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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재능 있는 책도둑은 아무 책이나 훔치는 게 아니라 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훔친다.
훔친 책은 가슴을 뛰게 하는 긴장이 부작용처럼 곁들어지고 잘 읽히고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p.76
얼쑤~.한 때 책도둑이었던 무용담을 거침없이 내뱉는 그 도, 손모가지 잘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하는 걸 보면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인지, 저마다의 소질을 활발히 계발하라는건지 의도 불분명하다. 나도 그런 순간적 범죄의 유혹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간 사이즈가 유난히 작은 탓에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드랬다. 그럼에도 ’부작용처럼 곁들어지는 긴장’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걸 보면 소질이나 여지가 다분하다. 손모가지 없으면 리뷰를 어떻게 쓰누. 간이 붓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다. 거참, 술을 끊을수도 어쩔수도 없는 것이, 애매하게 되버렸네.
"나는 즐긴다. 들과 산을, 들도 아니고 산도 아닌 편안한 이웃 같은 구릉을.
그 주변의 사람살이와 도란거리는 이야기와 친근하고 깊은 맛을." p.232
그래서 사람냄새가 난다. 그 에게선. 구릉을 지나는 여유로움과 사람살이를 알기에, 그의 글이 그 답고, 그지없이 좋다. 높은 산 봉우리마다에서 저 잘났다고 ’야~호’를 외치는 세상살이꾼들에게 은근히 똥침주는 게 아닌가 싶다. 풍광도, 자연의 소리도 놓치고 정상을 향해서 땅만 보고, 혹은 앞사람 뒤통수만 보며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폭폭한 세상살이에서 가끔은, 구릉 걷듯, 구름에 달 가듯, 그 만 하다면 족하겠다. 내일 문 열고 출근하면서도 이 생각이 여전하게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글쟁이에게 가당치도 않은 수사, 어눌함을 찍어다 붙어도 슬쩍 눈 감아 줄 것 같은 작가가 성석제다. 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살아가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는 그런 작가다.
"내가 생각하는 단골음식점은...마지막으로, 공기 속에 적당한 밀도로 품위와 예의의 입자가 떠다녀야 한다. -224" 고 말하는 그에게서 편안하고 수줍게, 공간 한켠을 허락받는 느낌이다. 취중진담을 허물없이 나눠도 좋을 사람으로 그만한 이 가 있을까,싶다. 음식을 같이 먹으면 빨리 가까워진다고 하지 않던가. 하니,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놓고 이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로 몰고 가지만, 성석제님의 글은, 사실 술이 아니어도 술술 잘 넘어간다. 아주 배운티를 있는대로 쏟아내는, 박식 무한방출하는 분들과는 달리, 친근하고 소박한 글이 스스럼 없어서 좋다.
그의 농담에는 진의가 있다. 예의를 무시하지 않는 존중이 깃들어있다. 그 존중의 진의에는 뼈가 있다. 날카롭게 찌르는 뼈가 아니다. 딱딱하게 얼어있는 북어대가리를 야들야들 다듬어내는 무디지만, 단련된 뼈다. 단단하고 고집스런 사유와 감정을 부드럽게 두들겨대는 그, 로 인해 서서히 나긋해지는 북어대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