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군이 아시아 대륙 내에 유일하게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미국 정부는 소련과 중국을 견재하기 위한 기본 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발표했으나 4만명의 미군과 현장 핵무기를 철수시킬 계획은 없다. 최근까지 그들의 과제는 한국과 미국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라면, 한국의 분단 상황을 고착시켜 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p24
'한국과 미국'이 아니라 '미국'이겠지...
아시아 본토와 인도양에서의 전력 투사(power projection) 차원 이외에도, 그 기지들은 미국이 주권국의 내정을 간섭할 수 있는 발판으로 이용되어 왔다. 예를 들어 팔리핀의 클라크와 수빅 기지는 정부군이 반군을 진압하는 것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미국의 필리핀 내정간섭 사건으로 가장 널피 알려진 예는 1989년 12월에 발생한 사건으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반곤을 향해 클라크 기지의 팬텀 전투기가 "위협 비행"을 했다. 한국에서는 1980년 5월 한미연합사령부의 미 사령관이 결정적 시점에서 군대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여 유명한 광주학살이 자행되었다. p25
북한의 특수부대가 잠입해서 벌인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뇌가 있는건가.
<성의 정치 성의 권리>를 읽고 기지촌 성매매에 관련해 궁금한 것이 있어 찾아 읽은 책이다.
나는 경기도 동두천시에 거주하고 있다. 동두천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이곳이 기지촌이라는 것을.
나는 이곳에 2002년도(월드컵으로 동두천에서 발생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다 거려진 그때)7월에 직장을 갖게 되면서 인천에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곳의 첫인상은.
1.시골이다.시골이다.시골이다. 공기 좋다.
2.외국사람 많다.(이곳에 와서 외국사람을 처음 보았다....)
3.동네가 참 좁다.(한두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거나 부대에 근무했거나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사람들이다.
뭐 이정도 였는데, 출근한 첫날 회식겸 동료들과 술자리에 가졌었다. 시내라고 해봤자, 삼겹살집이나 감자탕집 실내포차 몇군데가 있는 곳이 였고, 아마도 내 기억엔 감자탕을 먹었던것 같다. 아..근처에 '칠리'라고 불리던 집창촌도 있긴했다.
2차로 보산동에 클럽을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곳이 미군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 업소들을 말하는것은 알지 못했다. 2002년 당시에도 한국인 종업원은 바텐더 한명 정도 였고, 90%는 필리핀쪽 여성들 나머지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쪽 여성들이 있었다. 동두천 부대 주변에는 그당시 꽤 많은 클럽들이 있었고, 한국인은 출입이 불가한 곳도 있었는데,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비키니가 유니폼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쥬시걸'이라고 불렀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음료수 한잔에 그때 당시에도 거의 만원정도의 가격이였다. 그 음료를 마셔야지만 '쥬시걸' 여성들이 미군들과 상대를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두잔 사 주다가 마음이 맞으면 아는 것처럼 2차라는 것을 나가게 된다.
한국인 여성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에 법칙에 따라 한국 여성은 인기가 아주 좋았다. 언제부터 기지촌에 필리핀이나 러시아쪽 여성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는지는 알수 없지만....이곳에서도 인종차별은 명백히 드러났다. 그때 당시 백인 장교들은 필리핀 여성과 교제하지 않았다. 미국사람들 입장에서야 필리핀이나 한국이나 똑같이 못사는 나라였을텐데도 사병들이나 필리핀 여성과 동거하거나 결혼했지 백인 장교들은 절대로 필리핀 여성과 교제하지 않았다. 그들 나름의 불문률이였듯 싶은데, 현재는 이곳에 오는 미군들의 수준이 그때보다 더 엉망인지라, 그런 불문률은 더이상 지켜지지 않는듯 보인다. 그렇게 동거를 하다가 아이가 생기고 미군이 다른 곳으로 전역 가게되면, 필리핀 여성들은 아이와 함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 버려진다. 아이가 생기자마자 버려지거나, 공항에서 버려지거나. 미국에 데려간 후에 버려진다.
이렇게 언제든 버려질수 있고, 술에 취해 또는 약해 취에 언제든 죽임을 당할수도 있는 이곳에서 그녀들은 왜 떠날수 없는 것일까? 1달러면 필리핀에서 담배 4갑을 살수 있고, 30만원이면 4인가족이 그럭저럭 먹고 살수 있는 돈이라고 했다. 집이 가난해서 왔다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대학생 또는 전문직 종사자 등등 고국에서 꽤 괜찮은 직종에 있던 사람들도 이곳에서 매춘을 하고 있었다. 물론 고국에 아이와 가정이 있는 유뷰녀 또는 이혼녀들도 엄청나게 많다.
필리핀, 한국, 일본의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인터뷰가 많은 비중을 차지 하는데, 확실한 취재 연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내용과 첨부된 사진으로 보아 대략 1980-1990년도 사이인듯 하다.
인터뷰한 여성들의 사연은 저마다 구구절절하고 또 구구절절하지만, 결론은 가난이였다. 죽지 않고 먹고 살려고 농사부터 식모살이 공장노동자, 식당 종업원 등 성실하게 아니 피튀기게 일했지만, 벗어 날수 없는 가난때문에 또는 이미 어릴때부터 가족이나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학대 받은 여성들이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이 매춘인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매춘으로 돈을 벌어서 그 가난에서 벗어 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임신을 해서 버림 받고, 변태 손님들에게 목숨을 위협 받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지만, 돈은 거의 받지 못한다. 포주에게 일 시작 전부터 빚을 지고 시작하는 시스템은 어느 기지촌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더이상 갈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이 그녀들이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수 있는곳이며, 혹시라도 맘씨 착한 미국사람이 자신을 이곳에서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본인도 믿지 않는 희망때문이다.
