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러시아 현대사 - 혁명부터 스탈린 체제를 거쳐 푸틴까지
마이크 헤인스 지음, 이수현 옮김 / 책갈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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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요근래 소련과 현대 러시아를 다룬 역사 책 중에서는 정말 좋은 것 같다. 그럼에도 중앙아시아 소수민족에 대한 내용을 기대했던 내가 봤을 때도 확실히 구소련의 소수민족 저항에 대한 내용이 다소 부족하다. 하지만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인 지방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의 원료 공급지였다는 점과 이에 따른 환경 파괴를 회피하지 않았기에 좋았다. 뿐만 아니라 강제수용소 관련 서술은 솔제니친도 직접 참가했다는 카자흐스탄 수용소와 탄광 반란 묘사도 생생했다. 2020년 현재를 다룬 저자의 설명은 단순한 관조적인 묘사가 아닌 생생하게 활동하는 러시아 노동자계급에 대한 기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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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브루 파우치 에티오피아 시다모 디카페인 - 50ml*5ea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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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치에 물을 부어 마셨는데,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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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에 관한 부분

지역 간 불균등 발전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억제된 것은 어느 정도는 정치적 중앙집권 체제와 민족주의, 그리고 서로 대립하는 민족주의가 반대파 결집의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반영했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서방과 경쟁하고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정권이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는 경제적 논리도 반영했다. 주변부 지역들을 향해 이런저런 [균등 발전] 제스처를 취했지만, 진정한 경제 다각화는 이 경쟁적 경제의 필요 때문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 공장을 위한 면화 생산지가 됐고, 1938년에 우즈베키스탄 지도자들은 "면화를 먹고 살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경제 다각화 계획을 수립하다가 ‘부르주아 민족주의‘ 혐의로 처형당했다. 여기에다가 지도부의 다른 정치적 선택들도 덧붙여졌다. 모스크바가 추진한 정책들의 대가를 비러시아계 주민들이 치르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쉬운 일이었다. - P175

왜냐하면 농촌 현지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우랄 지방의 노동자들과 더 긴밀한 연관이 있어서 도시의 불만과 농촌의 불만이 결합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불평등한 처우는 분열시켜 지배하는 암묵적 정책의 일환으로 생겨난 것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민족 억압을 극복혀던 1920년대의 긍정적 노력은 1930년 이후 민족 억압을 강화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 P175

그 덕분에 스탈린은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1928년부터 1941년까지 소련은 정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비록 혼란스럽고 불균등한 성장이었지만 말이다.) 그 변화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평가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중략)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협소한 경제적 의미에서 상당한 진보가 있었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선철 생산량은 1928년 330만 톤에서 1938년 1810만 톤으로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표 4.2에서 나오는 도시의 성장 수치 같은 다른 변화의 지표들도 논쟁의 여 - P176

지가 별로 없다. 예컨대, 1926년부터 1939년까지 도시 인구는 2760만 명에서 5610만 명으로 연평균 6.5퍼센트씩 늘어났다(이런 증가속도는 당시까지 세계 경제 역사에서 유일무이했다). 소련은 1961년에야 도시 인구가 50퍼센트에 이르렀지만(영국보다는 100여 년, 독일보다는 50년 늦었다), 이조차도 중대한 진보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런 변화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경쟁적 공업화와 자본축적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마지막 흔적까지 파괴해야만 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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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장의 산업 발전은 주로 우루무치, 카라마이, 스허쯔, 창지 등 핵심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루무치는 중공업, 석유화학, 섬유 등 산업의 다변화가 이루어져 있고, 신장의 서비스 부문도 주도하고 있다. 우루무치는 중공업, 석유화학, 섬유 등 산업의 다변화가 이루어져 있고, 신장의 서비스 부문도 주도하고 있다. 카라마이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생산 및 그것에서 파생되는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신장 남부 바얀골의 쿠얼러는 신장의 제2산업 중심지로 불린다. 1960년대 삼선건설 때 쿠얼러는 신장의 잠재적인 수도로 여겨졌으며, 타림분지에서의 석유 생산 및 가공이 쿠얼러의 GDP를 증가시키고 있다. 포도, 면화 농업으로 유명한 투르판도 석유 생산이 가능한 가공지역이 되었다. 농업에서는 창지와 악수 두 지역의 생산량이 높다. 두 지역 모두 병단의 주요 현장이다. 창지는 우루무치에 식량을 공급하며, 악수는 곡물 생산의 중심지이다. 그 외에 서북부의 일리와 타청은 목축업이 발달되어 있다(구소영 2020: 75).

