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
김수철 지음 / 까치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음악계에서 작곡 겸 연주(노래)를 하는 음악인은 흔히 보게 된다. 김수철은 한때 원맨밴드라는 음반으로 다재다능함을 알렸다. 그런 그를 우연히 EBS 방송에서 보았다. 그가 우리나라 음악인 국악에 그렇게 많은 헌신을 했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크로스오버가 흥한지는 이미 오래되어 국악인이 서양음악과 협연한다든가 서양음악가가 국악적인 소재로 작곡한다든가 하는 등의 식의 음악들은 많이 보아 왔다. 피아노로 우리 음악을 연주하던 임동창도 그렇다. 하지만 대중음악 장르에서 국악으로 발을 옮기며 음악적 성취를 이룬 이는 많지 않다.

그 당시에는 전혀 못 들었던 기타 산조, 불림소리, 불림소리2, 팔만대장경을 차례로 들어 보았다. 지금 들어 보아도 전혀 낡거나 해묵은 느낌이 없다. 기타 산조는 산조 음악의 대중적 표현인데, 파헬벨의 캐논을 전기 기타로 연주하던 러시아 밴드 느낌이 나거나 흥얼거리는 블루스 기타의 기분도 들었다. 아주 좋았다. 불림소리는 서양 클래식 장르의 난해함도 느끼게 하지만 공감의 경계 안에 있었고 팔만대장경에 이르자 서편제 음악이 이렇게 나왔구나 하였다. 양방언 풍의 음악도 떠올리게 했다. 그의 음악적 성취는 이렇게 영화음악에서 흥하였구나 하였다.

언젠가 한국에서 황제 대접을 받으며 서양음악을 연주하던 음악가가 있었다. 그는 외국에서의 성공과 평판으로 한국음악계에서 신같은 존재였다. 그의 음악은 서양음악이 다이고 (한국인이 연주하니) 한국적인 것은 연주밖에는 없었다. 클래식을 아주 좋아하지만 서양음악만 하는 음악가보다 한국음악가 김수철이 더 자랑스럽다. 그의 음악은 BTS의 음악과는 다르지만, 빌보드나 그래미 어워드에서 오르내리지 않더라도 BTS 이상의 음악적 가치가 있다. 예술가 정신이란 권위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음악에 대한 헌신과 깊은 이해, 그리고 공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음악계에서는 장르 간의 편견과 차별이 있었을 테지만 음악을 듣고 즐기는 이에게는 어떤 편견과 차별도 방해되지 않는다. 클래식이란 오랜 시간의 숙성 속에서 듣는 이의 귀에서 발효되는 깊은 맛이다. 그것은 서양음악만을 가리키지 않으며 어느 지역에서는 코토 음악이나 그것의 대중화된 표현일 수도 있다. 그것은 장르의 자유이자 통섭으로 해석되어 새로운 음악이 될 수도 있다. Max Richter의 사계처럼 새로운 음악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

(해방 이후 아니면 그 훨씬 이전부터 한국어나 한국 문화, 한국적인 것을 선택한다거나 서양적인 것이 아닌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더 이상 돈이 되거나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아직까지 한국사가 고등학교에서나 각종 시험에서 필수인 것은 자못 다행한 일이다. 반대로 영어나 서양적인 것이 돈이 되고 값어치 있는 것이 되는 현실에 아무도 슬프다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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