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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창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니발 렉터
한니발 렉터... 나에게는 참 매력적인 이름이다. 비록 그가 사람을 죽여 그 살을 먹는 범죄자이긴 하지만, 여태껏 읽은 소설의 주인공중에서 이렇게 나를 매혹시키는 인물도 없었다. 아!"향수"의 그루누이는 제외하자...
내가 한니발 렉터라는 무시무시한 인물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밥먹는 일 보다도 쉽게하는 그 이지만- "양의 침묵"에서 우리의 렉터는 손끝하나 안대고 옆 감방의 죄수를 죽였다!-그를 거부할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의 엄청나게 방대한 양과 질을 자랑하는 그의 럭셔리 브레인 이다. 그는 어느 한 분야에서도 남에게 밀리거나 모자라지 않는다. 감방에 갇혀서, 펜이나 종이도 없이, 만만치 않게 스마트하다는 FBI요원인 스탈링("양들의 침묵","한니발")과 윌그레이엄("레드드래곤")에게 훈수까지 둔다. 법의학자에 심리학자... 그 두단어 앞에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한니발 렉터. 거기다 남들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기억력을 자랑하는 렉터... 안소니홉킨스와 혼연일체가 된 렉터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인물이다.(물론 렉터가 책을 찢고 튀어나올릴이 없으니까...^^;)
한니발의 과거-한니발라이징
"레드르래곤"-"양들의 침묵"-"한니발"로 이어지는 토마스 해리스의 연작들은 모두 한니발이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되고나서의 일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세 작품속에서 스탈링이나 윌그레이엄쪽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렉터보다 몸으로 뛰는 그들이 더 많은 출연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토마스해리스라는 작가는 지금까지의 모든 그의 작품에서 한니발만을 다루고 있다. 스탈링의 경우는 한니발에게 특별해서 연이어 "양들의 침묵"과 "한니발"에 나올수 있는 영광을 누렸지만, 윌그레이엄의 경우 "양들의 침묵"에서 술먹고 폐인됐다는 정도로 용도폐기되었다. 이런 정도만 보더라도 한니발렉터라는 인물에 대한 토마스해리스의 애정을 담뿍 느낄수 있지 않은가?
토마스 해리스는 이 한니발렉터라는 인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다시한번 세상에 드러냈다. 바로 "한니발 라이징". 이 책은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한니발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다. 왜 한니발이 인육을 먹고, 눈물하나없이 사람을 무참히 살해하는가? 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는 토마스 해리스가 그토록이나 매력적인 한니발렉터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어떻게 그의 매력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몇몇사람들까지 모조리 포섭해 렉터의 노예로 만들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내가 보기에 작가는 한니발렉터의 행위에 대한 적절해보이고, 타당해보이는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한니발 라이징"을 쓴 것 같다.
"한니발 라이징"은 십몇년동안 대중에겐 비밀로 쌓여있던 한니발의 어린시절을 이야기한다. 렉터 백작가문의 애지중지 도련님이었던 한니발렉터. 백조를 겁주고, 어린 여동생을 사랑했고, 가정교사를 들여서 지식의 폭을 넓혀가던 그는 전쟁이라는 큰 계기로 180도 변하게 된다. 그가 살고 있던 렉터성의 두터운 돌벽만큼이나 탄탄하고 견고했던 부모님과 여러 고용인들의 보호는 무너져내렸고, 그는 감히 제정신으로는 보지 못할 광경을 보게된다. 바로 동생의 죽음. 총에 맞아 죽었거나 전쟁중에 잃어버리기라도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것을....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비열한 인간들에 의해 살해당해 먹혀지는 것을 본다. 어린 소년이 겪어야했을 그 엄청난 충격이 어느정도였을지.. 짐작만간다.
아무튼 전쟁이 끝나고, 렉터는 고아원에서 작은 아버지부부에게 인계된다.
