 노동의 생산 양식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신용 제도가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용 제도는 생산 양식 전반의 대규모 유기적 변혁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기능할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신용 및 은행 제도의 전능한 위력을 맹신하는 허상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그 파생 형태로의 신용 제도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기인한다. 생산 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기를 멈추고 (사적 토지 소유가 폐지되는 즉시), 신용 체계는 그 존립 근거를 상실하는데, 이는 이미 생시몽주의자들도 간파했던 바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존속하는 한 이자 낳는 자본은 해당 양식의 필수적 형태로남으며 신용 제도의 근간을 이룬다. 상품 생산을 유지하면서 화폐만을 폐지하고자 했던 프루동과 같은 선동적 저술가만이 소부르주아적 염원을 현상한 무이자 신용이라는 형용 모순적 괴물을 몽상할 수 있었을 뿐이다.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CW 6: 105-212);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CW 29: 323)).

 

생시몽파의 종교(45)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용의 목적은 산업 도구를 소유하고 있으나 이를 운용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집단으로부터, 노동 도구는 없으나 그 사용 방법을 숙지한 근면한 집단으로 생산 수단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전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정의에 입각할 때, 신용 제도는 본질적으로 특정한 소유 구성 방식에서 기인하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소유 구조의 변화와 함께 그 존립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나아가 같은 책 98쪽에서는 현대 은행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오늘날의 은행은 자신의 통제 영역 밖에서 발생하는 경제 거래의 사후적 추종에 머무를 뿐, 거래 자체를 선도적으로 자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은행은 자본을 대부받는 근로자 (산업 자본가)에 대하여 단순히 자본가로의 기능적 임무를 수행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은행이 경제 전반의 지휘권을 확보하고 자신이 융자하는 기업과 추진하는 사업의 규모 및 유용성’ (101)에 힘입어 그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는 사상 속에는 이미 크레디 모빌리에의 싹이 있다. 마찬가지로 페케르 또한 은행, 곧 생시몽주의자들이 일컫는 일반적 은행 제도생산 전반을 지배할것을 요구한다. 페케르는 비록 그 성향이 훨씬 급진적일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생시몽주의의 궤적에 놓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페케르는 신용 기관이 국민적 생산 운동 전체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국민적 신용 기관을 창설하여 재능과 능력을 겸비한 무산자들에게 자금을 대부하면서도, 그 차입자들을 생산과 소비의 긴밀한 연대성 속에 강제로 결합시키지 않은 채 그들이 무엇을 생산하고 교환할지를 개인의 재량에 맡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결과는 기존의 개인 은행들이 이미 초래하고 있는 무정부 상태, 곧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 일방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타방의 급격한 치부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용 기관은 누군가의 불행을 상쇄하는 정도의 요행을 생산하는 데 그칠 것이며, 결국 지원을 받은 임금 노동자들에게 현재의 자본가적 고용주들이 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호 경쟁의 수단을 제공하는 꼴이 되고 만다.’ (페케르, 1842: 433, 434).

 

기존의 분석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상인 자본과 이자 낳는 자본은 자본의 가장 고전적인 형태에 속한다. 특히 이자 낳는 자본이 인민에게 가장 전형적인 자본의 모습으로 각인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인 자본의 경우 그것이 기만이든 노동이든 일정한 매개 활동을 전제로 하는 반면, 이자 낳는 자본은 자본의 자기 증식적 성격과 잉여 가치 생산 능력을 순전히 물신적 속성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산업 자본의 발달이 미비한 국가에서는 (: 프랑스) 경제학자들조차 이자 낳는 자본을 자본의 기본 형태로 규정하며, 지대마저 그 변형된 일종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는 대부 형태의 우세함에 매몰되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내적 구성을 완전히 오해한 결과이며, 토지가 자본과 마찬가지로 오직 자본가에게 대부된다는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물론 화폐 대신 기계나 업무용 건물 등 현물 형태의 생산 수단이 대부될 수도 있으나, 이들은 결국 일정한 화폐액을 표상할 뿐이다. 이때 이자 외에 마멸분에 대한 추가 비용이 지불되는 것은 해당 자본 요소가 지닌 고유한 사용 가치와 현물 형태에 기인한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구별해야 할 지점은 생산 수단이 직접적 생산자에게 대부되는가, 아니면 산업 자본가에게 대부되는가 하는 문제다. 전자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부재를, 후자는 그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인적 소비를 위한 가옥 대부 등을 이 논의에 포함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무의미하다. 노동자 계급이 주거 형태에서 극심한 기만을 당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이는 노동자 계급에게 생활 수단을 공급하는 소매상들의 착취와 같은 현상일 뿐이다. , 이는 (생산 과정 내부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1차적 착취와 나란히 진행되는 제2차적 착취에 해당한다. 여기서 판매와 대부의 형식적 차이를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 연관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에 불과하다.

 

 

 고리대는 (상업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주어진 생산 방식을 전제로 기능할 뿐, 새로운 생산 방식을 창출하지 않으며 외부로부터 그 체계와 관계를 맺는다. 고리대는 자본의 증식을 목적으로 기존 생산 방식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이용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해당 방식을 직접적으로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고리대는 본질적으로 고수적이며, 기존 생산 방식을 혁신하기보다 생산 조건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생산 요소들이 상품의 형태로 생산 과정에 유입되거나 유출되는 비중이 낮을수록, 화폐를 매개로 생산 요소를 전환하는 행위는 더욱 예외적이고 특수한 성격을 띠게 된다. , 사회적 재생산 구조 내에서 유통이 수행하는 기능적 중요성이 낮을수록, 고리대 자본은 더욱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며 번창하게 된다.

 

화폐 재산이 특수한 형태의 자산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고리대 자본이 자신의 모든 청구권을 화폐적 권리로 보유하게 됨을 의미한다. 특히 생산의 주요 영역이 현물 지급과 같은 사용 가치 중심의 교환에 국한되어 있을수록, 해당 경제 체제 내에서 고리대 자본의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고리대는 이중의 작용을 매개로 산업 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결정적 전제 조건들을 마련하는 강력한 지렛대가 된다.

 

첫째, 고리대는 상인 자본과 나란히 독립적인 화폐 자산을 축적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둘째, 고리대는 전통적인 생산 수단 소유자들을 경제적으로 몰락시키면서 그들로부터 노동 조건을 박탈한다.

 

중세의 이자

 

중세 사회의 주민은 순수하게 농업에 종사하였다. 봉건 제도와 같은 통치 체제 아래에서는 교역이 극히 제한되었으므로, 이윤 또한 거의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중세의 고리대 금지법은 정당성을 지녔다. 더욱이 농업 중심 국가에서 화폐 차입은 대개 극심한 빈곤이나 위급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발생하였다.

 

영국 역사에서 헨리 8(재위 기간: 1509-1547)는 이자율을 10%로 제한하였으며, 이후 제임스 1(재위 기간: 1603-1625)8%, 찰스 2(재위 기간: 1660-1685)6%, 앤 여왕 (재위 기간: 1702-1714)5%로 그 상한을 점진적으로 낮추었다. 당시의 대부업자들은 법률상 독점자는 아니었으나 사실상의 독점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므로, 여타 독점권과 마찬가지로 그들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현대 경제에서는 이윤율이 이자율을 규제하지만, 그 당시에는 반대로 이자율이 이윤율을 규제하는 구조였다. 화폐 대부자가 상인에게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면 상인은 상품 가격에 이를 전가하여 높은 이윤율을 붙일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막대한 규모의 화폐가 구매자의 수중에서 화폐 대부자의 수중으로 이전되는 결과를 낳았다.’ (길바트, 은행업의 역사와 원리: 163, 164, 165).

 

보고된 바에 따르면, (100굴덴을 대부하고) (일 년에 세 번 열리는) 라이프치히 장날마다 10굴덴씩을 수취하여 연간 총 30굴덴의 이자를 챙기는 사례가 있다. 심지어 노이엔부르크 장날까지 추가하여 100굴덴당 40굴덴을 취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행태가 일반화될 경우 초래될 결과는 자명하다.

 

라이프치히에서 100플로린을 소유한 자는 매년 40플로린을 거두어들이면서 농민이나 소생산자 한 명의 생계를 잠식한다.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폐해는 가속화되어, 1,000플로린 소유자는 매년 400플로린을 수취하며 기사나 부유한 귀족의 몫을, 10,000플로린 소유자는 매년 4,000플로린으로 부유한 백작의 자산을 집어삼킨다. 나아가 100,000플로린을 굴리는 대규모 고리대금업자는 매년 40,000플로린을 챙겨 위대한 왕자의 부를, 1,000,000플로린을 보유한 자는 매년 400,000을 받아 일국의 왕에 버금가는 부를 매년 강탈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고리대금업자는 어떠한 신체적 위험이나 상품 손실의 부담을지지 않은 채, 노동 없이 난로 앞에 앉아 안락을 누릴 뿐이다. 이 비열한 약탈자가 가만히 집에 앉아 타인의 노동 결실을 가로채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그는 단 10년 안에 세계 전체를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루터, 목사들에게, 고리대에 반대해 설교할 것(1540), 루터 저작집, 비텐베르크, 1589, 6: 312)

 

‘15년 전 고리대에 반대하는 글을 집필하였으나, 당시에도 이미 고리대는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어서 어떠한 개선도 바랄 수 없었다.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리대는 더욱 오만해져서, 이제는 스스로를 죄악이나 악행, 또는 수치로 여겨기기는커녕 도리어 타인에게 기독교적 봉사를 베푸는 순수한 덕행이자 명예라고 자찬하고 있다. 이처럼 수치가 명예로 둔갑하고 악행이 덕행으로 변모한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루터, 목사들에게, 고리대에 반대해 설교할 것).

