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
권내현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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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의 노비 만적을 배울 때 훨씬 오래전 트라키아인 스파르타쿠스를 생각지 못했다. 노비는 흔히 말하는 노예를 일컫는데, 만적이나 스파르타쿠스의 저항은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탠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나 넷플릭스의 스파르타쿠스가 찾던 것은 모두 자유였다. 마찬가지로 만적이 찾던 것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예에게 자유란 단순히 누군가의 소유물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무언가를 열렬히 원하고 되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 어머니의 열망으로 9년간 의사가 되기 위해 대입 시험을 치러야 하는 딸이 있었다. 끝내 이 허황된 열망으로 딸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노예로써 간호사가 아닌 의사가 되어야만 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사회적 지위 이전에 시험 점수가 가로놓여 있다. 그녀는 시험 점수로 의사가 되지 못해 간호사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자유는 간호사를 가르키고 있었다.

조선 후기 한 노비는 왜 끊임없이 양반이 되려고 했을까? 비슷한 시기의 유럽, 독일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고졸 출신으로 선배인 라이프치히대 법대 출신의 텔레만을 동경하였다. 바흐 자신은 대학을 가지 못했지만, 아들 빌헬름 프리데만과 칼 필립 엠마누엘을 명문 라이프치히대에 입학시켰다. 텔레만이나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두 아들을 보면 음악에 재능을 가진 이들이 왜 명문대 법대에 가야 했을까를 물을 것이다. 노비 김수봉과 그 자손들의 머릿속은 양반인 유학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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