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레닌을 알게 된 사연은 다름 아닌 헌책방이었다. 전공과 깊은 관련이 있었고, 오랜 기간 어려운 문자를 해독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회상록은 어느 헌책방에서 맨 위에 있던 한 권의 서책으로 우연히 마주치면서 시작되었다. 맨 처음 일보 전진 이보 후퇴라는 명저로 알게 된 이름은 평생의 동지이자 참된 인물이다. 레닌에게 헌신한 크룹스카야도 그렇다. 그녀가 회상한 레닌은 써클 모임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그에 대해 빠짐없이 기록할 정도로 세세하다.

 

이는 고리키처럼 문학이 주는 가까운 묘사의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레닌이라는 인물을 위인이나 영웅으로 그려내려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동시대를 함께한 동지로 그리며 유일한 존재로 쓴다. 그녀의 기록이 없었다면 아마 레닌에 대한 생애는 온갖 사건으로만 도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레닌을 회상하며는 이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가 러시아 전반의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였고, 가장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평생을 헌신했음을 보여주었던 순간까지 당대의 혁명가들에 대한 과제를 일찍이 부여하고 있다.

 

코흘리개가 자라 성인이 될 때까지에도 수많은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뛰어난 인물의 생애는 매우 비범하고 굴곡진 역사, 그리고 피로 얼룩진 제국의 지배자들의 본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속에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의 이기적 면모들이 명암처럼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자본과 정치적 오만이 또 다른 오해를 부르고, 또 다른 계급적 폭력이 더욱 가시화되어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추기며 대변하고 있을 때, 차마 전기라 부를 수 없는, 그녀의 기록은 자신의 국가에서 추방되어 모스크바로 귀국하기까지의 긴 여정, 그리고 긴박하고 열악한 처우에서 유럽의 대장정을 펼쳐야만 했던 혁명의 기록이다. 하지만 기록으로도 채우기가 모자랄 정도의 눈부신 헌신이다. 누군가 혁명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했다. 그녀가 레닌에게 헌신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면 단순히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레닌과 가장 가까이서 교류하며 혁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동지이다. 국적을 떠나 비록 지금은 절판된 그녀의 기록에서 숨겨진 그의 면모와 진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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