 

유대인과 롬바드 거리의 사람들, 고리대금업자, 그리고 이른바 흡혈귀라 불리던 자들이 초기 은행업과 화폐 거래를 주도하였으며, 그들의 평판은 극도로 악명 높았다. 런던 금세공업자들 역시 이들과 한패였다. 결과적으로 초기 은행업자들의 실체는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이자 냉혹한 흡혈귀였으며, 본질적으로 악한들의 집단에 불과하였다.’ (하드카슬, 은행과 은행업자: 19, 20)

 

베네치아가 제시한 은행 설립의 선례는 곧 주변국으로 빠르게 확산하였다. 독립적인 지위와 상업적 역량으로 명성을 떨친 모든 해안 도시들은 앞다투어 독자적인 은행을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선박의 귀항이 장기간 지연되는 해상 무역의 특성상 신용 제공은 필연적인 관습으로 정착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아메리카 대륙의 개척과 그에 따른 무역 확대를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이는 중요한 지적이다.)

 

대규모 선박을 전세 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의 대부가 요구되었는데, 이는 이미 고대 아테네와 그리스에서도 확인되는 현상이었다. 이처럼 해상 무역과 신용 제도의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1308년 한자 동맹의 주요 도시인 브뤼즈에는 이미 보험 회사가 존재하고 있었다.’ (오지에, 1842: 202, 203).

 

17세기 최후의 3분기, (곧 근대적 신용 제도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이전까지) 영국에서조차 토지 소유자에 대한 대부와 부유층의 일반적 소비를 위한 대부가 얼마나 지배적이었는지는 노스의 저술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노스는 영국의 일류 상인이자 당대 가장 선구적인 경제 이론가 중 한 명으로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이 나라에서 이자를 목적으로 대부되는 화폐 중 사업가들의 운영 자금으로 투입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자금의 대부분은 사치품 구입에 충당되거나, 자신의 토지 수익보다 과도한 지출을 일삼으면서도 토지를 매각하는 대신 저당 잡히는 대토지 소유자들의 소비를 뒷받침하는 데 활용될 뿐이다.’ (1691: 6-7).

 

18세기 폴란드의 경제적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바르샤바에서는 어음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이는 실질적인 상업 활동보다는 주로 은행업자의 고리대 행위와 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였다. 은행업자들은 방탕한 귀족들에게 8% 이상의 고율로 자금을 대부하기 위해 해외로부터 백지 어음 신용을 입수하였다. 이 어음은 상품 거래라는 실체적 근거 없이 발행되었음에도, 외국의 어음 인수인은 대금 환류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를 인수하였다. 그러나 결국 테퍼를 비롯한 바르샤바의 일류 은행업자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함에 따라, 이들의 어음을 인수했던 외국 금융업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뷔슈, 1808: 232, 233).

 

이자 금지가 교회에 준 이익

 

교회는 이자 수취를 금지하였으나, 빈곤 구제를 목적으로 재산을 매각하는 행위는 허용하였다. 또한 화폐 대부자에게 (대부금 상환 시까지) 재산권을 이전하는 관행 역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따라 화폐 대부자는 담보권을 확보함은 물론, 해당 재산의 운용 수익을 기반으로 대부에 대한 보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교회와 산하 종교 단체 및 자선 단체들은 이러한 관행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으며, 특히 십자군 전쟁 시기 (11-13세기)에 그 세가 절정에 달하였다.

 

이자 금지 규정은 종교 단체에 기부된 재산의 양도를 영구히 제한하는 법규와 결합하여, 국부의 상당 부분을 교회의 영구적 소유로 귀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들은 교회에 귀속된 부동산을 담보로 삼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기에 세력 확장에 제약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자 금지라는 종교적 규율이 없었더라면, 교회와 수도원은 결코 그토록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뷔슈, 1808: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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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귀금속과 환율

 

. 금준비의 변동

 

화폐 핍박기에 발생하는 은행권 퇴장은 원시적 사회 혼란기에 나타난 귀금속 퇴장 현상과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844년 은행법은 국내의 모든 귀금속을 유통 수단으로 전환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정책적 효과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당 법안은 금 유출 시 유통 수단을 감축하고, 반대로, 금 유입 시에는 유통 수단을 확대하면서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 상반된 결과가 증명되었다. 유일한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면, 1844년 이래 잉글랜드 은행권의 실제 유통량은 법정 최고 발행 한도에 도달한 사례가 없다. 반면 1857년 공황은 특정한 상황에서 설정된 최고 발행 한도가 명백히 불충분함을 입증했다.

 

실제 18571113일부터 30일 사이, 1844년 은행법 효력이 정지된 직후의 통계에 따르면 법정 최고 한도를 매일 평균 488,830파운드 초과한 금액이 유통되고 있었다 (은행법, 1858: xi). 당시 법정 최고 발행 한도는 1,4475천 파운드에 잉글랜드 은행의 금속 준비금을 합산한 금액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귀금속의 유입 및 유출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제반 사항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은 비생산국 간의 금속 이동은 금·은 생산지로부터 각국으로의 유입 및 그에 따른 국가 간 분배 과정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러시아, 캘리포니아, 오스트레일리아의 금광이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이전인 19세기 초기까지의 귀금속 공급량은 마멸된 주화의 보충, 사치품 제조, 그리고 대()아시아 은 수출 수요를 충당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 미국과 유럽의 아시아 무역 규모가 팽창함에 따라 아시아로의 은 유출이 급격히 증대되었다. 유럽에서 유출된 은의 공백은 대체로 유입된 금 공급으로 보전되었으며, 유입된 금의 상당 부분은 국내 화폐 유통 체계로 흡수되었다. 실제로 1857년까지 영국 국내 유통량에 추가된 금의 규모는 약 3,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844년 이래 유럽과 미국의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속 준비금 평균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국내 화폐 유통량의 증가는 공황 이후의 경기 침체기에 이례적 현상을 야기한다. , 통화 부문에서 밀려난 대규모의 금화가 퇴장하면서 은행의 준비금이 비약적으로 급증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금광 개발 이후 부가 축적됨에 따라 사치품 제조를 위한 귀금속 소비 또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둘째, 귀금속은 비생산국들 사이에서도 부단히 이동하며, 동일 국가 내에서 금의 유입과 유출이 동시에 병행되기도 한다. 최종적인 순유출입 여부는 양방향의 운동성 중 어느 쪽이 우우세한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는 통상 교차하거나 평행하는 운동들이 상당 부분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론적 접근은 유출과 유입이라는 두 기제가 상호 평행하며 끊임없이 작동한다는 본질적 사실을 은폐할 위험이 있다. 일반적으로 귀금속의 과잉 수입 또는 수출은 단순히 상품 무역 수지의 결과물로만 간주되는 경향이 있으나, 실상 이는 상품 교역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귀금속 고유의 수급 관계 또한 내포하고 있다.

 

셋째, 귀금속 수지에서 수출과 수입 중 어느 쪽이 우세한가는 통상 중앙은행 금속 준비금의 증감 현황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측정의 정확성은 우선적으로 은행 제도의 집중도에 달려 있는데, 이는 국립 은행에 비축된 귀금속이 국가 전체의 보유량을 대변하는 정도가 해당 제도의 집중 정도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측정법 역시 절대적으로 정확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는 귀금속의 추가 수입분이 국내 유통 체계에 흡수되거나 사치재용 수요 증대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귀금속의 추가 수입이 전무하더라도 국내 유통을 위한 금화 인출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귀금속 수출의 실질적 증가 없이도 금속 준비금의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넷째, 귀금속 수출이 실질적인 유출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금속 준비금의 감소세가 장기간 지속되어 일반적 경향으로 고착화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국립 은행의 금속 준비금이 상시적인 평균 수준을 크게 하회하여 법적 또는 관습적으로 설정된 최저 한도에 도달했을 때를 지칭한다. 다만, 이 최저 한도는 은행권 태환 보증 등에 관한 각국 법령에 따라 상이하게 규정되므로, 다소 임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영국 내 귀금속 유출이 도달할 수 있는 양적 한계와 관련하여 뉴마치는 은행법, 1857(1494)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실증적 근거에 입각하여 볼 때, 대외 거래 변동으로 인한 귀금속 유출액이 300만 내지 400만 파운드를 초과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실제 사례를 검토하면, 18471023일 잉글랜드 은행의 금 준비금은 당해 최저 수준을 기록했는데, 이는 18461226일 대비 5198,156파운드 감소한 수치이며, 1847년 내 최고치였던 829일과 비교하면 6453,748파운드가 급감한 결과였다.

 

다섯째, 국립 은행 금속 준비금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다만 준비금의 규모는 이 기능들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국내 사업 및 대외 거래의 침체에 따른 유입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1. 대외적 지불을 위한 준비금, 곧 세계 화폐로의 예비적 기능.

 

2. 국내 금속 유통량의 팽창과 수축에 대응하기 위한 완충 기능.

 

3. 예금 지급 및 은행권 태환을 보증하기 위한 지불 준비 기능 (이는 은행 고유의 기능으로, 단순한 화폐 기능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금속 준비금은 상기 세 가지 기능 중 어느 하나에 따라서도 변동될 수 있다. 대외적 준비금으로는 지불 차액의 향방에 따라, 국내 유통 준비금으로는 통화량의 수축과 팽창에 따라 그 규모가 결정된다.

 

특히 세 번째 기능인 지급 보증 준비금으로의 역할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운동성을 갖지는 않으나 준비금 전체에 이중적 영향을 미친다. 은행권이 국내 유통에서 금속 화폐를 대체하여 발행된다면, 국내 유통 완충이라는 두 번째 기능은 소멸된다. 이 경우 해당 목적에 기여하던 귀금속 중 일부는 영구히 해외로 유출되며, 국내 유통을 위한 금속 주화 인출이나 유통 중인 금속의 비화폐화에 따른 환류를 매개로 한 일시적 준비금 확충 기제 또한 사라진다.

 

나아가 예금 지급과 은행권 태환을 위해 어떠한 사정에서도 유지해야 할 최소 한도의 금속 준비금 설정은 금의 유입과 유출 결과에 특수한 방식으로 관여한다. 이는 금속 준비금 중 은행이 반드시 보유해야 할 필수분과 불필요하여 처분하고자 하는 잉여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순수 금속 유통 체제와 집중화된 은행 제도 하에서 은행은 금속 준비금을 예금 지급을 위한 핵심 보증 자산으로 간주해야 하며, 이 경우 금속 유출은 1857년 함부르크 사례와 같은 심각한 공황을 야기하는 도화선이 된다.

