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3분고전 - 내 인생을 바꾸는 모멘텀 3분 고전 1
박재희 지음 / 작은씨앗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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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채를 줄이고 세상의 눈높이에 맞춰라! 화광동진(和光同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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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김수영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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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릴케)”는 말 앞에서 오래 마음이 들리던 시절, 움직이는 비애란 말은 “내 속엔 언제나 비명이 살고 있다(실비아 플라스)”라는 구절과 함께 내 정신을 내리치는 죽비였다.
움직이는 비애가 내면을 훑고 지나갈 때 나는 시詩라는 위독한 병을 철저히 앓을 수 있었다. 정신의 지문指紋 같은 이 한 구절은 내가 초극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며 시작詩作에 가해야 할 박차이다. 오늘도 시가 내게 묻는다.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고. [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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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 문학과지성 시인선 390
김광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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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돌에 한 발 올려놓고 

헌 신발 끈 조여 매는데 

툭 

등 위로 스치는 손길 

여름내 풍성했던 후박나무 잎 

커다란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가을 나무의 기척 

'나무의 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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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詩 / 정일근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숭어 새끼는 동어,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 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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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4-1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를 읽던 중이어서 더 반갑네요. 물고기 새끼들의 이름이 왜케 정다운지요.
 
봄꿈을 꾸며
김종해 지음 / 문학세계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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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꿈을 꾸며 / 김종해

 

만약에 말이지요, 저의 임종 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

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

하느님께서 하문하신다면요,

저는 이월이요.

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

바로 언덕 너머 꽃 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네, 이월이요. 한 밤 두밤 손꼽아 기다리던

꽃 피는 봄이 코앞에 와 있기 때문이지요.

살구꽃, 산수유, 복사꽃잎 눈부시게

눈처럼 바람에 날리는 봄날이

언덕 너머 있기 때문이지요.

한평생 살아온 세상의 봄꿈이 언덕 너머 있어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행복했었노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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