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몇 주 전에 그렌츠보테(Grenzbote)에선 189210월에 비스마르크와 오토 케멜 박사와의 대화를 보도했다. 비스마르크 특유의 냉소와 함께 입헌주의라는 가면을 벗긴 세기적인 영웅에 대한 대화였다. 그 사이에 비스마르크는 말했다.

 

중세시대 로마에선 법 밖에 있는 사람들은 범법자로 간주해서 추방했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정치적 권리를 무시하고 이를 비슷하게 취급했지. 내가 보기엔 이보다 심했어. 사회민주주의의 문제에는 군사적인 문제가 있지. 현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부사관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분투해. 함부르크에 있는 대다수의 군대는 이미 사회민주당원들로 구성되었어. 왜냐하면 주민들은 오직 지역부대에서만 가입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야. 어느날 이러한 군인들이 발포를 거부한다고 가정해볼까. 그들의 아버지와 형제가 황제의 복무자라면 어떨까? 함부르크와 싸우려고 우리는 하노버와 메클레부르크에서 부대를 소집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파리코뮌과 다를게 없어. 황제는 두려웠어. 그는 언젠가 살육왕자라는 별명으로 자신의 할아버지와 똑같이 피가 발목 위로 넘치듯이지배하기를 바라진 않았어. 그때 내가 말했지. 폐하께선 힘겨운 길을 걸으셔야 합니다. 뒷걸음질 칠수록 심연은 더 깊어질 뿐입니다.”

 

전반적인 물음을 요약하자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문제에는 군사적인 문제가 있다.” 귀족이던 폰 마소(Von Massow)가 흘린 고통의 외침,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병사들의 총검과 대포에 달려있다.”1)보다 깊이 드러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물음에는 군사적인 문제가 있다.” 이는 현재에도 선동가들이 부를 수 있고 선율로 삼을 곡조다. 만일 알렉산드리아인2)들에게 전했던 비스마르크와 푸트카메르(Puttkamer)가 벌인 경솔한 행동이 아무 눈에도 띄지 않는다면 함부르크의 보도 소식과 순종적인 젊은 융커였던 폰 올덴부르크 야누샤우(Von Oldenburg Januschau)는 연말에 호헨로헤델브뤼크(HohenloheDelbrück)에서 상류층 법원 판사인 쿨레르만(Kulemann)에게 비스마르크의 비정한 말에 한술 더 뜬다.

 

사회민주주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일 정도로 군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국내의 적은 해외의 적보다 위험하며 민족의 영혼을 독살하고 우리가 일어나기도 전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우리의 행동을 저지하고자 한다. 1907년 교차로(Kreuz zeitung)에 따르면 민족주의의 깃발이 휘날리며진행한 선거싸움에선 계급적인 이익관계가 국익보다 우선하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이 선거싸움은 선거권과 노동조합 조직의 권리에 대한 위협을 고조하고 보나파르트적인 검으로 위협했으며 새해 전날 부친 편지에서 부엘로 왕자(Prince Buelow)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을 위협하고자 이들의 주위를 서성였다. 계급투쟁의 기치 아래로3) 전개해서 싸운 가장 치열한 선거였다. 눈을 감고 귀도 들을 수 없는 사람만이 폭풍을 모는 호통을 치며 서약에 거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국의 적과 투쟁하는 사안은 매우 중요해졌다.

 

1907년의 혼란스러운 선거는 민족주의 문제와 식민지 문제, 강경한 애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하며 치러졌다. 이 모든 걸 보여줬음에도 이 선거는 비열한 애국사업자들의 거짓되고 애국적인 위선에 맞서 독일 사람의 저항력이 작았는지도 보여준다. 지배계급의 정부들도 이용할 수 있는 허황적인 민중선전 조직이 무엇인지도 우리에게 가르쳤다. 1907년 선거는 노동자 계급에게 이들이 힘에 있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눈을 뜨게 했다. 노동자 계급은 추악한 승리의 비결에서 해방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1907년 선거는 노동자 계급의 운동을 올바른 요구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욱 깊어졌으며 민족적 행동에 대한 대중의 심리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확실히 우리가 소위 말하는 패배의 원인은 다수들이었고 실제로 패배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승자들이 패배한 사람들보다 더 당황했다.