 

여섯째, 1837년의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면, 현실의 공황은 항상 환율이 호전되고 귀금속 수입이 수출을 상회하기 시작한 시점에 본격화되었다.

 

실례로 1825년의 실질적 공황은 금 유출이 중단된 이후 발생했으며, 1839년에는 금 유출이 진행되었음에도 공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847년의 경우 금 유출은 4월에 멈췄으나 공황은 10월에 이르러서야 나타났고, 1857년 역시 국외 금 유출이 11월 초에 중단된 뒤 11월 하순에 본격적인 공황이 도래했다.

 

이러한 경향은 1847년 공황에서 특히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금 유출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예비적 공황을 야기한 후 4월에 이미 종료되었으며, 진정한 의미의 상업 공황은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10월에야 비로소 발발하였다.

 

1848년 상원 특별 위원회에서 제기된 상업 공황에 관한 투크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상업 불황, 1848-1857).

 

투크의 증언.

 

‘18474월의 금융 핍박은 실질적으로 금융 공황의 양상을 띠었으나, 지속 기간이 비교적 짧았으며 유의미한 상업적 파산을 동반하지는 않았다. 반면 10월에 발생한 금융 핍박은 4월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전례 없는 규모의 상업적 파산을 야기했다 (2996).

 

4월에는 대미 환율을 비롯한 제반 여건으로 인해 이례적인 대규모 수입 대금을 결제하고자 막대한 양의 금을 수출해야 했다. 이에 잉글랜드 은행은 비상 대책을 강구하여 금 유출을 저지하고 환율 인상을 도모했다 (2997).

 

이후 환율은 10월에 이르러 영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2998).

 

이러한 환율의 반전은 이미 4월 셋째 주부터 시작되었다 (3000).

 

환율은 7월과 8월 사이의 변동을 거쳐 8월 초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영국에 유리한 상태를 유지했다 (3001).

 

따라서 8월에 발생한 금 유출은 대외 거래가 아닌 국내 유통 수요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3003).’

 

잉글랜드 은행 총재 모리스의 증언에 따르면, 18478월 이후 환율이 영국에 유리하게 형성되어 금 유입이 발생했음에도 잉글랜드 은행의 금속 준비금은 오히려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220만 파운드의 금이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시중으로 유출되었다 (137).’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철도 건설 가속화에 따른 노동자 고용 증대와 더불어,

 

공황 위험에 대비하여 개별 은행들이 자체적인 금 준비금을 확보하려 했다 (147).’

 

1811년부터 이사로 재직한 전 총재 파머의 증언.

 

‘18474월 중순부터 1844년 은행법 효력이 정지된 18471025일까지의 전 기간에 걸쳐 환율은 영국에 유리하였다 (684).’

 

결과적으로 18474월 화폐 공황의 촉발 요인이 된 금속 유출은 통상적인 공황의 전조 현상이었을 뿐이며, 공황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기 전에 이미 그 추세가 반전되어 있었다. 이는 1839년 심각한 불황 속에서 곡물 대금 결제 등을 위해 상당량의 금속 유출이 발생했음에도, 실질적인 공황이나 화폐 위기로까지는 번지지 않았던 사례와도 일치한다.

 

일곱째, 일반적 공황이 수습되고 안정 상태로 복귀하면, 생산국으로부터의 새로운 유입분을 제외한 금과 은은 각국의 기존 금 준비금 보유 비율에 따라 재분배된다. 기타 조건이 동일하다면, 각국 금속 준비금의 상대적 규모는 세계 시장에서 해당 국가가 점하는 기능적 비중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따라 귀금속은 적정 분배 몫을 초과 보유한 국가로부터 부족분 국가로 유입되며, 이러한 유출입 운동은 국가 간 준비금의 초기 분배 상태를 복원하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다만 이러한 재분배 과정은 환율과 관련된 제반 변수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일단 적정 분배가 확립되면 그 기점으로부터 다시 준비금의 증대와 유출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가 나타난다. (엥겔스: 이 마지막 문장은 세계 화폐 시장의 중심지인 영국에 한하여 유효함이 명백하다.)

 

여덟째, 금속 유출은 통상 대외 무역 조건이 변동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전조이며, 이는 경제 상황이 다시금 공황 국면에 근접하고 있다는 선행적 경고의 성격을 띤다.

 

아홉째, 지불 차액은 아시아 시장에 대해서는 흑자를 기록할 수 있는 반면, 유럽과 미국 시장에 대해서는 적자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귀금속의 수입은 주로 다음의 두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1) 첫째, 공황 직후의 낮은 이자율 국면으로, 이는 생산 활동의 축소를 실증한다.

 

둘째, 이자율이 점진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나 아직 그 평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국면이다. 이 두 번째 국면에서는 귀금속이 유입되고 자본의 환류가 활발하며 상업 신용이 풍부하게 제공되므로, 생산 규모의 확대에도,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는 그에 비례하여 급격히 증가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대부 자본이 상대적으로 과잉 상태에 놓이는 이 두 시기 동안, 주로 대부 자본의 형태로 기능하는 귀금속의 대량 유입은 시중 이자율을 하락시키며, 나아가 경제 전반의 사업적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 자본의 환류가 지체되고 시장 내 상품 공급 과잉이 심화되는 가운데 신용에 힘입은 외형적 번영이 유지될 때, 곧 대부 자본에 대한 강력한 수요로 인해 이자율이 평균 수준에 도달한 시점부터 귀금속의 지속적이고 급격한 유출이 나타난다.

 

귀금속 유출에 집약된 이러한 경제 상황 하에서, 가용 대부 자본의 직접적 형태인 귀금속이 외부로 지속 소진되는 것은 시장에 지대한 타격을 입힌다. 이는 필연적으로 이자율 상승을 견인하며, 이때의 이자율 상승은 신용 거래를 진정시키기보다 오히려 신용 재원을 극한으로 활용하여 신용 팽창을 가속화한다. 따라서 이 시기는 공황 또는 경제적 파국이 도래하기 직전의 전조 단계라 할 수 있다.

 

뉴마치의 증언 (은행법, 1857)은 다음과 같다.

 

질문자: 유통하는 어음의 금액은 할인율의 상승과 함께 증가하는가.

 

뉴마치: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1520).’

할인율의 상승과 시중 어음 유통 총액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뉴마치는 이자율 상승 시기에 어음 유통액이 도리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1520).

 

평상시에는 은행 계좌를 매개로 한 결제가 주요 교환 수단으로 기능하나, 잉글랜드 은행의 할인율 인상과 같은 경제적 곤란이 발생하면 거래 형식이 자연히 어음 발행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어음이 이미 이루어진 거래애 대한 법적 증거로 유용할 뿐만 아니라, 타처에서의 물품 구매 및 특히 자본 차입을 위한 신용 수단으로 탁월한 편의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1522).’

 

나아가 위기 국면에서 잉글랜드 은행이 할인율을 인상할 경우, 어음의 유통 기간 단축 전망과 추가적인 할인율 인상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동시에 확산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로 인해 투기 세력 (특히 신용 투기꾼들)을 포함한 경제 주체들은 장래의 어음 (선물)을 앞당겨 할인하면서 가용한 신용 수단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상의 논의가 시사하는 바는 단순히 귀금속의 절대적인 수출입량 자체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귀금속의 이동이 파급력을 갖는 이유는,

 

첫째, 그것이 화폐 형태의 자본이라는 고유한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둘째, 미세한 수급 불일치만으로도 체제의 평형이 무너질 수 있는 임계 상황에 귀금속의 이동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는 평형을 유지하던 저울에 깃털 하나가 더해지면서 급격한 기울기가 발생하는 원리와 같다.)

 

이러한 기제를 배제한다면, 종전의 실증적 최대치인 500만 내지 800만 파운드 규모의 금 유출이 어떻게 그토록 심대한 충격을 유발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이 정도의 자본 증감은 영국 내 평균 금 유통액인 7,000만 파운드와 비교해도 미미한 수준이며, 영국의 총생산 규모에 비하면 사실상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극소한 수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용 및 은행 제도의 고도화는 한편으로 모든 화폐 자본을 생산 과정에 투입하거나 화폐 수입을 자본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 순환의 특정 국면에서 금속 준비금을 그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최소 한도까지 축소시킨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제도의 발달은 경제 유기체 전체를 과도하게 민감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생산 발전의 단계가 낮았던 시기에는 금 준비금이 평균치에서 다소 변동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매우 심각한 수준의 금 유출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산업 순환의 결정적 시기와 맞물리지 않는 한 상대적으로 미미한 영향만을 미쳤을 뿐이다.

 

상기 논의에서는 흉작 등으로 초래되는 예외적 금속 유출의 경우는 배제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생산 안정성에 급격하고 중대한 단절을 야기하며,

 

금 유출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적 표현일 뿐이므로, 해당 파급 효과를 재차 부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러한 생산의 단절이 과잉 팽창기에 발생할수록 금속 유출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의 강도는 더욱 증폭된다.

 

아울러 금속 준비금이 지니는 은행권 태환 보증 기능 및 신용 제도 전반의 회전축으로의 역할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이 신용 제도의 핵심 축이라면, 금속 준비금은 다시 중앙은행을 지탱하는 회전축으로 기능한다.

 

신용 제도가 화폐 제도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은 이미 제권 제3장 제3(b)의 지불 수단 논의에서 규명된 바 있다. 투크와 오브스톤 역시 결정적인 위기 국면에서 금속 토대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부의 막대한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공히 인정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해당 기제가 실질적으로 정 (+)의 효과를 산출하는가 또는 부 (-)의 효과를 초래하는가에 있으며, 나아가 불가피한 경제적 현상을 타개함에 있어 어떠한 방식이 더 합리적인가에 국한된다. 전체 생산 규모와 대조할 때 지극히 미미한 양에 불과한 귀금속이 신용 제도의 결정적인 회전축으로 공인됨에 따라, 공황기에는 이러한 회전축으로의 성격이 공황에서 전율할 정도로 발현될 뿐만 아니라 이론적 이원론마저 표면화된다. , 자칭 계몽된 경제학은 자본일반을 논할 때는 금·은을 가장 부차적이고 무용한 자본 형태로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금융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태도를 급변하여 이를 가장 우월한 자본으로 격상시킨다. 결국 이 배타적 자본을 보존하기 위해 여타의 모든 자본 형태와 노동은 희생되어야만 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귀금속은 여타의 부와 어떠한 원리로 구별되는가. 이는 가치의 절대적 크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귀금속의 가치 크기 역시 그 안에 대상화된 노동량에 따라 규정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귀금속이 갖는 차별성은 그것이 부의 사회적 성격을 독립적으로 체현하는 표상이자 표현이라는 점에서 도출된다.

