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 - 허아람의 꿈꾸는 책방
허아람 지음 / 궁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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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마음속에 와닿았던 한 줄의 문장으로 오늘 하루 내 삶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의 의지가 생긴다면, 책은 그것으로 충분한 자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책을 한 권이라도 가까이 두시기를 바랍니다.(486쪽)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많은 책들, 많은 음악들, 많은 다짐들  

그토록 아름다운 다짐들을 만났다.  

읽지만 말고, 듣지만 말고, 느끼지만 말고 

내 생으로 흐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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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사람들은 대단합니다. 예술가의 단독성을 존경합니다. 시인 김언희는 하나였습니다. 김언희라는 시는 유일했습니다. 지금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첫 15년은 혼자였습니다. 지독히 직시하는 타입이었습니다. 진실에 도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념이나 문화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섹스와 똥오줌과 시체에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노래했습니다. 시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교성인 줄 알았는데 괴성이었습니다. 곡성인 줄 알았는데 환성이었습니다. 적나라하고 처절했습니다. 동시에 경쾌하고 번뜩였습니다. 100살 마녀처럼 지혜롭고 꼬마숙녀처럼 용감합니다. 여자 시인인데도 대단하다? 어떤 남자 시인도 이렇게 못 씁니다. 최근에 네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제목이 <요즘 우울하십니까?>입니다. 어떤 시인을 이해하려면 물어야 합니다. 그가 견디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참아주었네, 아침에 맡는 입 냄새를, 뜻밖의 감촉을 참아주었네, 페미니즘을 참아주고, 휴머니즘을 참아주고, 불가분의 관계를 참아주었네, 나는 참아주었네 오늘의 좋은 시를, 죽을 필요도 살 필요도 없는 오늘을, 참아주었네, 미리 써놓은 십년치의 일기를, 미리 써놓은 백년치의 가계부를, 참아주었네 한밤중의 수수료 인상을, 대낮의 심야 할증을 참아주었네 나는, 금요일 철야기도 삼십년을, 금요일 철야 섹스 삼십년을, 주인 없는 개처럼 참아주었네, 뒷거래도 밑 거래도 신문지를 깔고 덮고 참아주었네, 오로지 썩는 것이 전부인 생을, 내 고기 썩는 냄새를, 나는 참아주었네, 녹슨 철근에 엉겨붙은 시멘트 덩어리를, 이 모양 이 꼴을 참아주었네, 노상 방뇨를 참아주었네, 면상 방뇨를 참아주었네, 참는 나를 참아주었네, 늘 새로운 거짓말로 시작되는 새로운 아침을, 봄바람에 갈라터지는 늙은 말 좆을,”(‘나는 참아주었네’ 전문)

견뎌온 것들의 목록입니다. 따져 읽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좋습니다. 말들이 춤을 춥니다. 리듬이 살아 있습니다. 이미지가 싱싱합니다. 그래도 짐작해보겠습니다, 그녀가 무엇을 견디는지. “아침의 입 냄새”는 남편입니까. “뜻밖의 감촉”은 성추행입니까. 한쪽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면 다른 쪽에서는 휴머니즘을 말합니다. 이 평행선이 피곤합니까. “십년치의 일기”를 미리 썼답니다. 그만큼 빤한 일상입니까. “백년치의 가계부”를 미리 썼답니다. 가정경제가 쳇바퀴입니까. “수수료”와 “심야할증”이야 말해 뭐합니까. 기도는 허망하고 섹스는 지루합니까. “뒷거래”는 위선적이고 “밑 거래”는 폭력적입니까. 그렇습니까? 이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을 참아왔습니다. 참으면 새 아침이 옵니까?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늘 새로운 거짓말만 옵니다. 그래서 허무합니다. 인간은 고기 덩어리, 인생은 곧 썩는 과정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북두칠성의 여덟 번째 별// 내가 사랑하는 것은/ 혓바닥에 구멍을 내고야 마는 추파춥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아침 새를 잡아서 발기발기 뜯고 있는 고양이//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발광하는 입술과 피를 빠는 우주// 내가 사랑하는 것은/ 지금 막 방귀를 뀌려고 하는 오달리스크// 내가 사랑하는 것은/ 직장(直腸)에 집어넣은 탐스러운 폭탄// 내가 사랑하는 것은/ 벼락 맞을 대추나무에 열린 벼락 맞을 대추// 내가 사랑하는 것은/ 금방 뱀에 물린 당신의 얼굴”(‘바셀린 심포니’ 전문. 시집 원문에는 제목과 8행이 이탤릭체로 표시돼 있다. 다른 데서 차용한 표현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적자면, 시의 제목은 다다이즘의 수장이던 트리스탄 차라의 작품 제목에서, 8행의 ‘발광하는 입술’과 ‘피를 빠는 우주’는 사사키 히로히사 감독의 영화 제목에서 온 것이다.)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역시 따져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래도 짐작해보겠습니다, 그녀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북두칠성의 여덟 번째 별”은 미지입니까. 미지의 것을 사랑합니다. “추파춥스”는 달콤한 고통입니까. 어떤 고통은 달콤합니다. 새를 뜯는 고양이는 어떻습니까. 우아(優雅)보다는 야생(野生)을 사랑합니다. 10년 전 영화, 미친 영화입니다. <발광하는 입술>과 <피를 빠는 우주>를 꼭 보십시오. 르누아르가 그린 오달리스크(Odalisque)의 모습을 보고 바스키아는 말했습니다. “저 여자, 곧 방귀를 뀌려는 거 같아!” 이 발상을, 이 천진함을, 그러므로 이 진정한 예술가스러움을 사랑합니다. 항문에 폭탄을 집어넣는 상상, 벼락 맞을 녀석이 벼락을 맞는 상상은 즐겁습니다. 이런 시인의 모습을 본 지금 당신의 표정이 궁금합니다. 금방 뱀에 물린 사람의 표정입니까? 독자의 그런 표정을, 이 시인은 사랑합니다. 그리고 하나뿐인 이 시인을, 저는 사랑합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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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울하십니까?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4
김언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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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울하십니까?