 

군국주의는 사회민주주의의 진입을 방해하는 특수한 함정들을 설치했으며 노동자계급에게 오염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를테면 그들은 정부의 테러주의에 휘둘리는 국가노동자들과 하위직 공무원들이다. 이는 반군국주의에 대해 청년들에게 최전선에서 질문해볼 수 있도록 지도할 것이며 독일의 노동자 운동은 이후로도 확실하게 이들의 지적에도 주목할 것이다.

 

다음의 책자는 19061128, 독일에 청년사회주의자 조합의 저자로부터 읽은 신문사의 논설을 확대했다. 이 논설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걸 주장하진 않는다. 단지 이미 알려진 자료들의 모음집일 뿐이다. 그렇다고 주제를 소모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전 세계의 흩어지고 단절한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반군국주의와 젊은 사회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국가들에 대해 적지만 언급해볼 수 있도록 한 벨기에의 드만 동지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만일 실수를 발견해서 정보의 출처가 신뢰성이 낮다는 이유로 자료의 숙달에 난관을 겪는다면 감안해주기를 바란다. 군국주의의 범위에서 현재의 많은 것들도 빠르게 변화한다. 이를테면 프랑스와 영국의 군사개혁을 더욱 언급하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이 책은 반군국주의자들과 젊은 사회주의 노동계급의 운동에 더욱 진실하다. 이 책은 해방을 위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근래의 지침이다. 때때로 차질을 빚기도 하지만 어디에서나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어 기쁘다. 이 책자가 출판한 이후로 나는 핀란드 젊은 사회주의조합이 타마스포에서 1906129일과 10일에 첫 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 조합의 특수한 목적은 젊은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훈련하는 곳 외에도 모든 방면에서 군국주의와도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작업에 이론적인 원리를 충분하게 조사하지 않고 역사적 깊이가 부족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이 책자의 정치적 목적이 반군국주의 사상을 전파하고자 한다는 걸 지적하고자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쌓여만 가는 무수한 사항들에 청년 사회주의 운동과 반군국주의의 역사에 관해선 하찮게 보일 수도 있고 불만할 수도 있다. 이 불만이 정당할 순 있다. 저자는 상부적으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가정했고 하위적인 운동의 조합에 발전을 전술적 원칙과 방법으로 응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반군국주의적 시위와 반대운동에서 주된 곤경을 제시하는 건 세부적일 뿐이라는 걸 고려했으면 한다.

 

박사. 칼 리프크네히트

 

1907, 111, 베를린

 

1. 독일 아렌츠 주간지 189611월 중순 사회민주당 연대서신 참조

2. 황제는 알렉산더 대대 신병들에게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총을 쏘라고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3. 190725일 저녁에 두 번째 투표가 실시했을 때 베를린 수비대는 실탄과 함께 행군준비를 마쳤다. 1903625, 스판다우에서 개척자들이 슈왈더 거리에서 선거결과에 열광한 노동자들을 정신차리게하고자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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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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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레닌을 알게 된 사연은 다름 아닌 헌책방이었다. 전공과 깊은 관련이 있었고, 오랜 기간 어려운 문자를 해독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회상록은 어느 헌책방에서 맨 위에 있던 한 권의 서책으로 우연히 마주치면서 시작되었다. 맨 처음 일보 전진 이보 후퇴라는 명저로 알게 된 이름은 평생의 동지이자 참된 인물이다. 레닌에게 헌신한 크룹스카야도 그렇다. 그녀가 회상한 레닌은 써클 모임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그에 대해 빠짐없이 기록할 정도로 세세하다.

 

이는 고리키처럼 문학이 주는 가까운 묘사의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레닌이라는 인물을 위인이나 영웅으로 그려내려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동시대를 함께한 동지로 그리며 유일한 존재로 쓴다. 그녀의 기록이 없었다면 아마 레닌에 대한 생애는 온갖 사건으로만 도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레닌을 회상하며는 이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가 러시아 전반의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였고, 가장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평생을 헌신했음을 보여주었던 순간까지 당대의 혁명가들에 대한 과제를 일찍이 부여하고 있다.