레이디 무라사키
아버지의 백작직함을 물려받은 작은아버지와 그의 아내인 레이디 무라사키. 예술가였던 렉터백작(작은아버지)와 레이디 무라사키의 보호아래서 렉터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레이디 무라사키는 렉터의 인생에서 여동생만큼이나 큰 영향을 렉터에게 끼친다. 얼마나 큰 영향이었냐면... 음... 렉터의 첫 살인이 바로 레이디무라사키 때문이었다면 어느정돈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과거 소년시절에 아버지와 가정교사가 렉터의 서양적 학문과 지식을 충족시켜주었다면, 일본인인 무라사키는 렉터의 동양적인 지식과 견문을 넓혀준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무라사키는 왠지 뜬 구름을 잡는듯하면서도 말 속에 뜻이 담긴 렉터의 현재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엄청난 일조를 한다.
전쟁중에 어머니를 잃은 렉터에게 있어서 무라사키는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또한편으로는 동료이기도하다. 무라사키가 원폭 피해지역 출신이라는 설정은 렉터에게 있어 두 사람이 전쟁이 준 엄청난 상처의 피해자라는 동질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림과 한니발렉터
그렇게 자신의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채 무라사키와 살아오던 렉터는 전쟁중 약탈당했던 가문이 소장했던 그림 한 첩을 접하고 새롭게 깨어난다.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이 잊으려고 노력했고 잊었던 동생의 죽음. 렉터는 자신이 구축한 기억의 성에서 그 장면을 찾아내고만 것이다. 렉터는 그림을 계기로 두려웠던 과거와 대면하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공권력으로 충분히 자신을 극한의 공포와 분노로 몰아갔던 파렴치한 인간들을 벌할 수 있었지만, 한니발 렉터가 선택한 것은 그의 손으로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정의를 실현하길 원했다.
워낙에 뛰어난 머리로,18세 때 의대생이된 렉터는 그의 뛰어난 머리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하나씩 하나씩 비열한 인간들을 처치해가는 한니발렉터의 모습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찾아볼수 없다.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과거를 각성하기 이전에 꿈에서 당했었을 괴로움과 고통, 그리고 동생의 고통을 그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때문에 숨어서 암살한다거나.. 이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는다. 당당히 앞에 나타나서 과거를 일깨운다. 그리고 가차없이 처단한다. 이게 렉터의 방식이다.
길고 힘든 복수의 과정이 끝나고, 레이디 무라사키는 그의 곁을 떠난다. 더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렉터는 홀로 남게된다. 무라사키도 떠나고, 그를 복수로 나서게 만들었던 그림들도 뜨거운 불길속에서 한점 재가 되어버린다.
이미 고아원이 되어 예전의 영광은 찾아볼수 없는 렉터의 성, 지워져버린 그림 뒤편의 여동생의 흔적, 사라져버린 레이디 무라사키. 불속에서 사그라든 그림들처럼, 렉터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부모님과 여동생과 행복했던 그시절도, 레이디 무라사키와 보냈던 시간도 렉터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 버렸다.
한니발 렉터의 화려한 귀환
몇년만에 나온 렉터 시리즈던가~! 이 책이 출간되기전에 내가 가졌던 엄청난 기대와 두근거림에는 조금 못미치는 것 같다. 뭔가 뜨겁게 달궈졌던 쇳덩이에 찬물 한바가지 뒤집어 부은 것 같다고 할까? 아무래도 내 기대치가 너무 컷던 탓인듯 한다. 하지만 그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렉터의 과거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왠지 내가 렉터의 기억의 성에 잠입한 기분이랄까?
이번에 나온 책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우리에게 유명한 공리가 레이디 무라사키역으로 나온다고 한다. 비록.. 나의 싸랑.. 렉터박사 안소니 홉킨스는 나오지 않는다지만.... 작가인 토마스 해리스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니.. 기대가 된다. 영화가 상영되는 그날 영화관에 달려가서 내 머릿속에 그려진 렉터의 과거를 비교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