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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ㅣ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평점 :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구른다면, 그 계단이 두어개 남짓해도 아프다. 피라도 맺혔으면 더 아프다. 주위에 사람들 시선이 느껴지면 아무렇지도 않은듯 털고 일어나 가던 길 가야할 때, 날밤을 새워 기획안을 올렸음에도 "당신, 이 정도 밖에 못해?", 라는 상사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힐 때도... 울기엔 좀 애매한 경우들이다. 그냥 확 울어버려야 할 상황을 빗대 끼워 울어야 한다. 비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거나 엄청 슬픈 드라마에 기댈수 밖에...
마냥 깔깔거리며 연신 휴대폰 문자를 날리는가 하면, 늘상 귀에 음악을 꽂고 다니고 꼭 두 서너명씩 셋트로 다녀야 할 것같은 청소년들, 그들은 지금 무엇에 고민하는가. 그들 중 하나의 고민을 최규석이 들려준다. 원빈, 그림에 미쳐보고 싶은 아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무슨 그림이야?", 라고 말씀하시는 일반적 부모님에 대한 반항적 고민이 아닌, 부모의 가난을 껴안은 고민중이다. 사교육, 아니 고상한 단어로 겨우 품위 유지하시는 학원비 때문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어렵사리 학원비를 충당하지만,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하늘도 시큰둥하고, 행운의 여신은 다른 일로 바쁘시다. 여기에 기성세대의 파렴치한 술수까지 더해지는 것에, 좌절된 꿈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를 바라보는 태섭쌤의 시선 때문에 원빈은 울고싶다. 그도 나처럼 비 올날만 기다려야겠지.
"용이 날래도 개천이나마 있어야지, 맨땅에서 용 나겠어?"
날로 버거워지는 학원비앞에서도, 아이의 이런 투정에도 속수무책인 이 시대 부모들의 고민도 숨어있다. 우리 자랄 때는...이미 호랑이 담배를 배우기도 전의 이야기가 되버렸다.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다, 고 하는데 있기만 하지 밝을 줄을 모른다. 학원비가 넉넉하다고 고민이 덜하고, 미래가 눈부실거라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들은 그들대로 버거운 공부를 쫓아가느라 꿈은 잠을 잘 때만 꾼다. 물론 세상 천지에 지문 같은 사람 없듯, 와중에도 꿈에 희망을 얹어 키우며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성공담에서 ’우와~’하고 바라볼 뿐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슬로우 새드 무비다.
"그래 어차피 안 되는거 뭘 어쩌겠어"
라는 마음을 먹으라고 최규석 작가가 붓을 든게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대해야 한다. 우리가, 부모님과 세상에 얻어 터져가며 이만큼이라도 이룩했던 것처럼 우리의 아이들은 더 크게 성장하리란 것에 동의한다. 언제 끝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해도 우리는 계속해야 한다. 학원비 부어가며 애들 닥달하는 일만 계속하지 말고, 다른 거.
"원빈, 애매할 거 없어. 울어. 펑펑 울어보는 거야. 그러면서 강해져야 해.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현실이 아프고 답답하다. 내가 하고싶었던 일이 뭘까? 무얼 할 때 마음껏 행복했지?...라는 생각을 자주 떠올려보면 우리 아이들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도, 덜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