 

코흘리개가 자라 성인이 될 때까지에도 수많은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뛰어난 인물의 생애는 매우 비범하고 굴곡진 역사, 그리고 피로 얼룩진 제국의 지배자들의 본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속에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의 이기적 면모들이 명암처럼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자본과 정치적 오만이 또 다른 오해를 부르고, 또 다른 계급적 폭력이 더욱 가시화되어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추기며 대변하고 있을 때, 차마 전기라 부를 수 없는, 그녀의 기록은 자신의 국가에서 추방되어 모스크바로 귀국하기까지의 긴 여정, 그리고 긴박하고 열악한 처우에서 유럽의 대장정을 펼쳐야만 했던 혁명의 기록이다. 하지만 기록으로도 채우기가 모자랄 정도의 눈부신 헌신이다. 누군가 혁명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했다. 그녀가 레닌에게 헌신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면 단순히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레닌과 가장 가까이서 교류하며 혁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동지이다. 국적을 떠나 비록 지금은 절판된 그녀의 기록에서 숨겨진 그의 면모와 진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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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테제

 

- 현재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

 

내가 43(16) 밤에야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한 탓에 44일 집회에서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에 관한 보고를 오직 나 개인의 명의로만, 그것도 준비가 충분치 못하다는 단서를 단 상태로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에게——또 선의의 반대자들에게도——일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작업은 이 테제를 문서로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 테제를 낭독하고 나서 그 문서를 체레틸리(Tsereteli) 동지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테제를 아주 천천히, 두 번 낭독했다. 먼저 볼셰비키의 집회에서, 다음에는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합동 집회에서.

 

이 개인적인 테제는 아주 짧은 주해만 붙여 발표하지만, 보고서에는 훨씬 더 상세한 주해를 달아두었다.

 

테제

 

1) 르보프(Lvov) 일파의 새 정부 치하에서도, 이 정부의 자본가적 성격 때문에 전쟁은 러시아의 입장에서 지금도 의문의 여지 없이 약탈적 제국주의 전쟁이다. 따라서 이 전쟁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 혁명적 조국방위주의에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계급적으로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오로지 다음의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만, 혁명적 조국방위주의의 정당성이 보장되는 혁명적 전쟁에 동의할 수 있다. (a) 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와 그들과 손을 잡은 빈농에게로 넘어간다. (b)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영토 병합을 포기한다. (c) 모든 자본의 이익과 실제로 완전히 단절한다.

 

전쟁을 정복의 수단이 아니라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혁명적 조국방위주의를 믿는, 대중 가운데 폭넓은 층의 의심할 바 없는 선의를 고려할 때, 그들이 부르주아지에게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특별히 철저하고 끈질기고 참을성 있게 그들에게 그들의 오류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자본과 제국주의 전쟁의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을 타도하지 않고서는, 전쟁을 끝장내는 것은 폭력이 강제한 평화가 아니라 진정 민주적인 평화로 전쟁을 끝장내는 것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선에 있는 군대 내부에서 이런 생각을 최대한 널리 보급하는 선전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양측 병사들의 우애 (형제적) 관계의 형성.

 

2) 러시아 현 시기의 특수성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자각과 조직화가 충분치 못해 권력을 부르주아지에게 넘겨준 혁명의 최초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에게로 권력을 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혁명의 두 번째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행의 첫 번째 특징은 합법성을 최대한 확보했다는 것이다(러시아는 지금 세계의 모든 교전국들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나라다). 두 번째 특징은 대중에 대한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특징은 평화와 사회주의의 최대의 적인 자본가 정부에 대하여 대중이 불합리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수성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제 막 정치 생활에 눈뜬 유례없이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대중 속에서의 당 활동이 맞이하는 특수한 조건에 우리가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임시정부는 지지하지 않는다. 그 모든 공약, 특히 영토 병합을 포기한다는 공약은 완전히 거짓임을 설명해야 한다. 이 정부, 자본가들의 정부에 제국주의적이기를 그만두라고 하는 식의 환상을 심는, 용납될 수 없는 요구를 할 것이 아니라 이 정부를 폭로해야 한다.

 

4) 부르주아지의 영향에 굴복하여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지의 영향을 전달하고 있는 인민사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혁명가당부터 조직위원회(치헤이제(Chkheidze), 체레텔리 등)와 스테클로프(Steklov) 등에 이르는 모든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 분자들의 블록에 비하여 우리 당은 대다수의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내에서 소수파라는 사실을, 지금으로서는 작은 규모의 소수파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는 혁명정부의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라는 것, 따라서 이 정부가 부르주아지의 영향에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임무는 참을성 있고 체계적이며 끈질기게 그들 전술의 오류를 설명하는——특히 대중의 실천적 필요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대중이 알게 해야 한다.