 

(엥겔스: 사회적 부는 개별 사적 소유자들의 부로 구성되며, 이들이 각자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질적으로 상이한 사용 가치들을 상호 교환하면서 사회적 성격을 획득한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 하에서 이러한 교환은 오직 화폐를 매개로만 수행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개인의 부는 화폐를 매개로 비로소 사회적 부로 실현된다. 결과적으로 부의 사회적 성격은 화폐라는 특정한 사물에 체현된다.)

 

이러한 부의 사회적 존재, 곧 화폐나 귀금속은 사회적 부를 구성하는 실물적 요소들과 병행하면서도 그 외부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사물·대상·상품으로, 이른바 배타적 지위를 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생산 활동이 원활히 전개되는 국면에서 부의 사회적 성격은 망각되기 마련이다. 부의 또 다른 사회적 형태인 신용은 화폐를 유통 영역에서 축출하고 그 지위를 대체한다. 이때 생산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신뢰는 생산물의 화폐적 형태를 단지 일시적이고 관념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근대 산업 순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신뢰의 동요가 발생하면, 모든 실물적 부를 즉각적으로 현실 화폐인 귀금속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두된다. 이는 성립될 수 없는 비논리적 요구임에도 체제 자체의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하는 필연적 현상이다. 결국 이러한 거대한 전환 수요를 충당해야 할 귀금속의 실체는 잉글랜드 은행 금고에 보관된 수백만 파운드 스털링이라는 지극히 제한된 규모에 불과하다는 한계에 직면한다.

 

금 유출은 그 파급 효과를 매개로 생산이 사회적 성격을 띠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적 통제 아래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과, 부의 사회적 형태인 화폐가 실물적 부와 나란히 독립된 사물로 존재한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현상은 상품 거래와 사적 교환을 기초로 하는 모든 이전의 생산 체제에서도 유효하나, 자본주의 체제에 이르러 비로소 그 불합리한 모순과 역설이 가장 첨예하고 기괴한 형태로 발현된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생산자 자신의 직접적인 사용 가치를 위한 생산이 사실상 폐지되었으며, 그 결과 부는 오직 생산과 유통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사회적 과정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은 신용 제도의 발달에 힘입어 부와 그 운동에 대한 귀금속이라는 물적·관념적 한계를 부단히 극복하려 시도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그 한계에 다시 부닥치기 때문이다.

 

결국 공황 국면에서는 유통되는 모든 어음과 유가 증권, 상품이 일시에 은행 화폐로 전환되어야 하며, 나아가 그 모든 은행 화폐가 다시 금으로 태환될 수 있어야 한다는 성립될 수 없는 요구가 분출된다.

 

. 환율

 

(엥겔스: 화폐 금속의 세계적 이동을 나타내는 지표는 환율이다. 가령 영국이 독일에 지불해야 할 채무가 독일이 영국으로부터 받을 채권보다 많을 경우, 런던 시장에서 파운드 스털링으로 표시된 마르크화의 가격은 상승하며, 반대로 함부르크나 베를린 시장에서 마르크화로 표시된 파운드 스털링의 가격은 하락한다. 이러한 영국의 대독 지불 채무 초과 상태가 독일의 영국 물품 구매 등으로 상쇄되지 않고 지속될 경우, 독일 앞으로 발행된 마르크 표시 어음의 스털링 가격은 영국에서 독일로 어음 대신 금속 (금화 또는 금덩이)을 보내는 것이 유리해지는 지점까지 상승하게 된다. 이것이 세계적 자금 결제와 금속 이동이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귀금속 유출이 대규모로 장기간 지속될 경우, 영국의 은행 준비금은 축소되며 잉글랜드 은행을 필두로 한 영국 화폐 시장은 방어 기제를 가동하게 된다. 이러한 보호 조치의 핵심은 이자율 인상이다. 막대한 금 유출이 발생하면 화폐 시장의 유동성이 고갈되며, 화폐 형태의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압도함에 따라 이자율은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잉글랜드 은행이 공표하는 할인율은 이러한 시장 상황에 대응하여 실효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금속 유출이 통상적인 상거래 외적 요인, 곧 외국 정부에 대한 차관 제공이나 해외 자본 투자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 런던 화폐 시장의 자생적 조건만으로는 이자율의 실질적 인상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때 잉글랜드 은행은 이른바 공개 시장에서 대규모 차입을 단행하여 화폐를 인위적으로 흡수하면서’, 이자율 인상을 뒷받침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수급 불일치 상태를 창출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시장 개입은 금융 여건의 변화에 따라 매년 그 난이도가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

 

이자율 인상이 환율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은 은행법, 1857에 수록된 존 스튜어트 밀의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증언.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 유가 증권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한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외국인들은 저평가된 영국의 철도 주식을 매입하려 하고, 해외 철도 주식을 보유한 영국인들은 이를 현지에서 매각하여 자금을 회수한다. 이러한 자본의 유입은 결과적으로 국내 금의 해외 유출을 완화하는 효과를 낸다 (2176).’

 

또한 각국 간 이자율 차이와 상업적 압박을 평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은행업자와 증권업자들은 향후 가격 상승이 예측되는 증권 매집에 항상 주력한다. 이들이 증권을 집중적으로 구매하는 지점은 다름 아닌 금 유출이 발생하고 있는 국가다 (2182).’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자본 투자는 1847년에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금 유출의 충격을 상당 부분 완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2184).’

 

잉글랜드 은행의 전 총재이자 1838년부터 이사로 재직한 허바드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유럽 각국의 화폐 시장에는 대규모의 증권이 유통되고 있으며, 특정 시장에서 증권 가격이 1-2%만 하락해도 이를 즉시 매입하여 가격이 유지되고 있는 타국 시장으로 이전시키는 거래가 활발히 일어난다 (2545).’

 

영국 상인들에 대한 외국의 채무 규모는 매우 방대한 수준이다 (2565).’

 

질문자: 그렇다면 단순히 이러한 외국에 대한 채권의 회수만으로도, 영국 내에 그토록 거대한 자본이 축적되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허바드: 그렇다. 1847년의 사례가 이를 실증한다. 당시 미국과 러시아가 영국으로부터 차입했던 수백만 파운드 스털링의 채권을 회수하는 과정에 힘입어, 영국의 지불 수지는 궁극적으로 개선될 수 있었다. , 거대한 자본 축적의 배경에는 위기 시 가동되는 이러한 대외 채무의 정리 및 회수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2566).’

 

(엥겔스: 당시 영국은 해당 국가들로부터 수입한 곡물 대금으로 인해 역으로 수백만 파운드 스털링의 부채를 지고 있었으나, 영국 채무자들이 연쇄 파산함에 따라 그 상당액을 실제로지불하지 않았다.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제30장 말미에 인용된 은행법, 1857을 참조하라.)

 

‘1847년 당시 영국의 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환율은 매우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잉글랜드 은행이 법적 발권 한도를 초과하여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금속 준비 없이 발행되는 정액 발행 한도인 1,400만 파운드를 초과하여) 허용한 정부 서한이 공개되었을 때, 그 전제 조건은 할인율을 8%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금리 상황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런던으로 금을 수송한 뒤, (금 구매를 위해 발행된) 3개월 만기 어음의 기간 동안 해당 자금을 8%의 이율로 대부하는 것이 오히려 수익성 높은 거래로 평가되었다 (2572).’

 

모든 금 거래에 있어서는 다각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 단순히 환율의 동향뿐만 아니라 금 거래를 매개로 발행된 어음의 만기 시점까지 적용되는 화폐 대부 이자율을 반드시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573).’

 

아시아에 대한 환율

 

상기 논점들이 지닌 중요성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도출된다.

 

첫째, ()아시아 환율이 영국에 불리하게 형성될 경우, 영국이 (아시아로부터의 수입 결제를 자국 상인을 경유하여 처리하는) 타국들로부터 그 손실을 어떠한 방식으로 보전하려 하는지 규명해주기 때문이다.

 

둘째, 윌슨이 귀금속 수출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과 자본 일반의 수출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동일시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수출은 단순한 구매나 지불 수단의 이전만이 아니라,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 투하로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명한 사실은 인도의 철도 건설 투자를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때, 그 수단이 귀금속이든 철도 자재이든 이는 단지 형태상의 차이일 뿐이며 어느 경우에나 동일한 가치의 자본이 이전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이전은 일반적인 상업 거래와 달리, 수출국인 영국이 당장의 반대 급부 대신 해당 투자로부터 발생할 장래의 연간 순익만을 기대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자본 수출이 귀금속 형태로 이뤄진다면, 귀금속은 그 자체로 직접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이자 화폐 제도 전체의 토대이기에 수출국의 화폐 시장과 이자율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런던 화폐 시장에 공급된 인도 앞 어음이 특별 송금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귀금속을 현물로 수송해야 할 경우, 이 귀금속의 수출은 환율에도 직접적인 파급력을 갖는다.

 

이때 인도 앞 어음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면서 영국의 환율은 일시적으로 불리해지는데, 이는 영국이 인도에 실제 채무를 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대규모 자금을 인도 측으로 송부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 기인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러한 귀금속 수출은 인도의 유럽 상품 소비 능력을 간접적으로 제고하면서, 결과적으로 영국 상품에 대한 인도의 수요를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자본이 철도 자재와 같은 현물 형태로 수출될 경우, 인도는 이에 대한 (즉각적인) 지불 의무가 없으므로, 환율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과정은 화폐 시장에도 직접적인 파급력을 갖지 않는다. 윌슨은 이러한 특별 투자가 화폐 융통에 대한 추가 수요를 유발하여 이자율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았으나, 이를 필연적 현상으로 단정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철도 자재의 수출은 단지 해당 분야에서 영국 내 생산 활동이 확장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생산 규모의 증대가 반드시 이자율 인상을 수반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신용 거래를 포함한 화폐 융통액은 증가하더라도 이자율은 불변일 수 있으며, 이는 1840년대 영국의 철도 건설 열풍 당시 이자율이 상승하지 않았던 사례로 증명된다. 현실적 자본, 곧 상품이 문제되는 한 그것이 해외 수출용이든 국내 내수용이든 화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다.