또한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미군기지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할 때 항상 간과되어 왔던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매춘굴과 클럽에서 일하는 현지 여성들이 두 남성 집단, 즉 외국군인과 현지 남성 사이를 매개한다는 사실이다. 이 두집단이 동시에 거론된 적은 거의 없지만, 이 기획에 참여해 온 여성들은 그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들은 현지 애인이나 남편과의 관계가 어떤게 자신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클럽 업주들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조건을 형성했는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외도, 폭력적 기질, 얼마되지 않은 수입의 낭비, 불성실한 아버지 역할 등, 여성들과 관련된 현지 남성들의 행태는 여성들이 매춘에 종사하게 된 주요 동기가 된다. 이는 아이들에게 관한 애기도 빼놓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대부분늬 여성들에게는 자녀가 있다. 일부는 아버지가 현지 남성이고 일부는 외국군인이 아버지다. 매춘과 아버지 역할, 이 둘은 여성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p36
아키노와〔전〕부시 행정부 사이의 협정초안에는 매춘여성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담지 않았다. 여전히 어떤 군사협전이든 기지 군인들의 비군사적 "요구"(가부장제가 항상 그자체로서 정장하다고 간주해온 요구 중 하나인 성적 서비스)에 응할 수 있다는 해당 국가의 능력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군국주의와 성차별주의는 가부장제라는 한뱃속에서 태어난 쌍둥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평화와 진보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내내 인류의 역사를 혼란스럽게 해왔다. p51
현지 남성의 폭력과 가난으로 부터 도망친곳이 외국 남성의 폭력과 가난이라니, 이것을 과연 선택이라 부를수 있는 것인지.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고 한가지 알게된것은 결국 문제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라는 것이다.
'설치고','떠들고','생각하자'.
그렇게 당연하다고 여겨져 왔던. 이 불평등한 권력의 고리를 한땀한땀 끊어보자.
덧글. 기지주변 도시들은 대체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미군대상의 유흥업으로 경제를 꾸려가는 도시가 더욱 보수적이라니....부대 이전에 관련해 수십년 전부터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 슬슬 정말 옮길것 같기는 하다. 부대가 이전하면 미군들이 먹여살리던 동두천 경제는 망할 꺼라고 이야기 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것이다. 이곳에 지하철이 생긴이후 미군들은 더이상 동두천 클럽에서 쥬시걸과 놀지 않는다, 홍대로 나아가 그린카드를 노리는 한국 여성들과 어울리니까.(미군들이 뻐기면서 자랑한다 쓰읍........) 기지가 그 도시에 제공해줄수 일자리라는 것은 고작해야 매매춘이나 유흥업, 아니면 미군 상대의 부동산 수입 정도일 뿐인데, 그것이 과연 그 도시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될수 있는 방편일까?
마지막으로 열터지는 글하나.
하긴 1950년대에는 이보다 더 치사스러웠을 것이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 의정부 근처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던 한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금요일 밤만 되면 0.5톤 트럭이 흔들거리며 기지내로 들어와선 그날 밤이나 주말 내내 머물게 될 몇 백명의 여성들을 쏟아놓고 갔다고 한다. 최근 한국인들은 전쟁터에서 군대의 "위안부"로 삼기 위해 일본인들이 강제로 전선으로 끌고 갔던 한국 여성들에 관해 새롭게 발견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록들을 중요시하고 있다. 일본인처럼 방과 판자를 주는 대신 미군들은 0.5톤 트럭에서 내린 여성들에게 현금을 지불했으니 그와는 아주 다르다고 할것인가? 여성들을 "납치"한 흉악한 일본인에 대한 반감 때문에, 트럭에 실려 온 여성들은 이런 일을 스스로 "원했고",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에 불과한 시장이라 여성들이 이를 "자유롭게 선택한"것이라 할 건가? 그렇다면 1950년 가을, 전시의 서울에서 미군이 정치적으로 의심스러운 300여 명의 한국 여성들(주로 공산당원과 인민위원회 지도자)을 창고에 가둬 놓고 이들을 마음대로 이용했다고 밝힌, 미군에 의해 생포된 북한군 목격자의 내부보고서가 1급 비밀이 된(최근에서야 비밀해제 되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p209-210
경제권, 자주권...또 권력 문제로군...
책에 첨부된 성매매 여성들의 숙소 사진 인데, 내가 2002년도에 갔을 당시와 거의 같다.
나의 첫방은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에 공용화장실, 부엌은 없고, 방문은 창호지가 발린 미닫이였다.
사진과 비슷한 모습.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15/pimg_7012461961240544.jpg)
초원식당이 정말 오래 되긴 했나보다.
나름 짬뽕이 유명한 곳이여서, 짬뽕이랑 탕수육에 소주 한잔씩 하던 곳인데...
점심은 짬뽕을 먹어야 하나 흠흠..
아, 그리고 저 오뚜기 문구 완구는 아직도 있다.
참..기지촌은 정말이지 변하지 않는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15/pimg_701246196124054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