 

우리가 소수파인 한, 우리는 오류를 비판하고 폭로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것과 동시에 대중이 경험에 의해 오류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모든 국가권력을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로 옮길 필요를 선전해야 한다.

 

5) 의회제 공화국이 아니라——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에서 의회제 공화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후퇴다——전국에 걸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의 노동자·농업노동자·농민 대표 소비에트들의 공화국이다.

 

경찰, 군대, 관료의 폐지.

 

관리는 모두 선거로 뽑고 언제든지 소환 가능하게 하며, 봉급은 숙련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넘지 않게 한다.

 

6) 농업 강령에서는 무게 중심을 농업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로 옮겨야 한다.

 

모든 지주 소유지의 몰수.

 

전국의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고, 토지의 처분은 지역의 농업노동자·농민 대표 소비에트에 맡긴다. 빈농 대표 소비에트를 따로 만든다. 모든 대농장에 농업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통제하에 공공 비용으로 시범농장을 설립(지역 조건을 비롯한 그밖의 조건에 따라, 해당 지방 기관의 결정에 의거하여 약 100~300데샤티나의 규모로)한다.

 

7) 전국의 모든 은행을 즉각 단일한 국립 은행으로 통합하고,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이 국립 은행을 통제한다.

 

8) 우리의 당면 임무는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과 생산물의 분배를 지금 즉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통제하에 두는 것일 뿐이다.

 

9) 당의 임무.

 

(a) 당 대회의 즉각 소집.

 

(b) 당 강령의 개정. 주되게는,

 

(1)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문제.

 

(2) 국가에 대한 태도와 코뮌 국가라는 우리의 요구.

 

(3) 시대에 뒤떨어진 최소강령의 수정.

 

(c) 당명 변경. (공산당)

 

10) 새로운 인터내셔널.

 

혁명적 인터내셔널, 즉 사회배외주의자와 중앙파에 반대하는 인터내셔널의 창립을 주도해야 한다.

 

왜 내가 드문 예외로 선의의 반대자의 경우를 특히 강조해야 했는지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나는 앞의 테제를 골덴베르크(Goldenberg) 씨의 다음과 같은 반론과 비교해보길 권한다. 골덴베르크 씨는 레닌이 혁명적 민주주의파의 한가운데에 내란의 깃발을 꽂아놓았다”(플레하노프(Plekhanov) 씨의 예딘스트보Yedinstvo5호에서 인용)고 말했다.

 

주옥같은 말 아닌가?

 

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읽어주고, 잘 알아듣게 설명했다혁명적 조국방위주의를 믿는, 대중 가운데 폭넓은 층의 의심할 바 없는 선의를 고려할 때, 그들이 부르주아지에게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특별히 철저하고 끈질기고 참을성 있게 그들에게 그들의 오류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칭하고는 있지만 폭넓은 층에 속하지도, 조국방위주의의 신봉자 대중에도 속하지 않는 부르주아 신사분들이 낮두껍게도 나의 견해를 이런 식으로 제시한다. “혁명적 민주주의파의 한가운데에(!!) 내란의 깃발(!) [테제에서도, 보고에서도 이런 말은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을 꽂아놓았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이게 폭동이나 부추기는 루스카야 볼랴Russkaya Volya¹¹의 선동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읽어주고, 잘 알아듣게 설명했다.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는 혁명정부의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라는 것, 따라서 …… 우리의 임무는 참을성 있고 체계적이며 끈질기게 그들 전술의 오류를 설명하는 —— 특히 대중의 실천적 필요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것 외에는 없다.”

 

그런데도 모종의 반대자들은 나의 견해를 혁명적 민주주의의 한가운데에서 내란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임시정부를 공격한 것은 임시정부가 신속하게 제헌의회 소집 날짜를 정하지 않고, 아니 아예 날짜를 정하지 않고, 그저 입으로 공약만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가 없다면 제헌의회 소집은 보장되지 않으며 그것의 성공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마치 내가 제헌의회를 신속히 소집하는 데 반대하는 의견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수십 년에 걸친 정치투쟁의 교훈을 통해 반대자의 선의는 드문 예외라고 간주하는 습관을 갖게 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것을 헛소리라고 불렀을 것이다.