 

다만 영국의 대외 자본 투자가 지불 및 (화폐) 환류를 전제로 하는 통상적인 상업적 수출을 제한하거나, 해당 투자가 이미 신용의 과도한 팽창 및 투기적 책동의 개시를 알리는 전조로 작용할 때에 한하여 유의미한 차별성이 발생할 뿐이다.

 

윌슨의 질의에 대한 뉴마치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질의 (윌슨): 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여 동양으로 끊임없이 거액의 귀금속이 송부되었음에도, 인도와의 환율이 영국에 유리하게 유지되었다는 주장의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 달라.

 

답변 (뉴마치): 그 근거는 영국의 대()인도 상품 수출액과 인도 하우스 어음의 규모를 합산한 총 수출 가치에서 명확히 증명된다. 우선 1851년의 통계를 살펴보면, 인도에 대한 영국 상품 수출의 현실 가치는 742만 파운드였으며, 여기에 런던의 인도 하우스 (런던 동인도 회사 본사)가 자체 경비 지출을 위해 발행한 어음 금액인 (곧 동인도 회사가 본사 경비를 충당하고자 인도 정부로부터 인출할 금액)320만 파운드를 추가해야 한다. 따라서 그해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실질적인 총 수출액은 1,062만 파운드에 달했다.

 

이러한 수출 증대 추세는 1855년에 더욱 뚜렷해졌다. 당시 영국 상품의 인도 수출 현실 가치는 1,035만 파운드로 늘어났고, 인도 하우스의 어음 금액 또한 370만 파운드로 증가함에 따라 영국의 총 수출액은 1,405만 파운드를 기록하였다.

 

반면, 1851년의 수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1854년과 1855년의 통계는 존재한다. 1855년 인도가 수입한 영국 상품의 총 현실 가치는 1,267만 파운드에 머물렀다. 이를 영국의 총 수출액인 1,405만 파운드와 비교해 보면, 영국은 인도와의 직접 무역에서만 138만 파운드의 흑자를 달성한 셈이 된다. 결과적으로 인도로 막대한 양의 귀금속이 유입되었음에도, 무역 수지와 금융 채권 (어음)의 우위로 인해 환율은 여전히 영국에 유리한 국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1786).’

 

윌슨은 이러한 진술에 대해 환율이 간접 무역을 매개로 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가령 인도가 오스트레일리아나 북아메리카로 수출하는 재화의 대금 결제가 런던 앞 어음을 거쳐 이루어진다면, 이는 인도가 영국에 직접 상품을 수출하는 경우와 동일한 환율 변동 효과를 야기한다. 나아가 인도와 중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고찰할 경우 영국의 무역 수지는 적자로 돌아선다. 중국은 인도에 막대한 아편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채무국이며, 영국은 중국에 각종 상품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해당 자금이 이러한 우회로를 거쳐 최종적으로 인도에 집결되기 때문이다 (1787, 1788).

 

1791호에서 윌슨은 자본의 수출이 철도 자재와 기관차의 형태로 이루어지든 금속 화폐의 형태로 이루어지든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지 않은가에 대해 질의한다. 이에 대한 뉴마치의 답변은 매우 타당하다. , 최근 인도의 철도 건설을 위해 송부된 1,200만 파운드는 (인도가 영국에 정기적으로 지불해야 할) 연금 증권을 구매한 것과 동일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귀금속 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의 측면에서 고찰할 때, 해당 1,200만 파운드의 투자는 오직 현실적인 화폐 결제를 목적으로 귀금속이 직접 수출되어야 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웨겔린의 질의) ‘이 철도 자재에 대한 즉각적인 대금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투자액 중 상품 형태로 송부된 부분은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본다. 양국 간 환율은 일방에서 제시되는 채무액 (또는 어음액)과 상대국에서 제시되는 그것 사이의 상호 비교를 토대로 결정되며, 이것이 환율의 논리적 핵심이다. 1,200만 파운드의 자본 수출을 가정할 때, 해당 자금은 먼저 본국에서 모집된다. 1,200만 파운드 전액이 귀금속 형태로 캘커타, 봄베이 (현 뭄바이), 마드라스 (현 첸나이)에 투하되어야 한다면, 이러한 급격한 수요는 은 가격과 환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동인도 회사가 어음 발행액을 익일부터 300만 파운드에서 1,200만 파운드로 증액하겠다고 통보하는 상황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1,200만 파운드의 절반은 영국 내에서 철도 자재, 목재 등 제반 재료를 구입하는 데 지출된다. 이는 인도로 송부할 특정 상품의 구매를 위해 영국 자본을 국내에서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1797).’

 

(웨겔린) ‘다만 철도 건설에 필요한 철이나 목재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외국산 원자재의 대량 소비가 수반된다면, 그로 인해 간접적으로 환율이 영향을 받지 않겠는가. 그 점은 분명히 타당하다 (1798).’

 

이후 윌슨은 철의 생산이 주로 노동력에 의존하며, 해당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의 상당 부분이 수입 상품 소비로 이어진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1799).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수입 원자재를 투입하여 생산한 상품을, 그에 상응하는 현물 대가 없이 수출하게 된다면 결국 환율은 자국에 불리하게 형성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원리는 (1845) 영국의 대규모 철도 투자 시기에 명확히 드러났다. 당시 3-5년에 걸쳐 철도 건설에 투하된 3,000만 파운드의 자본은 거의 전액 임금으로 지출되었다. 3년 동안 철도와 기관차, 차량 및 역사 건설에 투입된 노동 인구는 전체 공업 지대의 노동자 수를 상회할 정도였다. 이들은 임금을 차, 설탕, 주류 등 외국산 수입 상품 소비에 지출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지출이 발생했음에도, 실제 환율은 거의 변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귀금속의 유출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유입되는 양상을 보였다 (1801).’

 

윌슨은 영국과 인도 사이의 무역 수지가 평형 상태를 이루고 환율이 화폐의 금속 평가 수준에 있을 때, 철도 자재와 기관차의 특별 수출이 단행된다면 이는 인도와의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뉴마치는 철도 자재가 자본 투자의 형태로 수출되고 인도가 이에 대한 (즉각적인) 결제 의무를 지지 않는 한, 해당 견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한 나라가 모든 무역 상대국에 대하여 장기간 불리한 환율을 유지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특정 국가와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리한 환율은 반드시 타국과의 거래에서 유리한 환율을 형성하면서 상쇄되기 마련이다 (1802).’

 

이에 대해 윌슨은 다음과 같은 통상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자본이 어떠한 형태로 수출되든 자본 이전이라는 실체는 동일한 것이 아닌가. 채무 관계가 형성되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자명하다 (1803).’

 

그렇다면 귀금속을 수출하든 현물 원자재를 수출하든, 인도의 철도 건설이 영국의 화폐 시장에 미치는 영향 또한 동일해야 하지 않는가. 이전되는 금액 전액이 귀금속으로 수출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투하된 자본의 가치만큼 국내 자본의 희소성을 높여 그 가치를 증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1804).’

 

철도 자재의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다면, 이는 최소한 해당 재화에 집약된 자본가치가 증대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그러나 본 논의의 핵심은 자본 일반이 아닌 화폐 자본의 가치, 곧 이자율에 있다. 윌슨은 화폐 자본과 자본 일반을 동일시하려 하나, 현상의 실체는 이와 다르다.

 

우선 인도의 철도 건설을 위해 영국 내에서 1,200만 파운드를 공개 모집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환율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자금의 구체적 용도 또한 화폐 시장의 관점에서는 본질적인 고려 대상이 아니다. 화폐 시장이 안정적인 상태라면 1844년과 1845년의 영국 철도주 공모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번 공모 역시 화폐 시장에 유의미한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다.

 

설령 화폐 시장이 이미 어느 정도 수급 불일치 상태에 놓여 있어 이자율이 인상되더라도, 이는 윌슨의 이론적 논리에 따르더라도 오히려 환율을 영국에 유리하게 형성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 이자율 상승은 귀금속의 해외 유출 경향을 제어하며, 설령 인도에 대한 수출이 지속되더라도 최소한 타국에 대한 귀금속 유출은 저지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윌슨은 논리적 일관성 없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비약하고 있다. 1802호에서는 환율의 변동을 논하다가 제1804호에 이르러서는 자본의 가치를 거론하는데, 이 둘은 엄연히 별개의 영역이다. 이자율과 환율은 상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계이나, 어느 한쪽이 변동하더라도 다른 한쪽은 불변일 수 있는 독립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윌슨은 해외로 수출되는 자본의 형태, 곧 그것이 화폐 형태를 취하느냐 아니냐가 미치는 결정적 차이를 부정한다. 이는 자본의 형태적 특수성을 중시하는 자칭 계몽된 경제학의 모든 경향 전반에 배치되는 태도다.

 

뉴마치 역시 윌슨의 질의에 일면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며, 윌슨이 타당한 근거 없이 환율에서 이자율로 논의를 급격히 비약한 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제1804호에 대한 뉴마치의 답변은 논리적 불확실성과 동요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1,200만 파운드의 자금을 모집할 때, 이를 귀금속으로 송부하든 원자재로 송부하든 일반 이자율의 관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기점으로 논의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또 이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도대체 이런 궤변적인 논리가 어디에 있는가!)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600만 파운드가 즉시 환류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 환류 속도가 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600만 파운드가 국내에서 지출되느냐 또는 전액 국외로 수출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의 (도대체 이런 임의적인 규정이 어디에 있는가!) 차이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뉴마치는 중요하지 않다는 전제 뒤에 곧바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형용 모순적 결론을 내놓고 있다. 또한 그 차이의 정도를 어느 정도약간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규정하면서 논리적 완결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600만 파운드가 즉시 환류한다는 주장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이 자금이 영국 내에서 지출되어 철도 자재나 기관차 등의 현물로 변환되었다면, 해당 가치는 인도로 송부되어 고정 자본화되며, 감가상각을 거쳐서야 비로소 극히 완만하게 환류될 뿐이다. 반면 600만 파운드가 귀금속 형태로 인도에 송부되었다면, 그 귀금속은 무역 결제 경로를 매개로 오히려 더 신속하게 영국으로 환류할 개연성이 크다.