요즘 우울하십니까?
돈 때문에 힘드십니까?
문제의 동영상을 보셨습니까?
그림의 떡이십니까?
원수가 부모로 보이십니까?
방화범이 될까봐 두려우십니까?
더 많은 죄의식에 시달리고 싶으십니까?
어디서 죽은 사람의 발등을 밟게 될지 불안하십니까?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십니까?
개나 소나 당신을 우습게 봅니까?
눈 밑이 실룩거리고 잇몸에서
고름이 흘러내리십니까?
밑구멍이나 귓구멍에서 연기가 흘러나오십니까?
말들이 상한 딸기처럼 문드러져 나오십니까?
양손에 떡이십니까, 건망증에 섬망증?
막막하고 갑갑하십니까? 답답하고
캄캄하십니까? 곧 미칠 것
같은데, 같기만
하십니까?

여기를 클릭
하십시오  

 

클릭으로 유혹하는 세상을 이렇게 가지고 놀았다고 하기엔 너무나 울울하다.  

우울한  세태의 주인공들이 이 시를 볼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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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짚고 간신히 찾아온
나 같은 사람을
너만은 반갑게 맞아다오
나는 너를 따 먹고
이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다시 어린이로 살고 싶단다
어린이가 되어
너처럼 고운 빛깔,
고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단다.
새콤달콤 그 맛을 온 몸에 지니고
이 땅에 살고 싶단다.

--「넝쿨딸기 3」 중에서


달콤 쓸콤 버찌 맛
손은 온통 딸기물이 버찌물이 들어
찐덕찐덕
새빨갛고 보랏빛이 되고
입술이 검붉게 되어버린 것도 모르고
어린애처럼 따 먹는다


아, 이래서 나도 온갖 벌레와 짐승을 키우는
가시덤불이 되고 벚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고
햇빛과 바람과 개골물과
흰 구름이 어울려 있는 산
산이 되는구나, 산이!


--「딸기와 버찌」 중에서


나는 이렇게 딸기를 따먹고
날마다 산천의 모든 기를 먹고
나도 산이 되고 싶다.
나무가 되고 풀이 되고
새가 되고 매미가 되고
잎이 되고 열매가 되고
노을이 되고 무지개가 되고
흙이 되고 돌이 되고 싶다.
정말로 정말로
너희들과 같이 되고 싶다.


--「산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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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술이 뭐지? - 이성원 선생님과 함께하는 자연미술 수업
이성원 지음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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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연이다. 

그걸 잊어버렸다. 그걸 잊게 만드는 세상 탓 그만 하고 그냥 자연을 느끼자고 한다. 

자연이고 생명인 아이들과 역시  

자연이고 생명인  어른들도  

스스로 느끼고  바라보는  행복한 시간, 

그럼 세상이 달라 보이리라. 

바라보고, 듣고, 느끼고,  

온 감각으로 살아있음을 느낄 때  

미술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시간인 걸 

그걸 아름다운 책으로 엮은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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