2015년 신장 각 지역의 1인당 GDP 131,014위안이 넘는 카라마이는 원유 생산과 가공,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인구로 인해 신장의 1인당 GDP를 선도하고 있다. 그 외에 스허쯔, 우루무치, 바얀골, 창지 등이 선두 그룹에 있다. 이 경제 지형의 저점에 있는 호탄, 키질수, 카슈가르, 악수 등은 모두 신장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신장의 산업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전통적인 경제중심지 역할을 했던 카슈가르와 일리는 신장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구소영 2020: 75. 新疆統計年鑑2016年版을 간접 인용함.)

그렇다면 여기에서 신장 각 지역의 1인당 평균 GDP 변동과 함께 민족적 구성을 변수로 해서 시장 각지의 개발 수준을 서로 비교해보자. 민족 또는 소수민족은 신장 개발에서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특정 민족이나 집단이 다른 민족 집단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면 그 사회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1998, 2005, 그리고 2015년 신장 19도시의 1인당 GDP와 해당 지역의 한족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1인당 GDP와 신장 인구 중 한족 비율 간에는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형성됨을 알 수 있다. 즉 한족이 신장의 경제 성장에서 확실히 많은 이익을 보고 있다.(新疆統計年鑑2016年版을 간접 인용. 구소영 2020: 76-77)

또 이를 공간적으로 살펴보면 지역에서 가장 번영한 카라마이, 쿠얼러, 스허쯔, 우루무치, 창지는 쿠얼러를 제외하고 모두 톈산 산맥 북쪽 회랑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모두 1949년 이후 새롭게 개발된 지역이며 석유와 같은 에너지 자원의 개발 및 가공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장 남부 지역 가운데 1인당 GDP가 가장 높고 자치구 내에서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바얀골의 쿠얼러는 타림분지의 유전이 개발되면서 유전 기지로 발전한 도시이다. 한족이 대량 유입되면서 이전까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은 생활 터전에서 점차 밀려나게 되었고, 현재 한족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신장의 남서부 지역은 경제 지형에서 계속해서 하위에 머물러 있으며, 자치구 내 다른 지역들보다 많이 뒤쳐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위구르족이 압도적으로 많다.(구소영 2020:77)

경제 발전의 지형에서 신장 남·북부 간 뚜렷한 격차는 빈곤 인구의 분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1986년에 1인당 평균 순수익이 150위안 이하의 현을 빈곤현으로 설정한 바 있다. 신장은 1997~1999년 농촌 주민 1인당 순수입이 농업 현은 1,300위안 미만, 목축업 현은 1500위안 미만을 탈빈곤 중점현의 기준으로 하고 있다. 왕하이샤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신장의 빈곤인구는 72만 명에 이른다.(구소영 2020:77-78) 그 인구의 대부분은 신장의 남부와 북부 알타이산맥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전자의 경우 빈곤 인구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그 주변에 집중되어 있는데, 27개 국가급 탈빈곤 중점현 가운데 19개가 남서부의 카슈가르(전체 12현 중 8), 호탄(전체 8현 중 7), 키질수(전체 12현 중 4)에 분포되어 있다.(구소영 2020:78)

교육은 사실 개발에 대한 또 다른 척도이다. 2010년 제6차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신장의 문맹율은 3.01%로 중국 평균(5%)와 비교해보아도 많이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各地區分性別的15歲及以上文盲人口」 『新疆維吾爾自治區2010年人口調査資料2016年版을 간접 인용함.교육 수준도 많이 향상되었다. 3.18%만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32.87%가 초등학교, 39.60%가 중학교, 12.75%가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는 5%가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초등학교 24.75%, 중학교 41.70%, 고등학교 15.02%의 중국 평균과 비교해보면 신장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대학교육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제5차 인구조사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신장의 인구는 1.5%, 이는 전국 평균(3.6%)과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하지만 제6차 인구조사에서는 신장(3.77%)가 오히려 다소 앞섰다(전국 평균 3.67%)(구소영 2020: 78-79).