 

영국 내에서 지출된 600만 파운드가 임금으로 지급되었다면 이는 소비로 소멸되나, 투하된 화폐 자체는 국내 유통 영역에 머물며 준비금을 형성하거나 철도 자재 생산자의 이윤 및 불변 자본 보충분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뉴마치가 환류라는 모호한 표현을 동원한 것은 화폐가 국내에 잔류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함에 다름 아니다. 화폐가 대부 가용 자본으로 존재하는 한, (유통 영역에 더 많은 금속 화폐가 흡수되었을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차이란 단지 그 화폐가 B가 아닌 A의 계좌에서 지출된다는 사실뿐이다.

 

(자본이 귀금속이 아닌 상품 형태로 타국에 이전되는) 투자가 환율 (단순히 피투자국과의 환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경로는, 수출용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타국으로부터 원자재를 추가로 수입해야 하는 경우뿐이다. 비록 이 생산 활동이 수입액을 즉각 상쇄하기 위한 목적은 아닐지라도, 신용에 기반한 수출이나 자본 투자는 통상의 상업적 거래와 마찬가지로 수입 수요를 자극한다. 다만 이러한 추가 수입은 결과적으로 영국 상품에 대한 해외 시장 (식민지나 미국 등)의 연쇄적인 수요 증대를 유발하는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뉴마치는 앞서 제1786호에서 영국의 대()인도 수출액이 동인도 회사의 어음 발행으로 인해 인도로부터의 수입액을 상회한다고 진술하였다. 이에 대해 우드는 해당 현상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심문한다. 영국의 수출액이 인도로부터의 수입액을 초과한다는 사실은, 실상 영국이 등가물을 지불하지 않은 채 인도로부터 재화를 수입하면서 발생한 결과다. , 동인도 회사 (현 인도 정부)가 발행하는 어음은 본질적으로 인도로부터 수탈한 공물에 다름 아니다.

 

일례로 1855년 영국의 대인도 수입액은 1,267만 파운드였으나 상품 수출액은 1,035만 파운드에 불과했다. 수치상으로는 인도가 영국에 대해 225만 파운드 (2 1/4백만 파운드)의 무역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나, 이는 동인도 회사의 행적적·정치적 결제 수단인 어음을 매개로 상쇄되어 실질적인 자본 동태상으로는 영국의 우위로 전환된 것이다.

 

무역 관계만을 고려한다면, 발생한 225만 파운드의 차액은 어떤 형태로든 인도로 송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때 인도 하우스 (동인도 회사 본사)는 인도의 각 행정 구역을 지급인으로 하는 325만 파운드 규모의 어음 발행을 공고한다.’

 

(엥겔스: 이 금액은 동인도 회사의 런던 내 운영 경비 및 주주 배당금 충당을 목적으로 징수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어음 결제를 매개로 영국은 무역 수지에서 발생한 225만 파운드의 영국 적자를 청산함은 물론, 도리어 100만 파운드의 흑자를 달성하게 된다.’ (1917).

 

(엥겔스: 우드) ‘그렇다면 인도 하우스의 어음 발행은 인도로 향하는 실물 상품의 수출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만큼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가 (1922).’

 

(엥겔스: 엄밀히 말하자면, 인도로부터의 수입 대금을 실물 수출로 결제해야 할 필요성을 해당 금액만큼 소멸시키는 것 아니냐고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 뉴마치는 영국이 인도에 선의의 정부’ (총독부)를 제공한 대가로 해당 370만 파운드를 수취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1925).

 

인도 담당 장관인 우드는 영국이 수출했다는 그 선의의 정부의 실체를 누구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다음과 같이 정당하면서도 풍자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1926).

 

결국 동인도 회사의 어음 형식을 빌려 실현된다는 수출의 실체는 생산물의 수출이 아니라, 다름 아닌 선의의 정부라는 무형 자산의 수출인 셈이다.’

 

영국은 막대한 규모의 선의의 정부뿐만 아니라 방대한 대외 자본 투자를 병행하여 수출하면서 일반적인 상업 거래와는 무관한 특수한 수입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수입은 본질적으로 수출된 선의의 정부에 대한 공납이거나 식민지 등에 투하한 자본의 수익이기에 영국은 이에 상응하는 등가물을 지불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영국이 별도의 수출 없이 이 공납을 소비하더라도 환율은 변동하지 않는다.

 

또한 명백한 점은 영국이 수취한 공물을 국내에 재투자하지 않고 해외에 생산적 또는 비생산적으로 재투자하는 경우에도 환율은 여전히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1853년부터 1856년까지의 크림 전쟁 기간 중 해외로 군수품을 충당하는 데 해당 자금을 사용하는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나아가 해외 수입품이 영국의 수입 항목에 포함되는 한, 그것이 (등가 지불이 필요 없는) 공물이든 공물과의 교환을 매개로 하여 획득한 것이든 또는 통상 무역 거래의 결과물이든 영국은 이를 소비하거나 다시 자본으로 전환하여 투자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환율은 불변의 상태를 유지하나 윌슨은 이러한 역학 관계를 간과하고 있다. 수입의 구성 요소가 국내 생산물이든 외국 생산물이든 (후자의 경우 단지 양자 간의 교환 과정이 추가될 뿐이며), 그 수입의 소비가 (생산적 또는 비생산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생산 규모 자체에는 영향을 미칠지언정 환율에는 어떠한 파급 효과도 미치지 않는다. 후술할 발췌 내용 역시 이러한 경제적 실상 하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우드는 크림반도로의 군수품 송부가 터키와의 환율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질의한다. 이에 대해 뉴마치는 군수품의 단순한 이전이 환율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직 귀금속의 실질적 이전만이 환율 변동을 야기할 것이다 (1934).’라고 답변한다. (이는 화폐 형태의 자본과 기타 현물 자본이 지닌 차별적 성격을 구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윌슨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상품을 대량 수출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수입을 행하지 않는다면,’

 

(엥겔스: 윌슨은 영국이 막대한 수입을 지속하면서도 선의의 정부나 이전의 자본 투자를 제외하면) 그에 대응하는 실물 수출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이러한 수입은 일반적인 무역 거래의 범주를 벗어난다. 가령 (인도로부터 유입된 수입품은) 미국산 재화와 교환될 수 있으며, 설령 이 미국산 재화가 대응하는 수입 없이 (타국으로) 수출된다 하더라도,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수입품의 가치가 등가의 해외 유출 없이 소비될 수 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 수입품은 수출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기에 무역 수지에 산입되지 않고도 소비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인해 발생한 대외 채무를 변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엥겔스: 그러나 해당 수입에 대해 이미 이전에 (제공한 대외 채권 등으로) 이미 결제를 마친 상태라면, 수입으로 인한 신규 채무는 발생하지 않으며 이 문제는 대외 수지와 무관해진다. (결국 쟁점은 소비된 생산물의 국적과 관계없이) 그 지출이 생산적인가 또는 비생산적인가 하는 점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대응하는 수입 없이 (군수품을 크림반도로 수출하면서) (미국에 대한) 대외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이 거래 방식은 결국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는 모든 국가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일반적 원리다 (1935).’

 

윌슨의 논거는 대응하는 수입을 동반하지 않는 수출이 필연적으로 대응하는 수출을 동반하지 않는 수입이라는 점에 귀착한다. , 외국 상품이 수출 상품의 생산 공정에 투입된다는 이유로 모든 수출은 대외 채무에 기반한 수입을 전제하거나 새로운 채무를 야기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다음 두 가지 실증적 상황으로 인해 부정된다.

 

첫째, 영국은 인도로부터 유입되는 일부 수입품을 무상으로 획득하며 이에 대한 등가물을 지불하지 않는다. 영국은 이 무상 수입품을 미국산 재화와 교환한 뒤, 해당 재화를 대응하는 수입 없이 타국에 수출할 수 있다. 가치적 측면에서 볼 때, 영국은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은 자산을 수출한 셈이다.

 

둘째, 영국은 (이전의 대인도 투자 수익 등을 활용하여) 추가 자본을 형성하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품의 대금을 이미 선결제했을 수 있다. 이 수입품이 (군수품과 같이) 비생산적으로 소비되더라도, 이는 미국에 대한 신규 부채를 형성하지 않으며 양국 간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뉴마치는 제1934호와 제1935호에 걸쳐 자기모순을 드러내며, 우드는 제1938호에서 이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가를 받지 않고 보내는 수출품 (군수품)의 제조에 투입된 원자재가 수취국으로부터 공급된 것이 아니라면, 해당 국가와의 환율이 변동할 이유가 무엇인가. 터키와의 무역 수지가 평형 상태일 때, 크림반도로의 군수품 수출이 어떠한 기제로 영국과 터키 사이의 환율이 개입하겠는가.’

 

이 지점에서 뉴마치는 논리적 일관성을 상실한다. 그는 제1934호에서 이미 스스로 제시했던 정당한 답변을 망각한 채, ‘현실적 쟁점을 벗어나 형이상학적 논의로 빠져들고 있다.’는 군색한 변명으로 일관한다.

 

 

 (엥겔스: 윌슨은 (귀금속이든 상품이든 형태와 관계없이) 자본의 이전은 반드시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자신의 주장을 변칙적으로 제시한다. 윌슨은 환율이 국가 간 이자율의 (특히 거래 당사국 간의 이자율 대비) 상대적 격차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물론 알고 있다. 따라서 자본 일반의 과잉, 다시 말해 (귀금속을 포함하는 제반 상품의 과잉이) 이자율 결정에 개입한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자본의 상당 부분을 타국으로 이전하는 행위는 양국의 이자율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변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양국 간 환율의 변동을 초래한다는 논리다.)

 

윌슨은 1847이코노미스트에서 자본 과잉과 이자율 및 상품 가격 간의 상관관계를 네 가지 명제로 체계화한다 (1847: 574).

