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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ㅣ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생각하는 갈대는 그 생각이란 것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정작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계획이나 성찰을 향한 생각이 아닌, 일종의 잡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힐 때가 있다. 그러면 당연히 마음이 심란해진다. 아마도 이 책의 ’생각’은 그것들을 말함인 듯하다. 불안, 걱정, 욕심같은 것들. 생각을 버리는 일은 어쩌면 마음을 비우는 일과 같은 작업이지 않을까. 그런데 좋은 말과 가르침에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내가 있다. 이젠 욕심, 불안의 생각들을 떨쳐야지, 마음 먹기가 무섭게 또 다른 걱정 아닌 걱정들이 빈 자리를 채우고 들어선다.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내내 풀어야 할 숙제인 듯하다.
감사하는 마음과 표현은 마냥 좋은 것인줄만 알았다. 늘 감사하는 마음이 나와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리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병인줄이야. 빈 말이란 게 있다. 정말 감사하지도 별로 감사할 일도 아닌데 습관처럼 내 뱉는 감사의 말들, 저자는 이것을 경계하라고 한다.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을 지나치라는 게 아니라, 빈 말을 던짐으로써 감사 받는 사람의 감정까지 상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축적되는 기만을 삼가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과 비슷한 맥락의 ’구체적 사과’는 꼭 필요하다. 길을 걷다 실수로 남의 발을 밟을 때야 ’미안합니다’ 로 괜찮겠지만 우리는 종종 더 큰 잘못에도 안이하고 상습적인 ’미안’을 표현할 때가 많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반성문을 쓰라고 한다. 그리고 말하길. "구체적으로 써!"
그런데 정작 나는 그게 잘 안된다. 구체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가운데 진정한 반성과 그로 인한 나아감이 있을텐데.
일기를 쓰는둥마는둥한지가 깨나 오래된 듯하다. 그나마 쓰는둥의 일부는 심란함의 낙서 정도랄까. 그런데 그 심란함의 낙서조차도 쓰고나면 조금은 마음의 홀가분함을 느낀다. 그래서, 단단히 엉켜있는 생각껍데기들을 버리는 연습엔 쓰기만한 게 없다며, 자기 속에 숨기고 싶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나가라고 하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속 상한 일이 있으면 슬픈 영화를 보거나 볼륨을 높이고 듣는 메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별다른 일정도 없이 건너뛰는 여백의 다이어리 한켠을 빌어 생각 버리기 연습장으로 써야지, 싶다. 저자의 꼬리글은 한 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인터넷등에 내놓는 일상의 얘기는 진정한 생각 버리기 연습이 아니라, 오히려 관심받고 싶고, 잘 쓰고 싶어하는 욕심이 덧칠해 질 수도 있다는 말.
어찌보면 계발서 같기도 하지만, 명상하기 좋은 책이다. 젊고 싱싱하면서도 맑은 가르침이다. 간결하고 선명한 글이다. 욕심을 내어 차창에 기대어 고즈넉한 명상을 즐기는 표지에서의 저자처럼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차창에 기댄 누군가의 사진을 바라보는 일과 내가 차창에 기대 앉아서의 느낌이 판이하듯, 바라던 것은 욕심, 버려야 할 그것이 되고 말았다. 아쉽지만, 깨달음보다는 배움이 있는 책이었다.
이 책,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깊이나 완성도에서는 부족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