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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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투명성이 한 인간에게 미칠 엄청난 비전, 그 미스터리, 권력, 그리고 자유를 예견해보았어. 
허점이라곤 보이지 않았어." p.146



투명인간이 한 번쯤 돼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가져봤다. 타임머신만큼이나 멋진 유혹이다. 아주 어릴 적에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꼬드겼던 끔직한 박하사탕 때문이었고, 조금 더 커서는 누군가를 골탕 먹이고 싶은 때 그랬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만의 자유를 즐기고 싶을 때문이다. 꿈 꾸는 그것에, 두려워해야 할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이 작품은, 우리가 상상하는 단순한 자유와 이상에 대한 무지한 동경을 깨뜨리며 예기치 못한 진실을 얘기한다. 다름에서 오는 무한한 공포, 두려움의 실체를 소름끼치도록 사실화했다. 보이지 않던, 내재된 공포가 투명인간을 통해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핀도, 우리가 상상하던 자유를 꿈 꾸며 실험에는 성공했지만 그 댓가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등장하는 그루누이의 고통을 동반한다. 그리핀의 형체나 그르누이의 냄새는 결국 인간 존재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어. 하지만 나는 보통 인간과 다름없어. 그저 네가 알던 한 인간이 보이지 않게 된 거라고."p.126

그리핀은 켐프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핀이 포악한 공포정치를 운운하며 히스테리컬한 행동은, 그가 말하는 진실을 왜곡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켐프는 그리핀을 좀 더 이해해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지독한 외로움, 낯선 세계로 들어선 혼돈의 공포로부터 그리핀을 보듬었으면 좋았을텐데...그가 그리핀의 방황중에 우연히라도 끼어들게 되었을 때 작가의 의도를 선의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작가는 켐프를 통해, 투명인간을 벼랑으로 몰아 넣는다. 내게 적지않은 가르침을 주는 우리집 강아지 얘기를 하자면, 이 녀석은 평소에 양 같은 외모만큼이나 순하디 순하다. 그런데 복도를 지나는 낯선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사정없이 짖어댄다. 짖지말라고 엉덩이라도 철썩거리면 더욱 흥분한다. 그런데 품에 보둠어 "괜찮아..괜찮단다. " 면서 어루만지면 금방 짖기를 멈춘다. 녀석은 두렵고 무서워 짖어대는 것이다. 품에 안겨 안전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리핀도 켐프의 다독임이 필요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실질적 공감의 유대는 켐프에게 느낀다. 내 옆에 투명인간이 버젓이 버티고 있다면 나는 그보다 더한 본능적 이기심을 발휘했을테니까. 이기심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절실한 보호본능.  


"켐프, 나는 생각하면 할수록 투명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도 바보같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더군." p.194

도깨비 감투를 쓰면 사라지곤 하던 우리나라 토종 투명인간의 애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의도된 플롯은 제쳐두고라도 도깨비감투의 그는, 감투를 벗으면 언제든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는 것에도 안도의 흥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핀은 다시 자신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궁극적 절망을 안고 있다. 이해받지 못한,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라던 그리핀이 차가운 주검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서야 "그의 표정에 깃든 분노와 절망"을 본다. 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더이상 가진 게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되는 배타적 이기심을 질타하며, 수없이 반복되어질 ’투명인간’의 죽음을 경고하는 이 작품은 단순히 흥미로움을 자극하는 과학소설 범주를 넘어선다. 애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순간적 오판과 내가 가진 이율배반적이며 이타적인 갈등앞에 자숙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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