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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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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 엘킨은 미국 뉴욕 출신으로, 현재는 프랑스 시민권을 얻어서 파리와 리버풀 (그리고 아마도 뉴욕도)을 오가며 살고 있다.
이 책은 문학 비평가인 그녀가 뉴욕에서 파리로 이주하고, 글을 쓰기 위해 베네치아에 머물고, 남자친구를 따라서 일본 도쿄로 가고, 그간의 여정을 따라서 느꼈던 도시 산보자의 느낌을, 앞서 도시를 걸으며 표현의 자유를 쟁취해 냈던 여성 예술가들의 횡보를 추적하면서 쓴 책이다. 선구자들의 횡보는 저자 로런 엘킨의 자아찾기와도 이어진다.
앞선 여성 예술가들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무렵은, 여성이 혼자 거리를 걷는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샤프롱과 함께야만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노동 계급에 있던 여자들은 거리에 나왔다. 판매원으로도 일하고, 심부름도 했고, 더러는 성매매자로도 일했다. 그들은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다닌 것은 아니었다. 반면 남자들은 자유로웠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 도시를 자유롭게 걸어다니며 관찰하는 산보자를 칭하는 플라뇌르의 여성형으로 작가가 만든 신조어라 한다. 사전에는 아직 등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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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각 도시를 걸어다니며 발로 쓰는 지형도를 그리며, 골목 골목을 보고 냄새 맡으며, 도시에 대해 쓰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등등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도시와 어울렸던 여자들을 만난다. (p28)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조르주 상드,아녜스 바르다, 마사 겔흔 등이 그 주인공이다. 로런 엘킨이 도시를 걸으며 그녀들을 만나면서 들려주고 보여주는 글, 영화 등을 독자인 우리도 함께 읽고 보며, 앞선 여성 예술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이 발견하고 말하고 싶어한 것을 표현할 자유를 투쟁하며 얻었는지, 아니 가졌는지 알게된다.
이 책은 단순히 공간을 되찾으려 하는데 그치지 않고 억눌린 지성과 문화의 역사를 되찾는다. 걸어다니는 여성의 이미지를 재정의하고 남성의 시건을 전복할 방법을 찾는다. (파이넨셜 타임스) 공간뿐 아니라 시대를 가로지르며, 여성 산보자들은 정처없이 떠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색을 통해 자기가 관찰한 삶에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며 새로이 만든다.(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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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되지 않지만, 자유 여행으로 여러 도시를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가능한 많은 것을 눈에 담아오기 급급했다. 최근 유행했던 한달 살기 프로젝트라면 조금은 더 그 지역을 경험하고 체화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작가가 방문한 도시 중 내가 경험한 도시는 그 묘사 속에서 바로 추억속에 풍덩 뛰어들게 한다. 비록 문화 소비자에 불과한 나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다시 그 도시들을 방문할 기회가 온다면, 다시금 여유롭게 걸으면서 그 도시를 냄새 맡고 체험하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이전보다는 더 세밀하게 관찰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외국의 도시뿐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서울도 곳곳을 다시 체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인식하고 도전해야겠지. 그 경계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된다. 인생의 후반부를 달려가는 지금 이 시점에도, 여전히 인적없는 어두운 밤길은 선뜻 내딛기가 어렵다. 여행중에서도 해가 지면 숙소로 가능한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곤 했다.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여자들에게 용기를 가져야하는 것인지? 이 책은 걷기 예찬으로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걸을 자유, 생각의 자유, 행동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읽다보면 나서고 싶게 한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멀리 외출하기가 힘든 요즘, 동네에서라도 하루 1시간 걷기를 생활화 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 블로그의 타이틀도 미앤더링(meandering)이라고지었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정처없이 걷는다는 의미로. 블로그에서는 정신적인 걷기 의미가 더 크지만. 추천한다.
책 속으로//
p42> 걷기는 발로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걸어서 돌아다님으로써 도시를 잘 알게되었다는 데에서 오는 작은 기쁨이 있다..
나는 걷기가 어떤 면에서 읽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걷는다. 걷기를 통해 나와 무관한 삶을 엿보고 대화를 엿듣고 비법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거리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도시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란히 걷는다.
p421> 공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공간은 페미니즘의 이슈 가운데 하나다.....테헤란이든 뉴욕이든, 멜번이든 뭄바이든, 여자는 여전히 남자와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없다...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누가 어디에 갈 수 있을 지 경계를 표시하는, 형태가 없는 관습의 문이 있다....보이지 않는 가치가 우리가 도시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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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