 

귀금속을 포함한 각종 상품의 대규모 재고로 발현되는 자본 과잉은 필연적으로 상품 일반의 가격 하락뿐만 아니라 자본의 사용의 대가인 이자율의 하락을 유도한다’ (1명제).

 

특정 국가가 향후 2년 동안의 수요를 충족할 만큼 충분한 상품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면, 해당 상품에 대한 일정 기간의 처분권 획득 비용인 이자율은 2개월 분량의 재고만 있는 경우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에서 형성된다’ (2명제).

 

모든 형태의 화폐 대부는 본질적으로 상품 처분권을 이전하는 행위이기에, 상품의 풍요는 낮은 이자율을, 상품의 희소는 높은 이자율을 수반한다’ (3명제).

 

상품 공급이 직접 소비량을 초과하여 풍부해지면 판매자 간의 경쟁은 심화되며, 상품량이 직접적 소비에 필요한 수준을 초과함에 따라 그 상당 부분이 장래의 사용을 위해 재고 축적이 강제된다. 이러한 공급 과잉 국면에서 상품 소유자는 몇 주 이내에 재고의 신속한 회전이 지체됨에 따라, 결국 이전보다 불리한 조건의 외상 또는 신용 판매를 수용하게 된다’ (4명제).

 

윌슨의 제1명제와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은 귀금속의 대규모 유입이 생산 축소와 병행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공황 직후 국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후 단계에서는 주로 귀금속 생산국으로부터의 유입이 주를 이룬다. 이 시기 일반 상품의 수입은 대체로 수출로 인해 상쇄되며,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22장 참조) 이자율은 저점을 유지하다가 완만하게 상승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낮은 이자율 현상이 각종 상품의 대규모 재고라는 변수를 개입시키지 않고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재고가 어떻게 이자율을 저하시키는가. 예컨대 면화 가격의 하락이 방적업자의 이윤을 증대시킬 수는 있으나, 이것이 곧바로 이자율 저하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자율은 낮은가.

 

낮은 이자율은 차입 자본에 기반한 기대 이윤이 높아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 상황상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가 이윤 규모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시 말해 대부 자본의 운동 법칙은 산업 자본의 운동과 서로 다른 운동 법칙을 따름에도, 이코노미스트는 양자의 운동이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2명제는 상품 시장의 공급 과잉을 전제한다. (우리가 ‘2년 치 재고라는 윌슨의 불합리한 가정을 논의될 수 있는 수준으로 축소해 본다면) 이 경우 상품 가격은 하락할 것이며, 면화 한 상자를 구매할 때 지불하는 비용 역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상품 가격이 낮아졌다고 해서, 그 구매 자금을 빌리는 비용 (차입 비용)까지 낮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화폐 시장의 수급 상황에 달려 있다.

 

화폐를 더 저렴하게 차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상업 신용의 활성화로 인해 은행 신용에 대한 의존도가 평소보다 낮아졌기 때문이지, 단순히 상품 재고의 과다나 귀금속의 유입 여부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 시장을 범람하는 저렴한 생산 수단과 생활 수단은 산업 자본가의 이윤을 증대시킨다. 산업 자본의 풍부함과 화폐 융통 수요를 동일시한다면, 낮은 가격이나 높은 이윤이 어떻게 이자율을 저하시키는지 설명할 수 없다. 상인이나 산업가들이 서로 신용을 원활하게 공여할 수 있는 상황, 곧 상업 신용이 풍부한 상태에서는 은행 신용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다. 이처럼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 자체가 감소하기 때문에 이자율이 낮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낮은 이자율은 귀금속의 유입과는 전혀 무관하다. 비록 이 이자율 저하와 귀금속 유입이 병행할 수 있고, 수입품 가격을 낮추는 요인들이 귀금속의 과잉 유입을 유발할 수도 있으나, 현실적으로 수입품 시장이 공급 과잉이라면 이는 곧 수입 수요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낮은 가격 상태에서의 수요 감소는 국내 산업 생산의 축소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생산 축소가 낮은 가격에 따른 수입 과잉이라는 조건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온갖 불합리한 주장이 속출하는 이유는 가격 하락이 곧 이자율 하락이라는 것을 억지로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두 현상은 서로 나란히 발생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은 산업 자본의 운동과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의 운동이 동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가진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3명제에 관련하여, 상품 과잉 상태에서 왜 화폐 이자가 반드시 낮아져야 하는지는 앞서 전개된 장황한 설명에서도 전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가령 상품 가격이 하락할 경우, 자본가는 종전과 동일한 양의 상품량을 구매하는 데 2,000이 아닌 1,000만을 지출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는 여전히 2,000을 차입·투자하여 이전보다 두 배의 상품량을 구입하면서 사업 규모를 확장할 수 있다. 이 경우 자본가의 지출 총액은 이전과 동일한 2,000이므로, 화폐 시장에서의 수요 또한 변함이 없다 (비록 상품 시장에서의 수요는 상품 가격 하락에 따라 실질적으로 증대했을지라도 말이다).

 

반대로, 상품 시장에서 수요가 감소한다는 것, 곧 상품 가격이 하락함에도 생산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코노미스트가 내세운 모든 법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대부 가용 화폐 자본에 대한 수요는 이윤이 증가하더라도 오히려 감소하게 되는데, 본래 이윤의 증가는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저렴한 상품 가격이 형성되는 원인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저렴한 상품 가격이 형성되는 세 가지 경로를 고찰하면 그 논리적 허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첫째, 수요의 부족에 따른 가격 하락이다. 이때의 낮은 이자율은 상품 가격 자체 때문이 아니라 생산 마비의 결과이며, 낮은 상품 가격은 단지 이러한 경제적 정체로 나타날 뿐이다.

 

둘째, 공급 과잉에 따른 시장 범람이다. 이는 공황을 야기하는 국면으로, 오히려 높은 이자율과 병행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셋째, 상품 가치가 저하되어 동일한 수요가 낮은 가격에 충족되는 경우이다. 이 상황에서 이자율은 왜 저하해야 하는가. 이윤이 증대함에도 이자율이 저하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단지 동일한 생산 자본이나 상품 자본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화폐 자본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라면, 이는 결국 이윤과 이자가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코노미스트의 일반 명제는 타당성을 결여한다. 상품의 낮은 화폐 가격과 낮은 이자율이 반드시 병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양자가 필연적으로 결합한다면, 생산물의 화폐 가격이 가장 낮은 가난한 나라에서 이자율이 가장 낮아야 하며, 농산물의 화폐 가격이 가장 높은 부유한 나라에서 이자율이 가장 높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이코노미스트역시 시인하는 바와 같이) 화폐 가치의 하락은 이자율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화폐 100105의 가치를 낳을 때, 원금 100의 가치가 하락하면 수익 5의 가치 또한 동일하게 하락하므로, 그 비율인 이자율은 원금 가치의 증감과 무관하게 유지된다.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일정한 상품량은 일정한 금액의 화폐와 등가를 이룬다. 상품 가치가 증대하면 더 큰 화폐액과 대응되고, 가치가 감소하면 그 반대이다. 따라서 상품 가치의 변동은 이를 매개하는 화폐액의 규모를 변화시킬 뿐, 이자율이라는 비율 자체를 변경시키지는 않는다. 가령 상품 가치가 2,000일 때의 5%100이고, 1,000일 때의 5%50으로 산출될 뿐이다. 이 논의에서 타당한 지점은 오직 하나, 동일한 상품량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화폐가 2,000일 때가 1,000일 때보다 더 큰 화폐 융통이 요구된다는 사실뿐이다. 결국 이 대목이 드러내는 것은 윌슨의 의도와 달리, 상품 가치 하락 (이윤 증대 상황)임에도 이자율이 낮게 유지되는 이윤과 이자 사이의 반비례 관계일 뿐이다.

 

이는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비용 하락이 이윤을 증대시키고 이자는 감소시키는 이윤과 이자 사이의 반비례 관계를 시사할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이한 양상이 빈번히 발생한다. 가령 면화 가격이 낮은 이유는 면사와 직물에 대한 수요 부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면공업의 높은 이윤 기대가 원료 수요를 자극하여 가격이 상승할 수도 있다. , 면화 가격이 낮게 유지될 때 오히려 산업가의 이윤은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허바드의 통계 (34: 707-708)가 증명하듯, 이자율과 상품 가격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동한다. 이자율의 운동은 상품 가격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금속 준비의 상태 및 환율의 운동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코노미스트상품의 풍부가 필연적으로 낮은 이자율을 수반한다.’고 주장하나, 실제 공황기의 양상은 이와 정반대로 나타난다. 공황기에는 상품이 과잉 상태임에도 화폐로의 전환이 차단됨에 따라 이자율은 오히려 고공 행진을 이어간다. 반면, 경제 순환의 다른 국면에서는 상품 수요가 급증하여 환류가 원활해지고 상품 가격이 상승함에도, 자금 회수의 용이성으로 인해 이자율은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또한 상품 부족이 높은 이자율을 낳는다.’는 주장 역시 공황 이후의 침체기 상황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 시기에는 상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대부 자본에 대한 수요가 위축되어 이자율은 도리어 낮은 상태에 머물게 된다.

 

4명제와 관련하여, 시장이 범람할 때 상품 소유자가 재고의 신속한 처분이 불투명할 때 판매 가격을 인하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어떠한 기제로 이자율 하락을 견인하는가는 논리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다.

