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으면 죽고 말테니까 [2010.10.15 제831호]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세상의 모든 상처와 억울함을 자기 탓인듯 고뇌하는 임철우의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
 
 
 
 


 
 


 
 


» 이별하는 골짜기/문확과 지성사
 
 
 

27살의 청년 임철우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베드로처럼 친구와의 약속을 세 번 부인하고 죄의식에 못 박힌 채로 상경했을 때, 그는 또 한 번 절망해야 했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그를 통곡하게 만들었던 광주의 그 비극이 1982년의 서울에서는 한낱 풍문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억울하고 원통해서 보름 동안 자지 못해 광기의 문턱에까지 간 어느 날 그는 신들린 듯 기도를 토해낸다. “하느님. 제가 그날을 소설로 쓰겠습니다. 목숨을 바치라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날 이후로 7년 동안 구상하고 10년 동안 집필한 소설이 <봄날>(문학과지성사·1998) 전 5권이다.

<봄날>이 완간된 직후 발표된 자전적 단편소설 ‘낙서, 길에 대하여’(<문학동네> 1998년 봄호)를 읽고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았다. 이 소설은 지금껏 내가 읽은 것 중 가장 고통스러운 자기 고백의 하나다. 2005년 이래로 매년 한신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 소설 얘기를 해주었다. 80년 광주를 아는가, 당신들의 스승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들을 짐짓 힐난하면서 말이다. 언젠가는 당황스럽게도 저 소설의 참혹한 고통이 내게로 건너오면서 목이 떨리고 눈물이 고여와 잠시 강의를 멈추어야 했다. 이듬해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내 눈물이 가소로워서 나는 이제 저 소설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의 다른 책을 이후에도 계속 읽어왔지만 나에게 작가 임철우는 저 자전소설 속의 참혹한 간구와 더불어 기억된다. 6년 만에 출간된 임철우의 새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사)는 어떤가. 외로움을 호소하는 다방 아가씨의 전화를 매몰차게 끊어버린 젊은 역무원 정동수가 그녀가 그 통화 직후 자살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자책하는 이야기, 한 남자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평생 고통받으며 시골 간이역 마을에서 속죄하듯 살아가는 역무원 신씨의 이야기가 잇달아 펼쳐진다. 두 남자의 모습은, 내게 각인돼 있는, 82년 서울의 한 자취방에서 자책하며 통곡하던 청년 임철우의 모습과 겹친다.

이 작가는 변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세상의 모든 억울한 죽음이 자기 탓인 양 자책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몸과 목소리를 빌려준다. 그의 문학은 증언에 헌신하고 해원에 앞장선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세 번째 이야기는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갔다 돌아온 ‘전순례’ 할머니의 삶을 복기한다.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작가는 또 얼마나 고뇌했을까. 앞서 언급한 자전소설에서 작가는 이미 백마역 역사를 매일같이 지키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보고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 증언과 해원에도 십수 년이 걸린 셈인가.

이 이야기들이 특유의 서정성과 함께 강물처럼 흘러간다. 작가를 운전자에 비유할 수 있다면, 차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유려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운전자가 있고, 차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하는 운전자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 교감하고 연대하기를 바라는 것이 전자의 염원이라면, 이야기라는 장치를 의심해야만 이 세계를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 후자의 전언이다. 전자의 안이함이 답답할 때 후자를 읽고, 후자의 허세가 피곤해질 때 전자를 읽는다. 그러나 임철우의 문학은 이런 느슨한 구분을 민망하게 한다. 그는 유려하면서 또 치열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2010)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네 가지 동력 중 하나로 ‘역사적 충동’을 들고, 이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라고 규정했다. 우리 시대의 작가들에게서 이런 충동이 희귀해졌다. 그것은 역사학이 할 일 아니냐고? 역사는 세상의 길에서도 흐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도 흐른다. 그 마음의 역사를, 소설가가 아니라면 누가 기록할 것인가. 위악적으로 말하면 평론가는 ‘감동에 저항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울어버려. 울어버려야 해. 안 그러면 너는 죽고 말아.”(50쪽) 이런 울음 같은 임철우의 소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감동적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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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연민   

                        D H로렌스

결코 야생의 것들이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 보지 못했다.
작은 새는 가지에서 얼어죽어 떨어질 것이다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추호도 하지 않으며  

우리는 야생이 아니어서 연민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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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만 바쁘다 - 이정록 동시집
이정록 지음, 권문희 그림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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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이정록




새는 

다 날아갔다. 




오소리는 

굴을 잘 막았을까?




하늘다람쥐는 

불길보다 빨리

나뭇가지를 건너뛰었을까?




새소리도 

다 날아갔다.




둥우리 속

새알들은 어찌 됐을까?




빨간 토끼 눈은

어딜 보고 있을까?



산불을 보며 새와 오소리와 하늘다람쥐를 염려하는 마음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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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수학이 좋아졌다! - 놀면서 배우는 만만한 수학 토토 과학상자 20
함기석 지음, 정승희 그림, 권오남 추천 / 토토북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온 몸이 아프다' 할 때의 온은 백(100)의 옛말이에요. 몸 백 군데가 아파 성한 곳이 없다는 뜻이죠.  

'두만강'의 두만은 만(10000) 의 옛말 드먼에서 유래된 것으로 만 가지 물줄기를 가진 강이라는 뜻이에요. 옛 시조 '이 몸이 죽고 죽어 골 백번 고쳐 죽어'에서 골은 경(10,000,000,000,000,000)의 옛말이에요. 골백 번이 얼마나 큰수인지 상상이 가나요? 

그림과 말투는 저학년용인데 내용은 원주율, 좌표등을 알아야 하는 6학년용이다. 어른 눈높이에서는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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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이름으로
보편적인 상식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삶의 처지에 따라 계급에 따라 상식은 다르다. 심지어 이명박 씨의 몰상식 역시 적어도 그 자신에겐 엄연한 상식이다. 세상은 상식과 몰상식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상식으로 나뉘며, 어떤 세상인가는 결국 어떤 상식이 세상을 지배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유행하는 ‘상식의 회복’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말해서 이명박 씨가 물러나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들, 생존보다는 정신적 고통과 미감이 문제인 사람들의 상식의 회복인 셈이다.
자신에게나 해당하는 상식을 보편적인 상식인 양 주장하는 건 매우 염치없는 일임에 틀림없지만, 사실 그런 주장은 근대 이후 역사 속에서 단지 정신적 고통이나 미감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악의 세력이 최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세상을 장악하는 데 늘 사용되어왔다. 그 주장은 프랑스 혁명에서 부르주아들이 왕과 귀족으로부터 세상을 빼앗기 위해 인민을 동원할 때 사용되었으며, 김대중 씨가 군사 파시즘 세력으로부터 정권을 빼앗기 위해 수십 년 동안의 민중/노동 운동의 성과를 독식할 때 사용되었으며, 그와 노무현 씨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이면서 인민의 시선을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 돌리기 위해 사용되었다. _24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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