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가죽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831년에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이 작품, <나귀가죽>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다. 이 결과는, 드라마가 우리를 폐인 지경까지 이르게 하는 일련의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해서는 예상 못한 고뇌, 갈등을 통해 주인공과 함께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자연히 괴테의<파우스트>가 연관되어진다. 이 두 작품은 ’시간’과 '영혼'의 거래로 합쳐진다. 시간이 금이다. 라는 말은 오류다. 최소한 이 두 작품에서의 시간은 영혼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신기한 물건, 인간이 상상해 낸 지극히 인간적 가치에 부합되는 산물이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 둔갑하든 그것은 뿌리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며 문학적 충분한 소재이다.  "언뜻 보기에 가게는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어서 그 모든 인간과 신의 작품들이 좌충우돌하는 것 같았다." (45) 라파엘이 골동품가게를 설명하고 있는 이 부분은 그가 슬픈 운명처럼 맞게되는 ’나귀 가죽’의 전주다. 처음 난, 이 부분을 그냥 ’충돌’로 읽었다. 문장 전체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보였는데, ’좌충우돌’로 바로 잡아보니 그냥 평범한 문장이 되버렸다. 뜻은 분명 같은데 ’충돌’이 주는 창조적 원본 상태의 강력한 이미지가 평범한 혼돈이 되었다.  역자는 이 작품이 쉽지 않은 번역물임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만큼 발자크의 사용 언어가 독특한 개개의 의미를 함묵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발자크의 말’. 하나하나가 시간을 훔쳐가는 라파엘의 ’싶은’처럼 주의깊게 읽혀지게 되는 이유다.



"노인의 이마 위에는 그지없는 권능이 서려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입가에는 음산한 조소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고뇌 따위는 막강한 힘 아래 모조리 분쇄해 버렸을 이 노인은 틀림없이 지상의 온갖 쾌락 역시 억눌렀을 것이다." (61) 메피스토펠레스의 등장이다. 라파엘은 이 악마와의 거래를 시작하면서 분명히 ’쾌락 역시 억눌렀을’것을 그에게서 읽었다. 반론적으로 라파엘은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쾌락’을 얻게 되는 것이다.  라파엘은 자살까지 생각하는 인생을 포기한 상태였다. 돈도 명예도 없이 "나는 사람들이 목말랐는데 친구가 하나도 없었던" 고독한 영혼이었다. 그러나 악마와의 거래 이전, 그의 "싱싱한 영혼을 지녔"다. 쾌락을 위해 그의 싱싱했던 영혼은 자살, 죽음을 유보하는 조건으로 ’나귀가죽’을 선택한다. 골동품상 노인은 " 사람들이 근심,사랑, 야망, 불운, 슬픔이라 말하는 것들..난 그런 것들이 내 삶을 갉아 먹도록 놔두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결국 라파엘이 가진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은 나귀가죽을 통해 극명하게 삶의 ’갉아먹음’을 보여준다.  "행함"과 "바람"의 결합이 바로 나귀가죽인 것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공짜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다 댓가가 숨겨져 있는 유령이다. 응당, 부와 명예를 아우르는 쾌락의 댓가로 얻어진 나귀가죽은 시간의 생명을 줄어들게 한다. 그런데 나귀가죽을 손에 넣기 전부터 라파엘은 시간에 목숨을 거는 전제를 반복한다. "그녀가 내게 할애해 준 시간당 2년치에 해당하는 내 목숨을 바쳐라 했어도 기꺼이" 라며 페도라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가 하면, "마차에 오르자 종업원은 수고비를 요구했어. 나는 무일푼이었지. 그 수고비 두 푼만 마련할 수 있다면 10년치 내 목숨이라도 팔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이 두 부분을 통해서 라파엘의 ’목숨’에 관한, ’시간’에 관한 무모하리만치의 바보스런 계산법을 읽게된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시간과 맞바꾼 목숨은 2년치인데 고작 자신의 권위와 ’보여짐’을 위한 팁 두 푼엔 10년치의 목숨을 내 건다. 이 것으로  라파엘은, ’생명’과 ’영혼’의 본질을 깨달을 수 없는 인간, 평범한 인간이 가지는 극명한 자기 모순을 설명하고 있다. 

라파엘이 ’싶어’하는 모든 것들은 이뤄진다. 그 댓가로 ’근심’은 줄어든다. 이 단어는 처음 읽혔던 ’충돌’만큼이나 흥분을 자극한다. "프랑스어에서 ’근심’을 뜻하는 샤그랭chagrin은 표면이 우툴두툴한 가죽, 곧 라파엘이 소유한 가죽을 가르키는 말이다." 발자크의 언어 유희에 탄복하게 된다. 나귀가죽을 근심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줄어드는 ’근심’이 실은, 늘어나는 죽음에로의 ’근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발자크의 천재적 언어성에 함몰됨을  느낀다. 


인간의 욕망, 쾌락이 부질없음을 라파엘의 마지막은 보여준다. 인간의 지식과 방법으로 나귀가죽을 늘리려고 애쓰는 부질없음까지도. 악마와의 거래로 얻어 모든 ’싶은’것들은 누렸으면서도 그 신비한 힘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끊어내려는 라파엘은 또 한 번 인간의 모순을 보여준다. 마지막 잎새같은 나귀가죽마저도 사랑의 욕망으로 불사르고 결국 그것과 함께 자멸하는 라파엘. 나귀가죽, 그것은 어쩌면 욕망의 늪이 아니었을까. 한 번 발을 빠뜨리면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들어가게 되는,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박히는 늪. 늪으로 가는 첫 걸음은 광기다.  미친 짓이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우리는 이성적, 논리적 판단을 유보하고 ’미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지극히 인간적인 헛점을 파고드는 신의 장난에 동요되는, 그래서 욕망은 나약함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신의 단죄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나귀가죽을 손에 넣는 그 순간부터. 인간의 자기 한계와 모순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눈에 보이는 헛된 찬연함으로부터 등 돌려  내면의 깊은 성찰의 사유로 유도하는  천재 작가의 다시 없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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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09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마와의 거래는 시대를 넘나들며 매력적인 소재인가 봐요.
제가 며칠 전 읽은 '천국의 도둑'도 그런 내용이었거든요.
'샤그랭'이란 단어 참 예쁜 발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뜻은 덜 이네요~^^

발자크, 기억해야 겠어요~

모름지기 2011-03-12 02:37   좋아요 0 | URL
흥미로워요. 시대에 따라 변하는 '악마'의 모습이나 거래..모두 말이죠.
아..그거 님의 리뷰 읽고 관심 찜해뒀던 책이예요.^^
벌써 주말이네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예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마녀고양이 2011-03-1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목과 은유가 너무 맘에 들어요.
나귀 가죽이라... 어쩐지 생각이 많고, 한번 읽어봐야 할거 같아요.
이런 생각 마저도 욕망일까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파우스트도 못 읽었어요.
맨날 책은 손에 들고 있는거 같은데, 고전 중에 읽은건 손을 꼽아야 해요.. 창피해라.

저두 장바구니로~.

모름지기 2011-03-25 00:51   좋아요 0 | URL
저도 고전읽기에서 늘 고전해요.하하
그래도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깊이가 있고,
좀 속물적이긴해도...폼 나잖아요.ㅋㅋㅋ
요따구로 책읽으면 안되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