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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 -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
에릭 파이 지음, 김민정 옮김 / 푸른숲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낮보다 아름다운. 밤
밤은 특별한 힘이 있다. 조용하고 어둡고, 또 까맣다. 너무 어둡고 까매서 한치앞도 볼수 없지만, 너무 조용해서 바닥에 떨어지는 바늘소리도 들을수 있을만큼 청각이 예민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모두들 죽은듯이 잠들어있는 이 시간에 죽은것같은 만물이 성장을한다. 뭔가 매력적인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내가 밤을 낮처럼 지새워봤던게 언제였더라? 아마 가장근래는... 시험때문에 도서관에서 날 새본게 가장 최근인것 같다. 11시가되면 교문도 잠기고, 도서관도 문을 닫는다. 도서관에서 빠져나온 친구와 나는 친구의 동아리방에서 다음날 시험볼 "전자회로"에 탐닉 ㅡ.ㅡ;했다.
학점과 시험에 쫓겨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지만, 조용한 침묵의 무게감에 괜시리 어깨가 뻐근하게 느껴졌다.
밤, 매력적인 힘
시험이라는 원흉탓이 아니라 내 자의로 날을 새고,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했던건... 대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던때였다. 그날이 대통령 선거날이어서, 아주 또렷이 기억이 난다. 한창 전국에서 개표가 진행되고 사람들의 관심이 그곳에 쏠려있을때, 나는 친한친구 두명과 별로 안친한 친구 하나와 함께 정동진행 기차를 타고 있었다. 일출을 보기위해 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집에서 가장 멀리떨어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차에는 우리일행 이외에도 아줌마들, 연인들..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모두들 시끄럽게 수다를 떨면서 시끌벅적하게 정동진으로 향할듯 했지만, 밤이라는 시간의 위력앞에 모두들 조용해졌다. 정동진에 도착할 때까지 사람들은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타입이라 날을 본의아니게 뜬눈으로 지샜는데.... 아직도 어스름한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던 - 곱게 쌓여있던 눈이 펼쳐진 광경을 잊지 못한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소리와 평범하면서도 새롭게 와닿던 그 날의 풍경... 나는 그날 밤이라는 시간이 가져오는 그 매력적인 분위기와 힘을 느낄수 있었다.
에릭파이, 꿈꾸는 여행자
에릭파이... 이 사람은 그 밤의 매력에 흠뻑 도취된 사람인것같다. 그는 밤이 주는 매력, 특히 열차를 타고 낯선곳을 지나가면서 익숙하지만 낯선 광경들을 보는 매력에 푹 빠진 사람임이 분명하다.그래서 그는 열차여행객이되어 열차가 닿은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까만 풍경을 지나면 새로운 곳에 도착해있는 진기한 경험들때문에 그는 열차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될 수 있으면 열차를 타고 여행하기를 즐긴다. 이건 아마도 그가 프랑스인... 유렵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커다란 유럽대륙을 관통하는 철도, 너무나도 다른 나라들이 철로를 통해 얼기설기 이어져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는 프랑스 근처의 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었다.
서유럽에서 동유럽,러시아에서 몽골, 몽골을 통해 중국까지.
그는 실로 어마어마한 거리를 기차의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여행했다.
그냥 앉아만 있었을 뿐인데...
시간이 저절로 뒤로 가는 경험도 하고, 때로는 알수 없는 그림같은 문자들에 둘러쌓이기도했다. 그는 열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공산주의국가에 불어온 민주화의 바람도 즐겼다.
어떠한 변화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그 변화를 즐기는 그의 모습 - 알수 없는 말을 억양을 달리하며 내뱉어 보기도 하고, 문자를 그려 보기도 한다. -은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는 자유인이었고, 그 자체가 완벽한 여행객의 자세였다.
경의선에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오감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그 자체를 만끽하는 에릭파이를 보고 있자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남은 저러고 다니는데.... 난 지금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아마 그때 난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과자를 먹으며 따뜻한 온돌의 기운으로 온몸을 지지고 있었을거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감을 갖게됐다.
경의선 철도위로 기차가 달릴수가 있다면, 나도 에릭파이처럼 여행을 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울란바토르나, 프랑스의 어디 시골역에서 정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말이다.
하루빨리 경의선 철도위를 달려서 에릭파이가 온 길을 되집어 가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