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넌트 (하숙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 로만 폴란스키 외 출연 / 예중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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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전작인 로즈마리의 아기에 비하면 덜 알려졌으나 현대사회의 집단주거와 그로 인한 사회문제를 미리보는 문제작입니다. 영화 제목인 tenant는 글자 그대로 세입자를 의미하며 공동주택의 일종인 맨션이 주무대가 됩니다.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가 직접 평범한 회사원에서 광기의 극한으로 치닫는 광대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입니다.

헌법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은 온통 사생활 침해로 얼룩져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 온라인 쇼핑, SNS의 발달로 개인정보보호법이 만들어질 정도이고,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으로 금전적인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개인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는 법과 사회에 의해 보호되기보다 외부로 노출되고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용되기 일쑤입니다.

대도시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많은 인구를 수용할 아파트 같은 주거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파리가 그러했고 지구 반대편 현대의 서울이 그렇습니다. 1956년 서울에서 아파트가 등장한 이후 서울과 경기 일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아파트가 세워졌습니다. 한편 아파트 가격의 폭등과 고가 형성으로 많은 다세대 주택이 대안으로 세워졌습니다. 이에 건축 및 공동주택 관련 법령이 제정되고 제도 개선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건축 및 공동주택 법령이 헌법의 취지에 따라 개인의 사생활을 충분히 보장하는 지는 의문입니다. 이는 건축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시행사•시공사의 자본주의 논리와 강한 규제보다는 완화된 법제도에 기인합니다. 알다시피 우리 법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일수록 유난히 친절합니다. 사기업이 공익을 위해 충성할 리는 없으므로 법제도가 사회문제 이전에 시공 단계부터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영화 속의 트렐코프스키는 주거공간이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지 못함으로써 무너진 개인을 표상합니다. 실제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살인 사건들을 흔하게 접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몇 가지 생각이 언뜻 떠오릅니다.

1. 법제도의 개선: 현재의 공동주택에서는 사생활의 자유가 대립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유를 억제하기보다 시공과 시공 이후 단계에 걸쳐 기술적인 개선은 물론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령을 보완하고 엄격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한번 형성된 주거공간은 평생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같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주거공간의 설계: 주거공간이 주거복지입니다. 법제도는 주거복지를 고려한 설계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아파트, 다세대주택의 저품질의 주거공간은 물론 한국 특유의 쪽방, 고시원, 반지하 등 협소하고 열악한 공간 형태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주거공간으로 설계돼고 관리돼야 합니다. 아파트도 그렇지만 다세대주택은 훨씬 더 심각합니다. 주거공간이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다면 그에 걸맞는 주거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3. 공공임대주택의 장려: 공공주택을 점차적으로 늘려 전세 사기 등 범죄를 차단하고 대출, 전세보증보험 등 불필요한 사회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특정 계층으로 한정된 대상에서 서민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여 혐오 대상이 되지 않도록 공공주택의 위상에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이는 결국 현재의 낙후된 자가율에서 드러날 것이며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를 완화할 것입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영화는 1970년대의 옛 영화라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심리 스릴러로써, 특히 폴란스키 덕후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전성기는 1960-70년대에 두드러지는데, 혐오, 로즈마리의 아기, 차이나타운, 테스 등에서 잘 나타납니다. 한편 혐오의 카트린 드뇌브, 로즈마리의 아기의 미아 패로, 테넌트의 이자벨 아자니, 차이나타운의 페이 더너웨이, 테스의 나스타샤 킨스키 등 여배우들의 경이로운 미모도 재미를 더합니다. 최근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장교와 스파이에서도 폴란스키의 역량이 훌륭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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