신장의 교육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남북 지역 간의 큰 격차이다. 한족이 많이 거주하는 우루무치, 카라마이, 스허쯔 등 도시는 대학교육을 받은 인구수에서 모두 평균 이상으로 교육 성취도가 가장 높았다. 고등학교교육 역시 한족이 많이 거주하는 우루무치, 카라마이, 스허쯔, 하미, 창지, 바얀골 등은 높은 것과 대조적으로, 키질수, 악수, 카슈가르, 호탄 등 위구르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낮았다. 신장의 공식 통계자료에서 민족별 교육 수준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하지만 위에 제시된 고등학교 인구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지역에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이 압도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위구르족이 노동 생산성이 높은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구소영 2020:79)

이것은 또한 언어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이중언어주의 방침을 채택해서 민족 고유의 언어를 보호하는 데 노력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경제 체제가 도입 이후 각종 인프라 구축을 통해 내지와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다. 이것은 중국의 경제일체화 또는 전국적인 통일시장의 형성을 더욱 촉진시켰다. 그 결과 소수민족의 언어만으로는 사람들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류 수단인 언어에서도 중국어가 주류가 되고 있다. 따라서 진학과 취업에 있어서 중국어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소수민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중국어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그래서 소수민족 학부모 중에는 민족교육을 받아도 진학과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자녀들을 한족 학교에 입학시키거나, 학생 스스로 한족 학교에 입학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경제 발전에 따른 민족구성의 변화, 사회적 언어환경의 변화는 이와 같이 교육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구소영 2020:80)

이런 가운데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一帶一路)’이니셔티브라고 하는 새로운 경제 개발 전략을 제안했다. ‘일대일로이니셔티브는 일대(一帶)’를 가리키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일로(一路)’를 가리키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전자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여 유라시아 각 국가 간 경제발전을 위한 협력 공간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각 지역을 잇는 도로와 철도 건설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후자는 중국-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해상으로 연결하는 고효율 운송 통로의 구축을 목표로 한다. 모두 중국의 새로운 핵심 발전 전략이자 대외 전략이다.(구소영 2020:82)

신장은 이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20155월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일대일로 핵심 프로젝트인 6대 경제회랑 건설에서 신장은 신유라시아 대륙교’, ‘중국-중앙아시아-서아시아 경제회랑’,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3대 회랑이 모두 거쳐가는 핵심 지역이다.(서종원 2016: 126; 구소영 2020; 82-83)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이니셔티브를 제안한 배경에는 격화되고 있는 지역 균형 발전 추구 외에 신장의 위구르족과 한족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서부대개발의 논리와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대일로경제개발 이니셔티브가 신장 위구르족과 한족의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아무리 신장 개발과 위구르족 탄압에 관한 중국 정부의 의지가 강하고 투자가 많아진다 할지라도 말이다. 위구르족들이 가진 불만은 언제든지 중국 정부의 통치에 대한 반대와 저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중국 정부가 한족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중국 신장생산건설병단을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아닌 중국 정부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성급(省級)’지위를 부여주면서 탄압을 지속할 지라도 말이다.(오홍엽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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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종말
리민치 지음, 류현 옮김 / 돌베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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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페북 게시물에 정리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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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국가들 또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자본주의의 발전이 지방의 잉여 노동력을 고갈시킴에 따라 자본가와 노동자의 세력관계가 노동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비록 중국의 경제성장을 발목 잡을 정도는 아니지만, 중국의 노동임금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 공급이 줄어들고, 2세대 이주 노동자들이도시 환경에 적응하고, 노동자 계급이 계급의식을 형성해감에 따라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되찾고 전투적이 될 수 있다. 조만간 중국의 노동자들은 좀 더 자주 그리고 효율적으로 정치 투쟁 및 경제 투쟁을 조직할 것이다.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아마 10~20년 뒤에 중국 노동자 계급의 협상력과 조직력은 자본의 이윤율과 축적률에 상당한 압박을 가할 수 있을 정도까지 성숙할 것이다. 중국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패배는 신자유주의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21세기 새로운 중국 노동자 계급의 등장은 글로벌 세력 균형을 노동자 계급에게 유리한 쪽으로 다시 돌려놓을 것이다.

리민치 지음, 류현 옮김,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종말> 제3장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몰락 157-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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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민치는 덩샤오핑 집권을 ˝혁명 중국˝에서의 ˝친자본주의 반혁명˝이라고 보고,(개혁개방 정책과 천안문 항쟁 패배를 가리켜 중국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무장해제라고 규정했다.) 칠레에서의 피노체트 집권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확대된 계기로 본다. 그럼에도 중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노동자 임금이 상승하고 있고, 2011년 혼다 기업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고, 상하이의 한 공장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거리시위를 하는 것을 보면, 그의 생각의 전제가 잘못됐을 지는 몰라도, 중국 노동자들이 자국정부에 맞서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는 올바른 분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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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3-02-05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