 

플레하노프 씨는 자신의 신문에서 나의 연설을 헛소리라고 불렀다. 참 훌륭하군요, 플레하노프 씨! 하지만 당신의 논박이 얼마나 서툴고 졸렬하고 우둔한지 보시오. 만약 내가 두 시간 동안이나 한 말이 헛소리였다면, 어떻게 수백 명의 청중이 그 헛소리를 참고 들었겠소? 게다가 왜 당신의 신문은 칼럼 하나를 다 바쳐 그 헛소리를 전한 거요? 앞뒤가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나!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71, 1872, 1875년에 파리 코뮌의 경험에 관하여,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필요한 종류의 국가에 관하여 무슨 말을 했는지 그것을 전하고 설명하고 상기시키려고 하는 것보다는, 소리치고 욕하고 으르렁대는 게 훨씬 더 쉽겠지.

 

왕년의 마르크스주의자 플레하노프 씨는 아무래도 마르크스주의를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191484일에 독일 사회민주당을 악취 풍기는 시체라고 불렀던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나 플레하노프, 골덴베르크 일당은 불쾌해했다. 누구를 대신해서? 독일 배외주의자를 대신해서. 그들을 배외주의자라 했다는 이유로!

 

말로는 사회주의자지만 실제로는 배외주의자인 이 가련한 러시아 사회배외주의자들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 프라우다26, 191747

 

4월 테제를 옹호하는 논문 또는 연설 노트

 

1) 경제적 붕괴가 임박했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지를 배제하는 것은 오류다.

 

(이것은 부르주아적인 결론이다. 붕괴가 임박할수록 부르주아지를 배제하는 것은 더욱 절실해진다.)

 

2)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되어 있지 않고, 약하며, 계급적 자각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다. 따라서 모든 임무는 대중이 부르주아지를 신뢰하게 만들어 혁명의 힘을 잠재우려는 소부르주아적 지도자,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자——치헤이제, 체레텔리, 스테클로프——와 싸우는 것이다.

 

이들 소부르주아——치헤이제, 스테클로프, 체레텔리——와의 통일 단결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을 파멸시키고 있는 이들 사회민주주의의 파를 분쇄하는 것.)

 

3) 혁명은 지금 단계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실험은 필요 없다.

 

(이것은 철저하게 부르주아적인 주장이다. ‘사회주의적 실험같은 말은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구체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인 명제는 계급뿐만 아니라 제도도 계산에 넣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혁명 압살자들——치헤이제, 체레텔리, 스테클로프——은 달콤한 문구로 혁명을 뒤로, 즉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로부터 부르주아지의 단독 권력으로, 통상적인 부르주아 의회공화제로 끌고 가고 있다.

 

우리는 솜씨 있고도 신중하게 사람들의 의식을 명료하게 하여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민을 앞으로, 이중권력으로부터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전일적(全一的) 권력으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가 말한 의미로의, 1871년 경험의 의미로의 코뮌이다.

 

문제는 얼마나 빠르게 나아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다.

 

문제는 노동자에게 그럴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준비시킬 것인가다.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전쟁 등에 관한 선언과 호소는 그저 인민을 달래 잠재우려는 것에 불과한 지극히 공허하고 기만에 찬 소부르주아적 수다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임무는 내가 말했듯이,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의식을 명료하게 하여 치헤이제, 스테클로프, 체레텔리 일당의 부르주아적 영향으로부터 대중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즉 치헤이제, 체레텔리, 스테클로프의 혁명적 조국방위주의는 달콤한 문구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 배 더 유해한 배외주의 조류로서, 대중을 임시혁명정부와 화해시키려는 시도다.

 

치헤이제, 체레텔리, 스테클로프 일당에게 우롱당하고 있는 자각하지 못한 우매한 대중은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며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정부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인민은 정부의 계급적 성격을 바꾸는 것에 의해서만 비로소 전쟁을 중지시키는가, 전쟁의 성격을 바꾸는가 할 수 있다. 이 점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 191744(17)12(25) 사이에 집필

1933121프라우다21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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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혁명의 경험

 

이 장의 제목의 의미는 그것에 대해 몇 권의 책이라도 쓸 수 있고 또 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대단히 방대하다. 물론 이 소책자에서는 국가권력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해야 할 과제와 직접 관계되는 가장 중요한 교훈들에 국한해 다룰 수밖에 없다.

 

원고는 여기서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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