 

수입 상품의 시장 범람 시, 상품 소유자가 상품의 즉각적인 시장 투입을 유예하고 투매를 방지하기 위해 대부 자본을 추가로 확보하려 한다면 오히려 이자율이 상승할 수 있다. 반면, 상업 신용의 가용성이 높아 은행 신용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이라면 이자율은 하락할 수도 있다. , 이자율의 향방은 단순히 상품의 수급이나 가격 변동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신용 체계 내의 역학 관계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1847년 이자율 상승과 화폐 시장의 압력이 환율에 미친 즉각적인 영향에 주목한다. 그러나 환율의 상승 전환에도 금 유출은 4월 말까지 지속되었으며, 5월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유입으로 반전되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184711일 기준 잉글랜드 은행의 금속 준비금은 1,5066,691파운드, 이자율은 3.5%였으며, 3개월짜리 환율은 파리 앞 25.75, 함부르크 앞 13.10, 암스테르담 앞 12.325를 기록하였다. 이후 35, 금속 준비금이 1,1595,535파운드로 급감함에 따라 이자율은 4%로 인상되었고, 환율 또한 파리 앞 25.665, 함부르크 앞 13.0925, 암스테르담 앞 12.25로 하락하였다. 그럼에도 금 유출은 멈추지 않았으며, 상세한 변동 추이는 다음 표와 같다

   

날짜 (1847)

금속 준비금 (파운드)

화폐 시장 상황 및 할인율

파리 환율 (3개월)

함부르크 환율 (3개월)

암스테르담 환율 (3개월)

320

11,231,630

은행 할인율 4%

25.675

13.0975

12.25

403

10,246,410

은행 할인율 5%

25.80

13.10

12.35

410

9,867,053

심한 화폐 부족

25.90

13.103

12.45

417

9,329,841

은행 할인율 5.5%

26.025

13.1075

12.55

424

9,213,890

화폐 핍박 국면

26.05

13.12

12.6

501

9,337,716

화폐 핍박 증대

26.15

13.1275

12.65

508

9,588,759

화폐 핍박 최대치

26.275

13.155

12.775

 

 

18473월부터 5월 초까지의 통계적 수치는 잉글랜드 은행의 금속 준비금 감소와 그에 따른 화폐 시장의 압박, 그리고 환율 변동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3201,1231,630파운드였던 금속 준비금은 4249213,890파운드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잉글랜드 은행의 할인율은 4%에서 5.5%로 인상되었으며, 화폐 시장은 단순한 부족 상태를 넘어 극심한 핍박 국면에 진입했다. 특히 58일에는 준비금이 9588,759파운드로 소폭 반등하며 유입세로 전환되었음에도, 화폐 시장에 가해진 화폐 핍박은 정점에 달했다.

 

이 기간 환율은 금속 준비금의 추이와 밀접하게 연동되었다. 파리 앞 환율은 32025.675에서 5826.275, 함부르크 앞 13.0975에서 13.155, 암스테르담 앞 12.25에서 12.775로 각각 상승하며 최고 수준을 경신했다. 1847년 영국의 귀금속 총수출액은 8602,597파운드에 달했으며, 구체적인 행선지별 내역은 다음과 같다.

 

행선지

수출액 (파운드)

미국

3,226,411

프랑스

2,479,892

독일 (한자 도시)

958,781

네덜란드

247,743

합계

6,912,827

 

 

1847년 영국의 귀금속 주요 수출 행선지별 내역은 최대 수출국인 미국이 3226,411파운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프랑스가 2479,892파운드로 그 뒤를 이었다. 이어 독일의 한자 도시들은 958,781파운드, 네덜란드로 247,743파운드가 각각 유출되었다.

 

3월 말 환율의 방향이 전환되었음에도 금 유출은 이후 한 달간 지속되었으며, 그 주요 행선지는 미국으로 추정된다. 이코노미스트(1847: 954)는 이와 관련하여 이자율 인상과 그에 따른 화폐 핍박이 불리한 환율을 시정하고 귀금속을 재유입시키는 데 미친 신속한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자율 인상과 그에 따른 화폐 핍박이 불리한 환율을 시정하고 귀금속의 환류를 다시 영국으로 되돌리는 데 얼마나 신속하고 적절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무역 수지의 변동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발생했다. 우선 이자율 인상은 국내외 유가 증권의 시세를 하락시키면서 외국인 자본을 매개로 한 대규모 증권 매수를 유도했고, 이는 곧 영국 발행 어음의 공급 증대로 이어졌다. 반면, 고금리와 화폐 입수의 곤란함으로 인해 어음 공급은 늘어난 데 반해 그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감퇴하였다. 동일한 원인으로 수입 주문은 취소되었으며, 영국의 해외 투자 자본은 현금화되어 국내 투자를 위해 회수되었다.

 

실례로 510일자 리오 데 자네이로 가격표영국 자본이 투입된 브라질 국채가 대량 매각되고 그 대금이 영국으로 송금되면서 브라질 외환 시장에 압박이 가해졌으며, 결과적으로 대영 환율이 더욱 하락했다.’고 보고한다. , 영국의 저금리 기조 속에서 외국 유가 증권에 투입되었던 영국 자본이 영국 이자율 상승에 반응하여 본국으로 급격히 회귀한 것이다.’

 

영국의 무역수지

 

인도 한 곳만으로도 영국은 선의의 정부에 대한 공물과 영국 자본에 대한 이자 및 배당금 명목으로 매년 5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 수치에는 관리들의 급여 저축액이나 상인들의 이윤 중 일부로 영국 내 투자를 위해 송금되는 자금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러한 성격의 송금은 모든 영국 식민지에 상시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 서인도 제도, 캐나다의 금융 기관 대부분이 영국 자본으로 설립되었으며, 그에 따른 배당금은 고스란히 본국으로 귀속된다. 나아가 영국은 외국 정부, 곧 유럽과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 정부가 발행한 채권 및 채무 증서를 대량으로 보유하여 막대한 이자 수익을 거둘 뿐만 아니라, 외국의 철도·운하·광산 등 주요 기간 시설에 직접 출자하면서 지속적인 배당금을 수취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모든 항목의 송금액은 영국의 총 수출액을 초과하는 (잉여) 생산물의 형태로 본국에 유입되는 반면, 영국 유가 증권을 보유한 외국 소유자나 해외 거주 영국인의 소비를 위해 국외로 유출되는 금액은 지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무역 수지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특정 시점의 시각적 격차에 달려 있다.’ ‘현실적으로 영국은 장기 신용으로 수출하는 반면 수입 대금은 현금으로 결제하는데, 이러한 결제 방식의 차이는 특정 순간 환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령 1850년과 같이 수출이 급격히 신장하는 시기에는 영국 자본의 (해외)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 경우 1849년에 수출한 상품의 대금은 1850년에 이르러서야 회수된다. 1850년의 수출액이 전년 대비 600만 파운드 증가했다면, 그 실질적 효과는 당해 연도에 환류된 금액보다 600만 파운드 더 많은 화폐가 국외로 유출된 셈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자금 유출입은 환율 상승과 이자율 변동을 초래한다.

 

반대로, 상업 공황 이후 경기가 침체하여 수출이 대폭 축소될 때는 양상이 달라진다. 지난 몇 해 동안 집행된 대규모 수출에 대한 대금 회수가 당기의 수입 결제액을 크게 상회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해외로부터의) 자금 유입이 가속화되면서 환율은 자국에 유리하게 형성되고, 국내 자본 축적이 급격히 이루어짐에 따라 이자율은 하락하게 된다.’ (이코노미스트, 1851111)

 

환율 변동의 주요 기제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달려 있다.

 

첫째, 당면한 지불 차액의 발생이다. 이는 발생 원인과 관계없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순수한 무역상의 격차뿐만 아니라 해외 자본 수출, 또는 (해외 현금 지불을 수반하는) 전쟁 비용 등 국가적 지출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화폐 가치의 하락이다. (금속 화폐든 지폐든) 자국 화폐의 실질 가치가 감소할 경우 발생하는 환율 변동은 순수하게 명목적인 성격을 띤다. 가령 1파운드가 표상하는 가치가 종전의 절반으로 하락한다면, 환율 역시 25프랑에서 12.5프랑으로 수렴된다.

 

셋째, 금 본위제 국가와 은 본위제 국가 간의 교환 비율 변동이다. 두 금속의 상대적 가치 변화는 양국 화폐의 교환 비율을 직접적으로 변경시킨다. 일례로 1850년 영국의 수출이 대폭 증가했음에도 환율이 영국에 불리하게 형성된 사례가 있다. 당시 금 유출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금 대비 은의 가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18501130일 참조).

 

1파운드에 대한 법정 금 평가는 파리에서 25프랑 20상팀, 함부르크에서 13마르크 방코 10.5실링, 암스테르담에서 11플로린 97센트로 규정된다. ()파리 환율이 기준점인 25.20을 상회하여 상승할 경우, 프랑스에 영국 채무자가 있거나 프랑스 상품을 수입하는 영국측 당사자들은 더 적은 파운드화로 동일한 결제 대금을 충당할 수 있게 되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반면, 귀금속 수급이 용이하지 않은 원격지 국가들의 경우, 영국으로의 송금 수요에 비해 환어음 공급이 부족해지면 현지 생산물의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환어음을 대체하여 영국에 송금할 실물 자산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제는 인도 시장에서 빈번하게 확인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영국 내 화폐 공급이 과잉 상태에 이르러 이자율이 하락하고 유가 증권 가격이 상승할 경우, 환율은 자국에 불리하게 형성되며 이는 금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실례로 1848년 영국은 인도로부터 대량의 은을 수취하였다. 이는 1847년 발생한 공황과 인도 무역에 대한 신용 경색으로 인해 우량 어음이 고갈되고 일반 어음의 인수마저 거절된 결과였다. 이렇게 유입된 은은 (당시 혁명의 여파로 화폐 퇴장 현상이 심화되었던) 유럽 대륙으로 즉시 유출되었다. 그러나 1850년에 이르러 환율 조건이 반전되자, 해당 은의 상당 부분은 다시 인도로 환류하였다. 이는 환율 변동이 귀금속의 대외적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기제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금속에 기반한 화폐 제도가 가톨릭적 성격을 띤다면, 신용 제도는 본질적으로 프로테스탄트적이다. ‘스코틀랜드인은 금을 싫어한다.’는 경구처럼, 지폐 체제하에서 상품의 화폐적 존재는 순전히 사회적 존재일 뿐이다. ‘여기서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거한다.’ (신약성서 마가복음 16-16) , 상품에 내재된 영혼으로의 화폐 가치에 대한 신뢰, 생산 양식과 그 예정된 질서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기 증식하는 자본의 인격화된 대리인으로 개별 생산자에 대한 신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교가 가톨릭교라는 역사적 토대 위에서 발흥했듯, 신용 제도 역시 화폐 제도라는 근원적 토대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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